책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수학한 학자들이 ‘사이버공간의 세계정치’를 주제로삼아 21세기 세계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환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결성한 모임인 ‘정보세계정치연구회’를 모태로 한다. 이 모임에서 꾸준히연구와 토론을 거듭해온 저자들은 책을 통해 ‘부국과 강병을 추구하던 국가가 어떻게 네트워크 지식국가로 변환되었고 또 변환될 것인가’ 하는 논의가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점검했다.
근대 군사국가의 전파와 변환, 정보혁명과 지구테러 네트워크, 정보화시대의 지구무역네트워크, 근대 지식국가이론, 문화제국과 네트워크 지식국가 등 16편의 글을 "국민부강국가의 전파와 변환, 21세기 군사국가의 변환, 21세기경제국가의 변환,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부강"의 4가지 주제로 나누어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다.
■ 저자
김상배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를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일본 GLOCOM(Center for Global Communications)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교수로 재직하면서 정보세계정치론과 탈근대세계정치론 등을 연구 및 강의하고 있다.
하영선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이자 한국평화학회 회장이다. 서울대학교국제문제연구소장과 미국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21세기 평화학』『사이버공간의 세계정치: 베스트 사이트 1000 해제』『국제화와세계화: 한국, 중국, 일본』『탈근대 지구 정치학』『현대국제정치학』 등이 있다.
■ 차례
서문
1. 네트워크 지식국가: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 ― 하영선
제1부 국민부강국가의 전파와 변환
2. 천하예의지방과국민부강국가 ― 강상규
3. 근대 군사국가의 전파와 변환 ― 김현철
4. 근대 경제국가의 전파와 변환 ― 손열
제2부 21세기 군사국가의 변환
5. 정보화시대의군사변환 ― 이상현
6. 정보혁명과 지구테러 네트워크 ― 신성호
7. 21세기 미국의 변환외교 ― 전재성
제3부 21세기 경제국가의 변환
8. 정보화시대의지구무역 네트워크 ― 조화순
9. 세계금융 중심도시 네트워크 ― 이왕휘
10. 정보혁명과 지구생산 네트워크 ―배영자
제4부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부상
11. 근대지식국가이론 ― 최정운
12. 생명공학과 네트워크 지식국가 ― 조현석
13. 문화제국과 네트워크 지식국가 ― 김상배
14.네트워크시대의 문화세계정치 ― 민병원
15. 세계화시대의 네트워크 국가 ― 민병원
16. 결론: 네트워크 지식국가론의 모색 ―김상배
네트워크 지식국가
제1부 국민부강국가의 전파와 변환
천하예의지방과 국민부강국가 ― 강상규(서울대학교)
한반도는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전환기적 상황마다 국제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의미를 부여받곤 했다. 20세기 냉전이 시작되면서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19세기 서세동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일본에서 정한론, 청에서 조선 속국화 시도가 진행되어, 이것은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좀더 거슬러 가보면, 17세기 중화문명의 패권이 한족에서 만주족으로 교체되던 명청 교체기의 와중에서 두 차례의 호란(정묘호란, 병자호란)이 발발했고, 16세기 말 일본의 전국시대가 정리되어가던 격변기 속에서 조선은 두 차례의 왜란(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치러야 했다. 조선왕조 이전의 경우에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동아시아 지역을 구성해온 천하질서(중국적 세계질서, 중화질서, 화이질서)는 서구의 근대적 국제관계와 아주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가 행위주체로서 갖는 의미도, 개인이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도 근대 국제질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유교적 사유체계에서 국가란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기가 어렵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개인과 다양한 공동체 사이의 균형적이고 순환적인 조화를 강조하여, 극단적인 개인주의나 가족주의, 국가주의, 세계주의가 용납되기 어려운 사유체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질서에서 국가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주요한 행위자로 용인되면서도 이념적으로는 근대 국제질서의 행위주체인 주권국가처럼 강고한 배타적 실재로서 인식될 수 없었다.
중화질서의 이념은 현실정치공간에서 군사적 기반에 의해 지탱될 수 있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문화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예치나 덕치라고 불리는 보편적인 통치이념이 추구되고 있었고, 이런 통치이념에 기초한 천하관념이 중화 이외 세계의 이질적 요소를 포섭하고 있었다.
