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Don't think of an elephant!: know your values and frame the debate : the essential guide for progressives
사람은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데, 대체 왜 이런 일이, 그것도 아주 광범위하게일어날까?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따라투표한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픈 대상에게 투표한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정체성에투표한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이다라는 것이 이 책의주장이다.
곧 캘리포니아의 노동자들은 "노동자"라는 정체성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표상하는 어떤 것을자신의 정체성, 가치관, 동일시의 대상으로 선택한 셈이다.
이 책에 따르면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공화당이 표방하는 가치 체계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로정리할 수 있다. 세상은 위험하고 살기 힘든 곳이며, 아이들은 원래 나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선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엄격한아버지"는 가족을 지키는 권위자로서, 어머니와 자녀에게 바른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고통스런 체벌을 통해 규율을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규율을 잘 터득한다는 것은 세상에 적응해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말과 같다. 선한 사람은 규율을 잘 터득해서성공한 사람이고, 성공이 첫째가는 도덕이다. 선한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사회 복지를 시행하는 것은 악이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들이 열심히일해서 번 것을 빼앗아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의 진보 진영이 표방하는 가치 체계는 "자상한 부모" 모델이다. 세상은 비록험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곳이고,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 아이들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부모는 아이들의 선한 본성을북돋아 주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책임이 있다. 부모는 자녀를 자상하게 보살피고, 자녀 역시 다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따라서 첫째가는 도덕은 "보살핌"이다. 보살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공감, 곧 타인을 헤아리고 돌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곧 나 자신과 내가 돌보는 타인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의 가치관과 ‘자상한 부모’ 모델의 가치관을동시에 가지고서, 처지와 상황에 따라 둘 중 어느 한쪽을 작동한다. 자상한 부모 모델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도 수동적으로나마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이해한다. 때로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 자상한 부모식 정치관을 가진 학자가 제자들에게는 엄격한 아버지처럼 돌변하는가하면, 소외 계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집안에서는 엄격한 아버지로서 권위를 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상한 부모 세력이 선거에서승리하려면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자상한 부모 모델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상한 부모 모델을 선택하게 할 수있을까?
선거 기간에 진보 진영은 흔히 보수 진영의 정책 실패와 거짓말을 공격한다. 진실만전달한다면 유권자가 자신들을 지지하리라 믿고,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진실을 알리기만 하면 사람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것이다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가정이 틀렸다고 말한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하고,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진다는 것이다. 프레임에 어긋나는 진실은 아예 귀에안 들어오거나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실만 전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진실을 들을 "귀"를 먼저 열어야 하는데,그 귀를 여느냐 마느냐는 "프레임", 한마디로 말해 "생각의 틀"이 결정한다. 프레임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말"이다. "말"의 밑바탕에는가치관이 있다. 이를테면 국익을 위해서 사소한 실수는 덮어야 한다는 말은 국익이 우선이다라는 프레임에서 비롯되고, 국익이 우선이다프레임은 국가는 나를 대표하며 국가의 이익은 곧 나의 이익이라는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프레임 앞에서 무슨 무슨 실수가 있었다고열거해 봤자 먹혀들지 않는다. 먼저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 책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한다.
■ 저자 조지 레이코프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학과인지과학사에 이정표를 세운, 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다. 진보적 비당파 연구기관인 로크리지 연구소(Rockridge Institute)의 창립선임 연구원이면서 리처드&로다 골드만 기금 교수로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인지과학과 언어학을 가르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정치적 논쟁을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데에 인지언어학을 응용해왔다. 국제인지언어학협회 회장, 인지과학회 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버클리국제컴퓨터과학연구소의 공동 소장이다.
레이코프는 2002년부터 민주당 지지 모임의 지도자들을 위해 자문을 하고, 전국을 돌며강연과 워크숍을 열고, TV와 라디오 출연하는 등 대중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밖에 지은 책으로 『인지의미론(Women, Fire,and Dangerous Things: What Categories Reveal About The Mind, 1987)』(이기우 옮김,한국문화사, 1994),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 Mark Johnson과 공저,1980;2003)』(노양진·나익주 옮김, 서광사, 1995), 『More Than Cool Reason(Mark Turner와 공저,1989)』, 『몸의 철학(Philosophy in the Flesh: The Embodied Mind and Its Challenge toWestern Thought, Mark Johnson과 공저, 1999)』(노양진·임지룡 옮김, 박이정, 2002), 『WhereMathematics Comes From: How the Embodied Mind Brings Mathematics intoBeing』(Rafael Nunez와 공저, 2000) 등이 있다.
