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 사이언스

   
이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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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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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8��



■ 책 소개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 속도가 사람들의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과학기술은 꿈으로 여겨지던 세월을 10년, 20년, 30년 후 실현해내곤 했다. 21세기,이제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기대는 생명의 새질서(생명공학기술), 극한의 물질세계(나노기술), 생활 깊숙히 침투하는 컴퓨터 세상(정보기술)을 향해나아가고 있다.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이 세 단어가 21세기 한국에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과학을 위한 물음표" 몇 개를 던지고, 바로이 세 키워드에 각각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필자가 던지는 옐로 카드 몇 장이 우리사회의 과학 기술 연구개발 지원과 안전한 활용을 위한 엄밀한잣대를 마련하는 초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저자 이은용 
1995년부터 「전자신문」에서전자부품, 영상정보, 가전, 정보통신기기,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을 취재해왔다. 2004년 4월 1일부터 같은 신문 경제과학부에서 과학기술팀을맡아 과학기술부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1부. 옐로 카드 Ⅰ ― 황우석 신드롬 
1강원래와 황우석 
2 돼지, 꿈의 돼지 
3 참살이(웰빙)와 지엠오(GMO) 
4 생명공학 가상보고서 2025


2부. 옐로 카드 Ⅱ ― 나노 맹신(盲信)
5 나노기술, 21세기 연금술 
6 나노 플러스 알파 
7 나노의 역습 2030


3부. 옐로 카드 Ⅲ ― 편재(遍在)하는 감시자
8 칩이 여는 유비쿼터스 세상 
9 디비(DB) 권력의 등장 
10 에베레스트 2020 


참고문헌





옐로 사이언스


1부. 옐로 카드 I - 황우석 신드롬


1. 강원래와 황우석

2001년 11월 9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른 두 살의 건장한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수교차로에서 제일생명 네거리 쪽으로 달려갔다. 갑자기 그의 앞에 불법 유턴하던 승용차가 나타났다. 그의 오토바이가 승용차의 오른쪽을 들이받았다.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리와 어깨에 골절상을 입었고 뇌출혈이 있었다. 중태였다. 그가 깨어났다. 하지만 척추신경을 다친 까닭에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은 강원래. 대중가요 그룹 "클론"의 멤버로 활동하며 "쿵따리 샤바라"라는 노래로 널리 친숙해진 젊은이, 바로 그였다.


강원래 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2001년 11월, 그의 주치의가 제시한 ‘다시 걸을 수 있는 확률’은 0퍼센트였다. 그런데 3년여가 지난 2004년 1월, 주치의는 “0.1퍼센트는 될 것 같다”며 확률을 아주 조금 높였다. 황우석 교수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의 유전자를 복제한 배아를 만들고, 그 배아로부터 여러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세계 처음으로 배양하는 데 성공해서이다. 난치, 불치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새 가능성이 열렸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줄기세포는 구체적 장기로 바뀌기 전 분화를 멈춘 배아 단계의 세포다. 수정란이 처음 분열할 때 ‘만능 줄기세포’가 만들어지는데, 계속 분열하면 ‘배아 줄기세포’가 형성된다. 다양한 세포와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배아 자체도 하나의 생명으로 발달해간다는 점에서 생명윤리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 생명의 싹(배아)을 잘라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분열이 상당히 진행된 ‘성체 줄기세포’는 배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윤리 논쟁을 피해갈 수 있지만, 기능과 특성이 정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추출이 어렵고, 배양하기가 까다롭다.


과학자들은 최대한 생명복제 윤리 문제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인간복제에 대한 뚜렷한 윤리적 기준을 가진 황우석 교수는 ‘복제 인간’은 불가능하며, 복제인간 만들기까지 연구를 진척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활용해 세계의 눈과 귀를 끌고 싶어 할 과학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인간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가 온다면…. 가치관, 철학, 윤리 기준이 송두리째 바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복제한 새 생명체를 별개의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와 함께 잘, 아주 잘 살아갈 수 있겠는가.


