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Invisible Giant

   
브루스터 닌(역자 : 안진환)
ǻ
시대의창
   
16500
2004�� 11��



■ 책 소개
ADM과 함께 전 세계 곡물시장의 75%를점유하고 있는 다국적 곡물기업 카길의 활동을 파헤친 책. 세계 식량생산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베일에 싸여 있던 주식비공개 회사의사업 활동을 집요한 현장 취재를 통해 고발한다. 

 


이를 통해 "종자에서부터 슈퍼마켓까지" 식량산업에 관련한 모든 분야에 진출해서 막강한정치력을 기반으로 한 나라의 식량주권을 뒤흔드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인 카길의 활동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카길이 어떤 방식으로 한 나라의 농업을파괴하면서 이익을 얻는지, 이 과정에서 현지의 농민들이 생산현장에서 이탈되면서 어떤 고통을 받는지, 그 결과로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을 얻게되는지를 알려준다. 미국 정부와 이들의 연계를 보여주는 부분도 눈여겨 볼 만하다. 책은 시종일관 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카길의 음모를드러내고, 이에 맞서는 식량주권 수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저자 브루스터 닌
캐나다의 농업 기업에 관한 주요분석가이자 비평가이다. 음식과 그 생산물을 다른 관점에서 다룬 책을 몇 권 썼고, 월간지 「양의 뿔 The Ram"s Horn」을 발행하고있다.


■ 역자 안진환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를졸업했다. 2006년 현재 번역회사 인트랜스의 대표로 있다. 지은 책으로 『Cool 영작문』『영어실무번역』 등이, 옮긴 책으로 『빌게이츠@생각의 속도』『애덤 스미스 구하기』『미운오리새끼의 출근』 등이 있다.

■ 차례
한국어판서문 - 식량 주권을 위한 선택
서문 - 보이지 않는 거인의 새 단장
추천의 글 - 한 나라의 농업 기반을 지배하는 초국적농식품복합체들


1. 보이지 않는 거인들의 교묘한 변신 
2. 수치로 보는 카길의 모습 
3.카길의 역사 그리고 조직과 소유 구조 
4. 정부 정책을 농단하는 고단수 로비 
5. 육고기 사육·가공 시장의 공룡이 되다
6. 면화·땅콩·맥아사업에도 이름을 새기다 
7. 온갖 농산물 가공·거래 사업의 끝없는 확장 
8. 일용품으로서의 금융거래
9. "전통"의 변화를 요구하는 전자상거래
10. 경쟁력을 배가한 저장 및 운송 시스템 
11. 카길의 세계 시장 점령방식
12. 화학비료 시장은 우리가 접수한다 
13. 서부 해안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다 
14. "콩의 강" 남미를정복하다
15. 주스 한 잔이 당신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16. "구호"라는 미명 아래 길들여진 동아시아 
17. 종자를지배하는 자가 농업을 지배한다 
18. "소금" 제국주의 건설에 열을 올리다 
19. 카길의 미래는 마냥 장밋빛일 것인가?


자료인용
참고문헌
각 회사 원어 단체 표기
인덱스
발간에 부처 -우리의 식량 주권을 일개 기업에 맡길 것인가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보이지 않는 거인들의 교묘한 변신
찰스 다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고,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 루스 킴멜슈(카길의 일원)


곡물원료식품업계의 권위 있는 전문지 「밀링앤베이킹뉴스」는 2001년 중반 한 사설에서 해당 산업의 현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한때는 곡물식품 산업의 여타 부문을 압도하던 국제 곡물산업이 지난 1년여 동안 극적인 대변동을 겪어왔다. 얼마 전만 해도 도전을 불허하던 곡물교역의 파워가 여러 측면에서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 당연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1979년 댄 모건의 『곡물상인들』이 출판될 무렵, 세계에는 유사한 사업 방식을 보유한 5대 곡물 메이저가 있었다. 벙기, 드레퓌스, 앙드레, 콘티넨탈 그레인, 카길이 그들이다. 그 중 카길은 곡물교역의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한편으로 세계 식량 체계의 모든 분야에 촉수를 뻗고 있다. 카길의 2001년 홍보 책자는 회사 소개 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카길은 농산품, 식품, 금융상품, 그리고 공산품과 서비스 분야에서 국제적인 판매자이자 가공업자, 배급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먹는 빵의 밀가루, 국수의 밀, 달걀 프라이의 소금이며, 토르티야의 옥수수, 디저트의 초콜릿, 청량음료의 감미료입니다. 우리는 또한 여러분이 먹는 샐러드 드레싱의 올리브유이며 여러분의 저녁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입는 옷의 면이며 여러분 발 밑에 깔린 양탄자의 안감, 여러분이 경작하는 밭에 뿌리는 비료입니다."