■ 역자 유나영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인류학과 대학원을 중퇴했다. IT회사 기획팀, 대기업 홍보팀, 출판사 편집부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 영어권 인문사회 도서를 번역하고 기획하는일을 하고 있다.
■ 차례
추천사 - 하워드 딘
서문 - 돈헤이즌
머리글 -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1부 그것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1. 입문 - 어떻게공론을 되찾아 올 것인가
2. 터미네이터 등장
3 "결혼"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
4. 테러의 은유
5. 은유는 사람을 죽일수도 있다
6. "거짓말"이냐, "신뢰에 대한 배신"이냐
2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1. 우익이 원하는것
2.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것
3. 자주 묻는 질문들(FAQ)
4. 보수주의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감사말
옮긴이 후기 - 철저히 당파적인, 그러나 재미있고 유용한
지은이소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미국 민주당원들이 조지 레이코프의 책을 몇 년 전에만 읽었어도, 오늘날과 같은 꼬락서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백악관에서도, 의회에서도, 법원에서도 밀려났다.” - 하워드 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프레임(frame)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이에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혁이다. 프레임 재구성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1부 그것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입문- 어떻게 공론을 되찾아 올 것인가
인지과학 입문에서, 그 첫 과제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다. 즉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 등이다.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한다.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는 TV 연설에서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일화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의 기본 원칙을 가르쳐 준다. 상대편의 언어는 그들의 프레임을 끌고 오지, 결코 내가 원하는 프레임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이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정치담론을 이해하고자 할 때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둬야 할까? 나는 가족의 가치(family values)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보수주의 입장과 진보주의 입장을 모아, 두 가지 모델을 뽑아냈다. 그것은 보수주의의 ‘엄격한 아버지의 가족’과 진보주의의 ‘자상한 부모의 가족’이다.
엄격한 아버지의 모델에서 아버지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들을 그릇된 길에서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해야 한다. 엄격한 아버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이 모델에서 ‘선한 사람’에 대한 정의는 ‘규율을 잘 따르며 순종적이고, 무엇이 옳은지 잘 배워서, 옳은 일을 하고 그른 일은 하지 않으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여 부와 자립을 이룩하는 사람’이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의 우두머리라고 믿는 데 반해 ‘자상한 부모’ 모델은 좀더 중립적이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 데 둘 다 동등한 책임을 진다. 또한 모든 어린이는 본성이 선하며 더욱 선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기본적인 가정이다.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으며, 또 바뀌어야 한다. 부모가 할 일은 자녀를 자상하게 보살피고 그 자녀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엄격한 아버지의 모델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잘 뭉치는 반면, 진보주의들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럴까? 진보주의에도 유형이 있는데,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생각이 진보의 한 가지 특수한 형태임에 불과하며 이 모든 유형의 진보주의가 하나로 수렴됨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이미 그 일을 해냈다. 1950년대만 해도 보수주의자들은 서로를 싫어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중에 그들은 똑똑한 젊은이들 대부분이 보수주의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수주의자’는 부정적인 단어였다. 이에 1970년 루이스 파월에서 시작되어 윌리엄 샤이먼에게 계승된 ‘보수주의 구하기’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들은 연구하고 책을 써서 젊은이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치는 교수직을 마련하려고 했다. 이들이 설립한 연구소에서, 이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쟁점 전반에 대하여 좌파들보다 훨씬 많은 책을 써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대변하는 지식인을 지원했다. 또한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를 많이 만들어냈다. 그 결과 현재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발언하는 지식인들 중 80퍼센트가 이런 보수주의 두뇌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무려 80퍼센트가!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네 두뇌 집단을 통해 프레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모든 쟁점을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프레임을 만들고 어떻게 자기편 사람들을 항상 미디어에 노출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자기편을 어떻게 하나로 묶는지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모두에게는 엄격한 아버지 혹은 자상한 부모, 이 두 가지 모델이 섞여있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유권자 중 35~40 퍼센트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또 35~40 퍼센트는 ‘자상한 부모의 모델’에 속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중간층’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델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 부문에서 보수주의자들은 프레임의 힘을 알고 그것을 적극 활용한 반면, 리버럴과 진보주의는 오히려 자멸적인 방식으로만 대응해왔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과학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그걸 알고 메시지 훈련을 강조한다. 언어가 결여된 것은 실제로는 개념이 결여된 것이다. 개념은 프레임이라는 형태로 떠오른다. 프레임이 있으면, 언어는 자동으로 따라온다. 확립된 프레임이 없어, 언어가 힘든 것을 인지과학에서는 저(低)인지(hypocognition)라고 부른다. 이는 한두 단어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정된 프레임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진보주의자들은 대단히 심각한 저인지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또한 쟁점의 통합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익이 너무나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일이다. 그들은 전략적 주도(strategic initiatives)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략적 주도란, 주의 깊게 선택된 어느 한 가지 쟁점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그것이 많은 다른 영역의 쟁점에까지 자동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계획을 말한다. 진보주의는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쟁점별로 사고하는데,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변화를 통해 다른 많은 쟁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지금까지 말한 방식으로, 쟁점마다 다 이기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진보주의자들도 그렇게 되도록 바빠져야 한다.