흔히 천하질서와 근대적 국제질서는 위계적인 질서공간과 수평적인 질서공간이라고 대비되어 표현된다. 그러나 사실 이런 표현은, 동일한 권력적 차원에서 차별 공간과 평등 공간이라는 식으로 평면적으로 비교되기 쉽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두 개의 질서가 근거하는 우주관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비교하게 되면, 오히려 당시 상황에 대해 제대로 논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천하질서는 근대국제질서라는 상이한 대외질서관념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국가간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번역되어 등장한 것이 바로 만국공법이었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 후 일본을 직접 견문하고 돌아온 수신사 김기수가 국왕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당시 조선 지식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수신사의 눈에 비친 일본은 불철주야 부국강병에 주력하고 있었지만 미래의 장구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김기수는 일본의 부국강병 전략이 조선이 지향해야 할 모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일까?
『경국대전』(1485) 등을 통해 신유학에 기반한 정치적 제도의 틀이 마련되자, 조선의 유자들은 점차 유교질서의 사회적 정착과 일상적 실천을 구현하는 데 매진했다. 정치의 윤리적 승화를 꿈꾸며 강렬한 문화적 자존의식을 견지하던 조선 유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부국강병이란 기본적으로 예치와 덕치에 의한 왕도정치에 대비되는 패도정치에 가까운 개념으로서 난세의 국면에 부상하게 되는, 가능한 지양해야 할 가치이자 태도였다. 상상 속의 서양적인 것들은 문명국가가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될 윤리적 가치를 알지 못하며 그것을 폭력적으로 해체시키는 야만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일본 등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조선도 자수자강과 부강을 추구하는 데 매진하자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견을 모았지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비판과 견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전개양상은 문명사적 전환기의 조선이 주권국가 간의 근대국제질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급격하게 봉쇄되어가는 사정을 보여준다.
비서구권 국가들은 서구의 문명기준에서 요구하는 여러 조건을 갖추었다고 판명되기 전에는 국제법의 영역 밖에 놓이기 되었고, 서구문명국가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구미국가와 맺은 조약이 한결같이 일방적인 불평등조약이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 문명적 요소의 미비라는 명분에 의한 것이었다.
19세기 동아시아 국가 간 관계의 패러다임의 변환이란 동아시아 전통국가들의 무대가 예의 관계에 입각한 천하질서에서 상위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주권국가간의 관계, 즉 근대국제질서로 변화해갔던 것을 지칭한다. 무정부적 속성을 지닌 새로운 무대환경에서는 덕치나 예치, 왕도정치, 사대자소와 같은 기존의 연기와는 다른 부국과 강병, 세력균형과 자강의 능력이 보다 중시되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배우들은 무대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는 연기력 부족으로 19세기 변화된 새로운 무대에서 퇴출당했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지혜로운 자는 실패에서 배운다고 한다. 새롭게 다가오는 전환기, 우리는 19세기 거대한 전환기의 역사적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제2부 21세기 군사국가의 변환
정보혁명과 지구테러 네트워크 ― 신성호(서울대학교)
탈냉전과 탈근대로 상징되는 21세기 국제정치의 안보는 그 위협의 종류와 분쟁의 성격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한 테러는 비국가행위자가 국제정치 안보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20세기 냉전 중 국제안보의 핵심이 핵무기로 무장한 미소 양국간의 대결이었다면, 21세기는 인터넷을 활용한 테러집단과 초강대국 미국의 사활을 건 투쟁이 새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테러리즘의 일반적인 정의와 성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테러행위 및 테러리즘은 ??비국가단체나 비밀요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전투원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의도된 폭력??으로 정의된다. 모든 테러리즘은 특정한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향을 가진다. 그들이 불특정한 민간인들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도 파괴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이를 통해 목표로 하는 정부나 사회에 공포나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지속적인 공포의 경고를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전달하고 원하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테러의 중요한 특징인 비국가행위자적 요소에 기인한다. 테러는 개인이나 특정한 단체로 구성된 비국가행위자들이 국가에 대항해 비정규적인 폭력의 수단을 사용해 전투원이 아닌 비전투원을 대상으로 행하는 무차별적인 폭력행위라는 점에서 비국가 저강도분쟁의 전형적인 한 유형에 속한다.
