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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 시크릿
저   자 : 류창장(역:정은지)
출판사 : 리드리드출판
출판일 : 2021년 06월

  • 행복 시크릿


    긍정의 기쁨을 발견하다

    염려는 걱정을 낳고 만족은 행복을 탄생시킨다

    얻지 못할 행복만을 바라보지 말자. 가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해보라.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자연의 이치에 감동한다. 이 느낌을 전해 받는 순간 행복이 스민다. 당신 주변에도 감상할 만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다.


    삶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몸은 언젠가 쇠약해질 것이고 아름다움도 시든다.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는 날도 있겠지만 장벽에 가로막히거나 장애물에 걸리는 날도 많다. 거절당할 수도 있고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죽음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비극이지만 미리 손쓸 수 없이 닥친다. 위험 앞에서 실망하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닥치는 순간에도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남아 있는 것들을 돌아본다면, 불행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다. 미약하지만 나름의 향기를 발하는 행복들이 은은하게 당신을 감싸고 위안을 전할 것이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행복을 사랑하라. 마음이 충만해지고 여유가 생길 것이다. 허영심과 침착하지 못한 마음은 행복을 가리는 암막이다. 암막을 걷어내는 순간 기쁨이 보이고 살아 움직이는 행복의 조각들이 보인다. 행복한 삶이 당신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빛을 내리쬐며 찬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카메라로 찍듯이 행복의 순간순간을 마음에 새기자. 어려울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을 수 있다.


    삶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고통을 다스리는 방법은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허황된 주문이 아니다. 자포자기도 아니고 임시방편의 모면도 아니다. 삶에 대한 체념은 더더욱 아니다. 이 문장을 되뇌이면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생성한다. 통찰이 빚어낸 가치 있는 인생 바로 보기이다.


    삶에 불만이 엄습할 때 내면에서는 행복할 이유와 단서를 찾아야 한다. 작고 소소한 것이라도 많이 찾아보자. 불만과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행복할 근거가 된다. 그 행복 하나가 고난을 이길 힘을 준다. 고통을 넘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든다. 미래를 걱정하며 꽃이 질까 염려하지 말고 눈앞에 핀 꽃을 보고 행복하라.


    자신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라

    누구나 만족스런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몇 퍼센트의 사람이 현재 만족스럽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거의 매일 듣는 소리는 일이 힘들다, 월급이 적다, 애인이 잘해주지 않는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 받는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불평들이다. 그런 어떤 이들이 자기 삶에 만족할까?


    돈 걱정 없는 백만장자, 인기 많은 스타, 인지도 높은 정치인, 저명 아티스트 등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상이자 선망하는 그들을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의 부와 명예, 인기는 모래성 같은 것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만족보다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들은 해맑게 웃고 뛰노는 아이들이나 열매 맺은 나무를 보는 농부가 진짜 만족하는 삶을 살 거라고 추측했다. 이런 걸 보면 만족스런 삶은 타인의 눈으로 볼 때만 가능해지는 것 같다.


    단순한 일에 다양한 이치를 담아내야 한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요소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자신의 눈에는 문제만 보이게 된다. 잘 다스리고 문제를 소멸시켜야 하지만 그 문제가 가져오는 자괴감, 자신감 상실, 우울, 좌절이 마음을 점령해 이성을 잃게 한다. 문제를 점점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직 괜찮다는 위안이 만족스런 삶의 전제 조건이다. 그 괜찮은 부분에서 긍정의 심리가 싹튼다. 어떻게 슬픔을 이겨낼지 알고, 슬픔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돕는다. 진정한 행복을 얻고 싶다면 반드시 슬픔과 시험, 우여곡절에도 살아 있다는 진정한 기쁨을 느껴야 한다,


    조지 버나드 쇼는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불행하다”라고 풍자했다. 힘겹게 만족스런 삶을 좇고 있다면 먼저 자기 위안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신의 상황이 더 열악한 경우보다 낫다고 믿어라. 세상이 아름답고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만족스런 삶의 출발선이다.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가? 자신이 가진 귀중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기뻐할 수 있는가? 보기엔 간단해보이지만 실제로 이행하기란 매우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어렵고 힘든 일을 자처해서 하며 기쁨을 찾는 이도 있다. 선행을 실천하며 봉사를 삶의 지표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당신에게 이런 삶을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일은 운명이나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기쁨이 된다. 다만 자신에게만큼은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좋은 것도 선뜻 선물하고, 작은 성취에도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선의를 베풀어라. 행복의 자족은 삶의 만족을 선물로 준다.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에 깃든 행복을 흡수하라

