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싱
 
지은이 : 임춘성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20년 08월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거리 두기’가 인간관계의 모든 법칙들을 바꿔놓았다. 달라진 시대에 가족, 친구, 직장동료, 선후배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소통해야 할까? 변화한 ‘관계의 온도’에 휘둘리지 않고 헤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균형과 전진을 동시에 추구하며 중심 잡고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버림받지도, 치우치지도, 손해 보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수 있는 8가지 인간관계 전략을 알려준다. 문학, 예술, 역사, 철학을 넘나드는 지적인 비유와 사례들로 독자들의 인문적 소양까지 높여준 책으로 호평받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디스턴싱


    휘둘리지 않으려면

    누가 나를 휘두르는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소통하길 원하는 상대, 그와 나 사이에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를 휘두를 수 있습니다. 원하는 마음이 더 커질수록 휘둘러질 가능성은 더 높아져 갑니다.


    자,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내가 애정을 갈구합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애정의 실체로서 나와 애정 사이에 그가 슬며시 나타납니다. 그는 내가 추구하는 사랑이라는 가치 앞에 현재하는 사이존재입니다. 친구는 우정이라는 가치, 부모는 자신의 뿌리를 향한 효심, 스승은 진리를 향한 존경심을 표상하는 존재들입니다. 애정과 우정, 효심과 존경심을 갈망할수록 애인, 친구, 부모, 스승의 위상은 더욱 커져갑니다.


    요즘 누가 당신을 휘두르나요? 기분 잡치는 한마디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들의 질타에 의기소침해지고, 그들의 지지에 인생의 목표를 바꾸기도 하나요? 그들이 나를 평가하게 하고 그 평가에 의존하며 살고 있나요? 혹시 나의 하루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 좌지우지되나요?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당신은 이미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서 비록 성직자라 하더라도 그중에는 훌륭하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물며 세속의 범인인 우리의 애인, 친구, 부모, 스승이 늘 훌륭하기만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원합니다. 자기 뜻대로 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살라고 지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처방

    당신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언가의 길목에 파리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는 적은 수의 병사로 대군을 물리칠 수 있는 협곡이 길목입니다. 상습정체 구간도 노점상이 주목하는 길목입니다. 체계가 잡혀진 조직의 의사결정 라인도 이런저런 길목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통해야 하는 누군가는, 모두 길목의 사이존재입니다.


    바라보는 대상이 소중할수록 그와 소통할 수 있는, 그에게 도달할 수 있는 여러 채널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바라보는 대상이 사람이 아닌 어떤 가치라면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치와 연결되는 길, 즉 매개자를 여러 개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우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런 사람을 종종 봅니다. 친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지 않은 친구와 속 깊은 우정을 나눕니다. 여러 친구 다 필요 없고 정말 손꼽을 만한 몇 명, 극단적으로는 딱 한 명에게만 모든 마음을 줍니다. 너무 많은 친구와 너무 얕은 우정을 나누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두 명에게만 자신이 가진 소중한 우정의 가치를 '올인' 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우정은 인간에게 없으면 안 될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우정에 도달하게 해주는 친구는 여럿이어야 합니다. 인생을 함께 걷는 친구를 꾸준히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한두 명의 친구만으로 길고도 험한 인생의 여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 당신을 위한 현실적인 충고입니다. 지극히 소수의 사람에게 당신의 소중한 가치를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당신은 휘둘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휘두르려는 저의나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의지하는 당신의 마음이 스스로를 옭아매어 고귀한 친구를 나를 휘두르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둥이가 쿨한 이유는, 항상 다른 대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당신이 아니라도 또 누군가 있고, 그러니 절대적으로 아쉽지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는 ‘쿨함’으로 완성됩니다. 아이러니하게 사람들은 그런 쿨한 모습에 이끌립니다. 그래서 애정전선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지천입니다.


    지금까지 몇 가지 경우를 구분하여 휘둘리지 않는 처세를 나열해 보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너무 하나에 올인, 몰빵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투자의 철칙에도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가 있잖아요. 인간관계를 재테크

    에 비유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지만, 핵심은 같으니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내 재산이 소중할수록, 나 자신과 내 인생이 소중할수록, 적절히 안배해야 합니다. 지나친 집중과 몰두는 휘둘리는 첩경입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면

    모든 것은 기대치의 문제

    손해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언제 손해 보았다고 느끼나요? 우리가 이토록 싫어하는 손해 보는 느낌은, 준 것만큼 받지 못하면 강렬하게 밀려옵니다. 부모·자식 사이와는 달리 남녀 간의 애정에서 ‘무조건’은 없습니다. 분명히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하고, 받으면 주어야 합니다. 정서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주고받는 것에 불균형이 생기면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깁니다.


