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

   
카밀라 타운센드 (지은이), 진정성 (옮긴이)
ǻ
현대지성
   
16900
2025�� 09��



■ 책 소개


원주민의 목소리로 되살아난 진짜 아즈텍
스페인 정복자들이 질투한 ‘호수 위의 베네치아’

아즈텍 문명은 인류사에서 가장 강렬한, 동시에 가장 베일에 둘러싸인 세계다. 서양인들은 아즈텍을 ‘잔혹한 인신 공양의 제국’으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였다. 심장을 바치는 것은 살인이 아닌 우주적 거래였다. 태양신은 매일 밤 지하세계와 싸우며 스러지고, 인간의 피로 다시 태어나 아침을 밝혔다. 아즈텍 전사들은 자신의 심장으로 태양을 되살려 세상의 종말을 막는 영웅이었던 것이다. 아즈텍 사람들은 세계가 네 번 무너지고, 다섯 번째 태양이 떠오르며 비로소 그들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았다.

그들은 영원이라는 긴 시간에서 ‘현재’를 빌려와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소중히 여겼다. 아즈텍 신화 속 ‘다섯 번째 태양 이야기’는 단순한 옛 전설이 아니라, 제국의 존재 이유와 사회·정치·종교적 질서를 설명하는 거대한 우주론이었다.

이처럼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아즈텍 사람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복원한 책이다. 큰 사랑을 받았던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 묘사된 것처럼, 아즈텍 사람들은 죽음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일원론적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삶의 연장이었고, 신의 섭리 안에서 세상은 끊임없이 순환했다. 이 책은 아즈텍 원주민의 기록들을 통해,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던 멕시코 신들의 전설과 인간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풀어놓는다.

■ 저자 카밀라 타운센드
‘쿤딜 역사상’ 수상자, 럿거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미국과 중남미 원주민 역사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역사학자다.

펜실베이니아 브린모어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럿거스대학교에서 비교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간 라틴아메리카와 원주민 문헌 연구에 매진했다.

뉴욕 콜게이트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그녀는, 어느 날 예일대학교에서 열린 기초 나우아틀어 강좌에 참석했다. 그 순간부터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학문적 호기심이 그녀를 붙잡았고, 곧 방대한 아즈텍 원주민들의 기록이 새로운 연구의 장을 열었다. 그녀는 나우아틀어 문헌을 원어로 해독해, 유럽인의 기록에 가려진 아즈텍인의 목소리를 복원해냈다. 그 결실인 『다섯 번째 태양(Fifth Sun)』으로 2020년 영미권 역사학 최고 권위의 ‘쿤딜 역사상’을 수상하며 학문적 성과와 대중적 울림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현재 럿거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녀는 아즈텍 문명을 단순히 ‘잔혹한 인신공양의 제국’으로 낙인찍은 기존의 왜곡을 바로잡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의 시선을 넘어 원주민의 기록을 통해 신화와 역사를 재구성하는 그녀의 작업은 아즈텍 문명이 인류 보편적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 역자 진정성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바쁜 뇌를 회복하라』, 『피터 버핏의 12가지 성공 원칙』, 『빠르게 생각하고 똑똑하게 말하라』, 『브레인포그』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사: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아즈텍 신화
들어가기 전에: 멕시코 중부를 호령했던 아즈텍 제국
아즈텍 문명을 이해하는 5가지 필수 상식

1부 멕시코 중앙 고원 지역에서 탄생한 문명
1장 아즈텍 문명에 대한 오해와 진실
2장 아즈텍 문화를 연구하기 어려운 이유

2부 오묘하고 복잡한 아즈텍 신화
3장 새로운 세상이 열리다
4장 개성 넘치는 다채로운 신들

3부 아즈텍인의 여정
5장 멕시코 중앙 고원을 떠돌던 여러 종족
6장 메쉬카의 정착과 도시의 발달

4부 역사와 전설의 희미한 경계
7장 메쉬카의 동맹과 적들
8장 아즈텍 제국의 흥망성쇠

5부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이들
9장 영적 믿음을 지녔던 아즈텍 사람들
10장 신의 뜻을 피하거나 받들기 위한 의식
11장 아즈텍의 ‘희생 제의’ 바로 알기

6부 가톨릭과의 융합 그리고 멕시코의 오늘
12장 스페인의 침략과 아즈텍의 몰락
13장 ‘죽은 자들의 날’과 전통을 보호하는 사람들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

 

