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위대한 선택

   
지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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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씽크
   
14000
2013�� 02��



■ 책 소개
「타임」지에 “세계에서 가장영향력 있는 올해 인물 100인” 선정
「파이낸셜 타임즈」에 “존경받는 세계 재계 리더” 선정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선정

뜨거운혁신가, 이건희는 어떤 선택을 했기에 지금의 삼성, 이류 기업을 초일류기업으로 경이로운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결정적인 순간에남다른 선택을 했던 점에 주목하여 글로벌 환경에서 삼성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한복판에 서 있는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선택은 어떤것이었는지 알려준다.

■ 저자지평길&nbsp& 
책에 미친 책광(冊狂)이다. 3년 이상 도서관에 묻혀 은둔 아닌 운둔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읽은책이 무려 1만여 권이나 된다. 이때가 저자로써는 왕성하게 활동하던 삼십대 중반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책이 좋아 책에서 길을 찾고자책에 미친 것이다. 그 결과 책을 통한 다양한 분야의 인생 경험과 가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를 밑거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들은시간이 지날수록 오래 묵은 장맛처럼 맛깔나게 깊이와 내용, 현장감이 넘쳐흐른다. 

지난 세월, 직장인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6시그마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를 계기로삼성의 근성(根性)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었다. 따라서 6개월 이상 삼성 관련 도서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그 한복판에 서있는 이건희 회장이 어떻게 현재의 삼성을 이끌고 있는지, 어떻게 고난과 역경을 딛고, 미래를 대비해 왔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과정에서얻은 것이, 깨달은 것이 많았다. 이건희 회장은 위기마다, 아니 결정적인 순간에 탁월한 예측력으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반대하는상황에서 왜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지 냉철한 판단력으로 반대자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실행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점들을 독자들과 함께하고자심도 있게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차례
프롤로그 - 역사에 남을 세계 초일류기업을 만들다

제1부 초일류 삼성전자를 만든 이건희의 위대한 선택 
제1장 이건희의 위대한 여섯 가지선택 
1. 반도체 - 반도체를 선택하다 
2. 디지털 - 디지털화를 선택하다 
3. 디자인 - 디자인을 선택하다 
4.휴대폰 - 휴대폰을 선택하다 
5. LCD - LCD를 재배치하다 
6. 스포츠 - 스포츠를 선택하다 
제2장 이건희의 위대한 다섯 가지 혁명
1. 경영 혁명 - 신경영선언으로 개혁에도전하다 
2. 인재 혁명 - 기업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기업은 키운다 
3. 의식 혁명 - 의식 변화로 초일류기업 문화에 도전하다
4. 글로벌 혁명 - 반도체로 글로벌 회사에 도전하다 
5. 제품 혁명 - 품질과 디자인 위주로 제품을 혁명하다

제2부 이건희의 경영과 인생, 그리고도약 
제3장 이건희의 다섯 개의 경영 
1. 준비 경영 - 디지털과 국제화 시대를 준비하라 
2. 계획 경영- 새로운 물결을 정확하게 예측하라&nbsp& 
3. 공격 경영 -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공격하라 
4. 변화 경영 - 위기를도약의 기회로 삼고 변화하라 
5. 전략 경영 - 잘 나갈 때 더 조심하고 더 치밀해라 
※ 경영 키워드 -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위대한 다섯 가지 경영 키워드 

제4장 이건희의 일곱가지 인생 
1. 출생 - 삼남으로 태어난 이건희 
2. 성장 -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한 이건희 
3. 적성 - 사업에는 적성이맞지 않는 이건희 
4. 압박 - 도망가지 않고 후계자의 운명을 받아들이다 
5. 실패 - 여러 가지 도전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6. 아버지 - 가장 힘들었던 취임 직후 아버지의 그늘 
7. 시련 - 가시밭길 같은 시련이 또 다시 밀려오다

제5장 이건희의 위대한 다섯 가지 도약 
1.초일류기업 - 이류 기업을 초일류기업으로 
2. 글로벌 CSR 기업 - 상생을 추구하는 글로벌 CSR 기업 
3. 창조의 삼성 -관리의 삼성을 창조의 삼성으로 
4. 독창적인 기업 문화 - 관료주의에서 일류 기업 문화로
5. 100년 장수 기업 - 창의,초일류, 상생의 성공 DNA로 

