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家의 신화

   
장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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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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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4��



■ 책 소개
투명한 경영과 사회공헌이 빚어낸 존경받는기업, 발렌베리家.

 


세계 가전시장의 거인(巨人) 일렉트로룩스, 통신장비시장의 선두주자 에릭슨, 초일류기업의대명사 ABB, 대형트럭의 롤스로이스 스카니아, 단일약품(로섹)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는 아스트라제네카, 하이테크 전투기의 강자 사브….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이들 기업을 이끌고 있는 곳이 바로 「파이낸셜타임즈」가 평가한 "유럽 최대의 산업왕국" 발렌베리家이다. 발렌베리는 이들 기업을포함하여 항공, 산업공구, 제지, 베어링, 금융, 의료기 등 산업 각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14개의 핵심 자회사를 이끌고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기업규모나 경쟁력보다 더욱 발렌베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투명성"과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그들의 경영철학이다. 또한 이것이 발렌베리가 150년 동안 5세대에 걸쳐 소위 세습경영을 펼치고 있음에도불구하고 국민적 지지와 사회적인 존경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발렌베리는 "선장(경영자)이 우선, 배(기업)는나중"이라는 경영철학하에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으로 하여금 대부분의 소유기업들의 경영권을 일임하고 있으면서도, 기업에 대한 장기적인 책임은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 오너십"을 실행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발렌베리는 그 표면적인 규모뿐만 아니라 경영철학, 기업가 정신, 사회공헌에이르기까지 우리 경제계에 신선한 화두를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책은 "존경받는 기업"의 표본으로 불리는 발렌베리家의 모든 것을 철저히분석함으로써 "사회적 존경"에 목말라 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하나의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 저자 장승규
1969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학교신문사에 몸담으며 느낀언론의 힘에 끌려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석사 학위 취득 후 그 결심을 이루었다. 현재 경제주간지 에서 금융 및 경제정책 분야 담당 기자로활동하고 있으며, 우리 삶을 압도하는 복잡한 경제현상의 미로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로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다양한기업인, 금융인, 정책전문가, 경제전문가와의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화두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2004년 여름, "발렌베리는 삼성의 미래다"라는 특집기사를 쓰면서 시작된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현재 철학과 경제가 함께 하는 블로그"숲길(holzweg.egloos.com)"을 운영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발렌베리와 삼성의미래 


제I부 발렌베리의 성공신화 
1장 발렌베리의 150년역사 -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대은행가가 된 퇴역 해군장교 
스웨덴 산업화의 진원지/주교의 말썽꾸러기 아들/스웨덴 "제2의군주"로 군림하다/파산위기와 대반전


왕국의 건설자들
신중한 정책으로 기회를 잡다/거대한 산업왕국의탄생


형제의 애증
에릭슨을 손에 넣다/후계구도를 뒤흔든 보쉬 스캔들


후계자의 자살
의문의 죽음과 은행 합병/볼보의 CEO 예렌햄머와의 숙명적인대결/기업사냥꾼의 도발


새로운 시대의 리더
4세대와 5세대를 잇는 "다리"/목소리가 커진 주주들


2장 발렌베리의 성공비밀 
발렌베리 가문의 승계전략 
치밀한 양육프로그램/원톱보다 강한 투톱/폭넓은 지식과 네트워크/책임감과 기업가 정신


100년 기업을 키운다
장기적인 주주가치 창조/"선장이 우선, 그 다음이 배" 원칙과독립경영/ 적극적 오너십과 과감한 구조조정/지분이 아니라 능력 


노블리스 오블리제 
기업의 생존 토대는 사회/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다/사회민주당과의오랜 공존 


