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거대한 사랑의 박물관
이 책을 쓴 에드워드 브룩 히칭은 영국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작가로,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독특한 주제를 선정해 기상천외한 역사책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책에는 늘 희귀한 유물과 예술품을 보여주는 삽화가 풍부하게 실려 있는데,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에서도 그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총 300장에 달하는 고화질의 컬러 이미지를 수록했고, 삽화에 관한 재치 있는 해설과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도 덧붙였다. 책을 펼치면 마치 전문 도슨트와 함께 거대한 박물관을 거니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랑을 한다. 사랑을 삭제한 역사를 상상할 수 없듯, 사랑을 삭제한 삶도 상상할 수 없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P. 존스의 말처럼 “사랑은 세상살이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1만 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이 책은 결국 변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불변하는 사랑의 가치를 증명하는 이 책으로 우리는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찾아온 사랑을 더욱 소중히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저자 에드워드 브룩 히칭
영국의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독특한 주제를 선정해 기상천외한 역사책을 주로 쓴다. 희귀한 유물과 서적, 지도에 얽힌 사연을 역사·지리·신화·예술을 아우르며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오래된 지도와 관련된 기이한 역사를 들여다보는 아틀라스(지도책) 시리즈를 펴내 전문가와 비평가, 독자의 찬사를 받았다.
지도 위에 그려진 거짓말들을 보여주는 『팬텀 아틀라스(The Phantom Atlas)』, 하늘의 지도를 통해 인류의 천체 관측 역사를 담은 『스카이 아틀라스The Sky Atlas』, 신화와 상상 속 사후 세계의 지도를 엮은 『악마 아틀라스(The Devil Atlas)』를 비롯해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광인의 갤러리(The Madman’s Gallery)』 등을 썼다.
19세기 영국의 유명 인쇄업자 윌리엄 블레이즈의 후손이자 고서적과 고지도를 취급하는 골동품상의 아들로 자라 어릴 적부터 역사에서 쉬이 간과되는 기묘한 옛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영국 엑서터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영화학을 전공했고, BBC의 인기 퀴즈쇼 프로그램 Quite Interesting에서 6년간 자료 조사원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이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가디언』 『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등에 글을 싣고, 다양한 TVㆍ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버크셔의 저택에서 먼지투성이의 오래된 지도와 서적에 둘러싸여 글을 쓰며 지낸다.
■ 역자 신솔잎
프랑스에서 국제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스, 중국, 국내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번역 에이전시에서 근무했고, 숙명여대에서 테솔 수료 후, 현재 프리랜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면서 외서 기획 및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다양한 외국어를 접하면서 느꼈던 언어의 섬세함을 글로 옮기기 위해 늘 노력한다. 옮긴 책으로는 『유튜브 제국의 탄생』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스토리 설계자』 『결정력 수업』 『엄마의 멘탈 수업』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사
들어가며
01 인류의 가장 오래된 입맞춤│아인 사크리 연인상(기원전 9000년경)
02 사랑과 정욕의 고대 신들│차탈회위크의 의자에 앉은 여인상(기원전 6000년경)
03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랑│이난나와 두무지드의 결혼(기원전 2000-1500년경)
04 고대 이집트의 사랑│유니와 레네누테트의 부부 조각상(기원전 1294-1279년경)
05 고대 중국의 러브 스토리│복희여와도(8세기)
06 죽은 자의 손가락│케익스와 알키오네
07 테베의 신성 부대 이야기│카이로네이아의 사자(기원전 338년경)
08 고대 로마의 사랑│폼페이의 에로티카에서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우스까지(123년경)
09 그리스ㆍ로마와 중세의 외설적인 부적들│순례자의 배지와 날개 달린 남근
