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종말
The End of Poverty :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Time
「뉴욕타임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선정된 바 있는 제프리 삭스는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제3세계의 가난을 면밀하게 분석한 뒤 기아, 질병,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한 빈곤의 사슬은 집중적이고 복합적인처방을 통해서만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의 부국이 힘을 합쳐 외국원조를 향후 10년 동안 1,350억 달러에서 1,950억달러 수준으로 올린다면, 세계은행이 하루 소득이 1달러 이하라고 규정한 극빈층을 2015년까지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뭄, 기아,AIDS, 말라리아, 오염된 식수로 정의되는 절대 빈곤을 우리 시대에 종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 저자 제프리 삭스
1954년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졸업하고, 29세인 1983년에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다. 하버드 국제개발연구소장, IMF, 세계은행, UNDP, OECD 등 국제기구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IMF가 내린 고금리 처방을 강력히 비판해 주목받은 바 있다. 지은 책으로 『세계경제의거시경제학 Macroeconomics in the Global Economy』『세계통합 - 거시경제학적 상호의존과 세계경제 협력 GlobalLinkages - Macroeconomic Independence and Cooperative in the World Economy』 등이있다.
■ 역자 김현구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경제학과를 졸업하고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새길출판사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2006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부의 탄생』『그린스펀 따라잡기』『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인간의 삶을 뒤바꾼 위대한 발명들』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한국어판서문
서문
제1장 빈곤은 어디에 있는가
제2장 경제적 번영의 확산
제3장 왜 일부 나라는번영에 실패하는가
제4장 의학과 경제학의 유사성
제5장 볼리비아의 초인플레이션 현상
제6장 유럽으로 복귀: 폴란드의경제개혁
제7장 정상의 회복: 러시아의 투쟁
제8장 500년 만의 따라잡기: 중국의 재도약
제9장 긴 시간에 걸친 희망의 승리:인도
제10장 소리 없는 죽음: 아프리카의 질병
제11장 이라크 전쟁이냐 빈곤의 퇴치냐
제12장 빈곤 종말을 위한 현장해결책
제13장 빈곤에서 자본 축적으로 가는 선순환
제14장 빈곤 극복을 위한 전 지구적 협정
제15장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계산법
제16장 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그릇된 처방
제17장 초일류국가 미국의 편견
제18장 우리 시대의 도전
감사의 글
인용문헌
추가참고문헌
주
출처
빈곤의 종말
빈곤은 어디에 있는가
말라위 : 완벽한 폭풍
우리는 말라위의 수도 리옹그웨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작은 마을 은탄디르에 도착했다. 남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내륙국에 속한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황폐한 땅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을에 일할 남자들이 있어 지붕과 밭에 작은 집수장치를 마련하고 빗물을 조금이라도 저장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끔찍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는 일할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쓸고 지나간 AIDS 때문에 20~40세 사이의 남자가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 남자들은 모두 그저께 AIDS로 죽은 마을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마을에 없었다.
말라위 지역의 토양은 양분이 너무 심각하게 고갈돼, 강수량이 풍부한 경우에도 옥수수 수확량은 1헥타르 당 약 1톤에 지나지 않는다. 1헥타르 당 3톤을 수확할 수 있는 건강한 토양의 경우와 너무 대조된다. 해마다 100만 명 이상 ― 아마 300만 명 이상은 족히 될 것이다 ― 의 아프리카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이 질병은 어느 정도는 예방과 완치가 가능하지만 모기장 같은 최소한의 작은 수단들도 제공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는 어림도 없다.
그날 말라위의 두 번째 도시인 블란티르로 가서 말라위 최대 병원인 엘리자베스센트럴 병원을 방문했다. 이 병원에서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치료를 못해 죽어가고 있는 90만 명의 사람들을 위해 말라위 정부가 마련한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병원은 항레트로바이러스 복합 치료 비용을 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비예약 진료소를 세웠다. 인도의 복제약품 제조회사 시플라가 빈국에게 저가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재정이 너무 빈약해 치료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루 1달러의 비용을 댈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스스로 비용을 댈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시작되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이 진료소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약 400명의 사람들에게 날마다 항AIDS 약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90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는데 고작 400명이 치료 받고 있는 것이다!
