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국가의 조건
State Building, Governance and World Order in the 21st Century
■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일본계 미국인으로 1952년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코넬 대학을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국무부 정책실 차장, 렌드연구소 연구위원, 조지 메이슨대교수 등을 거쳤다. 저서로는 『역사의 종말』『트러스트』『대붕괴』등이 있다.
■ 역자 안진환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경제,경영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문 번역가로서 인트랜스 번역원과 온라인 번역학교 트랜스쿨의 원장하다. 역서로 『빌게이츠@생각의속도』『리눅스*그냥 재미로』『포지셔닝』『빅브랜드 성공의 조건』『승리의 열정』등 다수가 있다.
■차례
1장 강한 국가, 약한 국가
2장 강한 국가 조직을 만들기 위한 이론
3장 국민국가 건설을 위한 개입
강한 국가의 조건
국가 건설의 필요성
국가 건설이야말로 오늘날 세계 공동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빈곤에서 에이즈, 약물 중독, 테러리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세계가 안은 가장 심각한 문제들의 근원에 바로 취약한 국가 또는 실패한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만연한 에이즈를 예로 들어 보자. 에이즈는 치료가 완전히 불가능한 질병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이용해서 상당 부문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은 값이 비쌀 뿐 아니라 관리가 쉽지 않은 의약품이다. 주사 한 방으로 해결되는 백신과 달리 이 약물은 오랜 기간 복잡한 복용법을 주의 깊게 따라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으면 결국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야기하고 약품에 대한 내성만 길러 줌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얘기다.
이러한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강력한 공중 보건 인프라는 물론이고 특정 지역 질병에 대한 의료 생태학적 전문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 중 대부분이 에이즈 퇴치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받는다 해도 그것을 관리할 제도적?조직적 역량이 부족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사항은 해당 국가가 (그들이 얻을) 자원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가난한 나라는 다른 국가들을 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냉전이 종식되며 발칸 반도에서 카프카스 산맥, 중동,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에 실패한 국가와 취약한 국가의 띠가 형성되었다. 또한 소말리아와 아이티, 캄보디아, 보스니아, 코소보, 동티모르 등지에서는 1990년대의 십 년에 걸쳐 국가가 붕괴되거나 세력이 약화되면서 인권 및 인도주의가 말살되는 재앙이 뒤따랐다. 미국과 서방 세계에서는 한동안 이를 지역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태도를 가장할 수 있었으나, 9?11 사태가 입증했듯이 이제 이런 문제를 거대한 전략적 도전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취약한 통치 체제들이 야기한 문제에, 테러가 야기하는 심각한 안보 위협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에 갑자기 부족한 국가적 능력이나 정부 제도를 강화하거나 새롭게 창출하는 능력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 동시에 세계 안보의 주요 조건으로 부상한 셈이다.
강한 국가, 약한 국가
국가 활동의 범위와 국가 권력의 힘 또는 국가의 능력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국가 활동의 범위란 정부가 떠맡는 다양한 기능과 목표를 말하며, 국가 권력의 힘이란 정책을 입안 및 시행하고 법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집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국가 권력의 힘은 현재 일반적으로 ??국가적 역량?? 또는 ??제도적 역량??이라고 일컫는다.
국가의 범위와 능력이라는 두 가지 특질을 하나의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 표와 같은 행렬을 얻을 수 있다. 이 행렬은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각기 다른 힘을 보여 주는 사분면으로 명확하게 나뉜다. 경제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제한된 범위의 국가 기능과 강력한 제도적 효율성이 조화를 이루는 사분면①이 최적의 위치일 것이다. 물론 축의 원점을 향해 지나치게 가까워져서 재산권 보호 같은 최소한의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국가라면, 경제성장은 제자리에 머물고 말 것이다. 그러나 X축을 따라 오른쪽으로 너무 멀어져도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가정 역시 가능하다.
물론 경제적 효율성이 국가 기능의 특정 범위를 선호하는 유일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유럽인 대다수가 미국식 능률은 사회 정의의 희생에서 오기 때문에, 자신들은 사분면①보다는 사분면②에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한편, 경제적 성과 면에서 볼 때 최악의 위치는 사분면④로, 비능률적인 국가가 제대로 감당할 수도 없는 대규모 활동 영역을 떠맡는 경우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 위치에 있다.
