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는 보편적인 문제점들을 논했고, 2부에서는 역사상 현 시점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들,즉 열린사회로서 미국이 당면한 문제, 유럽 연합의 실패, 민주주의 확산 과정의 어려움, 보호의 책임을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국제공동체의 부재,지구 에너지 위기, 핵 확산 등을 살폈다. 특히 잘 포장된 미국 현 행정부의 치명적인 결점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며 미국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접근한 것에 주목할 만하다.
■ 저자 조지 소로스
1930년 헝가리에서 유태인으로태어났다. 1956년 미국에 정착하여 짐꾼, 담배 세일즈맨, 은행원 수습사원 등으로 일하다가 1969년 400만 달러로 국제투자펀드를 시작하여1987년까지 20억에 달하는 자본가로 성장했다. 2004년 현재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Soros Fund Management)의 회장이며,열린사회를 지원하기 위해 세계 25개국에 설립한 글로벌 네트워크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열린사회 프로젝트』『세계 자본주의의위기』『Open Society』 등이 있다.
■ 역자
전병준 -매일경제신문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주영 - 매일경제신문 기자로 근무하고있다.
장광익 - 매일경제신문 기자로 근무하고있다.
이진명 -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주)코오롱을거쳐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했다. 금융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매일경제신문에 "어린이 경제교실"을, 어린이 월간지 「위즈키즈」에 경제 이야기를연재했으며, 2004년 현재 매일경제신문 사회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야기로 배우는 어린이 경제교실』『보이지 않는 돈 신용』등이 있다.
■ 차례
역자 서문
글을시작하며
제1부 개념의 틀
제1장 인식과 현실
제2장열린사회의 의미
제2부 역사 속 현재
제3장 미국이 뭐가 잘못됐는가?
제4장 자아도취적사회
제5장 세계질서, 뭐가 문제인가?
제6장 대안을 찾아
제7장 글로벌 에너지 위기
글을 마치며
부록
오류의 시대
제1부 개념의 틀
인식과 현실
- 현실의 일부인 인식
내가 현실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실존하거나 일어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의식 있는 인간, 그리고 그들의 사고와 행동은 현실의 일부다. 우리의 인식이 인식하는 대상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은 인식과 현실 둘 다에 대한 광범위한 암시를 준다. 이는 현실을 이해하는 데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가 되며 동시에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현실을 다르게 만든다.
지식은 달리 말하면, 진실한 명제를 지칭한다. 진리의 대응설에 따르면 명제가 사실과 부합하면 참이다. 명제와 사실이 부합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사실을 언급하는 명제는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인식이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의 일부일 때 이 같은 필요조건은 충족될 수 없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이 현실의 모든 면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건에 직접 관여할 경우에는 더 복잡해진다.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의 불완전한 이해나 오류가 현실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정을 할 때는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결정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모든 관련된 사실을 알고 있을 때 내리는 결정과 실제로 우리가 내린 결정은 같을 수가 없다. 현실은 이해되어지길 기다리며 우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현실에 상응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균형으로부터 거리가 먼 상황들
주류 경제이론은 인간이 합리적 행위를 한다는 가정을 근간으로 한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이 균형가격을 결정한다고 전제하지만 재귀적 상황들로 인해 시장이 반드시 균형을 향하지는 않는다. ‘균형으로부터 거리가 먼 상황’이라는 표현은 정치, 사회 현상에도 적용된다.
나는 실제에서도 균형으로부터 거리가 먼 상황 연구에 헌신해왔다. 1944년에 나치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만약 아버지가 거짓 신분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나의 신변이 독일군에 노출돼 유대인이라는 것 때문에 처형당했을 것이다. 무엇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이보다 더 멀 수 있겠는가? 그때 헝가리를 떠나기 전에 나는 기행과 무절제로 점철된 소비에트 체제를 체험했다. 그 후 런던정경대학 학생이 됐고 거기에서 칼 포퍼의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헤지펀드 매니저가 됐을 때 금융시장에서 균형으로부터 거리가 먼 상황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대부분의 시장참여자들보다 그런 상황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재산도 불릴 수 있었다. 박애주의자로서 나는 정치분야에서 균형으로부터 매우 거리가 먼 과정이었던 소련 제국의 붕괴에 관여했다. 나는 <소비에트 체제의 개방>에서 금융시장의 특징인 거품붕괴 과정과 소련제국의 붕괴 과정이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에는 2001년 9/11 테러 공격 후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묘사하는 데 동일한 유추를 적용했다.