    손해 보는 또 다른 경우는, 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접을 못 받았을 때입니다. 같은 환경, 같은 사람인데 다른 조건, 다른 처우라면 억울합니다. 손해 보았으니까요. 미국 유학 시절, 백인 친구를 따라 무단 횡단을 했다가 저만 붙잡고 늘어지는 백인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변해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한 적이 있습니다. 억울하니까 갑자기 영어가 무지하게 유창해지더라고요. 항상 집안 대소사를 묵묵히 챙기는 맏며느리는, 어쩌다 한 번 생색내는 막내며느리가 이쁨받으면 눈물샘이 촉촉이 젖어 듭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모든 것은 기대치의 문제입니다. 상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주위와 이모저모 비교해볼 때, 또는 자신과의 약속이 나 자신이 정한 목표에 비교해서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두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준 만큼, 기대한 만큼 받지 못하거나, 남들만큼, 기대만큼 대우받지 못하면 손해 본 것입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흡족하지 않은 경우에도, 설사 그것이 남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문제라 해도 손해 본 것이니 속상합니다.


    그렇다면 기대치를 무조건 낮게 잡아야 할까요? 실망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그게 정답입니다. 그런데 관계라는 것, 관계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주고받기를 기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관계라고 볼 수 없겠죠.


    인생도 그렇지만,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대부분 기대치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은 곧 사람들입니다. 기대치를 적당히 설정하고 적절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의 문제이니 세상의 문제죠. 내가 나와 세상에 대해 끌어안고 있는 기대치 문제는, 남들도 똑같이,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복잡하게 꼬여 있고 풀기 어렵습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면 정해야 할 사이존재

    서로의 상이한 생각과 기대치를 조정해주는 가장 흔한 것은 바로 '상식'입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인식과 지식이 바로 그것이죠. 상식 이 있는 사람, 상식이 통하는 사람과는 상식으로서 대화하고 상식을 준거 삼아 의견의 차이를 좁힐 수 있습니다.


    상식과 유사한 맥락이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표준’입니다. 표준은 사람과 사물에 관하여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정도입니다. 약간의 수치적인 개념이 있어 구체적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표준을 넘으면 많은 것이고, 표준에 모자라면 적은 것이죠. 표준은 평균적이니 대다수의 속성입니다. 표준으로 기대치를 삼으면 어마하게 이득 보거나 또는 엄청나게 손해 보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 연봉에 이만큼의 재산을 가졌다면 이 정도의 세금을 내야 하고, 아무리 바쁜 가장이라도 요새 학부모라면 자녀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내어야 합니다. 평균적이니 평범하고, 평범하니 표준입니다. 애인이라면 맛집, 영화관도 같이 다니고 때가 되면 선물도 사주어야 합니다. 남들도 다 하는 표준이니 나도 군말 없이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표준을 논할 때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표준에는 평균적인 평범 외에 또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범’의 의미인데, 평범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표준 체형, 표준 키 하면 평범이지만, 글로벌 표준, 표준 강령 등으로 쓸 때는 모범의 뜻입니다. 표준을 언급하며 기대치와 이해관계를 조정할 때는 평범과 모범을 잘 구별하여 사용해야 하겠지요.


    교수 직함을 꽤나 오래 달고 있다 보니 제자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공대의 특성상 대학원생들과 가까이 지냅니다. 실험실, 통칭 랩lab이라는 공간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 학생들과 깊은 정을 나눕니다. 정을 나누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식 전에 저에게 배우자감을 인사시키러 데려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인생의 선배, 학교의 선생으로서 한마디 해주어야 하겠지요. 그때 제가 늘 해주는 말입니다.