3장 발렌베리는 소유기업을 어떻게 초일류기업으로 키웠나
스웨덴의 자존심, 에릭슨 
세계최대 의약품 "로섹"의 신화, 아스트라제네카 
스칸디나비아의 날개, SAS
산업공구 분야의 마켓리더, 아트라스콥코 
하이테크 전투기의 강자, 사브 
대형트럭의 롤스로이스, 스카니아 
초일류기업의대명사, ABB 
세계최고(最古)의 기업, 스토라엔소 
세계최대의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세계최대의 베어링 전문기업, SKF
스웨덴 왕가의 로열뱅크, SEB 
세계 2위의 투석치료 전문기업, 감브로 
유럽 증권거래소 통합의 진원지, OMX
북유럽 최대 IT컨설팅기업, WM­데이터 


제Ⅱ부 삼성 vs. 발렌베리 
4장 삼성과 발렌베리는무엇이 다른가 
삼성의 고민 
독보적인 1위, 그러나…/위협받는 그룹 "연결고리"/흔들리는 3세 경영/공화국의 위기


삼성과 발렌베리, 작지만 큰 차이 
순조로운 경영권 승계/투명한 톱 콘트롤타워/황제경영은 없다/발렌베리는 "그룹"이 아니다/ 순환출자 vs. 차등주/노조는 경영 파트너/적극적인 사회 환원 


삼성의 선택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가능할까/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한국의 발렌베리재단으로/산업이냐 금융이냐/삼성전자의 국민기업화 


에필로그 _ 발렌베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부록 _ 피터 발렌베리 회장과의인터뷰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家의 신화


발렌베리의 150년 역사 -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발렌베리의 역사는 후발산업국 스웨덴의 발전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스웨덴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8,400달러(2004년)에 이르는 ‘북유럽의 부국’으로, 세계 최고의 복지제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19세기 후반만 해도 ‘유럽의 뒷골목’으로 불릴 만큼 가난한 나라였다. 북극권에 속하는 스웨덴은 토양이 척박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전 국토의 10%에 불과하여, 농민들은 항상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절대빈곤을 벗어나려면 산업화가 절실했지만 스웨덴은 인구 900만 명의 소국(小國)이라 내수시장이 작았고, 초기 투자에 필요한 자본 축적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19세기에는 ‘저축’이라는 개념조차 자리잡지 못한 상태였다. 발렌베리의 신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발렌베리의 역사는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현재의 SEB)의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로부터 시작된다. 스웨덴 남부 린쾨핑 주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1816년) 앙드레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높은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한 데다가, 성적도 시원치 않아 늘 말썽꾸러기 취급을 받기 일쑤였고, 17세가 되던 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도 별다른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앙드레는 은행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데, 1846년 31세에 해군생활에서도 선장을 맡는 등 빛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이후 퇴역한 그는 1856년, 드디어 발렌베리 왕국의 모태가 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문을 연다. 탄탄한 은행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시 스웨덴에는 수많은 저축은행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매우 보수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됐던 점을 주시하여 앙드레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은행을 탄생시켜 오늘날의 은행들이 취급하는 업무들을 스웨덴 최초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결과, 탄탄한 예금기반이 만들어졌고, 이에 바탕하여 풍부한 유동성이 확보되는 동시에 산업부문에 대한 대출이 강화되었다. 발렌베리 가문의 트레이드마크인 ‘산업에 대한 장기투자’가 시작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하지만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에도 위기는 여러 번 찾아왔다. 앙드레의 독선적 성격에 반발해 은행 이사의 절반이 독립을 선언한 것뿐만 아니라, 1870년대에 접어들어 경기가 과열되면서 은행위기의 신호탄이 감지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1878년 고통스러운 경기하강이 찾아왔다. 많은 대출 기업이 파산위기로 내몰렸으며 자금도 순식간에 말라갔다. 앙드레의 기지와 국왕의 도움으로 겨우 혼란은 진정되고 파산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긴 했지만, 앙드레는 화려했던 영광을 생전에 되찾지는 못했다.