- 최근 사례
현재 우리는 거대한 부동산 버블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이 거품의 원인은 2001년 주식시장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어 계속 추락하는 것을 막기로 한 연방준비은행의 결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이자율은 1%까지 하락했다. 주택금융(모기지) 기관들은 모기지 가입자들이 집을 담보로 다시 돈을 빌리도록 해서 넘쳐나는 유동자금을 처리하려고 했다. 대출 기준을 낮추고 변동금리모기지, 이자지불모기지, 그리고 판촉용 미끼 금리 같은 신상품들을 도입했다. 이 모든 것이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조장했다. 집값은 두 자리 수의 비율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투기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고 집값 상승은 집주인들을 부자로 느끼게 했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간 경제를 지탱해온 소비 붐이 가속화됐다. 결국, 버블은 자산가치와 가치평가 사이의 단절에 기인하는데, 이 단절은 부 효과(자산효과라고도 한다.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도 증가하는 현상으로 자산효과는 현재의 소비가 현재의 소득뿐 아니라 미래의 소득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라 불린다.
제2부 역사 속 현재
미국이 뭐가 잘못됐는가?
- 개인적인 관여
2004년에 부시가 재선됐다. 나는 "대체 미국이 뭐가 잘못됐느냐?"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됐고, 이듬해인 2001년 9월 11일에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있었다. 나는 당시 미국에서 열린사회가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했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미국 대통령의 방법 때문이기도 했다.
의회는 테러대책법이라고 불리는 애국자법을 법안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곧 비애국자로 낙인 찍혔다. 대통령은 곧 이라크를 공격했다.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진실을 왜곡하고, 국제 여론을 무시하며, 국제법을 업신여긴다면 세계질서는 큰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부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완승을 거뒀다. 미국 유권자들은 그의 정책에 대해 지지를 보여줬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지 2년이 못돼 여론은 그와 그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잘못된 것은 유권자가 아닐 수도 있다. 선거의 시기가 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너무 빨리 치러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여론은 이라크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변한 반면, 여전히 그 전쟁을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지지자들의 실패
미국 여론은 놀라울 만큼 속는 것에 무뎌져 있다. 여론은 이라크전쟁이 부시 행정부의 속임수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전쟁에서 이겼는지, 졌는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에 반해 유럽인들은 속임수를 참지 못한다.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은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고, 스페인 국민들은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스페인 총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무리 9/11 사태가 충격적이었다지만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열린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진실은 중요한 것이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궁극적인 진실을 달성하는 것이란 우리의 능력 밖이다. 그러나 현실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진실을 달성하는 것은 그만큼 수월해진다. 따지고 보면 진리에 대한 추구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 자아도취적 사회
기업들은 많은 이익을 창출해내기 위해 제품 혁신 외에 다른 방법을 찾는다. 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소비자들의 필요에 목매달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바람을 찾는다. 소비자들의 바람을 만들어내고, 자극‘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 복잡한 시장조사와 구매동기 조사가 구사된다. 이런 수단들이 정치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정치의 특징을 바꿔놓았다. 선거의 원래 의미는 후보자가 나와 그들이 지지하는 바를 밝히면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대변해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목표가 정해지고 목표에 맞는 메시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신념에 따른 정책 개발은 제쳐두고 유권자들의 바람에 영합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법을 배웠다. 불행히도 이 같은 구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점점 더 복잡하고, 세밀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속으로 속속 도입됐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자아도취적 사회가 된 이유다. 미국에서 숙련된 민주적 자본주의는 매우 성공적이다. 소비자중심주의는 지금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수요와 지금은 기억 속으로 사라진 대공황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지금 미국이 누리고 있는 번영은 소비자중심주의와 선순환 구조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세계 정상국으로 부상했다. 구소련이 붕괴되자 미국은 유일한 강국이 됐다. 또 미국은 궁극적으로는 자국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세계화의 최대 지원국이 됐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적인 지위는 불편한 현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자아도취적 사회로 인해 오래 유지될 수 없다.
