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첫 문장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은이), 김승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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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북
   
18800
2025�� 05��



■ 책 소개


세상을 바꾼 36권의 과학 고전과 그 안에 적힌 위대한 문장들을 담은 ‘과학 + 역사’ 책

이 책은 세상을 바꾼 뛰어난 과학 원전을 소개하며 과학의 역사를 들려주는 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던 과학사 책과는 다르다. 단순히 과학적 발견을 나열하지 않고 그 발견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을 넘어 ‘맥락’을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과학이란 오류 없이 진리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 본연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때로는 오류에 빠지기도 하며, 또 많은 경우에 매우 뛰어난. 이 책을 통해,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던 과학이 실은 아주 인간적인 추구임을 깨닫고 과학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수잔 와이즈 바우어
저자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1968년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초/중/고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마친 후 17세에 문학과 언어 부문 미국 최고의 대학인 William & Mary in Virginia에 대통령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옥스퍼드대학교 교환학생으로 20세기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에 돌아와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영문학과 미국 종교사 두 개의 전공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동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라틴어, 히브루어, 그리스어, 아랍어, 프랑스어, 한국어를 구사하며 다방면의 장서를 넓고 깊게 읽는 다독가이자 자신의 지식을 쉬운 문체로 풀어쓸 줄 아는 친절한 선생님으로서 ‘세계 역사 이야기’, ‘독서의 즐거움’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 역자 김승진
역자 김승진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경제부와 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환경 불평등과 국제 거버넌스를 주제로 시카고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나무의 말’, ‘권력과 진보’, ‘교육과 기술의 경주’, ‘커리어 그리고 가정’,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격차’ 등이 있다.
  
■ 차례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책 36권
서문 혹은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 - 수잔 와이즈 바우어

1부 세상의 시초를 열다
01 히포크라테스 : 최초의 과학 문헌 - 처음으로 자연 세계를 자연 용어로 기술하다
02 플라톤 : 인체를 넘어서 - 처음으로 우주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다
03 아리스토텔레스 : 변화 - 처음으로 진화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다
04 아르키메데스 : 모래알 - 수학을 사용해 우주를 측정하다
05 루크레티우스 : 빈 공간 - 신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연 세계를 설명하다
06 프톨레마이오스 : 지구 중심적인 우주 -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책이 나오다
07 코페르니쿠스 : 최후의 고대 천문학자 - 더 정교한 수학으로 대안적인 우주론을 제시하다

2부 과학적 방법론이 탄생하다
08 프랜시스 베이컨 : 새로운 제안 -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법에 도전하다
09 윌리엄 하비 : 입증 - 관찰과 실험으로 고대의 위대한 권위자를 반박하다
10 갈릴레오 갈릴레이 :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 - 관찰과 증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무너뜨리다
11 로버트 보일, 로버트 훅 : 도구의 도움 - 자연을 왜곡하고 감각을 확장해 실험 방법을 향상시키다
12 아이작 뉴턴 : 논증의 규칙 - 실험 방법론을 전체 우주로 확장하다

3부 지구를 읽다
13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 지질학의 기원 - 지구 과학이 탄생하다
14 제임스 허턴, 조르주 퀴비에 : 새로운 과학의 법칙 - 지구의 형성을 설명하는 양대 이론이 나오다
15 찰스 라이엘 : 길고 점진적인 역사 - 동일 과정설이 정설로 자리잡다
16 아서 홈스 : 답해지지 않은 문제 -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다
17 알프레드 베게너 : 거대 이론의 귀환 - 대륙 이동설이 제기되다
18 월터 앨버레즈 : 돌아온 파국 - 지구사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격변적인 외부 사건’이 재등장하다

