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로니시티
 
지은이 : 조셉 자보르스키(역:강혜정)
출판사 : 에이지21
출판일 : 2021년 05월




  • 이 책은 다가오는 미래에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개인의 여정을 담고 있으며,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21세기에 들어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개인과 조직의 리더십에 변화가 요구됨을 깨우쳐주고 용기를 준다. 원제인〈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는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개념에 기인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야말로 절묘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순간,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통제는커녕 예상조차 못한 일이 일어나 우리에게 확실한 길을 알려주는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 순간에 일어나는 제반 상황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격인 단어로 저자는 ‘싱크로니시티(공시성)’로 설명한다.


    싱크로니시티


    여행 준비

    워터게이트 사건

    1973년 당시 나는 서른아홉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전해 9월에 터졌다. 당시 나는 한참 잘나가는 변호사로 근사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워터게이트 사건 기사를 꼼꼼히 챙기기는 했지만 내 삶 전체로 보면 배경 소음 이상은 아니었다. 당시 내 관심은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다국적 법률회사를 세우고, 사업체를 경영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10월 말 닉슨 대통령이 수석보좌관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 장관이 아버지 레온 자보르스키에게 전화를 해서 특별검사직을 맡는 문제를 상의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아버지는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이후 몇 달 동안 특별검사직을 수행하면서 아버지는 워터게이트 음모의 경악스러운 면모를 알았고 그들에게 배운 대로 극비로 아들인 나와 공유했다. 그리고 이것이 나한테는 삶을 바꾼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녹음테이프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대충 훑어보았다. 대령이 말한 부분은 닉슨 대통령과 존 딘, 해리 홀드먼이 나눈 1973년 3월 21일의 대화로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내용이다. 아버지가 말한 대로 거기에는 닉슨 대통령이 홀드먼에게 법정 선서를 하고 위증죄에 걸리지 않게 거짓말하는 법을 코치해주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 문서에 나온 내용은 판사가 의심의 여지없이 대통령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이후 몇 주 그리고 몇 달이 흐르는 동안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이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통령이 TV에 나와 국민에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보는 동안 내가 느낀 경멸감은 무어라 형언하기 힘들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나 같은 평범한 시민이 해야 하는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명을 발표한 이틀 뒤인 1974년 8월 7일 닉슨 대통령이 사퇴했다. 남은 것은 마무리 활동이었고 10월 말에 대령은 특별검사직을 사임하고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겨우 한 해 동안의 일이었지만 엄청난 1년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헌법이 여전히 기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국가의 비극을 직접 겪은 대다수 미국인에게 그랬듯이 개인적으로 나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나는 스스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는 파렴치한 리더들과 사실상 이런 종류의 행동을 자초하는 나태하고 자기중심적인 시민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 깊은 우려와 함께 개인적으로 진정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나를 괴롭힌 것은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리라는 스스로의 무력감이었다.


    성공한 인생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질 때까지 나는 13년 동안 변호사로 일했고 누가 봐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여자 친구 프랜과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보통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직업 변호사로 일하는 이외에 나는 몇몇 동문을 도와 함께 생명보험사를 설립했다. 한편으로 몇몇 친구와 알래스카에 최초의 정유공장을 세우는 일에도 참여했다. 회사가 설립되자마자 상장기업이 회사를 매입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위험 부담은 컸지만 상당히 남는 장사였다.


    대령은 미국 최고의 법정변호사가 모이는 엘리트 클럽인 미국법정 변호사협회 회원이었고 나중에는 회장직을 맡았다. 대령과 어머니는 1년에 두 번 협회 모임에 나갔고, 1960년대 후반에는 가끔 나와 프랜을 초대해서 데려가기도 했다.


    어느 날 협회 모임에서 월가에서 제일 명망 있는 법률회사로 꼽히는 셔먼앤스털링(Shearmon&Sterling)의 사장 로버트 클레어를 소개받았다. 그는 휴스턴에 있는 일류 법률회사에서 일을 맡아볼 의향이 있냐고 문의한 중요한 소송에 대해 말했다. 나는 그를 똑바로 보면서 우리 회사에서 맡아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해주겠다고 했다. 클레어가 해당 사건을 우리에게 넘겼고 우리는 크게 승소했다.


