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 중국을 공략하라!
이 책은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중국을 공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재미있는 소설로 보여준다. 이 책에는 중국 문화와 중국인을 모르고 사업에 도전한 홍 대리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성공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기존 중국 관련 책들이 ‘투자’의 관점에서 알아야 할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에는 중국에서 20년간 성공적으로 사업을 해온 김만기, 박보현 저자의 ‘진짜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저자들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팁과 칼럼을 통해 중국 비즈니스에 필요한 정보들은 물론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다룬다. 중국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중국을 알고 싶은 사람들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저자
김만기
중국투자전문가인 김만기 교수는 한중수교가 되던 해인 1992년 무일푼으로 중국 땅을 밟아 한국인 최초로 베이징대학 유학생이 되었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중국학 석사를 취득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중국 사업을 시작했다. ㈜헤럴드차이나 대표로 재직하면서 중국투자 컨설팅을 했고, 이후 중국 사모펀드를 조성하여 ㈜랴오닝하이리더투자개발을 설립해 직접 중국 관련 사업을 추진했다. 중국 심양의 랜드마크가 된 거대한 쌍둥이 빌딩은 그가 성공시킨 대표적 투자 사례다.
중국 지방정부 경제 고문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고, 베이징대학 한국 총동문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 경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 사업가와 교육자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과 대만에 번역 출간된 『20대에는 사람을 쫓고 30대에는 일에 미쳐라』가, 옮긴 책으로는 『차이나스리더스』가 있다.
박보현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 유학 시절 김만기 교수를 만나 결혼 후 런던대학에서 같이 유학했다. 학업뿐 아니라 사업, 강의, 집필 등 모든 활동을 함께하며 중국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이들 부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탄영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중국을 잘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믿음으로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중이다. 이들은 언젠가 세 식구가 배낭을 메고 광활한 중국 대륙 곳곳을 함께 돌아보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
■ 차례
등장인물
1장 따라 하기의 한계
적에게서 배운다
어설픈 벤치마킹은 어설픈 결과를 낳는다
사람이 답이다
중국 비즈니스,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5
2장 사람을 얻어라
떠우지아? 그게 뭐야?
누구를 뽑아야 하나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진심에는 국경이 없다
중국 비즈니스,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6
3장 맞춤 전략
운명이 걸린 나흘
반격의 시작
카운터펀치
중국 비즈니스,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7
4장 중국식 협상
마지막 퍼즐
승부수를 던지다
중국 비즈니스,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8
에필로그 _ 카페88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중국 천재가 된 홍 대리2
따라 하기의 한계
적에게서 배운다
판다커피 궈마오점 1층.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홍 대리는 자신이 손님임을 잊고 반사적으로 "어서오세요"라고 인사를 할 뻔했다. 추운 날씨에다가 제법 늦은 시각임에도 밖에서 약 20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사실 홍 대리로서는 케이크와 커피를 먹기 위해 그렇게 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10위안 정도, 한국 돈으로 1600~1700원 아끼자고 이 추운 날 밖에서 30분 이상 기다린다는 것이 과연 경제적인 행위일까 싶었다. 어쨌든 홍 대리는 기다렸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으며, 주문을 했다. 가게는 으리으리하게 컸고, 늦은 시간인데도 자리가 꽉 차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부러웠다. 빽빽하게 놓인 테이블 사이로 뜨거운 커피와 케이크를 들고 지나간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워낙 손님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테이블 간격을 널찍이 떼어 놓은 빈하우스 매장들을 떠올리며, 홍 대리는 씁쓸해졌다. 커피와 케이크를 내려놓은 홍 대리는 차근차근 카페를 둘러보았다. 상하이의 판다커피 매장들과 거의 똑같았다. 군데군데 놓인 판다 인형이나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다. 다른 카페들에 비해 어린아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많다는 것만 보더라도 판다 인형과 인테리어가 주는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했다. 물론 저렴한 가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표지에 서로 다른 카페 이름이 적힌 4권의 노트를 꺼낸 홍 대리는 그중 판다커피라 적힌 노트를 펼쳤다. 이로써 판다커피 중 다섯 번째 매장에 대한 분석이 시작됐다. "가족 단위 손님들은 나들이를 갔다가 오는 길에 들르는 것 같군. 가벼운 먹거리와 커피 외의 음료를 많이 주문하고, 푹신한 의자와 넓은 테이블을 선호."
젊은 부부와 너댓 살쯤 된 아이가 있는 테이블을 간략하게 그림으로 그리고 밑에 설명을 달던 홍 대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분명 무척 낯이 익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홍 대리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자리를 박차듯 일어난 홍 대리는 재빨리 뒤를 쫓았다.
