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클래식, 매일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내 삶을 바꾸는 1일 1클래식의 힘
클래식의 힘은 이미 과학계와 의학계에서 널리 증명되었다.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옥시토신, 도파민 등을 증가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감소시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음악을 들을 때 뇌에서 발생하는 알파파는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주고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음악 치료를 병행하자 기억력과 감정, 행동 개선에 큰 효과가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클래식이 신생아의 두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도 밝혀졌다. 클래식은 그야말로 ‘귀로 듣는 보약’인 셈이다.
이 책에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곡과 난생처음 듣는 곡부터 현대로 건너와 영화나 광고 등에 사용된 곡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울러 365개 작품을 담았다. KBS 클래식FM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목록을 바탕으로 곡을 선정해서 독자들이 들어보면 “아, 그 곡!” 하고 친숙함을 더하는 데 주력했다. 계절에 어울리는 곡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작곡 연도와 작곡가의 생몰 연도 등 날짜와 연관 있는 곡을 엄선했다. 악장, 빠르기, 나타냄말 등 입문자의 감상을 돕는 정보들이 빠짐없이 담겨 있으며, 작곡가들의 생애와 작곡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풀어내 읽는 맛을 더한다.
■ 저자 조현영
한때는 부모님의 권유대로 의사의 길을 가려 했던 모범생이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피아노를 포기하지 못하고 뒤늦게 음악을 전공한 반항아. 유학을 다녀오면 교수가 될 거라고 여겼던 순진한 시절을 지나 이제는 강연자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흔들리는 삶을 살아오면서 저자는 클래식의 힘을 절감했다. 300년 넘는 세월의 검증을 거친 클래식 음악에는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상과 그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생생하게 녹아 있어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지혜를 삶에 투영해볼 수 있었다. 클래식 듣기는 달라기나 명상, 매일 아침 영양제를 챙겨 먹는 일처럼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루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루틴이었다. 그렇게 매일 음악을 듣고 노트에 적어 내린 짧은 감상들이 모여 이 책으로 탄생했다. 클래식을 삶에 들여놓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이라면 이 책이 좋은 친구이자 시작이 될 것이다.
독일 쾰른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전문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최고전문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실기, 예술철학, 음악교육학을 가르쳤으며 『SPO』, 『광주일보』, 『좋은 생각』, 『삶의 향기』, 『토프』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다. 현재는 전국의 국공립도서관과 교육청도서관, 교육연수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지방자치인재개발원, 서울시인재개발원 등에서 클래식 인문학 강의와 연주를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네 인생에 클래식이 있길 바래』, 『기다렸어, 이런 음악 수업』(2023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클래식은 처음이라』, 『오늘의 기분과 매일의 클래식』, 『연표로 보는 서양음악사』, 『여기는 18세기, 음악이 하고 싶어요』, 『음악 도시 기행』,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 등이 있다.
■ 차례
이 책을 읽는 법
추천사
들어가며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부록1 | KBS 클래식FM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전체 순위
부록2 | 작곡가별 작품 찾아보기
365일 클래식이라는 습관
들어가며
돌아보면 내 삶에서 이룬 모든 것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쌓아올린 시간의 결과였다. 2016년에 첫 책을 낸 뒤로 벌써 아홉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되었으니, 해마다 한 권씩 써온 셈이다. 서툰 글솜씨로 이 일이 가능했던 건, 날마다 기록한 클래식 일기 덕분이었다. 매일 음악을 듣고 노트에 적어 내린 짧은 감상들이 모여 어느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 혼나면서 억지로 썼던 일기가 이제는 나의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기둥이 되어주고 있다.
