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로서 기술과 서비스를 항상 더 발전시키려는 노력,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개선과 혁신에 대한 견해, 삶을 바라보는 인생관, 일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사업의 성공을 노동자들과 나누려 했던 그의 경영철학과 퍼주기 식의자선이 아닌 자립을 돕고자 했던 인생철학을 들려준다.
■ 저자 헨리 포드
1863~1947. 세계적인 자동차제작회사 포드의 창설자로 자동차왕으로 불린다. 근대적 대량 생산방식을 통해 자동차를 대중화시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7세에 학업을 중단하고기계공이 되었다. 1899년까지 디트로이트에 있는 에디슨 회사에서 기술책임자로 근무했으며, 1903년 동업자와 함께 포드 자동차회사를 설립한다.1908년 세계 최초의 대중차 "모델T" 제작을 시작하고, 1913년 조립 라인 방식에 의한 양산체제인 포드 시스템을 확립했다. 그밖에도계획ㆍ조직ㆍ관리에 있어서 수많은 신기술과 합리적 경영방식을 도입했다. 지은 책으로 『헨리 포드 : 고객을 발명한 사람 My Life andWork』 『오늘과 내일 Today and Tomorrow』 『나의 산업철학 My Philosophy of Industry』 등이있다.
■ 역자 공병호ㆍ송은주
공병호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토개발연구원 책임 연구원, 일본 나고야 대학 객원 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주)인티즌과 코아 정보시스템의 대표이사를 거쳐 자유기업센터와 자유기업원의 초대 소장 및 원장을 지냈다. 현재 공병호의 경영연구소 소장을 맡고있다. 지은 책으로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당신의 상식 뒤집어야 살 수 있다』 『사회를 바꾼 기업가들』 『키라의 경제 어드벤처 : 고대편』『황금의 씨앗을 뿌려라』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80/20 법칙』이 있다.
송은주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미들섹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이성과 감성』 『클림트』 등이있다.
■ 차례
옮긴이의 말 - 왜 헨리 포드인가
들어가며 - 사업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제1장 말 없는 마차에 대한 꿈
제2장 사업은 서비스다
제3장 포드 자동차의시작
제4장 성공의 비밀
제5장 대량생산과 분업
제6장 조직을 없애라
제7장 기계는 공포가 아니다
제8장 임금은얼마나 주어야 하는가
제9장 좋은 기업의 조건
제10장 생산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제11장 가격은 낮추고 임금은높여라
제12장 포드 자동차의 위기 극복법
제13장 왜 가난한가
제14장 트랙터 생산의 꿈을 이루다
제15장 기업이 할 수있는 가장 훌륭한 자선
제16장 철도 사업에 뛰어든 포드 사
제17장 나의 친구, 전쟁, 지식
제18장 노사 문제를 해결한 포드자동차
제19장 미래에 대한 준비
헨리 포드 - 고객을 발명한 사람
사업은 서비스다
내가 만든 ‘가솔린차’는 디트로이트에서 최초의 자동차이자 오랫동안 유일한 자동차였다. 시내에 차를 좀 세울라치면 주변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잠깐이라도 차를 놓아두면 어김없이 호기심을 주체 못한 누군가가 운전해보려고 나섰다. 결국 나는 쇠사슬을 들고 다니면서 가로등에 차를 묶어 두어야만 했다.