10 성애와 쾌락의 지침서│『카마수트라』(2-3세기)
11 메소아메리카의 사랑│혀를 뚫는 레이디 쇼크 조각(726년경)
12 바이킹의 연애 가이드│스칸디나비아의 브로치(800-900년경)
13 아름다운 로자먼드의 비극│헨리 2세와 미로 속의 비밀(1166년경)
14 두 번의 만남, 필생의 사랑│베아트리체를 사랑한 단테(1265-1321년)
15 피투성이의 암사자│잔 드클리송의 '나의 복수'(1343-1359년)
16 죽은 아내를 위한 대관식│포르투갈의 페드루 1세와 이네스 드카스트루(1361년)
17 연인에게 바치는 궁전│타지마할과 사마르칸트의 모스크(15세기)
18 영원한 포옹│묘비와 석관에 새긴 부부 조각상
19 그림 속에 숨은 비밀│〈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의 초상〉(1434년)
20 남편과 아내의 결투의 역사│한스 탈호퍼의 『싸움의 책』(1459년)
21 풀리지 않은 유니콘의 미스터리│〈유니콘 태피스트리〉(1499년)
22 하트(♥)의 기원│심장의 모양에서 사랑의 상징이 되기까지
23 문학 속 부정행위와 간통법의 역사│아이언 스파이더(15세기)
24 질투의 탑│중세 필사본 속 사랑(12-15세기)
25 사랑의 주문│마법의 파피루스와 중세의 주문서들
26 정조대에 잠긴 비밀│속박을 거부한 여성들
27 바다 위에서 넘실대는 사랑│섹스 너트와 스크림쇼, 수형자의 동전
28 불타는 사랑의 고통│〈불꽃에 둘러싸인 남자〉(1600년경)
29 심장의 지도를 그리다│〈애정의 땅〉(1654년)
30 사랑을 품속에 지니는 방법│연인의 눈 세밀화와 사랑의 정표들
31 무책임한 남편과 유능한 아내│엘리자베스 블랙웰의 『신비한 약초 도감』(1737-1739년)
32 밤거리의 여성들│『해리스의 코번트가든 여자 리스트』(1757-1795년)
33 전 세계를 항해한 최초의 여성│잔 바레의 비범한 사랑(1766년)
34 결혼이라는 매듭│요루바의 웨딩 사슬 조각상
35 사랑의 사기꾼들│제임스 그레이엄과 천상의 침대(1780년)
36 카사노바의 파란만장한 삶│자코모 카사노바의 『내 삶의 이야기』(1794년)
37 일본의 에로틱 예술, 춘화│〈어부 아내의 꿈〉(1814년)
38 심장이 없는 시체들│퍼시 셸리의 방랑하는 심장(1822-1852년)
39 비밀스러운 섹스 클럽│왕의 코담배갑과 거지의 축복(1822년)
40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초상화│새라 굿리지의 〈드러난 아름다움〉(1828년)
41 밸런타인데이의 역사│사랑의 은행에서 발행한 화폐(1847년)
42 우리는 왜 사랑을 노래할까?│러브 송의 역사와 〈슈신을 위한 사랑 노래〉
43 마음을 얻으려면 책을 선물하라│헨리 힐디치 벌클리존슨의 필사본(1870년경)
44 사랑의 밀어│빅토리아시대 암호 엽서와 꽃말(1837-1901년)
45 하늘이 맺어준 사랑?│열기구 결혼 열풍(18세기 말-19세기)
46 황금빛에 가려진 비밀│구스타프 클림트와 〈키스〉(1907-1908년)
47 시대별로 보는 키스│기원전 1만 년부터 20세기까지
48 집착에 사로잡힌 예술가의 사랑│프리다 칼로의 〈내 머릿속의 디에고〉(1943년)
49 데이팅 앱의 놀라운 역사│공개 구혼 신문광고부터 틴더까지(18-21세기)
50 태양계를 떠난 러브 스토리│보이저호의 골든 레코드(1977년-)
참고문헌
이미지 저작권자
감사의 글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
두 번의 만남, 필생의 사랑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단테(1265-1321년)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e)가 그린 「천국(Paradiso)」 제31곡의 삽화 속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천상의 장미(Rosa Celestial)를 올려다보며 천사들이 계급에 따라 동그랗게 모여든 모습에 경이로워한다. 잠시 후 베아트리체가 있던 곳에는 단테를 다음 곡으로 안내할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가 자리한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세운 거룩한 군대가 흰 장미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고, 하늘을 날며 자신들을 사랑하시는 분의 영광을 보고 그 위대함을 찬미하는 천사들은 수많은 꽃잎으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거대한 장미 속으로 내려갔다가 그들의 사랑이 깃든 곳을 향해 올라가길 반복했고, 그 모습이 마치 꽃밭에 들어갔다 달콤한 꿀을 빚는 곳으로 돌아가는 벌 떼 같았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를 생각하면 베아트리체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두 이름은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랜슬롯과 기네비어처럼 많은 이의 머릿속에 한 쌍으로 묶여 있다. 다만 이들의 실제 관계를 알게 된다면 놀랄지도 모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에게 관계라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물론 그녀는 단테의 『신생(Vita Nuova)』(1294)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영감을 주었고, (1308년에서 1320년 사이에 저술한)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신의 은총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하지만 (단테에 따르면) 두 사람은 겨우 두 번 만난 사이였다.