2. 돼지, 꿈의 돼지
돼지가 인간을 위해 몸 안에서 균(菌)을 없앴다. 정확하게는 과학자들이 무균 돼지를 만들었다. 돼지 몸 안에서 장기를 생산해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해서다.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려면 완전 무균 상태로 10년 이상 세대를 이어온 돼지가 필요하다. 보통 돼지에게 존재하는 미생물, 세균 등이 인간에게 옮겨져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내는 불행을 막아야 하기 때문. 꼭 돼지여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고, 사람들과 오랫동안 같이 살아 사람에게 해가 되는 감염원이 적기 때문. 서울대 연구팀은 돼지에서 돼지로, 돼지에서 개에게로 장기를 이식하는 수술을 반복하고 있다. 돼지 장기를 다른 종(種), 특히 인간에게 이식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점검하기 위한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면역 거부반응은 사람을 비롯한 생물체의 생존을 결정짓는 기본 질서다.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연구진과 의료진도 “(돼지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려면) 면역반응이 복잡해 10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이 늘 ‘면역거부반응 극복에 대한 조심스럽고 겸허한 연구진의 자세’보다는 ‘10년쯤 후 이종장기이식에 성공하면 연간 약 600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데로 기운다는 점이다. 더욱 조심스런 예상과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10년이나 20년쯤 후 돼지 장기를 사람 몸에 안전하게 이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치자. 돼지 장기를 갖게 된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가늠키 어려운 문제다. 사람과 돼지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과학자들이 면역거부반응을 막아냈다손 치더라도 영겁(永劫)의 세월 동안 서로 다른 형태로 진화해온 사람과 돼지를 완벽하게 섞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 영겁의 차이와 생리현상을 극복하는 것, 과학자들이 너무 벅찬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3. 참살이(웰빙)와 지엠오(GMO)
2004년, 참살이(웰빙, Well-being)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자연스럽게 대중의 소비코드도 참살이로 바뀌었다. 그런데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꿔 ‘잘 살아보자’는 참살이족의 식탁 위에 감히 유전자 조작 생물체(GMO :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을 올려놓겠다고?


지엠오(GMO)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외래 유전자를 집어넣은 식물, 동물, 미생물을 일컫는다. 유전자 조작은 언제나 ‘인간에게 유용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런 종, 저런 종을 마구 섞어보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예상치 못한, 과학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돌연변이들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엠오의 경제적 가치는 이 같은 걱정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세계 인구는 2050년 92억 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죽어간다. 이런 현실을 해결할 최선의 열쇠가 지엠오라는 논리다. 그러나 지엠오가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에서 이상한 단백질을 발견하고 ‘프리온(Prion)이라고 이름지었다. 2001년 12월 황우석 교수팀은 프리온에 주목했다. 정상 소의 세포에 새로운 종류의 프리온 유전자를 넣었다. 이 유전자가 작동해 만들어진 ’제3의 프리온‘은 병원성 프리온과 반응해 ’분해‘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 그러나 프리온이 정말 광우병의 원인일까? 프리온에 관한 연구는 아직 ’해답보다 질문‘이 더 많다. 둘째, 상품성이 있나? 광우병 내성 검증을 마쳤다 해도 높고 높은 ’검역(檢疫)의 벽‘이 가로놓여 있다. 국제사회, 특히 선진국들의 검역체계는 지엠오에 매우 조심스럽다. 광우병 내성 소가 상품화돼 시장 판매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더 걸리려나. 과연 사람들은 그 고기를 사먹을까.


