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 해적들의 비밀 공부법
 
지은이 : 제임스 마커스 바크
출판사 : 퍼블리온
출판일 : 2022년 04월




  •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스스로 공부해 20세에 애플 컴퓨터 최연소 매니저가 된 제임스 바크가 들려주는 ‘캐리비안 해적 스타일’의 공부법입니다. 스스로 학습하고 열정을 추구하는 공부법으로 커리어를 쌓아, 학위도 자격증도 없지만 소프트웨어 테스트 분야의 권위자로 성공한 비결을 담았습니다.


    캐리비안 해적들의 비밀 공부법


    나는 캐리비안 해적 스타일의 학생이다

    캐리비안 해적 스타일의 학생이란, 배움에 대한 사랑이 특정한 제도나 기관에 의해 재갈이 물리거나 굴레가 씌워지거나 족쇄가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서 방황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스스로를 이렇게 이해해왔다. 내가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배움의 방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서적인 갈등을 해결하고, 가끔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는 지적인 싸움을 대하는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혼자서 스스로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나를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많은 스승과 동료 학생이 있었다.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스스로가 독립적인 주체임을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른 수많은 사상가로 이루어진 더욱 커다란 어떤 체계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 온전한 주체라는 느낌을 물론이고,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아무리 급진적이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나머지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소 특이하게 생각을 했으며 스스로 고안해낸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나를 고용해준 회사를 위해 일하고, 고객의 마음을 끌기 위해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


    고등학교 자퇴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나의 성적표는 조금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머니가 학교에 이야기해서 9학년 때 기하학과 삼각함수 과목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과목을 이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말고사를 보는 대신에, 버몬트대학교에 가서 여름 미적분학 강좌를 들었기 때문이다. 9학년 때 수학 선생님은 내가 기말고사를 치르지 않자 불같이 화를 내셨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니라 배운다는 것이 아닌가?


    당시 나는 성적이라는 걸 완전히 무시했다. 공립학교의 성적 체계가 엉터리인 데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괜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니었다. 내가 뭔가를 배웠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도 좋은 성적을 받는 경우도 많았고, 반면에 내가 상당히 뛰어나다고 생각한 과목에서는 최악의 성적을 받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성적표의 숫자들은 명확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그 뒤에 있는 실제의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다. 학교 성적표는 나와 같은 학생들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점수가 높다고 해서 잘 배웠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낮은 점수라고 해서 배움이 형편없었던 것도 아니다. 성적표의 결과는 진정한 가치라고는 거의 반영되지 않은 터무니없는 기록이다.


    성적표의 기록만 들여다봐서는 어떤 학생이 학교에서 얼마나 잘 지냈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기록은 심지어 어떤 학생이 얼마나 ‘올바르게 행동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교의 선생님은 설령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이 이더라도, 자비심이나 배려를 발휘하거나, 또는 행정적인 부담감 때문에 그 학생이 낙제하는 걸 구제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 시스템은 엉망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캐리비안 해적들

    캐리비안의 해적들은 누구였나?

    최초의 캐리비안 해적들은 1625년에 세인트키츠섬에 정착한 프랑스와 영국의 사냥꾼들과 농부들이었다. 버커니어라는 표현은 그들이 고기를 저장하던 방식인 ‘버컨(boucan)’에서 유래했다. 사실 초기에 그들의 생활은 조용한 편이었다. 그러나 1629년이 되자 그들은 스페인 탐험가들에게 거의 몰살당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들이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침공 이후 캐리비안의 해적들은 히스파니올라섬과 토르투가섬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루 종일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고 고기를 건조하는 대신에, 스페인의 선박과 마을을 강탈하자!” 제대로 성공하면 그들은 금은보화를 손에 넣었고, 성대한 축하 파티를 벌였다.