에필로그 - 새 역사를창조한 경영자로 기억되다 





이건희, 위대한 선택


제1부 초일류 삼성전자를 만든 이건희의 위대한 선택

이건희의 위대한 여섯 가지 선택

디자인 - 디자인을 선택하다

"올해를 그룹 전 제품에 대한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하고 우리의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해 나가도록 합시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신년사에서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 집결해 나가자며 디자인 혁명의 해로 1996년을 정하면서 그 해를 디자인 경영의 원년으로 삼았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오래 전에 후쿠다 보고서를 통해 디자인은 단순히 형태나 색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품의 편리성 연구에서 시작해 부가가치를 높여 이용자의 생활을 창조하는 문화행위라는 사실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993년부터 임직원들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스타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경쟁요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1995년에 국내 최고의 디자인 학교인 SADI를 설립하고, 2년 전에는 디자인 산학 연대 프로그램인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 경영의 성과는 휴대폰, TV 분야에서도 고르게 빛이 났다. 휴대폰 분야에서 가장 먼저 디자인 경영의 성과가 난 것은 SGH-T100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직접 개발하기도 했던 SGH-T100이란 제품은 이건희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서 디자인, 개발 단계까지 이건희 회장이 꼼꼼히 디자인을 챙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 휴대폰들은 모두 각이 져 있고 반듯했다. 하지만 이 폰은 달랐다. 마치 둥근 달걀이나 공을 잡는 것처럼 잡았을 때 느낌이 달랐고, LCD 화면이나 키가 넓어서 사용하고 보기에도 매우 인체공학적이면서도 시대를 앞서나간 그러한 디자인이었다.


부드러운 곡선의 조약돌 스타일이었고, 다른 휴대폰보다 한발 앞서 나간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탈리아의 잡지인 「시즌스베스트바이」가 보도한 디자인 평가를 보면 더욱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잡지는 이건희폰에 대해 "인체공학적으로 매우 훌륭하며 UFO(미확인 비행물체)를 연상시키는 환상적 디자인"이라고 평가를 했던 것이다.


결국 공식적인 첫 텐밀리언셀러를 달성한 모델이 바로 이 모델이 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차별화된 디자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혁신적인 디자인의 SGH-T100의 성과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9.8%를 기록하며 글로벌 3위의 휴대폰 제조회사로 등극하게 되었던 것이다.


2010년 삼성전자가 그동안 갈고 닦았던 디자인에 대한 역량을 총 집결하여 갤럭시S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세계 최고의 혁신적인 디자인의 아이폰의 대항마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스마트폰이 삼성에서 탄생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휴대폰과 함께 TV 분야에서도 디자인 경영의 성과가 드러난 것은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 TV일 것이다. 2005년 이건희 회장이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의 격전지인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한 적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로 평가하며 다시 한 번 글로벌 초일류 수준으로 혁신할 것을 강하게 주문했던 것이다. 이것이 제2의 디자인 혁명 선언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을 발표하여 독창적 디자인과 UI 아이덴티티 구축, 디자인 우수 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 기술 인프라 강화 등의 구체적 사항을 주문했다.


이러한 밀라노 디자인 혁명 선언이 있고 나서 1년 후, 정확히 11개월 후인 2006년 3월 삼성의 디자인이 한 차원 높게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보르도 TV였던 것이다. 적포도주가 와인 잔에 약간 남아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혁신적인 디자인 보르도 TV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저 TV 시청만 하고 고장만 나지 않으면 되었던 그런 TV의 단순한 기능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TV 시청을 하지 않을 때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TV가 승화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삼성전자가 보르도 TV를 2006년 3월에 출시했고, 그 순간 세계 TV의 역사는 한순간에 바뀌어졌다. 특히 삼성전자는 TV 사업에 진출한 지 34년 만에 세계 TV 시장에서 1위로 등극할 수 있게 되었고, 이때부터 삼성전자는 값싼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예술작품과 같은 TV를 만드는 회사로 이미지 변신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디자인에 대해 남들보다 먼저 시대를 앞서 내다보고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이건희 회장의 위대한 선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남들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중요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챙기지 못할 때 그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임직원들에게 강력한 지시를 하면서 주문하는 것이 이건희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신경영선언 당시에도 이미 그는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개성화로 간다. 성능이고 질이고는…… 이제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진단 말이야.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건희의 위대한 다섯 가지 혁명

글로벌 혁명 - 반도체로 글로벌 회사에 도전하다

삼성전자가 초일류 전자회사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되어 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 사업이었다. 그것은 반도체야말로 모든 기회와 성공이 국내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기업만이 품을 수 있는 거대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신년사에서 기회는 세계에 있기 때문에, 진정한 국제화가 완성되어야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 번 더 강조한 바 있다.


