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국영 석유 기업

   
발레리 마르셀(역자: 신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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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리치홀딩스
   
27500
2010�� 04��



■ 책 소개
사우디아람코,쿠웨이트석유주식회사, 이란석유공사, 알제리의 소나트락과 아부다비석유공사 등 시장을 움직이는 중동의 5대 "국영 석유 기업(National OilCompany, NOC)"은 세계 석유의 25퍼센트를 생산하고 세계 연료 자원(석유와 가스) 매장량의 5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책은 이들5대 국영 석유 기업의 경영진과 기술자, 정치인 등을 포함해 대대적인 인사들을 만난 저자는 국영 석유 기업의 사업, 정치, 경제적 중요성, 기업문화를 명확하게 밝혀내고자 했다. 
 
저자는 이 국영 석유기업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상업적 이윤보다 정치적인 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인 원유를 책임지고개발하는 데 필요한 전문 기술과 사업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고 있다. 현재 석유 수입국의 경제적 운명은 전적으로 중동과북아프리카에 있는 국영 석유 기업의 활동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연구가 현재 세계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게 될것이다.

■ 저자 발레리마르셀

영국 왕립국제문제 연구소(Chatham House, 채텀 하우스) 에너지, 환경, 개발 프로그램(Energy,Environment and Development Programme)의 수석연구원으로, 2002년부터 이 연구소에서 에너지 연구를 했으며 중동석유의 정치를 주제로 각종 출판물을 내놓았다. 마르셀 박사는 이 지역의 주요 석유 생산국에서 광범위하게 현장 연구를 해왔다. 또 그녀는 "국영석유 부문의 올바른 운영"을 주제로 주요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석유 및 가스 생산국 정부, 국영 석유 기업, 기타이해관계자와 긴밀히 작업하며 우수한 운영 원칙과 최고 실천 지침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주제로 한 저서로 『국영 석유 기업의 올바른운영(Good Governance of the National Oil Company)』이 있다. 마르셀 박사는 이전에 왕립국제문제 연구소에서이라크의 석유산업 및 해당 업계의 미래 전망에 영향을 주는 정치 사안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여기에서 나온 출판물로 『이라크의 모든것(Total in Iraq)』『이라크 석유의 미래(The Future of Oil in Iraq)』가 있다. 그녀는 이전에 파리 정치대학과카이로대학교에서 국제 관계론을 강의했다.


■ 역자 신승미

조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평소 꾸준히 공부해온 영어 실력을바탕으로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주)엔터스코리아 전속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자이언트 스텝』『디렉터 딜레마』『전사형CEO 마법사형 CEO』『성공을 만드는 집』『여자를 위한 헝겊토끼 원칙』『여자경제독립선언서』『팀장이 알아야 할 프로젝트 기획과 실전』『최강프레젠테이션 기술』『승자가 가르쳐주는 성공 법칙』 외 다수가 있다.

■ 차례

서론 - 장막에 가려진 국영 석유기업의 베일을 벗긴다
1장 그 모든 것이어떻게 시작되었나
2장 국영 석유회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
3장 기업 문화와 정체성
4장 누가 운영의 주도권을 잡고있는가
5장 새로운 세대, 변하는 기대치
6장 국영 석유회사의 임무 변화
7장 산업적 난관
8장 국내 전략
9장 국제진출?
10장 협력

결론 - 떠오르는 국영 석유회사
경제적 배경 - 석유 의존 경제가 직면한 난관
부록 - 석유의존 경제의 난관: 미래 가상 시나리오
감사의 말
주 

 