말라위는 1인당 하루 소득이 50센트, 1인당 연간 소득이 180달러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대량 질병과 기근, 기상이변 등에서 비롯된 긴장이 팽배해있는 빈국이다. 다당제 민주주의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물라웨시 부통령도 AIDS로 여러 명의 가족을 잃었다. 물라웨시는 국가 AIDS 전략을 수립할 전문가팀을 이끌어왔다. 실제로 말라위는 죽어 가는 국민들에게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선진적이고 훌륭한 전략을 제일 먼저 수립했다. 또 약품 전달 시스템 관리, 환자 상담, 교육, 마을 방문 진료, 재정 흐름 등의 문제에 매우 사려 깊은 대응을 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말라위는 HIV 바이러스 감염 인구 가운데 약 3분의 1(약 30만 명)에게 5년간 단계적으로 항AIDS 약물 치료를 확대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지원해달라고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정했다.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을 포함한 기부국 정부들은 말라위에게 계획의 규모를 줄이라고 요구했다. 말라위 정부의 계획이 너무 거창하고 비용이 아주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작성된 계획은 5개년 계획 중 단지 10만 명만을 치료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너무 과도한 수치라는 지적이 있었다. 기부국들은 말라위에게 다시 계획을 60퍼센트 감축해 4만 명을 치료 대상으로 하라고 설득했다. 이 위축된 계획안이 세계AIDS위원회에 제출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기금을 운영하는 기부국들이 다시 그 계획을 감축하기로 했다. 오랜 싸움을 거쳐 말라위는 5개 동안 단지 2만5천 명을 구제할 수 있는 기금만을 받았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이 나라 국민들에게 보낸 사형 집행 영장이었다.
유니세프의 캐럴 벨라미는 말라위가 처한 곤경을 완벽한 폭풍??이라고 적절하게 기술했다. 그것은 기상재해, 빈곤, AIDS, 말라리아와 주혈흡충병 같은 오랜 부담을 모두 합친 폭풍이었다. 이 끔찍한 대혼란에 직면한 국제사회는 지금까지 걱정하는 제스처만 보여주었다.
경제발전의 사다리 올라가기
말라위에서는 인구의 84퍼센트가 농촌지역에 살고, 방글라데시에서는 76퍼센트가, 인도에서는 72퍼센트가, 그리고 중국에서는 61퍼센트가 농촌에 산다. 발전 스펙트럼의 반대편 꼭대기에 있는 미국에서는 인구의 20퍼센트만이 농촌에 산다. 말라위에서는 서비스 부문이 고용의 25퍼센트도 안 되지만, 미국에서는 75퍼센트를 차지한다.
경제발전이 사다리이고 사다리의 높은 단계가 경제적 복지로 올라가는 상승을 나타낸다면, 인류의 6분의 1인 약 10억 명이 말라위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너무나 가난하고 몸이 아프며 배가 고파 경제발전 사다리의 첫 계단에 한 발조차 올려놓을 수 없다. 이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고 절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 발전도상국에 살고 있다(빈곤은 부국에도 존재하지만, 그곳의 빈곤은 절대적인 빈곤이 아니다).
경제발전 사다리의 몇 계단 더 높은 곳은 저소득국 가운데 상층부에 해당한다. 이 세계의 약 15억 명의 사람들은 빈곤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최저생계 수준보다는 나은 생활을 한다. 그러나 안전한 식수와 제대로 된 화장실 같은 기초적 편의시설이 없으며 만성적인 재정적 곤궁이 일상화되어 있다. 절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약 10억 명)과 빈곤한 사람들(약 15억 명)은 모두 합해 인류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한다.
