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사상사

   
존 배리(역자 : 허남혁 외)
ǻ
이매진
   
15000
2004�� 09��



■ 책 소개
계몽주의부터 최근의 사회 이론까지 역사속의 인물이 "자연과 환경"을 어떻게 보아 왔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인류의 직면 과제인 환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이론을 비판하고,어떠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인지, 로크, 루소 같은 고전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담았다. 또한 "자연 상태"를 고독하고 빈곤하며 불결하고포악하며 부족한 것으로 본 홉스를 비롯해서, 진보적이고 반동적인 사회 이론을 제시했던 맬서스, 다윈, 스펜서, 크로포트킨, 맑스, 존 스튜어트밀,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쿠제와 하버마스, 기든스 등 그 시대의 사상을 선도했던 사람들이 생각한 자연과 환경에 대해서다루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2장에서 4장까지는 역사적 고찰로 유대교-기독교에서현대 사회이론에 걸쳐 사회이론 속에서의 환경의 이용(혹은 오용)에 대해 시간 순으로 논의한다. 5장에서 8장까지는 경제학에서 젠더이론,포스트모더니즘, 위험사회, 그리고 최근 생태학과 생물학의 시각을 사회이론에 통합하려는 시도들을 아우르는 다양한 현대 사회이론을 검토한다.


■ 저자 존 배리(John Barry)
영국글래스고대학 정치학 박사로 킬대학 정치학과 강사를 거쳐 벨파스트퀸스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생태정치(생태여성론, 환경정의,정치경제), 환경사회/정치이론, 과학기술과 환경위험(생명공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저서로 『다시 생각하는 녹색정치 - 자연, 덕목,진보』(1999), 『시민권, 지속가능성, 환경연구』(2000, 함께 씀), 『자유민주주의 지탱시키기』(2001, 함께 엮음), 『환경정치국제백과사전』(2001, 함께 엮음)이 있다.


■ 역자 허남혁·추선영
허남혁은 서울에서 태어나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10년간 자랐다. 잘 모르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산과 들을 벗삼아 다니다가 우연찮게자연과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지역과 환경문제를 공부했다. 졸업 후 (사)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에서 농업과 식품,환경분야에 대해 연구 및 활동을 얼마간 했다. 지금은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대학교 사회교육학부 지리교육전공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교양 환경과사회 강의도 하고 있다. 번역작업에 흥미를 느껴서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굶주리는 세계』『녹색희망』『래디컬 에콜로지』『자연과 지식의약탈자들』). 근대화 이후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연환경이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어 왔는가, 그리고전지구적/지역적으로 어떻게 그러한 문제가 표출되는가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그와 관련하여 농업/식품의 생산과 소비문제에 관심이많다.


추선영은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지만 사실 3대를 인천에서 지낸 인천토박이이다. 교직에 계신아버님 덕에 모범생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사실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 결과인가 사회의 주류라 불리는 엘리트 반열에는 들지 못했다.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8년 인천의제21의 간사로 몸담게 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1999년, 2000년 생명축제 조직위원회에서 일했다. 


■ 차례
머리말 
『녹색사상사』 출간에 부쳐
감사의 말 
들어가는 글 - "환경"과"사회이론" 


1장 "자연","환경", 사회이론 
2장 사회이론사에서 환경이 담당한 역할
3장 사회이론이"자연"과 비인간 세계 개념을 이용한 방식(계몽주의 이전과 계몽주의 시대) 
4장 20세기 사회이론과 비인간 세계
5장 젠더, 비인간 세계, 사회사상 
6장 환경과 경제사상 
7장 위험, 환경, 포스트모더니즘 
8장 생태학, 생물학,사회이론 
9장 사회이론의 녹색화 


덧붙이는 글 - 맑스주의와 생태학 
용어설명 
참고문헌 
옮기고나서





녹색사상사


1장 자연, 환경, 사회이론
사회이론이란 무엇인가

사회이론은 사회변화와 변형의 과정을 포함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체계적 연구로서, 이론적 가설, 설명, 정당화와 처방의 정식화를 담고 있다. 사회이론은 보통 기술적 차원과 처방적 차원 두 가지가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사회이론은 사회를 기술하고, 사회 속의 사회 현상, 사건, 문제와 변화들에 대한 특수한 설명을 개진한다. 사회이론의 처방적 차원은 사회이론이 사회가 존재하는 방식뿐 아니라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 주는 방식을 뜻한다. 여기서 사회이론은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특정한 규범적, 가치 지향적 판단과 정당화, 원칙들을 개진한다.


