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를 걷다

   
동길산
ǻ
예린원
   
15800
2015�� 05��



 

■ 책 소개

일상을 의미있게 캡쳐하는 시인과 일상을 낯설게 스토리텔링하는 사진가의 콜라보레이션!
흔들리는 당신, 지친 당신에게, 들려주는 특별한 울림이 있는 여행에세이!

시인 동길산의 산문과 포토그래퍼 조강제의 사진을 모아 엮었다. 삶의 흔적과 추억이 아스라한 부산의 포구 스무 곳을 걸으며 써 내려간 기행문과 서정이 짙은 사진으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뭍과 물의 경계에서 더 나아 갈 곳 없어 마음만 수평선 너머로 보내는 땅의 끝, 포구. 떠밀리고 밀려 이제 마지막으로 닿은 곳. 그래서 포구는 그리움이 있는 공간이고 회한과 사색의 시간이다.

"모래는 얼마큼 밀려와야 섬이 되나. 흙은 얼마큼 씻겨 와야 섬이 되나. 나는 얼마큼 밀리고 얼마큼 씻겨야 내 안에 섬 하나를 우뚝 쌓나.”

포구에서 무심코 만나는 대상을 시인 동길산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대상이 말을 걸고 있는 방식을 쉽게 풀어 독자에게 툭 던져 놓는다.

암남포구가 있는 송도에서는 젊은날 구름다리에서의 기억을 더듬으며 "불안한 구름다리는 이제 콘크리트 다리가 되어 흔들어도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불안하던 그때가 좋은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지금이 좋은가.”라고 묻는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콘크리트 다리를 벌떡 일으켜 세워 독자에게 말을 건낸다. 아니 독자 스스로 자문하게 툭 던져 놓는다. 그 뿐이다. 자잘한 설명이나 충고는 없다. 시인이 그냥 시인이 아니다.

포토그래퍼 조강제의 사진에는 여백이 많다. 그의 프레임에는 대부분 사람이 있다. 사람의 표정이 아니라 몸짓이 있다. 몸짓이 프레임을 이끌어 가기에 그의 사진에는 언제나 서정성과 스토리텔링 좋다. 때로는 글을 바쳐주며, 때로는 글을 리드하며 심상에 꽂히는 장면, 장면들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일상을 의미있게 캡쳐하는 시인과 일상을 낯설게 스토리텔링하는 사진가의 만남. 언어 이미지와 사진 이미지의 특별한 조우와 시너지.

■ 저자 동길산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을축년 詩抄’, ‘바닥은 늘 비어 있다’, ‘줄기보다 긴 뿌리가 꽃을 피우다’, ‘무화과 한 그루’를 펴냈다.

■ 차례
책을 펴내며

강서구 명지
고요한 강물 새 울음소리, 마음속 섬 하나로 뜨고

사하구 장림 홍티
물과 물이 만나 마침내 하나가 되는 저 수평의 바다

사하구 다대포
가슴속 등불 같은 석양

서구 송도
암남솔숲 비친 푸른 물빛에 어룽거리는 젊은 날

중구 자갈치선착장
들이박을 기세로 다가오는 배…내가 기우뚱대다

북구 구포
갈대가 연신 까닥대며 새를 유혹하다

영도구 하리포구
조개껍질 같이 날카로운, 산과 섬 사이 포구

남구 감만시민부두
호롱불 같은 등대가 밝히는 부산항 들목

남구 분포
외로움을 말리듯 바닷물 졸이던 소금밭의 기억

수영구 민락
잃어 버린 기억을 쓰다듬는 도심 속 고마운 포구

해운대구 미포
하얀 갈매기가 일으키는 하얀 물살

해운대구 청사포(1)
보이는 것도 푸르고 보이지 않는 것도 푸른

해운대구 청사포(2)
저 푸른 바다의 입… 사람 마음 깨물어, 놓아주지 않는

해운대구 송정
생의 그물 너머 저만치 불그스름한 일출

기장군 공수
비웃고 빈정댄 나를 나무라는 포구

기장군 대변항
경계에서 우리 것을 생각하다

기장군 월전
물 위로 휘영청 달빛이 쏟아지고 부서지고

기장군 일광 학리
당산나무 깃든 신령스런 흰 무리…‘학의 마을’

기장군 칠암
움켜잡았다 싶으면 미끌미끌 빠져 나가는

기장군 월내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달 보듯 나를 보다

부산은 등대의 도시다



포구를 걷다

책을 펴내며
포구는 뭍과 물의 경계선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느냐 뒤로 물러서느냐, 나아감과 물러남의 경계이기도 하지요. 누구나 경계에 설 때가 있습니다. 경계에 서서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있지요. 삶의 갈림길에 서서 나아갈 것인가 물러날 것인가, 이 길로 갈 것인가 저 길로 갈 것인가. 그럴 때 포구에 서 보면 어떨까요. 뭍과 물의 경계에 서서, 나아감과 물러남의 경계에 서서 포구가 두런두런 하는 말을 곰곰 들어 보면 어떨까요.


