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새로운 모색

   
박사명
ǻ
이매진
   
22000
2006�� 10��



■ 책 소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동남아와 동북아를무관하게 다뤄왔다. 그러나 탈냉전과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은 우리의 고정 관념을 철저히 전복하고 해체했다. 그것이 바로 1997년 여름 태국에서시작해 한국을 난타한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역사적 정체다. 21세기 한국의 시·공간적 조건은 동남아와 동북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의지정학적(geopolitical), 지경학적(geoeconomic), 지문화적(geocultural) 변동을 반영하는 역동적 인식 지도를요구한다.

 


이 책은 동남아의 정치변동과 동북아의 정치변동이 동아시아 전체의 지역통합을 추동하는 새로운역사적 동향에 관한 정치학적인 관심을 갖고, 동남아와 동북아의 정치변동이 낳은 동아시아 전체의 지역통합을 탐구했다. 동아시아의 과거부터 현재의변화, 참여정부의 동아시아 정책까지 아우르며, 아세안이 주도하는 ‘ASEAN+3’ 방식을 통해 동북아의 ‘동굴’을 이탈하여 동아시아의 ‘광장’을지향하는 여정을 서두르고, 새로운 인식 지도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미래를 기획하자고 제안한다. 


■ 저자 박사명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졸업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중국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석사, 뉴욕주립대학교(State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동남아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1989년 이후 강원대학교정치외교학과 교수로서 사회과학대학 학장 및 정보과학대학원 원장, 중국 랴오닝대학교(遼寧大學) 초빙교수, 미국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University) 방문학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동남아지역연구회 회장,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사단법인) 한국동남아연구소(KISEAS: Korean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이사장으로서동아시아공동체연구회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및 지역통합에 관한 실천적 담론에 참여하고 있다.


■ 차례
서문 
논문의 출전 
서론 -동아시아의 보편성과 특수성 


I부 동남아의 정치변동
1장 동남아 정치변동의 장기동향
2장 동남아의 경제발전과 정치변동 
3장 동남아의 경제위기와 정치변동 
4장 세계화와 동남아 : 도전과 응전


II부 동북아의 정치변동 
5장 중국의 시장경제와소유제도 
6장 세계화와 중국화: 도전과 기회 
7장 중국과 동남아 : 전장에서 시장으로 
8장 동북아 정체성의 딜레마


III부 동아시아 지역통합 
9장 동남아의 화인사회:필리핀 사례 
10장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정치동학 
11장 동남아의 동아시아 지역주의 
12장 한국과 동남아의 문화적 연대
13장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로 


결론 - 동아시아를 위한 한국의 선택
참고문헌





동아시아의 새로운 모색


I부 동남아의 정치변동
동남아의 경제위기와 정치변동


1990년대 종반 동남아의 경제위기가 일반적 예상을 초월한 충격적 사태라면, 그 이후 동남아의 경제회복 또한 일반적 예상을 초월한 획기적 현상이다. 위기 이전의 기적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와 위기 이후의 회복에 대한 지나친 비관주의는 모두 동남아의 경제발전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와 지나친 과소평가의 편향을 드러낸다. 1997년 위기의 와중에서 싱가포르 리콴유가 말한 바와 같이 "거의 모든 경제적 위기에 있어서 그 근본적 원인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정치적 지형의 변화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위기는 세계화의 제1차 위기이다." 그것은 지구적 차원에 있어서 경제적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른 단기 자본의 자유 이동에 관한 효과적 세계금융질서의 미비라는 위기 발생의 구조적 조건과 국제통화기금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 남용이라는 위기 악화의 전략적 조건이 상승적으로 복합된 결과이다. 그런 외재적 요인은 지역적 차원에 있어서 세계화에 대응하는 경제적 및 정치적 전환의 지연이라는 일정한 내재적 요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잠재적 위기의 현재화를 추동한다. 그 점에 있어서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는 냉전 종식과 정보혁명에 따라 가속되는 세계화 최초의 위기로 규정된다.


양극적 냉전체제의 해체로 인해 권위주의적 안보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이 약화되고 외향적 경제발전의 진전으로 인해 중상주의적 발전국가의 경제적 효율성이 저하됨에 따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아 선발국가의 경우에는 정치적 다원화?민주화와 경제적 시장화?자유화를 위한 이중적 전환의 과제가 제기된다.