인도의 IT 노동자들을 포함한 또 다른 25억 명의 사람들은 사다리의 몇 계단 더 높은 곳, 즉 중소득 세계에 속한다. 이들은 중소득 가계들이지만, 부국들의 기준에서 보면 결코 중산층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사다리의 약간 더 높은 곳에 세계 인구의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 명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고소득 계층에 속한다. 이 풍요로운 가계들에는 부국들에 사는 10억 명이 포함되지만, 중소득국들에서 증가하고 있는 부자들도 포함된다. 즉 상하이, 상파울로, 멕시코시티 같은 도시에서 사는 고소득을 올리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비극은 인류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발전의 사다리에 아직 발도 올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빈곤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빈곤 함정에 붙잡혀 있어서 자기 힘만으로는 절대적인 물질적 박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들은 질병, 지리적 고립, 나쁜 기후 조건, 환경 악화, 극단적인 빈곤 그 자체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 세대의 도전
우리는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 극단적 빈곤에서 벗어나 스스로 경제발전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빈곤의 종말은 극단적 고통의 종말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진보의 시작이자 경제발전을 수반하는 희망과 안전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극단적 빈곤 속에서 살며 날마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6분의 1의 세계 인구가 처한 곤경을 끝내는 일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인 수준의 영양과 건강, 안전한 상하수 시설, 피난처, 기타 최저 수준의 생존과 복지, 사회 참여를 위한 필수적 요소들을 누려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 둘째, 중위의 빈곤을 포함해 세계의 모든 빈곤한 사람들이 발전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경제 관리의 국제적 규칙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다리의 낮은 계단 쪽에 함정을 놓아 저소득국이 발전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없도록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런 함정들이란 불충분한 개발 원조, 보호 무역주의적 장벽, 안정을 해치는 국제 금융 행태, 부실한 지적 재산권 규칙 등이다.
의학과 경제학의 유사성
어떤 면에서 오늘날의 개발경제학은 18세기 의학과 닮았다. 그 당시 의사들은 거머리를 사용해 환자들의 피를 뽑았으며, 이 과정에서 환자를 죽이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 4반세기 동안 빈국들이 부국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부유한 세계는 세계의 통화 의사인 IMF를 파견했다. IMF의 주된 처방은 너무 가난해서 벨트를 가질 수도 없는 환자들에게 예산의 벨트를 꽉 조이라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IMF가 지도한 긴축은 폭동과 쿠데타, 공공 서비스의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임상의학의 몇 가지 교훈
의사가 한밤중에 전화를 받는다. 어린아이 한 명이 고열 증세를 보인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의료 과학과 치료법은 열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일련의 엄격한 절차를 제시한다. 임상경제학과 관련하여 임상의학은 다섯 가지 주요 교훈을 일깨웠다.
첫 번째 교훈은 인간의 신체란 복잡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인체 시스템이 복잡하다는 것은 단지 많은 부분이 잘못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이상의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가지가 고장 나면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켜 추가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교훈은 복잡한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열을 일으키는 원인 중 어떤 것은 분명히 위험하지만 어떤 것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어떤 원인은 치료할 수 있지만, 어떤 원인은 치료할 수 없다. 어떤 원인은 응급치료가 필요하지만, 어떤 원인은 그렇지 않다. 열이란 특정한 질병이라기보다는 증상이므로 의사는 적절한 치료 과정을 위해 그 증상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확인해야 한다. 의사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질병부터 먼저 생각하고, 애매한 것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
세 번째 교훈은 모든 의료는 가족 의료(family medicine)라는 점이다. 아이에게서 질병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이의 질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하려면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치료 여건을 마련할 능력이 있는가? 어머니 자신이 병에 걸려 있거나 몹시 가난하고 학대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어머니가 아이의 치료를 위해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못할 여러 조건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아이의 상처는 정말로 사고인가, 아니면 학대의 표시인가?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몹시 흥분한 채 아이의 상태에 대해 말할 경우에 이것은 믿을 만한 설명인가, 아니면 과잉 행동에 불과한가?