    이런 사실이 배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해적 활동’이라는 것은 우리가 배우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멋진 비유다. 이 표현은 우리에게 용기와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마음껏 방랑해도 된다는 생각을, 방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준다. 사람들은 그런 기질을 가리켜 ‘주의력 결핍 장애’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멈출 수 없는 호기심’에 더 가깝다.


    역사 속의 해적은 물리적으로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값나가는 물건을 강탈해감으로써 피해를 입혔다. 캐리비안 해적 스타일의 학생이 위협적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이 생각해낸 새로운 기법과 아이디어들이 기존의 질서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대상을 경제학자들은 ‘비경합성’ 재화라고 부른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서 그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의과대학에 다니지 않는 상태에서 의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의사들이 더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적인 해적 활동이 때로는 파괴적이며 심지어 공격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옛날의 해적들이 가진 매서운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물리적인 잔학 행위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최초의 해적들은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위험을 마주해야만 했다. 캐리비안 해적 스타일의 학생은 물리적인 위험을 마주하지는 않지만, 거의 그것에 맞먹는 부담감을 갖게 된다. 캐리비안 해적 스타일의 학생은, 설령 매우 뛰어난 성취를 이룬다 하더라도 노벨상이나 맥아더 천재상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캐리비안의 해적 스타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즐겁게 공부하렴, 제임스!

    열네 살 때, 아버지가 나에게 컴퓨터를 한 대 보내주셨다. 애플 2플러스 모델이었고, 메모리는 48K 바이트였다. 48K바이트란 0 또는 1로 된 정보(비트,bit)가 39만 3,216개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메모리는 비트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시다. 당시에는 이게 상당히 많은 것처럼 보였다. 또한 중앙처리장치의 속도는 1메가 헤르츠였다. 1초에 100만 번의 연산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산더미처럼 쌓인 돈다발 속에 파묻히는 일을 상상하듯이, 나는 컴퓨터의 비트와 헤르츠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며칠 전에 아버지는 이상한 매뉴얼을 하나 보내주셨다. 나는 그 매뉴얼을 정신없이 탐독했다. 그건 내가 힘들게 생각했던 학교 숙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학교 공부는 머릿속에 들어가자마자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컴퓨터의 매뉴얼은 마치 내 마음속에서 불꽃놀이처럼 터졌다. 매뉴얼의 내용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그것의 의미와 사용법이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컴퓨터는 하나의 우주였다. 그것은 독립적이며 완전한 우주였다. 대부분의 해커가 남성인 것도 이해가 된다. 컴퓨터는 뭔가 심오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당시 나에게 이런 욕구가 더욱 절실했던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의 삶을 거의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어른과 냉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또래의 수많은 아이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컴퓨터는 나에게 거의 마약처럼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의 인생을 바꾼 실험

    열네 살의 어느 봄날, 방 안에서 더러운 빨랫감들을 치우다 침대 밑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 책을 발견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그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떤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것이다. 나는 <6502 어셈블리 언어 프로그래밍>에 있는 문장들이 마치 급류를 가로지르며 놓여 있는 징검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셈블리 언어를 배우려면, 나는 그 과정에 가로놓인 징검다리의 돌을 하나씩 건너가야만 했다.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 장을 천천히 읽어보는 것이었다. 한 번에 한 장 하나씩 읽고, 그림도 하나씩 살펴보면서 말이다. 일단 내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지점까지 그 징검다리를 건너가보기로 했다.