떠오르는 국영 석유 기업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나
역사적으로 석유는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현대 국가로 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란과 알제리 등의 일부 국가에서 이런 진입은 외국 석유회사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외국 석유회사들은 산업 경제를 일으키는 데 석유가 필요했던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 세력에게 외교적?군사적으로 지원을 받았다. 그러니 거꾸로 말하면, 이 지역 국가에서 현대화란 외국 세력의 손에서 석유를 되찾아 자국을 해방시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석유 자원의 통제권 주장에 대한 대중의 정서, 공식 정책, 산업계 활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고 발전했다. 많은 석유 수출국들에서 20세기의 3/4분기 동안 우선적인 관심사는 외국과 식민 정부로부터 자국의 독립을 확보하고 외국 민영기업으로부터 국내 석유 부문의 독립을 확보하거나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석유 생산국은 석유 생산, 판매, 가격 책정의 통제권을 갖지 못했다. 외국의 민영 석유회사와 맺은 ‘석유 채굴권’ 협약에 가로막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체계는 OPEC이 1968년에 발표했던 ‘회원국 석유 정책 선언’에 나온 방침에 따라서 점차 사라질 것이었다. 이 선언은 탐사 지역의 접근에 더욱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세금과 보조금 체계를 확립하는 것은 물론, 특히 국영기업의 활동을 통해서 석유 부문에서 국가의 역할을 늘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1980년에 이르자 주권의 확보와 독립이라는 목표가 대부분 달성되었고, 국영 석유회사는 이런 점을 인식시키는 데 주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중동 지역 산유국들이 발전하면서, 점차 외국 회사의 석유 시장 통제에 협동하여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이런 협동 체계는 알제리와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에서 새 유전이 개발되고 구소련의 석유 수출이 증가하면서 세계 석유 시장이 침체되었던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석유회사들은 로열티와 세금을 감안해서 원유 공시 가격을 낮추며 대응했다. 첫 번째 가격 인하에 이어서, 1959년에 카이로에서 아랍 석유 회담이 열렸으며 베네수엘라 석유부 장관이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1960년에 스탠더드 오일사가 지불하기로 했던 가격을 낮춘 뒤에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의 정부 대표자들은 바그다드에서 회동을 갖고 OPEC을 만들었다. 초기에 OPEC은 가격, 세금 체계, 비용에 통일된 입장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OPEC 회원국의 목표는 단지 가격 통제와 석유 수익의 향상만이 아니었다. 석유 산업이 성숙해지고 적합한 정부 구조가 확립된 산유국들은 자국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석유 사용의 발언권을 높이려 했다. 그렇지만 채굴권 소유자들이 석유 분야에 대한 투자와 생산과 마케팅에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OPEC 회원국 정부는 생산량 설정에서 간접적인 권한만 행사할 수 있었다. 각국 정부는 1968년 6월에 OPEC 회원국 석유 정책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과거에 비해서 가격, 세금, 비용에 대해 훨씬 강화된 입장을 내세웠으며 석유 부문에서 국가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1970년대의 국영화와 사업 관여 움직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수출국 입장에서 마련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오늘날 많은 국영 석유회사가 탄생했다.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들이 독립을 했다. 이 추세가 잇달아 일어나는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는 1947년에서 1957년 사이에 수많은 식민지에 독립권을 주었다. 중동에서 일어났던 가장 극적인 사건은 바로 영국의 권력이 추락했다는 것이다. 영국이 세웠던 하시미테 군주제가 1958년 이라크에서 전복되었다. 쿠웨이트는 1961년에 독립을 했다. 1968년에 영국은 페르시아만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이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일어난 식민지 전쟁(1946~1954년)에서 졌으며,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알제리에서 일어난 내전에 개입했다. 미국은 1960년대에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일어났던 지정학적 사건 때문에 주의가 상당히 분산되었으며, 중동 지역에 관심을 덜 기울였다. 


이 가운데 1956년에 일어난 수에즈운하 사태는 제국 세력의 몰락을 공고히 했다. 이는 중동 지역의 입장에서 확실한 분수령이었다. 가말 압델 나세르는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한 뒤에 민족주의자이자 이 지역에서 불후의 명성을 얻은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수에즈운하는 이집트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최고의 출처이자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산이었다.


1967년에 일어난 6일 전쟁에서 ‘석유를 무기로’ 사용하는 상황이 처음으로 발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리비아, 알제리 정부는 미국과 영국에 석유를 수송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국제 석유 무역을 점유했던 회사들 간의 교역과 협력을 허용하려고 독점 금지 제약을 철폐했다. 이 회사들도 알제리와 중동에 채굴권이 있었고, 수출 석유의 선적 물량과 목적지를 관리했다. 이 회사들은 그저 다른 국가에서 석유를 구하면 되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가 생산량을 늘렸고, 결국 3개월 뒤에 통상 정지 정책이 철회되었다. 이 일로 아랍의 석유 수출국들은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미국과 유럽이 채굴권을 소유하고 있는 한, 석유가 무기로서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국영 석유회사는 두 가지 형태로 시작되었다. 첫째, 외국 석유회사의 자산을 몰수해 국영화하는 것이었다. 둘째, 국가가 외국 석유회사의 자산을 매입한 뒤에 국영 석유회사가 점차 외국 석유회사를 대신하는 ‘참여’ 협정의 형태였다. 각 회사마다 이 두 기본 형태를 다양하고 특수하게 적용해 오늘날의 차이점이 생겼다.