4부 생명을 설명하다
19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 생물학 - 처음으로 생명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하다
20 찰스 다윈 : 자연 선택 - 처음으로 종의 기원에 대해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제시하다
21 그레고어 멘델 : 유전 - 유전의 법칙과 작동 기제가 드러나다
22 줄리언 헉슬리 : 종합 - 세포 수준의 연구와 거시적 진화 이론을 결합하다
23 제임스 D. 왓슨 : 생명의 비밀 - 생화학으로 유전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다
24 리처드 도킨스, E.O. 윌슨, 스티븐 제이 굴드 : 생물학과 운명 - 신다윈주의적 환원론과 그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다

5부 우주로 향하다
25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상대성 - 뉴턴 물리학의 한계가 제기되다
26 막스 플랑크, 에르빈 슈뢰딩거 : ‘빌어먹을 양자 도약’ - 불연속적인 경로의 존재를 발견하다
27 에드윈 허블, 프레드 호일, 스티븐 와인버그 : 빅뱅의 승리 - 시초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서 종말을 생각하다
28 제임스 글릭 - 나비 효과 : 복잡계, 지식의 한계를 상기시키다

위대한 과학책 36권 원전으로 읽기
주석
참고 문헌
감사의 글

 




과학의 첫 문장


세상의 시초를 열다

히포크라테스 : 최초의 과학 문헌 - 처음으로 자연 세계를 자연 용어로 기술하다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견고한 물질들과 신들이 있는 세계에 살았다. 그를 둘러싼 것은 모두 견고한 물질이었다. 초록과 회색의 올리브 잎, 그의 발이 딛고 있는 땅, 그가 치료하는 환자의 뇌와 방광, 그가 절제하며 마시는 와인까지. 모두가 절대적인 상태로, 혼합이나 합성이 아닌 단순한 상태로 존재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형태가 되었으며 미래에 그것들의 형태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 그리스 학자들은 오래도록 숙고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것들의 표면 아래에 어떤 복잡한 작용들이 있어서 표면의 현상을 설명해주는지 묻는 것은 바위를 심문하는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작동 기제 대신, 그리스인에게는 신이 있었다. 신도 자연 세계의 견고한 물질들 사이에 살았다. 신들은 올리브 숲을 돌아다니고 자신을 위해 지어진 신전과 성스러운 땅에 거주했다. 신들은 늘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을 판단하고, 인간에게 경고를 보냈다. “신들은... 내가 하는 모든 일과 그 각각의 일이 어떻게 되어갈지를 미리 알기 때문에 꿈과 예언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계시를 줍니다.” 크세노폰의 ‘향연(Symposium)’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신성한 존재가 자연의 질서를 가득 채우고 그 질서를 이끈다. 히포크라테스보다 150년 전에 살았던 수학자 탈레스는 ‘만물에 신들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에, 그리고 모든 곳에.


그리스인들은 신의 존재와 견고한 자연 세계의 특성을 둘 다 연구했고 둘 다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했다. 하지만 우리 세계와 달리 그들의 세계는 신성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 신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는 자유롭게 섞여 있었다. 다른 고대 문명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집트 사람들은 달력을 만들 정도로 정확한 천체 관측을 할 줄 알았고 그것으로 나일강의 범람을 설명할 수도 있었다. 시리우스 별이 일출 직전에 동쪽 하늘에서 관찰되기 시작하는 산출(heliacal rising) 시기를 예측할 수 있었고 그것이 범람의 전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확한 지식도 나일강이 오시리스 신의 뜻에 따라 범람한다는 믿음을 깨뜨리지는 않았다.