현실적으로 그런 역사적 전환은 가장 우선적으로 정부 능력의 강화를 요구하는데, 유사한 국가역할의 경우에도 정부 능력은 다양한 편차를 드러내는 한편 유사한 정치체제의 경우에도 국가 역할은 다양한 양상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단기적 차원에 있어서 위기의 관리는 정부 능력의 효과적 제고를 요구하고, 중기적 차원에 있어서 위기의 타개는 국가 역할의 합리적 조정을 요구하며, 장기적 차원에 있어서 위기의 극복은 정치체제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정부 능력의 문제이고, 간접적 원인은 국가 역할의 문제이다.


"필리핀의 경제발전에 긴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질서"라는 리콴유의 문제의식은 바로 정부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가 반드시 효율적 경제발전을 위한 안정적 사회질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위주의가 반드시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한 안정적 사회질서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마르코스의 신사회와 수하르토의 신질서에서 시도된 권위주의적 실험의 궁극적 실패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서도 일정한 선정이 가능하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정치체제에서도 다양한 악정이 가능하며, 태국의 차왈릿 정부와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정부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동남아의 경우 경제 발전을 위한 시장경제의 운용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조정하는 국가의 역할은 각종 문화적 명분을 통하여 미화되는 행태적 부패를 조장함으로써 정부 능력의 심각한 약화를 초래한다.

동남아의 경제 발전에 있어서 기업에 대한 정부의 위상은 동북아의 수직적?자율적?주도적 발전국가에 비하여 훨씬 수평적?상호적?유도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동북아 발전국가의 원형적 요소는 첫째, 산업화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금융자본을 배분하며 시장 경쟁을 감독하는 효율적 관료조직, 둘째, 그런 산업정책의 결정과 집행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셋째,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시장순응적 수출지향 시장개입을 추구하는 강력한 국가기구 등이다. "문제는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 자체가 아니다. 모든 국가는 다양한 이유로 경제에 개입한다. 미국은 규제주의적 경향이 압도적이고 일본은 발전주의적 경향이 압도적인 사례이다. 요컨대 시장합리적 규제 국가는 실물경제 대신 시장경쟁의 형식적 규칙에만 개입한다."


경제 위기 직전 동남아 각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태국, 필리핀)에서 권위주의(인도네시아, 베트남)까지 양극적 유형을 포괄하며, 그 중간에 준민주주의(말레이시아)와 준권위주의(싱가포르)가 공존한다. 그러나 정치체제의 다양성과 무관하게 모든 국가가 산업화 및 시장화에 따른 대내적 조건의 변화와 탈냉전 및 세계화에 따른 대외적 조건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치체제의 전환이 지연되는 유사성이 드러난다.


인도네시아의 IMF식민체제에서 말레이시아의 IMF 없는 IMF식 개혁까지 동남아 각국은 위기의 경제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다. 대응은 우선적으로 정부 능력의 개선, 이차적으로 국가 역할의 조정, 궁극적으로 정치체제의 재편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현실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범위와 속도의 변화를 초래했다.


동남아의 경제위기는 동북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 심대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충격을 제공한다. 기적이 위기로 반전하는 새로운 역사적 도전은 동아시아 각국에 있어서 대내적으로 산업화 중심의 근대화와 대외적으로 개방화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다각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데, 직접적 위기를 모면한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 오히려 위기의 교훈을 가장 체계적으로 반영하는 현상은 지극히 역설적이다.


냉전 종식으로 인한 지정학적 조건의 변화와 정보혁명으로 인한 지경학적 조건의 변화가 초래하는 세계화의 제1차 위기에 대한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은 세계화에 대한 효과적 대응으로서 그에 대한 폐쇄적 거부나 방임적 수용을 허용하지 않는데, 세계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율적 전환이 필요하다.


동남아의 경제위기가 탈냉전 이후 세계화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실천적 경험은 세계화에 대한 효과적 대응으로서 폐쇄적 대안과 방임적 대안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각국의 구체적 조건에 따라 세계화의 범위와 속도를 주체적으로 조절하는 관리적 대안을 지지한다. 그 점에 있어 동남아 각국은 대내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현대화의 과제를 제기하며, 대외적으로 개방적 지역주의를 위한 지역화의 과제를 제기한다. 동아시아 각국의 지혜로운 공동관리가 필요하다. 


세계화와 동남아 : 도전과 응전
1997년 금융위기의 확산과 1999년 동티모르의 독립은 동남아에 대한 세계화의 경제?사회적 및 정치?문화적 파장의 넓이와 깊이를 예고한다. 동남아에 있어서 금융 위기와 인권 문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2차대전 이후 전개되는 국민국가 형성 과정의 일정한 임계적 국면을 상징하고, 국민국가의 영토주권을 제약하는 세계화의 역사적 도전을 실증하는 중요한 계기인 것이다.