1886년 앙드레가 70세의 나이로 죽자, 33살의 장남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가 은행을 이어받았다. 크누트는 해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적인 은행 크레딧리요네에서 전문적인 금융교육을 받았으며, 21살 때부터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이사로 선임돼 은행 경영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등 은행가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크누트 하의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은 우선 금융위기로 허약해진 은행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국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해외자금 중계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크누트는 1900년대 초, 영국과 프랑스 및 독일의 금융시장에서 엄청난 규모의 북유럽 채권과 지방채 발행을 성공시켰으며, 이렇게 공급된 자금은 스웨덴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는 핵심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1911년 스웨덴 은행산업은 일반기업 주식 직접소유와 경영참여가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되는데, 이에 따라 은행들이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고, 주요 상장 기업의 지배주주로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은 추가적인 투자를 억제하고 기존 기업의 구조조정에 주력하는 보수적인 정책으로 재빨리 전환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들의 운명은 순식간에 엇갈리기 시작했다. 기업 부실을 견디지 못한 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한 것이다. 이에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이 최고의 은행으로 급부상했는데, 이는 1878년~1879년의 금융위기에서 얻은 쓰라린 교훈을 간과하지 않은 발렌베리가의 값진 승리였다.


1878년~1879년의 금융위기는 발렌베리가 단순한 신흥 금융가문에서 벗어나 거대한 산업왕국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크누트는 부실기업들의 처리 문제로 이복동생 마쿠스 발렌베리 시니어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마쿠스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부실기업들을 꼼꼼히 들여다 본 마쿠스는 대부분 무능력한 경영자들이 회사를 망친 주범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핵심 경영진을 교체하는 동시에 회사 부채를 모두 털어주었다. 그리고는 장기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발렌베리는 소유기업을 하나둘 늘려가기 시작했다.


크누트와 마쿠스 형제의 뒤를 이어 발렌베리 왕국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은 마쿠스의 두 아들 야콥 발렌베리와 마쿠스 발렌베리 주니어였다. 이 당시 스웨덴 재계 최고 스타는 이바르 크뢰거로 그는 세계 성냥생산의 절반을 독차지한 이후 우량기업들을 비밀리에 사들이고 있었다. 그의 손길은 발렌베리의 소유기업에도 미쳤다. 하지만 크뢰거는 현금 부족으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려 결국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에 이르렀고, 크뢰거의 파산에 발렌베리는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 바로 통신업계의 거인인 에릭슨과 스웨덴성냥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많은 핵심기업을 거느리고 있던 발렌베리는 더욱더 거대한 산업왕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발렌베리는 보쉬스캔들(나치와 관련한 협력 스캔들)로 인해 독일과의 무협협상을 맡았던 야콥이 궁지에 몰린 반면, 영국 등 승전국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던 동생 마쿠스의 주가가 상한가를 쳤고, 이 과정에서 두 형제간에 갈등이 빚어졌는데, 이후 사사건건 의견충돌을 보이던 형제의 갈등은 마쿠스가 야콥을 밀어내고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1960년대 말, 거대한 좌파의 물결이 전유럽을 휩쓰는 가운데 스웨덴의 사회 분위기는 또 한번 들끓었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가문의 후계자인 마르크(마쿠스 발렌베리 주니어의 장남)가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마르크가 자살하기 한달 전,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과 스칸디나비스카 은행의 역사적인 합병이 공식 결정되었다. 합병을 구상했던 마쿠스는 후계구도까지 염두에 두었는데, 합병이 이루어지면 우선은 자신이 직접 합병은행을 맡은 다음 차기 회장 자리를 스칸디나비스카은행의 썬홀름 회장에게 넘겨주고, 마르크를 사장직에 오르게 할 계획이었는데, 마르크의 죽음으로 사장직을 물려받을 발렌베리 쪽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1975년, 마쿠스가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약속한 때가 되자 썬홀름은 계약 이행을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마쿠스는 이에 대한 타협안으로 명예회장직을 요구했는데, 어쨌든 새로 탄생한 스칸디나비스카엔스킬다은행(SK방켄)은 이제 더 이상 발렌베리 가문의 은행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70대 노인이 된 마쿠스는 여전히 형 야콥과 함께 발렌베리 왕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마쿠스는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는 둘째아들 피터 발렌베리를 불러들였다. 물론 마쿠스는 장남 마르크에게 그랬던 것처럼 둘째아들 피터의 능력 또한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했으며, 중요한 일들은 자신이 적접 챙겼다. 하지만 마쿠스는 마지막 순간에 피터를 선택했다.


