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코드

   
강준만
ǻ
인물과사상사
   
10000
2006�� 02��



■ 책 소개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서나타나는 특성들을 "한국인 코드"로 묶어 해설한 책. 단일성과 밀집성이라는 조건 아래 획일성, 집중성, 극단성, 조급성, 역동성이라는 한국인의5가지 속성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그 명암을 보여준다.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빨리빨리 문화, 한국형 평등주의,최고·최대·최초에 집착하는 자존감을 위한 투쟁, 가족주의·정실주의·부정부패로 드러나는 정(情) 문화, 6·25 심성, 쏠림의 소용돌이 문화,서열 문화, 아버지 추종주의, 목숨 거는 극단주의 등의 한국인 코드 10가지를 다루었다. 

 


이들 코드들은 어떤 면에선 이미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익숙한 담론이지만, 반대로 이들코드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고민은 거의 없었던 탓에 어떤 면에서는 생소한 담론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 저자 강준만 교수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연구가 미진한 학계와 정치 풍토를 비판하고, 진정한 "한국적 사회과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들 코드 양쪽에 존재하는 다양한 역사적사실과 최근 일어난 정치ㆍ사회ㆍ문화 사건들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인 심리적 공감대를 포착해냈다.


■ 저자 강준만
1980년 성균관대학교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학위를받고 2006년 현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인물과 사상」시리즈 『문학권력』『서울대의 나라』『노무현과국민사기극』『이문열과 김용옥』『노무현과 자존심』『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나의 정치학 사전』등이있다.

■ 차례 
머리말 : 과연 한국인은 한국인을 아는가?


제1장 너나 잘하세요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제2장 빨리빨리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


제3장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한국형 평등주의의 괴력


제4장 최고·최대·최초
자존감을 위한 투쟁


제5장 정(情)
가족주의·정실주의·부정부패


제6장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7장 소용돌이
쏠림의 축복과 저주


제8장 서열
관존민비·출세주의·입장주의


제9장 아버지
생존을 위한 지도자 추종주의


제10장 목숨 걸고
단기적 극단, 장기적 중용


맺는말 : 왜 우리는 늘 국민을 읽는 데에실패했는가?





한국인 코드


너나 잘하세요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유행이다. 사실 이 말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 코드, 즉 한국인들의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가 내장돼 있다. 왜 "너나 잘해"가 아니라 "너나 잘하세요"일까? 이는 조언이나 평가를 해주는 이가 사회적 기준에서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걸 시사한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이른바 ‘명분’을 갖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데,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그것이 반대편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건 틀린 말이 된다. 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편 가르기’ 문화가 요구하는 기본 문법이다. 한국 ‘편 가르기’ 문화의 특성은 그것이 사람 중심이라는 데에 있다. 이는 공공적 차원에선 거의 재앙이다. 자기성찰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안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믿음의 구조를 약화시켜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등 냉소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성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냉소주의는 한국인의 오랜 친구였다. 그것 없이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의 민중 수탈, 일제치하에서의 피지배 경험, 극심한 내부 분열과 충돌로 점철된 해방정국, 좌우대립에 따른 사회 불안, 부패로 독재로 점철된 해방 이후의 시간 또한 민중의 냉소주의를 고착화시켰다. 민주화된 세상에서도 법과 정치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가중되고 있다.


“너나 잘하세요”는 늘 명분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성찰부터 먼저 하라는 주문이었겠지만 유행어의 특성은 그 발생론적 기원을 배반한다는 데 있다. 「동아일보」는 한국인들이 툭하면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다며 통계청의 ‘2005년 사회통계조사결과’를 인용해 그 이중성을 꼬집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에 대한 의식조사에서 조사대상의 89.1%가 “나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반면, “(나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은 장애인들을 차별한다”라고 답한 사람은 74.6%에 이르렀다. 또 조사대상의 64.3%가 자신은 법을 지킨다고 답한 데 비해 다른 사람도 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 중에는 “다른 사람이 지키지 않아서”라는 답이 25.1%로 가장 많았다.