    법정변호사 생활은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갔고 흥미진진했다. 프랜과 나는 바쁜 생활을 그럭저럭 잘 헤쳐 나가는 것 같았다. 아들 조이가 태어나던 무렵 나는 휴스턴 연방법원에서 소송 중이었다. 진통이 시작되었지만 프랜은 나에게 그날 곁에 있어줄 수 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오히려 프랜은 이렇게 말했다. “가서 일해요. 아기가 나올 것 같으면 사무실에 알릴 테니 그때 병원으로 오면 돼요.”


    1970년에는 법률회사 일이 늘어나면서 동료와 함께 장시간 휴스턴을 떠나 있는 일이 늘었다. 정기적으로 동해안, 서해안, 해외로 나가서 진행하는 소송들이 있었다. 동문들과 준비한 사업이어서 이사회에 참석하면 텍사스 대학 동아리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마냥 즐거웠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파편화된 존재 양식을 그렇게 오래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도 없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도 결여된 그런 생활을 말이다. 당시는 그것이 멋진 삶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삶을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보기에는 환상적이지만 진짜가 아닌 허구에 너무나 편협하고 빤해서 어떤 실질적인 의미도 찾기 힘든 그런 삶 말이다. 


    여행이 시작되다

    1975년 마흔 살에 나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추수감사절 주말에 대령과 몇몇 동료와 목장에서 사냥을 한 다음 일요일 저녁에 차를 몰고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말했다. “조, 우리 이혼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당시 프랜은 휴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수업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밤부터 당신이 집을 나가줬으면 해요.”


    가방을 몇 개 챙겨서 차를 몰고 고속도로 변에 있는 하워드 존슨 모텔로 갔다. 너무 창피했고 아무한테도 내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 같던 삶 전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어찌나 순식간에 박살이 났는지 누군가 망치를 들고 작정하고 후려친 것만 같았다.


    누나 조니가 내가 빠진 고통을 간파했다. 어느 날 일이 끝나고 집에 와보니 조니에게서 작은 소포가 와 있었다. 휴 프레이더(Hugh Prather)가 쓴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Notes to Myself)>이라는 제목의 책과 함께 어쩌면 이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누나의 메모가 들어 있었다. 작가는 ‘자신이 누구이며, 여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해답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낱장 메모지에 같은 형식으로 글을 써서 매일 서류철에 보관하기 시작했고, 몇 달 전에 쓴 글을 찾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변해가는 모습, 생활에서 특정 패턴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성찰의 과정, 나를 압도한 감정을 종이 위에 자연스럽게 펼쳐놓는 과정 자체가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삶에서 무엇을 바라는지 성찰하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는 것 이외에 책을 읽고 처음으로 철학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를 깊이 사색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회 공헌도 하기를 바랐지만 두려움과 더욱 많은 물질에 대한 욕구 때문에 박차고 나가지 못하고 현실에 묶여 있었다. 이는 ‘존재 방식’이 아닌 ‘소유’ 욕구에 발이 묶여 있었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까지 진정한 삶을 살지도, 고차원적인 삶의 목표를 깊이 생각하지도, 그런 목표를 향해 과감히 떨쳐 일어나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무너지는 경계

    카이로 방문은 어느 날 새벽 5시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갑작스럽게 끝났다. 수화기를 드니 누나 조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카 데이비드가 몇 시간 전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 귀가 의심스러웠고 7년 전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조니가 전화를 해서 그녀의 아들 마이크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조니에게 클레어와 통화를 해도 될지 물었다.


    조니가 클레어를 바꿔주었지만 거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흐느끼는 사이사이 ‘어쩌면 좋냐’는 한 마디만 반복했다. 클레어가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자식을 잃은 클레어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복받치는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당시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나와 클레어가 완전히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슬픔으로 망연자실한 상태여서 통화 내용이나 상황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는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카이로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에 놀라운 희열과 세계와의 일체감을, 이어서 주체하기 힘든 고통 속에 클레어와의 일체감을 경험했다. 분명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런 역학과 세상과의 특별한 소통을 이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튼 나는 이것이 내가 시작한 여행의 일부임을 인지했다.