    신혼여행 가서 꼭 할 일이 있습니다. 행복한 시간입니다. 서로에게 많이 관대한 시간이겠죠. 많이 관대한 만큼 많이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혼의 긴 여정은 충분히 길고, 결혼으로 인해 연결된 많은 사람들은 충분히 많습니다. 지금의 관대함과 기대가 늘 지속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서로에게 열린 마음일 때 정해놓아야 합니다. 긴 여정과 많은 사람을 고려해서 두 사람이 지켜야 할 여러 방면의 여러 가지 룰을 미리 정해놓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상식과 표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주 바라보는 서로의 다른 생각을 조정해주고 기대치를 보정해주려면 좀 더 세밀한 룰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혼부부처럼 소중한 사이라면 그 룰은 더욱 소중합니다. 2주에 한 번씩 친가에 가면 처가에도 그렇게 가고, 명절이나 생신 때 양쪽 부모님께 용돈은 얼마씩 드리고…. 그렇습니다. 나와 당신 사이를 원만하게 지속시켜주는 룰입니다. 그 룰을 기준으로 삼으면 살면서 뭔가 손해 본 듯한 속상한 마음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룰은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충분히 구체적으로 룰을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예비부부에게 훈훈한 덕담 대신 2주에 한 번, 용돈 얼마 등의 예를 든 것은, 구체적인 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살다 보면 룰이 바뀌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확실히 협의하고 충분히 구체적으로 확립해놓아야 합니다.


    잘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 따지고 보면 다 상대적입니다. 다른 수준, 상이한 기대치가 반영된 말들입니다. 너무 현실적으로 들린다고요? 네, 현실을 강조하다 보니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정복되지 않는 그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누구나 버리지 못하는 힘들고 어려운 응어리가 있습니다. 내재된 자괴감이나 수치심, 열등감, 가족 문제, 아니면 훨씬 크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분단국가의 부담감과 불안감까지. 이런 것들이 일상의 모든 인식과 감정에 영향을 끼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과 저것이 서로 의존하지 않게 하고, 이것에 의해 저것이 상처받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서는, 서로에게 정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를 최대한 분리하고 분절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조는 관도에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원소를 물리쳐 중원을 차지하며 절대 강자가 됩니다. 양쯔강 이남에 자리 잡은 오나라를 접수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적벽에 늘어선 엄청난 숫자의 배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조조군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적벽대전은 조조가 대패하여 결국 손권의 오나라와 유비의 촉나라가 득세하고 삼국이 정립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전쟁입니다. 적벽에서 조조가 패하지 않았더라면 동양 최고의 소설 《삼국지연의》도 존재하지 않았겠죠.


    조조의 패착은 바로 모든 배를 사슬로 묶어 놓았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낙관적이고, 바람마저 순풍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양쯔강 위에 배로 만든 철옹성벽을 이루었지만, 돌연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거기에 기습적인 화공이 얹히니 이른바 '추풍낙엽'이 된 것입니다.


    우리 몸에 뼈가 몇 개 있을까요? 206개입니다. 그 많은 뼈들이 서로 만나 관절을 이루고, 인대와 근육이 부착되어 관절이 보강됩니다. 그중에서도 뼈가 제일 많은 부위는 손과 발이라고 합니다. 손과 발에는 전체 뼈 개수의 절반이 몰려 있어서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줍니다. 최고로 유연한 부위인 셈이죠.


    사람에 비해서는 나약하지만 고양이는 유연성에 있어 포유류 중 으뜸입니다. 실제로 20층 높이에서 떨어진 고양이가 살았다는 얘기도 있고, 고양이는 머리만 들어가면 어디든 유연한 몸으로 통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척추를 포함해서 인간보다 더 많은 뼈와 관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이 민첩합니다. 잘게 나누어진 것들이 유연합니다. 세상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관계의 변수, 이것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우리는 분리하고 분절해야 합니다.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최대한 많이 분리하고 분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겠죠.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구분해보고 구별도 하여 그에 걸맞은 태도와 마음가짐을 확립해놓아야 합니다. 필요하면 적어보고, 정의해보고, 연습도 해보아야 합니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간혹 뼈아픈 경험은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름의 연습방법을 만들어 시행착오를 줄여야 합니다. 분리하고 또 분절하는 것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옵션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나름 다양하게 분리하고 분절하는 정신적 작용으로 자아의 어댑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인公人’은 공적인 자아로 업무를 합니다. 그 자아로 가족을 대하면 낭패입니다. 가족의 원성을 듣기 십상이겠죠. 공적인 세상을 대할 때는 공적인 자아를 내세워서 대응해야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적인 세상을 마주하면 이번에는 사적인 자아로 응대합니다. 어차피 공적인 자아나 사적인 자아, 둘 다 그 한 사람이지만요. 필요에 따라, 대하는 세상의 관계에 따라 적합한 자아를 끄집어내어 자신을 변형시켜 적응해야 합니다. 자아의 어댑터인 셈이죠.