나는 잘하는데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남의 탓”이라는 심리와 통한다. 이를 사회심리학에선 ‘자기본위적 편향’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은 ‘자기본위적 편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한국인은 적어도 지난 1세기 동안 집단주의적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실제적 삶 속에서는 파편화 또는 원자화의 길을 걸어왔다. 각 지방마다 흩어져 있는 입자(粒子)적인 동족부락으로 이루어지고, 서울을 제외하면 각 부락 사이에는 횡적 교류가 전혀 없었던 조선시대의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적 구조도 그런 경향을 강화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건 우리 모두의 성찰이다. 그런데 영 그게 안 된다. 자신에겐 너그럽고 남에겐 엄격하다. 즉 성찰의 문화가 없거나 약하다. 성찰은 먼 훗날 후일담 수준의 회고로만 이루어질 뿐이다. 냉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언어의 인플레이션이 만연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냉소의 벽을 깨기 위해 책임지기 어려운 말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선의에서 비롯된 것일망정 그 결과는 참혹한 것일 수 있다. 냉소의 벽을 더욱 두텁게 만들기 때문이다. 냉소를 오만하게 깨려 들지 말고 겸허하게 껴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빨리빨리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

한국인의 유별난 ‘빨리빨리’ 기질에 대한 증언은 무수히 많다. 그간 한국인의 ‘빨리빨리’ 기질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재평가되었고 이젠 예찬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된 느낌이다.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를 지낸 전하진은 휴대폰ㆍ인터넷ㆍ전자상거래의 성장 속도가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빠른 건 한국인의 급한 성격 또는 ‘냄비근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사장 이기태는 “글로벌 시대의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라며, 삼성휴대폰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어떤 경우에는 100점짜리로 완벽하게 일을 하는 것보다는 80점 수준에서 빨리 끝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며, “요즘처럼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CEO가 오늘 할 결정을 내일로 미뤄서는 승산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월간 CEO」가 CEO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이 경제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고 보느냐는 질문에 ‘실보다 득이 다소 높다’가 42%, 득보다 실이 다소 높다‘가 22%, ’비슷하다‘는 18%로 나타났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빨리빨리’ 덕분에 한국의 인터넷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일본의 한 기자는 “한국에서 3년 살다가 일본 가서 인터넷을 쓰니까 정말 답답해서 나도 ‘빨리빨리’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 털어놓았다. 인터넷만 빠른 게 아니라 인터넷을 쓰는 사람도 빠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네티즌들이 한 웹페이지에 머무르는 시간은 평균 29초로 세계에서 가장 짧았다. 그리고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도 ‘빨리빨리’ 기질의 덕을 보았다는 주장이 있다. 무엇보다도 ‘빨리빨리’는 빠른 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동안 고개를 바짝 쳐든 ‘빨리빨리’ 긍정론을 일격에 날려버린 건 ‘황우석 쇼크’였다. 외신과 국내 기자, 교수는 ‘빨리빨리’ 문화를 황우석 사태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그렇듯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이다.


주강현은 빨리빨리 문화를 ‘집단적 신명’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빨리빨리 문화’는 신명으로 일을 처리하는 한국인들의 부정적 측면이 누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 본원적인 이유 외에 정신없이 바빴던 한국 근현대사가 미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압축 성장의 논리, 역사적 시련 등과 더불어 높은 인구밀도와 높은 서울 집중률이 뭐든지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배겨낼 수 없는 삶의 조건을 형성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교통 문제가 그렇다. 그리고 음식만 해도 된장, 고추장, 김치가 잘 말해주듯 한국은 원래부터 ‘슬로푸드’의 나라다. ‘패스트푸드’는 서양에서 건너왔다. 경제의 변화와 그에 따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패스트’를 부추기는 것이지 타고난 기질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모든 경우에 늘 ‘빨리빨리’를 외치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골프가 그렇다. 그리고 ‘빨리빨리’ 하면 좋으련만 질질 끄는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특히 산업 논리와는 무관한, 정치 같은 공공 영역의 일에 대해 그렇다.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대표적 특성이라곤 하지만, 이것만 강조했다간 한국인의 또 다른 특성인 ‘곪아터질 때까지 기다리기’를 놓치게 된다. 이걸 잘 보여주는 게 사립학교법 파동과 쌀 시장 개방과 관련된 농민 시위 사건이다. 사학 비리로 수많은 사학 분규가 일어났을 때 사학 재단과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이 되었을 때 그간 정부는 무엇을 했으며, 그간 해온 일이 왜 실패로 돌아갔는가? 이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사립학교법 파동과 농민 시위 사건뿐만이 아니다. 폭발을 기다리는 갈등은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는 갈등 해소에 ‘빨리빨리’를 외치는 법은 없다. 한국 사회는 ‘빨리빨리’가 부족하고 ‘곪아 터지기’를 기다리는 게 문제다.


