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MBC ‘무한도전’ KBS ‘아침마당’ 화제의 스타강사 설민석!
이순신의 주변 인물 열 명이 바라본 ‘인간 이순신’
MBC ‘무한도전’ KBS ‘아침마당’ 목요 특강 출연 등 학생들을 가르치는 최고의 한국사 선생님에서 일반 대중에게까지 올바른 한국사를 전파하려고 노력하는 19년차 최고의 스타강사 설민석이 ‘인간 이순신’의 참모습에 대해 말한다. 아울러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영화 매체를 이번에도 활용한다. 영화 ‘명량’의 역사 선생님 역할을 하면서 이순신과 활약상에 대해 책과 강의로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이순신’을 말하기 위해 이순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열 명의 주변인물을 활용한 것이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가 바라본 ‘내 아들, 순신이’, 류성룡이 바라본 ‘전쟁의 신’, 적장 구루시마가 바라본 ‘사이코 이순신’, 정조가 바라본 ‘조선의 충신’ 등 가족, 지인, 적장 등 이순신 삶의 다양한 주변인물이 바라본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이순신 인물 분석을 시도한다.
어머니 입장에선 철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이었고, 적장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고, 임금에게는 충직한 신하이면서도 임금보다 백성들에게 더한 신뢰와 인기를 받은 불편한 신하의 모습 등 이순신은 팔색조같이 다양한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민족의 성웅으로 불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누구보다 충직했고 강인하게 나라를 지키고 걱정한 충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에 관해 고민하고 분석한 것을 총체적으로 모은 책이 바로 『전쟁의 신, 이순신』이다.
■ 저자 설민석
어렵고 딱딱하게 여기는 한국사를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19년차 최고의 스타강사! 드라마, 영화에서 다루는 역사 소재들을 활용하여 역사의 대중성과 중요성을 전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약력]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학 석사
현) 이투스 사회탐구영역 대표강사
현) 태건에듀 대표이사
현) 분당 명인학원 한국사 강사
현) YBM HRD 한국사능력검정 강사
전) EBSi 역사 강사
전) 메가스터디 역사 강사
전) 비타에듀 역사 강사
[참여 프로그램]
2014. 07. 영화 ‘명량’ 프로모션 역사 특강
2014. 06.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
2014. 04. 영화 ‘역린’ 프로모션 역사 특강
2014. 02.~04. MBC ‘기분좋은날’
2013. 09. 영화 ‘관상’ 프로모션 역사 특강
2013. 05. MBC ‘무한도전’ ‘TV특강 한국사’ 인물편 선생님으로 출연
2012. 10. KBS2 ‘청춘불패’ ‘수능 전문가 스타강사들’편
2012. 09.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프로모션 역사 특강
2012. 07. MBC 무한도전 ‘하하 VS 노홍철’편 하하 선생님으로 출연
2012. 03. tvN ‘공부의 비법2’
2010. 07. EBS ‘되면 한다! 열혈교실’
■ 차례
머리말 전쟁의 신, 이순신에 대한 인간적인 경외감
『전쟁의 신, 이순신』 사용설명서
장면 1. 내 아들 순신이 _어머니 초계 변씨가 바라본 이순신
장면 2. 사모하는 서방님 _부인 상주 방씨가 바라본 이순신
장면 3. 조선 장수에게 사로잡히다 _여진족 장수 우을기내가 바라본 이순신
장면 4. 피곤한 스타일이 납시었다 _녹도 만호 정운이 바라본 이순신
장면 5. 전쟁의 신 _류성룡이 바라본 이순신
장면 6. 건방진 장수로다 _광해군이 바라본 이순신
장면 7. 조선의 바다를 포기하라 _권율이 바라본 이순신
장면 8. 사이코 이순신 _적장 구루시마가 바라본 이순신
장면 9. 노량, 죽음의 바다 _아들 이회가 바라본 이순신
장면 10. 조선의 충신이여, 영원하라 _정조가 바라본 이순신
이순신 관련 연표
참고문헌
전쟁의 신, 이순신
내 아들 순신이 _어머니 초계 변씨가 바라본 이순신
"비켜 가시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성룡이의 팔에 이끌려 한걸음에 동네 어귀에 도착했을 때, 순신이는 무섭게 인상을 쓰며 활을 겨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활 끝이 지나가던 선비의 눈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는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한 조선군의 진영이란 말이오. 그러니 당장 비켜가시오!"
순신이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눈빛은 사라지고, 당장이라도 활을 쏠 것처럼 무섭게 선비를 노려보고 있었다. 활을 당긴 손은 다부지게 힘을 주어 떨고 있었다. 지켜보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순신아! 이 녀석,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어머니, 이 자가 조선의 진영에 허락도 없이 침입했단 말입니다."