이때 사회 이론의 처방적 측면은 대체로 두 가지 형식을 취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현존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주류 또는 보수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몇몇 사회이론은 현존 사회질서가 근거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제도를 가지고 다른 원칙을 따라 변혁되고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적 사회이론의 고전적인 사례는 현존 ‘서구’ 혹은 ‘선진’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적 사회조직을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공산주의’또는 ‘사회주의적’ 사회조직 양식을 제시하는 맑스주의이다.


자연이나 환경에 대한 사회이론화에 있어서, 비판적 접근 및 주류적 접근과 나란히 다른 두 가지 접근법을 따를 수 있다. 이것을 ‘자연주의적’ 접근과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으로 부를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자연주의적 사회이론화는, 일반적으로 환경을 사회의 외부에 있는 것이며 사회 바깥에 독립적인 ‘자연적 질서’로 존재하는 시각을 갖는다. 반면 사회구성주의적 접근법은 ‘환경’과 ‘자연’을 사회의 구성물로 바라보면서, 사회 내에서의 내재적 관계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환경, 자연, 비인간
사회이론에서의 환경의 위치나 역할을 탐색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환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이때 환경이 상관적인 개념이자 생각임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이론 속의 환경은 대체로 우리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특히 인간의 사회적 관계, 그리고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서구사람들이 말하는 환경은 보통, 전원, 숲, 동물, 강 등 물리적인 비인간 환경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이러한 것들 뿐 아니라 조상들의 정신과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포함시킨 의미로 환경을 말할 수 있다.


종종 환경을 비인간 자연세계라는 의미에서 ‘자연’과 등치시키는 것이 잘못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연’은 비인간 세계만을 지칭하지 않으면,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주목했듯이, ‘언어 중에서 가장 복잡한 단어’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 ‘인간 본성’과 비인간 자연을 모두 지칭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사회이론에 나타난 인간의 네 가지 환경은 야생, 전원/정원, 도시환경, 지구환경이다. ‘야생’이란 문명화된, 또는 문화화된 시각에서 본 자연환경이다. 야생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은 낭만적, 또는 녹색적 시각이다. 여기에서 자연환경이 점점 더 개발되고 파괴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도 야생은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


전원/정원은 ‘야생’ 및 야생적인 자연과는 반대로, ‘길들여지고’ 인간화된 정원’을 의미한다. 여기서 환경은 인간의 필요와 목적에 맞도록 변형된 자연이다. 도시환경은 야생이나 시골의 전원에 반대되는 것으로,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이 만든 공간, 건물, 개발 및 구조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지구환경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환경위기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지구환경이라는 개념이 취약성, 위협과 위험이라는 배경 속에서 출현했다는 데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이론이 세계화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킴에 있어 지구환경이라는 생각은 ‘전지구적 경제’, ‘전지구적 켜뮤니케이션’, ‘지구촌’과 함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리딩오프’ 가설
사회이론에서 환경이 이용되어 온 가장 오래되고 지배적인 방식은 아마도 우리가 리딩오프 가설이라 부르는 이론일 것이다(Barry, 1994). 명칭이 말해주듯 이 가설은 우리가 인간 사회에 대하여 알고자 할 때 자연세계와 동물 행동을 철저히 검토함으로써 중요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리딩오프 가설은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동물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비인간 세계를 연구하여 끌어낼 수 있는 지식을 인간 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더 잘 기술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환경에 대한 자연주의적 사회이론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리딩오프 가설은 이러한 ‘기술적인’주장과 더불어 비인간 세계에 대한 연구가 처방적인 힘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2장 사회이론사에서 환경이 담당한 역할
환경에 대한 비서구적 시각