"천메이!"
"초, 총경리님."
홍 대리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사람은 왕징점의 직원이었던 천메이로, 춘제 때 고향에 내려갔다가 그대로 퇴사한 사람이었다. 홍 대리는 중국인 직원들 중 가장 선진화된 서비스 마인드를 가졌던 천메이를 직원 교육 담당자로 임명하고 연봉도 후하게 줬을 정도로 아꼈다. 그런데 춘제가 끝나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복귀를 하지 않았고, 홍 대리가 먼저 전화를 걸자 일방적으로 퇴사를 통보해 큰 배신감을 안기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났다가, 또 자신의 인덕이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 참담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인가?
"천메이, 설명을 해봐요. 어떻게 된 거예요?"
"총경리님. 그게……."
천메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은 천메이만이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홍 대리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는 짧았지만 느끼기에는 무척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둘 사이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적막은 제3의 인물로 인해 깨져버렸다.
"천메이! 거기서 뭐하는 거야? 접시 부족하니까 빨리 가서 설거지나 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깜짝 놀란 쉬타오가 눈을 동그랗게 든 채 좀 전의 천메이처럼 못 박힌 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천메이에게 호통을 치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쉬타오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쉬타오! 이것도 당신 짓이야?"
"무, 무슨 소리야?"
"아니, 됐어. 쉬타오 당신은 빠져 있어. 난 천메이에게 직접 들어야겠어. 천메이, 어떻게 된 거예요?"
"그, 그게……."
천메이는 끝까지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쉬타오의 눈치를 살핀 것만으로도 홍 대리에게는 답이 됐다. 아마도 쉬타오는 더 많은 연봉을 미끼로 천메이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그리고 번 돈의 대부분을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 병원비로 쓰고 있을 정도로 삶이 여유롭지 못한 천메이에게 이는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었으리라. 홍 대리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메이를 탓할 수도 없었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집안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연봉을 제시하는 회사가 있다면 이직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욕지기가 나오는 것을 억누르기 힘들 정도로 치솟는 이 분노는 아마도 쉬타오를 향한 것이리라.
"천메이! 빨리 가서 설거지해!"
천메이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 홍 대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자, 쉬타오는 특유의 뻔뻔함을 되찾은 듯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천메이는 이제 우리 판다커피에서 일하기로 했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가보시지. 우리 판다커피는 당신네 회사와는 다르게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준다고! 그래서 내가 천메이한테도 함께 일하자고 했지. 어때? 이제 공개적으로 나에게 망신을 준 게 후회가 되나? 하지만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어! 앞으로도 빈하우스 직원이었던 사람들을 판다커피에서 자주 보게 될 거야. 하하하!"
이제 자신의 총경리가 아니라고 홍 대리를 대하는 말투부터 달라진 쉬타오가 고소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지만, 정작 홍 대리의 시선은 쉬타오의 뒤쪽 어딘가에 박힌 채 미동조차 없었다. 쉬타오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뒤를 돌아봤다. 그러더니 좀 전에 홍 대리를 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겁을 하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허리를 푹 숙였다. 쉬타오를 저승사자라도 본 것처럼 겁에 질리게 만든 장본인은, 홍 대리가 기억하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제임스 장도 홍 대리와 마찬가지로 쉬타오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쉬타오, 가서 일하시오. 홍규태 총경리, 잘 지냈소? 우리 가게에서만 두 번이나 마주치다니, 기막힌 우연이군. 아니면 우리 가게 단골인데 내가 몰랐던 거요?"
"그럴 리가. 빈하우스 커피가 더 맛있는데 내가 여기 단골일 리가 없죠."
"그렇다면 여긴 어쩐 일로?"
"쉬타오 저 인간으로 여러 가지 수를 썼길래 어디 얼마나 잘 되고 있나 보자, 하고 왔더니 이번엔 천메이까지 데려왔더군요. 남의 직원을 빼내는 것도 판다커피의 전략입니까?"
"빼가다니, 무슨 소리요? 천메이는 훌륭한 인재고, 난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주겠다고 제시했을 뿐이오."
"두고 봅시다, 제임스 장. 당신 말대로 빈하우스가 중국에서 물러나게 되는지, 아니면 당신네를 위협하고도 남을 존재로 성장하는지……."
제임스 장은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홍 대리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운을 빌겠소."
"고맙군요."
그 말을 끝으로 제임스 장은 뒤로 돌아 사라졌고, 홍 대리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짐을 챙겨 나왔다.