강서구 명지
고요한 강물 새 울음소리, 마음속 섬 하나로 뜨고

“강바닥 모래가 밀려와서 쌓인 섬이고 산과 들 흙이 씻겨 와서 쌓인 섬이다. 모래는 얼마큼 밀려와야 섬이 되나, 흙은 얼마큼 씻겨 와야 섬이 되나. 나는 얼마큼 밀리고 얼마큼 씻겨야 내 안에 섬 하나를 우뚝 쌓나.”

새(鳥)가 운다(口). 명(鳴)이다. 명지(鳴旨)다. 새가 울어서 사람을 붙잡는 포구 명지. 날면서 우는 새도 앉아서 우는 새도 소리는 뾰족하다. 부리가 뾰족해서 소리도 뾰족하다. 뾰족한 소리가 사람을 콕콕 쫀다. 사람 심사를 콕콕 쫀다.

명지는 섬. 날면서 우는 새에게도 앉아서 우는 새에게도 명지는 섬. 낙동강 유장한 강물이 만들어 낸 섬이 명지다. 강바닥 모래가 밀려와서 쌓인 섬이고 산과 들 흙이 씻겨 와서 쌓인 섬이다. 모래는 얼마큼 밀려와야 섬이 되나, 흙은 얼마큼 씻겨 와야 섬이 되나. 나는 얼마큼 밀리고 얼마큼 씻겨야 내 안에 섬 하나를 우뚝 쌓나.

잔잔한 바다를 낀 포구는 명지 새동네 포구. 을숙도 하구언을 지나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포구다. 명지 새동네는 하구언이 들어서면서 새로 들어선 동네. 하구언은 강 하구를 막은 댐이다. 하구언은 댐이자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 하구언이 들어선 게 이십 년쯤 되니 새동네도 이십 년쯤 된다.

“갈꽃을 뽑아서 내다팔았다 아인교.” 새동네에서 식당을 하는 박승필 아주머니. 배 타고 갈대밭으로 건너가 갈대꽃 뽑던 시절을 들려준다. 갈대꽃으로 만든 빗자루는 쓸리기도 잘 쓸려 다른 빗자루는 저리 가라였다고 한다. ‘나이롱’ 빗자루가 나오기 전에는 최고의 빗자루였다고 한다.

명지에서 나룻배를 타던 곳은 신포나루. 갈꽃빗자루 대파 게젓 명지쌀, 이런저런 채소를 한 짐 두 짐 배에 싣던 나루가 신포나루다. 통학생이며 석양이 물든 행락객을 싣던 나루가 신포나루다. 하구언이 들어서면서 신포나루는 나루였다는 나루터로 물러앉고 새로운 포구에서 또는 하구언 아래 옛 포구에서 배를 부르고 보낸다. 새동네 영상 동리 다신 등등 포구들이 그것이다.

대마등은 명지 앞바다 모래톱. 명지 앞바다엔 모래톱이 지천이다. 백합등 도요등 맹금머리등 등등이다. 보드랍고 완만한 소잔등을 닮아 무슨 무슨 등이다. 을숙도 신자도 장자도 진우도 모두 모래톱이다. 바닷가나 강가 모래 널따랗게 깔린 오목한 벌판이 모래톱이다. 명지 명은 울 명(鳴). 마을에 변고가 생기면 종소리 북소리가 울린다는 내력이 담긴 지명이다.

김정호 대동여지도에는 명지에 백사장 표기가 있고 무슨 암호 같은 삐뚤빼뚤 네 글자라 보인다. 자염최성(煮鹽最盛). ‘자염이 최고 번성하다’는 뜻을 가진 한자다. 자염은 불을 때서 얻은 소금이다. 가마솥 가득 채운 바닷물을 끓여서 얻는 우리나라 전통 소금이 자염이다.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염전을 통한 천일염은 일본식 소금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 소금 주류가 됐다. 자염은 천일염보다 덜 짜고 영양소가 풍부하다. 개펄을 해치지 않고 얻은 친환경 소금이기도 하다. 충남 태안에선 매년 자염축제가 열린다. 전북 고창에는 자염박물관이 있다.