4. 생명공학 가상보고서 2025
* 2025년, 세계 인구가 79억 명으로 늘어났다. 과학기술자들은 2005년 무렵부터 20년 뒤 인류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했다. 2010년, 결국 한국 과학자들은 광우병 내성 소를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광우병 내성 소에 대한 몇몇 선진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광우병 내성 소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다양한 실험결과들이 발표됐지만, 소비자들은 늘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았음(Non-GM)표시를 확인한다. 가진 자는 안전한 고기를, 가난한 자는 광우병 내성 소를 먹는 상황이 나타났다. 또한 기존의 광우병 증세와는 다른 변종이 생겨났으며, 광우병 내성 소가 자연생식 능력이 없어서 대량 생산체제를 확립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 2010년부터 무균 미니돼지는 손상된 췌도를 가진 환자들에게 새 삶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처음으로 돼지 심장을 이식 받은 환자는 가슴에는 자신의 심장, 배에는 돼지로부터 이식 받은 심장을 품고 있어야 했다. 주동력은 환자의 심장이며, 돼지의 심장을 보조동력으로 활용하는 정도였다. 따라서 환자는 자신의 심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약, 돼지 심장 면역거부반응 억제제, 돼지 심장 성장 억제제를 함께 먹어야 했다. 하지만 성장억제제 효력이 예상보다 신통치 않아 첫 이식수술 후 2년 만에 다시 새로운 심장으로 바꿔야 했다. 돼지 심장 때문에 가벼운 산책조차 힘들었고, 대장과 위가 눌려 늘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다.


* 2020년 1월, 세계가 경악했다. 한 과학자가 돈의 유혹과 과학적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10년 전부터 시도한 인간복제의 결과가 드러났다. 재벌 O씨는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과학자 ㅂ씨는 명예욕에 불탔고, 황?문교수의 연구 결과는 불손한 의도를 가진 과학자에게 인간복제 실현을 위한 가속페달이 됐다. 결국 복제 아기는 2020년 1월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한쪽에선 절망과 탄식이, 다른 쪽에선 희망과 희열이 분출했다. 갑작스러운 가치관의 붕괴에 절망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 사이비 교주는 인간 복제를 교묘하게 종교로 포장해 엄청난 돈을 끌어 모아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재벌 O씨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유언을 통해 자신의 그릇된 선택과 욕심을 후회했다.



2부. 옐로 카드 Ⅱ - 나노 맹신(盲信)


5. 나노기술, 21세기 연금술
‘은나노’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삼성의 하우젠 은나노 세탁기가 삶지 않은 물로 살균을 하고 한 달 간 항균을 해주는 새로운 기술’이라며 작동원리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2004년 말 은나노 효과에 대한 물음표 하나가 던져졌다. 은이 가진 살균, 항균력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 의해 체험적으로 입증된 것이지만 물에 녹거나 나노입자 상태에서도 균을 죽일 수 있을지가 논란거리다. 2005년 1월 한국화학연구원의 제갈종건 박사는 “아직 과학적으로 은나노 입자의 살균력이 입증된 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육면체 하나를 둘로 잘랐을 때, 부피는 그대로지만 표면적은 2배로 늘어난다. 물론 부스러기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다. 따라서 많이 쪼개면 쪼갤수록 표면적이 늘어나 그만큼 적은 양으로 높은 항균 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은나노 열풍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만져지는 상태인 분말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쪼개진 나노 세계는 서로 다르다. 아직 그 기능적 경계선조차 명확하지 않다. 또 은나노로 옷의 세균을 초토화시키는 것보다 적절한(?) 양의 세균이 인체에 저항력을 더 높일 수 있다.


1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미터. 머리카락을 8만~10만분의 1로 쪼갠 것과 비슷하다. 과학자들은 나노기술을 이용해 원자, 분자들을 쪼개거나 적절히 결합하는 방식으로 기존 물질을 변형하거나 개조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소수성(疏水性)이 있는 나노 소재를 만들어 고층 건물 유리창에 덮어씌우려 한다. 그러면 연꽃잎처럼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2003년 11월 섬유업체 새한과 미국의 벌링톤은 공동으로 나노가공기술을 이용해 물과 기름이 원단에 스며들지 않고, 땀을 빨리 흡수해 뽀송뽀송하게 해주는 옷감을 만들어냈다. 또한 탄소나노튜브와 폴리머 복합체를 이용, 세계에서 가장 질긴 섬유를 개발했다. 이 섬유를 이용해 인조근육, 초강도 방탄조끼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됐다.