서구 세계에서도 그랬듯 역사적으로 환경에 대한 대부분의 비서구적 사회이론화는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문화의 형태를 취했다. 불교는 특히 자연환경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으며 힌두교에는 가축을 다루는 그들만의 고유한 방법이 있다. 이슬람교는 쿠란 속에 환경에 대한 적절한 사고 및 관계방식에 대한 자신만의 특별한 규칙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아시아의 원주민들 역시 환경을 생각하고 다루는 그들만의 전통적인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원주민 전통문화는 덜 인간중심주의적이며 인간과 비인간 세계의 분리보다는 연속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유대-기독교의 유산
유대교 전통에서는 자연환경을 보통 야생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인간사회가 여기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환경에 대한 유대-기독교적 태도는 야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종종 적대적이기까지 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인간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농업, 낙농과 같은 강도 높은 인간의 노동과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깊이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계몽주의, 환경, 사회이론
‘계몽주의’는 종종 18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인간사상과 행동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 발생한 일련의 급진적인 변화로 이해된다. 사회이론과 환경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추적하고 이해하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계몽주의이다. 많은 환경문제가 계몽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녹색’ 비판과 산업주의에 대한 대안의 몇몇 근원 역시 계몽주의에 대한 다양한 반발 속에 자리잡고 있다.


산업혁명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대략 16세기와 19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유럽지역의 경제 생활 속에서 개념, 이론 및 사상적 측면, 그리고 실질적 활동이라는 양 측면 모두 - 근대 산업사회의 등장과 발전의 기초를 이루는 - 에서 발생한 다양한 변화들을 뜻한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특히 자연환경에 대한 도구적 태도에 있다. 환경은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의 집합체이자 공장, 기계, 새로 발명되는 생산기술을 위한 원료의 집합체로 인식되었다.


민주주의 혁명
민주주의 혁명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사이에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일어난 정치적 격변을 의미한다. 여기서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은 미국혁명(1775)과 프랑스혁명(1789)이다. 산업혁명처럼 그 목적이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 혁명 역시 자연환경과 그 이용에 대해 특히 도구주의적인 태도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예로 민주주의 지지자와 이론가 대다수는 이 새로운 형태의 정부에 물질적 부가 필요함을 주장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산업혁명은 민주주의 정치의 개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둘째, 민주적인 권리는 만인에게로 확장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 혁명은 재산 소유의 민주주의이다. 재산을 소유한 사람만이 투표권을 가지며, 이는 토지에 대한 서적 소유사상을 합법화시키기에 이른다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즉 투표권의 확장은 토지의 사적 소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환경을 원료뿐만 아니라 사적으로 양도 가능한 재산으로 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3장 사회이론이 ‘자연’과 비인간 세계개념을 이용한 방식
19세기, 20세기의 사회이론에서 ‘자연스러움’의 원리와 사회관계에 대한 견해에 대한 견해에 호소하는 것은 종종 이러한 관계가 ‘주어진 것’, 즉 인간의 의지로 변형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연상태’는 계몽주의 이전의 사회이론이 환경에 대해 가졌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며, 홉스와 로크 같은 사상가들은 자연상태를 문명화된 사회보다 저열한 것으로 인식했다.


반면, 루소는 환경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견해에 반대했다. 그의 이론에서 자연상태는 ‘고상한 야만’이었으며 문명화의 인공성을 비판했다. 루소는 근대세계의 ‘인공화’에 의문을 가지고 더 단순하고 ‘자연적인’ 사회질서로 회귀하려고 갈망하기 시작한 사회이론가이다. 이는 당대의 지배적인 견해, 홉스의 유명한 말인 ‘자연상태’의 삶은 ‘불결하고 포악하며 모자라다’는 견해와 상반되는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에서 인간 본성은 본래 경쟁적인 것으로 과학으로 비춰지는 자연은 생존 투쟁으로 보였다(고전적 자유주의).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연을 진화와 진보만큼이나 협력과 상호부조가 중요시되는 조화로운 관계망이라고 생각한다(아나키즘). 자유주의, 사회주의 같은 19세기의 지배적인 사회이론들 사이에서 ‘사회진보’에 대한 공통된 견해를 포착할 수 있다. 진보와 ‘발전’은 산업사회 이전에서 복합적이고 더 진보된 단계인 산업적 사회경제 질서로 나아가는 단선적인 역사적 궤도로 이해되었다. 인류 역사 발전에 대한 이러한 단선적 견해는 무지, 빈곤, 비천함, 퇴보에서부터 앞으로 혹은 위로 향한 진보이다. 맑스주의 사회이론은 산업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의 역사적 발전 단계 중 하나인 산업사회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자연을 인류에게 ‘복속시키는 것’ 혹은 자본주의에서 인간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며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밀과 그의 ‘발전적’ 자유주의는 ‘고전적’ 혹은 자유주의적 자유주의와 구별된다. 밀의 견해는 ‘정체상태’, 비선장의 ‘부동의 경제’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녹색 사회정치이론이 가진 많은 관심과 목적들을 예견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는 비록 산업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비판하긴 했지만 산업주의적 진보를 비판하진 않았으며, 산업주의가 비인간 세계를 ‘지배하고’ 착취하며 인간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파악하고 이용하는 방식도 비판하지 않았다. 19세기의 또 다른 지배적인 사회이론인 자유주의가 일반적으로 사회와 자연, 물질적 진보 추구 사이의 관계는 사회주의 동의하고 있었지만, 존 스튜어트 밀의 경우 산업적 발전에 대해 공유된 지배적 견해에도 반대했다. 도덕적 관심을 동물에게까지 확장할 것을 옹호한 것, 그리고 ‘정체상태’를 바랐던 것 같은 견해로 밀은 초기 녹색 사회이론가로 규정되었다.



