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와 소음

   
네이트 실버(역: 이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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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28000
2014�� 07��



■ 책 소개 

오바마 재선 당시, 50개 주의 결과를 모두 맞힌 

‘예측의 천재’ 네이트 실버의 슈퍼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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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시대, 넘치는 정보 속에서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예측의 비법이 궁금한가? 오바마 재선 당시 50개 주의 결과를 모두 맞힌 예측의 천재 네이트 실버가 통계학을 기반으로 어떻게 잘못된 정보(소음)를 거르고 진짜 의미 있는 정보(신호)를 찾을 것인지를 알려준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유명한 정치 전문가의 선거 결과 오판 등 예측 실패 사례 분석을 시작으로 정치, 경제, 스포츠, 기후, 전쟁, 테러, 전염병, 도박 등 여러 분야를 분석하며 (매일 엄청난 데이터가 생성되는) ‘빅 데이터’ 시대에서 예측들이 빗나가는 이유를 알려준다. 저자는 정보가 많을 때는 정확한 정보인 ‘신호’와 이를 방해하는 ‘소음’을 구분해야 하며 이에 실패하면 예측도 빗나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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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전 확률을 도출한 뒤 새로운 정보를 적용해 다시 사후 확률을 개선해 나가는 ‘베이즈 정리’ 등 자신만의 예측 비법을 소개한다. 그는 자잘한 것을 무시한 채 커다란 아이디어를 추구하기보다는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아우르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복잡한 상황과 정보를 잘 견디며 이론보다는 관찰을 중시해야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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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네이트 실버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통계학과 미래 예측의 슈퍼스타! 「패스트컴퍼니」 선정 ‘가장 창조적인 인물 1위’, 「타임스」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네이트 실버는 2002년 회계컨설팅회사인 KPMG에 입사했지만 엉뚱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의 성적을 예측하는 시스템인 페코타(PECOTA)를 개발한 것이다. 놀라운 적중률로 명성을 얻은 실버는 통계확률기법을 카지노에서 전략적으로 이용해 단번에 1만 5000달러를 따고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포커판에서 수십만 달러를 긁어모았고, 그동안 쌓인 통계학과 예측의 노하우를 활용해, 정치 예측을 하는 블로그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com)를 2008년에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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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자매 블로그가 된 파이브서티에이트는, 2008년 대선에서 미국의 50개 주 중 49개 주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고, 총선에서도 상원 당선자 35명 전원을 맞혔다. 이 때문에 네이트 실버는 엄청난 유명세를 탔고 많은 사람이 그의 예측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2012년 미국의 대선에서는 그가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비중 있는 논평을 내놓기에 바빴다. 오바마와 롬니가 박빙으로 경쟁하는 와중에 첫 후보 간 토론회가 열렸고 그 뒤엔 여론조사기관 대부분이 롬니의 승리를 예측했다. 그러나 실버는 오바마의 승리를 점쳤고, 결과는 50개 주의 결과를 모두 맞힌 그의 승리로 끝났다. 그가 대선 직전에 자신의 통계학과 예측 철학을 담아 출간한 『신호와 소음』 역시, 「뉴욕타임스」 15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아마존의 ‘올해의 책(논픽션 부문)’에 선정되는 등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결과 네이트 실버와 함께 일하려는 매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는 2013년에 결국 「뉴욕타임스」 고위층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ESPN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는 현재 ESPN뿐만 아니라 자매 채널인 ABC에서 정치, 경제,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예측 비법’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정치인과 경제 전문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그의 예측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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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이경식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나에게 오라’, 연극 ‘춤추는 시간 여행’ ‘동팔이의 꿈’, 텔레비전 드라마 ‘선감도’ 등의 각본을 썼다. 옮긴 책으로 『승자의 뇌』 『결핍의 경제학』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소셜 애니멀』 『스노볼』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오바마 자서전』 등이 있으며, 저서로 사회 에세이 『청춘아 세상을 욕해라』, 경제학 에세이 『대한민국 깡통경제학』, 역사 에세이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평전 『이건희 스토리』 『안철수의 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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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나는 왜 이 책을 추천하는가 - 여기에 당신의 미래가 보인다 

들어가며 - 신호와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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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예측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 

1. 경제 - 경제 붕괴, 왜 전문가들은 예상하지 못했는가 

2. 정치 - 내가 선거 결과를 맞힌 비법 

3. 야구 - 야구 경기는 왜 모든 ‘예측’의 모델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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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움직이는 과녁을 맞혀라! 