2004~2005년 불과 1년여만에 괄목할 나노기술 연구성과들이 봇물을 이뤘다. 연구 성과들이 쏟아지면서 나노기술의 경제적 가치도 가늠키 어려워지고 있다. 중세 유럽, 인위적으로 금을 만들어보겠다는 노력은 수많은 과학적 성과를 낳았고, 기술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가 있었다는 점, 그 실패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6.나노 플러스 알파
나노기술이 21세기 공학계의 새로운 토대로 자리매김 하면서 초미세기계기술,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수, 광학부품제조기술 등을 한 꾸러미로 묶는 멤스(MEMS :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의 발전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나노기술이 그 자체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이 다루는 거의 모든 기술 분야의 새로운 기반으로 등장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생물학적 물질이 스스로 특정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자기조립현상을 응용한 새로운 나노 공정 기술을 확립하는 등의 형태로 제반 기술들과 상호보완적인 발전관계를 형성할 전망이다.


나노기술에 힘입어 1994년 등장한 디엔에이 칩은 과학자들의 보폭을 크게 넓혀놓았다. 디엔에이 칩은 주로 유전자 검색과 연구에 쓰이고 있다. 디엔에이 칩은 유리,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기판 위에 특정 연구 목적에 맞는 수많은 디엔에이를 고착시켜 놓은 것. 수천, 수만 개 유전자를 한꺼번에 연구할 수 있다. 생화학반응을 구동력으로 삼기 때문에 전원이 필요 없고 발열현상도 거의 없다. 인체에 필요한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약물전달시스템(DDS : Drug Delivery System)도 나노기술을 발판으로 삼았다. 또한 과학자들은 디엔에이를 비롯한 생화학 가전을 이용한 다양한 차세대 컴퓨터를 만들어갈 태세다. 이들은 단백질을 스위치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지배하려는 로봇’이 등장한다면….


7. 나노의 역습 2030
* 나노 기계들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2030년 1월 1일 아침, ㄱ씨는 질식사했다. 폐암을 치료하기 위해 투입됐던 나노 캡슐이 폐 깊숙이 암조직에 도달하지 못했고, 비슷한 화학적 구조를 가졌기에 서로 뭉쳤다. 찌꺼기가 불어나면서 주변 정상 세포가 손상되기 시작했다. 세포가 손상되면서 조직에도 문제가 생겼고, 폐 운동능력이 빠르게 위축됐다. 결국 그는 호흡을 이어가지 못했다.


* 2030년 2월 1일, ㄴ씨는 점심 식사 도중 갑자기 심한 구토증세를 보였다. 왼쪽 손목 피부 아래 이식한 바이오칩을 휴대폰 창에 갔다댔다. 휴대폰 창에는 ‘이상징후 없음’이라고 표시됐다. 그러나 정밀진단 결과 식도에 알 수 없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종양을 바이오 칩이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몇 주 뒤, 화장품이 문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노 화장품 속의 캡슐이 피부 아래를 지나 세포에까지 침투, ㄴ씨의 식도에 암을 유발했던 것이다. 바이오칩은 통제되지 않은 나노캡슐을 잡아내지 못했다.


* 2030년 4월 1일, 국제 사회의 걱정거리는 분말형 나노입자만이 아니었다. 몇몇 국가에서 생명공학 연구중에 발견한 ‘예상치 못한 기능’을 가진 돌연변이 생명체들을 폐기하지 않은 채 ‘원래 목적과 다른 형태’로 가공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방어할 수 없는, 공격 여부를 인지하거나 증명할 수도 없는 나노 생물학 무기가 출현했던 것. 나노 생물학 무기는 나름의 생태계를 형성해가며 지구 정복을 시작했다. 그들은 광 네트워크를 타고 빠른 속도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나노 생물체에 감염된 홈 네트워킹 시스템은 주인을 해쳤다. 국가들은 구시대의 유물인 유선전화 앞으로 달려가 국가간 핫라인을 개설해야 했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로는 언제 어느 곳에서 ‘구멍’이 생기고,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불러오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3부. 옐로 카드 III - 편재(遍在)하는 감시자