4장 20세기 사회이론과 비인간 세계
환경과 관련된 20세기 사회이론의 중심 테마는 자연환경에 대한 사회의 기술적 지배의 결과로 발생하는 비용(환경적인 것뿐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인 것까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자연환경이 도시환경과 같은 ‘인간화된 환경’으로 변화되는 방식들도 살펴보고 있다. 동시에 ‘전원’과 같은 ‘자연’ 환경이 현재와 과거 인간의 집단적 변환의 결과로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탐색한다. 따라서 20세기 사회이론에 있어 ‘환경’은 ‘자연’ 환경에 한정되지 않으며, ‘자연’도 ‘비인간 자연’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프로이트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이르는 사상가들의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 본성’을 말하지 않고서는 비인간 자연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사회이론은 근대성과 계몽의 지위, 가치, 방향에 대해서도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근대적 진보의 대가, 즉 ‘자연의 탈마법화’와 자연환경에 대한 배타적, 도구적 문화, 경제적 가치평가로 점차 하버마스가‘미완의 근대성 프로젝트’라고 부른 것에 대한 논의를 재검토할 필요가 늘고 있다. 따라서 환경, 환경-인간관계, 그 의미와 지위에 대한 논의는 근대성과 계몽의 유산에 관한 논쟁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들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은 자연환경에 대한 도구적 평가와 관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녹색정치와 환경보호 및 보전에 관심이 커지는 것은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앤서니 기든스의 저작은 환경적 관심의 증대를 설명하는 핵심으로 도시적 근대성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전통, 그리고 집합적이고 개인적인 특수한 형태의 정체성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화의 결과 발생한 근대적인 위험들이 자연환경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이론가들, 특히 하버마스와 기든스의 이론은 인간 사회와 비인간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서광을 비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환경에 대해 의식하는 사회이론에서 ‘야생’과 자연적 과정 - 전지구적 물순환, 질소순환, 오존생산 - 의 적당한 자리가 어디인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하버마스와 기든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특징짓는 것은 이들이 모두 환경문제의 구조적, 제도적 원인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골드블라트가 주장하듯이 기든스는 산업주의나 자본주의를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얼마간의 어긋남과 모호함을 보여주기는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하버마스는 생태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근대(그리고 근대화하는) 사회의 성격을 가져오는 궁극적인 원천으로, 세계화되는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경제적, 정치적 구조를 지목하는 데 있어 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5장 젠더, 비인간 세계, 사회사상
여성주의 사회이론은 사회-환경문제에 연구에 있어 젠더-환경 관계에 관한 탐구에 주요한 기여를 해왔다. 환경에 대한 사회이론은 ‘젠더에서 자유로운’영역이 아니다. 서구문화는 특정가치, 원칙, 특성, 활동이 ‘남성적’아니면 ‘여성적’이며, 남성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과 분리되어 동시에 그보다 우월하다고 간주하는 젠더화된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다.