    문턱을 넘다

    헌신의 신비

    데이비드의 장례식 이후 버나데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고 뉴욕으로 갔다. 이런 시기에 나에게 필요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겪은 내면의 투쟁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해줄 그런 사람.


    1976년 칸에서 일요일 아침 작별을 고한 이후로 버나데트를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유럽 여행을 마치고 휴스턴으로 돌아오니 작은 소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낸 주소가 파리의 작은 호텔로 되어 있었다. 예쁜 종이로 표지를 새로 씌우고 정성스럽게 포장한 책이 들어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표지 안쪽에 버나데트의 메모가 들어 있고 페이지 끝부분을 접어 표시를 해놓은 곳이 있었다. 펼쳐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오로지 하나의 진정한 사명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도달하는 길을 찾는 것… 인간의 사명은 임의의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온전하고도 결연하게 거기에 몰두하며 운명대로 사는 것이었다. 이외의 모든 것은 사이비 존재, 회피의 시도, 대중의 이상으로의 퇴보, 순응, 자신의 내면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었다.


    뉴욕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몇 주 동안 생각한 끝에 나는 마침내 평생 가장 힘든 결정을 내렸다. 법률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세월 삶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동업자와 동료, 친구와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이들을 떠나는 것은 가족을 떠나는 것과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최소한 2년 정도는 익숙하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여행을 같이할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두려움과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회의적인 생각을 붙잡고 씨름했다. 미지의 세계로의 불안과 걱정, 기존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두려움, 위험을 감수할 용기의 결여 등으로 나는 계속해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부인했다. 본능적으로 운명을 좇는다면 막중한 책임이 따르리란 사실을 간파했고 그런 책임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겁쟁이였다.


    결정의 순간 사실상 나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의 여지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하는 상황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회사를 나오자마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회사를 나올 때까지도 나는 향후 어떻게 진행할지 구체적인 생각이나 계획이 없었다. 리더십 커리큘럼이나 리더십 육성 등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실질적인 진행을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전문가 네트워크도 없었다. 당시 나는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정말 신기하게도 거대한 프로젝트의 부담감과 우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나는 나를 훨씬 넘어서는 거대한 무언가에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고, 이를 통해 예전에는 결코 얻지 못한 특별한 삶의 의미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순간에 꿈을 이루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나한테는 일단 목표를 정한 다음에는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외골수의 면모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부분이 나도 모르게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짜증스럽게 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당시 나는 높은 집중력에 분명한 헌신성과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


    데이비드 봄과의 만남

    1980년 7월 27일 일요일이었다. 나는 1주일 전에 법률회사를 그만두었고, 내가 설립하기로 마음먹은 새로운 기구의 철학적 토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밤낮으로 글을 쓰고 생각하며 씨름하고 있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새로운 리더십 커리큘럼을 어떻게 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날 나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하이드 파크로 가서 오랫동안 느긋하게 천천히 조깅을 했다. 돌아와서 <선테이 타임즈>지를 들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샤워를 한 다음 신문을 휙휙 넘겨보는데 14쪽 교육 면에 ‘우주의 협력 방법’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 옆에는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 이론물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봄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는데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봄과 그의 대수들의 대수학: 종교는 전체성이다.” 그 순간 나는 기사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 커리큘럼의 근본 토대를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급히 전화기를 찾았다. 여기저기에 몇 번의 전화를 한 뒤에 봄의 자택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가 수화기 너머에 있었다.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한 다음 그를 꼭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오후를 나와 함께 보내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 잠시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봄과의 만남은 모험이 펼쳐지는 동안 내가 경험하게 될 수많은 “예측 가능한 기적‘ 중에 하나였다. 그날 나는 봄의 사무실에 있었고, 4시간이 넘도록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나는 녹음기로 대화를 녹음했다. 우리는 물리학과 철학 원리의 결합과 이것이 나의 꿈인 리더십 포럼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이야기했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봄이 몇 마디 충고를 해줬다. “당신은 창조의 흐름에 발을 담그기 직전입니다. 밀고 나가세요.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방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확실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봄의 사무실을 나온 뒤에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내가 실로 위대한 사람과 함께 있었으며,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아마도 평생이 걸릴 것임을 알았다. 봄과의 만남은 내게 있어 진짜 인생을 바꾼 경험이었다.


