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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 있다
저   자 : 황시투안(역:정은지)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1년 10월




  • 인간 내면의 고통, 혼란, 실망 그리고 피로 등은 모두 신념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념을 ‘인생 소프트웨어’라고 부른다. 만약 이 소프트웨어가 바뀌지 않는다면 삶은 계속해서 과거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고 만다고 단언한다.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불공평한 운명에 대해 불평할 때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쩌다가 지금 이 길을 걷게 되었나? 내 안의 어떤 패턴 때문에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이 책에서 각자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나답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 있다


    나의 감정 패턴을 돌아보라: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

    누가 나의 행복을 앗아갔는가?

    인간의 천성인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행복을 논할 때 부탄이라는 나라를 빼놓을 수 없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이다. 몇 년 전에 부탄에 가 봤는데 그곳은 풍경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 말고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대부분이 가난했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눈빛과 순진한 웃음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감은 정말 높아 보였다.


    중국 속담에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남과 비교하며 사는지를 방증하는 말이다. 비교는 우리에게 불안을 가져다준다. 이전에 나는 부탄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가 그들의 현재 생활 형편이 대체로 비슷한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전 부탄 총리인 지그메 틴레이를 만났을 때 만약 부탄에 일부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되면 행복지수가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총리는 단호하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비교를 한자로 쓰면, ‘比較’이다. ‘비(比)’자는 두 자루의 비수처럼 한 줌은 다른 사람에게, 한 줌은 자기 자신에게 꽂혀 있다. 한자의 모양새처럼 남들과 비교하며 더 행복해지려고만 하는 것은 자학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 할까?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떤 사람이 생존할 확률이 더 큰가? 물론 ‘빨리 달리는 사람’이다. 생존을 추구하는 환경에서는 주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더 많은 생존 기회가 주어진다. 비교는 인류의 천성이자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먼 옛날부터 인간의 생존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내장된 프로그램과 같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보다 뛰어나야 마음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가 인간의 천성이라면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비교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 멀리할 수 없다면 맞닥뜨리는 게 가장 속 편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비교’를 직시할 수 있을까?


    질투하기보다 차라리 부러워하라

    비교할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러움과 질투라는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이 두 감정은 각각의 독립된 개체로 보이지만 실제는 남매와 같아서 그 뿌리는 하나다.


    부러움이란 남이 가진 것을 보고 자신도 갖기를 원하며, 자신의 신분이나 업적, 재산 등이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얻기를 갈망하거나 다른 사람처럼 되길 희망하는 감정을 말한다. 부러움은 자신이 선망하는 대상처럼 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다.


    질투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누리는 것을 잃기 바라는 마음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고 좋지 않은 상황일 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상대방이 우월함을 알게 되면 고통스러운 감정마저 느낀다. 부러움보다 질투가 더 위험한 이유는 질투로 인해 상대방을 얕잡아 보거나 적대시하고 심해지면 공격성까지 동반해 의도치 않게 남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질투심이 극에 달할 땐 한을 품고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누군가 말하길,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신보다 특출한 사람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초를 잘 다져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전자는 ‘질투’ 후자는 ‘부러움’이다. 언뜻 보면 부러움이 긍정적인 감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두 감정 모두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다. 자기 가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남과 비교하며 부러움과 질투에 휩싸여 자신의 인생을 깊은 나락으로 몰고 간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앞서 내가 부탄의 지그메 틴레이 전 총리에게 물었던 질문을 기억하는가? 부탄에서 일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된다면 행복지수가 낮아지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그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중심으로 바깥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해 자신을 만족시키는 방식입니다. 오감(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통해 행복의 원천을 얻는 것이죠. 이런 만족은 외적인 자극으로 얻어지므로 짧을 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반성을 통해 안정을 얻고, 마음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안에서부터 자생하는 만족감과 행복감입니다. 이런 종류의 행복감은 어떤 물질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부탄의 행복은 후자에서 나오기 때문에 경제발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러움과 질투의 두 가지 감정을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사용해 보자. 질투할 때마다, 경쟁자가 사라지지 않는 게 원망스러울 때마다 부러운 마음을 갖도록 스스로 일깨워보자. 물론 질투를 부러움으로 전환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스스로를 일깨우며 자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선조가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에 심어 둔 비교 프로그램을 발견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더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이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마음이 평안할 때 자연스레 행복을 느끼게 된다.