    사람은 마음에 추억을 담고 미래의 희망도 새긴다. 추억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고 미래는 기대에 부풀게 한다. 하지만 추억과 미래 모두 현재를 기준으로 생성된다. 그러므로 현재라는 시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오늘은 식물의 뿌리와 같다. 뿌리는 영양분을 흡수해 몸통과 가지, 잎과 열매를 자라게 한다.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 식물도 아니고 한해살이 식물도 아니다. 태어나면서 싹을 틔우고 일평생 자라므로 일평생을 키워야 하는 식물이다. 당신이 살아 있는 지금 이전에도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미래가 튼튼한지 열매가 탐스러울지는 주위로부터 어떤 영양분을 받으며 내적으로 얼마나 승화시키는지에 달려 있다. 우리가 현재 삶에서 느끼는 연애, 상처, 고통, 만족, 웃음은 모두 진실된 감정이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추억은 점점 더 많이 쌓인다. ‘추억’이라고 명명하지만 이 추억들은 현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되뇌이고 싶은 감정, 소중한 순간 등 현재가 일궈내는 일 중에 자신이 거르고 선택해 기억에 남긴 것들이다. 일반적으로 삶은 사랑, 애정, 우정 등 관계가 결합된 슬픔과 기쁨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 행복했는지 아닌지는 오늘의 삶과 비교를 통해 평가된다. 미래의 꿈도 오늘을 기반에 두고 있다. 만약 10년, 20년 뒤의 삶을 돌아볼 때도 여전히 그때의 지금을 토대로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추억은 달콤함과 행복, 성취감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잘 견뎠어”, “그때는 열정이 넘쳤지”, “아, 얼마나 진한 사랑이었는지”라는 말처럼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좋은 기억을 되새긴다. 회상하면서 감회에 젖거나 갑자기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과 미래에 펼쳐질 환희에서 벗어나자. 이것들은 현재 일어나는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거나 꿈꾸는 미래에 한 발 다가서려면 현재 눈앞에 펼쳐진 다채로운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마음껏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선망 받던 화려한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의 고통과 실패를 안타까워한다. 현재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환상에 빠져버린다. 어느 땐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미래를 끝없이 걱정하며 우울해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당신에게는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다. 현재를 붙잡으라는 말은 만회할 수 없는 과거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저 멀리 있는 미래를 두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꿈을 이루기 원하고 성공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지금의 시간을 잘 살아내야 한다.


    완벽주의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라

    한 은행 투자가가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할 때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기업에 입사했다. 몇 년 동안 일하다가 친구들과 함께 자기 회사를 차렸다. 이 투자자의 특징은 일을 즐기며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는 엄청난 설득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는 매일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대했으므로 오랜 시간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완벽한 인생을 추구하는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반면, 영국의 철학자 새뮤얼은 대단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글을 쓰면서 완벽주의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글을 쓰는 게 매우 중요한 일임을 잘 알아서, 자신이 좋은 글을 쓰지 못할까 봐 글을 쓸 때마다 근심에 빠졌다. 결국 그는 좋은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며 글에 대한 비판과 반론이 쏟아졌다. 새뮤얼은 ‘대작은 내 최후의 날에 쓰겠다. 지금 쓰는 글은 모두 초고일 뿐이다’라며 글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그를 자유롭게 했다. 이제 그는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후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으며 화려한 문체의 글로 찬사를 받았다. 새뮤얼은 글쓰기 전에 그저 ‘초고’를 쓰는 것이라 여겼다. 초고는 수정을 거듭해야 글이 완성되는 과정의 시작이어서 자기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써나갈 수 있었다. 생각을 바꿈으로써 글을 쓰는 압박감에서 해방된 것이다.


    ‘좋아. 이 일을 완벽해지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자!’라는 생각은 행복의 ‘독보적인 비결’이다. 당신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과정을 누리는 것을 잊지 마라. 이 과정을 걸어가는 것은 실패했거나 넘어졌던 기억을 지우고 즐기는 일이다.