    공시성: 1세제곱센티미터의 기회

    봄을 만나고 몇 주 뒤 나는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입학을 고려하고 있는 몇몇 대학을 둘러보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그때 우리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인파로 붐비는 통로를 급히 내달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사람들을 피해가면서 조이와 나란히 달려가는데 맞은편에서 무척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우리 쪽으로 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여자가 스쳐 지나가는 동안 나는 여자를 따라 몸을 돌리면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저 여자를 잡아야 되는데. 어디선가 본 건 같은데.”


    그녀가 나를 지나쳐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그녀 쪽을 돌아보면서 그냥 거기에 서 있었다. 한참 앞으로 내달린 다음에야 내가 없다는 것을 알고 급히 돌아온 조이가 팔을 잡아당겼다. “조이, 사내대장부로서 할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다. 넌 어서 가서 비행기를 타라. 나는 다음 비행기를 타마. 어떻게든 널 찾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로서는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잽싸게 뛰어들어가서 게이트 직원에게 표를 내밀고 있는 그녀를 뒤로 끌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할 말이 있어서요. 이쪽으로 좀 와주세요.” “결혼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오, 당신은요?” “제가 연락할 수 있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명함을 꺼내 집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로부터 대략 2주 정도 뒤 우리는 댈러스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 했다. 그날 오후 내내 같이 있으면서 우리는 희망과 꿈을 이야기했다. 메이비스는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 각지에서 선교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이야기했다. 나는 ALF의 꿈을 이야기했다. 함께하면 할수록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줄어들면서 점점 강한 황홀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뿐 아니라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 다음 날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메이비스는 내가 최근에 배운 근본 진리를 깨닫게 도와주었다. 나는 메이비스가 내과의사가 되어 바라던 꿈을 이룰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했다. 메이비스가 휴스턴으로 이사를 왔고 1여년 뒤에 우리는 결혼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꿈을 좇기로 마음먹은 직후 내 삶에 봄과 메이비스가 등장한 방식에도 많은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이런 우연의 일치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특히 봄이 가르쳐 준 관점에서도 놀랄 일도 아니었다. “뭐가 놀라워? 본질적으로 하나로 연결된 세상에서 상황이 돌아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이잖아.”


    당신은 창조적인 흐름에 발을 담그기 직전입니다. 밀고 나가세요.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방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확실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최고의 충고였다. 커다란 전체의 일부라는 믿음 안에서 행동하고, 한편으로 융통성과 인내심을 갖고 항상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온갖 종류의 우연한 사건과 만남, 물질적인 지원을 얻을 수 있고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영웅의 여정

    대화: 공동 사고의 힘

    런던에서 만났을 당시 봄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인간이 배우고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멘탈 모델을 나에게 이야기했었다. 봄은 인간에게 집단 지성(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개체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한다고 본다-옮긴이)을 발휘할 선천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간은 함께 배우고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런 공동 사고(collaborative thought)가 공동 행동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사고와 인식이 이루어지는 살아 움직이는 세상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활동하고 있다. 세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므로 미래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인간에게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상당한 암묵적 지식이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말로 표현되는 것 이상을 알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창조하려면 이런 드러나지 않는 지식에 접근해야 한다.


    봄은 대화를 초전도 상태에 비유했다. “초전도 상태에서 아주 낮은 온도로 냉각된 전자들은 개개의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통일성을 가진 전체로 움직인다. 전자들은 저항을 발생시키지 않고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장애물 주위를 흘러간다. 하지만 고온에서는 전자들이 분리된 독립체처럼 움직인다. 뿔뿔이 흩어져서 통일성 없는 흐름을 보이며 힘도 상실한다.” 대화에서 목표는 개체들이 새로운 차원으로 관계를 맺게 하는 특수한 환경, 즉 개체들이 초전도 상태에서 전자들처럼 높은 에너지와 지적 능력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대화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전자나 양자 등이 파동과 입자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대화도 관찰자의 태도에 따라 속성이 변한다는 것이다. 대화가 존재하면 자연히 느끼고 자각하게 된다. 대화를 거짓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하면 그런 행동 자체가 대화를 변화시켜 대화는 결국 붕괴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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