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산의 이기는 경영

   
다무라 겐지(역주: 김현석. 여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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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있는풍경
   
15000
2014�� 04��



■ 책 소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전산, 그러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일본전산 





이 책은 저자가 20년 동안 발로 뛰며 정리한 일본전산의 성장 역사이자, 일본전산 창업자인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의 특별한 경영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기업들이 불황에 허덕이는 지금, 유독 돋보이는 일본 기업이 있다. 1973년 세 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계열사 140개, 직원 13만 명, 매출 8조 원이 넘는 일본 대표 기업으로 초고속 성장하며 정밀 모터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일본전산. 





저자는 이 책에서 1980년대의 엔고로 시작해 최근의 리먼 쇼크와 컴퓨터시장의 축소에 이르기까지 일본전산은 늘 위기에 처했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진화해왔으며, 그 뒤에는 늘 ‘나가모리 시게노부 정신’이 바탕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나가모리 시게노부가 맨손으로 이룩한 세계적인 모터 제조사 일본전산의 강점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적자는 죄악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표는 달성한다’가 일본전산을 세계 1위로 키운 가장 큰 힘이라고 말한다. 





■ 저자 다무라 겐지 


1981년 대학을 졸업한 후 전국지 기자를 거쳐 1988년 닛케이맥그로힐(현 닛케이BP)에 입사했다. 이후 닛케이레스토랑, 닛케이비즈니스, 닛케이벤처, 닛케이넷 트레이드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2002년부터 현재까지 닛케이비즈니스 주임편집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세금, 재정, 연금, 기업재무, 기업회계, 거시적 경제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간 쓴 책으로는 『머니 동란』(2008년) 『회사가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까』(공저, 2009년) 등이 있다. 





■ 역자 


김현석 


연세대학교 세라믹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삼성코닝에 입사해 3년 동안 신사업 개발팀의 일원으로 일본의 여러 화학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2006년 일본 오사카에서 유학했으며, 귀국 후 DIC코리아를 거쳐 현재 일본 서적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여선미 


오사카 YMCA국제전문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했으며, 마이니치신문의 한국어교실 강사, 일본아세르학원 한국어 강사로 활동했다. 이후 오사카 한국상품상담회, G-트레이드 일본 수출상담회 등에서 통역을 맡았으며, 현재 일본 도서를 번역하고 있다. 





■ 차례 


Prologue 


1장 모든 것을 바꾸고 다시 시작하라 


체질 개선을 뛰어넘어 유전자를 바꾸다 | 시간은 평등하지만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 회사가 무너질까 두려워 잘 수 없었다 | 넘어질 수 있지만 똑같이 일어나지 마라 | 대폭적인 감익을 개혁의 기회로 





2장 한계를 이기는 힘 hardworking 


간부회의를 토요일에 하는 이유 | 이끌지 못하면 따라오지 못한다 | 소심했기에 앞서나갈 수밖에 없다 | 일본전산이 말하는 가치창조경영 





3장 조직을 혁신하려면 버릇부터 고쳐라 


혁신의 첫걸음, 어떻게든 이익을 올려라 | 적정비용은 매출 1억 엔당 500만 엔 | 사용하지 않는 형광등은 몇 개인가 | 다섯 번 협상해서 구매하라 | 게으름뱅이와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 | 사소한 것 하나라도 엄격하게 따져라 | ‘적자는 죄악’이라는 의식이 회사를 바꾼다 





4장 삼류도 일류가 될 수 있다 


끝이라고 생각할 때가 시작이다 | 창의성은 고객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 인재를 키우려면 회사부터 바꿔라 | 오늘도 ‘I am fine’ | 우리에게는 스타가 필요하지 않다 





5장 미래가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일본전산을 덮친 모터 기술의 변화 | 이긴 후에 경쟁하라 | 뛰어들기 전에 정보는 충분한가 | M&A가 한창일 때 다음 포석을 놓는다 | 위기일수록 유연하게 대처하라 | 능란한 M&A로 포토폴리오를 전환하다 | 일본전산과 차량용 시장에 부는 순풍 | 벽이 높아도 길은 분명히 있다 | 정밀 모터에서 반도체 회사로 





6장 적극적이며 강한 조직인가 


체질 개선을 뛰어넘어 유전자를 바꾸다 | 본격적인 그룹 내 생산 위탁 | 해외 자회사끼리 사업을 개발하다 | 장소는 달라도 회사는 하나다 | 피인수 기업들은 왜 그를 따르는가 | 글로벌화의 성패는 본사에서 결정된다 





7장 회계를 모르면 경영자가 아니다 


시장점유율은 경영의 생명 | 인수 기업을 합병하지 않는 이유 | 숫자가 없는 경영은 구차한 변명일 뿐 





8장 “죽는 날까지 나는 일본전산이다” 