명지소금은 예로부터 알아주던 소금. 나라님 수라상에 오르던 소금이다. 명지에서 난 김 명지 김도 금쪽이었다. 소금도 금으로 알아주고 김도 금으로 알아주던 금빛 반짝이던 곳이 명지다.


서구 송도 암남
솔숲 비친 푸른 물빛에 어룽거리는 젊은 날

“길과 길이 엇갈리고 나와 내가 뒤섞인다. 앞날이 불안한 연인과 건너던 불안한 구름다리는 이제 콘크리트 다리가 되어 흔들어도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불안하던 그때가 좋은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지금이 좋은가.”

송도해수욕장 오른쪽 끝자락 포구 암남. 갈매기 서너 마리가 들어오는 배 나가는 배 꽁무니를 기웃거린다. 높다랗게 떠서 날아가는 새 행렬에도 끼일 염도 못 낼 갈매기다. 행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갈매기다. 배에서 활어를 퍼내자 그 소리를 어떻게 엿들었는지 갈매기가 또 기웃거린다.

“지금이 방어철 아닌교.” 방금 퍼낸 활어는 방어. 뜰채 가득 담긴 활어가 파닥댄다. 선착장 정박한 배에서는 모자 눌러쓴 뱃사람이 소금 절인 생선을 토막토막 썬다. 선착장 시멘트 바닥 퍼질러 앉아 주낙채비를 차리는 뱃사람은 그게 ‘심마’라는 고기란다. 꽁치 종류란다. 험한 일이라곤 안 해 봤을 선비상인데 손바닥은 온통 굳은살이다.

같이 퍼질러 앉아 얘기를 나눈다. 전남 여수 사람이고 직장을 다니다가 뱃사람이 된 지는 이십여 년이다. 포구 본래 자리는 송도해수욕장 입구 거북섬 근처. 도로가 넓어지고 매립되고 하면서 사오 년 전 이리로 옮겨왔다. 잘 잡히는 고기는 붕장어와 가자미. 같이 주낙채비를 하던 할머니가 이 대목에서 끼어든다. “가자미 좋은 게 있는데 사 갈라요?”

나무섬 형제섬 외섬 빙섬. 어디서들 잡느냐고 묻자 섬이 들쭉날쭉 나온다. 태종대 주전자섬을 여기에서는 빙섬이라고 부른다. 주낙바늘이 어림잡아도 일이백 개는 되고 그런 채비를 한 번 출조에 일고여덟 통씩 싣는다. 토막토막 썬 삼마를 바늘에 꿰어 붕장어도 잡고 가자미도 잡는다. 바늘마다 고기가 물리면 마릿수가 엄청나겠다는 공치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것 다 잡히면 부자 되게요? 한 마리 안 잡일 때도 많아요.” 배는 새벽 서너 시 나가 오전에 들어온다. 고기를 잡을 때 따지는 것은 물때와 조류. 그것보다 더 따지는 것은 자리. 아무 자리나 고기가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자리를 찾아 더 일찍 나가고 더 멀리 나간다.

송도해수욕장. 어린 내 귀에 물을 채운 해수욕장이다. 그로 인해 귓병을 앓고 그로 인해 육사 진학을 접게 한 해수욕장이다. 그러나 탓할 일만은 아니다. 나이 서른 무렵부터 사람으로 인해 귀에 물이 차는 것을 삼가고 서른 무렵부터 사람으로 인해 허우적대는 것을 꺼렸으니 그것만 해도 어딘가.

나를 군인 대신 시인이 되게 한 해수욕장 송도. 바닥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서 멀찍이 떨어지게 한 해수욕장 송도. 내가 걸은 길과 걸을 뻔한 길을 본다. 지금 나와 나일 뻔한 나를 본다. 길과 길이 엇갈리고 나와 내가 뒤섞인다. 앞날이 불안한 연인과 건너던 불안한 구름다리는 이제 콘크리트 다리가 되어 흔들어도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불안하던 그때가 좋은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지금이 좋은가.

암남공원은 포구에서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면 나온다. 공원입구에 동물들을 검역하는 검역소가 있다. 이전에는 혈청을 검사하는 곳이라 해서 혈청소라 불렀다. 부근 마을을 모짓개 또는 모지포라 부른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송도. 학교에서 모짓개까지는 차로 십 분 거리다. 빡빡머리 그 시절을 어디에서 찾으랴. 떠나도 떠나지 않은 물빛이 푸르다. 푸른 바다 푸른 물빛이 가슴을 출렁인다.