"21세기 우리의 기회는 세계에 있으며, 초일류기업도 진정한 국제화가 완성될 때 비로소 달성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내를 벗어나 국제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 사회로 나가서 세계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걸맞은 제품을 생산하고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건희 회장이 선택한 것이 바로 반도체였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가 미래의 삼성과 한국을 먹여 살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신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확신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미래는 글로벌 시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로는 삼성전자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는 일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다. 국내와 국외 양쪽에서 이건희 회장에 대한 공격은 끝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과 선택은 남들의 시각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의 남다른 혜안은 우리가 반도체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아닌 정반대로 우리가 반드시 반도체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남들은 삼성전자가 기술도 없는 기술 속국이기 때문에 반도체를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건희 회장은 바로 그러한 기술 속국이기 때문에 반도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바로 그 반도체를 시작했다. 1974년 12월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던 것이다. 그렇게 인수한 한국반도체가 놀라운 성장을 하여 3년 만에 흑백 TV용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내고, 또 다시 3년 만에 칼라 TV용 집적회로를 만들어내는 쾌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놀라운 선택은 결국 십여 년 후에 이병철 회장을 설득하게 되고, 그 결과 1983년에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자마자 바로 그 해인 1983년에 64k D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십년도 되지 않아 세계 최초로 1992년 64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 세계 시장을 선도했다.


반도체 공정에 대해서 모르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1메가 D램까지는 반도체 집적도를 높일 때, 칩의 평면에 셀을 집어넣을 수 있지만, 용량이 커져서 4메가 D램부터는 셀을 2층, 3층으로 쌓아올리든지 아니면 반대로 땅을 파서 지하 1층,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서 쌓아야만 많아진 용량을 다 감당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구가 많아진 도시에서 땅 면적은 그대로인데 살아야 할 사람들은 자꾸 늘어날수록 고층 빌딩이 많아지게 되는 현상과 같다. 4메가 D램은 위로 쌓아올리면서 만드는 스택(Stack) 방식과 아래로 파고 내려가면서 만드는 트렌치(Trench)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다 가능하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아무것이나 선택해서 할 수도 있는 문제였을 것이다. 다른 기업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쉽게 생각한 대로 어떤 기업은 스택 방식으로, 또 어떤 기업들은 트렌치 방식으로 생산을 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선발업체들조차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업체들은 대부분 트렌치 공정으로 생산을 했고, 일본의 업체들 중에서는 스택을 선택한 업체도 있었고, 트렌치를 선택한 업체도 있었다. 해외 선진 기업을 따라간다면 당연히 트렌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압도적으로 트렌치 방식을 선택하는 기업들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경영진들과 개발자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이 소식을 접하게 된 이건희 회장은 단숨에 결단을 내렸다.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 스택으로 합시다. 트렌치는 속임수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트렌치를 하도록 유도해놓고, 자기들끼리 스택으로 4메가 D램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타격을 주겠다는 속셈입니다. 설사 일본이 스택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냥 스택으로 갑시다."


이건희 회장은 엄청나게 빨리 결단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결단은 지금의 삼성전자, 즉 반도체 1위 회사인 삼성전자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트렌치 방식을 선택했던 일본의 기업들은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 하락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어떤 기업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자 트렌치 방식을 선택했던 선발 업체들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택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반도체 업체로서는 치명적인 실수와 같은 것이었다.

 

후발 주자였던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선택과 그 결단에 따라 삼성전자들의 임직원들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과감하고 신속한 대규모 선행투자와 대량생산체제의 완벽한 구축이 잘 맞물려 거대한 역사를 창조해 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시대가 되면 새로운 사업 분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먼저 직시했던 것이다. 그것도 남들이 도저히 가망이 없다는 분야를 선택했고, 남들이 모두 시기상조라고 했던 그때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런 점이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이건희의 경영과 인생, 그리고 도약

이건희의 다섯 개의 경영

변화 경영 -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고 변화하라

이건희 회장은 꾸준히 변화를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은 삼성이 나태해지지 않고 지속 성장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기업이야말로 기존의 조직이 몰락하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2010년 3월 24일 경영 복귀를 하면서 내놓은 일성이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은 항상 위기를 강조해 왔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항상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그의 위기론은 조금 더 적극적인 위기 극복을 요구했다. 그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위기를 통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성장해 나가자는 것이 그의 위기론의 본질인 것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鳶)은 더 높게 뜰 수 있다.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불황을 체질강화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주장했던 이건희의 이 말에서도 우리는 그의 위기론의 요체를 알 수 있다. 위기상황일수록 인간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고, 사고나 행동의 폭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기상황일수록 더 많은 기회를 포착하고, 그것을 역이용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에게 끊임없는 변화를 주문하고 또 주문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존재하게 된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변화 의지와 변화 경영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삼성전자의 회장이 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삼성은 지난 1986년도에 망한 회사입니다. 나는 이미 15년 전부터 위기를 느껴왔습니다. 지금은 잘해 보자고 할 때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때입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위기를 강조했고, 항상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 앞으로 전진하는 것에 모든 혼신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는 썩은 다리가 있다 해도 그것을 뛰어서 건널지언정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러한 그의 당부는 지금의 삼성전자를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다.