-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가 일어나자 부시 행정부는 미국을 감싸고 있던 두려움을 과장했고, 이를 자신들의 이익에 악용했다. 국민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대통령 편에 섰고, 평상시 같으면 불가능했을 정책들을 펼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은 역작용을 낳았다. 이 전쟁은 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철수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상황으로 미국을 몰아넣었다. 미국이 현실과 동떨어진 균형과는 거리가 먼 상태로 변해버린 것은 9/11 테러에 대한 반응을 보이면서부터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현실이었다. 대응은 물론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응은 미국을 현실을 잘못 파악한 몽상의 나라로 바꿔놓았다. 설상가상으로 국민들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상황들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실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부시 행정부의 9/11 테러에 대한 대응을 테러리스트에 대한 당연한 행동인 양 받아들였다.
이라크에 대한 침략은 이제 재앙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현실적으로 테러리스트는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루는 편이 훨씬 낫다. 전쟁이란 원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르는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면 무고한 희생자가 양산될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9/11 당시 죽였던 사람 수보다 더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 죽인 것뿐만 아니라 이라크인들을 고문하고 모욕감을 줬다. 우리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할수록 테러리스트들이 떠들어대는 주장에 정당성만 부여할 뿐이다.
9/11 여파로 미국은 세상의 거의 모든 이로부터 연민과 지지를 끌어냈다. 그 이후 여론은 서서히 우리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계획은 사사건건 의심과 반대에 부딪혔다. 나아가 현재 상황에 대한 세계인의 무관심은 미국 영향력의 감소가 예상보다 심각함을 입증한다. 우리의 안전과 세계의 안녕은 알카에다가 미국을 공격하던 그때보다 더 악화됐다.
세계질서, 뭐가 문제인가?
현재 전 세계에서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며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전파할 수 있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잘못된 정책을 세웠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국가 간 관계가 법이 아니라 오직 힘에 의해서만 정의된다고 믿고 행동한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 패권주의는 2002년 발간된 국가안보보고서에 포함된 부시독트린에 잘 드러나 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반드시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절대적?군사적 우월성을 지녀야 한다. 둘째, 미국은 선제공격을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미국은 자유진영의 리더로서 그 역할을 꽤 잘 수행해왔다. 자유진영의 다른 국가들은 공산진영의 위협에 대응하는 미국의 리더십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어젠다를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 미국이라고 일방적으로 자국의 생각을 전 세계에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리더십과 적극적인 협력 없이는 국가 간 협력 역시 불가능하다.
9/11 이전의 외교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반드시 자유세계의 리더로서 독특한 책무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열린사회는 실패를 실패로 묻어버려서는 안 된다.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테러리즘을 다루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근본주의자 오류
“경제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경제에서 정부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국제기구에 대한 혐오는 국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문제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경제운영에 있어서 정부가 적합한 기관이 아니란 얘기가 맞다는 것이다. 또 국가 경제보다 국제 경제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정부가 더 비효율적인 기관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높다. 해외지원은 알려진 대로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 경제활동 주체로서 정부의 역할을 부인하는 시장 근본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은 정부가 지닌 약점들 때문이다.