터미네이터 등장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 뒤에는 어떤 프레임이 도사리고 있을까? 나는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투표한다고 주장했다. 즉 유권자들은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누구 또는 무엇을 존경하는지를 근거로 투표한다. 물론 일부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을 중시하고 그에 따라서 투표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법칙이 아니라 예외적인 경우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려면 유권자의 절반 이상에게 - 두려움 등의 수단을 통해 - ‘엄격한 아버지’ 모델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9/11 테러는 부시 행정부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완벽한 메커니즘을 제공해 주었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은 대다수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을 작동하고, 따라서 유권자들은 정치를 보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터미네이터는 극단적인 엄격성을 보여 주는 엄청난 터프 가이다. 그리고 보디빌딩 세계 챔피언이라는 것은 규율과 훈련으로 추구할 수 있는 극한의 경지이다. 이보다 더 적절한 ‘엄격한 아버지’ 도덕의 전형이 또 있을까? 이것이 제이 리노나 로브 로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아니라 슈워제네거인 이유이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의 전형을 상기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수적인 공화당의 가치를 작동할 수 있다. 요컨대, 슈워제네거의 승리는 보수주의 공화당이 다른 곳에서 거둔 승리와 궤를 같이 한다. 민주당이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한 그들은 이 선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할 것이다.
테러의 은유
은유적으로 높은 빌딩은 서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높은 빌딩이 쓰러지는 것은 사람이 쓰러지는 것과 같다. 9/11 당시 비행기가 빌딩을 관통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빌딩이 사람의 머리이고, 비행기가 그 정수리를 관통하는 은유를 떠올린다. 그리고 마치 내가 정수리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은유적 사고체계는 우리의 ‘거울 뉴런’ 체계와 상호 작용한다. 세계무역센터는 국가와 자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무수한 방식으로 결부된 강력한 상징이었다. 물리적인 폭력은 뉴욕과 워싱턴에만 가해진 것이 아니다. 물리적 변화는 - 폭력적인 방식으로 - 모든 미국인의 머릿속에서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정부가 프레임을 짜고 그것을 고치고 은유를 찾아 헤매는 과정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그 주된 프레임은 희생자에 대한 범죄로서, 그 범죄자들은 “재판에 회부”되고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 프레임은 법, 법정, 변호사, 재판, 선고, 항소 등의 개념을 수반한다. 그 범죄가 전쟁으로 바뀌고 여기에 사상자, 적, 군사행동, 전력(戰力) 같은 개념들이 따라오는 데는 불과 수시간이면 충분했다. 미디어를 지배한 것도 행정부의 보수주의적 메시지였다. 뉴트 깅그리치는 폭스 뉴스에 나와서 “징벌이 곧 정의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급진적 테러리즘의 원인은 최소한 세계관(종교적 논리), 사회 정치적 조건(절망의 문화), 공격 수단(테러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조건들)이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이 중 세 번째 것, 즉 공격 수단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부의 담론에 의해 무엇이 조성되었는가? 부시 행정부는 이제 경기 후퇴까지 자신들의 경제 정책 탓이 아니라 9/11 공격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시민 자유는 심각하게 축소될 전망이다. 현재를 바꾸려면 스스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 미국이 테러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면, 미국은 스스로 테러에 기여하는 활동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누가 정책에 대해 솔직하게 논의할 용기를 지니고 있을까?