"변화는 근본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향상심에서 출발합니다. 변화 속에는 기회와 위기가 항상 같은 크기로 존재하는 만큼, 변화의 흐름을 먼저 읽고 한발 앞서 준비해 나가면 오히려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건희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의 서문에 실린 내용이다. 그의 말대로 변화 속에서는 위기도 있고, 동시에 그만큼의 기회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가 그저 안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썩은 다리일지라도 뛰어서 건너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는 한이 있어도 건너가고 시도하고 도전하고 변화하라고 끊임없이 주문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발전시키는 변화 경영의 일면을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애니콜 신화인 것이다. 1994년 삼성의 불량 휴대폰이 시중에 나돌면서 삼성전자의 휴대폰에 대한 이미지는 최악이 되었고, 삼성전자는 휴대폰의 후발주자로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하지 못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맞아 이건희 회장은 1994년 삼성전자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2000여 명의 삼성전자 임직원을 모아놓고 500억 원 상당의 휴대폰을 모두 부수고, 불태웠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휴대폰 화형식이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삼성전자의 모든 임직원들은 새로운 각오로 품질 좋은 최고의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 심기일전했고, 그 결과 1995년 7월 세계적인 휴대폰 기업인 모토로라를 시장 점유율 면에서 누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이 52%로, 모토로라의 42%를 넘어서게 되었고, 이때부터 애니콜 신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휴대폰 화형식이라는 변화 경영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충격과 자격을 주어 최고의 휴대폰을 만들게 하지 않았다면 애니콜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건희의 위대한 다섯 가지 도약

초일류기업 - 이류 기업을 초일류기업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25년 전인 1987년 삼성그룹의 회장 취임식에서 이건희 회장은 단호하게 삼성의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그 결단을 강조했다.


"초일류기업은 후세에 남겨 줄 지고(至高)의 가치이자 목표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겨우 국내 1위 기업이 되었을 때, 세계 초일류 기업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모험을 감행했다. 그것이 바로 이건희 회장의 담대한 목표 선언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 초일류기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그 목표를 지금 거의 95% 이상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삼성은 초일류기업과 다름없는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가 담대한 도전정신을 가진 모험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고, 도전할 수 있었고,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일까? 그에게 모험가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초일류 삼성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점진적인 개선은 좋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매우 위험천만한 짓거리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점진적인 개선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개선, 즉 혁명이 필요하다. 혁명을 시도하고 계획하고 꿈꿀 수 있는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혁명가가 바로 모험가인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해군이 되지 말고 해적이 되어라고 주문했다면 이건희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것들의 가장 주된 원인은 우리 모두 지금은 이건희식 모험가가 되어야 생존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모험은 결국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의미한다. 즉, 초일류기업이 되든가 아니면 사라지든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원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초일류기업이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 이후 삼성은 이류 기업에서 일류 기업으로 도약을 완전하게 이루어 내었다. 그리고 그가 그때부터 주장해 온 디자인, 품질, 인재 경영은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다. 그가 삼성의 최고 리더가 된 후 삼성은 명실상부한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였고, 그가 경영 일선에 복귀한 후 2년 여 가까운 시간 동안 매 분기 새로운 실적 기록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존재감은 지금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 최강 기업 삼성이 두렵다』라는 책은 일본인과 일본 경영연구협회가 공동으로 쓴 책으로, 그 책에 보면 이건희 회장에 대해 평가한 대목이 나온다.


"이건희는 천재적인 경영자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래 불과 10년 사이에 넘버원을 획득했다. 이것은 놀라운 스피드다. 이러한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건희는 46세 때 창업자이며 아버지인 이병철로부터 삼성 그룹의 경영을 이어받았다. 그 이후 삼성그룹의 약진은 눈부시다. 이건희의 최대의 공적은 한국의 삼류 제조업체였던 삼성을 세계 톱의 기업으로 육성시킨 것이다. 겨우 10년 사이에 세계 제일이 되었다. 이 경영자는 천재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이건희 회장은 이류 기업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위대한 경영자라고 필자는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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