    과거 일들에 발목 잡혀 불안에 떨거나 아직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전전긍긍한다면 행복의 지름길을 놓치고 오히려 돌아가게 된다. ‘결과에 대한 칭찬’에 집착하다 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귀한지 칭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실제로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모든 일의 도전과 노력은 다 좋은 시도이다.


    당신 계획의 목표의 결과는 지금 하는 일이 빚어낸 성과이다. 멀리서 반짝이는 결과에 현혹돼 오늘의 즐거움, 지금의 보람, 현재의 기쁨을 무시한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더라도 과정을 즐기면서 행복과 기쁨을 누린 적이 없기에 성과라는 빚의 찬란함을 보지 못한다. 오히려 고작 이 정도를 위해 그토록 힘든 과정을 겪어내고 감당했는지 자괴감이 들 뿐이다. 그간의 축적된 불안과 불만, 고통이 밀고 올라와 결과의 영광을 가리고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성과를 이룬 보람도 커진다.



    행복의 의미를 찾아서

    곁에 있는 행복을 보라

    “행복하십니까?”라는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행복한 것 같지만 돈이 더 많아야 할 것 같고 지위도 더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좋은 옷과 넓은 집을 소유하지 못했고 꿈을 이루지 못했으며 사랑도 식었고 자신감도 잃었다. 현대인의 대부분이 그렇게 느낀다. 실제로 무작위 100명에게 “지금 행복한가?”라고 물었더니 90%는 불행하다고 여겼고, 고작 10%만이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행복하다고 응답한 10%도 대부분 65세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이에 반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물으면 대답은 하나로 모아진다. ‘행복’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행복하다고 말하는 데 주저할까?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지만, 오히려 행복을 잃어버리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행복을 주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목표만 보고 달리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목표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할 뿐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행복의 찰나를 지나치면 그 감흥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기억하고 되새기겠노라 다짐하더라도 그 감흥을 되살리기는 어렵다.


    흔들의자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이 되었을 때에야 같이 어깨를 마주할 사람이 있다는 것,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깨닫는다. 이렇듯 행복은 늘 곁에 있지만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는 척해주어야 비로소 자기 존재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프랑스의 과학자 베르나르 퐁트넬은 “행복의 가장 큰 적은 너무 많은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기대를 부르고 충분히 행복함에도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채워지지 않았다고 여긴다.


    살아 있음이 행복이고, 일할 수 있음이 행복이다. 바람 부니 옷 잘 챙겨 입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행복하고, 잠을 푹 잘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같이 갈 친구가 있는 것도 행복이며,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이 있는 것도 행복이다. 소중한 감정과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간직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이 모든 행복은 오직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매순간 행복의 참맛을 음미해야 한다. 행복은 기준을 제시할 수 없고 행복의 가치는 측정이 불가하다. 지금 피식 웃는 웃음에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 머문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마라. 당신에게 함유된 행복의 함량은 지금도 충분하다.



    행복 더하기 행복

    일찍 깨달은 만큼 일찍 누리는 행복

    젊을 때는 인생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중년 즈음엔 이해하고 싶으니 이해가 어렵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뒤다. 그러므로 이 이치를 빨리 깨달으면 굽은 길을 안 가고 좌절하지 않게 된다. 삶의 길을 더 평온하고 순조롭게 걸을 수 있고 행복을 느끼는 감흥도 더 커진다.


    행복은 사람의 마음이 편안한 환경과 생활을 뜻한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었을 때 느껴지는 충만한 기쁨이다. 이 행복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해와 경험이 있기에 행복의 기준이나 척도도 모두 다르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아름다운 부분들을 경험한 만큼 더 풍성하게 느끼고 행복해할 줄 안다.


    행복은 내면 깊은 곳의 깨달음이어서 일부러 솟아오르게 하지 않는 이상 그 기운을 파악하기 어렵다. 행복하다고 느끼기, 다가온 행복 깨닫기, 일상에서 행복 발견하기는 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길어도 인생은 100년을 넘지 않는다. 그 안에 일, 도전, 노력, 열정, 성공으로 가득 채우더라도 행복이 빠지면 허탈해진다. 행복을 꽉 붙잡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잘 붙잡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1823년 35세의 시인 바이런은 삶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삶은 죽은 것처럼 무료하게 변해버렸다. 그해 여름 군에 입대한 그는 그리스로 진격하게 되었다. 그는 행군 중에 자신의 고통을 괴테에게 편지로 호소했다.