나는 한 대씩 찔끔찔끔 차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언젠가는 본격적인 차량 생산에 들어가는 것이 내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을 현실로 옮기기 전에 일단은 생산할 차가 있어야 했다. 나는 가내 작업장에서 세 대의 차를 제작했다. 이렇게 차를 개발하던 와중에도 전기 회사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디트로이트 에디슨 사에서 발전기 쪽 업무를 담당하던 나에게 회사 전체를 감독하는 직책을 제안했다. 당시 내가 하고 있던 가스 엔진 제작을 포기하고 업무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제안이었다. 일자리와 자동차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는 자동차가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1899년 8월 15일 직장을 그만두고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을 할 때 가장 놀라운 점은 다들 돈 문제에만 관심을 쏟고 서비스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제품이 그럭저럭 봐줄만 하고 그걸로 돈을 벌어들일 수만 있다면 제조 방법을 개선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중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그것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가 제품을 만드는 목적이 된다. 소비자의 만족 여부도 관심사에서 밀려난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일단 차를 팔고 나면 그 다음에 차에 무슨 일이 생기든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고장이 나거나 부품을 갈아야 해도 그건 차 주인이 감당할 몫이었다. 이미 차를 산 사람은 값이 얼마가 되든 부품을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부품에 바가지를 잔뜩 씌워 팔면서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과학적인 기반은 고사하고 소위 상도덕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산업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당시에는 힘닿는 데까지 자본을 끌어모아 사업을 시작한 다음, 주식과 채권을 팔 수 있는 데까지 몽땅 팔아버리는 방식이 유행했다. 주식과 채권 판매 비용이니 기타 대금을 다 제하고도 남는 돈이 있으면 그제야 마지못해 사업 기반을 다지는 데 썼다. 제품을 잘 만들어서 정당하게 이익을 올리는 것이 좋은 사업이 아니라 주식과 채권을 높은 가격에 왕창 발행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은 사업이었다.
나는 일보다 돈 문제를 우선시하거나 은행가나 자본가들이 설치는 회사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더 나아가 소비자를 위해 운영되는 회사에서 시작할 방법이 없다면 아예 시작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주변에서 본 것과 내 자신의 경험을 종합해보건대, 단순한 돈벌이로서의 사업은 고려할 가치가 없을뿐더러 뭔가를 성취하려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는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진짜 사업의 유일한 근본은 서비스다.
제품을 팔았다고 제조업자와 고객과의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때 비로소 고객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동차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그때야말로 제조업차가 나설 때다. 불만을 품은 고객보다 더 나쁜 광고는 없다. 따라서 차가 고장난다면 최대한 빨리 원상복구해주는 것이 의무였다. 포드차의 성공에는 빠른 서비스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그 당시의 비싼 차들은 대부분 서비스를 제대로 받기 힘들었다. 차가 고장나면 제조업체가 당연히 수리를 해주어야 할 때에도 동네 수리 기사의 힘을 빌어야 했다.
나는 ‘투자’한 돈에서 이익을 내라고 압박하는 돈의 힘에 밀려 일과 서비스를 등한시하거나 날림으로 일한 결과를 많이 보았다. 문제가 생겨 파헤쳐보면 대부분 그것이 원인이었다. 이것은 저임금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고임금을 받을 수가 없다. 방향을 제대로 잡으려면 일에만 모든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돈 문제를 일보다 우선시하면 일을 망치고 서비스의 근본을 망가뜨리기 쉽다. 일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발목을 잡힌다. 이 두려움은 사업을 발전시킬 길을 모조리 막아버린다. 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경쟁을 두려워하고, 자기 방식을 바꾸기를 겁내고, 현재 상태를 변화시킬 행동을 취할 엄두를 전혀 내지 못하게 된다. 서비스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취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힘닿는 데까지 최선의 방법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의 시작
나는 파크플레이스 81번가의 작은 벽돌 작업장에서 설계도를 그리고 새로운 차의 제작 방식을 계획할 수 있는 기회를 마음껏 누렸다. 수공예 작업을 하던 옛날부터 우리에게 전해져내려온 방식은 대량생산이 아닌 ‘주문제작’ 방식이었다. 이렇게 특별하고 제한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신 다방면에 걸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을 찾아내고 최고의 품질로 제품을 만들어 최저가에 팔 준비를 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준화가 아니다. 표준화란 말 속에는 어떤 제품이든 쉽게 만들어 높은 이익을 남기고 팔 수 있는 한 가지 고정 디자인과 제작 방식을 선택해 생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가격을 정하면서 소비자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표준화의 의미는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을 골라 거기에 집중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선 소비자의 요구에 가장 잘 맞을 만한 것을 찾아낸 뒤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밤낮으로, 때로는 수년에 걸쳐 계획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자세한 제작 과정은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익에서 서비스 기반으로 바꾸면 누구라도 만족할 만한 이익을 올릴 수 있다.