스웨덴 경제계의 큰 별이었던 마쿠스가 죽자, 그룹 내부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이완되고 많은 소유기업들이 인수합병의 타깃이 되는 등 발렌베리의 역사가 끝을 맺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피터가 그의 아버지가 지녔던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피터는 1995년 가문의 은행을 발렌베리의 품으로 되찾아 오는 데 성공했고, 지주회사들의 통합작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베스터라는 왕국의 통제센터를 완성하는 등 발렌베리 왕국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져올려 재도약을 준비했다.


발렌베리 가문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마쿠스와 야콥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여려 명 등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각 세대마다 한 명의 마쿠스와 한 명의 야콥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독특한 명명법은 앙드레 이전부터 시작된 발렌베리 가문의 오랜 전통에 기인한다. 이는 후손들에게 강한 책임감과 유대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미래세대의 성공을 기원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피터가 인베스터의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새롭게 등장한 주인공 역시 마쿠스와 야콥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발렌베리 왕국을 이끌었던 형제와 같은 이름이지만 이들은 동갑내기 사촌 지간으로, 현재 SEB(옛 SE방켄)의 회장을 맡고 있는 마쿠스 발렌베리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마르크의 아들이고, 지주회사 인베스터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야콥 발렌베리는 바로 마르크가 죽은 후 왕국을 넘겨받은 피터의 아들이다. 이들은 발렌베리가 배출한 전문경영인인 퍼시 바네빅을 다리로 거쳐 4세대에서 5세대 경영으로 발렌베리를 물려받았다.


발렌베리의 성공비밀
▶ 발렌베리 가문의 승계전략
① 치밀한 양육 프로그램 - 발렌베리는 자녀를 교육하는 데 있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강인한 의지와 국제적인 시각을 가진 유능한 경영자’를 표방하였다. 이를 위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험난한 바다생활을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외국의 선진금융회사에서 경험을 쌓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국제적 감각을 기르도록 유도했는데, 이러한 양육방식은 가문의 창립자인 앙드레에 의해 확립된 것이다.


② 원톱보다 강한 투톱 - 하지만 거대한 산업왕국을 이끄는 것은 아무리 유능한 경영자라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황제식 독단경영까지 개입하게 되면 ‘사고’의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데, 발렌베리는 항상 2명의 리더를 둠으로써 잘못된 판단의 가능성을 줄이고 경영능력을 배가시켰다. 그룹의 최상층부에서부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은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각자의 영역을 전문화했는데, 대개의 경우 한 명은 금융을 맡았고 또 다른 한 명은 산업부문을 책임졌다. 발렌베리가 금융과 산업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기회인 동시에 커다란 위험요인이 될 수도 있는데, 두 부문이 같은 논리로 움직이기 시작할 경우 대재앙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그러나 발렌베리는 투톱 경영을 통해 금융과 산업을 절묘하게 나누어 맡음으로써 그러한 가능성을 줄였으며, 이것이 발렌베리 왕국이 150년 동안 유지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③ 폭넓은 지식과 네트워크 - 한편 은행과 수많은 자회사들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지식을 겸비해야 하는데 전통적으로 발렌베리의 경영자는 당대 최고의 지식을 흡수했으며, 국제적인 경영의 흐름에도 민감했다. 이를 위해 반드시 뉴욕, 런던 등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에서 경영수업을 받았으며, 개별 산업분야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여기에 발렌베리는 스웨덴 왕가에서 집권당, 노조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스웨덴 국내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수상?대통령들과의 정기적인 접촉, 각종 국제 기구의 의장 혹은 위원장직 역임 등을 통해 탄탄한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왔으며, 이는 발렌베리 경영자들이 국제 비즈니스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반이 되었다.