그리스 동쪽,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은 사로스 주기(saros cycle)를 알아내 일식과 월식을 추적했다. 사로스 주기는 일식과 월식의 모든 패턴이 다 펼쳐지고서 다시 시작되는 주기로, 6,585.32일 약 18년이다. 이를 알게 되면서 페르시아인들은 다음 월식일을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고, 사제들은 월식 때 풀려 나올 사악한 기운에 맞설 의례를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원전 550년경 페르시아 문서에 따르면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도시 성문에서 구리로 된 큰북을 치면서 ‘월식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리스인에게도 초자연과 자연은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사실 최초의 과학 이론을 개진한 것으로 꼽히는 사람은 신을 믿은 수학자 탈레스였다. 탈레스는 우주가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다. 탈레스가 쓴 글은 오래 전에 소실됐지만 그의 주장은 300년 뒤에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탈레스는... 우주의 기초 원리가 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땅이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그는 모든 것의 양분이 수분임을 보고서... 또 모든 것의 씨앗은 축축한 성질이 있고, 축축한 것이 갖는 본성의 원리가 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훗날 밝혀지기로, 물은 잘못된 설명이었다. 하지만 탈레스의 이론은 우주라는 시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알려진 바로 최초의 시도였고, 신의 권능 외에 어떤 다른 작동 기제가 시계를 움직이는지 알아보려 한 최초의 시도이기도 했다. 생물학자 루이스 월퍼트(Lewis wolpert)는 이를 ‘탈레스의 도약(Thales’s Leap)’이라고 부른다. 탈레스가 신을 끌어들이지 않고 우주의 진리를 찾으려 한 것이 정말로 그리스인 중 최초는 아니었겠지만,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최초의 사례이기는 하다. 그러나 탈레스의 저술은 현재 전해지는 것이 없다. 알려진 최초의 과학 이론이 ‘탈레스의 도약’이라면, 현전하는 최초의 과학 저술은 히포크라테스의 ‘전집(Corpus)’이다. ‘전집’은 신을 끌어들이거나 탓하지 않으면서 질병을 설명한 약 60편의 의학 저술 모음집이다.


히포크라테스 시절의 의료인들은 사제이자 의사로, 아폴로 신의 아들이며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환자는 치료를 받으려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까지 가서 아바톤(abaton)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아바톤은 신전에 딸린 성스러운 숙소인데, 신의 현존을 나타내는 뱀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환자가 이곳에서 밤을 보내면 그동안에 치유가 일어날 것이라고 여겼다. 뱀이 상처를 핥아서 치료해주거나 신이 꿈에 나타나 치료 방법을 알려준다는 식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이 직접 나타나서 치료해줄 수도 있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파우사니오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헤라클레아의 고르기아스가 가슴에 화살을 맞았는데 고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열여덟 달 만에 예순일곱 잔을 채울 지경이 되었다. 아바톤에서 잠이 들었을 때 꿈에 신이 나타나 가슴에 박힌 화살촉을 빼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처가 다 나아 있었고 그의 손에 화살촉이 들려 있었다.”