점점 멀어지는 홍 대리의 뒷모습을 2층 창가에 지켜보던 제임스 장은 쉬타오를 조용히 사무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오, 오늘 일은…… 좀 재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홍규태 얼굴을 보셨습니까? 완전히 뭐 씹은 표정이던데요? 하하! 홍규태가 천메이를 엄청 아꼈죠. 그런 직원을 경쟁사가 데려왔으니 얼마나 속이 쓰리겠습니까? 제가 천메이를 빼내 오느라고 얼마나……."
"쉬타오. 이제 당신은 판다커피 사람이 아니오."
한창 신이 나서 떠들던 쉬타오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 하지만 총경리!"
"그 많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가 빈하우스 직원들을 빼왔다는 걸 공공연히 밝히다니, 멍청하기가 이를 데 없군. 그럼 나가보시오. 퇴직금은 내일 계좌로 넣어주지."
"흥! 이보시오, 제임스 장! 날 이렇게 자를 수 있다고 보시오? 당신이 나에게 시킨 일들이 밝혀지면 좋을 게 없을 텐데?"
쉬타오로서는 최후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장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제법 두둑한 종이봉투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쉬타오 당신이 해온 짓들이 낱낱이 들어간 서류와 증거들이오. 그중에는 판다커피로 옮긴 후에 저지른 비리들과 그에 대한 증언들도 포함되어 있지. 뒷거래 장면이 찍힌 사진도 꽤 있고. 그리고 쉬타오 당신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게 그쯤을 무마할 능력이 없을 것 같소? 가보시오. 퇴직금은 섭섭지 않게 줄 터이니, 입단속 잘하시고."
그 말을 끝으로 제임스 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 뒤돌아섰고, 쉬타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무실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
홍 대리는 사무실 문을 열고 잠시 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홍 대리는 추위로 언 손에 몇 번이나 입김을 불고 손바닥을 비벼대면서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요 며칠간 경쟁사들을 돌아다니며 보고 적은 노트들을 펼쳐두고, 옆에는 색색이 보드마카를 진열하듯 놓아두었다. 그리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노트마다 자신이 강조해뒀던 부분들을 화이트보드에 옮겨 적었다. 이렇게 적은 내용들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고 화이트보드를 깨끗이 지운 후, 다음 노트를 또 똑같이 반복했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노트에 적힌 내용들 중 특히 중요하거나 특별했던 내용들만 추려졌다. 몇 시간이 흐르자 그 모든 내용들은 화이트보드 한 면에 모두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압축됐다. 화이트보드에는 홍 대리가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전략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전략을 다 시도하기란 불가능하기에, 홍 대리는 우선순위를 매겼다.
"우리 회사의 기본 전략인 고급화·차별화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빠른 시일 내에 도입 가능한 것들이 뭐가 있을까?
어설픈 벤치마킹은 어설픈 결과를 낳는다
"홍 대리! 내일 이준서 실장이 중국에 출장을 갈 걸세."
"예? 이준서 실장이요?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습니까?"
"갑자기 결정이 난 거라 미처 연락할 시간이 없었네."
홍 대리는 갑자기 골치가 아팠다. 홍 대리는 이준서와 별로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이준서 실장이 중국 출장은 무슨 일인가요?"
"전략기획실장이니 회사의 향후 경영전략을 모색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네."
"그렇다면 후계자 수업의 일환이라는 게 비공식적인 입장이겠군요."
경영을 승계하려면 당연히 경영 전반을 알아야 하니, 중국 상황도 볼 겸 출장을 오는 것이리라.
"홍 대리, 너무 의미를 두지는 말고 그저 입사 동기끼리 회포나 푼다고 생각하게. 젊은 두 브레인이 의기투합하면 좋지 않은가. 홍 대리, 이 실장한테 너무 날을 세우지 말고 잘 협조해주기 바라네. 그게 회사를 위한 길일세. 꼭 좀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때리거나 혼내지는 않을 테니까 마음 푹 놓으세요."
"그럼 홍 대리를 믿겠네."
오승진 상무는 또 믿는다고 했다. 그 믿음에 부합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할 일이라 생각하며, 홍 대리는 전화를 끊었다. 홍 대리는 리리에게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준서에게 넘겨 줄 보고 자료를 정리했다. 동기였던 사람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씁쓸했지만, 오승진 상무를 생각하며 참기로 했다. 비록 오늘도 철야를 해가며 보고 자료를 준비해야 할 게 분명하고, 이준서가 그 자료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지만 말이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사무실 문이 열리며 이준서가 들어섰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지 않은 것은 홍 대리의 사소한 반항이었다. 중국 방문에 대해 홍 대리에게 직접 이야기한 바가 없으니 굳이 마중을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유일한 핑곗거리였다.
