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신화로 말하다

   
현경미
ǻ
도래
   
16000
2015�� 03��





■ 책 소개


인도 여행의 새로운 필독서!
신화 속으로, 생활 속으로, 여행 속으로!


인도인들의 삶 전체에 녹아 있는 힌두 신화. 신화를 알아야 인도 여행의 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들의 생활 터전, 사원이나 거리의 모습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려한 축제들도 신화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3억 3천명의 신이 존재하는 인도인 만큼 그 신화도 방대하고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핵심적이고 다채로운 신화들은 때로는 한 편의 소설같이 때로는 서사시나 영웅전기같이 흥미롭고도 쉽게 읽힌다.


저자는 인도의 힌두 신화 외에도 인도에서 4년간 거주했던 경험을 살려 현재 진행 중인 인도의 모습과 피부로 느꼈던 그곳에서의 생활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 밖에도 여행자의 눈이 아닌 현지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바라본 인도와, 숨겨진 여행지에서의 좌충우돌 여행담이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인도 신화와 생활, 여행 이야기에는 사진가이기도 한 저자가 인도에서 찍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진들이 곁들여져 있다.


■ 저자 현경미
중학교시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TV시리즈를 보며 감동을 받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양한 책을 섭렵하며 세계일주를 꿈꾸던 소녀는 대학졸업 후 직장에 다니다가 받은 마지막 월급을 탈탈 털어 1999년 생애 최초로 비행을 타고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났다. 지금까지 10개국, 30여개가 넘는 도시를 여행했고, 국제적인 이사도 여러 번 겪었다. 결혼 후 3일만에 가서 살게 된 싱가폴에서 1년 4개월, London College of Printing 학교에서 Professional Photography Practice 사진 공부하면서 런던에서 1년, 뉴델리에서는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4년여를 보냈다. 2014년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 책을 출간했고, 지금은 서울에서 사진작업과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 차례
서문


PART 1 신화 속으로
힌두교 신들의 계보 |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락슈미에게 잘 보이자 |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아바타가 필요한가? | 크리슈나, 백만 대군인가 한 명의 위대한 책사인가? | 바람의 아들, 하누만 | 유디스티라를 따라 천국으로 간 개 | 사랑의 신 카마 | 공부의 신 사라스와티 |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신 가네슈 | 라트나카라여, 누구를 위해 악업을 쌓고 있는가?


PART 2 생활 속으로
불꽃 축제 디왈리 | 카스트제도 | 구루가온의 전설 | 보리수 그늘 아래 | 옆으로 자라는 나무에게 소원을 빌어보자 | 거리의 소는 누가 키우나 | 영화 <조다 악바르>에 나타난 황제 악바르의 리더십 | 스와스티카의 상징성 | 야트라, 인생의 여정 | 죽음의 수수께끼 | 힌두교 관점에서 본 사후세계


PART 3 여행 속으로
히말라야 언저리 심라 | 내니탈 호수 | 타지마할의 빛 | 나만의 여행지


 




인도, 신화로 말하다


신화 속으로

힌두교 신들의 계보

인도의 종교, 생활, 문화 등을 아우르는 힌두교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인도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3억 3천 명의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힌두교를 이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포기하기는 이르다. 3명의 신과 그의 부인만 제대로 이해하면 그 나머지는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생활하거나 관광할 때 이 신들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하면 왜 그런 축제가 생겼는지, 사원의 조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힌두교의 3대 신은 창조주 브라마(Brahma), 보존자 비슈누(Vishnu), 파괴자 시바(Shiva)이다. 먼저 창조주 브라마를 살펴보자. 얼핏 생각하면 세상 만물을 만든 브라마가 가장 위대한 신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대상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인도 그 넓은 땅에 브라마를 위한 사원은 푸시카르 단 한 곳밖에 없다. 자신이 창조한 딸 사라스와티(Saraswati)를 아내로 맞이해서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는 또 귀가 얇아 아무 소원이나 들어주고 저주를 내려 많은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창조주인 브라마보다도 지식의 신인 사라스와티에게 더 많은 기도를 올린다.