    만족과 현실 안주는 다르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기쁘게 받아들여라

    주위를 돌아보면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거의 모든 힘을 쏟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과 만족하며 기뻐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이 두 가 지 모두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이다. 그저 몇몇 사람들이 이를 현실에 안주하는 이유로 핑계를 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진정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기뻐할 수 있을까?


    우선 ‘받아들임’은 ‘수용’하는 것과 다르고, ‘만족’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시간 프레임이 있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관용하고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미래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대상은 사람이며, 과거의 내가 어떻든 상관없이 아무것도 되지 않더라도 나를 받아들이며 좋아하고, 스스로 더 나아지기 위해 쏟은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대상이 일이라면 결과가 좋지 못했던 행동에 대해서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선하며 발전시킨다.


    또한 만족할 줄 아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자원을 누리고,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 자리에 멈추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말한다. 반면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는 현재의 것에만 만족하고 진취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지금 있는 곳에 멈춰서는 수동적인 삶의 자세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의 기초이고, 내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야 비로소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마음속에 억울함이 가득하다면

    모든 패턴에는 뿌리가 있다

    ‘코칭 매니지먼트’ 강의에서 한 수강생이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 그는 성격이 센 리더나 고객과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고 했다. 누군가가 그를 통제하거나 조종하려고 할 때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찰을 빚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 사람이 끊임없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패턴’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패턴에는 그 뿌리가 있고, 근원적인 사건을 찾아서 다뤄야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나는 그와 함께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엔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에게는 새엄마가 낳은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아버지는 늘 동생을 편애하여 자신에겐 몇만 원짜리 책도 사주기 아까워하면서 동생에겐 서슴없이 백만 원짜리 컴퓨터를 사주었다. 불공평하게 대우받았던 경험을 얘기하다 다 큰 성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 시절의 서러움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었고, 그 서러움은 그의 포부를 키우기는커녕 오히려 외부 세계를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가 기가 센 사람과 어울리기 힘들었던 이유는 이런 사람을 대할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투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재적으로 너무 많은 분노를 억눌러 왔기 때문에 그는 한마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마음이 넓은 사람은 억울해하지 않는다?

    정치적 반대세력에 의해 투옥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인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가 사형수에서 한 나라의 수장이 된 뒤에 했던 첫 번째 일은 정적 청산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민족 화해 정책이었다. 그의 주도 아래 남아공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규모 유혈 충돌을 일으켜 100만 국민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일은 하지 않았다.


    왜 어떤 사람들은 억울함을 참을 필요도 없이 마음이 충분히 넉넉할까? 마음의 크기는 도대체 무엇과 관계가 있는가? 이 몇 가지 문제에 대답하려면, 우리는 먼저 ‘마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 다. 마음은 더 넓은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억울함은 무엇인가? 억울하다는 건 부당한 대우를 받고 마음이 힘든 상태를 말한다. 불공정한 대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고, 억울한 것은 주관적인 느낌이다. 억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사자의 마음이 너무 좁아 자신과 다른 시각이나 예상 밖의 사건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고 스스로 상황을 바꿀 힘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감정이 바로 억울함이다.