개방적 시장경제를 통해 이미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깊게 편입되어 있는 성장국과 폐쇄적 계획경제를 개방적 시장경제로 재편하고 있는 최빈국을 포괄하는 동남아는 세계화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모두 극대화될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 근대화의 시차성과 현대화의 동시성은 주변부의 정치적 과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바, 동남아는 아직 국민국가의 형성조차 완료되지 않은 단계에서 그 전환에 대한 새로운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인 경제정체의 심화와 사회구조의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자원배분의 효율화와 분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후발 이익이 극대화됨으로써 경제 발전이 가속되고 사회구조가 다원화될 것이다. 식민화가 초래한 경제적 이중사회의 비관주의적 전망을 이미 수출지향 공업화를 통해 정면으로 돌파한 바 있는 동남아는 다시 세계화에 대한 주체적 대응을 통해 새로운 경제?사회적 전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치?문화적인 면에서 보면, 세계화는 단기적으로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다양한 반동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국경을 전제로 하는 국제사회를 넘어 국경을 초월하는 지구적 시민사회의 형성을 촉진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문화적 다원주의를 증진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동남아에서 경우에 따라 급속하거나 완만하고, 격렬하거나 순탄하며, 직선적이거나 나선적인 경로를 통하여 부단히 전진할 것이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화적 다양성은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민감한 역동적 다양성이지 어떤 객관적 상황의 변화에도 둔감한 정태적 다양성일 수는 없다. 문화의 충돌이 아니라 문화의 공존을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문화적 다원주의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반영하는 서방주의가 모두 극복의 대상인 것이다.


동남아 국민국가의 다민족적 구성 때문에 각별하게 주목되는 것은 세계화에 따른 권위주의적 통제의 이완이 민족적 정체성을 자극함으로써 그동안 진전된 국민국가 형성과정이 부족주의적 해체 과정으로 발전되고, 그에 대응하여 다시 권위주의가 강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이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증폭되는 민주주의를 둘러싼 동남아의 문화적 갈등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이른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과연 체제인가, 정책인가? 그것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적 체제라면 최소한 민주주의로서 일련의 규범적 원칙(생명, 자유, 재산, 표현 등 기본적 인권)과 경험적 규칙(법치주의, 권력분립, 복수정당, 자유선거 등 제도적 절차)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규범적 원칙에 있어서 자유와 권리의 주체는 과연 개인인가, 가족인가, 공동체인가? 경험적 규칙에 있어서 인치주의, 권력집중, 지배정당, 막후합의 등 사실상 권위주의의 동의어에 불과한 아시아적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기본질서, 국가기구, 정당제도, 선거제도 등에 대한 제도적 대안은 무엇인가? 그 점에 있어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그 주창자 자신에 따르더라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대체하기 위한 체제적인 대안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에 불과하다.


세계화의 축복과 저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동남아의 전략적 대안은 국가적?지역적? 세계적 차원에 따라 차별적으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적?지역적?세계적 접근은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각 차원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의 영역이 다를 뿐이다. 예컨대 경제적 공정성, 사회적 형평성, 정치적 정통성, 문화적 정체성 등은 현실적으로 국민국가의 관할에 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적 성장, 사회적 분화, 정치적 발전, 문화적 접변 등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국민국가 차원에서는 완결될 수 없으며, 구체적으로 인권, 외채, 평화, 환경, 에너지, 자원, 대기, 해양, 범죄 등 지구적 문제는 세계적 차원에서만 완결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정보혁명과 냉전종식에 따라 이제 21세기는 정치?문화적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배제하는 동남아의 특수성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성을 전제하는 동남아의 특수성을 위한 치열한 모색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동남아는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다양한 정치 구조를 추구해야 할 것이며 문화적으로는 보편주의적 도덕 규범에 기초한 다양한 문화 가치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새로운 객관적 도전은 동남아의 새로운 주체적 대응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II부 동북아의 정치변동
세계화와 중국화 : 도전과 기회