멕시코 중앙 고원 지역에서 탄생한 문명

아즈텍 문명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전 세계 곳곳의 역사를 살펴봐도 지금의 멕시코 중부 지역에 존재했던 아즈텍 문명만큼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문명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즈텍인들은 흔히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잔혹한 신앙을 지녔던 사람들로 묘사되곤 합니다. 아즈텍 문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것이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대부분 '아즈텍' 하면 인간을 제물로 바쳐 신을 찬양하고 기렸던 잔혹한 문명이라고 떠올립니다. 그래서 주변 종족이 아즈텍을 증오했고, 16세기 초에 바다를 건너온 스페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아즈텍 문명을 무너뜨렸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일부만 진실이며, 실상은 매우 달랐습니다. 흔히 알려진 아즈텍에 대한 오해는 아즈텍 문명을 발견하고 정복했던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이 퍼뜨린 것입니다. 그러나 고문헌을 살펴보면, 아즈텍 문명은 오히려 풍요롭고 매력적인 전통을 간직한 다채로운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혹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지만, 요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극적이고 무시무시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지요. 지금부터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원시적이고 잔인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아즈텍 문명과 전통을 함께 살펴봅시다.


아즈텍 이전의 멕시코

역사상 마지막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아 오늘날의 러시아 시베리아와 미국 알래스카가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약 1만 5,000년에서 1만 1,000년 전. 아시아 대륙의 종족들은 이 육지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세 차례에 걸쳐 이주했습니다. 초기에는 북부 지역에 머물며 유목 생활을 했으나, 빙하가 녹고 환경이 달라지자 사냥할 동물과 채집할 식물을 따라 점차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이주해 온 집단들은 서로 갈라져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기원전 1500년경 멕시코 테우안테펙 지협의 북쪽 해안에서 탄생한 올메카 문명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옥수수와 콩 농사를 지은 사회였습니다. 더 이상 남하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이지요. 어떤 종족이 한 장소에 정착하면 항상 그렇듯 문명이 꽃피었고, 다양한 분업과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올메카 문명은 대서양 건너편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탄생한 문명보다 약 2.000년이나 늦게 전개된 것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일찍이 농경을 시작해 점차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 나갔고, 훗날 그 유럽의 후예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예속시킨 것은 어쩌면 역사의 흐름이 이끈 필연적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올메카 문명은 인상적이고 다채로운 사회로 발전했습니다. 이들의 달력, 상형문자, 공예 기술은 이웃 종족의 찬탄을 샀습니다. 올메카 문명의 영향은 동쪽으로 퍼져나가 오늘날 멕시코 동부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 위치했던 마야 문명을 탄생시켰고, 서쪽으로는 멕시코 분지(멕시코 중부에 위치한 고원)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지역에서 농업에 기반한 여러 도시국가가 잇따라 융성과 쇠락을 맞이했습니다.


올메카 문명 인근, 멕시코 분지에 형성된 여러 문명과 도시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은 지금까지도 놀라운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국가, 테오터우아칸입니다. 비록 남아 있는 문헌은 없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지만, 이 고대 도시국가의 유적지는 당시 테오티우아칸 거주민의 세계관과 생활을 오늘날까지도 또렷하게 전해줍니다. 테오티우아칸은 북쪽으로는 오늘날의 미국. 남쪽으로는 중앙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장거리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650년경 어떤 이유로 국가 체제가 무너졌고(외부의 침략 또는 내부로부터의 반란 등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옥한 토지를 찾아 돌아다니던 북쪽 사막 지역의 유목민이 이 지역으로 옮겨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묘하고 복잡한 아즈텍 신화

새로운 세상이 열리다

태초에 시간이 있었습니다. 현재에서 뒤를 돌아보면 불확실한 과거가 보이고, 앞을 보면 상상하기조차 버거운 무한한 미래가 펼쳐지지요. 아즈텍인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할 때(넓은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할 때) 비로소 문명화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즈텍 문명에서는 한 세기를 52년으로 보았습니다. 새로운 도시국가를 공식적으로 건설할 때마다 아즈텍인들은 지난 세기를 매듭짓고, 매듭지은 연도를 기록으로 남겨 도시국가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록을 이어나갔지요. 동시에 아즈텍인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260일 주기의 제의용 달력도 사용했습니다.