    예상한 대로 첫 부분은 쉬웠다. 그런데 그다음 내용은 더 쉬웠다. 저자는 컴퓨터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불과 2분도 지나지 않아 한 문장씩 읽으려던 작전을 포기하고 좀 더 어려운 내용을 찾아 훑어나갔다. 분명히 어려운 내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했고, 그 구절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프로그래밍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강의 교재가 두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한 가지를 배우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수많은 작업을 각각 별개로 분리해서 하나씩 실행하다 보면, 그 내용을 따라하기가 좀 더 쉬워진다. 이번 장의 목적은 그러한 작업들을 분리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 랜스 레벤탈 <6502 어셈블리 언어 프로그래밍>

    마치 눈보라 속을 빠져나온 것 같았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어셈블리 언어로 프로그래밍하는 걸 배울 수 있어!’ 저자는 내가 걱정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불안감을 느끼는 게 정상이며, 이런 불안감을 지나갈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약간의 혼란스러움 정도는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책을 통틀어 정말로 어려운 건 없었다. 모든 내용이 체계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각각의 지점은 다음 부분으로 쉽게 이어졌고, 거기에 그림까지 더해져 텍스트의 내용을 보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어셈블리 언어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하나 작성했다. 제대로 작동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용량이 큰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결국 나는 해냈다. 그 강물을 건넌 것이다. 그리고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나는 컴퓨터 게임을 개발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 일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어셈블리 언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가 옳았다. 그것은 즐거운 공부였다. 나는 내가 영리하다고 느꼈다. 내가 영리하다는 느낌이 들면, 나는 더욱 많은 에너지를 배움에 쏟아부었고, 그러면 나는 더욱 발전했다. 그래서 내가 좀 더 영리해졌다고 느낀다면, 실제로 나는 더 영리해진 것이다.



    자유로워진 어린 영혼

    8학년 때, 크레블링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른이 되어 주유소에서 기름이나 넣으며 돈을 벌고 싶지 않다면,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하는 게 좋을 거다. 학교 숙제가 바보같아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학교생활을 잘 한다면, 인생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거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저는 학교생활을 하지 않겠어요. 저는 돈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저는 로키산맥에 들어가서 혼자 자급자족하면서 살 거예요.” 나는 진지했다. 나는 사냥 훈련 캠프에도 다니고, 버몬트에 있는 숲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크레블링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도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가 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는 식으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게 다소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레블링 선생님이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은, 지구상에는 관습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화가들, 작가들, 음악가들, 기업가들이 그렇다. 물론 다른 사람이 잘 닦아놓은 도로를 가지 않고 가시밭길을 걸어간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만약 그렇게 가시밭길을 걸어갈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를 캐리비안의 해적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집과 학교를 떠나다

    나에게도 처음 시작은 확실히 가시밭길이었다. 1980년 9월 28일, 나는 부모님에게서 쫓겨났다. 어머니는 집에서 1마일(약1.6km) 떨어진 어느 모텔 방에 나를 혼자 보내서 살게 했다. 당시 나는 열네 살이었고, 이제 막 중학교 과정을 시작할 때였다.


    어머니가 나를 쫓아낸 데에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새아버지인 존을 죽이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어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마더스 모텔의 매니저와 이야기해서 방을 예약했고, 아버지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입하라면서 매달 자녀양육 수표를 보내주셨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훌륭했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나는 편의시설만 좀 더 구비되어 있을 뿐, 마치 숲속에 있는 것처럼 자유로움을 느꼈다. 내가 따라야만 하는 무언의 모호한 사회적 규율도 없었다. 거대한 부담감이 사라졌다.


    언제나 느끼던 분노의 감정도 사라졌다. 나는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열네 살 중학생이 혼자서 살아간다면 분명히 약물에 손을 대거나 불량배들의 희생양이 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곳은 버몬트의 평화롭고 안전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다. 당시는 순수한 시기였고, 그곳은 순박한 동네였다.