4. 기상 - 예측의 진보, 허리케인과 카오스의 원뿔 

5. 지진 - 라퀼라의 재앙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다 

6. 평균과 불확실성 - 숫자에 속지 마라 

7. 전염병 - 신종플루부터 에이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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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미래를 내 손에 움켜쥐는 법 

8. 베이즈 정리 - 이기는 도박꾼은 어떻게 베팅하는가 

9. 체스 - 컴퓨터가 인간처럼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 

10. 포커 - 상대방의 허풍을 간파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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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보이지 않는 손이 세상을 움직인다 

11. 주식 - 개인은 절대 시장을 이길 수 없을까 

12. 지구온난화 - 얄팍한 선동인가 과학적 진리인가 

13. 테러 - 진주만 공습과 9·11테러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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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며 - 예측은 어떻게 가능한가 

옮긴이의 말 -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주註 




신호와 소음


예측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

경제 - 경제 붕괴, 왜 전문가들은 예상하지 못했는가

2008년 10월 23일, 주식시장은 자유낙하 중이었다. 최근 5주 동안 30퍼센트 가까이 떨어졌다.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처럼 한때 잘나가던 기업들이 파산을 맞았다. 신용시장은 기능이 정지된 지 오래였다. 라스베이거스 주택들의 가격은 40퍼센트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실업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쓰러져가는 금융사들에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정부 신뢰도는 여론조사 시작 아래 역대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2000년대 후반에 발생한 금융위기를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덕적 실패로도, 규제와 감독의 실패로도, 또 제도의 실패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실패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대침체(Great Recession)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고 4년이 지난 2011년 말 기준으로, 평균적 미국인은 그 불황이 닥치지 않았을 경우보다 약 2,500달러 더 가난해졌다.


나는 이 금융위기를 예측의 처참한 실패라고 보는 인식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실패들은 위기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위기 와중이나 위기 이후 거의 모든 단계에서, 그리고 모기지 브로커(mortgage broker)부터 백악관에 이르는 모든 주체에게서 나타났다.


신용평가사들은 MBS 수천 종에 AAA 등급을 매겼었다. AAA는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재정을 확보한 정부나 최고로 잘나가는 기업, 즉 극히 소수의 경제주체에만 매기는 등급이다. 투자자들은 AAA 등급을 받은 MBS에서 지급불능(디폴트, 채무불이행) 사태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안심하고 투자했다. 신용평가사들이 부여하는 등급은 부채에서 지급불능 가능성을 판정하는 기준인 만큼 그야말로 명백하게 예측인 셈이다.


예를 들어 S&P가 부채담보부증권(CDO, 회사채나 금융회사의 대출채권 등을 한데 묶어 유동화시킨 신용파생상품 - 옮긴이)에 AAA 등급을 매기면, 평가사는 투자자들에게 이 증권이 5년 안에 지급불능이 될 가능성은 0.12퍼센트 즉 850건 가운데 1건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자 이 CDO는 AAA 등급 회사채만큼이나 안전한 것으로 둔갑했다. 심지어 S&P가 현재 시점에서 평가하는 미국 재무부 발행 채권(통상적으로 미국 국채 - 옮긴이)보다 더 안전하다는 등급을 받은 셈이기도 했다. 물론 신용평가사들은 상대평가를 하지 않지만 말이다.


S&P의 내부 자료로는, AAA 등급 CDO 가운데 약 28퍼센트가 지급불능이 되었다(몇몇 독립적 평가 주체들은 실제 지급불능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말은, CDO의 실제 지급불능률은 S&P 예측보다 무려 200배 이상 더 높았다는 뜻이다. 이는 그야말로 완벽한 예측 실패다. 거의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평가를 받은 투자금 수조 달러가 사실은 거의 완벽하게 불안전했던 셈이다.


이 사례에서 실패의 책임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예측과 모델에 있을 가능성이 한층 더 높다. 신용평가사들은 CDO에 대한 과거 기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CDO라는 파생상품은 완전히 새롭고 고도로 특이한 증권이었으며, S&P가 주장한 지급불능률(연체율)도 히스토리컬 데이터(과거의 실적 자료)에서 도출된 게 아니라 잘못된 통계 모델을 기반으로 한 추정치일 뿐이었다.