어떤 조각상이 브라마인지 알아보려면, ‘머리가 네 개인 노인이 한 손에 물항아리를 들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브라마가 세상 만물을 창조할 때 물을 이용했다는 점은 현대 과학에서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진화론에 따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물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위대한 창조주 브라마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지식의 신 사라스와티 역시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화려한 인도의 전통 옷 사리는 색깔과 장식이 복잡하고 휘황찬란하다. 그런데 유독 이 사라스와티만큼은 별다른 치장 없이 순백의 옷을 입고 있다. 한 손으로는 멋진 비나(Veena)를 연주하고 한 손에는 책을 든 수수한 모습이다. 지식이 있으면 요란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이 여신이 말해주는 듯하다.


두 번째 신은 바로 비슈누다. 이 신만큼 다양한 이름과 얼굴을 가진 신은 없을 것이다.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Vishnu, 비슈누라고 발음되지만 인도에서 ‘V’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위슈누라고 읽는다. 흔히 보존자, 유지자라고 번역되는 비슈누의 ‘vish’는 ‘스며들다, 온 세상에 가득하다’라는 뜻으로 이 세상이 돌아가도록 유지하고 보존하는 신이라는 뜻이다. 창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애프터 서비스까지 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인지 힌두교 신자 중 대부분이 비슈누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비슈누의 가장 큰 특징은 피부색과 화려한 의상이다. 비슈누의 몸이 푸른색인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치명적인 독을 가진 뱀과 싸워 이긴 후 그 독이 야무나 강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온몸에 독을 발라서 그렇다는 설이 있고, 하늘과 바다가 파랗기 때문에 푸른 몸이 우주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다. 결과적으로 푸른 몸은 비슈누의 상징이 되었고, 세상에 아바타로 다시 태어날 때도 그의 몸은 푸른색을 띠고 있다.

비슈누가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아내 락슈미 때문이다. 그녀는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비슈누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부(富)를 나눠준다. 그녀는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완벽한 여성상이다. 인도에서는 결혼식 때 신부가 락슈미 여신처럼 치장한다.


마지막으로 파괴의 신 시바에 대해 살펴보자. 시바는 대단히 복잡한 신이다. 파괴의 신이라니, 대체 뭘 파괴한다는 거지?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는 속세를 없애버리려는 것은 아닐 테고…. 바로 인간의 욕망과 악업, 무지를 파괴한다는 뜻이다.


시바는 외모 역시 독특한데, 화려한 옷을 입고 어여쁜 아내로부터 안마를 받고 있는 비슈누와는 정반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다 낡은 호피무늬 옷, 손에는 무시무시한 삼지창을 들고 명상하는 모습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시바는 두 번째 부인 파르바티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시타의 환생인데, 더욱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에너지의 원천인 ‘샥티(Shakti)’는 파르바티로부터 나온다. 그녀 역시 세 가지 변형을 일으키는데, 악을 물리치는 여전사 ‘두르가’의 모습도 그중 하나다. 시바의 아내 파르바티의 모습보다는 두르가의 모습일 때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사람들은 그녀를 마더 두르가라고 부르면서 일상생활에서 그녀를 모신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락슈미에게 잘 보이자

한 번은 크리슈나의 부인 룩미니(Rukmini)가 물었다.

“여신이시여, 즐겨 찾으시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요? 또한 어떤 사람들을 특별히 어여삐 여기시는지 궁금하나이다.”


그때 락슈미가 이렇게 대답했다.

“공손하게 말하고 화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절제할 줄 알고 올바르고 헌신적이며 감사할 줄 아는 관대한 사람들에게 부를 나눠 주느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른을 공경하고 현명하며,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너그럽고, 종교적인 사람이란다. 남편을 공경하고 진실하며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겸손하고 덕 있는 사람을 또 좋아하지. 향을 피우고 늘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떠날 수 없단다.”


“나는 불결하고 인내심 없는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자 같은 사람들을 제일 싫어하느니라. 아무리 성심껏 제사를 지내도 그런 사람 곁에는 머물고 싶지 않지. 특히 더러운 옷을 입거나, 이를 닦지 않거나, 목욕을 하지 않거나, 과식하거나, 폭언을 하거나, 해가 뜬 뒤에도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가지 않는단다.”