네 번째 교훈은 관찰과 평가가 성공적인 치료에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과거 이력을 알 수 있도록 진료 차트를 보관한다. 세심한 초기 진단조차 틀릴 수 있다. 훌륭한 임상의는 각각의 진단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지 않고 단지 그 시점에서 얻은 최상의 가설로 받아들인다. 다섯 번째 교훈은 의료란 하나의 직업이고, 직업으로서 강한 규범과 윤리 그리고 행동 규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득이 아니라 환자의 이익에 따라 판단을 내려야 한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양질의 진료를 보장하기 위해 새로운 처치법과 약품을 포함해 최신의 과학적 발견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정상의 회복 : 러시아의 투쟁
1990년 여름, 나는 동료와 함께 러시아의 경제계획청인 고스플란 책임자들을 만났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경제는 나쁜 징후만 드러내고 있었다. 암거래는 더욱 횡행하고 물자 부족은 심해졌으며, 그 전에 우리가 폴란드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악성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연쇄적으로 드러난 이 위기에는 동유럽의 경우와 같은 사회주의 시스템의 붕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위기를 현저하게 약화시킨 직접적인 특성은 따로 있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 소련은 거의 전적으로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해 외화를 획득했다. 둘째, 에너지 집약적인 중공업은 자국에서 생산하는 석유와 가스를 사용하면서 공업 경제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하던 시점인 1980년대 중반부터 소련은 두 차례의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 세계 석유 가격이 폭락하여 소련의 수출 소득이 하락했다. 둘째, 소련의 석유 생산이 정점에 달한 다음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유전들이 고갈되었지만 접근이 어려운 툰드라의 새로운 유전들에 대한 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수출 소득 하락에서 비롯된 적자를 메우고 경제를 현대화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해외에서 차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아무 소용없었다. 낡은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시점에 조지 소로스는 나에게 고르바초프의 새 경제고문인 야블린스키를 소개해주었다.
1991년 초, 야블란스키는 하버드대학교에 와서 나를 비롯한 동료 교수들, 그리고 MIT의 교수들과 함께 대타협??이라는 계획안을 작성했다. 고르바초프가 미국과 유럽의 대규모 금융지원을 바탕으로 가속적인 경제개혁과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제개혁은 큰 틀에서는 폴란드의 예를 따르되 소련 현실에 적합한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며, 공화국들은 민주화를 위해 자유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당시 공화국들은 더 많은 자치권을 획득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연방의 주(州)들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소련에서 고르바초프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일로 고르바초프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고 있던 옐친이 우위를 획득하게 됐다. 이미 빈사상태에 빠졌던 소비에트 연방의 14개 계승국가들과 더불어 러시아는 곧 독립국이 될 예정이었다. 1991년 11월 옐친은 젊은 경제학자 가이다르에게 개혁을 맡겼다. 이 변혁의 시점은 절묘했고 매우 복잡했다.
동떨어진 세계
문제의 규모, 사회에 가해지는 사회주의적 구속의 정도, 수천 년을 이어 온 독재, 러시아 공화국만 봐도 폴란드에 비해 11배나 큰 면적과 거의 4배에 달하는 인구,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 존재하는 골 깊은 지리적?문화적?종교적?언어적 차이 등 여러 면에서 폴란드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러시아는 시장경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폴란드보다 훨씬 덜했다. 이 변혁은 틀림없이 현대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러시아에 안정화와 시장 자유화처럼 실행 가능한 핵심적 개혁에 신속하게 착수하고, 하룻밤 새는 아니더라도 사유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하라고 조언했다.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정상 상태를 최우선 목표로 하라고 조언했다. 또한 외국에서 가능한 한 모든 원조를 구하라고 역설했다. 1992년 1월, 드디어 러시아는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외국의 지원을 확보하려는 시도
러시아가 통화를 안정시키고, 연금 수입자와 기타 취약한 집단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도입하며, 산업을 구조조정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려면 해마다 150억 달러의 외국원조가 필요했다. 이 금액은 결코 큰 것이 아니다. 부유한 세계의 소득 가운데 1%에 지나지 않고, 냉전 시에 해마다 지출해야 할 군비에 비하면 아주 적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전을 확실히 종결시킬 수 있다면, 평화배당금(군비축소에 따른 잉여 경비를 경제발전과 복지 등에 돌릴 수 있게 된 사회적 비용)의 일부로도 그 원조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워싱턴은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러시아 변혁을 지원하기 위해 서구가 즉시 해야 할 세 가지 조치를 주장했다.
- 폴란드의 경우처럼 루블화 안정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 채무 이자 상환을 즉시 유예하고, 그에 이은 러시아 부채를 상당액 탕감해야 한다.