변하는 나가모리, 변하지 않는 나가모리 | 싸워야 한다면 이기고 돌아와라 | 일본전산의 이기는 공식 | 기회는 보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 | 경영자에서 리더로, 리더에서 전도사로 | 죽는 날까지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Epilogue




일본전산의 이기는 경영


모든 것을 바꾸고 다시 시작하라

시간은 평등하지만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일본전산은 1973년에 나가모리 시게노부와 최고운영자(COO)인 고베 히로시가 함께 창업해 맨손으로 이룩한 회사로, 창업 16년째가 되던 1988년 11월에 오사카증권거래소 2부와 교토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1988년 9월에는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세계적인 모터 제조사다.


그런데 지금, 그가 이끌고 있는 일본전산이 이전까지 성장을 견인한 정밀 모터와 국내 중심의 사업구조를 대폭 수정하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사업포트폴리오 전환이 아니다. 향후 정밀 모터 시장이 컴퓨터 전용에서 데이터 센터의 서버 등에 사용되는 HDD 전용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이윤이 높은 정밀 모터 사업을 유지하면서 차세대 분야로 재빠르게 확대하는 양공작전을 펼치려는 것이다.


회사의 새로운 기둥이 될 차량용과 가전·상업·산업용 모터 사업을 확대하려면 글로벌화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예전과 같은 국내 부실기업의 M&;A가 아닌 해외 기업의 M&A다. 이는 일본전산의 M&;A 전략을 전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회사가 무너질까 두려워 잘 수 없었다

"회사가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깼다."

2008년 가을 리먼쇼크로 세계 경기가 붕괴하자 2009년 3월 일본전산의 매출도 전년 대비 15.8% 감소하고 영업이익도 33.2% 줄었을 때 그가 내비친 속내였다. 원인은 컴퓨터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수요의 급격한 이동 때문이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쓰이는 것은 플래시 메모리라는 반도체로, HDD처럼 정밀 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전산도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폭적인 감익을 개혁의 기회로

일본전산은 2012년 하반기부터 WPR-2(double profit ratio, 이익률베가)라는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WPR은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이익을 내는 체질로 만들겠다고 그가 선언한 강력한 개혁운동이었다. 마른 걸레라고 불릴 만큼 쥐어짠 일본전산의 원가를 보다 더 짜내는 철저한 원가 절감 대책이었다.


World-class Performance Ratios=세계 수준의 실적 달성 지표.

같은 WPR이라도 그 이름을 바꾼 WPR-2는 저비용 경영만이 아니라 글로벌기업으로서 세계 수준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다. 새로운 도전에 발을 내디딘 나가모리 시게노부와 일본전산은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만들어 갈 것인가?



조직을 혁신하려면 버릇부터 고쳐라

게으름뱅이와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

2003년 10월 일본전산 그룹에 인수된 뒤 2012년 가을까지 일본전산 산교(구 산교세이키제작소, 2012년 10월 완전 자회사화)가 보여준 경영 개선 사례를 바탕으로 일본전산이 어떤 식으로 회사를 재건시켜왔는지를 알아보자.


첫 번째는 개혁이라는 사고가 일반 직원들까지 침투되도록 하기 위해 그가 실시한 것은 충실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2001년도부터 2기 연속 78억 엔, 104억 엔의 적자라는 심각한 실적 부진 끝에 산교세이키가 일본전산에 흡수된 것은 2003년 10월이었다. 이후 나가모리는 교토 시에 위치한 일본전산 본사를 비우고 매주 2박 3일 일정으로 산교세이키로 출근했다. 그때 하루도 거르지 않은 것이 직원들과의 식사였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엄격하게 따져라

두 번째 방법은 개혁의 무게와 실행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나가모리 시게노부와 만난 한 번의 일회성 충격으로 끝나게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1엔짜리도 결제 받기. 일본전산 그룹에 인수되면 경영을 개선하는 처음 1년간은 모든 물품·서비스 구입 시에 신청서를 내야 한다. 이것을 나가모리 시게노부가 모두 검사하기 때문에 반려되는 경우도 많다. 만일 통과되더라도 모든 물품 구입이 그의 결제를 거친다는 것만으로 직원들의 긴장과 집중력은 높아진다.