"당장 활을 내리고 얼른 선비님께 사과드려라."
"사과는 제가 아니라 이 자가 해야 합니다."
순신이의 고집을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성룡이가 몇 번 말을 거들었지만 순신이는 활을 당긴 채 꼼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선비를 향해 호통을 치고 있었다. 나로서는 어떻게 순신이를 말려야 할지 도무지 방도가 서지 않았다.
그때 순신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길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던 선비가 말문을 열었다.
"허허, 고 녀석 참……"
이제야 긴장이 풀린 듯 크게 웃던 선비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린 친구가 기운이 예사롭지 않구나. 진영인 걸 모르고 들어온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하시게. 이제 알았으니 내가 비켜가겠네."
선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내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길을 돌아갔다. 그제야 순신이도 화가 풀리는지 활시위를 놓고 길을 돌아가는 선비의 뒷모습을 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선비님, 감사합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설민석의 역사 특강
앞의 소설 부분 잘 보셨죠? 이 소설은 상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고 실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이순신과 같은 동네에서 자란 류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내용을 통해서 장면을 만들어 봤습니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이 끝나고 파직을 당한 뒤 낙향하여 쓴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입니다. 기록을 살펴볼까요?
"순신이 어렸을 때 재질이 영특하고 활달해서 어떤 사물에도 구속받지 않았다. 여러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 나무를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마을 거리에서 놀면서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눈을 쏘려고 하여 장로들도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그 집 문 앞을 지나가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이순신의 어린 시절 기록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종합적인 추론을 통해서 병정놀이에 상당히 뛰어나고 리더십이 있고 영특한 아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활달하고 성격 좋은 개구쟁이, 악동 정도의 무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머니 초계 변씨는 충남 아산 현감을 지낸 변수림의 딸입니다. 현감, 즉 오늘날 군수 정도 되는 집의 딸이니 이순신의 외가도 괜찮은 집안이었습니다. 초계 변씨는 이순신의 아버지인 이정과 결혼해서 4형제를 둡니다. 서른한 살에 낳은 셋째가 바로 이순신이죠. 학식 있는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이순신과 형제들은 좋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순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임진왜란은 이순신을 최고로 만든 전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1597년은 이순신에게 정말 가슴 아픈 해였습니다.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고 결국 백의종군하잖아요. 상을 받아야 될 사람이 도리어 권력과 명예, 모든 걸 잃게 된 겁니다. 그런데 불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모함으로 옥에 갇힌 아들의 억울함을 알리러 어머니 초계 변씨가 한양으로 가던 중에 배에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1597년에 명예와 권력을 모두 잃고, 나라와 임금에게 배신을 당하고, 거기에 어머니까지 잃었으니 얼마나 가슴 아팠겠습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전쟁 중에 자식도 잃습니다. 결국 이순신은 전쟁을 통해 나라와 임금과 백성을 구했고 후대에 성웅으로 남았지만, 개인으로서는 많은 것을 잃습니다. 자신의 목숨마저 임진왜란에서 잃게 되죠.
전쟁의 신 _류성룡이 바라본 이순신
역시!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남쪽 바다에서 연이어 승전 소식이 들려왔다. 이순신의 수군이 왜군을 바다에서 격침하고 있는 것이다. 가뭄의 단비도 이보다 반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왜군이 땅을 침범한 이래 우리는 육지에서 너무도 허무하게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조선 군대, 아니 조정의 무능함에 모두들 전하와 조정 대신들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하지만 조정으로서는 그 비난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육지의 모든 곳에서 그들에게 힘없이 농락당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바다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남쪽 바다에서 왜군이 이순신에게 연이어 당하면서 그 기세가 많이 꺾였다는 소식이다. 이순신이 출몰하는 곳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수군의 기세도 하늘을 찌른다고 하니 이 어찌 반갑지 않을 것인가. 거기다 여전히 순신이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가며 왜군과 싸워 승승장구하고 있고 우리 수군의 피해는 극히 적다고 하니, 여러모로 불리한 이 시점에서 거둔 최상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이순신, 순신이…… 정말 여우 같은 녀석이었다. 어릴 적 동네 병정놀이에서도 순신이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 병정놀이를 하려고 모이면 으레 모든 아이들이 순신이와 한편에 서려 해서 편을 나누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순신이를 상대한다는 말은 곧 싸움에서 진다는 얘기였다. 결과가 정해진 놀이는 재미가 없는 법이다. 더욱이 그 결과는 분명 지는 것이니 나 역시 순신이와 다른 편을 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순신이의 힘은 또래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하지만 병정놀이가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순신이는 대범하면서도 상황을 보는 눈이 뛰어난 아이였다. 작전을 세우는 머리도 비상했다. 이런 능력에는 네댓 살 위 녀석들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사실 나는 순신이를 대장으로 두는 것이 창피하여 그러지 못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어린 순신이를 대장으로 두고서라도 순신이와 한편을 하고 싶어 했을 정도였다. 상황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몸을 숨기고 유리해질 때까지 나오질 않았다. 반나절이 넘도록 몸을 숨기고 아이들을 몰래 보내서 우리의 상황을 파악하다가 유리하다 싶을 때는 과감히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쳐들어와서는 우리 편을 둘러싸고 칼을 빼앗고 진을 점령했다.