- 러시아 경제의 가장 취약한 사회 부문들에 초점을 맞춘, 변혁을 위한 새 원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초인플레이션 현상과 정치적 격변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는 타이밍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만, 서구는 안정화 기금의 타이밍에 대해 심각한 판단 착오를 일으켰다. 대처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소비에트 체제에서는 루블화가 소련 경제 전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소련이 이제 15개 계승 국가로 나뉘어진 이상 그 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새로운 화폐가 필요했다. 그러나 1992년의 정치상황에서는 하나의 중앙은행이 루블화를 유통, 관리, 감독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화폐 문제는 개혁 첫 6개월 동안 꼭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작업은 2년 넘게 걸렸다.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IMF가 개별국 통화 확립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소련 시대에 진 부채에 대한 G7의 방침도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실패한 셈이다. 결국 러시아는 1992년에 외환 보유고를 완전히 소진했다. 러시아와 메이시스 백화점(미국)이 1992년 2월 같은 날에 채무이행을 유예했다. 그러나 메이시스 백화점은 미국 파산보호법의 혜택을 입었고, 채권자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즉 파산보호법 아래 채무이행이 공식적으로 중지되었으며, 거의 즉각적으로 새로운 시장 차입이 이루어졌다(미국 파산보호법에서 새로운 차입은 이전 부채에 대해 변제 우위를 갖는다). 파산보호법의 이 같은 보호조치 덕분에 메이시스 백화점은 경영상의 손실을 전혀 입지 않았고, 얼마 후 재기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런 법적인 조치는 채권자들에게도 유리하다. 만약 그런 조치가 없다면 채권자들은 권리 행사를 위한 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가치가 소멸해버린 (백화점에 대한) 권리증만 손에 쥐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런 특혜를 전혀 받지 못했다. 채권자들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없었고, 채무이행에 대한 법률적 정지조치도 없었으며, 새로운 운영 자본의 신속한 유입은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채권자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1992년은 러시아와 러시아 개혁가들에게 끔찍한 한 해가 되었다. 시장 자유화가 실시된 첫 순간 이후 다른 개혁들은 실질적으로 전혀 진행되지 못했거나, 불완전한 형태로만 진행되었다. 많은 가격통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국제교역은 부분적으로만 열렸다. 통화 역시 부분적으로만 태환 가능했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통화 안정화가 달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방자한 인플레이션이 그해 내내 계속되었다. 1993년도 달리 나아진 게 없었다. 최악의 사태는 1995년과 1996년에 일어났다. 그 2년 동안 이루어진 러시아의 사유화는 파렴치하고 범죄적인 활동이나 다름 없었다. 사업가라는 부패한 집단이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수백억 달러어치의 부 ― 주로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소유권 ― 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러시아 재무부가 약 1,000억 달러의 석유와 가스를 민간인의 손에 넘기고 받은 것은 10억 달러에 불과한 사유화 영수증이었다.
러시아에서 얻은 교훈
러시아가 만약 안정화 기금, 채무 유예, 부채의 부분적 탕감, 실질적인 지원 프로그램 등의 혜택을 받았다면 훨씬 더 쉽게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을 것이다. 부패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고 과두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용어로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석유와 가스에서 파생된 수입이 개인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러시아 재무부로 흘러들어갔다면 연금 생활자, 실업자, 기타 공공수입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다시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공공투자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운은 좋았다. 1990년대에 격변을 겪으며 외부로부터 특별한 원조를 받지 못했는데도 러시아는 평화와 외부 세계와의 협력을 유지했다. 체첸에서는 폭력의 불꽃이 타올라 거대한 비용을 치렀고 지금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지만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 내전과 핵무기 확산, 집단학살 등에 대한 예측이 난무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려하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리 없는 죽음 : 아프리카의 질병
누가 감히 아프리카의 통치 구조를 비판하는가
서구 정부들은 1980~1990년대에 아프리카에 가혹한 예산 정책을 강요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채무에 찌든 대륙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운영하면서 전문용어로는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예산긴축 치료법을 권고했다. 이런 프로그램은 과학적으로는 쓰레기 같은 이론이었고, 실제 성과 면에서는 더욱 보잘것없었다. 21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아프리카는 IMF와 세계은행이 아프리카 현장에 처음 도착한 1960년대 말보다 훨씬 더 가난했다. 그리고 질병과 인구증가, 환경파괴라는 통제불능 상태도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서구는 아프리카의 나쁜 통치구조를 비판하기에 앞서 좀더 신중해야 한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서구만큼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약탈하거나 학대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300년이 넘게 노예무역이 행해졌으며, 이어 1세기 동안 야만적인 식민지 통치가 이루어졌다. 식민지 시대는 아프리카를 경제적으로 상승시키기보다는 아프리카에 교양 있는 시민과 지도자 그리고 기초 인프라와 공중 보건 시설의 결핍을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신생 독립국들의 국경선은 옛 제국들의 자의적인 경계선을 따라 그어졌고, 동시에 민족집단, 생태계, 자원 매장지 등도 자의적으로 분할되었다.