두 번의 만남 사이에는 9년이란 시간이 있다. 첫 만남은 단테의 부친인 알리기에로 디벨린초네(Alighiero di Bellincione)가 베아트리체 가족의 집에서 열린 오월제 행사 자리에 단테를 데려갔을 때였다. 당시 두 사람 모두 아홉 살이었고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했음에도 단테는 '첫눈에' 베아트리체와 사랑에 빠졌고, 이후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베아트리체는 피렌체 은행가의 딸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Beatrice Portinari)로 1287년 은행가 시모네 데바르디와 결혼한 인물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편 단테는 열두 살 때 정혼을 맺은 제마 도나티(Gemma Donati)와 결혼했다. 두 번째 만남은 피렌체 거리에서 우연히 성사되었으나 첫 만남보다 더 짧았다. 단테는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세 여성 중 흰색 드레스를 입은 인물이 베아트리체임을 알아보았다. 베아트리체가 그를 기억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단테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7년 후, 스물다섯의 나이로 베아트리체는 세상을 떠났다. 단테는 세상을 등진 채 그녀를, 아니 그가 이상화한 그녀의 모습을 시로 남기는 데 매진했고, 3년 후 『비타 누오바』(Vita Nuova,'새로운 인생')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기사도적인 사랑'이라는 중세 문학사조가 짙게 밴 작품으로, 이러한 작품에서는 작가나 예술가가 남몰래 홀로 귀족 부인을 흠모하는 한편, 예술적 대상이 되는 그 여성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보통 자신이 뮤즈가 된 사실조차 몰랐다.
연인에게 바치는 궁전
타지마할과 사마르칸트의 모스크(15세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라 할 만한 이곳의 중심부에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다. 하얗게 빛나는 타지마할(Taj Mahal) 묘소를 매일같이 찾는 수많은 방문객은 거대하고 둥근 양파 모양의 돔 아래에 자리한 두 석관을 마주한다. 아름답게 장식된 이 석관들은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과 아내 뭄타즈 마할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짜 석관이고, 황제와 황제가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건축물로 기리고자 했던 여성의 진짜 묘는 지하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함께 안식을 취하고 있다.
1628년 1월부터 1658년 7월까지 샤 자한(Shah Jahan)이 재위한 기간은 무굴제국의 문화적 황금기로, 예술과 건축이 새로운 경지에 이른 시기였다. 황제의 유산은 그의 치세에 건립된 수많은 건축물에 고이 새겨져 있는데, 아그라의 진주 모스크가 그중 하나다. 그는 델리에 신도시를 건설해 수도로 삼기도 했다. 붉은 요새라고 불리는 거대한 성과 위대한 자미 마스지드 모스크, 샬리마르 정원, 폐샤와르의 마하바트 칸 모스크도 빼놓을 수 없지만, 그가 전 세계의 문화적 기억에 각인된 계기는 1631년부터 시작된 타지마할('궁전의 왕관'이라는 뜻) 건축이었다.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가장 사랑한 아내로, 후에 뭄타즈 마할(Mumtaz Mahal, '궁전의 보석')이라는 이름을 얻은 아르주만드 바누(Arjumand Banu)가 열네 번째 아이를 출산하던 중 사망하자 그 깊은 상실감에 필적하는 웅장한 규모로 지은 건축물이다. 그녀가 사망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뗄 수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왕비는 아름다운 외모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조언자였고, 황실의 인장을 하사받기도 했다.
궁정 기록원이었던 모타미드 칸(Motamid Khan)은 『자한기르의 영광의 서(Iqbal Namah-e-Jahangiri)』에서 미모와 지성을 갖춘 그녀의 매력 때문에 다른 여성들은 빛을 잃었고, 황제는 다른 아내들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그들과는 "혼인 관계 그 이상이 아니었다. 샤 자한이 뭄타즈와 나눴던 친밀함, 깊은 애정과 관심, 편애는 다른 부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라고 기록했다.