한국인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빨리빨리’ 이뤄지는 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건너 뛰거나 비교적 사소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걸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말이다. 그래서 책임 규명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으며, 눈치 빠른 사람이 출세한다. 눈치는 한국인의 숙명이다. 기회주의는 한국인의 삶의 절대적 조건이다. 그러나 너무 탓하진 말자. 탓하지 않는 게 한국적 박애의 표현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한국형 평등주의의 괴력

“한국 사회가 세계 1위를 키우기 어려운 이유는 최근 황우석 교수와 삼성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황우석 쇼크’가 일어나기 전, 한 재계 관계자가 어느 기자에게 사석에서 무심코 던진 말이라고 한다. 이건 매우 흔한 주장이다. 모든 걸 시기심, 질투로 설명하려는 ‘시기심ㆍ질투’ 결정론이 팽배해 있다고나 할까?


‘시기심ㆍ질투 패러다임’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원천 봉쇄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하고 있다. 여성운동은 남자가 못돼 배가 아픈 여자들이 하는 것이고, 빈민운동은 부자가 못돼 배가 아픈 가난뱅이들이 하는 것이고, 지방분권운동은 서울에 대해 배가 아픈 2류 지방 촌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무슨 문제제기건 ‘시기심ㆍ질투 패러다임’으로 설명하지 못할 게 없다.


그렇다면 우선 많은 논자들이 주장하듯 한국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양호한 편이라는 속설부터 점검해 보자. 분배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수인 지니계수(Genis Coefficient)는 0에서 1까지의 값으로 표현되는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심한 것이다. 유엔개발기구(UNDP)의 인간개발보고서(2004년 판)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지니계수 순위에 있어서 한국은 127개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런 순위는 단지 ‘소득 격차’만 말해줄 뿐이다. 부동산 등과 같은 ’자산 격차‘(부의 격차)가 훨씬 중요하다. 특히 한국처럼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에선 더욱 그렇다. ‘자산 격차’에 대한 통계를 집계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걸 감안하면 한국은 불평등의 정도가 매우 심한 나라로 급전직하한다.