해운대구 미포
하얀 갈매기가 일으키는 하얀 물살

“지금 내가 보는 곳이 앞이지만 돌아서면 뒤가 된다. 생각을 달리하면 길이 보인다. 하는 일이 꼬이고 안 풀릴 때 찾아가기 좋은 포구가 미포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포구다. 처음 보는 순간 말을 높여야 할 것 같은 포구다. 미포가 있는 곳은 해운대해수욕장을 사이에 두고 동백섬 반대쪽, 미포 빨간 등대 방파제에서 보면 해수욕장과 동백섬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동백섬 너머 고층 ‘삐까번쩍’ 아파트들이 파릇한 청년이라면 미포는 주름살 제법 패인 중후한 장년이다. 말을 높이지 않으면 께름칙하지 싶다.

미포는 아버지 어머니 같은 포구다. 일면식 없어도 ‘아버지요! 어머니요!’ 들이대면 ‘아이고, 내 새끼!’ 양팔 벌려 맞아줄 것 같은 포구다. 눈빛만 보고도 내 속을 알아채고선 구부정한 등을 투박한 손바닥으로 다독이는 포구 미포. 아버지의 친구 같고 어머니의 친구 같은 포구 미포에 들면 누구라도 경계를 푼다. 누구라도 마음을 푼다. 푸근해진다.

미포는 지명부터 푸근하다. 미포 미는 꼬리 미(尾). 꼬리 대신에 머리가 되려고 다들 눈이 벌갠 요즘 세상에 꼬리를 자처하는 지명은 은근히 맵다. 나를 때리는 죽비 같은 지명이다. 미포는 소의 꼬리께 자리한 포구라서 붙인 지명. 미포에서 가까운 달맞이언덕을 품은 산은 와우산(臥牛山). 드러누운 소 형상이다.

미포 좋은 점은 자신을 낮춘다는 것. 그리고 의구하다는 것이다. 세상이 다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미포 앞바다 수평선처럼 미포는 십 년 전이나 이십 년 전이나 그제나 이제나 그 모습 그대로다. 물웅덩이 같은 조그만 포구도 그 모습 그대로고 후 불면 밀려 갈 것 같은 조그만 배도 그 모습 그대로다. 자고 일어나면 뭐가 바뀌어도 바뀌는 세상에, 금방 끓고 금방 식는 세태에 미포는 죽비다. 세상을 세태를 후려치는 대나무 매질이다.

미포는 새벽이 분주하다. 고기 잡으러 나가는 새벽 두세 시가 분주하고 고기 잡고 들어오는 새벽 대여섯 시가 분주하다. 배가 고기를 풀면 포구는 어물전 난전으로 흥청댄다. 해산물은 철 따라 다르지만 모두가 자연산이다. 널따란 고무대야에서 제 철 자연산이 파닥이거나 꿈틀댄다. 새벽시장이 선다는 걸 알고 온 사람, 모르고 온 사람이 덩달아 파닥이고 덩달아 꿈틀댄다.

등대 방파제에 서면 해운대 진경이 펼쳐진다. 해수욕장과 동백섬, 오륙도, 그리고 수평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 돌아서 지금은 폐선이 된 동해남부선 터널까지 한 폭 산수화다.

미포에 정박한 배는 거의가 일이 톤, 조그맣다. 거의가 연안에서 통발 또는 그물로 조업한다. 어부에게 바다는 세 가지다. 연안과 근해, 그리고 원양이다. 원양으로 갈수록 배는 커지고 단단해진다. 연안 배는 작고 허술해 보이지만 대신 야무지다. 매일 새벽 조업을 나가도 고뿔 한번 걸리지 않는다. 미포에 정박한 배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미포 앞바다는 등대가 많다. 등대는 저마다 기능이 다르다. 방파제 빨간 등대는 좌우를 표시한다. 들어오는 배는 빨간 등대를 배 우현에 두고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빨간 등대를 우현표지라고 부른다. 미포에는 없지만 하얀 등대는 반대로 좌현표지다. 그러니까 방파제 등대는 좌우를 나타내는 표지다. 이를 아울러 측방표지라고 한다.

동서남북을 나타내는 표지도 있다. 방위표지라고 부른다. 동백섬 앞에 새로 생긴 등대는 등표, 외벽을 이등분해 상부는 황색이고 아래는 흑색이다. 남쪽으로 운항하라는 신호다. 위가 흑색이고 아래가 황색이면 북쪽 운항! 동쪽과 서쪽도 황색과 흑색 배치로 표시한다. 미포엔 동서남북 등대와 전후좌우 등대가 모두 있는 셈이다.