적자는 죄악이라는 의식이 회사를 바꾼다

개혁의 실행력을 강화한 세 번째 방법은 환경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민감도를 높여 즉시 대응하는 습관을 들인 것이다. 일본전산 그룹 내에서 리스크 회의로 불리는 제도가 그중 하나다. 매출이나 이익이 급변하거나 원자재 가격 혹은 납기일의 변경과 같은 변화가 생기면 곧바로 관계 부서와 담당자들이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 실행한다. 이것은 원래 일본전산에서 활용하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개혁의 실행능력을 높이는 네 번째 방법은 경영을 개선하기 시작한 1년 동안 연간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잘해야 88 내지 89%였던 출근율이 98%로 올라가면 결근자를 대체하는 예비인력이 필요 없어진다. 이는 10%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지만, 직원들의 긴장감과 자발적인 비용절감을 통한 이익증대 의지가 높아지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기업을 바꾸는 것은 직원들의 의식, 집중력, 그리고 지속력이다.



삼류도 일류가 될 수 있다

인재를 키우려면 회사부터 바꿔라

3Q6S에서 3Q는 quality employee(좋은 직원), quality company(좋은 회사), quality products(좋은 제품)의 머릿글자를, 6S는 seiri(정리), seiton(정돈), seiketsu(청결), seisou(청소), saho(적절한 조치), shitsuke(예의범절)에서 따왔다.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공장의 공구나 사무실 비품을 놓는 장소를 정리하고 일의 순서를 준수하는 등 6S를 철저히 하면 작업시간의 낭비가 없어져 3Q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6S를 철저히 지키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물건들이 사라진다. 이 같은 의식을 철저히 심어주면 직원들은 공장 및 사무실의 재고와 물품의 낭비에 항상 신경 쓰게 되고 필요 없는 것은 사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전산의 경영개선 능력 혹은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이처럼 사람의 잠재력을 철저하게 끌어내는 나가모리 시게노부의 인간개조능력에 있다.


우리에게는 스타가 필요하지 않다

일본전산이 최초로 대졸 신입사원 공채를 관서 지방에 있는 여러 대학에 낸 것은 창업 이듬해인 1974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그러다가 1975년(1975년 4월 입사)에 겨우 몇 명의 학생이 기업설명회에 찾아왔지만 이제 막 회사의 구색을 갖춘 기업에 좋은 인재가 올 리가 없었다. 다음 해의 채용시험부터는 필기시험을 없애고 독자적인 채용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큰 목소리 테스트였다. 그 후로도 밥 빨리 먹기(1978년)나 화장실 청소시험(1979년)과 같은 기발한 시험들이 이어졌다. 인류 대학 졸업생을 뽑고 싶어도 뽑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선은 좋은 인재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들과 비슷한 개성을 가진 후보자들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후로 많은 직원들을 채용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사람의 종합적인 능력의 차이는 최대 다섯 배 정도로 보통은 두 세배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열정과 의욕, 의식의 차이는 100배도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의욕 있고 의식 있는 인재다.


나가모리 시게노부의 인재육성은 스타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기업의 발전을 책임지는 것은 단 한 명의 천재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협조적인 평범한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이야말로 조직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원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최근의 직원관리 방식에 반기를 든다. 그는 직원들끼리의 깊은 유대감이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미래가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일본전산을 덮친 모터 기술의 변화

제 1기는 창업 15년째를 맞은 1980년 말에 시작해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단숨에 진행되었다.


정밀 모터의 중심에서 회전하는 샤프트와 베어링 사이에는 원래 볼 베어링을 넣었지만 이것이 윤활유를 넣는 방식으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유체동압 베어링(FDB)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볼 베어링에 비해 소음이 적고, 고속회전이 가능하며, 수명도 길었다. 하드디스크의 용량이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증가하면서 FDB가 주목받은 것이다.


이때 나가모리 시게노부가 구상한 전략이 일본전산이라는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199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적극적 M&A였다. 언뜻 보면 무분별해 보이는 1990년대 후반의 M&A는 모두가 FDB 시장을 위한 대책이었다.


M&A가 한창일 때 다음 포석을 놓는다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일본전산의 성장을 이끌어 온 정밀 모터 부문의 개조를 단행하는 한편 제2기 M&A를 통해 차량용 및 가전·상업·산업용 모터 분야로의 확장을 노렸다. 제2기 M&A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 제1호가 된 시바우라제작소 모터부문(현 일본전산 테크노모터)의 인수 시기다. 시바우라제작소의 모터 부문 인수에 착수하던 1998년은 정밀 모터의 기술 강화를 위해 M&A를 하고 있던 때였다. 일본전산은 이 회사를 인수하는 목적이 중형 모터 분야로의 사업 전개를 위한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정밀 소형 모터로부터 중·대형 모터까지 확장해 종합 모터 제조사로 발돋움한다는 극히 평범하게 설명하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향후 중형 모터 분야에서도 브러시리스 모터 수요의 증가가 예상된다."