은유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우리(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적 은유는 국가를 사람처럼 보는 것이다. 이 은유는 이라크 국가를 사담 후세인이라는 한 인간으로 개념화하는 말을 통해 수백 번씩 사용된다. 우리가 듣는 바에 따르면 이 전쟁은 이라크 민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 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작된다. ‘정의로운 전쟁’의 기본 개념은 국가를 사람으로 보는 은유에다, ‘자기방어’ 이야기와 ‘구출’ 이야기라는 옛날 이야기의 두 가지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부시 정부는 군인들에게도 똑같은 믿음을 주입하여 자신들이 나라를 방어하려고, 이라크 민중과 사담에게 위협받는 이웃 나라들을 구출하려고 이라크에 갔다고 믿도록 만들었다. 부시와 파월이 끊임없이 이라크 민중에 대한 사담의 범죄와 그가 이웃 나라를 공격하려 했던 무기들의 목록을 나열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나 경제 제재로 인해 사망한 민간인, 장애를 입은 사람들, 굶주리고 질병에 걸린 어린이의 수에 대해서는 공식 집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추정치에 따르면 그 수는 50만에서 100만 이상에 이른다.
‘은유’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2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익이 원하는 것
우익의 이데올로기인 ‘엄격한 아버지’ 도덕이 정치적 힘을 얻고 유지되려면 분열이 필요하다. 그 첫째는 경제적 분열인데, 이는 ‘자격 없는’ 빈민들이 빈민으로 남아서 ‘자격 있는’ 부자들을 부양하는 양극화된 경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보수주의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이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도전에 직면했다. 그들은 경제적?정치적 엘리트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중간 및 하위 계층 노동자들의 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보수주의 사상을 대중적인 것으로, 리버럴/진보주의 사상을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 실은 그 반대가 진실임에도 -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은 그들에게 큰 이점이 되었다. 이 도덕체계에는 ‘부자들은 손수 돈을 벌었고 부를 누릴 자격이 있는 선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뇌 집단의 지식인, 언어 전문가, 작가, 광고 에이전시, 미디어 전문가들은 30~40년간에 걸쳐 작업한 끝에 보수주의자들은 사고와 언어의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냈다. 언어를 통해 그들은 리버럴들이 나약한 엘리트이며 세금이나 축내는 비애국자라는 인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보수주의자들은 언어와 몸짓을 통해 대중주의자로 탈바꿈했다.
종합하면, 우익은 ‘엄격한 아버지’ 이데올로기를 미국과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에 부과하고자 하고 있다. 그 세부적인 사항은 보수주의자의 유형에 따라 어느 정도 다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보편적인 경향성이 존재한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극단적인지 과소평가하고 있다. 미국과 전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이 문화적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것
진보 세력을 결집하려면 우리는 먼저 진보세력을 갈라놓은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지역적 이익”, “이상주의 대 실용주의”, “급진적 변화 대 완만한 변화”, “투쟁적 주장 대 온건한 주장”, “사고방식과 견해의 차이”이다. 정책 프로그램은 서로 결집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다. 프로그램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자마자 차이점이 불거지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인 대부분이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이상을 대변하는지, 우리의 가치가 자신의 가치와 부합하는지, 우리의 원칙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이에 나는 적절히 조율만 되면 가치, 원칙, 방향이야말로 진보주의를 결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우리를 분열케 하는 모든 것보다 개념적으로 상위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들의 가치, 원칙, 방향을 고안하여 그것을 대중의 마음 속에 아주 효과적으로 심어 왔다. 그들은 심지어 이것을 열 단어로 요약하여 말할 수도 있다. 진보주의는 아직 열 단어짜리 철학에 있어 미진하다. 이에 나는 보수주의에 대응하는 우리의 열 단어짜리 철학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 보았다.
진보주의 | 보수주의 |
강한 미국(Stronger America) | 강력한 국방(Strong Defense) |
모두의 번영(Broad Prosperity) | 자유 시장(Free Market) |
더 나은 미래(Better Future) | 낮은 세금(Lower Taxes) |
효율적인 정부(Effective Government) | 작은 정부(Smaller Government) |
상호 책임(Mutual Responsibility) | 가족의 가치(Family Values) |
보수주의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식구들이 둘러 앉아있을 때, 정수기 앞에서 사무실 동료들이 모였을 때, 그리고 청중 앞에서, 진보주의자들은 끊임없이 보수주의적 주장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언어를 휘어잡고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별로 할 말이 없는 수세적인 상황에 몰릴 때가 많다.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주의가 가장 전통적이면서 미국적인 가치임을 역설하라”,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것을 삼가라”, “유머 감각을 발휘하라”, “소신을 지켜라”,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을 개종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라”, “행동하는 데 침착성과 통제력을 보여라”, “상대편의 관점에 의해 프레임으로 구성된 질문에 절대로 대답하지 마라” 등의 다양한 교훈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수많은 지침과 교훈들을 정리하여 나는 네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상대를 존중하라.
둘째,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대응하라.
셋째, 가치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발언하라.
넷째,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라.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