1972년이 되자 석유 산업을 아직 국영화하지 않은 생산국들은 참여와 국영화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를 놓고 열띤 논의를 벌였다. 각국 정부들은 외국의 장악을 막기 위해 석유 산업의 통제권을 거머쥐고 싶어했지만, ‘일곱 자매’ 회사들을 두려워했다. 이들 정부는 막강한 세력을 가진 국제 회사들의 이권을 국영화했다가, 자칫 이 소수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 석유 시장에서 추방당할 것을 걱정했다. 반면에 참여를 선택하면, 정부가 이 회사들의 자국 내 채굴권과 권리와 의무와 운영에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결과가 불확실한 국영화를 선택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부다비와 두 국가에서 운영 중이던 주요 석유회사는 참여협약을 맺었으며, 1973년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국영 석유회사의 탄생은 산유국이 석유를 국영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적절한 때가 되면 국가가 민영기업들의 운영권을 탈취할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수단이 생겼던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국영 석유회사와 외국 회사들이 공존하는 기간을 어느 정도 거쳤다. 이 기간은 국영 석유회사가 사업을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였다. 특히 참여 협약을 천천히 전환한 경우, 국가가 자국 자원에 대한 권리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자국 유전을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수단을 외국 석유회사와 협력해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은 특히 아람코[ARAMCO, 아라비안아메리칸석유(Arabian-American Oil Co.)의 약칭]를 점진적으로 국영화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연하게 진행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과 달리, 이란석유공사(NIOC)는 20세기 중반 이란의 혼란스러운 정치판에 휘말렸다. NIOC는 1948년에 국영화 진행의 첫 단계로 설립되었다. 아직 영국-이란 석유회사가 이란에서 발견된 석유 대부분의 채굴권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국영화가 시작된 1951년과 국제 컨소시엄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회사들이 떠난 1979년 사이에, 이란 내 외국 회사의 역할은 계속 난관에 부딪혔고 축소되었다. 1979년 혁명이 일어난 뒤에, 새로 임명된 석유부 장관은 기존의 모든 석유 관련 협정을 취소하고 NIOC, 이란가스공사, 석유화학공사를 통해 석유와 가스 분야의 경영을 직접 관리했다. 1979년 말에 이르자 NIOC는 이란시추공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곧 시추 작업에 돌입했으며, 버려진 유정 굴착 장치도 보수하기 시작했다.


알제리에서는 국영화 바람이 불면서 프랑스 석유회사들의 저조한 운영 성과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알제리 내 프랑스의 이권이 위기에 처했다. 1965년에 프랑스와 알제리는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면서 소나트락사의 역할이 ‘상류 부문(채굴 사업)’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 협정의 내용은 소나트락사와 프랑스 주식회사인 소페팔사가 50 대 50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에 사하라 사막에 있는 방대한 구역의 탐사와 생산을 맡긴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소나타락사의 입지를 강화해 준 계기가 되었다.

 

1957년에서 1963년 사이에 쿠웨이트는 민간 주주와 공동출자 형태로 쿠웨이트 유조선회사, 쿠웨이트 국영 정유회사, 석유산업회사를 설립했다. 탐사와 생산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쿠웨이트 석유회사(KOC)는 외국 석유회사들이 1934년에 설립한 회사였다. 쿠웨이트 정부는 KOC를 1974년과 1975년에 두 번에 나눠서 인수했다.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는 연료 자원 부문의 모든 활동에 참여한다는 목적으로 1971년에 설립되었다. 참여 협약이 체결된 이후에, 이 회사는 채굴권자의 권한과 의무와 경영 면에서 정부의 이익을 대변했다. 대부분의 페르시아만 지역 국가들과 달리, 아부다비는 산업계를 백 퍼센트 소유하겠다는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부다비는 1974년에 육상과 해상의 채굴권에 대해 60퍼센트의 분배 권한을 갖게 되었다. 1974년 이전에 체결된 컨소시엄은 오늘날까지도 이 국가에서 석유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기업 문화와 정체성
각 회사의 문화와 정체성을 몇 마디 말로 간단히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요약해 볼 수는 있다. 사우디아람코는 다른 국영 석유회사들을 월등히 뛰어넘는 최고가 되고자 한다. 이 회사는 전문성과 기술을 특히 강조한다. 쿠웨이트 석유 주식회사(KPC)와 자회사들은 기회를 재빨리 포착할 것이다. 이들은 대담한 투자가들이다. 또 자사의 조직과 자국의 정치를 평가하는 데 막대한 시간을 투자한다. 이란석유공사(NIOC)의 기업 문화는 대체로 이란과 국가 산업을 위한 희생과 동료 업체에 대한 존경을 강조한다. 또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와 이곳의 운영회사들 역시 존경을 강조하며, 국내 동료 업체들과 외국 협력사를 동등하게 존경하자는 주의다. ADNOC의 기업 문화는 대립하지 않고 협의를 하는 것이다. 한편 알제리의 소나트락사는 세계시장을 향하되 주로 국내 사업에 중점을 두는 야심찬 회사다.