    넬슨 만델라가 불공평한 대우에도 억울함을 크게 느끼지 않은 것은 그만큼 마음이 넓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억울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반대로 억울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중국어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 ‘용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용은 공간적 개념이고, 인은 일종의 심리 상태다. 마음이 놓이면 수용할 수 있다고 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참으라고 한다. 그러니 수용할 수 있다면 참을 필요가 없고, 참으려 하면 수용할 공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마음’과 억울함’도 같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억울함이란, 실은 마음이 너무 좁아서 사람이나 일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인데 사실 사람이나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참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참기에는 마음이 즐겁지 않기에 마음 안에 억울함이 가득 쌓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왜 마음이 넓어야 하냐고 묻는다. 자신의 작은 세계에서 생활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건 또 어떤가? 한 우물에서 아이를 낳고 평생을 살아도 좋고 세상이 조금 작아질지는 몰라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정말 그럴까? 우물 안 개구리가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전제 조건은, 그 우물이 영원히 그들만의 것이란 전제하에서다. 만일 어느 날 뱀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행복했던 가족은 뱀의 아침 식사가 될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너무 작아서 정말 뱀 한 마리도 수용 할 수 없다.


    마음이 넓어지는 3가지 방법

    한 사람의 마음을 크게 넓히려면, 즉 도량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에 ‘초월’이라는 방법이 있다.


    인간은 감정이 있는 동물로 뜻하지 않은 일에 부딪히면 쉽게 감정이 동요하고 정서적 견제를 받는다. 사실 자신과 정서 사이에는 ‘공간감’이 있다. ‘초월’은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더 높고, 더 넓고, 더 효과적인 시간이나 공간 속에서 사건을 보도록 하는 공간 감각을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한다.


    초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


    1. 위치감지법

    사람이 곤경에 빠지는 이유는 보통 자신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아무리 식견이 넓어도 늘 맹점이 있기 마련이다. 위치감지법은 같은 문제를 다른 위치와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위치와 입장이 바뀌면 문제를 보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2. 타임라인: 미래에서 오늘을 보고, 다시 시작하라

    흔히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그 당시엔 너무 커 보이던 문제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리 힘들지 않은 문제였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직면한 어려움은 이 순간에는 숨 막히게 할 수 있지만, 10년 후에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타임라인을 통해 문제를 넓게 보라. 그러면 마음이 넓어질 것이다.


    3. 더 큰 가치를 보라

    같은 일에도 다른 가치가 있다. 누군가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그가 반지의 가치만 봤을 뿐 건강의 가치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부주의해 손해가 났을 경우 나무라는 사람은 재물의 가치만 보고 부부의 정이라는 가치는 보지 못한 것이고 자녀가 성적이 좋지 않아 꾸중하는 부모는 성적이란 가치만 보고 아이의 정신 건강이란 가치는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예는 일상에서 비일비재하다.


    억울함을 느끼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주할 때면 이런 초월적인 방법을 써 보자. 아마도 마음이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한다고 해서 마음이 넓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그것을 기대하면 대인관계와 몸이 망가질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정서를 통해 자신을 인지하고 수련하며 더 순응하며 편안해지는 것이다.



    나의 관계 패턴을 점검하라: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있다.

    다른 사람과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

    ‘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들이 소통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소통이 안 되는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나의 예시를 통해 알아보겠다.


    한번은 강의장 예약에 차질이 생겨 다른 호텔로 급히 장소를 옮겨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3단계로 진행되는 이 강의는 1, 2단계 모두 강사나 강의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의 장소가 바뀌자 한 수강생이 새 호텔이 그의 집에서 멀어졌다고 항의하며 전액 환불을 요구했다. 장소를 바꿔서 환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수업도, 선생님도, 스태프도 서비스도 좋지 않다는 등 전반적인 요소를 들어가며 부정하는 게 흥미로웠다.


    결국 이 수강생의 불만은 나를 비난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원래 나에 대한 그 수강생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까지 나쁜 사람으로 몰았다. 그리고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통 불가’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렇게 상대방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데 어떻게 소통이 되겠는가?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일반적으로 상대를 평가할 때 100점 만점에 90점 정도면 괜찮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 배우자상사, 친구로서 상대방이 해낸 90점을 보는 습관이 있을까? 아니면 상대방이 하지 못한 10점에 초점을 맞출까? 분명히 후자다.