④ 책임감과 기업가 정신 - 발렌베리에게 소유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은 가문의 부를 ‘선물’로 여겼으며, 잘 키우고 가꾸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현재 인베스터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야콥 역시 매일 12시간 이상 일을 한다. 발렌베리에게 이러한 책임감과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이들이 겪은 수많은 위기와 실패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 100년 기업을 키운다
① 장기적인 주주가치 창조 - 이는 발렌베리가 기업을 경영하는 지혜이자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소유기업들에 대한 장기적인 책임을 기꺼이 떠맡아 온 원동력이다.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적극적인 투자만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더 높은 기업가치를 약속해 준다는 이러한 믿음은 발렌베리를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산업그룹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물론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반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발렌베리도 자신들의 목표가 주주가치 창조에 있음을 공개적으로 약속하기는 하였으나 ‘장기적인’ 주주가치가 중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② ‘선장이 우선, 그 다음이 배’ 원칙과 독립경영 - 이는 훌륭한 CEO만이 성공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발렌베리의 원칙을 표현한 것이다. 발렌베리는 최고수준의 경영자 풀을 관리하는 동시에, 소유기업이 직면한 문제들을 돌파해낼 수 있는 역량있는 인재들을 발굴?육성해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발렌베리의 전문경영인 그룹은 발렌베리 왕국을 떠받치는 핵심기둥이 되었다. 이들은 막강한 자율성을 가지고 여러 자회사들을 맡으면서 인생의 전부를 발렌베리 왕국에서 보냈다. 현재 인베스터의 회장으로 있는 야콥 발렌베리는 그들의 경영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각 개별회사들이 자사의 가치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다. 발렌베리의 소유기업들은 모두 공개기업으로 각각의 이사회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는 없다.”


③ 적극적 오너십과 과감한 구조조정 - 발렌베리는 장기투자를 위해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는 데는 뛰어난 지구력을 발휘하지만, 방만한 경영에 대해서는 인내심이 약했다. 발렌베리는 기업에 대해 장기적으로 책임을 떠맡는 ‘적극적 오너십을 표방한다. 하지만 이는 최고경영자의 발탁이나 인수합병, 사업구조조정 등의 전략적 판단에 국한될 뿐 소유기업의 경영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간섭하지는 않는다.


④ 지분이 아니라 능력 - 발렌베리는 리더십의 원천을 그들의 역량과 폭넓은 네트워크에 두었다. 따라서 발렌베리에게 절대지분의 확보는 부차적인 문제이며, 실제로 발렌베리가 최대주주가 아닌 기업도 적지 않다. 즉 지분이 아닌 능력에 의해 소유기업을 이끌어나간 것이다. 이것은 지분이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창립자 앙드레 이후부터 깨달은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발렌베리는 뛰어난 경영력을 바탕으로 모든 소유기업에서 막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으며 소유기업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들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도 기꺼이 감수했다.


▶ 노블리스 오블리제
① 기업의 생존 토대는 사회 - 스웨덴 최고의 부자는 발렌베리가 아니다. 그 이유는 다른 가문들이 모두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로 옮겨간 반면, 발렌베리는 스웨덴에 남아 자신들이 일군 부(富)를 발렌베리재단에 기부해 사회에 환원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경영자들의 개인재산은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1994년 현재 인베스터의 명예회장인 피터는 227억 5,320만 원, SEB 회장인 마쿠스는 104억 1,180만 원, 인베스터 회장인 야콥은 62억 8,460만 원의 개인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1조원 대를 넘나드는 우리나라 재벌 오너들의 재산규모와 비교한다면 이 금액은 아주 미미한 액수라고 할 수 있다.