한 가지 더 할 일이 있다면, 상황을 보아가며 가격을 매길 생각을 버리고 제조 비용이 얼마나 들었나에 따라 가격을 매긴 다음 제조 비용을 절감하려는 상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한 대부분의 실험은 경주용 차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에 최고의 차는 무릇 경주용 자동차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나는 경주용 차를 대단치 않게 여겼지만 제조업체들은 자동차 경주에서의 승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동차의 강점을 인식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903년 톰 쿠퍼와 함께 속력만을 목표로 ‘999’ ‘화살’이라는 이름의 차를 제작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80마력을 내는 초대형 4기통 엔진을 장착했다. 자동차 경주에서 999호는 내가 빠른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광고해주었다. 경기가 있은 지 일주일 후, 나는 포드자동차회사를 설립했다. 내가 부회장이자 설계자, 기능장, 공장장, 총지배인이었다.
초창기의 회사와 설비는 볼품없었다. 첫해에 ‘모델 A를 제작하여 850달러 소형 오픈카와 그보다 100달러 비싼 뒷좌석이 있는 차 두 가지로 판매했다. 우리는 첫해에 1708대를 제작하여 판매했다. 이를 보면 대중의 반응이 얼마나 폭발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듬해 우리는 새 모델에 역량을 분산했다. 2000달러의 4기통 투어링카(포장을 씌운 5~6인승 관광 자동차) 모델 B, 모델 A를 약간 개선하여 예전 가격보다 50달러를 올린 모델 C, 1000달러의 투어링카 모델 F를 제작했다. 즉 역량을 분산하고 가격을 올린 것이다. 그렇게 하니 판매량이 감소하여 1695대에 그쳤다.
1905년에서 1906년까지는 2000달러짜리 4기통 차와 1000달러짜리 투어링카 두 모델만 만들었다. 둘 다 이전 해의 모델이었다. 판매대수는 1599대로 하락했다. 우리가 신모델을 내놓지 않은 탓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우리 차가 너무 비싼 탓이라고 생각했다. 95퍼센트에게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해에 나는 우선 대주주가 되어 정책을 바꾸었다. 1906년에서 1907년까지는 투어링카 제작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소형 오픈카와 로드스터(한 좌석에 2~3명이 타는 지붕 없는 자동차) 세 가지 모델만 제작했다. 대형 차는 가장 값이 싸서 600달러였고, 가장 비싼 차도 750달러에 불과했다. 가격이 불러온 효과는 엄청났다. 우리는 8423대를 팔았다. 과거 최고 매출의 거의 5배에 가까운 판매량이었다.
우리 차는 5년 동안의 시험기를 거친 후 유럽에서도 팔리기 시작했다. 당시 자동차 사업이 다 그랬듯 사업은 무섭게 번창했다. 우리는 현금 판매를 했고, 돈을 꾸지 않았으며, 구매자에게 직접 팔았다. 악성채무도 없었고 무엇이든 우리가 가진 돈 안에서 해결했다. 나는 항상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잘 꾸려나갔다. 일과 서비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돈을 쓸 일이 생기는 속도보다 가용자금이 더 빨리 불어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무리를 할 필요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신중하게 영업사원을 뽑아 그들이 소비자와 접촉하여 차를 판매하게 했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이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특허법을 빌미 삼아 독점을 추구한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소송으로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셀던 특허 소송이다. 실제로 이 소송은 우리 자동차와 포드자동차회사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광고가 되었다. 우리가 희생자로 비쳐 대중의 동정을 샀던 모양이다. 아마도 이 소송은 미국 사업가 집단이 힘을 합쳐 저지른 일 중 가장 근시안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건대, 한 업체를 죽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힘을 모은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우리가 결국 승리한 것은 미국의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도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성공의 비밀
우리는 업계 관행을 꽤 충실히 따랐다. 우리 자동차는 다른 회사 것보다 단순했고, 우리는 외부 자금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우리가 좀 더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과 현금 할인을 해주며 이익을 사업에 재투자하고 현금 잔고를 많이 유지하는 정책을 엄격하게 했다는 점만 빼면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나는 몇 년 동안 매일같이 보급형 차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사용 중인 차와 자동차 경주, 주행 테스트 들은 이루어야 할 변화에 대한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주었다. 1905년경에는 만들고 싶은 차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어느 정도 마음속에 그려놓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자동차를 거리에서 본 바로 그날부터 나는 자동차를 필수품으로 보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수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차를 만든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하나의 차, 하나의 모델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격은 낮추면서 품질을 개선하고 개량하고 발전시키라는 압력이 거세어졌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보급형 차는 이러한 특징들을 갖추어야 했다.