수 세기가 흐르고, 유럽인이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고 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아즈텍 제국의 후손인 멕시코 사람들은 시간을 파악하고 기록하는 법을 보존하고 기억하며 오래된 전통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아즈텍인의달력: 시우포우알리와 토날포우알리

거의 모든 옛 메소아메리카 문명과 마찬가지로 아즈텍 문명도 시간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측정했습니다. 태양력에 기반한 1년 주기의 달력 '시우포우알리지'와 복잡하게 반복되는 요일 주기 달력 '트남포우알리'를 사용한 것이지요(365일을 1년으로 삼고 북유럽 신의 이름을 딴 요일을 함께 사용하는 유럽 달력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양력에 기반한 시우포우알리는 1년을 18개월, 한 달을 20일로 계산해 나온 360일에, 네몬틀리(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불운한 날) 5일을 더해 총 365일이었습니다. 불운한 날인 네몬틀리에 사람들은 매일 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 해가 뜨길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제의에 주로 사용된 종교력인 토날포우알리는 영적인 날의 주기를 따르는 방식입니다. 1부터 13까지의 숫자와 기호 20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260개의 '숫자-기호' 쌍을 이루지요. 이렇게 날짜를 세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은 아마 아즈텍 문명의 산과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잉태하고 월경이 멈춘 날부터 출산일까지의 기간을 계산하면 대략 260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즈텍 사람들은 토날포우알리에 따라 새로 태어난 아이의 생일에 맞추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시우포우알리(365일)와 토날포우알리(260일)가 겹치는 주기는 52년(18980일)마다 다시 반복되므로, 아즈텍은 52년을 한 시대의 주기, 즉 세기로 묶어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100년을 한 세기로 여기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지요. 아즈텍 달력은 복잡한 셈법을 따랐기에 현대인인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제국을 다스리던 지배자와 제관이 엄격한 규율에 따르며 날짜 계산을 신성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성 넘치는 다채로운 신들

믹스코아틀부터 코욜사우키까지, 신적인 존재들

여러 문화권에서 신들은 단순한 신화와 전설에서 벗어나 오래된 옛이야기의 주인공 또는 실존 인물과 동일시됩니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화와 설화의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하지요. 이야기 속에서 신들은 우리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때로는 인간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심지어 어떤 전설은 신이 영적 존재가 아니며 먼 과거에 실존했던 태초의 인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묘사하기도 하지요. 섬기던 신으로부터 힘을 부여 받아 그의 뒤를 잇는 반신반인의 신비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신화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주인공이나 하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변형되며 후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아즈텍 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옛이야기 속에 신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강력한 여신 이츠파팔로틀(흑요석 나비)은 멕시코 분지에 정착한 한 종족 치치메카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준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터전을 찾아 남하했던 호전적인 아즈텍의 기질을 반영하는 설화이지요. 이츠파팔로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쪽으로 가서 활을 쏘아라.

그런 뒤에는 북쪽의 사막으로 가서 활을 쏘아라.

다음으로 서쪽으로 가서 활을 쏘아라.

마지막으로, 정원의 땅이자 꽃의 땅으로 가서 활을 쏘아라."


이츠파팔로틀은 치치미메를 이끄는 우두머리이기도 했습니다. 치치미메란 아즈텍 신화 속 영혼, 악령들이 사는 세상으로 별, 특히 일식과 관련된 정령의 집단이었습니다. 또한 이츠파팔로틀은 아즈텍 신화 속 중요한 신이자 영웅으로 여겨지는 믹스코아틀의 어머니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츠파팔로틀은 아이를 낳다 죽은 산모의 혼을 달래주는 신이었지요. 아즈텍 신화 속에는 다양한 남신과 여신이 등장하지만, 이츠파팔로틀은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이고 강력한 여신 중 하나입니다.


다른 이야기에는 이츠파팔로틀과 관련한 인물이 한 명 나오는데, 바로 '시우틀라쿠일롤쇼치친'이라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뛰어난 지식과 재능을 지닌 인물로, 어느 추장의 부인이었다가 그가 사망한 뒤 스스로 통치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이츠파팔로틀의 힘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여성으로 묘사되지요. 이츠파팔로틀에 관한 여러 신화에는, 살아가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신을 만난다면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메소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아즈텍인의 관점

아즈텍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사상이자 관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주어진 지상에서의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야기꾼과 시인들은 입을 모아 청중에게 인생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사람의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게 전부인 만큼 한껏 누려야 했지요. 아즈텍인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한 우주로부터 '빌려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아즈텍인들은 같은 알테페틀에 속한 동족을 아끼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애썼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족을 부양하고 끝까지 책임질 것을, 어머니는 딸에게 삶이 늘 순탄하지는 않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을 가르쳤지요. 아즈텍족은 힘들 때면 '누가 죽음에 굴복하는가' 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지만, 사는 동안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부족 전체가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며 망자는 사랑하는 동족에 의해 오랜 시간 기억될 수 있다고 보았지요. 그들은 떠난 사람을 생전처럼 기억했습니다.