②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다 -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 발렌베리는 항상 대중의 시선 밖에 머무르려고 노력했으며 대중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금기시 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언제나 자신들의 역할을 기꺼이 떠맡아 왔다. 이는 창업자 앙드레부터 시작된 것이다.


③ 사회민주당과의 오랜 공존 - 1932년 처음 집권에 성공한 사회민주당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제도를 지탱하기 위해 개인 소득세에 대해 가혹할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지만, 기업에 부과되는 법인세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등 여전히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발렌베리는 이러한 사회민주당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데, 좌파 정당과의 이러한 상호공존은 발렌베리의 번영이 유지될 수 있는 강력한 토대가 되고 있다. 1970년대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균열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상호존중의 기본원칙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발렌베리 또한 먼저 개혁을 단행하는 등 새로운 변화의 요구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있다.


발렌베리는 소유기업을 어떻게 초일류기업으로 키웠나
▶ 세계최대 의약품 ‘로섹’의 신화, 아스트라제네카 : 발렌베리의 3세대 야콥이 스웨덴 국영기업의 조그만 자회사였던 아스트라를 인수한 것은 1924년으로 부채 100만 크로네를 떠안는 조건에 인수가격은 단돈 1크로네였다. 아스트라의 공장은 당시만 해도 거대한 쓰레기 덩어리를 연상시킬 만큼 작업라인이 황폐화된 데다가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치과 치료에 쓰이는 국소마취제 ‘자이로케인’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었고, 아스트라는 이 제품의 성공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회생의 궤도에 들어섰다. 노벨을 배출한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화학분야의 강국으로, 아스트라도 초기에는 일반적인 화학산업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화학산업의 성장속도가 급격히 둔화되자, 평소 의약품 사업의 가능성을 눈여겨 보아온 야콥은 재빨리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에 착수하였다. 야콥의 판단은 정확했다. 아스트라는 ‘세로켄(Seloken)을 개발하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88년에는 ‘로섹’이라는 혁명적인 신약을 내놓게 되었다. 2001년 로섹 하나로 아스트라가 벌어들인 액수만 무려 55억 달러이다.


하지만 로섹의 개발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연구에서 출시까지 무려 2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로섹 프로젝트는 몇 차례 중단위기를 맞기도 했다. 신약 개발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야콥은 항상 장기적인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최우선순위를 두었으며 회사의 이익 배당도 최소한으로 제한함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자원을 연구개발에 활용하도록 했다.


1988년,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0여년 만에 드디어 로섹이 출시됐다. 책임자 이반 외솔롬은 이미 은퇴했고, 야콥도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로섹이 거둔 눈부신 성공은 발렌베리 왕국에서 아스트라의 위상이 크게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 아스트라는 영국의 제약회사 제네카와의 합병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 대형트럭의 롤스로이스, 스카니아 : 스카니아는 메르세데스-벤츠, 볼보와 함께 세계 3대 대형트럭 회사 가운데 하나로 1911년 바비스와 스카니아의 합병으로 탄생한 스카니아-바비스가 파산을 맞게 되자 발렌베리가 이를 떠맡아 세계적인 트럭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발렌베리는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에 무려 1,500만 크로네의 손실을 안기고 파산선언을 한 이 회사를 청산하는 대신 출자전환을 통해 지배주주가 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존 법인을 청산하고 똑같은 이름의 새 회사를 설립해 부채를 털고 자산만 인수한 것이다. 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갈 새로운 경영자도 물색하였는데, 발렌베리는 이처럼 자신들이 입은 손실의 복구보다는 항상 인수회사를 강화시키는 방안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스카니아-바비스가 수출기업으로서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50년대부터다. 이때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가 가장 큰 시장으로 떠올랐는데, 이는 회사에서 생산되는 고속버스가 굴곡이 심하고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브라질의 산악지형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스카니아의 시장점유율은 40%가 넘는다.