따라서 새로운 모터 시장으로의 진입이 목적이기는 했어도 사실은 브러시리스 모터로의 전환이라는 그의 또 다른 계산이 들어 있었다.


벽이 높아도 길은 반드시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부족하다. 차량용 모터 시장은 자동차 개발이 몇 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람의 목숨과도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신규 업체가 들어가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다. 일본전산이 차량용 모터 시장에 들어가 있는 모터 제조사를 인수한 것은 차량용 모터 시장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서였다.


난공불락의 차량용 모터시장이지만, 세계적으로 자동차에 대한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움직임을 돌파구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차체의 경량화와 소형화 추세도 점점 강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일본전산의 기술인 브러시리스모터의 사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적극적이며 강한 조직인가

체질 개선을 뛰어넘어 유전자를 바꾸다

일본전산은 컴퓨터용을 비롯해 자동차용, 가전·상업·산업용 시장까지 세계 시장 곳곳의 최전선에서부터 나가모리 시게노부로 이어지는 신경회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 변화에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이 회로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구조의 변화는 일본전산이 모회사로서 군림하고 인수 기업들을 복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지금까지도 그룹 연합경영을 기본으로 운영해왔다.


그런데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자신이 구축했던 전통적인 구조에 대대적인 개혁을 계획하고 있다. 연합에서 일체로. 시너지 효과를 보다 높이는 경영방식의 전환이었다. 주보와 같은 시스템을 세로신경이라고 하면 글로벌 일체경영으로부터 시작될 시너지 효과의 강화는 그룹의 가로신경이 되어 시장에 대한 감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일본전산을 새로운 회사로 만들고자 한다.


장소는 달라도 회사는 하나다

2013년 초에는 그룹에 일괄구매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일본전산 본사에서는 2년 전부터 구매총괄 부서를 만들어 단계적으로 공동구매를 진행해왔다. 이를 토대로 지역별 물품단가를 조사하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구입처의 일원화를 진행하고 물류, 물품 리스 가격, 출장용 항공권, 업무 차량의 가격까지 거의 모든 것을 재검토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시너지를 내기 위한 이런 시도는 인사제도 쪽으로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 그룹 전체의 인사제도를 통일시키려고 한다."

일본전산 산교 사장 야스가와 가즈요시는 이렇게 말하면서 관리직부터 일반 사원들까지 그룹의 인사제도를 통일한다는 커다란 실험에 들어갔다. 이 실험은 그룹 내에서 인사이동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서다. 이제 그룹을 성장시킬 핵심은 인재교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는 날까지 나는 일본전산이다"

변하는 나가모리, 변하지 않는 나가모리

창업부터 약 20년간을 일본전산의 성장과 변화의 제1기라고 하면 이때의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스스로 가혹하고 격렬한 Top-경영을 소화하고 기술자 출신으로서 개발부터 공장의 생산성 향상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도맡아 했다. 뿐만 아니라 매도와 질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하면서 직원들을 단련시키기도 했다. 진심으로 몸이 부서질 만큼 움직이고 부하직원들을 질타해온 강한 리더의 시기인 셈이다.


제2기는 M&A를 본격화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해당한다. 사업 내용과 사업 영역의 확대로 그룹 내 인력을 강화한 이 시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M&A를 통해 새로이 그룹에 들어온 기업들과 직원들에게 자신의 사상과 일본전산의 정신적 풍토를 전파하는 전도사로서의 비중을 늘리면서 거기에 맞게 자신도 바꿔나갔다. 물론 선두에 나서서 지휘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날로 번창하는 사업과 다양한 인재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갈고 닦은 것이다.


싸워야 한다면 이기고 돌아와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1944년 교토 후 오토쿠니 군 무코 초(현 무코 시)의 농가에서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지금도 변함없는, 지기 싫어하는 억센 기질은 어릴 적부터 단련된 것으로, 그의 어머니는 어린 그가 친구와 싸우다 맞고 돌아오기라도 하면 "한 번 더 싸우고 와!" 하며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의 성적은 대단히 우수했지만 스스로 가난했다고 말할 만큼 가난한 소년기를 보낸 탓일 수도 있다.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기질과 좋은 머리가 더해져 어릴 적부터 재기발랄했고, 고등학교 때는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다.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어린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무엇이든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정열·열의·집념, 지적 하드워킹, 즉시 하자, 반드시 하자, 될 때까지 하자, 일본전산의 모토인 이 세 가지 정신이 출발한 근간이 나가모리 시게노부의 강렬한 개성에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죽는 날까지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제3기. 일본전산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차량용 및 가전·상업·산업용 등의 신규 분야 확대를 시작했다. 인수 대상을 해외로 확대하고 취급하는 모터의 종류도 늘려가면서 변화하는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한층 더 큰 변화를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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