형제들 간의 왕위 계승 다툼에서 승리를 거둔 셋째 아들 오랑제브에 의해 황제는 아그라 요새에 가택 연금을 당한 채 마지막 8년을 보냈다. 자한의 장녀 자하나라 베굽 사히브가 부친을 돌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곳에 함께 갇혀 지냈고, 황제는 장녀의 돌봄 속에 1666년 1월 30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오랑제브는 샤 자한을 뭄타즈마할의 묘비 옆에 안치하는 데 동의하며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안식처를 어머니와 가까운 곳에 마련하겠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있는 비비하님 모스크(Bibi-Khanym Mosque)는 타지마할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화려함은 뒤지지 않는, 이슬람권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다. 1399년 타메롤란(Tamerlane,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뜻으로 티무르의 별명-옮긴이), 즉 티무르 황제의 황후이자 배우자인 사라이 물크 하눔(Saray Mulk Khanum)은 원정을 떠난 남편을 놀래주려 사원 건립을 지시했다. 최고의 건축가와 장인이 쉼 없이 매달려 1404년에 비비하님 모스크('가장 오래된 아내의 모스크')를 완성했다. 지금도 그곳의 뜰 중심에는 길이 2.28미터, 너비 1.98미터에 이르는 석상으로 된 책 받침대가 놓여 있다. 현재는 비어 있지만 과거에는 금으로 장정되어 무게가 300킬로그램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쿠란 중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이 쿠란은 본래 무함마드(이슬람교 창시자이자 예언자-옮긴이)의 사위인 우스만의 것이었는데, 우스만이 쿠란을 읽던 중 살해당해 그의 피가 튀었고 이로 인해 성물이 되었다. 한 성자가 사마르칸트로 가져온 이 고대 유물은 몇 세기 동안 석상으로 된 받침대에 안치되어 지역 사람들과 순례자들의 숭배를 받았다. 사람들은 이 쿠란이 아이를 바라는 이들에게 마법과도 같은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아들을 원하는 여성이 임신하길 바라는 기도를 외우며 받침대를 세 바퀴 돌면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지가 그대의 팔과 다리를 원할 때, 그대는 진정으로 춤추게 되리라. 시인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이 남긴 글이다. 고고학이 발견한 가장 특이하고도 가슴 아픈 유물은 이러한 죽음의 춤을 영원히 함께하는 커플들이다. 아래에 보이는 에트루리아의 석관 뚜껑은 기원전 350년에서 300년 사이에 응회암으로 조각된 것으로 가장 아름다운 합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름진 깔개 위에 남편과 아내가 베개를 함께 베고 누워 애정 어린 포옹을 나누고 있다.
이 석관은 그 시대의 합장묘로 전해지는 몇 안 되는 귀한 유물일 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다. 석관 네 면은 긴 띠 형태의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각각 그리스인들과 여전사들의 전투, 사자 두 마리가 황소 한 마리를 물어 쓰러뜨리는 장면, 그리핀 두 마리가 쓰러진 말을 물어뜯는 장면, 전투를 벌이는 기병들과 보병들의 중심에서 벌거벗은 병사가 칼과 방패를 들고 영웅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석관 뚜껑에 조각된 부부로, 이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의 심장 형태를 닮았다. 석관에 새겨진 글을 통해 이것이 탄크빌 타르나이와 그녀의 남편이자 아른스 테트니에스와 람타 비스나이의 아들. 라르스 테트니에스의 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에트루리아는 그리스에 비해 여성이 의식과 공적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만큼 에트루리아의 예술품에서 부부가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증거이자 에트루리아의 장례 예술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아래의) '부부의 석관(Sarcophagus of the Spouses)'은 기원전 530년에서 51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부부가 미소를 머금은 채 함께 베개에 기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남편의 팔은 다정하게 아내의 어깨에 올라가 있다. 이 석관은 실제로 사망한 부부의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함으로, 400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있던 것을 공들여 다시 지금은 로마의 빌라줄리아 국립에트루리아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
놀랍게도 에트루리아의 유물보다 2천 년도 더 전에 완전히 다른 대륙에서 제작된 조각상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옆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이 조각상에서도 애정 어린 미소를 머금고 편안하고도 친밀하게 서로에게 팔을 두른 부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왕의 지인인 메미와 사부(The King's Acquaintances Memi and Sabu)'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품으로 사부의 머리 모양으로 미루어 이집트 고왕국 시대인 기원전 2575년경에서 2465년 사이에 제작된 조각상으로 보인다.