히포크라테스가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질병과 관련해 아스클레피오스가 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눈에 보이는 세계, 질서 잡힌 우주에 의지해 질병을 설명하려 했다. 그가 보기에 질병은 신의 분노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자애로운 신의 은혜로 치료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악마에 쓴 상태이거나 신성에 쓴 상태라고 오래도록 여겨져온 간질도 그가 보기에는 ‘다른 질병보다 더 영적이거나 신성하지 않으며, 그것 또한 자연적인 원인으로 생기는 것’일 뿐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무지해서 질병을 신의 의지 때문으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질병이 신성 때문에 생긴다는 개념은 질병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나 갖는 믿음’이라는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위경련, 고열, 간질, 전염병 등 모든 질병을 균형이 깨진 탓으로 설명했다. 인체에 흐르는 네 가지 체액인 황담즙, 흑담즙, 점액, 혈액 중 어떤 것이 너무 많거나 적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본 것이다. 네 가지 체액이 적절한 비율로 있으면 신체는 건강하다. 하지만 자연의 여러 요인이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체액의 균형을 깨뜨리는 주 원인으로 바람과 물을 꼽았다. 가령, 더운 바람은 너무 많은 점액을 생성시키고 고인 물을 마시면 흑담즙이 과다해진다는 등이다. 그가 제시한 치료법은 신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과다한 체액을 제거하기 위해 막힌 곳을 뚫어주거나 혈액을 빼내는 식의 처방을 했다. 겨자, 회향, 루, 쐐기풀 같은 약초도 어떤 체액을 빼내거나 어떤 체액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겼다. 환자를 기후가 다른 지역에 요양 보내기도 했는데, 균형을 교란시킨 바람과 물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탈레스의 이론처럼 히포크라테스의 설명도 틀렸다. 하지만 완전히 우연이기는 해도 절반 정도는 치료 효과가 있었다. 늪에 고인 물을 피하면 실제로 건강이 나아졌다. 북적대고 전염병이 도는 도시를 떠나 바람이 잘 통하는 해변 마을로 요양을 가면 실제로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가볍고 영양가 있는 식사는 열병이 낫는 데 실제로 효과적일 수 있었다. 적어도 열병 환자가 아바톤까지 가서 뱀과 함께 불편한 밤을 보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들이 치료소 역할을 곧장 잃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치료법은 점차 주류가 되었다. 너무 주류가 된 나머지, 18세기까지도 의사들은 장의 내용물을 배설시킬 목적으로 사용되는 약제인 하제로 막힌 곳을 뚫고 혈액을 뽑아내고 환자들을 해변으로 요양 보내는 처방을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세계관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감기가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운 날 아들이 티셔츠 차림으로 나가려고 하면 ‘코트 입고 나가! 감기 걸릴라!’라고 외치게 된다.


히포크라테스의 ‘전집’은 현전하는 최초의 과학 저술이라는 점뿐 아니라 자연주의적 방법론이 신령과 신성에 의존하던 설명 방식을 누른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과학적 방법론이 탄생하다

프랜시스 베이컨 : 새로운 제안 -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법에 도전하다

1603년, 런던 출신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43세가 되었다.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철학자인 그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야망이 있었지만 늘 빚에 시달렸다.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궁정에서 충직하게 공직을 수행했지만 크게 인정을 받거나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엘리자베스 1세는 69세로 사망했고 왕위는 6촌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이자 영국의 제임스 1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베이컨은 새 왕의 치하에서 자신의 처지가 더 나아지기를 원했지만 궁정의 ‘핵심’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더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그는 지난 몇 년간 생각하고 있던 철학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인간의 지식에 대한 연구로, 그는 여기에 ‘신적, 인간적 학문의 숙달과 진보에 관하여(On the Proficience and Advancement of Learning, Divine and Human)’ 줄여서 ‘학문의 진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베이컨의 기획이 다 그렇듯 이 프로젝트는 어이없을 정도로 야심찼다. 모든 학문을 적절한 분야로 분류하고 그것을 공부할 때 생길 수 있는 모든 장애물을 기술하고자 했다. 1부는 학문의 세 가지 ‘병’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세 가지 병 중 하나는 ‘헛된 상상’이었는데, 점성술이나 연금술처럼 실제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상태로 학문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2부에서는 모든 지식을 세 개의 분야로 나누고 그중 자연 철학이 가장 핵심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 즉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기획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적 탐구였다. 이미 일어난 모든 것인 역사와 상상의 글인 시는 2위와 3위를 차지해야 마땅했다.


베이컨은 1618년에 더 높은 자리인 왕실 대법관이 되고서야 자연 철학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까지 정치 영역에서 최고에 오르기 위해 애를 쓴 만큼, 이제는 더 위대한 과업에 대해 글을 쓸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정신에 지침을 주고 새로운 진리로 이끌, 새로운 철학 체계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담게 될 이 대작을 ‘대혁신(Great Instauration)’이라고 불렀다.