본질주의적 또는 영성적 생태여성주의는 ‘자연적으로’여성이 남성보다 자연에 다 가까우며, 만일 생태문제의 원인이 남성과 남성적 문화에 있다면 그 해결책은 여성중심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에 기초하고 있다. 생태여성주의적 영성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① 서구문화 내의 이분법적 대립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여성적 속성, 개념, 사고 및 행동방식이 생태적으로 민감하고 생명긍정적 문화의 토대를 형성한다.
② 자연 세계에 대한 행위와 실질적 경험이 그에 대한 추상적 이론화보다 우선시된다.
③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자연을 대표해야 한다.
④ 개인의 (내적)변화가 정치적, 사회적 (외적)변화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본질주의적 생태여성주의는 (주어진)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사회적 성을 혼동하고 있으며, ‘여성주의적’이라기보다는 ‘여성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본질주의적 생태여성주의 교의에 반대하는 ‘유물론적 생태여성주의’라 불리는 분파의 주요 사회이론가인 메리 멜러는 “문화적, 영성적 여성주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생태여성주의는 인간 존재의 내재성(체화성과 배타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유물론적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생태여성주의적 영성의 본질주의가 영성과 자연의 연결을 생물학적 성에 두고 있는 반면, 유물론적 생태여성주의는 이를 사회적 성에 두고 있다. 영성과 자연 모두 가부장제와 산업자본주의의 손아귀에서 고통 받고 있다. 즉 유물론적 생태여성주의는 인간의 필요 충족에 있어서 낮게 평가되어 온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조명하면서, 남성주류적 사회, 정치, 특히 경제이론과 현실에서 여성의 취약성과 여성 노동이 무시당해 온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이밖에 생태여성주의 정치경제학은 ‘남성주류적’, 즉 정통 경제이론 - 특히 핵심 경제학 용어들 - 의 급진적 재개념화를 요구한다. 현실에서는 경제의 급진적 재편을 요구한다. 저항적 생태여성주의는 공동의 정치적 목적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여성주의 운동과 생태운동을 연결시켜 준다. 즉,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수호하고, 빈곤과 환경파괴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 등이다. 저항적 생태여성주의 또한 특정 환경 사안들(인구, 건강 관련, 아이관련, 빈곤과 환경파괴와의 관련)에 대해 남성보다는 주로 여성이 실제적인 지지를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좀더 젠더화된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에 기초하고 있다.



6장 환경과 경제사상
사회과학 분야에서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에서 기원하여, 자연환경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다루는 서구사회의 방식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사회이론의 한 형태인 경제학은 사회-자연환경 관계를 생각하고 분석하는 방식에 있어 광범위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정치경제학 및 그와 관련된 경제적 세계관은 봉건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 시장사회로의 이행을 구성해 온 다양한 변화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근대세계에서 정치경제학의 적자인 정통 ‘경제학’, 즉 실증주의적 ‘경제과학’은 일반적으로는 공공정책, 특수하게는 환경정책 결정에 있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동시에 자연환경에 대한 ‘경제학적 시각’은 상식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환경에 대해 경제적인 관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즉 자연환경은 인간에게 도구적인 가치만을 갖고 있으며, 도구적 가치는 경제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자연환경에 대한 이런 경제적 가치화는 인간 경제에 대한 ‘자원’ 즉 투입물로서의 기능이라는 측면이다.


따라서 경제학은 자연, 그리고 자연-인간관계에 대한 인간중심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회이론과 실천의 주된 형태이다. 그 중요성은 경제학의 연구 영역 - 즉 인간 경제 - 이 자연환경과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상호작용과 관계를 갖고 있는 인간사회의 일부라는 데 있다. 경제는 바로 자연과 사회가 만나는 자리다.