관련 정보가 거의 없지만 멤피스 지역의 기자 서부 묘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고, 조각상에 새겨진 글로 보아 이들이 왕족은 아니지만 왕족의 '지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유물을 진정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조각 그 자체인데, 언뜻 보면 그 위대함을 놓치기가 쉽다. 이러한 부부 조각상에서는 남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좀 더 지배적인 느낌을 주는 자세가 흔하다. 하지만 이 조각상은 부부가 나란히 서서 사부가 오른팔로 메미의 허리를 감아 아내의 포옹에 응답하고 있다. 4,500여 년 전의 행복한 부부 관계를 기념하는 조각상처럼 보인다.
죽음 후에도 포옹을 나누는 부부는 영국의 유명 석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치체스터대성당에 있는 이 석관은 10대 아룬델 백작인 리처드 피츠앨런Richard Fitzalan(1376년 사망)과 그의 두 번째 아내 랭커스터의 엘리너(Eleanor of Lancaster)의 안식처로 여겨진다. 남성은 피츠앨런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전사용 갑옷을 입은 한편, 여성은 우아한 베일을 쓰고 있다. 기사는 용기를 상징하는 사자 위에, 그의 아내는 충성심을 의미하는 개 위에 다리를 올려두었다. 아내의 손을 잡은 남성의 오른손은 장갑을 벗은 채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성당을 방문한 시인 필립 라킨(Philip Larkin)은 함께 안식을 취하고 있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그들을 기리며 「아룬델 무덤(An Arundel Tomb)」이라는 시를 쓰고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돌로 새긴 신의(信義)
두 사람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이들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것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진실에 가깝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바로 우리 중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 말이다
네덜란드 루르몬트의 오래된 묘지 헤트 아우더 케르크호프에 있는 특별한 무덤 한 쌍은 손을 맞잡으면 죽음이라는 장벽만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 또한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기병 부대의 지휘자이자 림뷔르흐의 의용대 대장이었던 J. W. C. 판호르컴(van Gorcum)은 38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1880년에 사망한 뒤 지역의 개신교 묘지 외벽 앞 무덤에 안치되었다. 8년 후, 그의 아내이자 가톨릭 신자인 J. C. P. H. 판아페르던(van Aefferden)은 사망하며 가족묘가 있는 가톨릭 묘지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대신 그녀는 남편의 무덤이 맞닿아 있는 담장 앞에 묻어, 옆의 사진처럼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듯이 비석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사랑받는 이들은 죽음이 가능하지 않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불멸이기 때문이다."
태양계를 떠난 러브 스토리
보이저호의 골든 레코드(1977년-)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Voyager)1호가 2012년 8월 태양계를 뒤로하고 펼쳐지는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진입했다. 1977년 8월 20일에 발사된 자매선 보이저 2호의 뒤를 따라 9월 5일에 발사된 보이저 1호는 이 글을 쓰는 지금을 기준으로 지구에서 237억 9.022만 6,63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피우쿠스(Ophiuchus, 뱀주인자리)에서 항해 중이다. 두 탐사선에는 우주를 탐험하며 마주하는 불가사의를 수집하고 전송할 장비와 더불어 '병 속에 든 편지'가 담겨 있다. 지구의 생활을 보여주는 녹음 파일과 사진을 담은 금제 음반이 그것이다. "10억 년 후의 생명체에게 과거 지구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설명할 기회처럼 느껴졌어요. 나사NASA의 보이저 인터스텔라 메시지 프로젝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앤 드루얀(Ann Druyan)은 이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소름이 끼치지 않았다면 나무로 만들어진 사람이겠죠."