    술을 마신 적은 두 번 있는데, 두 차례 모두 순진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하면서 마셨다. 나는 그렇게 두 번 마셔본 알코올이 마음에 들었다. 알딸딸한 기분이 든다는 게 재미있었다. 그냥 놔뒀으면 아마 계속 술을 마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동생이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일렀다. 그러자 아버지가 곧장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제임스, 네가 원한다면 술을 마셔도 된다. 그건 너한테 달려 있어. 하지만 나는 네가 이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나는 너를 걱정하고 있단다. 뭔가 심각한 문제에 빠질까 봐 두렵구나. 알코올을 좀 멀리할 순 없겠니?” 아버지가 나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나는 8년 동안 알코올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버지의 작은 설득이 커다란 변화를 만든 것이다. 6학년 때의 베드린 선생님처럼, 아버지도 나를 한 명의 성인으로 대하며 말씀하셨다. 나는 존중해주면, 나도 그들의 말을 새겨들은 것이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던 시점에 나는 <타임> 매거진에서 나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하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마이크로키드가 온다’는 제목의 그 기사는, 나처럼 컴퓨터에 푹 빠진 청소년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특히 유진 발럭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그는 불과 열네 살의 나이에 대학을 다니면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라면 어떨까? 이 사람은 어떻게 이걸 해냈을까? 그의 부모님은 학교에 대체 어떤 서류를 보냈기에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여전히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당장에 그러지 못한 이유는 돈이 없기도 했고, 자기수양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끈기가 없었고, 일반적으로 대학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도 없었으며, 그러려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 또다시 반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제임스, 왜 그곳에서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거냐? 너는 그곳에서 문제만 일으키고 있잖아. 그냥 학교를 그만두고 너 스스로 공부를 해보렴.”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그렇게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면서 나는 학교를 그만뒀다.


    20년이 지난 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내가 학교를 마치지 않고도 성공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그토록 확신했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기억에는 내가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 같지 않구나. 나는 그게 네 생각이라고 알고 있었다.”



    먹이를 노려야 음식을 얻는다

    나에게는 특별한 규율이 없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보면, 상당히 엄격한 규율이 필요해 보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규율이 아니라 열정에 따라 일을 해왔다. 열정이란 자유롭게 오고가는 신비한 힘이며, 멈추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이다. 만약 내가 어떤 규율에만 의존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1986년 말,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싫증이 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진절머리가 났다. 나를 프로그래머로 일할 수 있게 해준 데일 디샤룬은 나에게 몇 달 동안 해야 할 일을 던져주고는 장기간의 휴가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혼자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개인적인 문제와 씨름하는 동안, 게임 업계에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았다. 그해 말, 휴가를 떠났던 데일이 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그도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기술을 갖고 있던 분야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은 의욕이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어떤 직업중개인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내가 몇 달 전에 보낸 이력서를 이제야 확인한 것이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혹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지 않으세요?” “지금은 이 업계가 불경기라고 생각했는데, 서니베일의 길거리에는 굶주린 프로그래머들이 넘쳐나지 않나요?” “아뇨, 실제로 그곳에는 일자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애플 컴퓨터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온통 불타버린 나의 마음속에서 갑자기 반짝이는 긍정의 네온사인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애플 컴퓨터가 나를 필요로 했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 나는 부름을 받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직무는 테스터 팀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월급을 준다는 건가요?” 흥미로웠다. 나는 내가 한 일을 늘 테스트 해왔다. 내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고도 내가 가진 프로그래밍 능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애플의 사옥으로 걸어 들어간 게 아마도 내가 정식 오피스건물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일이었다. 칸막이로 구분해놓은 방과 회의실을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었다. 면접은 어느 회의실에서 진행되었고, 면접관 두 사람이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질문들에 대답하면서, 내가 작업한 게임들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다.


    모든 프로그래머가 그렇듯 “제가 만든 프로그램들을 직접 테스트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건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소프트웨어 테스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교에 소프트웨어 테스트와 관련한 전공도 없던 시절이었다. 현대적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겨난 새로운 분야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은 캐리비안의 해적들에게 적합한 분야다. 그 옛날 스페인 통치 수역이 그랬듯이, 소프트웨어 테스트 분야 역시 거칠고 넓게 펼쳐진 바다였다. 회사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 일자리를 얻어낸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채용 담당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일자리에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배울 수 있다고 그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관리자 업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고, 나는 그런 가르침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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