근대 테러리즘은 동기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공산주의 운동과 연관된 좌파 테러리즘이 있는데, 20세기 서유럽의 좌파 테러리즘은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비교적 그 시기가 짧았다. 둘째는 파시즘과 같은 우파에서 생겨난 우파 테러리즘이 있다. 종종 인종적 편견이나 종교 및 이민자 문제에 기초한 우파 테러리즘은 좌파 테러에 비해 느슨한 모습을 보인다. 셋째는 분리주의 테러리즘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소수 민족이나 종족들이 자신들의 분리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세 가지 근대 테러리즘의 공통점은 모두 세속적인 정치적 목표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근대 테러리즘이 가지는 동기의 세속성은 이들이 폭력을 행사함에 있어 그 수단과 정도에 있어서 나름의 자제와 절제를 부여했다. 근대 초기 테러주의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테러 목표가 가족과 함께 있거나 목표로 삼은 대상 외에도 무고한 시민이 함께 희생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종종 양심에 의해 테러를 포기하곤 했다. 과도한 테러행위는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실질적 고려가 여전히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테러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했다.
근대 테러리즘은 동기의 세속성과 함께 테러활동에 있어서 지리적? 기술적 제약을 가졌다. 근대 테러리즘의 활동 영역은 대부분 자신들이 위치한 지역의 국가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이 추구한 목적이 대부분 특정 지역의 국가나 정부를 상대로 정치적 양보 혹은 독립을 얻어내는 것이었기에, 이들의 활동영역이나 대상도 특정한 국가나 지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또 이들의 테러 행위가 대상 국가의 안보나 사회체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전의 테러리즘과 다른 21세기 테러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의 활동과 그 영향력이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인터넷과 같은 21세기 정보혁명을 이용한 전 세계적 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이루어진다.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숭상하는 알 카에다 테러조직의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무기와 수단은 노트북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이들이 이념을 전파하고, 새로운 대원을 모집하며, 이들을 훈련함과 동시에 새로운 테러를 기획, 시행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이용된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 RAND 연구소의 아퀼라와 론펠트는 일찌감치 네트워크 테러의 등장에 주의하고 새로운 국가안보위협으로 강조했다. 이들에 의하면 테러조직과 같은 비정규조직들은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전방위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며, 이는 중앙의 위계적인 단일한 지도부 대신 각 지역의 독립성이 보장됨과 동시에 분산되고 수평적인 다양한 단위체로 구성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네트워크는 과잉성과 대리가능성을 통해 근대의 수직적 국가조직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탄력을 테러조직에 부여한다. 더욱 많은 단위체가 네트워크에 생길수록 네트워크 전체의 생명력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알 카에다 조직은 독립된 단위조직들이 중앙과의 제한적인 의사소통과 지원을 통해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는 전형적인 비밀 네트워크의 특징을 가진다. 의사결정의 권한이 최하 수준의 단위에 주어지는 알 카에다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단위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 작용함으로써 조직의 유연성, 안정성 및 중복성을 최대로 확보한다.
이것을 척도 없는 네트워크라고 규정하는데, 척도 없는 네트워크는 몇 개의 단위체가 다수의 링크를 독점하면서 다른 수많은 단위체를 연결하는 소수의 허브로 작용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런 네트워크는 위계 없는 힘의 분산을 통해 보다 역동적인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며, 일련의 도전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특히, 이들 단위체 간의 특정 통로가 막힐 경우 다른 우회로를 찾음으로써 조직 내의 거리를 줄이는 장점을 갖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록 일개나 부분의 단위체가 파악되거나 제거되더라도 네트워크 조직 전체의 체제를 파악하거나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매슈와 삼보는 이들 네트워크가 지닌 문제점으로 인해 21세기 테러리즘이 고립, 소멸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들 스스로도 인정한 척도 없는 네트워크 테러가 가지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 고유의 취약성으로 인해 테러조직의 활동과 위협에 근본적인 제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들은 수평적 성격의 네트워크 조직은 비록 조직의 연속성과 적응성, 유연성을 담보하기는 하지만 중앙집중적 명령체계의 부재로 인하여 투쟁의 대상인 국가체제를 흔들 만한 총체적 위협을 창출해내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또 네트워크 안의 단위체가 증가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들을 통합적으로 묶을 수 있는 목표와 전략을 수립하기가 점차로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네트워크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집중화는 이들의 조직과 활동이 상대방의 공격과 억제에 취약하게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국의 신속한 보복과 대테러전 노력은 이들 테러의 동조자들에게 테러로 인해 얻는 효과보다 오히려 그에 대한 대가를 걱정하게 하는 억제로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취약성은 결국 테러주의자들로 하여금 보다 정상적인 활동으로의 변신을 통해 제도권으로 흡수되거나 증가하는 비용의 딜레마로 인해 지지층이 이탈해 고립, 소멸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21세기 네트워크 테러의 특수성을 간과한다.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파괴력은 수십만, 수백만의 인명과 재산을 한순간에 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심각한 국가적 차원의 안보 위협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급진 테러리즘의 자발성과 익명성을 간과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 테러주의자들의 동기와 목표는 속세의 이익이나 손실이 아닌 종교적 신념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따른 손실을 이성적으로 저울질하여 신중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가정은 기본적인 결함을 가진다. 테러리스트를 섬멸하기 위한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오히려 이들의 종교적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거나 복수에 대한 결의를 다지게 만들었다.