신용평가사들로서는 자기들 예측 모델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실패를 온전히 자기네 몫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의회 청문회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발뺌했고 운이 나빴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자기네가 져야 할 책임을 주택 거품이라는 외부의 우발적 사태로 돌린 것이다.


주택 거품 현상에 놀라운 점이 있다. 주택 거품이 다가오는 걸 본 사람이나 말로써 분명하게 드러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명 학자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또한 오래전부터 주택 거품을 우려했다. 주택 거품(housing bubble)이라는 말을 구글에서 검색한 사례는 2004년 1월~2005년 여름 사이 무려 10배나 증가했다. 주택 거품이라는 두 단어로 된 표현의 사례는 2001년 뉴스에서는 단지 8번 등장했지만 2005년에는 3,447번이나 언급되었다. 주택 거품은 저명한 신문이나 정기간행물에서 하루에도 열 번씩 논의되었다.


그런데도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위험을 측정하는 게 본연의 업무인 신용평가사들은 주택 거품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내가 이 장(章)을 준비하면서 대화를 나눠본 경제 전문가나 투자자 중 어느 누구도 신용평가사들을 우호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이 한 예측이 빗나간 배경을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한쪽은 탐욕 때문이라 했고 다른 한쪽은 무지 때문이라 했다. 더 나은 진단은 없을까?


이 문제에 판단을 내릴 적임자로 줄스 크롤만한 인물은 없을 것 같다. 본인이 직접 신용평가사 크롤본드레이팅스(Kroll Bond Ratings)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롤은 무엇보다 감시(surveillance) 부족을 신용평가사들의 최대 실수로 지적했다. "감시는 기업평가 분야에서는 전문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한테 당신이 관찰하는 내용을 지속해서 알려준다는 뜻이지요. 당신이 입수하는 모기지의 상환과 연체 상황의 테이프(tape, 개인 모기지와 관련해 입수한 자료)를 매달 투자자들한테 알려야 합니다. 그게 초기 단계의 경고니까요.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거나 나빠지고 있다는 경고 말입니다. 세상은 그런 내용이 게시되고 알려지길 기대하잖아요."


그러니까, 신용평가사들은 주택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마땅히 맨 먼저 발견했어야 옳다는 말이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수천 명 대출자들이 대출금 상환을 기한 안에 제대로 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따끈따끈한 자료 말이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2007년에 주택시장에서 문제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주택차압률이 두 배로 훌쩍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대량의 MBS에 등급 하향조정 조치를 내렸다. "그 사람들은 멍청이들이 아닙니다. 그들도 상황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음악이 멈추길 바라지 않았던 겁니다."


새로운 CDO가 발행되는 한 대규모 수익은 보장되었고 게다가 투자자는 신용평가사가 내리는 등급 판정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할 길이 없었던 만큼, 신용평가사들로서는 굳이 등급 판정의 품질을 놓고 경쟁할 이유가 거의 없었다.


신용평가사들이 설정한 방정식은 단순했다. 이들은 CDO를 발행하는 금융사로부터 돈을 지급받았다. 그것도 CDO를 평가할 때마다 매번 받았으므로, 신용평가사들이 거두는 수익은 CDO가 많을수록 커졌다. 유형이 서로 다른 모기지를 다양하게 조합해, 또는 이 방법에 싫증이 나면 종류가 다른 CDO를 서로 조합해 이른바 파생상품이라는 CDO를 발행할 수도 있었다. CDO는 이렇게 해서 사실상 무한대로 발행될 수 있었다.


사실, 신용평가사들이 주택 거품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해봤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그게 별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릇된 자신감은 금융권 전체를 물들였다. 더글러스 애덤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okers Guide to be the Galaxy)』 시리즈에서 이처럼 말한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과 절대로 잘못될 수 없는 것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절대로 잘못될 수 없는 것이 잘못될 때에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움직이는 과녁을 맞혀라!