한국조세연구원 현진권 박사는 한국의 ‘토지’ 부문에 대한 지니계수는 0.86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부의 불평등도가 가장 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앙대 교수 신광영도 “한국의 불평등을 논의하는 데 소득 불평등만을 논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면서 한국의 총자산 불평등이 크게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 말 현재 상위 5%가 전체 개인소유 토지의 82.7%, 상위 1%가 51.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정도 되면 한국적 삶이라는 게 코미디 아닌가? 한국인은 평등주의가 강한가? 그러나 지금도 분배를 강조하는 건 색깔 공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늘 ‘밥그릇 싸움’을 개혁으로 포장하는 정치 엘리트에 대한 환멸도 가세해 국민은 사회적ㆍ제도적 차원의 평등주의를 꺼리거나 불신한다. 그래서 한국인의 평등주의는 왜곡된 평등주의다. 정작 집단적으로 힘을 합쳐 이뤄내야 할 평등주의는 외면하고 개인 차원에서 자식교육 잘 시켜 신분상승 꾀해보자는 식의 평등주의인 것이다. 즉 한국인은 동질성과 밀집성으로 인해 강한 평등주의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건 개인 차원에서만 발휘될 뿐 사회정책 차원에서는 좀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고밀집 사회는 이웃과의 비교를 강요하고, 그 비교는 필사적이다. 행복은 비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번스타인은 이를 이웃 효과(neighbors effect)라고 부르면서 인터넷을 비롯한 현대적인 원격 통신이 ‘이웃 효과’의 국지적 본성을 소멸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은 인터넷 이전부터 늘 이웃과 부대끼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나라였고, 게다가 그런 고밀도 덕분에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으로 등극했으니 ‘이웃 효과’로 인한 평등주의는 한국적 삶의 알파요 오메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정책 차원에서의 ‘평등주의’ 오용에 대해 경계하면서 기질로서의 평등주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제까지 수많은 평등주의 시도가 다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평등주의 정서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서가 개인 차원의 형태로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평등주의는 평등주의의 두 얼굴 가운데 하나에 관한 것이었다. 또 다른 얼굴은 평등주의 긍정론이다. 평등적 사고가 6ㆍ25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원동력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 풍토”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게 바로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로 대변되는 한국형 평등주의의 괴력일 게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그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초강력 중앙집권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맥러플린과 데이비드슨의 해설에 따르면 “중앙집중적인 권력구조를 갖지 않은 공동체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와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데 훨씬 많은 에너지가 쓰였고, 의사결정을 위한 모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학습이나 책임감은 길러지지만 외부 사회로 돌릴 수 있는 에너지는 훨씬 적다”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믿음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때때로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를 낳고 사람들에게 엄청난 기대감을 준다며, 그 부작용을 지적했다. 또한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완전히 책임지는 것을 미루게 하고, 철저히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전시키는 것을 회피하게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평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신감 부족을 반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공동체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은 적어도 다른 사람들만큼은 뛰어나야 한다는 은근한 요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평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은 공동체의 수준을 최소한으로 묶어둘 우려가 있다. 가령 한 사람의 성취가 다른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다고 생각하면 진정한 훌륭함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질시로 인하여 좀더 능력 있고 자기실현 의지가 강한 사람들에게 공동체 생활이 힘들어지기도 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외쳐지는 거의 맹목에 가까운 ‘탈권위 예찬론’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 ‘탈권위’의 비용은 생각 않고 이익만 생각하는 건 권위에 짓눌린 과거 역사에 대한 반작용이겠지만, 진정한 개혁은 반작용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6ㆍ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고려시대 30년간의 항몽 전쟁, 조선시대 7년간의 임진왜란, 근대의 3년간의 한국전쟁 중 가장 많은 인명살상을 낳은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6ㆍ25는 끝났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른바 ‘6ㆍ25심성’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6ㆍ25 심성은 전쟁하듯 세상을 살고 있는 한국인의 의식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무엇이다. 적어도 개화기에서부터 군사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생존 경쟁을 강요당했던 한국인의 역사 가운데 가장 치열했고 처참했던 사건이 6ㆍ25 전쟁일 것이기에, 그런 불행한 역사의 결과 한국인의 체질로까지 굳어진 독특한 형태와 의식을 가리켜 ‘6ㆍ25 심성’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6ㆍ25 전쟁은 이 세상에 믿을 건 나와 내 가족밖에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가족주의를 강화시켰다. 국민을 버리고 달아났으면서도 나중엔 ‘부역자’를 처단하기에 바빴던 정부는 기만과 폭력의 주체로 각인되었다. 아직도 공동체 의식이 남아 있다면, 그건 생존 문제가 해결된 이후의 잉여적인 것이었을 뿐 늘 중요한 건 생존 그 자체였다. 당연히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들이 일상적인 처세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6ㆍ25 전쟁이 한국인의 삶의 철학과 처세술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최봉영은 6ㆍ25 전쟁은 한국인의 욕구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는데, 삶과 죽음이라는 위기 상황에 처하여 지금껏 부정되었던 극단적 이기성이 나름대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삶의 방법에서 권모와 술수가 정당화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6ㆍ25 전쟁으로 인한 기존 공동체의 해체가 재앙만 가져온 건 아니었다. 그건 무엇보다도 기존 신분제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계급상승 혹은 사회이동의 기회가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도 갑작스레 찾아온 그러한 기회의 활용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긴 어려웠다.전쟁이 제공한 계급상승 혹은 사회이동의 기회 개방은 도덕 없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낳았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남한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이른바 ‘전쟁의 역설’로 나타났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잇속으로 결속된 파벌을 만들 때에 더욱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파벌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에 ‘중간’이란 입지는 더욱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중간을 선택하는 자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미 전쟁의 와중에서도 적나라하게 입증된 생존을 위한 철칙이기도 했다. 이런 극단주의 문화는 전쟁이 강요한 극한 상황에서의 반복 경험이 낳은 것이기도 했다. 이는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를 창출했다.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는 ‘깡다구 문화’로 이어졌다. 깡다구의 사전적 정의는 “악착스럽게 버티어 나가는 오기”나 “오기로 버티어 밀고 나가는 힘”인데, 이는 모험성이나 저돌성과도 통하는 개념이다. 1979년 서울을 방문한 미국 MIT 교수 홀로몬은 “한국은 내가 방문한 나라 중에서 모험가적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라고 평가했다. “무섭게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결국에는 해내는” 기이한 힘의 주요 원천이 바로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다. 이 문화는 다시 격려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심리를 창출했다. 그런 심리를 수요로 삼아 융성하게 된 기복(祈福) 신앙은 삶의 전투성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또 그렇게 해서 심리적 정당성을 얻게 되는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는 훗날 한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에 기여하게 되었다.