▶ 초일류기업의 대명사, ABB - ABB는 1988년에 스웨덴의 아세아와 스위스의 브라운 보버리의 합병으로 탄생한 기업이다. 아세아와 보버리 모두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중전기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특히 아세아는 20년 동안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발렌베리의 3세대 마쿠스 주니어가 자신의 눈동자에 비유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가진 기업이다.


아세아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창업자 앙드레였다. 하지만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이 아세아의 지배주주가 됐을 때, 아세아의 재무상태는 거의 붕괴직전이었다. 더욱이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 자산의 10%가 아세아에 묶여 있는 상황이어서 앙드레의 두 아들 크누트와 마쿠스 주니어는 새로운 고객을 찾아 수요를 창출하도록 경영진을 압박하는 등 동분서주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마쿠스는 아세아의 시장 개척을 위해 노르웨이의 수력발전과 질산비료 산업에 직접 뛰어들기로 결정한다. 산업비료에 필요한 질산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쿠스는 아세아의 새 CEO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GE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스위스의 취리히, 예테보리에서 전차 시스템의 전기 부문 공사를 총괄했던 지그프리드 에드스트룀을 영입하였다. 아세아는 이 새 CEO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아세아는 1990년대 에릭슨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스웨덴에서 가장 많은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는 회사였는데, 연구는 대부분 장기 프로젝트로, 직류송전방식의 경우 1929년에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상용화되기까지 무려 25년이 걸렸다. 이 연구는 성공하여 이것만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 들였다.


아세아의 기술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53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낸 데 이어 반도체 개발과 생산에도 뛰어들었으며, 공정제어 어플리케이션은 물론 산업로봇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리더로 올라섰다. 1988년에는 ABB와 스위스의 중전기업체 브라운 보버리와의 초대형 합병을 이끌어냄으로써, 아세아는 단숨에 GE, 지멘스와 겨루는 중전기 분야의 거인으로 올라섰다.


삼성과 발렌베리는 무엇이 다른가
삼성은 현재 일본 7대 가전업체의 순이익보다 더 높은 순이익을 기록, 온국민이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고(故) 이병철 회장이 세운 회사지만 삼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의외로 많지 않다. 더군다나 삼성전자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나마 갖고 있던 지분마저 17.89%의 지분으로 소수 지분이 되어버렸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건희 회장 개인의 지분은 1.91%에 불과하다.


삼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공정거래법 11조는 삼성생명 등 금융회사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대폭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5년까지는 다른 계열사의 지분과 합쳐 3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 지분이 17.89%로 기준선인 30%를 훨씬 밑돌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이 된다. 또한 2006~2008년까지 의결권의 허용범위가 15%까지 단계적으로 축소된다. 여기에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목표로 하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문제, 이재용 상무보를 중심으로 하는 경영권 승계 문제 등 소유지배 구조는 삼성의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삼성이 최근 사회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들 - 고대 사태, 삼성 X파일 사건 등 - 또한 삼성의 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삼성과 발렌베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작지만 큰 차이를 보이는 7가지가 있다.


① 순조로운 경영권 승계 - 발렌베리는 5세대 경영단계에 왔지만, 그럼에도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었던 적이 없다. 발렌베리의 경영권 승계과정 자체는 매우 깔끔하다. 스웨덴에서는 편법상속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발렌베리 또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발렌베리의 소유기업들은 모두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개기업이며, 각각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하는 것처럼 비공개 자회사에 투자한 다음 이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막대한 차익을 챙기는 ‘재테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일반 투자자와 똑같이 시장을 통해 매입해야 하며,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은 없다. 발렌베리는 지주회사 인베스터만 차지하면 발렌베리 왕국을 통째로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인베스터 자체가 공개기업이라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5세대인 마쿠스와 야콥 모두 인베스터의 지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 이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발렌베리가 인베스터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발렌베리재단이 인베스터의 지분 21.4%(의결권 46.1%)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며, 발렌베리 가문의 부(富)는 대부분 발렌베리재단에 넘겨져 있다. 편법상속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다.