부의 상징, 락슈미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그리스 여신들처럼 풍만한 몸매와 아름다운 황금빛 얼굴을 자랑한다. 요즘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비만이라 할 정도로 날씬한 몸매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종류의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한 채 붉은색 사리를 입고 있는 락슈미는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데, 남편 비슈누에게 바칠 연꽃, 부와 생명수가 가득 들어 있는 항아리, 황금동전을 들고 있다. 인도에서는 결혼식 때 신부가 아름다운 외모와 부를 가져다주는 락슈미의 상징색인 붉은색과 분홍색 옷을 입고 신랑은 비슈누가 된다.


인도의 신들은 저마다 특이한 운송 수단, 즉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데 락슈미는 올빼미를 타고 다닌다. 이 운송 수단에도 각각의 사연이 있다. 밤에 활동하고 낮에 휴식하는 습성을 가진 올빼미는 락슈미의 언니인 알락슈미(Alakshmi)의 화신이라는 설이 있다. 알락슈미는 빈곤의 신이기 때문에 락슈미가 올빼미를 타고 나눠주는 부는 언제나 논쟁과 싸움을 동반한다.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늘 행복한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길이 늘 정당한 것도 아닌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아바타가 필요한가?

비슈누의 역할은 창조와 파괴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모든 생명들이 그 이치에 맞게 살아가도록 돌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계 평화이다.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신인지도 모르겠다. 평상시에는 세상 이곳저곳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다가 악의 무리가 창궐하면 그 무리를 평정하기 위해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다. 그 새로운 모습을 우리는 아바타(Avata)라 부른다. 아바타는 화신(incarnation)의 산스크리트어로 아바타르(Avatar)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하강’이라는 뜻으로, 위대한 신성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온다는 의미이다. 아바타의 생성 과정은 생명이 진화해온 과정인 계통발생과 유사한 면이 있어 신화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일곱 번째 화신인 라마(Rama), 여덟 번째 화신인 크리슈나(Krishna)는 비슈누의 아바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이하게도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신화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남아 역사적인 사실로 변한다. 지금도 라마의 탄생지인 아요디야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다툼이 있다. 각자 모시는 신을 위한 사원 건립 때문이다.


그리고 아홉 번째 아바타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부처님, 붓다(Buddha)이다. 지금까지 비슈누의 아바타와 비교해 볼 때 그리 큰 신빙성은 있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붓다라고 인정하고 있다. 마지막 열 번째는 아직 오지 않은 칼키(Kalki)이다. 이 칼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힌두교의 우주관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얀 말을 타고 오는 마지막 비슈누의 화신은 악을 정벌하고 선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화신 칼키가 나타나면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은 종말론이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했지만 힌두교에서는 다행히 그런 끔찍한 재앙과 종말론은 없다. 칼리육의 시대가 가고 나면 다시 사티아육의 시대로 돌아가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것뿐이다. 인간의 생명이 윤회한다고 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신 가네슈

머리는 코끼리에 몸통은 사람 형상인 아주 특이한 신이다. 더군다나 몸집은 산만 한데 타고 다니는 것은 조그만 쥐다. 이렇게 기괴한 신이 인도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이유는 바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복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사업을 시작하거나 가게를 개업할 때 우리나라처럼 고사를 지낸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신상도 바로 가네슈다. 집집마다 있고 가게를 들어가면 아침마다 이 신 앞에 향을 피우고 기도한다. 오늘도 장애물 없이 복을 많이 가져다 달라고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것이다.


가네슈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상아 한쪽이 부러져 있는데, 《마하바르타》를 받아 적기 위해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의 뼈를 잘라 연필로 썼다는 전설이 있다. 가네슈는 풍요와 지혜의 신이기도 하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고, 아무리 지혜롭다 하더라도 장애물이 많으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없다.



생활 속으로

불꽃 축제 디왈리

우리나라 설날과 비슷한 점이 많은 디왈리는, 새 옷을 입고 집을 단장하고 가족들이 모이는 대목이다. 모든 상점들이 디왈리 특수를 노려 다양한 물건들을 준비한다. 디왈리 첫날은 장보기의 절정이다. 그전에 미리 선물을 사서 돌리기도 하지만, 이날 최종적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 기하학적인 무늬 랑골리(Rangoli)를 그려놓고 재물의 여신 락슈미를 맞이한다. 진흙 램프 디아(diya)를 켜놓고 새로운 가재도구를 사거나 장부정리를 한다. 최근에는 디아보다 크리스마스에 흔히 볼 수 있는 꼬마전구로 온 집안을 치장하는 것이 유행이다.