어린 시절 몸을 숨기고 적의 진영을 호시탐탐 노리던 순신이의 얼굴과, 지금도 남쪽 바다 어느 곳에서 매서운 눈으로 왜군을 물리칠 기회를 노리고 있을 순신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러고 나니 남쪽의 바다가 한없이 믿음직스러워졌다.
설민석의 역사 특강
이순신의 생애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 바로 서애 류성룡입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수행해서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재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순신을 눈여겨봤던 류성룡이 지방에서 말단직을 떠도는 이순신을 끊임없이 요직에 천거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임진왜란이 벌어지기 1년 전에 작은 고을의 현감이던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파격 승진한 것이었습니다. 그건 임금인 선조가 내린 결단이었죠.
사실 선조는 이순신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류성룡에게 이순신에 대해 묻습니다. 서울 사람인지, 글을 잘 아는지 등등. 이 정도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파격 승진시킨 겁니다. 결국 류성룡이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만든 셈이죠. 끊임없이 요직에 천거하고 임금에게 간곡히 부탁해 승진시킨 것을 보면, 류성룡과 이순신 둘 사이가 굉장히 돈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부분의 소설은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류성룡이 쾌재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한산도대첩은 이순신의 3차 출전 때 일어났는데, 그전까지 일본 수군은 이순신이 이끄는 함대에 연일 패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주로 기습을 많이 당했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일본의 명장 세 명을 뽑아 이순신을 잡으라는 미션을 주고 조선에 보냅니다. 그 가운데 와키사카 야스하루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와키사카는 이순신의 2차 출전 당시에도 해전을 벌였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73척의 전선을 이끌고 가장 먼저 쳐들어와 한산도 앞바다까지 밀고 들어옵니다. 지금까지 해전에 투입된 일본 수군 중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이순신은 일본이 분명 싸우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육지로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지로 도망가지 못하게 일본 수군을 넓은 바다로 유인합니다. 이게 이순신의 판단력입니다. 소수의 선단이 넓은 바다로 도망가는 척 유인을 하니 일본군은 신나서 쫓아왔는데, 조선 수군은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전선들과 합류하면서 그대로 배를 180도 회전하며 학 날개 모양으로 둘러싸는 학익진을 펼쳐서 끝을 내버립니다. 학익진은 육군이 주로 쓰는 진법인데, 그것을 수전에서 활용한 장수가 바로 이순신입니다.
이때 일본 전선 73척 중에 59척이 격파되고 대선 1척과 중선 7척 등 14척만이 겨우 퇴각합니다.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구사일생으로 도주를 했죠. 영화 <명량>을 보면 와키사카가 이순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구루시마에게 계속 조심하라고 말하지만 무시당하고 결국은 뒤에서 보다가 도망쳐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 명량에서 대결했던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형인 구루시마 미치유키 역시 한산도대첩 이전인 2차 출전에서 이순신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명량>에서 류승룡 씨가 맡은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가족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며 전투에 뛰어들었다가 역시 이순신의 손에 죽게 되죠. 이순신이 구루시마 가문을 멸문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됩니다.
사이코(最高, さいこう) 이순신 _적장 구루시마가 바라본 이순신
이번에는 반드시 이순신을 잡아야만 했다. 그를 잡아서 죽은 내 형의 복수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날만을 기다렸다. 조선의 수군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해도 애초에 나는 적당히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조선을, 이순신을 철저하게 짓밟고 싶었다.
조선의 서해안으로 진출하기 위해 나는 모든 함선을 출전시켰다. 조금씩 조선군을 압박해가는데, 그들이 그걸 눈치채고는 진영을 옮기는 것 같았다. 드디어 서해안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길목을 지나가려는데, 이순신이 타고 있는 배가 선두에 있었고 그 뒤에 조선 전선들이 일자로 늘어서 있었다. 이순신의 배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뒤편의 전선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불을 뿜었다. 세키부네들이 이 10여 척의 배에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조류 때문에 배를 돌릴 수도 없었다. 뒤에서 계속 우리 배가 밀려 들어왔다. 좁은 길과 빠른 해류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든 것이 이순신의 계략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하려던 것이었다. 그의 계략에 내가 당하고 말았다. 이순신은 맨 앞의 배에서 호령하고 있었다. 수적 열세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10여 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우리를 상대한 이순신은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싸우고 있었다. 그의 호령 아래 하나씩 침몰하는 우리 배를 보면서 경외심까지 들었다.