카길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회사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1950년대 말경까지만 해도 생소한 일이었다. 이후 한동안 이런 기업들을 다국적 기업이라 불렀다. 하지만 현재 네슬레, 유니레버, 카길 그리고 미츠비시는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다국의 이익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무수히 많은 시장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어디든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데서도 살고 있지 않은 셈이다.


카길의 글로벌 사업 활동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활동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내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을 보고 판단하건대 대부분의 카길 직원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업의 전체적인 윤곽이나 회사의 실질적인 파워가 드러나면 많은 이들이 불안해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이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테네시 주 멤피스에 위치한 호헨버그 사 사무소를 방문하면, 세계적인 면화교역회사 중 하나인 이 회사가 카길의 계열사라는 것을 쉽사리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카길의 사무실은 으레 있겠지 싶은 비즈니스 구역을 벗어나서 외진 구역의 정체 모를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로비에 표시되어 있는 거주자 명단 말고는 카길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표시가 전혀 없다.


카길이 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망토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과는 또 다른 형태를 띠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비공개가 있다. 카길 주식회사는 언제나 비공개 정책을 유지해왔다(한번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주식을 공모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일반 개인처럼 세부적인 사항을 밝히지 않아도 무방하도록 사업자 법규의 보호를 받는다. 분기별 또는 연간 보고를 할 필요도 없고 채권 발행을 공시할 의무도 없다(예외적으로 딱 한번 그런 적이 있기는 하다). 심지어 카길은 공금업자와 은행가들을 위해 신용평가 등급을 매기는 사람들에게 회사 자료를 공개할 필요도 없다.


카길, 이기적인 본질을 뛰어난 포장술로 감추다
카길은 창사 이래 줄곧 어떤 정부 기관에게든지 사적 또는 공적 경로로 정책을 지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경제 개발 용어로, 또 어떤 때에는 인도주의 용어로 포장하지만, 숨김없이 자사의 이익만을 고려한 지시일 경우도 종종 있다.


서구 산업 세계가 자국에서 또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기아를 감소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카길도 이제는 전 세계를 먹이겠다는 거창한 야망을 버리고 선진국의 부유한 사람들에게 고객 중심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보다 세속적인 목표에 만족하는 듯하다.


현재 카길의 기업 홍보 캠페인 표어인 잠재력 육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타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업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 굶주리는 인구가 아니라 카길의 고객을 뜻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잠재력 육성이라는 표현은 여러 차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철학적 차원에서는 저렴한 먹거리를 효율적으로 공급하여 전 세계인의 생활 수준과 성장 가능성을 높인다는 카길의 기업 비전을 나타낸다.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우리의 고객, 예를 들어 식품회사들과 보다 긴밀히 협력해 이들이 사업 활동에서 잠재력을 100퍼센트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어떤 식품회사에게든 최고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회사의 식품 고객인 기업들이 자신의 고객인 소비자들에게 보다 나은 맛을 전달하도록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수치로 보는 카길의 모습
카길은 1865년에 설립된 비공개 미국 회사다. 카길은 1997년 재무 보고서에 자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72개국 1000여 지점에서 7만 90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100여 가지의 사업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농산물과 식품, 금융과 산업 제품 분야의 국제적 거래업자이자 가공업자, 판매업자이다. 카길이 생산하고 거래하는 상품에는 곡물과 오일시드, 과일주스, 열대 일용산물과 섬유, 육류와 달걀, 소금과 석유 그리고 가축사료와 비료, 종자가 포함된다. 금융부문에는 금융상품 거래와 부실자산 투자, 복합 파생금융, 선물중개 그리고 리스업이 포함된다.”