전염병 - 신종플루부터 에이즈까지

독감(flu)은 해마다 1월이면 어김없이 미국 포트 딕스(Fort Dix) 기지를 공격했다. 장병들은 대부분 매년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다. 전국으로 흩어졌던 군인 가운데는 독감이 번진 고향 마을에서 바이러스를 옮아오는 장병이 꼭 있게 마련이다. 독감에 걸린 채 귀대한 장병은 독감을 다른 소대원에게 십중팔구 퍼트리게 된다. 하지만 대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해마다 1월과 2월에 미국인 수천만 명이 독감에 걸리지만 그로 인해 죽는 사람은 별로 없다. 휴가를 보내고 (1976년) 1월에 포트 딕스로 귀대한 열아홉 살 데이비드 루이스 이등병처럼 건강한 청년이 독감으로 죽는 사례는 더더구나 드물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폐렴이었다. 폐렴이 독감의 흔한 합병증이기는 해도 루이스 이병처럼 건강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런데 사실 포트 딕스의 군의관들은 이미 그해의 독감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A형 독감이었다. 비록 그 겨울 독감에 걸린 장병 수백 명 중 일부가 빅토리아 A형 독감에 양성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루이스 이병처럼 정체를 알 수 없으면서 훨씬 더 심각한 독감에 걸린 장병도 있었다. 이들의 혈액 표본은 추가 검사를 위해 곧바로 애틀랜타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 보내졌다.


질병통제예방센터는 2주 뒤 그 수수께끼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냈다. 아예 새로운 독감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골치 아픈 독감이었다. 과거 유행병들을 기원으로 하는, 일명 신종플루(돼지인플루엔자, swine flu)인 H1N1(신종 인플루엔자 A)이었다. 세계 현대사에서 H1N1은 최악의 유행병이었다. 1918~1920년의 스페인 독감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전염시키고,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미국인만 67만 5,000명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어설픈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서, 대규모 독감 유행은 대략 10년 단위로 나타난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독감은 1938년, 1947년, 1957년, 1968년에 위세를 떨쳤었다. 그리고 이제 1976년이었다. 다음 차례의 독감이 등장할 때라는 뜻이었다.


무시무시한 예측들이 뒤를 이었다. 독감의 발병이 임박했다는 건 이미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질병통제예방센터가 H1N1을 확인했다고 발표할 무렵에 독감 시즌은 이미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그 독감이 이듬해에 훨씬 더 무서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저명한 의사는 「뉴욕타임스」에서 독감의 유행 가능성을 경고했다. 제럴드 포드 정부의 보건장관 데이비드 매슈스는 미국인 100만 명이 H1N1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1918년의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포드 대통령은 진퇴양난이었다. 백신 산업은 패션 산업과 비슷하게 그 해에 어떤 독감이 유행할지 알려면 적어도 여섯 달이 필요하다. 독감은 해마다 조금씩 다른 변종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H1N1 백신을 갑작스레 그것도 전 국민에게 접종할 수 있을 만큼 생산하려면, 당장 개발·생산에 들어가야 했다. 한편 당시 포드는 우둔하고 우유부단하다는 대중의 인식을 떨쳐내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포드는 용단을 내려 대략 2억 명분의 백신 생산을 의회에 요청하고, 대규모 접종 프로그램을 지시했다. 이 같은 대규모 접종은 1950년대에 조너스 솔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을 때가 처음이었고, 그 뒤로는 한 번도 없었다.


언론은 이 대규모 접종 프로그램을 도박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포드는 돈이냐 사람 목숨이냐의 한판 도박으로 생각했다. 또 자기의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상원과 하원은 1억 8,000만 달러가 드는 포드의 제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름이 되자 정부의 이 계획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여름철은 미국에서 독감이 수그러드는 시기지만, 남반구는 독감이 통상 절정에 다다르는 겨울이었다. 그리고 오클랜드와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지역 그 어디서도 H1N1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치명적이지 않은 빅토리아 A형만이 다시 독감 세계의 최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게다가, H1N1 발병 사례는 포트 딕스에서 확인한 약 200건이 세계에서 유일했고, 사망자도 루이스 이병뿐이었다. 포드의 대규모 접종 프로그램을 놓고 비판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 어떤 서양 국가도 이처럼 강력한 대규모 접종 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다.


늦가을이 되자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환자 약 500명이 백신 접종을 받고 나서 길랭바레 증후군(Guilain-Barré syndrome,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이라는 희귀한 신경계통 질병의 증상을 보인 것이다. 이 병은 마비를 유발할 수 있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이번에는 통계 증거도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길랭바레 증후군의 통상적 발병률은 100만 명 가운데 한 명이지만, 백신 접종을 받은 개체군에서는 약 5,000만 명 가운데 500명으로 통상 수치보다 열 배쯤 높았다.