국영 석유회사의 직원 대부분은 자사가 마음이 따뜻한 훌륭한 경영을 해서 문화적 기대치인 ‘관대함’을 만족시키되, 여기에 최고의 경영 방법을 적용하기를 원한다. 외국 민영기업과 합작을 하는 국영 석유회사는 두 형태의 사업 문화가 혼합된 데서 이득을 얻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람코는 미국 회사들과 제휴한 상태에서 발전했고 점차 회사의 통제권을 거머쥐었다. 이 점은 업계의 선두 기업들과 계속 협력해서 운영해 온 아부다비의 ADNOC도 마찬가지다. 특히 ADNOC는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있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경우다. 이 회사는 강한 상업 문화와 현대적인 경영 체계를 갖추고 있는 반면에, 의사 결정 과정이 느리고 전통적이며 협의를 중시한다.

쿠웨이트의 석유회사 이퀘이트에서도 혼합된 문화를 볼 수 있다. 이퀘이트사는 KPC의 석유화학 부문 자회사인 PIC, 외국 민영기업들(주로 다우케미컬사), 쿠웨이트 민영부문 업체(부비얀)가 합작한 회사다. 이런 합작 관계를 통해서 기술 전문가의 도입은 물론 서양 스타일의 사업 방법도 이전된다는 이점이 있다.


국영 석유회사가 과거에 정부 부처와의 관계에서 물려받은 느리고 번잡하며 관료적인 절차를 따르는 전통을 바꾸기란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에서는 NIOC와 정부의 석유부가 상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NIOC에는 공무원을 채용하는 문화가 있다. 또 쿠웨이트에서도 모회사의 많은 직원이 정부의 석유부에서 영입되고 있으며, 이들은 관료적인 경영 스타일을 회사에 들여온다. 관료적인 문화에서는 특히 개인의 책임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문화에도 불구하고, KPC와 NIOC 직원들은 자신들의 전략을 스스로 비판하고 재검토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고위 경영진이나 정부 지침에서 나온 ‘강령’에 예속되지 않았다. 직원들은 자유롭게 자사의 한계점을 이야기했고 기꺼이 자신들의 사고와 업무 절차를 재검토해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소나트락사와 사우디아람코와 ADNOC에서는 덜 보였다. 소나트락사에서는 관리자들이 연료 자원 부문의 개편 계획에 반대하는 말을 했다가 한지로 물러난 적이 있었다. 또 사우디아람코와 ADNOC 직원들은 회사에 강렬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세 회사는 개인의 독창성을 그리 장려하지 않는다. 개인의 독창성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며, 충성심은 이 지역에서 독창성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새로운 세대, 변하는 기대치
지역적으로 볼 때, 1973년에 터진 석유파동에 이은 석유 수익의 급등과 1979년에 일어난 이란 국왕의 실각은 페르시아만 군주국들의 영향력을 높여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는 중동에서 강력한 후원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의 주도로 페르시아만 생산자들은 아랍경제개발기금을 만들어 아랍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단결시키는 시대로 이끌었다. 이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 지역에서 잡고 있던 정치적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오일달러(산유국이 석유 수출로 획득한 돈)가 들어오면서 이 지역 전체의 경제는 석유 수익에 의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석유를 전혀 생산하지 않는 요르단은 1984년에서 1990년 사이에 국고 세입의 43퍼센트를 외국 보조와 페르시아만 국가에서 빌린 돈으로 충당했다.