‘동서남북은 방향이 정해져 있지만 전후좌우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지금 내가 보는 곳이 앞이지만 돌아서면 뒤가 된다. 생각을 달리하면 길이 보인다. 하는 일이 안 꼬이고 안 풀리는 사람을 다독이고 위로하기 좋은 말이다.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좌우가 달라지는 등대가 있는 미포는 청사포가 그렇듯 송정이 그렇듯 하는 일 꼬이고 안 풀릴 때 찾아가면 딱 좋을 포구다.


기장군 공수
비웃고 빈정댄 나를 나무라는 포구

“겉보기와 딴판인 공수. 사람도 그러리라. 겉보기와 딴판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리라. 겉을 보고 속을 비웃은 적은 없었을까. 겉과 속이 같지 않다고 빈정댄 적은 없었을까. 겉과 속이 같지 않는 숱한 장삼이사. 나 같은 사람들. 하루에도 몇 번 사표 던지고 싶은 속을 꾹 누르고 머리 숙이고 허리 숙이는 숱한 직장인들이야말로 사회를 떠받치고 가정을 떠받치는 기둥이 아닌가.”

겉보기와 딴판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차 다니는 큰길에서 보면 밋밋한 마을이라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마을 안에 들면 있을 건 다 있다.

공수는 공수 자체로도 이름값을 하지만 주변도 이름값을 한다. 포구 오른쪽 서낭당 언덕 편평한 바위와 군부대 초소 터는 자연이 차린 밥상 내지는 술상. 거기서 바라보는 부산 바다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셰익스피어와 맞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명승이다. 왼편으로 가면 용궁사로 이어지는 갯바위 오솔길. 갯바위와 맞물려 이어지는 오솔길 역시 천금을 준대도 만금을 준대도 고개 절레절레 흔들 명승 중의 명승이다.

공수 포구는 송정 포구와 맞닿는다. 송정 포구에서 기장 방면 1km쯤 지점 오른쪽에 공수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공수는 갈맷길 첫 구간. 첫 구간은 기장 임랑해수욕장에서 시작해 해운데 문탠 로드까지 33.6km다. 어른 걸음으로 열 시간 남짓 걸린다. 갈맷길은 부산을 대표하는 길. 모두 아홉 구간이다. 기장에서 시작해 부산을 한 바퀴 돌 뒤 기장에서 끝나는 장장 700리 대장정이다. 갈맷길은 중의적이다.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고, 짙은 초록을 뜻하는 갈맷빛 길이다. 부산의 길은 해안길과 강변길과 숲길. 갈맷길은 이 모두를 아우른다.

“왜 공수일까요?” 포구 가이드를 나서면 참가자에게 으레 묻는 질문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공수는 고유명사보단 보통명사에 가까웠다. 전국각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공수전(公須田)이 있는 마을을 공수촌, 공수리라고 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공수전은 그러니까 공공용으로 쓰는 밭을 이른다. 밭을 경작해 얻은 수익을 공용으로 썼다.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 출장 나온 관리가 숙식할 경우 그 경비를 댔으며 관아 건물 개보수 비용을 대었다. 관리 월급에 보태기도 했다.

기장 공수는 겉보기완 딴판이다. 겉으로 보는 거완 완전히 다르다. 고려시대 지명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유구한 역사가 그렇고 들어갈수록 깊어지는 포구의 풍광이 그렇다. 역사에 비해 풍광에 비해 공수가 덜 알려진 것은 마을이 송정과 대변 사이에 낀 까닭이 크다. 공수를 모르는 사람은 공수를 지나쳐 버린다. 덕분에 공수 바다는 청정 해역이다.

겉보기와 딴판인 공수. 사람도 그러리라. 겉보기와 딴판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리라. 겉을 보고 속을 비웃은 적은 없었을까. 겉과 속이 같지 않다고 빈정댄 적은 없었을까. 겉과 속이 같지 않는 숱한 장삼이사. 나 같은 사람들. 하루에도 몇 번 사표 던지고 싶은 속을 꾹 누르고 머리 숙이고 허리 숙이는 숱한 직장인들이야말로 사회를 떠받치고 가정을 떠받치는 기둥이 아닌가. 공수 포구는 겉을 보고 속을 비웃은 나를 나무라는 포구고 겉과 속이 같지 않다고 빈정댄 나를 나무라는 포구다. 포구에 부는 바람 소리가 공수래공수거 공수래공수거 무슨 염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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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