① 양질의 소재를 사용할 것
② 운전하기 쉬울 것
③ 충분한 파워
④ 절대적인 신뢰성
⑤ 가벼움
⑥ 쉬운 조작
⑦ 가벼움
내가 최종 결정한 디자인은 ‘모델 T였다. 신모델의 중요한 특징은 단순성이었다. 나는 각 부분을 아주 단순하면서도 저렴하게 만들어서 값비싼 수리공의 손을 빌릴 필요를 없애야 한다고 믿었다. 차를 구성하는 각 부분(동력 장치, 프레임, 앞차축, 뒤차축)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타던 차를 수리하는 것보다 새 차를 사는 쪽이 오히려 비용이 더 적게 들 정도였다.
내가 차를 만드는 원칙은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어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제품이 단순할수록 만들기가 쉬워지고 가격도 내려간다. 그러면 아주 많이 팔 수 있게 된다. 다양한 모델들 중 제일 나중에 나온 모델 T가 가져온 정책 덕분에 우리 사업이 평범한 사업의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다.
우리는 1908년에서 1909년 시즌을 겨냥해 모델 T를 출시했다. 그리고 회사는 설립 5주년을 맞았고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1909년 어느 아침, 나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앞으로는 오로지 모델 T만 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모든 차에 완전히 똑같은 차체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고객이 원하는 어느 색이든 차에 입혀줄 수 있습니다. 단 그것이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판매자들은 단일 모델 생산이 어떤 이익을 가져올지 알 리가 없었다. 자동차는 여전히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좋은 차를 싼 가격에 만들 수는 없으며, 어차피 자동차 시장에는 부자들뿐이므로 저가의 차를 만들어봤자 헛수고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러나 큰 공장을 짓고 설비를 늘려 꾸준히 가격을 내릴 수 있었다. 1908년과 1911년을 비교해보면 공장 부지는 3244평에서 3만9174평으로 늘어났다. 직원 수는 1908명에서 4110명으로 불어났다. 차 생산량은 6000대를 약간 상회하던 수준에서 3만5000대 가까이 급증했다.
우리는 거의 하룻밤 새에 뚝딱 해치운 듯이 엄청난 양을 생산해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단지 힘과 기계를 현명하게 이용한 덕이다. 맨 처음부터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일 수 있었던 것도 대량생산 방식에 적용된 현대적인 공법 덕분이었다.
대량생산과 분업
포드 차의 부품은 나사며 너트 등 작은 것까지 다 따지면 대략 5000개에 이른다. 처음 조립할 때는 그저 한 장소에서 차 조립을 시작했다. 보통 직공 한 명이 작은 부품 하나에 필요한 공정 전반을 다 도맡아 처리했다. 주문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생산 계획을 짜야 했다. 지휘를 잘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실제 작업에 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재료와 도구를 가지러 가는 데 허비한다.