1971년(5월 31일 회계연도 마감), 러시아의 대규모 곡물 구매가 있기 하루 전날, 카길은 연매출을 20억 달러로 보고했다. 1982년에 이 수치는 290억 달러로, 1994년에는 471억 달러로 뛰었다. 1994년 카길은 금융시장 부문에서 파생금융거래(주택저당담보 보증채권에 기초한 계약)로 그해 초에 1억 달러의 손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15억 달러, 당기순이익 5억 7100만 달러를 보고했다. 카길이 전 세계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은 1996년 560억 달러로 절정에 달했고 1997년에도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1998년의 경우 수입이 510억 달러로 감소했고 캐시플로는 15퍼센트 감소해 그해 1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카길은 곡물의 처리 시설과 가공시설의 세계적 과잉 추세, 금융위기로 인한 아시아 지역의 수요 감소, 엘니뇨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의 증대 그리고 카길이 결국은 손을 뗀 부문인 소비자 금융업에서의 손실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해 카길은 남미와 유럽의 오일시드 가공시설을 인수하고 폴란드와 중국에 사료제분공장을 건설하는 데 14억 달러를 투자했다.


1999년 카길이 공개한 매출액은 다시 460억 달러로 하락했지만 2000년에는 480억 달러를 기록하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1년 카길은 매출 494억 달러를 발표하면서 먹거리와 농업에서 최고의 고객 맞춤 솔루션 제공자가 되고자 하는 기업 전략의 수행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보고했다. 좋은 성과를 거둔 부문은 육류 가공과 금융사업, 글로벌 곡물과 오일시드, 소금 그리고 글로벌 석유와 대양 수송 부문이었다. 반면에 밀가루, 주스와 강철사업에서는 설비 과잉으로 타격을 받았으며 계속되는 농업시장의 하락세로 인해 저장사업과 비료 생산에서는 손실이 컸다고 밝혔다.


2002년 1월, 카길은 2002년 회계연도 상반기 6개월간 전년 동기 대비로 51퍼센트 증가한 5억 2200만 달러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회장 겸 CEO인 워런 스테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본질적으로 카길은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일에 중점을 둔 회사이다. 우리는 지식기반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다양하고 진취적인 인재가 모인 회사로서 식품 구매자와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카길은 이제 언론 보도자료에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한다(적어도 2002년 2월 20일 현재로서는 그렇다).


“카길은 57개국에 걸쳐 9만여 명의 지원을 두고 농업과 식품, 금융 그리고 산업 분야의 제품과 서비스를 취급하는 국제적인 거래업자이자 가공업자, 공급업자이다. 우리는 공급망 관리와 식품 응용 그리고 건강과 영양 부문에서 차별화된 고객 중심 솔루션을 제공한다.”


카길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이 몇 개의 지역에서 사업 활동을 하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어쩌면 회사의 활동 규모를 실제보다 축소해서 공개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반면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회사에 득이 된다고 보고 있다. 카길은 또한 동료의식이라는 말로 규정되는 회사의 정체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여기서 동료는 바로 고객이자 파트너로 규정되는 맥도널드와 크라프트, 네슬레, 코카콜라, 펩시콜라, 기꼬만, 월마트, 유니레버 등과 같은 기업들이다. 이를 보면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한다는 모토에 일정 부분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육고기 사육 ? 가공 시장의 공룡이 되다
카길은 병아리 한 마리당 보는 손해를 달걀 생산 과정에서 농부들에게 사료를 공급해서 얻는 수익으로 그대로 보충하고 있다. ― 「포브스」

한때는 북미 지역의 거의 모든 농장에서 한두 종류의 가축을 항상 찾아볼 수 있었다. 가축은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거나 사람이 남긴 음식 찌꺼기로 영양을 보충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가금과 돼지는 격리된 상태에서 사람이 가져다 주는 사료만 먹으며 사육된다. 낙농업도 점차 그런 형태로 변하고 있다. 쇠고기는 광대한 규모의 번식 농가에서 소를 사육하거나 완전 격리된 사육장에서 키운 뒤 마무리 처리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이런 변화가 먼저 북미 지역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일어났을 때, 카길이 이런 변화를 권장하면서 사료제조업자로서 변화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카길은 1930년대 들어 정식으로 배합사료사업에 뛰어들었고, 1960년대에는 소와 돼지, 가금류의 도축?가공사업과 옥수수, 콩의 제분사업에 진출했다. 종자에서 사료와 도축에 이르기까지의 사업을 통합하고 나자 카길은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재정 효율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수익과 사업의 성장을 합리적으로 추구하고 기회와 한계를 능숙하게 분석하여 얻은 성과다.