과학자들은 백신이 길랭바레 증후군의 발병 원인이라는 데 회의적이었지만, 촉박한 백신 생산 일정에 따른 실수가 원인일 수 있었으며, 의약계에서는 백신 프로그램을 멈춰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정부는 결국 12월 16일에 백신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포트 딕스에서도 H1N1은 퇴치되었고 미국에서도 이 독감이 더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1976년 겨울에서 1977년 겨울 기간 빅토리아 A형 사망자 수는 평균보다 조금 밑돌았다. 그 모든 게 헛소동인 셈이었다.


신종플루 대실패(swine flu fiasco)는(곧 이런 별명이 붙었다) 포드 대통령에게는 모든 점에서 엄청난 대재앙이었다. 포드는 그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에게 패한다. 제약회사들은 백신 접종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면제받은 터라, 260억 달러가 넘는 배상금은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게 되었다. 거의 모든 지역 신문마다 가난한 식당 종업원이나 교사가 국민의 의무를 다하려고 백신을 접종했다가 안타깝게도 길랭바레 증후군에 걸린 사연이 실렸다.


포드의 H1N1 대응은 여러모로 무책임했다. 그는 의학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1918년 유형의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대국민 호소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그런 최악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무리 높아봐야 35퍼센트 미만이라고 보았으며 2퍼센트 수준으로 낮게 판단했다.


그런데 나타날 때도 그랬지만 H1N1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이유도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이 독감이 33년쯤 뒤에 다시 나타났을 때 여기에 대한 예측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빗나갔다. 과학자들은 2009년 H1N1가 다시 등장했을 때 처음에는 이 독감을 놓치기까지 했다. 또한 그 독감이 사람들에게 미칠 위협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했다.



미래를 내 손에 움켜쥐는 법

베이즈 정리 - 이기는 도박꾼은 어떻게 베팅하는가

스포츠 도박사인 일명 밥 하랄라보스 불가리스는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힐스의 번쩍거리는 현대식 저택에 산다. 그는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는 매일 밤 NBA 경기를 지켜본다. 다섯 경기를 삼성 평면스크린 TV 다섯 대로 동시에 본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라스베이거스 팜스플레이스에 있는 자기 소유의 콘도로 날아간다. 더 긴 휴식이 필요하면 아프리카의 사파리로 떠난다. 운이 좋지 않은 해에는 얼추 100만 달러를 따고, 운이 좋은 해에는 그보다 서너 배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불가리스는 상류사회의 삶을 누린다. 그는 내부자가 전해주는 정보에 의존하지도, 심판을 매수하지도 않는다. 조직(system)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오로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뮬레이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도 않는다.


불가리스가 성공을 거둔 건 그만의 정보 처리 방식 때문이다. 그는 특정한 양상(패턴)을 좇기만 하지 않았다. 그는 자료 속에 내재된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아내려 노력했다. 농구 지식과 통계학 지식을 결합했다. 물론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 때로는 직감을 동원하기도 했다. 대단히 크고 또 복잡한 형태의 도박을 한 셈이다.


불가리스의 커다란 비밀은 그에게는 커다란 비밀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신 그는 사소한 비밀들을 수도 없이 (굳이 수를 밝히자면 1,000개쯤) 가지고 있다. 이렇게나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하나로 조합해서 방향성을 찾아낸다. 일례로 그는 각 경기의 결과를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가리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자기에게 명백하게 유리할 때나 다른 정보가 그 결과를 보완할 때만 시뮬레이션에 의존한다.


그는 NBA의 경기를 거의 다 본다. 그리고 어느 팀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지, 또 어느 팀이 그렇지 못한지를 분석하면서 자기 의견을 발전시켜 나간다. 불가리스는 자기만의 독특한 스카우팅 서비스를 운영하며, 보조 인력을 고용해 모든 경기에서 각 선수의 수비 위치를 도표로 그리게 하고, 또 어떤 NBA 팀도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조언을 선수들에게 한다.


