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탐욕과 공포의 게임

   
이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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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마드
   
13000
2008�� 09��



>■ 책 소개
이 책은 우리가 신뢰하는 전문가들,만병통치라고 믿었던 적립식 투자법 등에 대한 솔직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시장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인간심리를 행동주의 경제학을 빌어 설명하고있다. "탐욕과 공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적립식 펀드, 차트분석 등 우리가 시장에서 의사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삼는 것들을 하나하나 허물어 나간다. 투자와 경제활동, 이익과 손실 등 인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에 대한 기저심리를 행동주의 투자론을 통해 해부해보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이상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는 투자에 관한 사람들의 욕망(탐욕)과 이에 선행하는 공포라는 심리에초점을 맞추어 시장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 저자 이용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후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를 거쳐 메리츠증권과 부국증권 등의 상품운용부서에서 주가지수선물과 옵션을 거래했다. 이 책 다음에는 시장과 인간이라는 화두를 들고 보다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 사람냄새 물씬 나는 르포를 쓰고 싶어한다.


■ 차례
책머리에 


Ⅰ. 탐욕과 공포의 경제학
1. 시장 전문가들의오만
2. 적립식 펀드는 만병통치인가
3. 원숭이를 이기지 못하는 인간
4. 투자, 그 불편한 진실


Ⅱ. 시장, 바보들의 게임
5. 펀드매니저 300명과나
6. 양떼를 닮은 전문가들
7. HTS의 유혹
8. 차트에 속다
9. 신상품에 낚이다
10.소년이로(少年易老)


Ⅲ. 시장을 이기는 사람들
11.머니머신_이경환
12. 밸류트레이서_김철상
13. 팻테일헌터_빈진욱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탐욕과 공포의 게임


Ⅰ. 탐욕과 공포의 경제학

시장 전문가들의 오만

▶ 왜 자꾸 틀리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망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학계와 언론계에서 무수히 발표됐다. 심지어 「월스트리트 저널」은 눈 가린 원숭이(프린스턴 대학의 버튼 맬키엘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눈을 가린 원숭이가 던진 다트에 맞은 종목을 선택한다고 표현했으나, 실제 게임에서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들이 눈을 가린 채 원숭이 역할을 했다)와 전문가들의 수익률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1988년 10월부터 2002년 4월까지 142회에 걸쳐 진행된 이 수익률 게임에서 승자는 평균 10.2%의 수익을 올린 원숭이였다. 전문가들의 수익률은 3.5%에 불과했다.


전망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좀처럼 자기과신에 빠지지 않는 전문가들이 있다. 기상예보 전문가와 도박사가 그렇다. 이들은 왜 주제파악을 잘 하는 걸까?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반복적인 판단과 피드백이 그것이다. 먼저 기상예보 전문가의 경우 매일, 심지어 몇 시간 단위의 기상예보를 발표하면서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도박사도 게임을 하는 동안에 분, 초 단위로 반복적인 전망과 의사결정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들도 1년 혹은 분기별로 반복적인 작업을 하지만 기상예보 전문가나 도박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기가 길다. 기상예보 전문가와 도박사는 전망에 대한 매우 명료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는다. 기상예보 전문가들은 날씨를 전망한 다음날 아침, 일어나 창문만 열면 간단하게 자신의 전망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있다. 도박사들은 예상이 맞거나 틀렸을 때 그 자리에서 현찰 박치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 분야에서는 한국은행이든 증권사든 수년간 뒷북만 치는 전망을 내놓더라도 별다른 피드백이 없다.


그렇다면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은 모두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있다. "우리는 전문가들의 자기 과신과 함께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과신을 제거하려고 애써야 하는가? 우리는 전문가들의 자기 과신을 사실로 인정하고 그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전문가들의 자기 과신을 다루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그들의 판단을 적절히 가감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의사결정할 때 그 의견에 의존하더라도 그들이 자기 과신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투자, 그 불편한 진실

▶ 우리가 빠지는 함정

불확실한 상황, 즉 돈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지심리학 용어로 이 함정을 편향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금융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편향들을 편의상 자기기만, 휴리스틱, 프레이밍 세 가지로 나눠 설명하겠다.


자기 기만은 거짓인 것이나 검증되지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이나 검증된 것으로 믿도록 하는 과정 또는 현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 기만은 자기 자신의 거짓된 믿음을 정당화하는 방법이다.