중동의 모든 국가는 석유 수익으로 자금을 충당하고 보조금으로 지원을 받아 산업 및 경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석유 수출에서 나온 ‘임대 수익(정부 세입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세금 소득은 제외된다)’은 이 국가들의 산업 투자와 개발 태도를 좌우했다. 이 때문에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정치 구조 및 관계가 넘쳐나게 되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석유가 정치적으로 지니는 중요도는 식민 세력에 저항했던 국가 지도자의 권한 획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석유는 이 국가들이 현대화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토대다.


이 지역 전체에서 국영화 바람이 일면서, 각 국가는 경제의 주요 대리인이자 생산자이자 석유 수익의 분배자가 되었다. ‘임대 국가(국유 자원을 국외에 임대하여 국고 세입의 전체 혹은 상당 부분을 올리는 국가)’인 석유 수출국들은 막대한 재정 자원을 사회에 분배하는 능력에 따라서 특성이 달라졌다. 국가는 더 이상 직접 과세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 지역 국가의 임대 소득 의존도는 보통 40퍼센트 정도다. 반면에 이 책에서 연구하는 5개국은 이 기준을 훨씬 넘는다. 이 5개국이 석유 수출 수익에 의존하는 비율은 60퍼센트(이란)에서부터 81퍼센트(아랍에미리트연방)에 이른다. 이런 수익이 정체 상태에 다다르면 인구 동향이 중요해진다. 인구 동향은 국가의 임대 요구를 팽창시켰고 사회의 기대치를 변화시켜왔다. 


인구통계에서 두 가지 동향이 중동, 특히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이 지역의 경제와 사회는 물론 국영 석유회사의 경영 환경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첫 번째 경향은 지배계급에 새로운 세대가 출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식민 세력에 이어서 권력을 잡았던 세대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35~50세의 새로운 세대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


현재 35~50세인 세대는 다음 세대를 자부심과 우려가 뒤섞인 감정으로 지켜본다. 바로 이 차세대 젊은이들이 이 지역 인구 동향의 두 번째 변화다. 1970년대의 석유 호황기에 이은 ‘베이비붐’을 통해 현재 20~35세인 세대가 많이 태어났다. 중동의 모든 산유국에서 20대 이하는 평균적으로 인구의 43퍼센트에 달한다. 이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목표와 가치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교육을 더 받고, 도시 생활을 하며, 소비 지향적이고, 전자통신(인터넷, 위성TV)의 혁명 덕에 아버지 세대에 비해 외부 세계에 더 개방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석유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사회의 취약성을 점차 인식하면서 발생된 구체적인 긴장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현재 노동인구로 진입하는 젊은 층은 야망이 크고 빠른 승진과 풍부한 기회를 기대한다. 그러나 사실 직장에서 이들의 전망은 부모 세대 때보다 열악하다. 이들의 부모 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의 자리를 대신해서 고위직으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다.


새로운 통치자 세대는 세계은행, IMF, WTO의 압력을 받는다. 이 국제기구들은 이 세대에게 지원하는 국가보조금을 줄이고, 국영 부문의 자회사를 민영화하고, 공무원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행정부와 경제를 현대화하고, 세금을 부과하라고 강요한다. 다시 말하면, 이전 통치자 세대가 다양한 사회집단에 부여했던 특권을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새로운 통치자들은 이 국가의 젊은 국민들에게 연설하면서, 전성기는 과거에 끝났다는 경고를 종종 한다. 1986년에 유가가 갑자기 폭락한 이후로, 현재 20세에서 34세 사이인 세대는 1970년대의 벼락 경기에서 생긴 풍요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우울한 경제 현실 사이에서 발목을 잡혔다.


석유 수익 추락에 이은 1980년대 후반의 가격 하락으로 맞은 침체기는 물론 인구 성장 추세도 묶여 있는 석유 임대 수익에 점점 큰 압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와 이란 등의 국가에서 과거 10년 동안 석유 생산량이 기본적으로 동일했던 가운데, 인구는 엄청나게 증가해 1990년대 이후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5퍼센트, 이란에서 18퍼센트가 상승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1인당 GDP는 정체되어 있었고, 이란에서는 약 10퍼센트나 떨어졌다.