디왈리 날인 셋째 날은 둘째 날보다 폭죽놀이가 더욱 고조되니 밤새 괴로울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아침 도심 전체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찰 정도니 말이다. 폭죽의 크기와 모양, 터지는 소리가 경제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는 인도인들이어서 누구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폭죽을 터트리려고 경쟁하는 것이다. 외국인들도 함께 즐기는 디왈리 축제는 셋째 날까지이다. 넷째 날 인도 사람들은 사원에 들르고 다섯째 날은 오빠가 여동생 집에 찾아가는 것이 풍습이라고 한다.


인도에서의 축제는 특별하지만, 일상이기도 하다. 지역별, 계절별로 보면 단 하루라도 축제가 없는 날이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축제가 있는 인도.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디왈리와 홀 리가 아닐까 싶다.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그날만큼은 인도 전역이 하나가 되어 즐기는 듯했다. 힌두교와 관련 없는 사람들도 다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이기도 하다.


카스트제도

카스트는 피부색으로 구별된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카스트라는 말 자체가 포르투갈어로 색깔이라는 뜻이다. 얼굴색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선천적인 지위인 것이다. 인도에 대한 궁금증 1순위가 카스트제도인데, 그 이유는 지구상에서 대부분 사라진 계급사회가 유독 인도에서만은 아직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없어져서 천민 출신이 총리를 지내기도 했지만 말이다.


카스트의 어원은 포르투갈어로 불평등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자티, 종족, 부족이라는 의미다. 직업군에 따라 수많은 자티가 있는데, 그 수많은 자티를 크게 4개로 구분하여 카스트가 되었다.


결국 침입자 아리안족이 토착민 드라비다족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카스트제도를 고안했다는 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리안족의 침입 역사가 기원전 1,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침입자는 더 이상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토착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견고했던 카스트제도 역시 최첨단 IT 문화 앞에서 조금씩 허물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휴대전화의 보급은 파급력이 크다. 친정에서 떨어져 멀리 시집간 여성의 경우 그동안은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참고 살았지만, 휴대전화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억울함을 해소할 수도 있고 일자리 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더 좋은 조건의 직업을 얻을 기회도 생긴 것이다. 카스트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법적으로 아무리 해소하려고 해도 어렵던 것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카스트제도가 어느 정도만 사라져도 인도 경제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미래의 인도를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무한한 잠재력.


보리수 그늘 아래

힌두교에서는 자연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지만 특히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가 있다. 그중에 제일은 보리수와 반얀나무다. 부처님의 나무로 알려진 보리수나무는 힌두교 트리니티 중 한 명인 보존의 신 비슈누의 나무다. 비슈누의 9번째 화신이 부처라는 점을 근거로 보면 그 연관성이 매우 크다. 우리에게 힌두교는 이슬람보다 더 낯설에 느껴지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속에 뿌리내린 불교가 힌두교에서 왔기 때문이다. 힌두교를 알면 알수록 불교와 비슷한 점이 많아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힌두교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카스트제도에 대한 반감으로 불교가 태어났다는 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불교의 베이스는 힌두교이다. 역사적으로도 기원전 3천 년 전 인더스 문명의 한 갈래였던 모헨조다로(Mohenjo-Daro) 문명에서도 보리수나무를 신성시했던 흔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이 태어나기 전 베딕시대부터 힌두교인들이 이 나무를 숭배해왔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나무는 현재 없지만 기원전 288년경에 그 가지라 지금의 스리랑카 북쪽(Anuradhapura) 한 사원에 이식되었다고 한다. 그 가지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고 부처님이 연관된 나무라서 스리 마하 보리수(Sri Maha Bodhi)로 존경을 받았다. 그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론(Ceylon)의 지배 왕조는 스리 마하 보리수가 살아 있는 동안은 왕조 역시 번영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밤낮으로 나무를 보호했다.