- 확증 편향 : 선물 매도를 수십 계약 들고 시장이 하락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B증권사의 박과장은 뉴스를 열심히 검색하고 있다. "아! 북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뉴스 좀 안 뜨나?" 우리는 입장을 정하는 순간,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행위를 중단하고 오로지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 자기 과신 : 마권업자에게 말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늘려 제공하면서 어떤 말이 경주에서 이길지 예측해보라고 했다. 예측할 때마다 자기의 예상을 얼마나 자신하는지도 말하라고 했다.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예측의 정확성은 떨어졌지만 자신감은 점점 더 커졌다. 사람들은 정보가 많으면 더 잘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지식환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 사후예견 편향 : 사후예견 편향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이 사실임에도 사람들은 난 원래 그럴 줄 알았어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2000년 미국 나스닥 시장의 닷컴 버블이 붕괴되었을 때, 설문조사에서 "거품이 꺼질 줄 알았다"라고 응답한 투자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대개 "난 앞으로 생기는 거품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고 피해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빠졌을 공산이 크다.


- 자기귀인 편향 : 주식을 샀는데 오르면 자신이 열심히 분석한 종목이기 때문이고 내리면 프로그램 매매나 외국인 투자자들 때문에 생긴 불가항력적인 불운의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증권사 직원이나 투자 상담사들은 주가 하락의 리스크를 헤지(hedge)할 수 있는 심리적 풋 옵션(Put Option, 주식의 경우 풋 옵션은 주가가 빠지면 그 값이 오르기 때문에 미리 사두면 주가하락 시 손실을 회피할 수 있다)으로서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투자자가 손실에 대한 심리적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논리나 계산을 이용하기보다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짐작하는 것을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복잡한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심리적 편향이 되기도 한다.

- 대표성 휴리스틱 : 사람들은 판단을 내릴 때, 어떤 집단이나 사건의 대표적 특징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따져 결론을 내린다.

- 앵커링 :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휴대전화나 번호 뒤 두 자리 숫자를 쓰라고 한다. 그 다음에 와인이나 초콜릿을 경매에 붙인다. 뒤 두 자리 수가 00~49인 사람들보다 50~99인 사람들이 써낸 가격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상품의 가격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화번호 숫자에 휘둘린 것이다.

- 가용성 편향 : 어떤 주제와 관련해 자신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선택해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한다.


인간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주어진 상황을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방법에 따라 판단이나 선택이 변하는 것을 프레이밍 효과라 한다. 미국 NBA 농구 티켓을 경매에 붙일 때, 신용카드로 입찰하는 사람들이 현금으로 입찰하는 경우보다 2배 이상의 가격을 써냈다고 한다. 돈을 쓰는 방식(프레임)에 따라 판단도 바뀌는 것이다.

- 손실회피 : 실험에 따르면 손실의 고통은 이익의 기쁨보다 2.5배나 크다.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손실이 난 종목을 오래 보유하는 반면 이익이 난 종목은 금방 처분해버린다. 이른바 투자성향 효과다. 이익과 손실을 다른 방식으로 프레이밍하기 때문이다. 손실이 난 종목을 끝까지 움켜쥐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본전 생각이 나서다. 이를 매몰비용 효과라고 한다.

- 소유 효과 :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를 팔려는 집주인이 어지간해서는 집값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이미 소유한 물건에 대해 가치를 높게 매기려고 하는 성향 때문이다. 시장은 내가 그 물건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데도 자기 소유물에 대한 애착으로 비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 쾌락적 편집 : 아무리 유능한 증권사 직원이더라도 추천하는 종목마다 승승장구할 수는 없다. 자신이 추천한 종목을 가진 고객이 손해를 보고 있을 때 유능한 증권사 직원이라면 절대로 손절매라든지, 털고 나서 잠시 쉬는 것도 투자 따위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자산을 이전하시지요."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마련이다.


▶ 편향을 피하는 방법

금융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때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겸손을 발휘하면 더 좋겠지만, 나란 사람 역시 남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쯤은 해야 한다. 또 자신이 자신의 생각보다 적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정말 모르는 사람은 투자하지 않는다. 정말 잘 아는 사람은 투자에 성공한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야기는 버리고 사실만 건져야 하며, 많은 정보가 꼭 좋은 정보는 아니다. 어떤 정보가 가치 있는 것이고, 어떤 정보는 버려도 좋은지 잘 판단해야 한다. 또 설득력 있는 반대 의견을 만났을 때는 정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크게 손실이 난 주식을 아직 손절매하지 못했다면 이제 그 기업의 장점은 그만 보고, 단점을 찾아라. 바로 그 단점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할 룰을 정하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명료한 거래의 규칙을 정하면 감정에 휘둘리는 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Ⅱ. 시장, 바보들의 게임