경제성장의 적 : 질병
아프리카 사회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AIDS만은 아니었다. 말라리아는 또 다른 잠재적 살인자였다. 나는 말라리아가 1주일분의 메플로퀸을 먹으면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는 질병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면에 도사린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아프리카인 동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1년에 며칠씩 말라리아의 독감 같은 마법에 걸렸다. 새천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대 수명은 47세로 동아시아(69세)보다는 20년 이상, 선진국들(78세)보다는 31년이나 낮았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AIDS 확산의 결과로 기대 수명이 거의 20년이나 낮아졌다.
말라리아 미스터리
말라리아는 완전히 치료될 수 있는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해마다 약 300만 명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이고, 이들의 90퍼센트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가난한 지역들은 말라리아가 전파된 지역들과 일치한다. 이런 사실은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말라리아는 빈곤을 일으킨 책임이 있는가? 둘째, 말라리아의 발병 상태가 아프리카에서 특히 더 나쁜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말라리아와 빈곤 사이의 연관성을 깨뜨리기 위해 과연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가? 넷째, 말라리아를 물리치기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드러난 증거들은 말라리아와 빈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시사한다. 미국도 1940년대까지 말라리아가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심각한 곤란을 겪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는 거의 회생할 수도 없을 만큼 타격을 받았는가? 아프리카는 최악의 경우였다. 통치구조나 공중보건 서비스 때문이 아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특유의 환경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가 인간과 함께 진화했고, 그 결과 세계의 다른 곳에 비해 독보적인 강력한 전파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가정 내 살충제 살포, 살충 처리된 모기장, 말라리아 치료약 등 이 모든 것이 세계의 다른 곳들과 똑같이 아프리카에서도 효과가 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기부원조 수준에 대한 수치를 추적했을 때 우리는 놀랍게도 거의 아무런 수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해마다 20~30억 달러가 필요한데 지원금액은 고작 수천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AIDS 대홍수
HIV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AIDS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질병의 경제적 비용에 대해 말하자면 확실히 AIDS는 눈앞의 재난인 말라리아와 비슷하거나 말라리아를 훨씬 능가한다. 이미 천만 명 이상의 고아들이 발생했다. 사업 비용이 뛰어올랐다. 이는 노동자들의 막대한 의료 비용, 끊이지 않는 장기 결근, 홍수처럼 발생하는 노동자 사망 등의 혼란 때문이다. 수백 만 가정의 가장들이 질병과 싸우고 있는데, 이것은 가족의 정서적 충격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시간과 경비 면에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
1990년대 말에 선진국들에서는 AIDS가 치료되고 있었고, 치료 성공률도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세 가지 약의 복합처방으로 주어지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치료, 이른바 고효능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 또는 단순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이 적절한 치료법이다. 이 치료법들은 선진국에서 그 질병의 양상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인들은 희망이 있다. 전 세계가 AIDS와 싸우는 아프리카에 고작 7,000만 달러를 제공했다는 것이 진실일까? 나는 동료와 함께 조사를 시작해 이 자료를 영국의 의학잡지 「더 랜싯」에 실었다.
WHO 거시경제와 보건위원회가 탄생했다. 나는 2000년 초부터 2001년 말까지 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질병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책임은 아프리카인들 스스로의 관리 잘못에 있는가, 아니면 제약회사들의 탐욕에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부유한 세계의 의도적이며 악의적인 무시에 있는가가 주요 쟁점이었다. 또한 아프리카는 더 많은 원조를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단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자원을 더 잘 활용해야 하는가? AIDS 약물치료는 아프리카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위원회와 전문가, 제약산업, NGO 공동체의 주요 대표들도 의견을 모았다.