② 투명한 톱 콘트롤 타워 - 발렌베리 왕국의 콘트럴 타워는 인베스터이고 삼성전자는 구조조정본부(구조본)이다. 그러나 인베스터와 삼성구조본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인베스터는 주식시장에 공개된 투명한 기업인 반면, 삼성구조본은 법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핵심적인 경영정책들이 아무런 외부의 견제장치나 검증절차 없이 소수에 의해 ‘비밀리’에 결정되고 추진되는 반면, 인베스터는 모든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최상층부에서는 ‘투톱 경영’을 통해, 그리고 지주회사인 인베스터에서는 공개된 이사회를 통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③ 황제경영은 없다 - 발렌베리를 실질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실권을 가진 막강한 전문경영인 그룹이다. 이들은 자회사의 CEO를 거친 후 인베스터의 이사로서 이사회에서 활동하게 되며 다른 자회사들의 이사회에도 참여한다. 이러한 방식은 이들의 한 차원 높은 경영 노하우가 자회사들에 고스란히 전수되는 효과가 있으며, 발렌베리의 14개 소유기업이 최적화된 상태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발렌베리의 후계자들 역시 이들과 똑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물론 삼성에도 전문경영인들이 있지만, 이들이 얼마나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며, 실제로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것은 이건희 회장의 ‘황제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④ 발렌베리는 ‘그룹’이 아니다 - 삼성 계열사들은 공동운명체 의식이 강하다. 물론 발렌베리의 소유기업들도 서로 협력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거래’는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내려진 것이다. 사실상 발렌베리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렌베리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 사이에 막연한 연대의식만 있을 뿐, 같은 이름을 쓰지도 않으며 통일된 상징물도 없다. 발렌베리는 철저하게 개별 기업의 독립경영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각 기업마다 독립된 이사회와 투자자가 있으며 서로 출자지분으로 엮여 있지도 않다.


⑤ 순환출자 vs. 차등주 - 이건희 회장이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듯이 발렌베리 역시 차등주제도라는 강력한 수단을 바탕으로 경영권을 쥐고 있다. 실제 소유지분에 비해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둘 사이 큰 차이가 없지만, 순환출자는 복잡한 출자관계를 통해 그룹 전체를 공동운명체로 만드는 반면, 차등주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다르다. 더구나 몇몇 기업에 발렌베리는 차등주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으며, 차등주가 엄청난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⑥ 노조는 경영 파트너 - 전통적으로 노조와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해 온 발렌베리는 노조 지도자들과도 스스럼없이 만나 의견을 나누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스웨덴의 노조는 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는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로 에릭슨의 이사회 멤버 15명 가운데 6명이 노동자 대표로서 노조와 경영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⑦ 적극적인 사회 환원 - 발렌베리 왕국의 실질적인 주인은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라 발렌베리재단이라고 할 수 있다. 150년 동안 일군 부(富)의 대부분을 3개의 발렌베리재단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계자들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 재단은 발렌베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 최대의 공익재단으로서 과학?기술 연구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발렌베리 소유기업들이 거둔 경영성과는 배당을 통해 인베스터로 모이고, 이는 다시 배당을 통해 최종적으로 발렌베리재단으로 간다. 재단은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금의 대부분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씀으로써 소유기업들의 경영성과가 자연스럽게 스웨덴 사회 전체로 환원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스웨덴 사회와 발렌베리, 소유기업들이 강하게 결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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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발렌베리 왕국이 완벽하다 할 수는 없다. 또한 발렌베리 역시 아직까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베리는 삼성을 비롯한 우리의 재벌기업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투명성, 견제와 균형의 원리, 투자자들의 권리 등…. 우리 재벌들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적극적 소유주’가 되어야만 한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황제식 경영’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도 않고 유지될 수도 없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