습관의 힘은 강력하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달렸다. 나에게는 숫자로 측정되는 기록보다 매일 달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다보니 이제 10km도 거뜬하다. 하프 마라톤을 몇 번이나 완주했고, 곧 풀 마라톤에도 도전할 계획이다(아마 이 책이 여러분의 손에 들렸을 때쯤 나는 첫 풀 마라톤 기록을 갖게 될 것이다). 달리기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던 내가 마라톤이라니! 무언가를 매일같이 꾸준히 할 때 우리가 얻는 결과는 생각보다 놀랍다. 결국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고, 매일의 작은 습관 하나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은 종종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길 바라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는 일에도 갑자기란 없다. 변화는 대개 작고 사소한 반복에서 비롯되고, 그로 인해 우리는 날마다 단단해질 수 있다. 피아노 연습도, 클래식을 듣는 일도, 공부도, 글쓰기도, 달리기도, 하물며 업무 역량도 마찬가지다.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라도 묵묵히 해야 달라진다. 어떤 분야에서든 혜성처럼 등장해 아무리 뛰어나 보이는 사람이더라도 그 근저에는 날마다라는 습관이 있었을 것이다.
클래식을 듣는 일도 그렇다. 클래식 음악은 어느 날 단번에 귀에 익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렵고 멀게만 느낄 필요는 없다. 클래식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천천히 뭉근하게 다가온 음악이니, 이런 음악이야말로 욕심내지 말고 하루에 한 곡씩 꾸준하게 들으면 좋을 것이다.
한편 클래식을 들으면 뭐가 좋은지, 대체 그 효능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이런 질문은 참으로 난감하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마치 "여행을 가면 뭐가 좋아요?", "사랑을 하면 뭐가 좋아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클래식을 듣는 일은 주식 동향을 보고, 부동산 설명회를 들어 투자의 효능을 기대하는 그런 영역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행과 사랑이 그렇듯 클래식은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인 것이다. 클래식은 몸과 마음에 여유를 선물한다. 멍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 복잡한 현실을 이겨낼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대답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바흐: 프렐류드 1번 BWV.846
Bach: The Well-Tampered Clavier No.1 in C Major,
Prelude. BWV 846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독일)는 기본, 기초, 성실, 꾸준함 같은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새해 첫날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곡가가 바로 바흐다. 소소하고 뿌듯한 하루가 모여 한 달을. 1년을, 10년을 만든다. 대단한 계획이나 큰 포부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나이가 들수록 365일 날마다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은 그런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이른 새벽, 비질 소리에 눈을 뜬 뒤 반려 식물에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대문을 열고 나갈 때는 항상 하늘을 바라본다. 자판기에서 언제나 같은 캔커피를 뽑아 마신 뒤 올드팝이 흘러나오는 낡은 트럭을 몰고 출근한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면 동네 목욕탕에 들러 몸을 정갈히 씻고 단골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는 것이 그의 루틴이다. 어느 것 하나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성실하게 리추얼을 수행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영화 속 근면한 주인공을 보면서 이 곡이 떠올랐다. 바흐가 1722년 37살이 되었을 때 교육용 목적으로 작곡한 곡으로, 조성의 기본인 다장조부터 마지막 나단조까지 모든 장조와 단조를 사용해서 24곡씩 총 2권으로 묶어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으로 출간했다. 1권의 첫 곡(No.1 in C Major. BWV.846)은 조성의 기본인 다장조로 시작해서 마지막 곡(No.24 in B Minor. BWV.869)은 나단조로 느리게 마무리된다. 바흐의 곡으로 성실한 하루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방겔리스: March With Me
Vangelis: March With Me
매해 생일이 돌아오면 즐겨 듣는 곡이 있다. 그리스 작곡가 방겔리스(1943~2022)의 March With Me다. 이 곡을 들으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음에 크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지금과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방겔리스는 네 살 때 작곡을 시작한 천재로, 신디사이저(전자악기)를 이용한 음악과 행사용 음악을 주로 작곡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폐막식에서 그리스가 올림픽 깃발을 인수할 때도 그의 음악이 쓰였다. 특히 영화 《불의 전차》 삽입곡의 작곡가로 유명하다(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감상을 추천한다). March With Me는 아주 경쾌하고 웅장해서 힘을 내고 싶을 때 듣기 좋은 노래다. 힘들 때 손을 내밀어주는 귀인이 주변에 있다면 좋겠지만, 어려움을 딛고 스스로 일어나는 경험은 더욱 의미가 있다. "좌절한 사람들이 승리하고 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자(to win those los[ hearts and start this new life]"라는 가사가 특히 마음에 박힌다.