우리의 20세기는 6ㆍ25 이외에도 한 세대 이상이나 지속된 식민통치와 또 한 세대의 기간에 걸친 강압적인 권위주의 통치체제로 얼룩진 시대였다. 도무지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는 세월의 연속이었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선 집단주의적 가치에 충실해야 했겠지만 자신과 가족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스스로 뛰거나 개인적인 연고에 의존하는 수밖엔 없었다. 믿을 건 오직 나와 가족밖에 없다는 신념과 행동양식은 한국인의 강인한 생존력과 개척정신을 키워준 동력으로 작용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절에도 계속되는 그런 삶의 방식이 필요 이상으로 삶을 격렬하고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평소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살되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집단주의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게 뒤바뀐 감이 없지 않다. 삶은 집단주의적으로 살면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개인주의적으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대학입시 전쟁’은 사회적 문제의 개인주의적 해결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습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10대 후반에 치르는 딱 한 번의 경쟁으로 평생의 경쟁력을 결정케 하는 기존 시스템은 그 시점에서 경쟁의 과부하 또는 병목현상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 살인적인 경쟁의 강도를 낮추고 경쟁 기간을 전 생애에 걸쳐 분산시킴으로써 ‘경쟁 및 보상의 합리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실천적 대안은 이른바 ‘대학별 특성화’를 통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명문대를 만드는 것이다.


의식과 문화의 특질은 질기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의식과 문화까지 바뀌는 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6ㆍ25 심성’을 극복하지 않고선 한국인은 필요 이상으로 피곤한 삶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라 전체로 볼 때에 우리의 ‘전시체제 체질’은 이제 더 이상 강점이 아닌 것 같다. ‘니가 죽건 말건 나부터 살기’ 식의 경쟁이 과거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엔 기여했을망정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아직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1950년대의 패러다임을 재고할 때다. 6ㆍ25 전쟁 때 ‘골로 간다’는 말은 죽임을 당하기 위해 산골짜기로 끌려간다는 의미였지만, 전후엔 ‘마음의 골’이 생겼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들만의 골로 갔다. 1950년대를 겪은 한국인들에겐 각자 마음의 깊은 골이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골로 가지 말자. 골에서 벗어나자. 각자 갖고 있을지도 모를 마음의 깊은 골에서도 빠져나와 ‘광장’도 ‘밀실’도 아닌 그 어느 중간의 공간을 만들자.