아즈텍 문명에서 믿음과 신앙은 신에 의해 주어진 삶에 감사를 표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다양한 의례를 행했지요. 향긋한 전나무를 모아 펼치고 바닥이 깨끗해질 때까지 비질을 했으며, 밤새도록 기도를 올리고, 가시로 스스로를 찔러 피를 흩뿌리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들은 인간이 동물을 기르고 그 목숨을 취해 고기를 얻는 것처럼, 인간의 생명을 희생해 신에게 그 육신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희생'을 중요하게 여겼던 아즈텍인

아즈텍 신화 속 유명한 신들은 몸소 자기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탄생 신화에 따르면 나나우아친은 세상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고, 케찰코아틀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사람들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고 판단하자 스스로 몸을 내던졌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나나우아친은 태양이, 케찰코아틀은 샛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적인 존재였고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삶을 소중히 여겼던 이들에게 스스로 귀중한 생명을 포기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것도 올바른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즈텍인들은 적들과 포로의 생명을 대신 바치는 방식을 택한 것이지요.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적군을 희생시키는 것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 널리 퍼진 관습이었습니다. 패배한 쪽은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조롱받고 멸시당하는 대신 오히려 존중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신성한 장소에서 기도를 한 뒤 희생물로 바쳐졌지요. 이렇게 전쟁 포로를 희생 제물로 삼는 관습은 아마 아주 오랜 시간, 몇 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즈텍 지배층은 이 관습을 무기처럼 활용해 상당수의 사람들을 희생 제물로 삼았습니다. 제물로 바쳐지는 이들은 죽기 전까지 온갖 호사를 누렸고, 산 사람들은 희생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지요. 전쟁터에서 포로를 생포한 전사는 그 포로가 희생되기 전에 이렇게 읊조렸다고 합니다. '이 자는 나의 자식과도 같다. 그리고 희생된 자의 피는 신전에 뿌리거나 흙으로 만든 신상神像에 발랐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신에게 영적인 힘을 바친다고 생각했지요.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부족은 전쟁에서 지면 희생 제단 위에서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죽음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운명과 같았지요.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기보다. 그런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노래를 지어 부르곤 했습니다. 심각한 곤경에 처한 상황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으로 '그는 이미 불 가장자리, 신전의 계단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젊은 아즈텍 전사들은 종종 '꽃'에 비유되었습니다. 이들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간이자 동시에 전쟁에 나갈 때는 꽃봉오리처럼 덧없는 존재였습니다.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힐 경우 제단 위에 올라앉아 죽음을 감수해야 했지요.


한편 여성은 출산을 할 때 이런 죽음의 위험을 마주했습니다. 출산은 '미키스판'(죽음의 시기)이라고 불렸는데, 이때 사람들은 킬라스틀리 여신에게 기도해 산모가 우주로부터 생명을 붙들어 땅 위에 내어놓는 것을 도왔습니다. 더불어 아즈텍인들은 산모가 아이를 낳다 목숨을 잃으면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로 추앙하며 오랜 시간 기렸습니다.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이들

영적 믿음을 지녔던 아즈텍 사람들 _ 신의 뜻을 받들고 때로는 맞서 싸우다

메쉬카가 멕시코 중앙 고원에서 터를 잡고 세력을 넓혀 만든 연합체 아즈텍 제국은 백여 년 간 지속되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에 속하는 한 알테페틀 코요아칸의 지도자이자 지혜로운 현자. 틀라마티니 초초마친은 다양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며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이 사는 땅에서 테노츠티틀란으로 아쿠에쿠에사를 강의 물길을 돌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부족해지면 곧 사람들의 삶도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강을 수호하는 쿠에쿠에시를 향한 깊은 믿음과 존경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초초마친은 현실적이면서도 독실한 인물이었지요.