미국 국내와 전 세계를 무대로 꾸준히 사료사업을 확장해오던 카길은 2001년 아그리브랜드 인터내셔널 사(퓨리나 또는 체커보드라는 이름으로 각종 사료를 생산하고 있는)를 인수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100여 개의 사료 공장을 확보할 정도로 성장했다.


사료사업과 동물 사육사업은 매우 밀접하며 카길이 이미 오래 전부터 동물 사육 분야에 다른 회사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개입해온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1980년 미국 내 13개의 주요 소 사육주에 위치한 7만 8000개의 사육장은 1992년 사육장 규모가 커지면서 사육우의 수는 별 차이가 없으면서도 4만 6450개로 감소했다. 1996년 미국의 소 사육 업체 중 카길의 캡록 인더스트리는 4위를 차지했다.


카길은 1968년 MBPXL사를 매입하면서 소 도축 및 가공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1991년 카길 소유의 엑셀은 세계 각지에 31개의 쇠고기, 돼지고기, 가금 가공공장을 소유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온갖 농산물 가공 ? 거래 사업의 끝없는 확장
우리의 목표는 5~7년마다 사업 규모를 2배로 확장하는 것이다. ― 카길의 홍보 책자


오일시드, 가공 및 거래업으로 입지를 넓히다
회사 창립 후 수십 년간 카길은 지역 곡물상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카길은 교역사업에서 장기적 성공을 위한 열쇠는 바로 일용품을 저장하고 수송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 유리한 가격을 기다리거나 흥정하는 동안 시장에 주요 곡물이나 기타 일용품을 내놓지 않고 보유할 수 있는 저장력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이윤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나의 일용품을 시작하고(즉 농장 단계에서 수확하고) 저장하고 수송하는 능력은 레버리지 그리고 이윤 창출의 또 다른 근원을 제공한다.


건식제분업계의 양대 강자로 떠오르다
카길은 오랫동안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주요 밀가루 제분업자의 위치를 고수해왔다. 한때는 심지어 세계 최대의 밀가루 제분업자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는 카길이 시보드 사로부터 미국 내 일곱 번째로 큰 밀가루 제분회사인 시보드 연합 제분회사를 인수한 1982년의 일이다.


카길은 이제 미국에 18개의 밀가루 제분공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콘아그라와 ADM에 이어 세 번째로 사업 규모가 큰 밀가루 제분업자가 되었다. 뉴욕 올버니에 위치한 카길 최대의 제분공장에서는 하루 1000톤의 밀가루를 생산한다.


1993년, 경영상의 효율을 위해 카길은 오랜 역사가 있는 버팔로 소재 밀가루 공장의 문을 닫았다. 2001년에는 미국에 있는 밀가루 공장 3개를 조업 정지했다. 공장 3개 중 2개는 해체하고 나머지 하나는 그대로 간수한다고 했다. 매우 규모가 큰 공장 폐업 사태였다. ADM 또한 소규모 공장 3개를 폐업했고 이로써 미국 내 총 제분 능력의 5퍼센트가 줄어든 셈이 되었다.


밀가루 제분업자들은 마치 아코디언을 연주하듯 밀가루 공장을 열고 닫을 수 있을지 몰라도 농민들에게는 그와 같은 유연성이 없다. 카길 밀가루 제분에서 퇴직한 총 지배인은 이렇게 말했다.


“재배업자들은 자신이 받는 가격에 불만이 있어도 표시할 방법이 없으며, 생산비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협상할 길도 없다. 그들은 상품 시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설정한 가격에 판매하는 수밖에 없다. 재배업자들은 제분업자들처럼 공급과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생산을 조절할 수 없다. … 게다가 미국에는 30만 명의 밀 재배 농민이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급과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 반대로, 밀을 구입하는 쪽인 제분산업계의 집중화 현상을 보라.”