인도에서 많이 보게 되는 보리수나무와 반얀나무. 나무의 특징을 조금만 알고 가도 그냥 길 옆이나 사원에 대충 심어져 있는 나무가 아니라 각각의 특징을 가진 크고 위대한 나무라는 생각에 달리 보일 것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피팔 나무의 열매를 육체와 영혼으로 비유하고 있다. 말랑말랑한 과일 속에 단단한 씨앗이 자리 잡고 있듯 우리의 여린 몸 안에는 영혼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여행 중 기회가 된다면 보리수나무 그늘 아래서 육체와 영혼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거리의 소는 누가 키우나

유유자적한 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이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다. 차량의 흐름을 막는 훼방꾼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 같았다. 사실 소를 피해서 몇 분 일찍 간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차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잠시 생각을 멈추면 될 일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소들을 만나면 늘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인도인들은 소를 숭배하는 것일까.


도시의 무법자 같은 소를 인도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이유는, 우선 소의 경제적 가치에 있다. 소의 효용성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우유, 커드(curd, 요플레와 비슷), 기(ghee, 버터와 비슷한 기름), 소오줌, 소똥이다. 인도에서는 우유가 거의 주식이나 마찬가지여서 우유가 떨어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쌀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유가 없으면 차이는 물론 음식도 만들 수 없다. 커드 역시 후식을 만들 때 꼭 필요하고 음식에 넣기도 한다. 기는 제사를 지낼 때 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가 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소의 오줌과 똥이다. 소오줌은 약재로도 쓰이고 일부 지방에서는 음료수처럼 마신다고 하니, 소에 대한 인도인들의 애정이 얼마나 맹목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우유도 생산하지 못하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수소나 나이 많은 소들이다. 특히 한낮에 전철 기둥 옆 그늘에는 소들이 무리지어 자리 잡고 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소는 누가 키울까? 그런 소들은 대부분 스스로 알아서 연명하거나 수많은 종교 단체에서 쉼터와 먹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 소들이 핍박받지 않고 도심을 활보할 수 있는 이유는 힌두교의 신화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카마데누(Kamadhenu)’로, 여성의 얼굴에 소의 몸통,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공작새 꼬리를 가진 ‘소원을 들어주는 소(wish-fulfilling cow)’이다. 이 소는 모든 가축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신들의 어머니라고 추앙받는다.


소의 세 번재 임무는 죽음의 동반자 역할이다. 우리는 망자(亡者)에게 저승길 가는 동안 쓰라고 노잣돈을 주거나 힘내서 가라고 입에 쌀알을 넣어주지만, 인도에서는 소의 꼬리를 손에 쥐어 준다. 죽음의 신 야마(Yama)가 살고 있는 곳까지 가려면 망각의 강, 바이타라나 강을 건너야 하는데 소가 안전하게 인도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와스티카의 상징성

스와스티카는 인도 여행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형상인 동시에 가장 오래된 상징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3000년경 번성했던 하라파 문명에서 발견된 상징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행운을 부르는 표시로 태양의 움직임을 본뜬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卍(만)’자와 스와스티카가 혼동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기 때문에 시계방향으로 돌아가야 올바른 형태이다. 힌두교에서는 방향이 반대가 되면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기도 하거니와 가을과 겨울로 가는 의미로 생명의 소멸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힌두교 관점에서 본 사후세계

힌두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어떤 것일까. 생각보다 간단한 논리다. 죄를 지은 자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착하게 살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속세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해방된다는 것이다. 마음에 아주 쏙 드는 설은 단순히 죄를 지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곧장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의 행동 전부를 대차대조표에 기록해서 그 결과로 심판받는다는 것. 왜냐하면 우리는 온전히 선하게만 살 수도, 악하게만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때 악한 짓을 하고 실수를 했더라도 얼마든지 만회할 기회가 있으니 희망이 있다.


카르마의 법칙에 의하면 인간은 모든 행동에 대한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갚아야 할 빚이 있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세에 다시 태어난 인간은 탄생의 시간, 죽음의 시간, 육신의 형태, 가족의 구성 그리고 그들의 행운과 불행까지 야마의 판결대로 살아간다.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계사의 기록에 준해서 공정하게 판결한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그 순간, 야마 앞에 서는 순간, 오들오들 떨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야마의 얼굴을 주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착하게 살면 된다. 그렇다면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세 가지로 나눠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소극적인 의미로는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다. 둘째, 적극적인 의미는 남을 돕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자기를 희생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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