    편지를 받을 당시의 괴테는 이미 75세로 고령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괴테는 젊은 여성에게 구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열정 또한 젊은 남자 못지않게 왕성했다. 반면 젊고 유망한 바이런은 삶의 목표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결혼할 마음도 없고, 연애도 하지 않고, 인생을 전쟁에 던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 괴테의 답신에 활력 넘치는 괴테의 모습을 발견한 바이런은, 자신이 젊은 노인이고 괴테는 나이 든 젊은이라고 말했다. 1년 뒤 바이런은 전쟁 중에 병사하였다. 죽기 전에 그는 의사에게 말했다. “나는 내 삶에 질렸어요.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피곤한 삶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에 왔어요. 지금 나를 구하려고 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가주세요!”


    반면 괴테는 구혼에 성공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시는 모두 화려했으며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바이런과 괴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누구는 젊은 나이에도 비관적인 삶을 사는데 누구는 나이에 관계없이 행복한 삶을 살까? 단순히 성격 차이일까? 아니면 환경이나 상황 차이일까? 그렇지 않다. 긍정적으로 행복의 가능성을 찾고 볼 줄 아는 마음의 차이이다. 일, 성공, 꿈 등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행복이 없으면 불행하다. 바이런 역시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것이 행복임을 깨닫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았더라면 삶이 달라졌을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교차하며 삶의 희열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자기 삶에서 기쁨을 우울로 덮어버린 바이런은 마음속 행복을 솟아오르게 하지 않으니 인생도 그에게 행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결국 우울과 원망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음미하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이 깨닫는 감정중 하나이며 확실하게 이해할수록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은 서로 통하는 것이어서 이해하는 사람끼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기쁨과 만족을 키울 수 있다. 행복의 층위는 각양각색이고 넓고 고르게 퍼져 있다. 하지만 행복이 스스로 달려와 당신 품에 안기지는 않는다. 매사에 불평불만을 쏟아놓는 사람에게서는 도망친다.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못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관용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괴테는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소유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고 기억하는 법을 배우면 삶이 무료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평범하고 재미없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행복의 범위를 넓힐수록 공허함과 외로움은 찾아들지 못한다. 당신의 가슴에는 이전에 경험한 행복뿐만 아니라 아직 누려본 적 없는,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행복까지 보관되어 있다. 그것을 솟구쳐 오르게 하자.


    행복을 가리는 부러움의 커튼을 걷어라

    행복은 복잡하지 않다. 기분 좋음을 느끼는 방법도 매우 단순하다. 여유로운 여가 시간, 충분한 에너지, 자유로운 공간, 안정된 마음, 단순한 생활 등 정서적으로 충족되면 가능하다. 물욕에 따라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여긴다. 그래서 찬란한 등불이 비추는 곳에 집중하고 은은한 불빛이 있는 곳을 경계한다. 그러나 찬란한 불빛이 있는 곳은 돈이 있어야 가능한 풍족한 생활이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훨씬 좋은 것들, 동경하고 갈망하는 것들이 거기에 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슬퍼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자포자기 하게 된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것들은 물거품 같은 것이어서, 그것 없이도 살아냈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찍 만족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위로를 받았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았다면 엄청난 행복을 누렸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산책길에 만나는 노부부의 다정함이나 가족의 정겨움은 물질의 풍요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린 자녀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아빠, 콧노래를 부르며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 할머니의 장바구니를 들어다주는 학생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행복에는 해답도 없고 정답도 없다. 행복의 의미는 무한하다. 행복을 마음으로 발견한다면 따뜻한 안부 문자, 사랑의 훈계,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 소소한 일상생활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미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 급하고 화려하며 복잡하다. 세상은 당신을 현혹하며 손짓한다. 시선을 잡아끄는 그 유혹에 넘어간다면 아주 단순하고 행복한 삶의 조각들을 보지 못한다. 단순한 삶을 살고, 행복한 삶을 가리는 부러움의 틀을 깨버리자. 행복이란 함께 먹는 밥, 시간의 공유, 한 잔의 차, 함께 나누는 안부 인사같이 삶의 사소한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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