7장 위험, 환경, 포스트모더니즘
이 장에서는 환경, 그리고 환경-사회 관계를 분석하고 있거나 분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최근의 사회이론 두 가지를 검토해 본다. 하나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테제이며, 다른 하나는 포스트모던 사회이론과 환경의 관계이다. 이 둘 모두는 근대성과 그 유산이 갖고 있는 문제와 잠재력을 - 때로는 매우 상반된 방식으로 -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테제의 주장은, 서구 사회가 ‘재화’보다는 사회적, 생태적으로 ‘나쁜 것(비재화)’을 해석하고 분배하는 일에 관련된 정치가 출현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사회’를 특징짓는 정치는 부, 소득, 공식적 고용과 같은 ‘재화’의 생산과 분배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즉 벡의 ‘위험사회’ 테제는 근대성에 대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근대성에 대한 ‘내재적 비판과 재구성’을 대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위험사회’는 하나의 시도 - 벡 자신의 용어로는 ‘새로운 근대성’ - 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벡은 근대성을, 특히 잠재적으로 파국적인 환경 위험이 등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비판하면서도, 근대성 스스로가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던 사회이론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벡의 사회이론과는 달리, 스스로를 ‘근대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본다. 단일하거나 동질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이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반면(포스트모던 사회이론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띤다). 서로 다른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들은 ‘근대성’을 비판적이고 급진적으로 평가한다는 측면을 공유한다. ‘근대적’ 지식형태(자연과학에서 사회사상까지) 및 근대의 정치, 사회, 문화제도(민족국가, 자유민주주의, 핵가족 등)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근대적’ 대안(특히 맑스주의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은 (환경문제를 비롯한) 근대성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은 근대성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다고 하면서, 탈근대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벡의 ‘위험사회’ 테제와 포스트모더니즘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둘 다 계몽, 즉 근대성을 중심으로 지향하고 있으며, 사회가 비인간 환경을 바라보고 평가하며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에 있어 근대성과 근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8장 생태학, 생물학, 사회이론
사회생물학 이론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 실천, 제도를 유전학, 진화이론과 생물학에 근거하여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이기심, 경쟁, 개인주의가 ‘주어진’ (즉 변하지 않는) 인간성의 모습인 특수한 ‘인간 본성’ 개념을 갖고 있다. 비판가들은, 사회생물학이 우익과 보수주의적인 정치적 입장과 긴밀한 역사적, 현재적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 이는 특히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함’을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생물학적 시도에 있어서 그러하다.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 가설은 비인간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심에는 유전학적이고 진화론적인 토대가 있으며, 그에 따라 생물 다양성 보전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고 주장한다.


‘인간 본성’ 개념은 사회이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며, 사회가 어떠하며 또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주장에 있어서 공통적인 준거점이 된다. 그에 대하여 인정되는 단일한 설명이 없다는 것은, ‘인간 본성’ 개념이 갖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며, 그래서 인간 본성에 대한 시각에 의해 정치적 스펙트럼 속에서 어떤 사회이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지적할 수 있다. ‘진보적’ 사회이론은 보통 인간 본성에 대해 긍정적인 설명을 하며, 행동을 설명할 때 양육이나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보수주의적’ 주장은 보통 변화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근거하고 있다.


생물학, 생태학, 사회이론을 통합하는 보다 비결정론적이고 비환원주의적인 방법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분리되어 있으며,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체화되어 있는 동시에 생태적으로 배태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현상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자연과학이 갖는 적실성을, 자연과학이 완전히 설명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회적 행동을 자연과학의 설명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9장 사회이론의 녹색화
녹색이론의 핵심 원칙은 인간과 환경의 분리를 폐기하는 것, 생물학적 체화성과 생태적 배태성을 강조하는 것, 사회-환경 관계를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는 것, 그리고 사회-환경 관계가 도덕적인 문제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녹색이론과 실천은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극복함과 동시에 인간을 자연보다 우월하다거나 위에 있다고 보는 잘못된 인식을 극복하는데 주된 관심을 갖고 있다.


녹색 사회이론 - ‘발전’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그리고 이를 넘어서
근대 사회이론은 발전과정을 연구 목적으로 삼으면서, 발전이 무엇으로 구성되어있고, 어떻게 일어나며, 누가 발전의 주된 행위자이며 무엇이 주된 측면들인가, 그리고 언제 어디서 발생하며 또 발생했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정치 및 경제이론과 실천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관심 증대로 인해 사회이론은 자신의 변수들을 확장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의제의 핵심적 측면들을 포함시키도록 하는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은 환경과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을 현재와 미래 인간세대들에 대한 의무와 통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이론의 녹색화에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


-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을 통합하는 것
- 민족국가를 넘어서서 사회이론을 확장시키고 세계화에 초점을 두는 것
- 사회이론을 종의 경계를 넘어서 확장시키는 것(사회이론은 인간에 기반하지만 반드시 인간중심적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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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론의 녹색화와 환경에 대한 사회이론화는 ‘인간의 조건’의 역설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인간은 자연환경의 일부이자 또한 따로 떨어져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