그러나 우이칠리우이틀의 자손인 우이칠라친은 초초마친의 경고를 무시하고 메쉬카의 지도자인 아우이소톨로 하여금 초초마친을 목 졸라 암살한 뒤 강의 물줄기를 테노츠티틀란으로 돌리게 합니다. 그러자 쿠에쿠에시의 복수 때문인지 수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홍수가 일어났지요. 사람들이 달아나자 화가 난 아우이소틀은 우이칠라친도 같은 방식으로 암살하라고 명합니다. 강 하나 때문에 두 지도자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지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아즈텍 사람들이 독실하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어느 정도 냉소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초마친은 마법사의 전설을 이용해 물을 지키려 했습니다. 우이칠라친은 메쉬카 왕에게 아첨하고 그의 뜻을 지지하고자 전설을 무시했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는 신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자신의 뜻을 고집하던 두 지도자는 영력있는 강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지요.


어느 문화권이나 비슷하겠지만, 아즈텍 사람들은 종종 살면서 신앙에 얽매인 자기 자신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이들은 삶을 개척하며 자신의 목적을 찾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망과,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뜻에 달려 있다는 종교적 믿음 사이에서 갈등했지요. 경외와 경의를 느끼는 한편 신 앞에서 스스로 한없이 작아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애환의 감정을 노랫말에 담아 흥얼거리고 읊조리기도 했지요.

"신은 언제나 인간 위에 군림한다네.


그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은 존재인 뿐이지.

신은 우리를 비웃고, 죽이고, 파괴한다네."


그러나 아즈텍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무력하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오래 계속된 갈등과 전투를 겪으며 심지가 굳은 그들은 무엇과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결코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주어진 운명이나 풀어 나가야 할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가톨릭과의 융합 그리고 멕시코의 오늘

스페인의 침략과 아즈텍의 몰락

가톨릭교가 멕시코 지역에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아즈텍 제국이 몰락한 1521년 이후였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미 몇 년에 걸쳐 멕시코 연안을 탐사했고, 메쉬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약 2년간 테노츠티틀란 안팎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온 새로운 종교가 멕시코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지요.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에 정착하고 원주민들과 섞여 살기 시작한 지 한참 지난 후부터 비로소 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멕시코 원주민들은 서로 다른 두 종교, 아즈텍 종교와 유럽 가톨릭교 사이에서 독특한 신앙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은 몇 세대를 거치며 이어졌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멕시코 학자들은 멕시코에 원주민 토속 신앙과 유럽 가톨릭이 뒤섞여 공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멕시코에서 가톨릭교가 어떻게 변형되어 전파되있는지는 오랜 시간 유럽 학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편협한 시선으로 아즈텍 제국을 봤지요. 그들은 원주민이 고대 예언에 따라 에르난 코르테스를 돌아온 케찰코아틀 신으로 오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몬테수마가 자신의 제국을 이방인에게 쉽게 내주었고, 유럽 백인들이 경외심에 젖은 미개한 아즈텍 사람들에게 가톨릭교의 유일신 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지요. 이는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시선에서 본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아즈텍 사람들이 바로 가톨릭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고, 자신들의 고유한 종교와 유럽의 이질적인 종교를 융합하며 두루 받아들이는 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스페인 정복자와 아즈텍 제국의 전쟁

스페인 탐험대가 멕시코 인근에 상륙해 아즈텍 제국을 탐사하기 시작했을 때, 몬테수마 2세는 제국의 모든 외곽 지대에 정찰대를 보내고 초소를 지어 침략자를 감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즈텍 제국이 무너지고 수년이 지난 뒤, 당시 정찰대로 참여했던 한 원주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일은 왕에게 보고되었다.

파발이 도착하는 사이 다른 파발이 떠났다.

몬테수마 2세는 침략자에 대해 정확히 보고하라 명했고,

모든 보고를 꼼꼼히 듣고 대비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노예 생활을 하던 아즈텍 출신 원주민 여성 '라 말린체'를 통역사이자 안내인 삼아 테노츠티틀란으로 향했지요. 정복자들이 아즈텍 제국의 중심부로 더 가까이 진군할수록 그들의 소식은 내밀하게 전해졌습니다. 마침내 아즈텍 제국의 몬테수마 2세와 스페인 탐험대가 서로를 마주했을 때, 스페인 탐험대는 말린체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통역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몬테수마는 이미 그들의 행적을 관찰하고 있었다며 말을 끊었습니다. 결국 두 세력 사이에 큰 전쟁이 터졌고, 아즈텍 제국과 동맹 세력은 힘껏 맞서 싸웠으나 허망하게 패배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지요.


결론적으로 아즈텍 제국은 16세기 초 스페인 탐험대의 침공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해지는 신화와 역사는 알 수 있지만 당시 아즈텍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은 알기 어렵지요. 그들은 스스로 외부의 적에게 정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그런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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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