나는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록 정부가 경제 운영을 위해서 적절치 않은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국가 혹은 국제 수준에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정부의 규제나 시장 자율에 의한 것 모두 각각 장단점이 있다. 주의할 점은 하나가 문제라고 해서 다른 하나가 완벽하단 뜻은 아니란 것이다. 사실 모든 근본주의자들이 이런 오류에 빠져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확실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해결책 모색에 실패했을 때 그들은 기존 식의 정반대는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는 시장 근본주의를 반대하는 것만큼 국유화나 정부의 생산자원 통제를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너무 시장 근본주의 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화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산물이다.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공산주의든 더 온화한 형태의 정부 통제든 모두 불신 받고 있다. 내가 공산주의와 정부 통제가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관심을 덜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대안을 찾아
세계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미국 대신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생각해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유럽연합(EU)이다. 그러나 EU는 자체적인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만약 중국이 세계를 이끈다면 특히 미국을 비롯해 다른 국가들의 심각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어떤 주권 국가도 이른 시일 내에 미국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 8년간 심하게 약화될 것이다. 다음 정권은 지금까지보다 더 폭넓게 국제협력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정권은 EU를 가장 든든한 우군으로 여길 것이다. EU는 많은 민주사회와 국제시민사회의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 유럽연합
EU는 주권의 제한적인 위임에 합의한 국가들의 연합체다. EU는 몇 가지 결함으로 인해 아직 고전 중이다. 우선 전체 회원국의 규모가 너무 크다. 아직 운영이 불투명하고 관료주의 색채를 많이 갖고 있다. 또 EU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서 회원국 국민들은 소외됐다고 느끼고 있다. 이런 불만 때문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들은 최근 유럽헌법을 거부했다. 자본의 이동뿐 아니라 인력의 이동 역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열린사회라는 개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끝은 아니다.
EU는 평화, 자유, 민주 확산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 부시 정권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 이뤄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미국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다.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더 강하고 밀착된 EU의 몫이다.
- 국제 시민단체
시민단체와 비정부단체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있지만 국제사회의 혼란으로 인해 생긴 리더십의 공백을 시민단체와 비정부단체가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독립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는 오늘날의 세계질서 속에서, 국가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을 시민단체가 침범할 수는 없지만 민주적인 정부라면 적어도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는 정부나 특정 이슈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부와 함께 일을 하면서 제 몫을 할 수 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지구 온난화, 자원의 저주,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 증가, 에너지 공급 부족, 그리고 중동의 정치적 불안정성 같은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 온난화 문제는 백 년 전부터 시작된 온실가스 배출이 원인이 됐다. 자원의 저주는 식민지 시대에 기원하고 있고 중동 사태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문제다. 1971년 이후 미국의 석유 생산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0년 내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허버트 피크 이론에 따르면 세계 석유생산은 지금이 거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시기다.
9/11 이후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한꺼번에 표출됐다. 실은 9/11이 이런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낸 주역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침공, 이란의 부활, 이슬람 급진화와 이슬람 분파 간 갈등, 미국의 영향력 쇠퇴, 핵 확산, 중국의 천연자원 흡수와 자원의 저주를 치료하는 데 따른 부정적 효과, 유럽에 위협이 되고 있는 러시아의 가스공급 무기화 등 다른 많은 문제의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위기는 석유공급 감소다. 석유 소비량이 새로 찾는 유전의 매장량보다 훨씬 많았다. OPEC은 석유생산을 제한함으로써 원유 고갈을 억제하고자 했다. 그리고 갑작스런 공급중단 사태를 막기 위한 유휴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 정치적 불안지역에 대한 의존, 자원고갈 등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다른 요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인들은 서로의 연관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일례로 지구 온난화 문제는 테러나 휴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당선과 아무런 관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별개의 사건은 새로운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원인이 되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위기를 가중시킨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은 테러리스트가 대형 살상무기를 획득했다고 발표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또 민주당은 미국 항구의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표심을 잡으려고 하고 있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테러리스트나 나이지리아의 해적, 그리고 휴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이 에너지 공급 사슬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다른 어떤 위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무분별한 세계화가 낳은 부정적인 단면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위기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제까지의 크고 다양한 문제들은 우리가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거나 이해를 도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9/11과 관련해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잘못된 인식을 뿌리 뽑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바로잡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가장 큰 실수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미국이 가장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록 에너지가 국제적인 협력을 요구한다고 해서 개별국가의 민족적인 이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자칫 국제사회가 양극화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인류 문명이 직면한 중요한 도전 중 하나지만 유일한 문제만은 아니다. 에너지 문제와 관련한 위기 의식은 미국의 태도 변화와 EU의 결집을 위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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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자원의 저주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 모두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와 내 재단은 EU의 장래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며, 미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탄원할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