인생이 노랫가락처럼 잘 흘러갈 때는 누구나 쉽게 명랑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진짜 대단한 사람은 힘든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습관을 버리고 두 다리로 굳건히 버텨 선다면 충분히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몽세라카바예(1933~2018)가 부르는 버전으로 들어보자.
필립 글래스: 연습곡 5번
Glass: Etude No.5
단순함과 절제를 추구하는 예술·문화 사조인 미니멀리즘은 최근에는 덜어낼수록 멋지다는 정서와 함께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소유 강박에서 벗어나 최소한으로 최대한의 기쁨을 누리자는 주의다. 한편 196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미니멀 음악은 반복, 단순함, 일관된 박자 등으로 표현된다. 그 대표적인 작곡가가 필립 글래스(1937~, 미국)다. 그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더해서가 아니라, 있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계속 반복해서 음악을 만든다. 이 반복은 무의미한 동일함이 아니라 비슷한 듯하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변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필립 글래스는 이력이 대단히 독특한 작곡가다. 글래스는 어릴 때부터 악기를 연주하거나 음악 공부를 시작해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낸 보통의 작곡가들과 다르다. 부모님은 그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는 반대했지만, 골고루 균형 잡힌 기초 교육의 일환으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동의해서 아버지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도우며 음악을 알아나가게 했다. 그는 이때 재즈나 팝. 로큰롤과 현대음악을 익혔다. 그래서 그의 음악 세계는 클래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즈. 현대 순수 음악, 영화음악 등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글래스의 음악이 흐른다.
그의 연습곡(에튀드)는 1991~2012년 사이에 작곡된 곡으로 국내에서 한강 작가가 5번을 추천한 적이 있다. 5번과 더불어 다른 연습곡들도 함께 들어보길 권한다. 그가 직접 연주한 음원을 들을 수 있다. 또는 요즘 인기 있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비킹구르 올라프손(1984~)의 연주도 추천한다. 글래스는 1976년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로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에 그의 음악이 사용된 바 있으며,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디 아워스》에서도 그의 음악이 흐른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Op.18 1악장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 18, I. Moderato
라흐마니노프는 거짓말처럼 만우절에 태어난 불세출의 피아니스트이자 영화 같은 멜로디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작곡가다. 1873년 4월 1일에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적 소양이 뛰어난 아버지와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어머니에게서 일찍부터 음악을 배웠다. 스무 살에 모스크바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오페라 《알레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행복은 짧았다. 스승 니콜라이 즈베로프와 자신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준 차이콥스키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그의 음악적 멘토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다시 마음을 잡고 1895년에 교향곡 1번을 발표했지만 초연이 실패로 끝나자 생전에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깊은 우울의 늪에서 헤매다가 1900년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간 니콜라이 달 박사의 치료와 격려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1901년에 대중에게 라흐마니노프라는 이름을 지문처럼 각인시킨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탄생시켰다. 그의 나이 28세의 일이다. 우울증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동안 벌써 6년이 흐른 것이다. 이 곡은 우울증의 늪에 깊이 빠져 있던 라흐마니노프를 살린 생명수 같은 곡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5년 KBS 클래식FM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순위 1위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주제도 좋지만, 연주 시작 후 3분쯤에 흐르는 내림마장조의 2주제까지 꼭 감상하길 권한다. 2악장은 세 악장 중에서 가장 먼저 작곡되었는데(2악장, 3악장, 1악장 순으로 작곡되었다), 러시아의 눈 덮인 광활한 평야가 생각난다면서 1악장 못지않게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헨델: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Handel: Rinaldo, HWV.7a, Lascia ch'io pianga
오늘 감상할 곡은 바로크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곡인 아리아 <울게 하소서>다. 독일 출신 헨델은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1711년에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리날도》를 무대에 올린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영국 관객을 위해 공연 전에 가사집을 직접 발행했을 만큼, 그는 관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헨델의 영국 데뷔작인 《리날도》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리날도》는 총 3막으로 구성되며, 1095년에서 1291년 사이에 일어난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전쟁인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영웅 리날도와 그의 연인 알미레나, 그런 알미레나를 사랑하는 사라센의 왕 아르간테가 주인공이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마녀 알미다는 아르간테를 사랑해서 알미레나를 가두고 그녀로 변장해 왕을 유혹한다(마치 《백조의 호수》에서 흑조 오딜이 오데트로 변신해 왕자를 유혹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알미레나는 자신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아르간테 앞에서 자신을 그저 울게 내버려두라고 한탄하는데, 이때 부르는 곡이 바로 울게 하소서다. 지금은 여성 소프라노가 자주 부르지만, 당시에는 카스트라토가 불렀다. 게다가 당시에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유행했는데, 《리날도》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점이 특징이다.