8. 칩이 여는 유비쿼터스 세상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 칩들은 센서와 통신기를 갖춘 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소와 물질로 찾아들 태세다. 칩들은 그 모든 장소와 물질들의 상태와 변화를 쉼 없이 보내올 것이다. 과거 칩은 전자회로를 삽입한 작은 반도체 조각으로서 그저 컴퓨터 부품으로만 여겨졌다. 오늘날, 칩은 초미세 가공기술에 힘입어 ‘작지만 똑똑한 컴퓨터 그 자체’로 면모를 일신했다. 미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컴퓨터(칩)들이 온누리에 흩뿌려져 ‘유비쿼터스(ubiquitous : 편재하는, 언제 어디서나) 컴퓨팅 세상’을 연다.


1947년 12월, 미국 벨연구소의 윌럼 쇼클리(William B. Shockley),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H. Brattain)이 ‘반도체’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한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 특성을 가진 반도체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 반도체는 평상시에는 부도체로 존재하지만 열을 가하거나 불순물을 첨가하면 도체가 된다. 이 같은 물리적 특성을 이용해 전기회로를 만들어 작은 판 위에 붙여놓은 게 ‘칩’이다. 이는 곧 20세기 정보인터넷 혁명의 뿌리인 ‘0과 1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디지털 시대의 출발이었다. 칩은 빠르게 진화했다. 특히 1969년 마르시언 에드워드 호프 박사가 칩 하나에 컴퓨터 한 대를 집어넣는 회로, 즉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하면서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유비쿼터스 세상을 향한 메모리 반도체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반도체에는 각종 정보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다. 정보 저장방식에 따라 디(D)램, 에스(S)램, 플래시(Plash) 메모리로 구분한다. 특히 플레시 메모리는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으며,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새로 입력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시스템 온 칩(System on Chip)을 통해 유비쿼터스 컴퓨팅 세상으로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기술로도 유비쿼터스 컴퓨팅 세상을 맛보기가 가능하다. 이미 무선 통신기능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9. 디비(DB) 권력의 등장
21세기 과학기술의 3대 총아로 부상한 나노기술, 생명공학기술, 정보기술은 가히 혁명적인 생활상 변화를 예고한다. 특히 세 기술간 융합이 빨라지면서 그야말로 매일 진보할 전망이다. 나노기술은 먼지처럼 작아진 컴퓨터를 산, 바다, 건물 등 거의 모든 곳에 흩뿌려 놓을 태세다. 생명공학기술은 나노,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아 사람 몸 안에 칩을 심어 놓고 언제 어디서나 진료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실현할 것이다.


세계 모든 공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한곳에 모을 수 있게 된다. 데이터는 어디에 쌓이는가. 데이터베이스(DB)다. 데이터베이스에는 누가 어디에 가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자우편으로 타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차곡차곡 쌓인다. 데이터베이스를 가진 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하는 형태로 데이터를 모아 꺼내 볼 수 있다. 물론 불법적인 데이터 축적, 추출, 검색, 거래, 활용은 제한된다.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를 가진 모든 이들의 준법정신이 투철하지는 않다. 데이터 활용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데이터베이스를 가진 자에게로 21세기 권력이 집중될 것이다.


21세기 초, 기업의 거의 모든 업무가 전산화됐다.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각 기업의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와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기업 정보화의 근간이 된다. 기업들은 내부에 구축한 초대형 데이터베이스를 초석으로 삼아 ‘데이터베이스 마케팅’과 같은 매출 증대전략을 만들어내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출발한 데이터가 웹을 통해 고객이 선호하는 형태의 정보로 둔갑해 제공되고 있는 것. 기업들은 인-하우스 데이터베이스를 인터넷을 통해 타 정보시스템과 연결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해 더욱 많은 데이터를 얻고 활용하기 위해서다. 특히 글로벌 생산체계에 걸맞은 데이터베이스 관리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21세기 초, 컴퓨터 공룡기업인 아이비엠(IBM)은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사업전략의 초점을 ‘침투하는(Pervasive) 컴퓨팅’에 맞췄다. 그 목표는 ‘생활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는 것. 생활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는 컴퓨팅, 곧 유비쿼터스 컴퓨팅! 아이비엠과 함께 세계 3대 데이터베이스 메이커로 군림하는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기술기업들도 ‘사라지는 컴퓨팅’이라거나 ‘보이지 않는 컴퓨팅’이라는 형태로 유비쿼터스 컴퓨팅 세상을 겨냥한 기술과 제품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이 같은 기술 발전과 신제품에 힘입어 기업들의 데이터 수집, 관리, 활용능력이 더욱 좋아질 것은 자명한 일.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가미한 마케팅 전략 앞에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날로 가벼워질 것이다. 또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에 관한 정보들이 거래를 통해 이리저리 옮겨지고 이용될 것이다.