NBA 선수 수십 명의 트위터를 팔로우해서 140자의 메시지를 철저하게 분석해 그 선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는다. 이를테면 나이트클럽에 가겠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면 이 선수는 그날 경기에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불가리스는 또 감독들이 기자회견에서 하는 말과 표현에 촉각을 무척 곤두세우는데, 자기 팀이 공격하는 법을 배우길 원한다거나 농구의 기본 원리에 충실하게 경기하길 바란다고 말한다면, 이 감독은 그날 경기를 속도를 천천히 조절하면서 풀어가겠다는 의도가 보인 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불가리스가 관찰하는 이 같은 내용을 사소하다고 여기며 지나친다. 사실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은 아니다. 경기 승패에 영향을 줄 중요하고 명백한 요인들은 다른 도박사들도 죄다 알고 있으며, 또한 이미 배당률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가리스로서는 그런 만큼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불가리스가 돈을 걸거나 걸지 않는 이유가 한 가지만은 아니다. 그의 판단과 결정에 도움을 주는 사고의 틀은 분명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가 예측을 우리 주변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의 핵심으로 이해한다면) 예측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베이즈주의적 추론(Bayesian reasoning)이 바로 그것이다.


토마스 베이즈는 1701년에 태어난 (또는 1702년) 영국의 목사다. 베이즈는 통계학의 전 영역에 이름을 남기고 또 저 유명한 불멸의 정리(定理)에도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지만, 정작 그의 삶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베이즈가 영국(잉글랜드) 남서부 하트퍼드셔 카운티의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은 거의 확실하다. 그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는데,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지지하지 않는 장로파 소속의 이른바 비국교도여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이즈는 불리한 출신 배경과 부족한 저술 경력에도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베이즈의 저작으로 인정하는 것 하나가 (존 눈이라는 가명으로 발표되긴 했지만) 에세이 형식의 소논문 「신성한 자비심(Divine Benevolence)」이다. 베이즈는 이 에세이에서 신이 진정으로 자비심이 넘치는 존재라면 어떻게 이 세상에 고통과 사악함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을 탐구했다.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신의 불완전성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이 설계한 우주를 우리 인간이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해 그런 오해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낯설다. (……) 인간은 이 거대한 우주의 가장 낮은 부분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패배만을 추론하게 된다."


훨씬 더 유명한 글이 「우연의 원리와 관련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에세이(An Essay toward Solving a Problem in the Doctrine of Chances)」인데, 이 에세이는 베이즈가 죽은 뒤인 1763년에 그의 친구인 리처드 프라이스가 왕립학회에 제출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확률적 믿음을 어떻게 정식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글이다.


프라이스는 베이즈의 이 에세이를 손보면서, 해 뜨는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의 예를 들었다(이 사람은 성서 속 아담일 수도 있고,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동굴에서 처음 밖으로 나온 사람일 수도 있다). 처음에 이 사람은 해가 뜨는 일이 매일 반복되는 현상인지 아니면 그 순간에만 나타난 특이한 현상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 뒤 아침이면 언제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다. 해 뜨는 현상이 자연의 영원한 특성일 거라는 그의 믿음은 점점 커진다. 이처럼 통계적 추론을 통해, 내일도 해가 다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에 그가 부여하는 확률은 100퍼센트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결코 정확하게 100퍼센트에는 도달하지 않는다. 그 지점으로 수렴할 뿐이다.


베이즈와 프라이스가 한 주장은, 세상은 본질적으로 확률적이라거나 불확실하다는 게 아니다. 베이즈는 신의 완벽함과 무결성을 믿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은 일정하고 또 예측할 수 있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하는 아이작 뉴턴의 저작도 신봉했다. 그들이 고민한 것은 바로 우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수학적이면서 철학적으로 표현된 진술, 즉 어림값을 통해 우주에 대해 배우는데, 증거를 더 많이 모을수록 진리에 조금씩 또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세상을 움직인다

지구온난화 - 얄팍한 선동인가 과학적 진리인가

"예측 모델의 다양성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당신도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고 싶진 않겠죠?" 세계적인 허리케인 전문가인 MIT 기후학자 케리 이매뉴얼이 나에게 한 말이다. 이매뉴얼은, 예측 모델의 다양성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모델들이 제각기 다른 가정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제각기 다른 버그를 갖고 있다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다지 이야기하려 들지 않습니다. 모델이 다르면 프로그램이 보이는 오류도 다릅니다. 수백만 줄의 명령문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에 오류가 하나도 없으리라곤 생각하지 않겠죠?"


