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인가, 평등인가? 올바른 우선순위 설정에 관해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류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개인을...



  • 풍요인가, 평등인가? 올바른 우선순위 설정에 관해?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류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개인을 옥죄어 자유와 창의성을 억누른 체제는 결코 아닐 것이다. 이제 꽤 많은 데이터와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반면 풍요가 커지는 만큼 평등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점차적으로 더 충돌의 양상을 띄고 있다, 우리는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

    약 200여 년의 기간 동안 우리 세계에 남겨진 증거는 분명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을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두 가지를 모두 한꺼번에 다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절대적 평등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각 국가 및 사회에 각인된 주요 문화적, 정치적 양단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확한 구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2. 민간 부문 대 공공 부문
    3. 큰 정부 대 작은 정부
    4. 능력주의 대 자격주의
    5. 자립 대 의존
    6. 개인 책임과 공공 책임
    7. 집단 웰빙 대 개인 자유
     
    ‘자본주의’와 ‘자립’을 받아들인 사회가 200여 년 기간 동안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반면 사회주의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것과 배치되는 것을 선택한 베네수엘라, 소련, 짐바브웨는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꽤 많은 국가와 사회들은 왜 풍요로움을 가져다 준 자본주의와 자립에 대립하고 있을까?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왜 수많은 미국인들이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이들 중 일부는 더 큰 정부에 대한 이념적 욕망, 부를 이룩한 이들에 대한 이념적 거부감 때문이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the World Inequality Report)’의 2022년 에디션에서 강조하는 생각을 고려해 보자. 이 보고서의 편집자들은 가장 부유한 나라의 가장 큰 부자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에 분개한다. 경제가 실제로 한정된 파이라면 이 데이터에는 부도덕한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아니다.

    데이터가 전하는 수치에서 우리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1800년대의 일부 국가들은 자본주의 덕분에 훨씬 더 부유해졌고, 이들 국가의 시민들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소득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외 나머지 국가들과 세계는 어떠했을까? 미국 기업 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스콧 윈쉽(Scott Winship)은 최근 이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서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을 만한 통계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경제 성장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극도의 빈곤에 처한 인간의 비율이 지난 2세기 동안 거의 90%에서 10% 미만으로 줄었음을 강조한다.

    객관적으로 말해 윈십이 분석한 사실을 우리 모두는 축하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불평등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가 되는 데 필요한 자유 시장 정책에 찬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 큰 정부가 항상 답이라고 믿거나 경제가 고정 파이라고 생각하는 군중의 경우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또는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와 같은 사람이 더 부자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더 가난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더군다나 기업가와 혁신가가 창출한 부의 막대한 부분이 그들 자신이 아니라 더 많은 대중에게 귀속된다.

    자유 시장 정책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데이터가 존재한다. 미국을 보자. 미국은 과거보다 오늘날 훨씬 더 부유하다. 200년 전으로 돌아가거나 단순히 오늘날의 경제를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의 미국과 비교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른 모든 시장 기반 경제에도 동일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증거를 믿지 않은 사람들의 일부는 광범위한 성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 또한 성장은 정책의 영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정부가 크든 작든 국가는 더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풍부한 데이터가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더 많은 평등이 있다면 더 적게 성장해도 괜찮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데이터는 이들 주장과 달리 경제적 자유가 더 많이 보장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더 부유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누군가가 인류의 복지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자유 시장과 제한된 정부의 가장 큰 옹호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풍요와 평등 간에 있어 다음과 같은 예측을 내려 본다.

    첫째, 역사와 발전의 시각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2020년대의 젊은 세대는 오늘날의 주류 경제에 계속 합류할 것이며 사유 재산, 창의적 아이디어, 자본주의, 자유 시장 경제와 반대의 길, 예를 들어 사회주의 혹은 더 작은 정부는 그 매력을 더 많이 잃게 될 것이다.

    둘째, 앞으로는 민간의 우선권이 더 회복될 것이다.

    큰 정부의 비효율성과 한계는 이미 역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민간의 자유로운 참여와 경쟁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임은 명백하다. 실제로 민간이 제안하거나 창출한 솔루션이 거의 항상 공공의 그것보다 더 좋고 빠르고 저렴했다.

    셋째, 능력주의가 더 인정받게 될 것이다.

    소위 모두를 평범하게 만드는 범위에서의 ‘공정’은 더 생산적인 기술 개발, 강력한 동기 부여와 우선순위 설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도식적이고 교조적인 ‘공정’의 추구는 개인과 사회, 국가를 더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넷째, 작은 정부가 우세하긴 하지만, 각 정부는 포퓰리즘적 정책에 더 우선순위를 두게 될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최소한의 정부가, 최고의 정부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부는 민간 기업이 부여된 권리를 남용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섬세한 균형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오늘날 특히 대형 기술 플랫폼 기업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시장 경제 시스템이 제공하는 자유를 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자립’과 ‘개인의 책임’은 다시 나타날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와 MZ 세대의 성숙과 함께, 공공 부문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솔루션이 ‘자립’과 ‘개인의 책임’이라는 토대 위에서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여섯째, 개인의 자유가 결국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억압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문화를 구축하려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그 전제가 된다.  어떤 사회나 국가든, 큰 정부로 인해 포기한 자유를 더 잘 인식하게 될 때 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진행이 가속화될 것이다.

    Resource:
    1. Townhall.com Daniel J. Mitchell. December 9, 2021. Crushing The Inequality Narrative.

    2. International Liberty. July 21, 2021. Dan Mitchell. The Economics of Inequality.

    3. International Liberty. October 9, 2019. Dan Mitchell. The Real Motive for Class-Warfare Taxation.

    4. AEI.org. December 15, 2021. James Pethokoukis. Why socialist economies fail.

    5. Center for Freedom and Prosperity. December 21, 2020. Dan Mitchell. Part I: Poverty Is a Problem, not Inequality.

    6. June 28, 2021. James Pethokoukis. The 21st-century degrowth movement makes the same mistake about human nature as 20th-century sociali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