나의 완벽한 패배다. 아니, 이순신의 완벽한 승리다. 그러나 이렇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오늘 여기에서 죽는다. 이순신과 함께 죽는다. 이순신과 함께 죽어 일본을 위협하는 요소를 없앨 것이다. 형의 죽음을 복수할 것이다. 조선의 병사들이여, 잘 봐두어라. 이것이 바로 나 구루시마다. 오늘 너희는 최고의 승리를 맛보았다. 그러나 최고의 장수를 잃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이제 내 눈엔 이순신밖에 보이지 않는다. 점점 이순신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구름처럼 많았던 우리의 배와 병사들도 모두 쓰러졌다. 화살이 내게 빗발치듯 쏟아지며 몸에 박히지만, 그저 뜨겁기만 할 뿐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무릎 꿇을 수는 없다. 이제 이순신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순신도 칼을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엄청난 위압감이다. 이제 내 칼을 그에게 꽂기만 하면 된다. 이순신의 커다란 칼이 나를 내리치려 한다.
"사이코, 이순신……."
설민석의 역사 특강
드디어 명량해전입니다. 사실 제 생각에는 이 전투에서 이순신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불가사의하죠. 왜 그런지, 일본과 조선의 전력부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조선의 전선은 13척이었습니다.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계를 보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명량해전이 끝나고 난 뒤인 11월 10일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배가 13척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래 12척이었는데 한 척이 추가로 건조되거나 수리를 마치고 추가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 13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전선은 책마다 다르지만 최대 333척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3대 333, 이건 말할 필요도 없는 싸움이죠.
장수의 특징도 비교해보겠습니다. 이순신은 어렸을 때부터 문과를 준비하던 선비 출신이었어요. 본격적으로 무과를 준비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입니다. 어린 시절 병정놀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본디 글 읽는 선비였죠. 거기다 수군보다 육군으로 근무한 기간이 더 길기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수군이 된 초반에는 뱃멀미 엄청 했을 겁니다.
일본의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태생부터가 다릅니다. 구루시마가 태어난 곳은 일본 동남쪽에 위치한 시코쿠의 에히메현입니다. 구루시마가 태어난 에히메현과 일본 본토 사이의 바다를 세토나이카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도 특히 조류가 센 지역이 바로 구루시마 해협입니다. 구루시마는 그 억센 물살에서 태어나 헤엄치고 물고기 잡으며 자란 사람입니다. 구루시마가 명량의 물살에 놀라 패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구루시마에게 명량은 동네 웅덩이 정도 되는 곳이었겠죠. 병력이나 경력 모든 면에서 구루시마가 이길 수밖에 없는 전투였습니다.
이제 전투가 벌어진 명량해협의 해류를 한번 살펴봅시다. 명량은 지금의 진도대교 부근인데, 해협이 굉장히 좁습니다. 거기에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니, 밀물이 들어오면서 병목현상이 벌어지고 갑자기 수심이 높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물살이 매우 세고 빠르죠. 이런 지역에 일본군이 330여 척의 전선 중 200여 척을 이끌고 들어옵니다. 해협이 점점 좁아지니 그 가운데 70여 척이 먼저 나서는데, 이 배들이 명량에서 블랙홀에 빨려들 듯 쑥 빨려들어온 겁니다. 일이 그렇게 될 것임을 예측한 이순신은 전선 13척으로 일자진을 형성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전선 뒤로는 1천여 척에 가까운 일반 백성들의 어선이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병력이 많아 보이게끔 눈속임을 한 것이죠. 이순신 장군,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조선의 전선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해도 13척과 70여 척의 싸움은 상대가 되지 않죠. 조선군은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웠고, 전선 31척을 격침시키고 나머지 배는 거의 초토화시켜버렸습니다.
이때 하늘의 도움도 받게 됩니다.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시간이 되자 바다가 한순간 고요해졌습니다. 그러다 썰물이 되면서 물살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하자 왜선들은 들어왔던 쪽으로 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도와주려고 뒤에서 들어오던 적선과 밀려나가는 적선이 서로 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된 겁니다. 이때 구루시마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이순신 장군이 건져 올려 목을 벤 후 배 위에 걸었다는 것 아닙니까. 뒤에 있던 1백여 척의 적선은 앞에는 구루시마의 목이 걸려 있겠다, 저 너머에는 어선인지 전선인지 모를 배들이 가득하겠다, 이순신은 불을 뿜으며 싸우고 있겠다, 무시무시한 거죠. 설상가상으로 물살이 반대쪽으로 흐르면서 집에 가라고 재촉하니, 안 되겠다 싶어서 후퇴를 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명량해전입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