중국과 동남아의 자유무역지대에 관한 최근의 합의는 21세기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에 대한 현실주의적 중국 위협론과 자유주의적 상호의존론의 대립 구도에 대한 심각한 충격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근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전후해 절정에 이른 1990년대 중국의 세계화에 관한 논쟁의 맥락에서 접근하는 경우 전혀 예상을 초월하는 사태는 아니다. 사실 세계화에 관한 중국의 시각은 나름대로 다양한 계기를 통하여 충분히 성숙된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중국의 위상은 1840년대 아편전쟁의 패배에 따른 타율적 편입, 1950년대 사회주의 정착에 따른 자율적 이탈, 1980년대 개혁개방의 진전에 따른 자율적 복귀 등 세 단계에 걸쳐 전면적으로 전환된다.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중국의 통합은 1978년 개혁개방, 1984년의 사회주의 상품경제, 1992년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등 세 단계에 걸쳐 가속적으로 심화된다.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은 세계화의 중심적 동인을 사회주의의 퇴장에 따라 자본축적의 규모를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초국적 자본주의로 파악하는데, 세계화의 파급 효과에 관해 가장 비관적이며 그에 대한 대응 전략에 관해서도 가장 폐쇄적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은 세계화의 기본적 성격에 관해 기존 독점자본주의의 연장, 즉 전통적 제국주의의 근본적 계속성을 강조하는 구좌파와 신형 세계자본주의의 출현, 즉 초국적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동성에 주목하는 신좌파로 분화된다. 전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종래의 교조적 시각을 고수하는 반면, 후자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주의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한다. 이런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구좌파와 신좌파는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공유하고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유사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급진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가장 부정적이며, 사회주의적 중국화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들은 인도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을 표방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편승해 중국 사회에 침투하는 서구사회의 타락한 소비문화는 사회주의의 평화적 전복을 기도하는 트로이의 목마인 것이다.


보수적 민족주의에서 세계화의 중심적 동력은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붕괴에 따라 유일한 초강국으로 군림해 세계질서를 단독으로 주재하고자 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이다. 그러나 그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발전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의존을 요구한다. 따라서 보수적 민족주의는 세계화에 부정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시각과 세계화에 긍정적인 자유주의적 시각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대외적 종속의 심화를 비판하는 동시에 대외적 개방을 지지하면서 그 이익의 최대화와 피해의 최소화를 위한 새로운 개발전략을 추구하는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 보수적 민족주의는 문화적 복고주의나 정치적 현실주의로 표현된다. 문명 충돌에 주목하는 전자는 전통적 중화문화의 전면적 복원을 주장하고, 이익 충돌에 주목하는 후자는 국가 주권과 부국강병을 강조한다. 따라서 보수적 민족주의는 세계화와 중국화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이중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화를 지향한다.


개혁적 자유주의에 있어서 근대화의 근본적 동인은 산업혁명이며, 세계화의 근본적 동인은 기술혁명이다. 세계화에 따라 전통적 국가주권과 국가역할이 약화되는 한편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중국 사회의 논쟁에서 계획경제와 전체주의의 붕괴에 따라 확산되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가장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시각은 개혁적 자유주의이다. 그것은 다시 세계화에 대한 중국의 대응전략에 있어서 시장경제를 위한 경제개혁과 정치안정을 위한 권위주의를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한 경제개혁과 동시에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개혁을 강조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로 분화된다. 전자는 경제적 세계화와 정치적 중국화를 추구하며, 후자는 경제적?정치적 세계화를 지향한다.


세계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시각은 WTO 가입과 관련해 경제적 차원을 중심으로 제시되는데, 세계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시각을 대표하는 국가주석 장쩌민 등 제3세대 지도부와 외교?경제부처 및 산하 연구기관의 기술관료 집단은 경제개혁의 심화와 시장개방의 확대를 강조한다. 그런 시각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급진적 시각은 거의 전면적으로 배제되고, 민족주의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이 각각 목적과 수단으로서 절충적으로 수용된다. 경제, 군사, 과학기술, 문화 등 종합국력을 위한 국제 경쟁에 대처해 경제 발전을 위한 권위주의적 정치안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신권위주의 또는 신보수주의로 지칭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세계화에 관한 중국 사회의 담론패권을 확보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시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동전의 양면을 구성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통해 중국 정부는 정치적 중국화와 경제적 세계화를 추구한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전략적 동반이 종합국력의 신장에 따라 정치적 현실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로 편향되는 경우 중국의 보수적 민족주의는 반패권주의에서 역패권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증대하는 반면 공존공영을 위한 상호의존의 새로운 동아질서에 관한 전망은 악화된다. 따라서 새로운 동아질서를 위한 중국적 대안은 개혁적 자유주의에서만 제시된다. 단기적으로 민족주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자유주의적 수단이 시장경제의 지속적 발전에 따라 경제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로 확대되는 경우, 장기적으로 세계화와 중국화의 이원적 충돌을 추구하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민족주의는 약화되고 세계화와 중국화의 다원적 조화를 지향하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민족주의가 강화될 것이다.