카길은 쌀 제분사업과 옥수수 제분사업에도 뛰어들어 무섭게 사세를 확장했다. 일리노이 곡물제분의 지분을 카길이 100퍼센트 인수하면서 카길은 현재 2개의 세계 최대 옥수수 건식제분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타코나 토르티야 칩을 먹을 때마다 이런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주스 한 잔이 당신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제 당신은 오렌지 주스를 한 컵 따라 들었을 때 그 오렌지를 나무에서 따 주스를 만들어 테이블까지 가져오는 과정에서 카길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그 한 컵의 오렌지 주스의 기원을 거슬러가다 보면, 과거 그리고 현재의 카길의 관행과 전략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카길의 오렌지 주스 가공업 진출은 브라질의 오렌지 가공업체인 큐트랄과 시트로수코로부터 사들이는 감귤 과립에 기반을 둔 브라질에서의 가축사료사업에서 비롯되었다. 카길은 당시 브라질에서 판매하는 사료에 감귤 입자를 사용했으며 유럽에서 생산하는 사료에도 첨가하기 위해 감귤 입자를 유럽에 수송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5년 오렌지 주스 가격이 대폭 하락했을 때, 카길은 흐름에 역행하기로 결정하고 베베두로에 있는 가동중지 상태의 냉동 오렌지 주스 농축액(FCOJ) 공장을 인수했다. 시기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플로리다의 엄청난 한파가 가격 상승을 부추겼고 더불어 카길의 FCOJ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카길 아그리콜라(브라질에서 사용하는 카길의 이름)는 수익을 재투자해서 추가적으로 생산력을 증대하는 입증된 전략을 계속 사용해 연간 15퍼센트의 비율로 생산 규모를 증가시켰다. 1980년 카길은 FCOJ를 대량으로 차지하기 위해 컨테이너 선에 냉동 시스템과 스테인리스스틸 용기를 갖추었다. 1년 후 이 배는 450만 리터의 FCOJ를 싣고 브라질에서 미국까지 최초로 운항했다.


1984년경 카길은 브라질에서 연간 9만 톤의 FCOJ를 수송했는데 이는 브라질 전체 오렌지 주스 농축액 수출의 15퍼센트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 중에서 3분의 1이 플로리다 주의 탬파 항구에 있는 탱크 저장소로 운송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프록터앤갬블이나 크라프트 또는 퀘이커 등의 고객에게 인도되었다. 1985년 카길 아그리콜라는 우초아에 두 번째 가공공장을 건설했고 카길의 두 공장에서는 90파운드짜리 상자에 담은 주스를 합쳐 매년 4500만 개를 가공하고 있다. 이는 연간 17만 톤의 규모로, 1분당 4만 개의 오렌지가 가공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시트로수코 파울리스타와 수코시트리코 큐트랄 그리고 카길 아그리콜라 세 업체가 브라질 오렌지 주스 수출의 80퍼센트를 통제했으며 이 세 기업이 세계 오렌지 주스 시장의 53퍼센트(80만 톤)를 점유하고 있었다. 브라질이 미국 오렌지 주스 시장에 약 40퍼센트를 공급했고 코카콜라(미닛 메이드), 프록터앤갬블(시트러스 힐), 베아트리체(트로피카나)가 이 주스를 유통시키는 미국의 3대 회사였다.


카길은 항상 새로운 기회를 탐색해왔고 필요할 경우 기꺼이 경쟁업자들과 합작투자업체를 형성한다는 태도도 보이고 있다. 1987년에 시트로수코 파울리스타와 수코시트리코 큐트랄, 카길 아그리콜라 그리고 테트라 팍(스웨덴의 대규모 살균포장업체)은 브라질에서 수입되는 오렌지 주스를 가공, 포장, 유통하는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겠다는 내용의 협정을 러시아 정부 당국과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0km 떨어진 리피세크에 공장을 설립했고 소련의 사과 주스를 브라질 오렌지 주스 농축액과 교환하기로 했다. 이 공장에서 소련에서 재배된 사과를 유럽과 미국에 판매할 주스로 가공했고 벌어들인 경화(국제 금융상 외환관리를 받지 않고 금 또는 각국의 통화와 늘 바꿀 수 있는 화폐)는 브라질 오렌지 주스 농축액 값으로 지불되었다. 1997년 카길은 웹사이트에 러시아에서 FCOJ를 가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올렸다.