정말 울고 싶을 때 들으면 한껏 울게 되는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헨델이 1707년 봄에 작곡한 첫 번째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lt trionfo del Tempo e del Disingmo》(HWV.46a)에 수록된 가시는 놔두고 장미는 꺾어라(Lascia la spring cogli la rosa)를 다시 한번 사용한 것이다. 가사는 다르지만 멜로디가 비슷해서 얼핏 들으면 같은 곡처럼 들린다. 두 곡을 비교해 함께 감상해보자.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는 오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생의 본질에 관한 깊은 철학적 해석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1악장
Beethoven: Violin Sonata No.5 in F Major, Op.24,
Spring, chr(124)_pipe. Allegro
오늘의 음악은 매년 봄이면 여러 군데서 울리는 또 다른 제철 음악, 베토벤의 <봄>이다. 봄과 관련된 클래식이 얼마나 많은가. 비발디의 사계 <봄>부터 하이든의 사계 <봄>, 슈만의 교향곡 <봄>. 멘델스존의 무언가 <봄노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봄은 활짝 만개하는 꽃처럼 영감이 넘치는 계절이다.
베토벤은 바이올린 소나타를 총 10곡 작곡했는데, 다섯 번째 곡인 <봄>은 4번과 비슷한 시기인 1801년에 작곡했다. 4번은 좀 우울한 데 반해, 이 곡은 아주 분위기가 밝다. <봄>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지만 곡의 첫 주제를 듣고 나면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듣기에는 참으로 편안한데 연주자에게는 아주 까다롭기 그지없는 곡이다. 바이올린 소나타지만 피아니스트의 역할이 못지않게 중요해서 피아니스트들끼리 이 곡은 바이올린 소나타가 아니라 피아노 소나타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봄>은 주로 3악장인 보통의 소나타와 다르게 4악장 구성이다. 제1악장에서 바이올린이 전주 없이 바로 멜로디를 연주한다. 처음 등장하는 주제 선율이 곡의 성패를 결정한다.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피아노가 반주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피아노가 멜로디를 연주하고 바이올린이 반주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사이좋은 애인 같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은 따뜻한 온도의 멜로디. 봄볕 같은 멜로디라서 천천히 산책하며 듣기에 참 좋다.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는 위로와 평온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 음악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슈베르트: 송어
Schubert: Die Forelle, Op.32, D.550
1817년 20세의 슈베르트가 작곡한 가곡 <송어>다. 짧지만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를 가진 명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전제품의 알림음으로 자주 쓰인다. 더위로 지친 하루에 청량감을 선물해주는 곡이다. 이 곡은 유절형식으로 원작 시는 4절이지만 슈베르트는 3절까지만 곡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가곡의 형식은 크게 통절형식과 유절형식으로 구분하는데, 통절형식은 하나의 절, 유절형식은 여러 절로 구성된 형식을 말한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곡은 대부분 유절형식이다. 클래식에 붙은 '송어'라는 제목이 참 재미있는데, 이 곡의 제목을 두고 송어인지 숭어인지 내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슈베르트가 맑은 시내에 뛰노는 '송어'를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다. 그러니 잘 알아두자. 바다에 사는 숭어가 아닌 민물고기 송어가 맞다.
<송어>는 친구인 미하엘 포글을 위해 작곡한 곡으로, 물고기가 유쾌하고 명랑하게 뛰노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거울처럼 맑은 강물에 헤엄치고 있는 송어가 잡히지 않자 낚시꾼이 일부러 물을 흐리고, 결국 거기에 속은 송어가 낚시꾼에게 잡혀 죽는다는 내용으로, 막상 가사를 알고 곡을 들으면 마냥 웃기가 어려워진다.
