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거울 속 봄

   
김수연
ǻ
책펴냄열린시
   
18000
2023�� 07��



■ 책 소개


가슴에 내리는 시, 김수연 시집

목거울은 이상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거울이다. 목거울은 회랑 벽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지만 외면 당해 거울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했다.‘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따스한 손이 머무는 거울 속, 석고로 만든 차가운 손이 다른 손을 만나 손들이 닮아가고 거울 속에는 웃음이 난무한다.

거울 속에는 이내 평화가 깃든다. 그 거울은 현실을 넘어 다른 세계와 만날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어쩌면 그 거울은 어린 시절을 간직하고 있는 추억일 수도 있고 도시를 탈출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목거울 속에는 봄이 늘 상주하는 유토피아다. 그곳에 가면 항상 피어 있는 꽃이 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거울 속으로 들어가서 수선화를 한 다발 꺾어서 돌아올 수 도 있다. 그 목거울 속을 다녀오면 현실 공간도 깨어나 내가 다니는 회랑에 연둣빛이 설레며 내 얼굴을 밝히게 된다. 김수연 시인이 가서 만나고 싶은 손이며 봄이 머무는 공간이다.

물이 가진 부드러움과 원이 가진 원점 회귀의 윤회를 거듭하면서 결국 자신이 찾는 평화는 내가 가진 목거울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추천사]
「둥근 불면」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불면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내가 강가 바위 위에 벗어놓은 허물이 강물이 되면 울음소리와 함께 그대가 돌아온다. 이는 불면이 느끼는 서정이다. 불면이 물이 되어 강으로 흘러가고 얼음강 밑으로 흐르는 물과 합류한다. 불면이 천둥과 번개에 난타 당하고 검은 꽃잎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환상에 젖기도 한다.

불면의 강을 노젖는 사공을 생각한다. 사공은 깨어있는 자아다. 결국 잠들지 못하는 상황은 강변 모래알이 익사하듯 자아를 불면은 돌아보기라도 할까? 시인은 몸과 마음이 수고로운 나날을 견뎌야 하는지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물결에 부딪히며 떠내려가야 하는지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재미있을 것같기도 한 어지러움을 간직하며 알 수 없는 멍에에 묶인 느낌을 적었다고 고백한다.

물은 생명이다. 인간뿐이 아닌 모든 생물의 생명에 관여한다. 물은 순환구조를 이루며 대기와 대지 사이를 왕래하며 이 세상을 떠돈다. 지표면을 이루고 있는 물질 중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율도 약 7할 정도로 지대하다. 물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흐름이며 사물 내부에 존재하며 사물의 성격을 규정하는 인자이기도 하다.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안개와 는개와 비, 이슬의 모습 혹은 풀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다. 저수지에 갇힌 물과 같은 부드러운 이미지이다가 계곡물처럼 돌변하는 포악한 성깔을 내보이기도 한다. 계곡을 휩쓸고 내려가는 성난 말떼 같은 급류이거나 해안가를 뒤덮는 해일처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수평선 밖 구름에게는 무엇이 보일까?
파도만 가득 눈에 찬다
포물선에 갇혀 술렁이는 물결
조이면 풀리고, 풀리면 조여온다
어지럼에 휘둘리다 하품을 하는 구름
바다는 물마루 주름을 만들고
하늘을 파랗게 물들여 하얀 그림을 그린다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바람이 흔들지 않으면 잠드는 구름
파도타기 하는 빠른 물살이 산란한
오수에 잠긴 잠투정
느림과 숨 가쁨을 이어 맞추던 수평선은
저물녘에 마법을 뿌린다
황금빛 혀가 불을 뿜는다
물결 위에 붉은 길을 낸다
은빛 숨결마다 함께 녹아드는 구름과 바다
빠르고 느림이 어울려 회귀하는
물빛 교향악
-「물빛 교향악」 전문

■ 저자 김수연
김수연 시인은 1948년 부산대저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청운중학교, 부산남여자중학교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2016년 《부산시인》 봄호로 등단하였으며 부산시인협회. 부산문인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산남구문인협회 회원으로있습니다. 시집으로 『낯선 정거장에서 파도 읽기』가 있습니다.

■ 차례
시인의 말…3
목차…4

제1부
가을 숲 음악…10
샹그릴라를 찾아서…12
노을 앞에서…14
눈을 맞추다…16
목거울 속 봄…18
손을 잡다…20
겨울 해변에서 돌아서다…22
비가 전하는 말…23
꽃이 되고 싶어요…24
날개 천사…26
목련은 창 밖에…28
메모를 하다…30
동굴 속으로…32
햇빛 아래…33
은행나무 길을 걸으며…34
약을 먹다…35
인형 얼굴…36
시소타기…37
날개를 수선하다…38
눈빛 여행…40
만님…41
백지 앞에서…42
화본역…44

제2부
빛을 향한 질주…46
반복되는 꿈…47
길 끝에 앉아…48
열대야를 보내며…50
춤추는 연필…52
호박등 하루…53
옛 숲 물노래…54
거미…56
지하철 정거장에서…58
머리 위의 빗방울…60
바겐 세일…62
길 위에서…64
꿈을 꾸다…66
나이를 먹다…68
바람과 함께…70
우울…71
닫힌 문…72
지하철을 기다리며…74
시간을 노래하다…76
변신하는 햇빛…77
버리며 산다…78
울타리를 치다…79
문을 닫고…80
고층 아파트…82
청춘은 두 얼굴…84
꽃집…86