이런 테러리즘을 상대해야 하는 근대국가는 새로운 비대칭적 위협에 대해 혼돈과 불확실성의 도전을 받고 있다. 과거의 적들은 미국을 위협하기 위해 엄청난 군대와 이에 못지않은 산업시설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9.11테러범들은 겨우 19명의 인원과 탱크 한 대 값에도 못 미치는 비용을 가지고 파괴와 혼란을 초래했다. 이들에게는 대량의 보복을 경고하는 억제가 통할 수 없다. 보호할 국가나 국민 없이 성전을 수행하는 개인을 무슨 경고로 억제한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영토나 군대 없이 아무런 실체가 없는 그림자를 봉쇄할 수도 없다. 21세기 정보혁명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속에 범지구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테러리즘은 초강대국 미국을 포함해 테러의 대상이 되는 근대국가에 새로운 심각한 위협과 도전을 제시한다.
제3부 21세기 경제국가의 변환
정보혁명과 지구생산 네트워크 ― 배영자(건국대학교)
정보혁명이 지구생산체제에 미친 영향은 해외직접투자 규모와 같은 거시적인 측면보다는 미시적인 개별기업 활동방식의 변화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1980년대 후반 세계화로 인한 경쟁의 가속화 속에서 대부분의 초국적 기업들은 더 이상 대규모 생산으로 단위비용을 줄이는 규모의 경제에 만족하지 않고 컴퓨터 등 하이테크의 도움을 받아 규모보다는 속도와 적시성이 강조되는 유연생산이나 간반생산을 지향하게 된다. 아울러 기업들은 전통적인 기업조직방식인 수직적 통합 대신 가장 핵심적인 사업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외부 주문으로 조달하는 방식으로 기업활동을 조정하면서 네트워크 개념에 입각한 기업 조직이 일반화된다.
네트워크 기업의 부상은 시장환경의 변화와 거래비용 감소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대량생산의 이점인 규모의 경제보다는 각 지역에 흩어진 생산요소들을 필요에 따라 적합하게 결합하여 보다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만들어내는 범위의 경제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정보통신 기술은 세계경제 전반에 흩어져 있는 자원 및 기능들 간의 거래비용을 대폭 낮춤으로써 기업조직이 네트워크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계경제 내 경쟁환경의 변화, 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한 기업 내에서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이루어지던 원료 및 부품 공급, 제품생산, 유통 및 판매기능이 각자 최적의 조건을 찾아 세계 각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기업 내 혹은 기업간 수평적인 네트워크 형태로 각 기능이 연결되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재결합됨으로써 저렴한 비용으로 보다 신속하게 시장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초국적 네트워크 기업들이 증가한다. 아울러 기업간 네트워크도 보다 활성화된다. 현재 인수합병, 합작투자, 표준화를 위한 컨소시엄, 지분참여, 공동연구개발, 라이선싱, 판매협정, 공동마케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간 네트워크들이 활발히 구성되고 있다.
초기 전자상거래는 기업과 개별소비자거래(B2C)에 의해 활성화되었지만 현재는 기업간거래(B2B)가 주도하고 있다. 초기 B2B는 전자문서교환을 기반으로 중개자 없이 특정 기업 차원에서 기업간 전자상거래가 이용되는 폐쇄적인 성격을 띤 반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B2B는 가상시장을 형성하여 적은 비용으로 다수의 거래자를 참여시킬 수 있는 개방적 성격을 띠는 점에서 대비된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정보통신 기술은 연구개발과 생산과정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컴퓨터 네트워크와 가상현실기술의 발전이 급속화되면서 최적화, 시뮬레이션, 시스템통합 등을 통한 연구개발 및 제조과정의 디지털 전환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전자산업에서는 다양한 이용자의 요구사항에 대응해 제품사양을 빠른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으로 부상함에 따라 모듈화 기술의 중요성이 급속도로 부각되고 자유롭게 결합될 수 있는 모듈형 부품의 가치가 급증하고 있다.