첫째, 질병은 빈곤의 원인이며 빈곤의 결과이다. 둘째, AIDS, 말라리아, 결핵, 설사병, 급성 호흡기 감염, 백신으로 예방되는 질환, 영양 부족, 불안전한 출산 등으로 수명이 낮아졌다. 셋째, 위원회는 기부원조가 연간 약 60억 달러에서 연간 270억 달러(2007년)로 증가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그와 같은 투자로 연간 800만 명의 귀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나는 AIDS, 말라리아와 싸우기 위한 전세계적 기금??이라는 구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세계 AIDS, 결핵, 말라리아 퇴치기금의 탄생
부국이 빈국을 위한 약물치료 비용을 부담한다고 할 때, 실제 부담액은 부국에 적용되는 약값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특허 소지자들은 빈국을 위해 가격을 인하하는 데 동의했다. 동시에 다양한 제약회사들은 특허가 적용되지 않거나 특별한 절차에 의해 특허 효력이 발휘되지 않는 나라들에게 저가 경쟁 약품을 공급함으로써 추가 경쟁의 여지를 제공했다. 기금을 마련하기로 한 합의문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미국 국립보건원, 백악관, 거시경제와 보건위원회, WHO, 기부단체들, 아프리카 대통령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001년 말에 그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계산법
극단적 빈민들이 빈곤 함정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부국에 요구하는 것은 몹시 무모한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과연 돕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진실은 이렇다. 즉 현재 소득이나 세금, 추가적인 지연 때문에 발생할 비용, 행동에 따른 이익 등 어떤 면에 비추어보더라도 비용은 생각보다 적게 들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국이 이미 공약한 한도 안에서 그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선진국 국민총생산의 0.7퍼센트, 즉 소득 10달러당 고작 7센트만 할애하면 충분하다. 개발원조에 대한 논쟁이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충분한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벌이는 모든 논쟁은, 실제로 부국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1퍼센트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문제 삼고 있을 뿐이다.
부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부가 왜 지나치지 않은지를 다음과 같은 근거로 알 수 있다. 첫째,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수가 감소하여 세계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세계은행은 오늘날 약 11억 명이 극단적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도 약간 못 미치는 수치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극단적 빈곤 인구의 비중은 3분의 1이었다. 두 세대 전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둘째,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극단적 빈곤을 끝내자는 것이지 모든 빈곤을 끝내자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세계의 소득을 공평하게 나누자거나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소득격차를 줄이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셋째, 우리가 실천적 태도를 가지고 특정한 영역 ― 도로, 전력, 수송, 토양, 상하수도, 질병통제 ― 의 투자들에 대해 말한다면, 그 과제는 훨씬 쉬워 보일 것이다. 넷째, 오늘날 부국들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부유하다. 다섯째,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 이동전화와 인터넷 덕택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농촌 지역들도 정보 기근에서 벗어나고 있다. 물류시스템도 향상되었고, 육종 개량, 농생물 기술 등도 진보해 손상된 토지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질병 예방과 통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통해 의료 분야에서도 비약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미국은 GNP의 0.7퍼센트를 낼 수 있을까
미국에서 GNP의 0.7퍼센트를 원조한다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예산의 지출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 이라크에서 2주간 쓴 전쟁 비용(약 25억 달러)은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경제개발 지원을 위해 쓰는 1년치 총액과 맞먹었다. 전쟁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이라크 전쟁 비용이 연간 약 6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것은 GNP 대비 0.7퍼센트 수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증가분과 거의 비슷한 금액이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큰 금액을 기부했다. 이 재단은 연간 지출액의 약 70퍼센트를 빈국에서 질병과 싸우는 일에 쓰고,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조지 소로스나 롭 글레이져, 고든 무어 같은 관대한 자선가들도 비슷한 일을 했다. 이런 기부는 훌륭하지만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큰 파도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해결책을 위해서는 자선과 과세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실제적 제안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20만 달러 이상의 소득자들에게 5퍼센트의 소득세를 추가로 부과하면 2004년도 기준으로 약 4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이 추가로 걷히게 됐다. 이 추가 세액을 전 지구적 빈곤을 종말시키는 데 미국이 기여하는 기부금으로 할당해야 한다. 이 추가 부과액은 세금으로 납부되어 미국 정부의 노력을 지원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납세자들이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밀레니엄프로젝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선단체에 직접 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국들의 계몽적 이기심에서는 물론, 개인들의 깊숙한 인간적 욕구에 의해서도 이런 조치를 마땅히 취해야 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