"저녁에 오시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연락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왜? 연락하면 마중이라도 나오려고 했어? 잘 찾아왔으니 됐지. 그나저나 말로만 듣던 베이징 스모그, 참 대단하네. 도착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목이 칼칼해."
"그런데 실장님이 중국은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뭐, 머리도 식힐 겸, 앞으로 해외 진출 전략을 어떻게 짜야할 지도 생각해볼 겸, 중국 상황은 어떤가 알아보기도 할 겸. 진짜 겸사겸사 왔어."
홍 대리는 대답 대신 새벽까지 준비한 서류를 건넸다.
"앞의 세 페이지는 각 지점의 개점 때부터 지난달까지의 매출 현황입니다. 그 뒤로는 매출 변동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전략, 그에 따른 지점별 예상 매출과 그 근거입니다."
"매장에 따라 매출 편차가 심하네?"
"유동인구와 인구밀집도, 상권, 경쟁업체의 수와 밀집도 등등 모든 여건이 다르니까요. 그건 한국 매장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장에는 향후 매장 개점 후보지 위치와 예상 비용입니다. 물론 각 후보지별 선정 근거도 함께 첨부했습니다."
이준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훑었다.
"영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나는 자료 보는 것보다 현장이 체질에 맞더라. 매장 좀 둘러보고 싶은데, 가이드해줄 수 있어?"
"아, 물론입니다."
밤을 새다시피 해서 준비한 자료를 건성으로 훑어보기만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고, 자신에게 가이드 역할을 맡긴다는 사실에 더 기분이 상했지만 홍 대리는 능숙하게 감정을 숨겼다.
*
"여기가 1호점인 왕징점입니다."
"휘유! 넓은데? 축구해도 되겠어."
"중국에서는 좁은 편입니다. 이것보다 두 배는 넓은 건물의 3층까지 쓰는 카페도 부지기수니까요."
"아, 좀 전에 지나온 그 건물 말이지? 진짜 크긴 크더라. 역시 대륙의 사이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가 보네."
매장으로 들어선 이준서는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까 그 큰 카페…… 이름이 뭐였지? 아, 맞다! 판다커피. 거기에 비해서 조명이 너무 어둡지 않나? 좁은데 어둡기까지 하니까 더 좁아 보이는 것 같은데……."
홍 대리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은은한 조명과 고품격 인테리어는 한국의 본점에서부터 빈하우스가 지켜온 콘셉트였다.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이 조명과 인테리어는 빈하우스의 기본 콘셉트입니다."
"그건 아는데, 그래도 조명을 좀 더 밝게 바꿔보는 건 어떨까?"
"한번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장소로 갈까?"
2호점인 왕푸징점에 들어서자 이준서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넓은 게 마음에 들었나보다.
"와, 여긴 아까 거기보다 더 넓네?"
"넓긴 하지만, 중심가에서 벗어나 있어서 유동인구는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다고는 해도 손님들을 끌어 모을 방법이 있을 텐데…. 좋은 방법이 뭐 없을까?"
홍 대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방법을 안다면 왜 아직까지 시행을 안 하고 있겠는가? 이렇게 중심가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 손님을 끌려면 확실한 입소문을 탈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홍 대리는 그 해답을 맛과 서비스에서 찾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가격대와 신 메뉴에 대한 호응도 왕푸징점이 가장 적었다.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베이커리를 무료로 준다고 하면 어떨까? 커피 한 잔 사면 빵이나 케이크 하나 무료!"
전용 파티셰까지 고용해서 만든 빵과 케이크를 공짜로 준다면 팔리는 족족 마이너스 매출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홍 대리는 이준서의 이 어이없는 아이디어에서 뭔가 단서를 얻은 것도 같았다.
그래, 생각해볼 방법은 있겠군. 테이크아웃의 할인율을 높여 매장 관리비를 줄이면서 회전율은 높이고, 다섯 잔 구매하면 케이크를 할인해준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3호점인 궈마오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기 시작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이준서는 바로 옆에 성처럼 버티고 있는 판다커피를 가리켰다.
"이 회사는 아까 1호점이랑 2호점 근처에서도 본 것 같은데 아닌가?"
"맞습니다. 세 군데 모두 우리가 먼저 개점을 했는데, 바로 옆에 들어섰죠. 아까 드린 자료를 보셨다면 알겠지만, 그게 매출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적을 이기려면 적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인데…….