경제적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국가 기능의 범위를 줄이는 것과 국가의 힘을 늘리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중요할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일반론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과는 해당 국가의 특정한 제도적 역량과 국가 기능은 물론이고 다른 요인들에도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국가 제도의 능력이 국가 기능 범위보다 더 중요하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제도야말로 경제 발전에서 중대한 변수인 것이다. 제도적 역량이 핵심 사안이라면 우리는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그것의 공급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어떠한 제도들이 경제 개발에 긴요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가 역점을 두어야 할 국가성의 네 가지 측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직 설계 및 관리
둘째, 정치 체제 설계
셋째, 합법성의 토대
넷째, 문화적?구조적 요소
강한 국가는 위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강한 국가의 위 네 가지 요소를 약한 국가에 이식 가능한가? 이식 가능한 지식은 대부분 첫 번째 요소, 즉 공공 행정과 개별 조직의 설계 및 관리 영역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소에도 이전 가능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다. 이 수준의 문제점은 유용한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지식을 적용할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국가성의 네 번째 측면은 규범과 문화적 가치관 등 공공 정책으로 조종하는 데 한계가 따르는 영역, 즉 이전 가능성이 낮고 형성되고 변화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요소이다. 문제는 제도 개발이나 제도 개혁이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국내에 새로운 제도나 제도 개혁에 대한 수요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제도 개발에 따르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 된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점령군 지위를 확보하고, 제도 형성에 간여하려 애쓴 바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한국을 제외하고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의 성과를 이룩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한국의 성과는 미국의 노력보다는 한국인 스스로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외부 세력이 제도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능력에는 중대한 제약이 따르며, 결국 제도 건설이나 개혁에 대한 기존 지식을 개발도상국가에 전수하는 능력에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제약은 국제 금융 기구나 원조국, NGO 공동체가 자신들의 새로운 ??역량 구축?? 만트라의 장기적 효율성에 대해 기대치를 올리는 것과 관련해 보다 신중해질 것을 요구한다. 사실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국제 공동체가 단순히 역량 구축 능력의 한계에 부딪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많은 개발 도상국들에서 사실상 제도적 역량을 파괴하는 데 공모자가 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원조 정책의 모순점 때문이다. 외부의 원조 주체들은 관개나 공중 보건, 의무 교육 등과 같은 특정 서비스의 제공과 관련된, 피원조국 정부의 역량이 증진되길 원하는 동시에 그러한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최종 사용자에게 직접 제공되길 원한다. 이러한 두 가지 목적 가운데서 언제나 우선권을 얻는 것은 후자이다. 그것이 원조 주체의 동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서비스의 직접적인 제공이 거의 언제나 원조 프로그램을 종료하면서 피원조국 정부의 역량을 훼손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사실 개발도상국 대다수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을 오직 정부만 제공할 수 있는 핵심 기능을 공급하는 국가 제도의 기본 능력을 키우는 일인 것이다.
강한 국가조직을 만들기 위한 이론
공공 행정은 제도적 역량의 여러 구성 요소 중에서 가장 쉽게 체계화할 수 있고 다른 곳에 이전할 수도 있는 요소이다.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공공 행정 학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러한 점을 뒷받침해준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더 전문적이고 덜 부패한 정부를 탄생시킨 제도 개혁과 공식적 인센티브 구조 변화 등은 개발도상국에도 매우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강한 국가 조직은 역량 구축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타의 모범이 될 만한 행정 실행책을 아주 다양하게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중 내재된 지역적 특성이 있다는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이론을 유추해볼 수 있다. 행정 역량이란, 저개발 국가의 공무원들에게 신화를 창조한 덴마크나 선진국에서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는 명목으로 탁상공론에만 의지하는 선진 세계의 공무원들이 이 사회에서 저 사회로 이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의 행정 실행책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은 지역적 제반 조건, 기회, 관습, 규범, 여건 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결합시켜야 한다. 이 말은 곧 행정적?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할 때는 지역의 제도를 이끌 해당 지역의 관리로부터 정보를 얻거나 그를 단순히 동참시킬 것이 아니라, 그 관리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력한 통치력을 자랑하며 급격한 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특정 제도를 수입하기는 했지만 자국의 실정에 맞도록 대폭 수정을 가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 국가는 외부 제공자가 기존의 국내 제도를 대신할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도록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실로 저개발 국가의 제도적 역량을 제고하고 싶다면, 희망 사항을 보여주는 은유적 표현을 바꾸어야 한다. 예컨대 저개발 국가를 도우려 할 때는, 원주민을 고용하여 우리가 직접 설계한 공장을 지을 작정으로 대들보와 벽돌, 크레인, 건설 청사진 등을 손에 들고 가면 안 된다. 오히려 원주민이 직접 공장을 설계하고 어떻게 건설하고 운영할 것인지 스스로 알아내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자원을 가져가야 한다. 반면 해당 지역 사회는 동일한 능력을 대신하는 모든 기술적 지원을 양날의 검으로 생각하고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외부인은 자신들이 직접 공장을 운영함으로써 진행 속도를 높이고 싶은 욕구를 뿌리쳐야 한다.
저개발 국가의 역량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제공자가 인내심을 발휘하여 과연 공장이 단기간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때만 효과가 있을 것이다. 즉, 제도적 역량 구축과 그 역량이 생산하게 될 서비스를 최종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원조 목표들 간에는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공장이 풀가동하기를 원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역 주민들이 지역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서비스 제공을 희생하고 그 대신 역량 구축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제공자가 언제나 인내심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후원자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작지만 강한 국가
국가성의 약화는 유토피아의 전주곡이 아니라 재앙의 지름길일 뿐이다. 하지만 국가성은 국제 체제 내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공격받고 사실상 침식당해 왔다. 저개발 세계의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약한 상태에서 냉전의 종식을 맞았고, 결국 동유럽과 남아시아에 걸쳐서 실패한 국가와 불안한 국가의 띠가 형성되었다. 이제 이들 국가의 힘을 강화해 주는 일이 국제 공동체의 (국제 안보를 위한) 매우 중대한 책무가 된 셈인데, 문제는 그 방법을 아는 선진국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가 건설을 보다 잘 배우는 것이야말로 세계 질서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핵심 사안이 되는 것이다.
세계 열강이 충돌하는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까지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국가만 할 수 있고 국가만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통성 있는 합법적 권력을 취합하여 목적에 맞게 배치하는 일이다.
전통적인 종류의 군사력을 이용해 국민국가에 개입하는 것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충분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어느 면에서 보면 유럽인들이 옳다. 하지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방법에 대해 유럽인이 미국인보다 중요한 뭔가를 더 많이 아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든 국가 건설 기술이 국력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해 전통적인 군사력을 배치하는 능력만큼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