총 6부 중 1부는 ‘고대의 사고방식’에 대한 것으로, ‘학문의 진보’에서 편 주장과 비슷했다. 하지만 1620년에 나온 2부에서는 전적으로 새로운 이론을 개진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방법론에 대한 대대적인 도전임과 동시에 ‘이성을 더 완벽하게 사용하는 새로운 원칙’에 대한 설명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은 연역 추론에 크게 의존한다. 고대 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는 연역 추론이 진리로 가는 가장 고귀하고 훌륭한 길이었다. 연역 추론은 일반적인 전제에서 출발해서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대전제 : 모든 무거운 물질은 우주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소전제 : 지구는 무거운 물질로 되어 있다.

소전제 : 지구는 떨어지지 않는다.

결론 : 지구는 이미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베이컨은 연역법이 증거들을 왜곡하는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대로 질문을 먼저 설정하고는 경험을 자기 편할 대로 구부려 자신의 결론에 찬성표를 던지게 만듦으로써, 줄줄이 묶인 죄수를 끌고 가듯 경험을 끌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반대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일반적인 결론으로 나가야 하며, 구체적인 증거의 조각들에서 시작해서 귀납적인 방식으로 더 큰 주장을 지어나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새로운 사고방식인 귀납법은 3단계로 되어 있었다. 그는 ‘진정한 방법론’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촛불을 켜서 길이 보이게 한다. 서투르거나 변덕스러운 것이 아닌, 충실하게 질서를 따른 경험으로 파악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공리를 도출한다. 다음에는 도출된 공리로부터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한다.


자연 철학자는 우선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개념을 세우고, 즉 촛불을 켜고, 그 개념을 실제 세계에 견주어 검증해야 한다. 이는 ‘충실하게 질서를 따른 경험’, 즉 주변 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세심하게 고안한 실험 두 가지 모두를 통해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마지막 단계로 ‘공리를 도출’하고 참이라고 주장할 만한 이론을 정립할 수 있다.


가설, 실험, 결론, 이렇게 베이컨은 과학적 방법론의 개요를 제시했다.


물론 완전히 발달된 상태의 방법론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베이컨의 ‘대혁신’ 2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법에 대한 분명한 도전이었다. 베이컨은 심지어 2부의 제목을 ‘신논리학’이라고 지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그리스어 제목은 Organon으로 ‘학문의 도구’라는 의미다. 베이컨의 제목인 라틴어 Novum Organum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새로이 대체할, ‘학문의 새로운 도구’라는 의미다.


1818년의 유명한 연설에서 ‘브리태니커’의 대표 편집자인 맥비 네이피어(Macvey Napier)는 이렇게 말했다. ‘베이컨의 뛰어난 점은 여기에 있다. 처음으로 그는 자연 세계의 탐구에 쓰일 올바른 논증의 규칙과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분명하고 완전하게 짚어냈다.’ 드디어 자연 철학자들이, 코페르니쿠스의 말처럼, ‘두 눈으로 본’ 관찰에 기초해 결론을 내리게 할 방법론이 세워졌다.



생명을 설명하다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 생물학 - 처음으로 생명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하다

라마르크가 발전시킨 이론은 그의 첫 번째 비 식물학 저서 ‘무척추동물의 체계(Syeteme des animaux sans vertebres)’에 실마리가 드러나 있다. 1801년에 나온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무혈 동물’ 즉 혈액이 없는 동물이라고 분류한 것을 다룬 책이다. 라마르크는 혈액이 없는 동물은 척추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현대 용어인 무척추동물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획기적인 부분은 부록에 있었다. ‘화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부록에서 라마르크는 화석이 ‘지구의 표면이 여러 시점에 겪은 혁명적 변화, 그리고 그에 따라 지구상의 생물들 또한 겪었을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라고 언급했다.