양떼를 닮은 전문가들

▶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무리

금융시장에서 전문가, 특히 펀드매니저들의 군집행위는 주로 특정 종목을 사거나 팔 때 짐승의 무리처럼 몰려다니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래서 군집행동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양떼지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펀드매니저들이 양떼 짓을 했는지 아닌지는 다른 펀드매니저들이 지속적으로 사고 판 종목의 장래 수익률을 측정해 판단한다. 몰려들어 매수했으나 지속적으로 올랐다면 그건 잘한 짓이지 양떼 짓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먼저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1983년부터 2004년까지 펀드매니저들이 약 1년간 꾸준히 매수(매도)한 종목을 살펴봤다. 그 종목이 그로부터 2년간 어떤 수익률을 보였는가를 측정했더니 떼거리로 몰려들어 매수한 종목들의 2년간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보다 낮았고 펀드매니저들이 집중 매도한 종목들은 시장을 이기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펀드매니저들과 반대로 매매했다면 어땠을까? 시뮬레이션해봤다. 펀드매니저가 5분기 동안 순매도한 주식을 사고, 순매수한 주식을 팔았다고 가정한 거래였다. 매매 후 1년간 약 8%, 2년간 17%의 초과수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펀드매니저들이 양떼 짓을 한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심지어 기존의 연구와 달리, 개인투자자나 기관투자자들 모두 군집행위를 하는 데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외국에 비해 한국의 펀드매니저들은 더 강한 군집성향을 보인다는 게 최근의 연구결과다.


개별 종목을 분석하고 주가를 전망하는 애널리스트들은 어떨까. 애널리스트들의 군집행위를 측정하는 척도는 종목에 대한 예측 보고서를 통해 내놓은 의견이 다른 애널리스트들의 의견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재보는 것이다. 동료 애널리스트들의 평균적인 예측치, 즉 컨센서스와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의 예측을 얼마나 수정했는지를 측정해봤다.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작성한 2,713건의 예측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역시 양떼 짓을 하고 있었다. 컨센서스와 자신의 예측치가 차이가 나면, 컨센서스에 부합하는 쪽으로 자신의 답안을 고치는 경향이 드러난 것이다.


▶ 묻어가기 작전

그들의 묻어가기 처세술은 사실 투자자들이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가 얼마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업의 실제 실적을 잘 예측했는지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애널리스트들의 컨센서스에 일치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능력 있는 애널리스트로, 반대의 경우에는 무능한 애널리스트로 여긴다. 심지어 투자자들은 컨센서스와 실제 실적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시장상황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랬을 거야라고 합리화까지 해준다. 예측이 틀려도 욕먹지 않을 방법이 있는데 굳이 자신의 명성에 흠집을 내면서까지 독창적인 예측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


케인즈의 날카로운 비평은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동서고금의 지혜를 종합해보면 독특하게 성공하는 것보다는 남들처럼 하다가 실패하는 것이 평판에는 도움이 된다."


▶ 사공이 많은 배

사람들은 뭔가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위원회 따위를 만들어 중지를 모으곤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민감한 사안이 대두될 경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 조직에서 많이 쓰는 수법이다. 대개 위원회에서 내리는 결론이란 건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재확인하거나, 죽도 밥도 아닌 미지근한 해법이기 십상이다.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위원회라는 간판 뒤에 모여 있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금융시장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이른바 집단의사결정이다.


집단의사결정의 이상(理想)은 함께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 같은 이상이 실현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집단이 종종 최악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적절한 장치가 없다면, 개인들이 의사결정에서 보이는 편향들이 집단에서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집단은 결정방식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통계적 집단이다. 집단 내부의 의견들을 기계적 혹은 통계적으로 조정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향후 3개월 후 종합주가지수가 얼마인지 전망할 때, 100명의 주식 전문가들이 낸 지수 전망치를 평균한 값을 최종전망치로 내놓는 식이다. 또 하나는 숙고형 집단이다. 정보의 공유와 토론, 설득을 통해 집단의 의사결정을 내린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집단이다. 자산운용사 등에서 자산배분, 종목선정 등을 결정하는 위원회도 숙고형 집단에 가깝다.


의사결정 방식이 다른 두 집단 중에 통계적 집단은 개인보다 우월한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물론 통계적 집단의 의사결정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집단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모를 경우다. 문제는 숙고형 집단이다. 숙고형 집단에 대한 심리학 연구의 일반적인 결론은 공유되지 않은 정보는 토론 과정에서 생략되기 쉽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이 공유하는, 즉 합의를 이룬 컨센서스는 토론 과정에서 반복되고 강화되지만 이견들은 배제된다는 것이다. 특히 집단 내의 어느 구성원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그 구성원의 계급이 낮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그 사람이 가진 정보다 집단의 컨센서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면 더욱이 그의 이견을 듣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집단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독립성이다. 통계적 집단에서 더러 집단지성을 발휘해 개인들보다 탁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도 수학적인 방식에 의해 구성원들의 의견이 n분의 1씩 독립성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에 관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집단은 어떻게 집단의사결정의 함정을 피해갈 수 있을까.


먼저 비밀투표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자산배분 등과 관련한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참가자들의 장세 전망과 필요하다면 수치들까지 취합한다. 거기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토론을 벌인다. 그래도 토론 과정에서 이견이 제거되고 컨센서스에 지나치게 수렴할 위험은 여전하다.