조립라인으로 가는 첫 단계는 사람이 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이 사람에게로 오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운영 전반에서 두 가지의 대원칙을 세웠다. 누구든 가능하면 한 발짝 이상 걸을 필요가 절대 없어야 한다. 아무도 허리를 굽힐 일이 없어야 한다.
조립라인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마무리 공정까지 각 부품이 최단거리로 이동될 수 있도록 조립 순서에 따라 도구와 인력을 배치한다.
② 경사진 작업대나 기타 운반 도구를 이용하여 일을 하고 난 후에는 늘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있게 한다. 놓는 장소는 언제나 손이 가장 닿기 편한 장소여야 한다. 가능하다면 그 부품이 인력으로 다음 직공의 손에 넘겨지게 한다.
③ 경사진 조립라인을 이용하여 조립할 부품들을 알맞은 거리까지 옮긴다.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결과 직공 편에서는 머리를 쓸 필요 없이 최소한으로 동작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의 동작으로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13년 4월 1일경, 우리는 처음으로 조립라인을 시험가동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로 설치된 무빙 라인(moving line)일 것이다. 작업 라인의 높이와 무빙 라인의 속도를 주의 깊게 시험해보면서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섀시 조립라인에서 거둔 성공 덕분에 점차 제작 방식 전반을 면밀히 검토하여 모든 조립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라인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자동차 조립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부품 제작을 시도하면서 각 부서가 한 가지 일만 담당하도록 했다. 이제는 공장이 체제를 갖추어서 각 부서마다 부품 한 개만 생산하거나 한 부분만 조립한다. 부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공장이다.
고도의 표준화와 분업화가 이루어지면 수송하기도 불편한 대규모 공장에 사람을 모아놓을 필요가 없다. 한 공장에 1000명이나 500명이면 적당하다. 그러면 그들을 일터에서 데려오고 데려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초대형 공장 근처에 모여 살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인구밀집에 따르는 슬럼화 현상이나 기타 주거 문제도 없을 것이다.
기계든 공정이든 어딘가에서 한 주가 멀다 하고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장에서는 실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실패의 기록이 특히 권위 있고 믿을 만한 기록일 경우에는 다들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천사들이 밟기를 겁내는 곳을 바보들에게 돌진하게 함으로써 최고의 결과를 얻어냈다.
새로운 작업계획을 고안하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우리는 놀랄 만한 액수를 절감했다. 현재 생산 비율에 맞추어 우리가 1903년에 시작했을 때 했던 식으로 차 한 대당 일꾼을 고용한다면, 오늘날 20만 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생산 자동화로 5만 명이 채 못 되는 인력이 하루에 최고 품질의 차 4000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격은 낮추고 임금은 높여라
제조업을 금융업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업가들은 자기 사업을 금융업과 뒤섞고 은행가들은 금융업을 사업과 뒤섞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진정한 목적을 왜곡하여 양쪽 모두에 해를 입힌다. 돈은 은행이 아니라 공장에서 나와야 한다.
돈은 사업에서 수단일 뿐이다. 사업이 어려움에 빠졌다고 10만 달러를 빌리는 것은 선반 10만 개를 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반이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않듯이 돈도 역시 도움이 안 된다. 더 많이 아이디어를 짜내고 생각을 거듭하고 현명하게 용기를 다지는 길밖에 없다. 경영 부실로 인해 돈에 쪼들리고 있다면 그때 해야 할 일은 사업에 집중하여 내부에서 잘못된 점을 고치는 것이지 외부에서 융자를 끌어와 급한 대로 땜질하는 것이 아니다.
내 재무 정책은 판매 정책의 결과이다. 내가 늘 하는 주장이지만 이윤을 많이 붙여 적게 파는 것보다는 낮은 가격에 많이 파는 게 낫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살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보수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내가 고수하는 정책은 성과가 있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차를 사는 고객의 수는 점점 더 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사업이 성장하면서 우리 수익도 처음 시작할 때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면 우리는 차로 그렇게 엄청난 이익을 거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합리적인 수준이면 적당하다. 그래서 차 가격을 생산 조건이 되는 한 되도록 빨리 낮추어 구매자와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정책을 써왔다. 그 결과 우리에게도 막대한 이익이 돌아왔다.