제3부
춤…88
자정에 해변을 걷다…89
바람 옷…90
버려진 슬픔…92
그리운 시간…93
다리 위에서…94
옛 동산…95
사진 속에서…96
그리움을 벗다…97
내게 오지 않는 것들…98
홀로그램 장미…100
아픈 이름 하나…102
네게로 가는 길…104
복제된 집으로…106
잃어버린 모자…107
백로 엄마…108
젖은 길을 가다…110
아버지의 등…112

제4부
절두산 새…114
해무를 보다…115
월식…116
책을 펼치고…117
비 내리는 풍경…118
섬들 사이…119
둥근 불면…120
저승 색채…122
강물 소리…123
물빛 교향악…124
아시시 언덕…125
잃어버린 안경…126
하늘 아래…128
그늘을 걷다…129

해설/물의 상상력이 꿈꾸는 세상ㆍ강영환…130

 




목거울 속 봄

목거울 속 봄

희미한 빛이 스미는 회랑
오랜동안 그늘 속에 서 있는 목(木)거울
낡은 액자 속 사진을 되새김하다
아마 빛 벽만 품고 잠들려 한다

거울 속에 들어온 ‘돌아온 탕자’
이콘이 내미는 아버지 두 손
부드러운 손과 우람한 다른 손바닥
두 손이 부딪히면 열기도 사그라들고
닮아가는 양손

무료해진 거울 속 풍경에
주먹 쥔 석고 팔뚝이 들어선다
거울 속, 거울 밖
대칭을 이루는 건장한 팔뚝을 들고
홀로 남겨진 얼굴이 부서져라 웃기 시작한다
놀라 길쭉해진 타원형 거울이 흔들린다

흔들림 속 깊은 호수로 이어진다
물속에 그림자로 가라앉았던 봄 숲이 눈을 뜬다
석고 주먹은 봄꿈에 젖은 물가 수선화를
한 다발 꺾어 거울로 돌아온다
깨어난 회랑에 연둣빛이 설렌다


우울

퇴근길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들
거의 움직이질 못한다
도로에 널린 수다스런 이야기들
홀로 있거나
줄지어 갇혀 있거나
수많은 한 줌 흙들
흙으로 돌아가면 구분할 수 없는 우리
자동차에 입혀진 은빛, 잿빛 광택들
어둠이 깔리면 그저 검은 껍데기일 뿐

붉은 얼굴이 차창에 어린다
써내려간 눈빛들이
저녁달 그림자 속에 펼쳐지다 사라진다
달빛 미소에는 매케한 연기가 숨어있다
하늘에 떠 있는 연미복 뒷모습
거룩하게 그려지면 구름이 지워 버린다
밤은 행인들 발자국 밑에 깔리는 먼지를 들이킨다
먼지와 흙이 만든 파이
먹어도 허기진다


옛 동산

인적 드문 가파른 산길은 낮에도 어둡다
빽빽이 붙어선 땅에 갇힌 소나무
하늘을 나누어줄 여유로움이 없다
숲속 음울한 눈들이 수런거리면
아이들 기쁜 숨소리가 묻어온다
소나무 튼 살은 검은 색으로 침묵한다

고갯마루 오르면
눈동자 가득했던 남해바다
해양경비대 버려진 공터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윤슬을 마음껏 마시고 있다
대장부로 가는 광활한 바다, 따스한 햇살
아이들 가슴을 부풀린다

돌아보면
지척에 있는 환한 바다를 유괴하려
검은 손을 뻗었던 솔숲
호젓하고도 미궁 같았던 뒤로 가는 산길


아버지의 등

맨발로 나선 길
아버지는 쉴 새 없이 걷고 있다

울퉁불퉁 파헤쳐진 길을 걸어도
등을 넓고 포근해서
부드러운 자장가가 꿈속에서 따스하다

잠이 덜 깬 몽롱함 속에서
머리밑이 듬성듬성하게 보이는 구부정한 뒷모습
살아온 무게만큼 무거운 나를 업고
말없이 걷고 있다

숨겨진 노고가 안쓰럽고 미안해서
황급히 찾아낸 때 묻고 헐거운 신발
신발 신고 다시 나선 길은 낯설고 어둠이 짙다

먼 산에서 들리면 뻐꾸기 울음
기와지붕의 맞물림
나를 부르면 아버지 아득한 음성
빠른 걸음으로
시간과 시간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책을 펼치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바람이
책갈피 속으로 들어온다

강원도 행 완행열차는 덜컹거린다
사람들은 철 지난 감자 껍질을 닮았다
갈 곳도 숙지 못한 채 나뭇잎은 무임승차 한다
무심한 얼굴로 앉아있는 동행을 믿을 뿐이다
그는 일어서 나가더니 돌아오질 않는다
간이역에서 잠시 내려 맑은 공기를 들이킨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은 바둑판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와본 적 없는 언덕 너머에 익숙한 집이 있음을 알고 있다
멀리서 종이 울리자 열차가 떠나고 있다
철길은 빈 혀만 내민다

책 속에서 백년 전에 회오리치던 바람이 불어온다
나뭇잎은 바람을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책장을 넘긴다
토끼가 시계를 보며 달려간다
토끼가 시계를 보며 달려간다
마른 강아지풀이 빛 속에서 흔들린다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