카길은 1989년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사과와 배 가공시설을 인수했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연간 1600만 리터의 사과 주스와 배 주스 농축액을 생산하여 카길을 남미 최대의 사과 주스 수출업체로 만들어주고 있다. 


카길의 미래는 마냥 장밋빛일 것인가?
지난 5~7년간 진행된 카길의 신속한 리포지셔닝은 기업의 영속을 위한 선택이었다. 카길은 신선한 과일과 고무, 커피 무역, 잡종 종자 그리고 장비 리스, 운송 서비스 등 몇몇 부문의 사업을 포기하고 한편으로 대두와 옥수수 제분 같은 전통적 사업체의 제품 라인을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탐색해 왔다. 그러나 카길에게는 항상 금융 서비스와 금융 시장 활동을 지탱해 주는, 복잡하지만 견고한 기반이 존재해 왔다. 전통적인 교역 활동과 투기 및 리스크 관리가 그것이다. 마치 하나의 건강한 생명체처럼 카길의 오래된 세포는 계속해서 죽어 떨어져나가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대신해온 것이다.


내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카길이 과연 무슨 목적으로 가장 익숙한 사업 분야에서 합작 벤처와 제휴업체를 설립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협력 관계라는 것에는 상당히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카길의 새로운 합작 벤처 중 상당수는 단일 시설만 보유한 소규모 곡물조합에서 CHS 같은 대규모 복합 기업에 이르기까지, 주로 농민협동조합을 상대로 제휴한 것들이다.


모든 합작 벤처가 농민 소유의 소규모 협동조합에게 유리한 판매 기회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카길에게 투자 확대 없이도 신뢰할 만한 곡물 오일시드 공급업자를 확보하는 협정이었다. 카길이 이에 대해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하든 농민은 카길에게 구속된 공급업자가 되었다.


산타나에서 CHS에 이르기까지 이들 협동조합은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카길에 흡수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불어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삶과 사업을 가꾼 농부들의 수세대에 걸친 헌신과 수고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카길이 되고 말았다.


카길이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는 전략, 의존성을 키우는 것은 식민 지배자가 식민지 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이익을 얻고자 사용한 아주 오래된 식민주의적 관행이다. 카길이 인도에서 추진한 활동을 살펴보면, 카길이라는 식민화 군대에서 종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떠올려보기란 어렵지 않다. 식민지 점령군이 되어 지배자의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곳 농민에게 일용 농산품을 생산하도록 지시한 다음, 생산된 일용품을 거두어(혹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 가공한 후 그것을 구입할 능력이 있는 식민지 주민에게 다시 판매하는 것이다.


카길과 더불어 과학과 기술 혹은 진보와 자본주의의 대변자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길만이 급속히 증가하는 세계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카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화된 산업 시스템이 매우 최근(1945년 이후)에 고안된 것으로서 카길과 세계 소수 엘리트들을 부유하게 만든 데는 뛰어난 기능을 발휘했지만 그 대가로,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나 지구의 생명체 그리고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 같은 산업 시스템에서는 대량 식량 생산은 가능할지 몰라도 모든 사람이 적절하게 영양을 섭취하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정의는 실현할 수 없다.


카길과 이와 유사한 다른 거대 업체들은 실제로 어떤 정면 공격대라도 포위하여 제압할 수 있는 부와 기술 그리고 정치적 파워가 있다. 그리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게임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 게임에 참여하도록 사람들(농민 혹은 대중)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다행인 것은 이런 오래된 확신과 새로운 출발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자연수분 사회조직이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다양성과 포괄성을 무기로 번영하며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개념을 창출하고 있는 지역공동체들이 그것이다. 이들 공동체는 하나같이 모든 유기 조직의 상호의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개인의 장기적 웰빙을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안녕과  동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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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동체에 과연 카길과 같은 곡물 메이저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까?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