홍 대리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이준서는 열심히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 역시 베이징은 베이징이구나. 공기가 나빠서 그런지 머리까지 아프다. 일본에 갔을 때 어떤 건물엔가 보니까 쿨 존(cool zone)이라는 게 있더라고. 건물 전체 냉방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크니까, 엘리베이터 근처에 조그만 방을 만들어서 딱 그 공간만 냉방을 하는 거지.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땀 좀 식히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홍 대리는 번쩍하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 대기 손님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야!"
*
3호점까지 매장을 둘러 본 후, 홍 대리와 이준서는 음식과 술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홍 대리로서는 이준서와 단둘이 술을 마신다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난 3년 안에 중국 전역에 100호점까지 열 생각이야."
술이 지겨워 물을 마시던 홍 대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물을 내뿜었다.
"켈록켈록! 3년 안에 100호점이라니, 지금 중국에서 기반도 잘 닦이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무리한 계획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까 속도를 올려야지. 지금 속도로 가면 10년이 걸려도 안 돼.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매장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줘."
홍 대리는 3호점을 열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참담한 패배감이 떠올랐다. 세 개 지점을 관리하는 데도 이렇게 고생이 심한데 여기서 더 박차를 가하란다.
"올해 안에 매장 수를 10호점까지 늘려줘. 그리고 내년에는 50호점을 돌파하고, 내후년엔 100호점을 돌파한다는 게 내 계획이야."
시장에서 도넛 사듯 쉽게도 얘기하는군.
홍 대리는 무척 화가 났지만, 속으로만 삭였다.
"한국에서 100호점 열 때까지 7년쯤 걸리지 않았습니까?"
홍 대리의 질문에는 날이 서 있었다. 한국에서 7년 걸린 일을 여기서 3년 안에 해내라는 게 말이 되냐는 뜻이었다.
"한국에서는 지원해주는 사람이 없었지. 알아서 커야 했잖아."
한국 본사에서 지원을 충분히 해주겠다는데도 그거 하나 성공시킬 자신이 없느냐는 이준서의 공격이었다.
"한국에서야 문화 차이라는 게 없었겠죠. 더군다나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적 기업들과의 경쟁도 덜했을 거고요."
지금 중국의 상황은 당시 한국보다 성공하기 훨씬 어렵다는 홍 대리의 반격. 이준서는 웃었다.
"하하하! 이봐, 홍 대리.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 쉬운 일만 시킬 거면 회사에서 월급은 왜 줘? 힘들어도 성공시켜야 회사도 살고 직원도 사는 거지."
호칭이 규태에서 홍 대리로 바뀐 것이나 말하는 내용을 보건데, 윗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이 정도까지 말이 나왔다면 더 이상 반박을 해봐야 홍 대리로서는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뜻이 정 그러시다면, 한번 해보죠."
"잘 생각했어. 전에 보낸 보고서 보니까 판다커피라는 곳에 직원도 빼앗기고 많이 어려운 것 같던데, 그게 다 회사가 작으니까 생긴 일이지. 우리도 거기 못지않게 점포 많아지고 인지도 쌓여봐. 직원들 나가라고 등 떠밀어도 안 나갈걸?"
홍 대리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홍 대리를 기겁하게 할 만한 사건은 아직 남아 있었다.
"아, 그리고 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중국 원두 확보에 다시 주력해줬으면 좋겠어. 앞으로는 매장에서도 사용을 할 생각이니까, 품질 좋은 원두로."
참고 또 참던 홍 대리는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이준서! 너 지금 나한테 나가라고 하는 거지?"
이준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홍 대리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올려다봤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올해 안에 점포 7개, 내년에 40개, 그다음 해에 50개를 늘리라는 것부터가 나보고 죽어보라는 얘긴데, 거기다 또 뭐? 중국산 원두를 구해보라고? 그게 쉬웠으면 진작 했지!"
"규태야, 진정하고 앉아."
"부서 이동시키거나 말도 안 되는 업무 맡기는 건 나가라는 뜻이라던데, 그걸 바라는 거야? 그럼 그냥 말로 해!"
"그럴 리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중국산 원두 사용은 사실 다른 회사들에 비해 늦은 거야. 경쟁사들과 가격 경쟁이 되질 않으니 회사에서도 점점 조급해지고 있는 거고. 그래서 부탁하는 거니까, 고깝게 듣지 말았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회사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하급자인 자신이 언성을 높였음에도 태연하게 받아주는 이준서의 모습을 보며, 홍 대리는 이준서가 예전의 이준서가 아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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