만약 당신이 기후변화 논쟁을 회의주의자와 신봉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주장으로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회의주의자가 이런 주장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비록 이매뉴얼이 보수주의자이자 공화당 지지자이긴 하지만(사실 이렇게 천명하는 것도 MIT에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지구온난화 회의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며 과학계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이다. 2004년 저서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What We Know About Climate Change)』은 기후과학에 대해 기본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그리고 극단적이리만큼 사려 깊고 잘 정리된) 견해를 담고 있다.


실제로 기후학자들은 논쟁의 몇몇 지점에 대해서는 폭넓게 동의하고 있다. 2008년에 기후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94퍼센트가 (다시 말하면, 거의 모든 기후학자가) 기후변화가 현재 진행 중이라는 데 동의하고, 또 84퍼센트는 기후변화가 인간활동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후 예측 컴퓨터 모델의 정확성에 대한 동의 수준은 훨씬 낮았다. 과학자들은 모델이 지구 기온을 예측하는 능력을 놓고 다양하게 판단했으며, 모델의 기후변화 예측 능력에는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예컨대, 컴퓨터 모델들이 50년 뒤의 해수면 상승 수준을 잘 예측한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은 겨우 19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기후학자들은 자신의 신뢰성을 걸고 예측을 한다. 예측이 빗나가면 예측가의 신뢰성은 훼손된다. 잘못된 예측이 금방 쉽게 잊히는 다른 분야와 다르게, 기후 분야에서의 실패는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 흔히 제기되는 비판 하나가 새로운 빙하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지구냉각화(global cooling) 예측을 둘러싼 것이다. 1970년대에 지구 기온의 하락을 예측한 논문이 여럿 발표되었다. 충분히 합리적인 이론을 근거로 했다. 유황의 배출에 따른 냉각화 추세가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온난화 추세를 상쇄할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이 예측들은 과학계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온난화 지지자들에게 반박당했다.


불확실성은 예측의 본질적 요소로, 타협이 불가능하다. 불확실성에 대한 정직하고 정확한 표현은 때로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을 구할 수 있다. 또, 스톡옵션을 거래하거나 NBA 경기에 돈을 걸 때도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조심스럽고도 명시적으로 계량화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과학적 진보, 특히 베이즈 정리를 전제한다면 이는 필수다.


지난 몇 년 동안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국인의 확신은 점점 후퇴했다. 설령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100퍼센트 동의가 있더라도,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은 주별로 또는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다. 워싱턴 주지사 크리스틴 그레고어는 이렇게 말한다. "석탄을 생산하는 주에 진보적인 우리 민주당 주지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이분들도 탄소 배출 감축에 대해서는 몹시 고민합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기후 논쟁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과학과 정치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있다. 이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 같다는 게 내 견해다.


과학에서 진보는 가능하다. 베이즈 정리에 따르면 과학적 진보는 필연적이다. 예측이 나오고, 가정에 대한 믿음이 검증을 받고, 또 세련되게 다듬어질 테니 말이다(과학적 진보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출원되는 기술 특허의 수는 거의 기하급수적 비율로 늘어나고 있으며, 10년 전에 비하면 두 배 수준이다).


과학에서 모든 측정점이 정확하게 단일한 결론을 가리키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 현실의 자료는 소음으로 범벅되어 있다. 어떤 이론이 완벽하다더라도 그 이론의 신호가 발산하는 힘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베이즈 정리 아래에서는 그 어떤 이론도 완벽하지 않다. 모든 이론이 그저 진행 중인 진보의 과정에 있을 뿐이다. 계속해서 검증을 받으며 다듬어질 뿐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회의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정치에서는 상대방, 다시 말해 적에 대한 인정사정없는 공격만이 있을 뿐이다. 특정 당파 사람들은 경제적․사회적․외교적 정책(본질적으로는 서로 거의 무관한 정책)과 관련된 일련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런저런 어림값이 타협안으로 제시된다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기후학자들이 길거리 패싸움을 그만두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또 과학에서 정치로 넘어가는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는 것은, 논쟁이 앞으로도 수십 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에서 의심스러운 예측은 언제나 논쟁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래서 진리가 결국에는 우세해진다. 하지만 진리가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 없는 정치 영역에서, 진리는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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