8억 6,500만 달러의 보이저 프로젝트 예산 가운데 골든 레코드 제작에 할당된 예산은 겨우 2만 5,000달러였다. 레코드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결정을 맡은 위원회와 회장 칼 세이건(Carl Sagan) 그리고 앤 드루얀에게는 6주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드루얀과 세이건은 향후 수억 년간 이어질 불빛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일을 맡았다는 사명감을 등에 지고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이들의 성간 '믹스 테이프'에는 외계의 청취자에게 들려줄 온갖 종류의 인간과 비인간의 지구 생활이 담겨 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이 1959년의 록 음악 조니 B. 구드(Johnny B. Goode)와 함께 담겼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55개 언어로 전하는 환영 인사와 비인간의 언어인 혹등고래의 인사도 포함했다. 세이건의 아들 닉이 지구의 아이들을 대표해 외계 생명체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고, 세이건의 웃음소리도 녹음됐다. 파도와 비, 거품, 개구리, 새, 개의 소리와 더불어 펄서(pulsar) 맥동 주기, 기차, 비행기, 자동차 소리도 담겼다. "신성한 작업이었어요." 드루얀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도 우주의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싶습니다'라고 전하는 것과 같았으니까요.“
20분 50초 분량의 LP 레코드판에는 로켓이 발사되는 굉음과 엄마가 우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달래는 다정한 소리 다음으로 특이한 소음이 등장한다. 새해 전야제의 불꽃놀이처럼 폭죽이 터지듯 펑 하는 소리와 치직거리는 소리가 1분가량 이어지는데, 우리가 듣는 이 소리는 사랑에 빠진 뇌가 내는 소리다. 앤 드루얀은 먼 미래의 존재들이 이를 역으로 전환해 해석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생각을 소리로 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의 뇌전도(EEG)를 녹음했다.
이 소리를 녹음하기 이틀 전, 드루얀은 세이건의 자동응답기에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레코드에 실을 만한 완벽한 음악을 찾았다며 2,500년 전에 만들어진 중국 음악 유수(Flowing Streams)에 대해 알리는 메시지를 남겼다. 세이건은 이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은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키스는커녕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은 그 통화가 마무리될 즈음 서로를 향한 마음을 고백했고 드루얀은 그에게 청혼했다.
그녀는 2010년 NPR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제가 막 소리를 질렀어요. 정말 굉장한, 유레카 같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생생해요. 잠시 후 전화가 울려서 봤더니 칼이 다시 건 전화였어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진짜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우리 결혼하는 거 맞죠?"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네, 결혼하는 거 맞아요.' 그랬더니 그가 '그냥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요.' 이러더라고요. 8월 20일에 우주선을 발사하고 22일에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그 순간부터 1966년 12월 남편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어요."
두 사람이 통화하고 이틀 후, 여전히 흥분에 들떠 있던 드루얀은 뉴욕의 벨뷰 병원에서 뇌전도를 녹음했다. "사랑에 푹 빠진 스물일곱 살 여성으로서 제 감정이 그 레코드에 담겨 있어요. 영원한 기록이죠. 적어도 향후 1억 년 동안은요. 제게 보이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지울 만큼 대단히 강렬한 기쁨을 주는 존재예요."
1996년 12월 20일 세이건이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남편을 기리며 두 사람이 공유했던 철학에 대한 글을 남겼다. "우리가 살아 있고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기적과도 같았다. 불가해하거나 초자연적인 그런 기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연의 수혜자임을 알고 있다. ··· 그 온전한 우연이 이토록 관대하고 또 이토록 친절할 수 있다니. ··· 광대한 우주에서 광활한 시간에서 우리가 서로를 찾았다니. 20년이나 함께할 수 있었다니 말이다. 그 시간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고 그 이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그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또 내가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가 살아 있는 동
안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돌보고 또 가족을 돌봤는지, 그 기억은 내가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칼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를 봤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다. 이 우주에서 서로를 만난 것은 아주 멋진 일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사랑에 빠진 한 인간의 뇌파가 새겨진 금색 디스크가 우주선 몸체 옆에 고정된 채 저 멀리 우주를 항해하고 있고, 인간이란 종이 끝을 맞이한 후에도 그 여행은 이어질 것이다. 이 디스크는 앞에서 언급한 필립 라킨의 시치체스터성당에서 중세 시대의 남편과 아내가 손을 맞잡고 나란히 누워 잠든 석상을 본 후 쓴 아룬델 무덤의 마지막 구절과 너무도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바로 우리 중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