10. 에베레스트 2020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산책을 하듯 편안하게 에베레스트를 오가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만든 거대한 튜브 등반로가 사람들을 극한의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했다. 등반로는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아예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편안하게 정상에 오를 수도 있다. 그야말로 트래킹 코스가 됐다. 탄소나노튜브는 남, 북극과 함께 3대 극한으로 여겨지던 에베레스트의 자연을 견뎌내고도 남을 만큼 강했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트래킹을 할 수 있도록 허락됐다.


아내와 회사 동료들은 갑작스런 나의 에베레스트 여행계획에 잠시 눈길을 돌리기는 했지만, 곧바로 자신의 일 속으로 되돌아갔다. 캠프 관리소의 관리인은 나의 오른 손목 피부에 삽입되어 있는 디엔에이(DNA) 칩부터 스캔했다. 스캔 결과는 푸른색! 최소한 튜브 바깥 등반 도중에 심장마비를 일으키지는 않을 상태였다. 다음은 옷, 등산용 장비, 신발 등에 들어가 있는 각종 칩의 작동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스캔. 거의 모두 정상이었다. 헤드셋을 끼고 해발 6000미터 트래킹 허용 구간에서 자연 속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때 서울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스 폴 앞이네…. 위로 올라간 후 가까울 것 같다고 좌측으로 치우쳐서 걸으면 많이 힘들겠다. 위성영상으로는 자기가 실제보다 조금 더 뚱뚱해 보인다.”


빙벽 위로 올라섰다. 산사태 예고지수는 여전히 ‘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예고와 달리 산사태가 시작되면 관리소 측에서 자동으로 나의 생명줄을 되감을 것이었다. 이 구간에서 헤드셋을 20분 정도 열고 고지대의 희박한 산소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내 요청에 관리소 담당자는 원격으로 나의 DNA 칩으로부터 현재의 건강상태, 산소결핍증 발생 예상시간, 전문 의료진 의견 등을 취합한 후 15분 오케이 사인을 전송했다. 나는 해발 8000미터 지점 트래킹 코스에서도 산소체험을 하며 관리소의 지시를 따르지 않다가 정신을 잃었다. 에베레스트 관리소에서는 나노 섬유 구난(救難)줄을 되감아 나를 탄소나노튜브 등반로 안으로 끌어넣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 정말 큰 문제야. 흐리멍텅한 생각, 흐리멍텅한 목적으로 무조건 자유롭게 살겠다는 족속들 말이야.”


“자유롭게 살겠다기보다는… 그냥 그 순간에 통제받기가 싫었을 뿐이오.”


“그럼 깊은 산 속에서 살지, 왜 엉뚱한 짓을 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 속을 끓이는 거야.”


“내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당신네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까? 내가 내 피부 안쪽에 이식된 신분증을 마음대로 뺄 수 있나요?”


“정부가 만든 개인정보보호법을 모르나? 정부뿐 아니라 기업들도 당신의 데이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어. 그 정도면 당신이 바라는 순간의 자유로움이 보장되는 것 아닌가?”


“어찌됐든, 나는, 당신네들의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게, 모든 데이터가 한 눈 아래에 놓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비밀리에 데이터를 이렇게, 또는 저렇게 조율할 수 있는, 이 망할 전체주의가 싫소.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