신상품에 낚이다

▶ 플로리다 오렌지 주스를 선적하라

해외 상품 선물은 다우존스, 나스닥, S&P500 등 눈에 익은 주가지수부터 유로, 엔, 파운드 같은 통화에다가 서부텍사스중질유, 금, 전기동 등 원자재는 물론 대두, 옥수수, 커피, 냉동삼겹살 같은 농산물까지 망라한다. 국내에서 HTS를 이용해 거래할 수 있는 상품 선물은 세계 6개 거래소의 57개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해외 상품 선물의 장점들은 다음과 같다. "국내 상품의 경우 국내 변수 말고도 해외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해외 선물의 경우 대부분 그 나라의 시장만 알면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장 규모가 크고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일부 세력에 의해 시장이 왜곡되는 일이 없고 통계지표 등에 따라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정직하게 움직인다", "24시간 거래할 수 있다", "다양한 상품을 옮겨다니며 거래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거짓말이다. 경제외적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시장왜곡 또한 Kospi200 주가지수 선물시장에 비해 심한 편이다. 이유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과 달리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 등 유수의 상품선물 거래소의 전체 규모는 크지만 개별 종목을 살펴봤을 때 Kospi200 주가지수 선물보다 거래량이 많은 종목은 E-mini S&P500, 유로 FX, 10년 만기 재무부 채권 등 한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하루 23시간 거래되기 때문에 6시간 동안 열리는 Kospi200 선물 시장처럼 시장 유동성이 밀도 있게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도박 권하는 정부

증권판에서는 주식 하다 잃으면 선물시장으로 가고, 거기서 또 깨지면 옵션시장으로, 푼돈 남으면 ELW(주식워런트증권)나 옵션매수전용계좌로 향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이 올인의 길은 어떤 맥락인가. 점점 더 적은 판돈으로, 점점 더 레버리지 효과(리스크)가 큰 베팅을 하게 된다. ELW는 제도적으로 개인투자자는 매수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옵션매수전용계좌는 매수만 허용하는 걸 전제로 개시증거금 자체를 대폭 낮췄다. 푼돈을 가진 투자자들도 투기적 상품을 마음껏 매매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올인으로 가는 주요 길목에 붙어 있는 친절한 이정표는 다름 아닌 정부와 업계의 합작품이다. 아직도 주가지수 옵션이나 ELW의 만기일 다음날 "계좌에서 돈이 사라졌어요"라는 웃지 못할 하소연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게 파생상품시장의 현주소다. 두 가지 상품 모두 만기일이 도래했으나 행사가격 밖으로 벗어난 종목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엔, 매수했던 금액이 모두 정산돼 다음날 계좌에서 해당금액에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투자자들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일이 계속되는 걸까?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개인투자자들도 위험 회피수단인 파생상품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2~2006년 Kospi200 지수 선물/옵션에서 개인은 2조 842억 원을 잃은 반면 증권사는 7천 556억 원, 외국인은 1조 3천 286억 원을 땄다. 이 마당에 당국에 내세운 명분은 증권 선물 업계의 탐욕을 가려주는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옵션이나 ELW의 경우, 매수만 한다고 할 때 이론적으로 손실은 제한되고, 이익은 무한대다. 게다가 증거금도 저렴하다. 손실이 일정 한도를 넘지 않는다는 논리로 손실회피 심리에 호소하는 셈이다. 실세로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투자자산의 대부분을 옵션이나 ELW에 넣는데, 그랬을 때는 모 아니면 도의 몰빵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Ⅲ. 시장을 이기는 사람들

머니머신_메리츠증권 자산운용본부장 이경환

이 본부장은 순도 100%의 시스템트레이더다. 매수, 매도, 손절, 이익실현 등 거래의 제반과정을 모두 기계에 위임한 것이다. 물론 그 기계에는 자신의 철학과 아이디어를 심어뒀다. 마우스질 몇 번이면 끝낼 수 있는 거래를 하지 않고 애써 날밤을 지새우며 프로그래밍해 기계에 심어둔 이유는 자명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일반인들이 시스템트레이딩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 즉 기계에 맡겨두고 지켜보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것은 시스템트레이딩에 대한 가장 고약한 오해 중 하나다. 이 본부장은 끊임없이 시장을 관찰하며 시스템을 진화시켜가고 있다. 시스템 역시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트레이딩을 시작한 이래 없어진 습관이 시장을 예측하는 일이라고 했다. 미래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섣불리 예측하기보다는 미리, 예측의 기준과 지표들을 정해두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시스템트레이딩은 예측이 아닌 대응이라고 했다. 시장을 앞서갈 수는 없지만, 남들보다 덜 늦으면 생존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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