    한 아이가 90점을 받았는데도 부모는 “왜 100점이 아니야, 왜 이렇게 부주의해? 이렇게 쉬운 문제도 틀리냐, 형편없어.”라고 말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90점 정도면 괜찮은 줄 알았는데 부모님께 연거푸 혼난 것이다. 그때 아이는 어떤 마음이 들까?


    모두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상대방이 못 채운 10 퍼센트를 비난하고 책망할 때, 상대는 자신이 해낸 90퍼센트를 보여주려고 애쓴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난다. 사실 다투는 쌍방은 모두 옳다. 단지 서로가 보는 시각이 다르고 관심의 초점이 다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무슨 말을 해도 상대방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지금 온 힘을 다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다른 것을 볼 여력이 없다. 그렇기에 일단 상대방 견해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같게 된다. 자아 가치가 충분히 높아서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물어보라.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값진 말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아직 적절한 소통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소통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먼저 상대방이 이미 해낸 부분을 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다음에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 상대방과 함께 의논할 수 있다. 상대가 옳다는 것을 인정한 뒤에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자. 만약 이렇게 소통한다면 누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사실 소통하기 어려운 상대는 없다. 다만 내가 상대방을 부정함으로써 상대방의 방어체제가 가동돼 소통이 차단됐을 뿐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이미 잘하고 있는 곳을 보고, 잘한 점을 인정하고, 그가 나를 신뢰하게 하고, 나를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면 그는 당연히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소통도, 협상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매일 하는 말 한마디부터 바꿔라

    말의 지향성과 프레임

    말은 어떻게 한 사람의 신경에 영향을 줄까? 이것은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이다. 나는 말의 지향성과 프레임, 이 두 가지를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말의 지향성이란 속칭 ‘남의 약점만을 들추어 난처하게 하는 것’으로 굳이 말하지 않으면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지만, 일단 말을 꺼내면 사람들의 신경이 자신도 모르게 우리가 말한 그 일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점을 모르면 사람들은 호의를 갖고도 나쁜 짓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험 전에 많은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에게 “얘야, 오늘 긴장하지 말아라.”라고 일깨워 준다. 그런데 ‘긴장하지 말라’는 말이 즉시 아이의 긴장을 촉발시킨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말의 긍정적인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둔 아이에게는 “얘야, 마음 편히 먹으렴, 난 널 믿어.”라며 아이의 주의력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말의 문제점은 사실 범주이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의 사고 프레임을 어느 범주 안에 가두어서, 상대방이 단지 우리가 설정한 범주 안에서만 생각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광동 지방의 식당에서 식사하면 종업원은 먼저 우리에게 “무슨 차를 마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때 우리의 뇌는 자기도 모르게 ‘차’라는 범주에 꽂혀서 철관음, 보이, 용정 등 다양한 종류의 차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종업원의 말이 차를 마신다는 범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말의 지향성이 ‘점’이라면 프레임은 ‘면’이다. 우리는 점 말고도 말이 주는 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말에게 올바른 방향의 프레임과 범주를 만들면 상대방이 올바른 방향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대로 우리가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면 상대방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르친다

    모든 사람은 내면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다.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는데 둘 중 어느 것을 일깨울지는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말로 인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적어도 주변의 작은 세계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들 것이냐, 나쁘게 만들 것이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클린턴과 힐러리가 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이들을 도와준 직원이 힐러리의 전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클린턴은 힐러리에게 ‘이 남자에게 시집을 갔으면 주유소 직원으로 살 뻔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힐러리는 정치인답게 ‘내가 그와 결혼했다면 오늘의 미국 대통령은 그였을 것’이라고 날카롭고 지혜롭게 답했다.


    이 얘기는 근거 없는 얘기긴 하지만,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원리를 담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남편이나 아내를 부러워하지 마라. 좋은 짝은 모두 정성껏 키워지고 길들여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오늘부터 주변 사람들을 더 이상 원망하고 비난하지 않길 바란다. 그들이 오늘날의 모습이 된 데에는 반드시 나의 책임이 있다. 그 사람이 더 좋아지길 바란다면 공부를 시작해라. 매일 하는 말 한마디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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