이 정책은 주주들에게 최대한 많은 현금을 되돌려주는 것을 경영 목표로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견과는 배치된다. 주주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임금을 깎을지 배당금을 폐지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언제고 배당금을 폐지하겠다. 임금을 깎는다고 비용이 절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을 깎으면 구매력이 떨어지므로 이는 좋은 조치라 할 수 없다. 지도자의 책임 중에는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에게 생계비를 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재정이란 회사의 이익이나 지불 능력뿐 아니라 임금을 통해 공동체에 회사가 환원하는 돈의 액수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임금은 가정과 가족, 가정의 운명을 나타낸다. 원가계산표에서 임금은 단순한 수치에 불과하지만 세상에서 나오면 임금은 빵 상자이고, 석탄 통이고, 아기의 요람이고, 어린이들의 교육이다. 즉 가족의 안락과 행복인 것이다. 한편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본에도 그만큼의 신성한 요소가 있다. 공장에서 거둔 이익은 그 공장에 생계를 의존하는 가정을 지켜주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이익이 개인의 부를 불려주는 것과 사업을 위한 더 건전한 기반과 더 나은 작업 조건, 더 나은 임금,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다들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면 공장은 1년 내내 차를 만들어내야 하고, 영업 부서는 1년 내내 팔아야 하고, 판매상은 1년 내내 차를 사들여야 한다. 소매업자가 ‘제철’을 제외하고는 구매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 계절만이 아니라 1년 내내 홍보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는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미 오래 전부터 포드 차는 여름에만 쓰는 사치품이 아니라 1년 내내 쓰는 필수품이라는 점을 주지시키는 홍보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계획은 성공하여 거의 전국에서 사람들은 여름 못지않게 겨울에도 차를 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공장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준비
포드 산업이 해온 모든 일과 내가 해온 모든 일은 결국은 서비스를 이익에 앞세워야 한다는 것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사업이 고귀한 직업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노력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자본도 많지 않았다. 거의 맨손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다 우리가 일해서 벌어들인 것들이다. 원칙에 대한 끝없는 노력과 믿음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사치품이었던 것을 가져다가 필수품으로 바꾸었다. 우리의 제품은 쉬지 않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고 실행에 옮길 새롭고 더 나은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우리가 모든 작업의 기초가 되는 신조는 다음과 같다.
① 미래를 두려워하고 과거를 숭배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겁내는 자는 활동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패는 좀더 현명하게 다시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② 경쟁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제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한다.
③ 이익보다 서비스를 앞세워라. 이익은 좋은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되어야 하며,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④ 제조업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다. 제값에 자재를 구입하여 가능한 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그 자재를 소비재로 바꾸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과정이다.
성장하는 사업은 유능한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자리는 힘들게 일한 결과로만 생긴다. 결국 올바른 길로 들어서는 사람은 일상의 중압을 견뎌내고도 여전히 생기에 넘쳐 있는 사람이다. 사업에서 찾는 인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천재가 아니라 견실하고 실력 있으며 믿을 만한 사람이다. 대기업은 필연적으로 천천히, 조심스레 움직인다. 야심 있는 젊은이는 멀리 내다보고 다가올 일에 대비해 시간 여유를 넉넉히 남겨두어야 한다.
수없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자연에 대해 하인이 아닌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온갖 근사한 기술을 갖추고도 여전히 천연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용하면 사라져버리는 석탄과 금속을 파내고 나무를 벤다. 언젠가는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열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석탄에 의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수력으로 발생시킨 전기로 열을 낼 수도 있다. 화학의 진보에 따라 금속보다 내구성이 좋은 물질을 만드는 방법도 발견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 키우는 것보다 더 나은 목재가 만들어질 것이다. 진정한 서비스 정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 맡은 바를 성실히 다하기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의 본질이며,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