미래에 높은 유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고, 연료 자원의 한계 때문에 일부 국가는 석유의 수출량을 늘리기가 곧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전망이 어두운 미래에 경제를 계속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더 제공하자면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 국가들의 미래, 특히 젊은 층의 미래는 석유(혹은 가스)만으로 보장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국영 석유회사가 이를 제공하는 모든 짐을 혼자 질 수는 없다. 석유 부문의 불확실성 및 한계와 상관없이 번성할 수 있는 비연료 자원 경제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국영 석유회사도 국가의 석유 자원을 증가시키고 가능한 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석유를 개발하면서, 계속 국가 경제에 주요한 공헌을 해야 할 것이다.


산업적 난관
국영 석유회사는 나라 안팎으로 두 가지 형태의 산업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 첫째, 국영 석유회사는 자국에서 기본적으로 생산능력과 운영상의 어려움을 처리해야 한다. 즉 경영관리를 향상하고, 기술을 확보하는 능력을 신장하고, 경험을 대대적으로 습득해야 하고,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외부적으로 시장점유율 유지, 다른 생산자와의 경쟁, 새 시장 개척, 연료 자원 분야의 미래 수요 보호, 소비국의 새로운 환경 규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소비국들은 흔히 산업계에서 국영 석유회사가 직면한 최고의 난관이 OPEC의 정책과 OPEC 비회원국과의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소비국이 원유 시장 공급의 안정성에 가장 귀추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영 석유회사는 주로 국내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사실 국제 산업계의 문제보다 자원 개발 강화 등의 국내 시장 문제나 국내 운영 환경에 더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란과 쿠웨이트와 아부다비의 국영 석유회사 전문가들과 일부 정부 관료들은 상류 부문(채굴)에서 겪는 구체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영 석유회사는 대부분의 레저부아(석유광상에서의 석유층)에 적용할 기술을 파악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생산자들이 직면한 최대 시험대는 레저부아를 개발할 최선책을 파악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새로운 지질학적 어려움이 대두된다.


아랍에미리트연방에서 탐사와 생산을 담당하는 한 이사가 말했듯이, 생산자들이 상류 부문에서 봉착한 난관은 대규모 사업과 까다로운 레저부아를 관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기술을 파악하고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쿠웨이트의 석유 생산은 부르간 지역과 같은 넓은 레저부아에 의존해 왔다. 부르간에서는 하층에 강한 지하수가 흐르는 덕에 생산이 수월하다. 그러나 이제 생산이 까다로운 지층에 도달했기 때문에 남은 석유를 개발하려면 수준 높은 생산기술이 필요한 실정이다.


탐사도 생산자들에게 또 다른 난관이다. 실제로 성숙한 지하층에서 생산되는 양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생산 수준을 유지하려면 새 유전을 탐사하고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다. 탐사와 생산은 개발보다 훨씬 위험한 행동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하면 손실이 크므로, 새 유전 개발을 위한 결정은 영리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나 합리적인 분석을 토대로 해야 한다. 국영 석유회사는 대체로 공금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질색하는 데다, 새롭고 기술적으로 힘든 지역에 달려들 만한 경험도 없을 가능성이 있다.


OPEC 비회원국의 생산성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OPEC 회원국 대부분이 2003~2005년에 최대 수용 능력에 다다르거나 그에 근접하고 있어, 앞으로 생산능력을 향상시키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사우디아람코와 KPC와 ADNOC는 투자 자금이 정부의 단기적인 자본 요구 때문에 분산되지 않는 한, 자체적으로 대규모 사업에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된다. 그러나 다른 회사들은 자사의 자금 요구가 정부의 재정 요구에 밀리거나(이란) 각종 수익 창출 방법으로 투자비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경우(알제리), 투자 자본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이란과 알제리는 은행이나 국제 석유회사들을 통해서 자본을 마련하는 길을 찾고 있다. 알제리 소나트락사는 금융시장에서 투자 자금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은 석유 및 가스의 상류 부문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란의 자본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정치적인 걸림돌도 많다. 30~60억 배럴에 달하는 이란의 거대한 육상 유전 아자데간(Azadegan)의 개발에서 일본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것이 지연되었던 결정적 이유는 미국의 로비였다.  