뷔퐁 이래로, 지구가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물이 변화를 겪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이때까지 대부분의 자연사학자들은 동물과 식물이 지구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현재와 같은 형태로 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최첨단의 생물학 연구였던 린네의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현재 존재하는 특성만을 다뤘을 뿐 시간에 따른 변화는 다루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라마르크는 생물의 역사를 지구의 역사와 결합했다. 지구가 달라지면서 지구에 사는 생물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듬해 펴낸 ‘수리 지질학(Hydrogeologie)’에서 라마르크는 이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 지구의 변화와 지구에 시는 생물의 변화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은 별도의 학문 분야다. 서문에서 라마르크는 자연사 연구가 세가지 분야로 나뉜다고 언급했다. 지구 자체, 하늘과 천체, 그리고 생물. 마지막 분야에 대해 라마르크는 ‘비올로지(biologie), 생물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생물을 분류하기 위한 시도는 많이 있었다. 동물은 물리적인 특성, 습성, 먹이 등에 따라, 식물은 구조나 모양에 따라 분류되곤 했다. 그런데 라마르크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분류를 생각했다. 생물과 무생물. 지구상의 모든 것은 생물이거나 무생물이고, 다시 말하면 살아 있거나 죽어 있다.


이 구분을 하려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의해야 했고 이는 라마르크가 오랜 세월 숙고한 주제였다. 그는 개인적인 글에서 살아 있는 생명은 자연적으로 생겨나며 ‘여러 부분들로 조직되고’, 그 속성상 ‘지속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적었다. 생명 활동을 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생명 활동을 잃게 된다. 즉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한다.’ 무생물은 영속적이지만 생물은 예외없이 죽음을 선고받은 상태다.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안에서부터 추동되는 움직임을 가진다. 또한 외부 자극에 대해서도 움직임이나 변화로 반응한다. 그리고 생물은 죽는다.

지질학과 달리 생물학은 시작과 끝의 문제를 제쳐놓는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움직임은 변화다. 태어나는 것도 변화다. 죽는 것도 변화다. 생물학자는 단순히 이를 묘사만 해서는 안 되고 변화의 존재와 목적을 설명해야 했다. 라마르크는 변화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원칙은 용불용설로, 여기에서 라마르크는 부패와 죽음을 생명 자체의 진보와 결합했다. 라마르크는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가 관련되어 있다는 개념으로 돌아가서, 생물은 지구 자체의 변화에 반응하면서 변화한다고 보았다.


환경에 작은 변화가 생기면 생물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환경에 크고 영구적인 변화가 발생하면... 새로운 습성을 유도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이는 큰 변화로 이어진다’


둘째, 이러한 변화들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며, 자연 자체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추동 요인 없이 일어난다. 20년 전의 허턴처럼, 라마르크는 고대의 홍수라든가 혜성 같은 것을 믿지 않았다. ‘알려져 있는 자연의 과정이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사실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데 왜... 우주적 재앙을 가정해야 하는가?’


라마르크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작점에서는 ‘초월적인 창조자’가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이 ‘무한한 권능’은 시작점 이후부터는 추가적인 개입 없이 자연이 스스로 변화해가도록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자연 자신이 조직, 생명, 감정까지도 창조한다.... 자연은 그 자신을 생산할 힘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변화는 특정한 방향성을 갖는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원시적인 것에서 발달된 것으로, 생명은 오래 전에 물에서 단순한 형태로 시작되어 점차 진화했다.


이 변형은 단순하고 ‘불완전한’ 생명체를 ‘가장 완벽하고... 가장 복잡한 조직을 갖는 것으로’ 바꾸었다. 상실, 죽음, 부패에는 목적이 있었다. 자연의 길은 궁극적으로 완벽을 향해 나 있었다.


이것은 거대 이론이었고, 라마르크는 고대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내적 일관성을 기초로 논리를 펴야 했다. 그의 이론은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현재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자신의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는 관찰 결과와 지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생명체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많이 변했으리라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되었다.


이 이론의 큰 약점 하나는 그렇게 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 변화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가? 라마르크는 이것을 알지 못했고, 모호한 플라톤적 언어로 변화를 생성하는 자연의 ‘의지’ 같은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퀴비에는 용불용설이 완전히 어처구니없다며 ‘시인의 상상력을 즐겁게 해줄 만하기는 하다’고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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