슈베르트는 이 가곡을 작곡하고 2년 후에 4악장 멜로디를 다시 한번 피아노 오중주 <송어>(Op.114)로 탄생시켜서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원래 피아노 오중주는 피아노와 현악 사중주로 구성되지만 <송어>는 특별히 한 대의 바이올린을 빼고 그 자리에 더블 베이스를 넣었다. 광산업자이자 아마추어 첼리스터였던 실베스터 파움가르트너가 슈베르트에게 자신이 직접 연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특별히 좋아했던 가곡 <송어>의 주제를 넣어 작곡해달라고 의뢰해서 자체 리메이크한 것이다.
쇼팽: 녹턴 2번 Op.9-2
Chopin: Nocturne No.2 in E-Flat Major, Op.9-2
흔히들 쇼팽을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른다. 그를 묘사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는 듯하다. 그의 음악 한가운데에는 '녹턴'이라는 장르가 있다. 밤의 신이라는 뜻의 라틴어 '녹스Nox'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노투르노'나 '녹턴', '녹튀른'으로 불리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밤과 어울리는 음악이다. 낮의 삶이 현실이라면 밤은 어딘가 차분하고, 사색에 잠기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꿈틀거리며 현실과는 다른 환상을 꿈꾸게 만드는 시간이다.
쇼팽의 녹턴 18곡은 생전에, 나머지 3곡은 사후에 발표되었다. 1827년부터 1847년까지 20년에 걸쳐 작곡된 그의 녹턴은 어떠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부드럽게 흐르는 시적 정취로 듣는 이를 황홀케 한다. 녹턴 2번은 전체 21개 녹던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멜랑콜리' 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 시종일관 조용히 흐르던 음악이 마지막 코다 부분에서는 강렬하게 콘 포르자con forza(힘 있게)로 연주되었다가 포르티시모에서 정점을 찍고 다시 차분하게 돌아와 마무리된다. 쇼팽의 포르티시모는 다른 작곡가의 그것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무조건 볼륨을 키워서 강하고 세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색으로 표현해야 한다. 슬픔과 살짝 다른 뉘앙스의 '애달프다'라는 단어가 쇼팽의 곡을 묘사하기에 적합할 듯싶다.
바흐: G선상의 아리아
Bach: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1068, II. Air (on the G String)
11월의 첫날이다. 바흐의 차분한 곡으로 늦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자. 바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이 음악은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국내 공공기관 화장실이나 국가 공무원 시험 시작 전에 자주 들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계 에반게리온》, 《도라에몽》, 영화 《세븐》, 《필라델피아》. 《동감》,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 애니 해슬렘의 팝송 에도 이 곡의 멜로디가 사용되었다. 정말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버전으로 응용된다. 원래는 바흐가 작곡한 관현악 모음곡 중에서 두 번째로 실린 <아리아>인데,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음역대인 G선 위에서 연 주할 수 있도록 편곡되어 라고 불린다.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트 빌헬미(1845~1908. 폴란드)가 편곡했다. 즉, 관현악 버전이 바흐의 원곡이고, 바이올린 한 대가 연주하는 버전은 빌헬미의 편곡이다. 첼로나 피아노 독주곡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의 작곡 연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1723년 이후로 알려졌다. 바흐가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접어든 시기로,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음악 감독 자리를 맡아 불철주야 교회음악을 많이 작곡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기 음악들은 특히나 더 경건한 느낌이 든다. 관현악 모음곡은 총 네 곡(BWV.1066~1069)인데, 오늘의 음악은 관현악 모음곡 중 세 번째 곡인 1068번에 수록된 곡이다. 1068번은 서곡. 아리아, 가보트, 부레. 지그 등 각각 다른 춤곡들로 이루어져 있고, 전곡은 25분 정도 연주된다. 바흐의 음악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 배경음악으로 틀어두기에 아주 적절하다. 슬프면서도 따뜻해서 위로가 되고 머리를 맑게 해주어 집중력도 높여준다. 나에게는 바흐의 음악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음악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