기업조직의 내외부가 유연한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되어가고 있는 변화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각 기능별로 전문 혹은 특화기업들이 부상하면서 제품개발 및 브랜드 마케팅 특화, 제품 관련 서비스 특화, 제조특화기업들을 중심으로 분업구조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 안에서 기업간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강화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이런 변화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누가 이득을 보며 누가 손해를 볼 것인가, 초국적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활동에 인터넷 등 정보기술이 적극 활용되는 것이 개도국에 유리한가 아니면 불리한가, 많은 연구자들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주도기업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측한다.
정보혁명 이후 몇몇 학자들은 지구생산 네트워크 안에서 이동하는 유형, 무형의 지식의 흐름에 주목한다. 기존의 생산 네트워크 연구가 원자재, 부품, 생산장비 등의 이동에 관심을 가졌던 것에 반해 최근에는 조직 및 경영방식, 특정 개인, 기업 및 국가에 내재되어 있는 암묵적 지식 등 무형의 지식이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도국들은 자국의 혁신능력 강화를 위해 지구지식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적절히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정보기술의 발전은 주도기업의 역할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정보기술을 기회의 창으로 활용하는 신생기업 및 개도국 기업에 대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기술력 향상을 위한 장을 마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각 산업에서 위계적?과점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주도기업들과 틈새시장에 진입한 소규모의 다양한 후발기업들이 공존하는 이중적 산업구조가 강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지구생산체제에서 지구지식 네트워크의 형성과 중요성의 부상, 이것이 세계정치 경제질서의 전개에 미치는 배분적 함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정보화와 정치에 관한 일반적 논의에서 제기되듯 현재까지 정보기술은 권력의 집중효과와 동시에 분산효과도 함께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초국적 기업의 위상강화를 위한 이념적? 제도적? 도구적 노력이 강화됨과 동시에 이를 견제하는 세력의 초국적 연대, 반세계화 운동, 세계사회포럼 등을 통한 초국적 기업 규제 노력도 보다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양자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할 만하다.
제4부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부상
생명공학과 네트워크 지식국가 ― 조현석(서울산업대학교)
생명공학의 복합적인 사회적인 성격 때문에 생명공학의 발전방향을 규정하는 글로벌 생명공학 거버넌스는 다양한 요소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아야 한다. 생명공학의 물질적 능력은 기술적 지식의 발전과 그런 발전을 둘러싼 기업간, 국가간 기술경쟁과 관련되며, 제도는 그런 경쟁이 이루어지는 게임의 규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특허제도나 규제제도는 생명공학의 발전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행위자간 권력관계와 분배적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념적 요소는 특히 생명공학의 경우 기술발전의 효율성 논리와 길항관계를 맺으면서 생명공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지식 개념을 검토해보자. 도구적 지식과 메타 지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식창출과 기술혁신에 관한 논의에서 강조되는 지식과 기술의 중요성은 도구적 지식을 의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도구적 지식은 지식의 한 차원에 불과하다. 지식구조의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는 제도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메타 지식이 작동하고 있다. 메타 지식은 말하자면 지식주체들의 지식 활동을 규율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또한 정당화하는 구조적? 구성적 차원의 지식을 말한다. 이런 메타 지식은 도구적 지식의 창출과 적용이 이루어지는 제도적? 문화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을 이렇게 이해할 때 지식은 권력 함의를 가지게 된다. 정보화는 도구적 지식의 생산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구조적? 구성적 차원에서 메타 지식의 작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와 네트워크 시대에서 지식창출과 기술발전은 대부분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생명공학의 경우 다른 기술보다 기업간 전략적 제휴, 공공연구소와 기업간 공사 제휴, 대학과 기업간의 산학협력 등 네트워크 형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네트워크는 정보기술의 경우와 유사하게 분석수준에 따라 지방, 국가, 지역, 글로벌 수준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런 지식과 네트워크에 관한 논의를 국가에 대한 논의로 연결시켜보자. 국가에 관한 논의는 국가의 구조적 형태와 기능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기능에 관련해서는 우선 발전국가 대 조절국가의 논의구조에서 출발할 수 있다. 발전국가는 사회세력과는 다소 독립적으로 국가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국가자율성과 국가능력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조절국가는 시장의 주도성을 인정하면서 반독점정책과 같이 시장 실패의 경우 일정 역할을 담당하는 소극적인 국가를 의미한다. 그러나 지구화의 맥락에서 볼 때 발전국가 대 조절국가의 논의구조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 구도가 기본적으로 국가 경제 단위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렌저는 중앙집권국가와 분권국가로 나누고 있는데, 정보기술산업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개된 일본과 미국의 기술패권경쟁을 분석하면서 상대적으로 분권적 국가구조를 가진 미국이 기술패권을 확보하는 데 훨씬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발전국가 대 조절국가, 집권국가 대 분권국가 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경제를 분석단위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한계를 보인다.