III부 동아시아 지역통합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로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동북아 중심적인 국내학계의 동아시아 담론은 역사적으로 동북아와 동남아를 포괄하는 광역적 동아시아 패권질서를 주도한 바 있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 그런 수직적 지역질서의 피해자인 동남아의 접근 시각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동남아와 동북아의 경제적 상호의존, 정치적 상호작용, 사회적 상호교류, 문화적 상호소통은 냉전종식 이후 급속하게 확대되고 경제위기 이후 더욱 심화된다. 따라서 동북아를 넘어 동남아로 확장되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지경학적?지문화적 내포와 외연을 간과하고 여전히 동북아의 동굴에 안주하는 이론적 접근 시각은 시간적으로 지나치게 정태적이며 공간적으로 지나치게 내향적이다.


한반도와 동남아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긴밀하게 연계되고 있다. 냉전시대 한반도의 남북 분단은 2차대전 이후 일본의 패전에 따른 동아시아의 권력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38도선은 중국의 대만해협, 베트남 17도선,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과 태국 사이 국경선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분단벨트의 일부에 불과하다.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적 세계관에서 동북아는 동아시아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경제적 상호의존도 이미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그런 현실은 아직 자유무역협정도 없는 상황에서 유럽(EU)의 수준을 계속 능가하는 역내무역의 높은 집중도에서 드러난다.


동아시아 각국의 현대문화에서 토착문화의 영향이 악화되고 서구문화의 영향이 강화되는 한편, 시장경제의 확산에 따라 생활문화의 급속한 변동이 전개된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동아시아의 미래 문화에서 그런 역동적 분화와 변용이 촉진되면서 세계문화, 지역문화, 민족문화의 상호접변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동북아 시대나 동북아 중심은 지나친 자국 중심주의적 경향이 심각하다. 사실 중국과 일본의 지역주의 담론에서 부각되는 것은 동북아가 아니라 동아시아다. 따라서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위해 중국과 일본에 대한 중립적 조정 역할을 자임하는 참여정부의 동북아 중심주의는 현실주의적 편향이 심각하다. 중국과 일본의 패권 경쟁은 그 세력 균형의 끊임없는 유동성 때문에 한국의 국가 역량에 대한 소모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위한 현실주의적 고려는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의 주변 동남아를 포괄하는 수평적 지역질서의 제도 형성을 추구하는 구성주의적 지향에 입각해야 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 지역협력의 성과가 확산되는 경우에만 동아시아의 공동체적 발전을 위한 지역적 정체의식의 형성이 촉진될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의 경우 아시아적 정체의식은 일본의 27퍼센트(2004년)에 비하여 중국은 6퍼센트(2003년)에 불과한 실정이다. 중국의 대륙적 정체성이든 일본의 해양적 정체성이든 모두 대중의 아시아적 정체의식은 지극히 희박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일본은 22퍼센트인데 비하여 중국은 무려 60퍼센트에 이른다. 그와 같이 첨예한 양국의 경쟁의식은 동북아에서 여전히 일정한 현실주의적 세력 균형이 필요하게 만드는 현실적 조건이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동남아 각국의 아시아적 정체의식은 인도네시아를 제외하면 모두 60~9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그 점은 동북아의 대국주의적 세력 균형을 보완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다자주의적 제도형성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동아시아의 광역적 연대는 경제위기 직후 각국의 각개약진에서 그 엄연한 한계가 노정된다. 따라서 경제 위기 이후 동아시아는 전장의 이념적 연대에서 시장의 경제적 연대를 넘어 광장의 사회적 연대로 발전해야 한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권위주의에 의존하는 중상주의적 경쟁은 이제 적자생존의 시장을 보정하기 위한 상호의존의 광장을 통해 공동체적 연대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연대는 궁극적으로 국제주의, 인본주의,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지속적 발전은 소극적 차원의 인간안보와 동시에 적극적 차원의 인간개발을 요구한다. 동아시아 역내의 각종 자유무역 가운데 각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효과가 가장 큰 것은 동남아와 동북아를 포괄하는 자유무역이다. 시장의 그런 생산성과 효율성은 광장의 공정성과 형평성으로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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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를 지향하는 경우 한국의 지역주의는 동아시아의 지역협력과 지역통합을 견인하는 가교로서 중국과 일본에 대한 상호의존의 지나친 일방화에 따른 종속화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그 대칭화 가능성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동아시아의 광역적 자유무역은 동북아 또는 동남아의 국지적 자유무역이나 양자적 자유무역에 수반되는 개별적 특수이익을 넘어 지역적 공동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동아시아의 광역적 안보협력은 평화구축에 필요한 세력균형의 유동화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그 항구적 제도화 가능성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으로 동아시아의 광역적 문화접변은 문화적 소통경로의 일원화 위험을 최소화하고 그 다원화 기회를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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