아버지
생존을 위한 지도자 추종주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사는 들쥐의 일종으로, 종족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 떼 지어 바닷가 절벽으로 밀려가 뛰어내린 뒤 죽을 때까지 헤엄친다는 레밍이라는 유별난 동물이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논란의 소재로까지 떠오른 건 1980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때문이다.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실질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1980년 8월 7일 스스로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는데, 바로 다음날 LA타임스,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위컴은 전두환이 곧 한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들쥐(레밍) 떼처럼 그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후일 한국 사회에선 이 발언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전두환의 뒤에 줄을 서거나 그의 집권을 당연시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위컴의 발언이 나오기 이틀 전, 1980년 8월 6일, 서울롯데호텔에서 열린 기도회에서는 기독교계의 원로지도자들이 전두환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1980년 9월 1일 전두환이 취임하자 언론의 들쥐 떼 근성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경향신문50년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 기획특집기사ㆍ사설ㆍ연재물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두환과 신군부를 미화하고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신군부의 위압에 눌린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권력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신군부에 충성경쟁을 벌였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동질성과 밀집성으로 인해 국가주의가 가족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험난한 역사적 시련으로 인해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회다. 그리고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공포도 있다.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 복종은 생존술의 문제였다. 거기서 더 나아간 사람은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지도자를 추종하는 테크닉을 연마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 박노자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국가주의의 망령의 역사가 이미 개화기 때부터 “국가가 곧 인격체”라는 식으로 국가를 의인화함으로써 사실상 개인을 소외시키기만 하는 근대국가, 그리고 그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를 가부장적 논리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하나의 ‘가장(家長)’, ‘어르신’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가 한 몸이자 한 집, 한 가족이라면 ‘개발’이나 ‘자주성’ 등의 근대적 유토피아들을 위해서 백성들을 무한히 희생시키는 ‘각하’들과 ‘수령님’들을 과거의 문중, 마을의 어른이나 가친(家親)을 섬겼듯이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 논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광훈은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 사람들은 구세주가 지평선으로부터 홀연히 모습을 나타내어 사태를 수습해 주기를 기다리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져든다고 했다. 1997년을 넘어 2000년대에까지 계속되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도 그런 ‘메시아 콤플렉스’와 무관치 않다.


한국인들은 지도자를 추종하는 동시에 지도자가 가진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유별난 ‘지도자 추종주의’ 문화를 갖고 있다. 좁은 땅에서 동질적인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살면서 강력한 중앙권력집중제를 실시해 갖게 된 기질일 것이다. 지도자 추종주의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유능하고 강력한 지도자를 만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국민 각자 자기 몫을 할 생각은 않고 지도자에게 의존하려는 심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를 필요 이상으로 극찬하거나 정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매도하는 양극단의 성향을 드러내 보인다. 이와 같은 지도자 추종주의는 정ㆍ관ㆍ재ㆍ교육계 등 한국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만연해 있다.


지도자 추종주의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드러나 보이게 만든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노무현이다. 노무현의 정적(政敵)들마저도 그의 ‘탈권위주의’ 업적만큼은 인정한다. 그러나 2005년 10ㆍ26 재선거 참패 후 여당 의원들은 여당이 청와대의 꽁무니만 쫓아다니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당정분리를 표방한데다 ‘탈권위의 화신’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인 대통령이 여당을 그토록 좌지우지했었다는 게 말이다. 이는 흔히 ‘알아서 기기’로 표현되는, 권력의 속성에 대한 추종은 아니었을까? 그건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도 정치가 출세의 길이라는 점은 같다는 점에서 비롯된 현상일 게다.


해방정국의 극심한 좌우갈등이나 요인 암살에서부터 오늘날 개혁노선이 ‘인적 청산’이나 ‘인물교체’에 집중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는 의인화(생명이 없는 사물 또는 추상적 관념에 인간적 성질 또는 특성을 부여하는 것)ㆍ개인화(한 개인 주체를 역사나 중요한 사건의 원동력으로 부각시키는 것)가 지배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에서 수입해 온 좌파이념을 수용한 사람들이 사회구조와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들 역시 ‘인적 청산’을 선호하고 이들 내부 문화도 의인화ㆍ개인화의 지배를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선거제도와 인터넷의 유희 코드도 한국에선 의인화ㆍ개인화 문화를 강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과도한 기대와 실망의 사이클이다. 그건 의인화ㆍ개인화 문화에 내재돼 있는 것이기에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대다수 한국인의 가부장적 삶에서 아버지 말고 누가 있겠는가? 아버지는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대표 전사가 아닌가. 아버지를 추종하는 것이 가족된 자의 도리일 게다. 한국의 아버지 문화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버지를 대체하는 ‘형님 문화’는 건재할 뿐만 아니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만큼 다음 기회엔 ‘형님’을 다뤄봐야겠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