생명공학 거버넌스는 지방, 국가, 지역, 글로벌이라는 다양한 수준이 중첩되어 구성되어 있다. 행위주체의 측면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생산, 지식 서비스, 공급 등 다양한 세부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 산학협회, 공공연구소, 대학, 환경 NGO, WTO 같은 국제제도, 이런 행위자들이 맺고 있는 네트워크 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생명공학 거버넌스는 적어도 구조적으로 다층 거버넌스의 성격을 보인다.
여기에서 국가의 새로운 개념화를 모색할 수 있는 이론적 단서가 등장한다. 다층 거버넌스는 위계, 시장, 거버넌스와 같은 다양한 범주의 조정 기제에 의해서 움직인다. 이런 복합 거버넌스에는 전략적? 관계적 역할을 담당하는 일종의 메타 조정 기제가 필요하다. 이 메타 조정 기제를 메타 거버넌스라고도 할 수 있다.
제솝은 메타 거버넌스가 시장과 정부 그리고 거버넌스의 실패를 방지하고 조정하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시장, 비시장제도, 특정 거버넌스 등이 복합돼 있는 구조에서는 국가가 가진 전략적? 관계적 위상을 능가하는 조정 단위를 찾는 것이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가 메타 거버넌스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국가가 수행할 수 있는 메타 거버넌스의 기능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국가는 거버넌스의 규칙을 제공하며, 거버넌스 파트너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규제질서를 형성한다. 또한 상이한 거버넌스 메커니즘이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호환성과 응집력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구성요소들의 정체성, 전략적 능력, 이해에 대한 인식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며 더 나아가 거버넌스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진다. 물론 국가가 중심 위상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높은 수준의 통제를 행사하지는 않는다.
생명공학의 발전과 함께 형성되고 있는 글로벌 생명공학 거버넌스는 한편으로는 집중의 논리가 작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탈집중의 논리도 경시할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한다. 물질적 능력의 측면에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미국의 주도권이 확립되어나가는 등 집중적인 논리가 강하게 관철되는 양상을 보이며, 구조적 및 구성적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집중적인 논리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국제 지적 재산권 제도의 관철을 저지할 수도 있는 생명공학의 오픈 소스 운동이 제기되고 있는 구조적 차원과 미국-유럽 간의 갈등, 국내 및 글로벌 시민사회의 반발 등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조작식품) 이슈에 관련된 구성적 차원에서는 탈집중의 힘이 상당히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주도의 글로벌 생명공학 거버넌스가 유지되어가면서도 이것에 대한 저항도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과 유럽 및 글로벌 시민사회 쪽에서 만만찮게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생명공학에 관한 한 글로벌 거버넌스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미국의 주도와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집중과 탈집중이 혼재된 불안한 균형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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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지식국가의 개념이 주는 함의는 상당하다. 우선 이론적으로 국가의 쇠퇴와 유지 논쟁을 넘어 국가의 존재 양태와 기능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국가는 지역, 국가, 국제적, 글로벌 수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넘나들면서 지식과 같은 권력자원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때의 국가행위는 다양한 지식주체들의 활동을 네트워킹하며 그것을 조종, 조정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런 분석을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큰 무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적어도 정치? 경제적 차원에서 발전국가의 해체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국가 변환을 탐색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상당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런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아이디어는 좀 더 과감하고 미래지향적인 방식으로 국가변환의 설계를 모색하도록 자극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