외부적 난관으로, 사우디아람코가 봉착한 특정한 난관(즉 석유가 너무 많다는 점)은 계속 남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23퍼센트가 매장되어 있고, 현재 이 국가는 세계 총공급량의 13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다. 사우디아람코는 생산을 확장할 여유가 있지만, 그러자면 먼저 추가될 석유를 판매할 시장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사우디아람코는 장기적으로 석유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회사는 석유 수요를 유지해 줄 신기술의 연구 개발에 갈수록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또 환경 규제도 무시할 수 없다. 석유 산업에서 교토의정서로 발생하는 난관은 향후 몇 년에 걸쳐 더욱 커질 것이다. 에너지 생산자들은 교토 협약에서 발전된 새 기후협약이 미칠 영향과 여기에서 이익을 볼 방법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이 분야에서 생산자의 역할 및 협상에 생산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상호 간에 이익이 되리라는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여러 회사들이 다른 (민영 혹은 국영) 생산자와 협력해서 연구 개발 비용을 나누는 방법이 있다. 이 회사들의 분담 비용은 교토의정서에 따라서 승인된 배출권 교환 점수를 전환시키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이 회사들이 협력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국내 사용 소각 가스를 포착하는 방법이나 배출 가스를 감소시키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투입되어야 할 막대한 인력과 자원 때문에 개발을 곧 단념하고 말 것이다.


협력
중동 지역의 많은 석유 전문가들은 국제 석유회사들이 양측이 만족할 만한 협약을 끌어내려고 노력하지만 상대 국가의 장기적인 전망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국영 석유회사들은 가치 창조를 목표로 하는 반면 국제 석유회사들은(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생산국 정부도) 수익 최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협력 관계에서 양측의 관심을 일치시키기가 더 어렵다.


더구나 국영 석유회사는 국제 석유회사들의 사회적 책임(CSR, 기업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업을 운영한다) 프로그램을 약간 불편해했다. 일부 국영 석유회사 관리자들은 이 관점에서 국제 석유회사들이 져야 할 책임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런 프로그램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의 특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국제 석유회사들은 공적을 인정받고 결국 보상까지 받게 되는 반면, 국내에서는 국영 석유회사의 존재 이유에 이의가 제기될 것이다. 또 국가는 서비스에 대해 지불을 하지만,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을 안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석유 전문가들이 국영 석유회사와 국가가 더 싸게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국제 석유회사들이 너무 비싸게 진행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전문가들은 사회사업에 배정된 기금을 국가에 전달해 운영하게 하는 방법을 선호할 것이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이 돈이 계약 조항에 따라서 국가의 수익에서 빠져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많은 국영 석유회사 관리자들이 국가기관과 달리 국제 석유회사들은 국내에 필요한 사항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많은 국영 석유회사가 지금까지 국가의 요구에 잘 대응해 온 데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국가들이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이 커지면서, 국영 석유회사가 사회 인프라 구축이나 사회 프로그램 제공에서 할 일이 줄어들었다. 국영 석유회사의 역할에 불고 있는 새로운 경향은, 전형적인 민영기업 형태의 사회 프로그램 분야로 눈을 돌려 국영 석유회사의 대중적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낮은 비용으로 생산 지역을 충분히 개발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기업의 사회적 책임 프로그램이 국영 석유회사의 의심을 극복하고 국가 특권의 경계를 존중하면서 산유국에 번영을 가져다주려면, 이 프로그램이 관련 정부 부처에서 운영하는 기존 프로그램 및 국영 석유회사와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국영 석유회사가 국제 석유회사로부터 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자국 자원의 개발을 통제할 수 있는 협력 모형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협력 조항이야 만들 수 있겠지만, 여기에 결심도 들어가야 한다. 국영 석유회사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새 계약 협정을 맺을 때는 생산국과 국제 석유회사들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물론 (특히 이란에서) 과거의 유산과 단절해서 생각을 고쳐먹고 이권을 토대로 계약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렇게 하려면 주주와 재정분석가들이 매장량 이외의 요소까지 포함해서 민영기업들을 평가해야 한다. 또 협력을 다지려면 오래되고 훌륭한 인간관리 기술이 필요하고, 이들의 관계에서 정을 쌓아가야 한다.

 

한편 국제 석유회사들은 이 지역의 문화를 인정하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국제 석유회사들은 국영 석유회사의 지식을 낮게 평가하면 안 된다. 국제 석유회사들은 생산국에서 결정권을 가진 담당자, 규제 담당자, 접촉할 위원회와 그 위원회의 위원을 잘 파악해야 한다. 또 국제 석유회사들은 현재 부족한 운영의 법적 테두리를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 석유회사들은 국가에 최고의 이익을 주기 위해 가치 사슬에 진입하기를 원한다. 결국 이들은 통합된 회사인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