    세속을 살아가려면 하나의 나에게 수많은 자아가 있어야 합니다. 자아와 감정을 분리해서 준비해둔다면, 필요할 때 필요한 것들을 꺼내어 사이 존재 어댑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너무 어렵게, 아니면 너무 냉정하게 들리나요? 아닙니다. 장중한 어르신네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실제 그렇게 성숙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분리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 작용이지 우리의 근원적 정체성이 아닙니다. 어댑터를 가지고 세상과 인간관계에 적절히 대응하고 또 그 변화에 잘 적응하면 불필요한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정체성까지 버리고 괴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는 거니까요.


    감정과 태도를 세세하게 분리시켜 옵션이 다양해지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만의 일관성 있는 실체까지 사라지면 안 되겠죠. 상처받지 않고, 변할 것은 변하고, 지킬 것은 지키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분리하고 분절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나는 반드시 동일해야 합니다. 이 점 오해 없길 바랍니다.



    홀로되지 않으려면

    혼자 있을 때가 필요하다지만

    직업상 젊은 학생들을 많이, 그리고 자주 봅니다. 강의실, 연구실, 학교 안팎 식당에서. 간혹 호젓한 캠퍼스의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그들을 봅니다. 뭔가 골똘합니다. 손에 잡힌 책을 읽고 있더군요. 왠지 전공 서적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읽어 내려가는 눈동자가 바쁘더니 문득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봅니다. 생각을 해보나 봅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에 자신만의 이해와 생각을 덧붙이는 순간으로 보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기뻐하고 소중히 여겨서, 일부러라도 홀로 있고자 하는 사람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죠. 자신을 잘 알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남의 마음도 헤아려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겠죠.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당연히 남들과도 잘 놉니다. 성숙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성숙한 사람일 거라 믿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확실히 해둘 게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혼자인 것은 천양지차입니다. 원치 않게 혼자가 되는 상황은 아무도 원치 않습니다. 고독은 이럴 때 옵니다. 고독이 밀려오면 자신을 만나는 성찰의 시간은커녕 자신을 제대로 돌보기조차 어려워집니다. 외로움 해결에 급급해져 자신을 보지 못하고 눈이 자꾸 밖으로, 남에게로 향하기 때문이죠.


    혼자 있는 것과 홀로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능동적이고 후자는 수동적입니다. 전자는 원해서 된 것이고 후자는 원치 않았는데 그렇게 된 것입니다. 무엇과 짝을 이루어야 하거나,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 속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면 홀로되는 것입니다. 소외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나 자신과 매칭되는 누구와 무엇을 찾자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일단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시작해야겠지요. 그러고 보니 홀로되지 않기 위해서도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신을 알아야 하니까요


    어쨌든 이번에는 짝짓고, 소속되어 그래서 홀로되지 않으려는 고민을 해보려 합니다. 나와 잘 어울리는 것도 알아야 하고, 나라는 사람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사이의 커플링과 매치메이킹이 잘 맞아떨어지게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궁극의 목표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요.


    같은 것을 다르게 보기

    결국 짝을 찾는 문제입니다. 홀로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짝을 찾아야 합니다. 적절하지 못한 짝을 만나면 일단 짝이 되더라도 곧 홀로 되기 십상입니다. 사람과 사물을 좋고 안 좋고, 훌륭하고 안 훌륭하고, 이런 식으로만 본다면 역시 홀로되기 쉽습니다. 좋고 훌륭한 짝을 찾으려고 매진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그에 걸맞게 좋거나 훌륭하지 못하다면 결국 홀로될 것입니다. 반면 안 좋고 안 훌륭한 것과 짝이 되면, 낙담하고 불만이 쌓여 역시 또 홀로될 것입니다.


    적정한 짝과의 적절한 매칭은 같은 것을 다르게 보기에서 시작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면을 보아야 하고 같은 직장이라도 다른 점을 볼 줄 알아야 요철을 맞추어볼 수 있는 것이죠. 이제 슬슬 같은 것을 다르게 보아야 하는 동기는 짐작이 가리라 싶습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같은 것들에서 차이를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차이’가 관건입니다.


    ‘같지만 다른 것' 하면, 역시 남과 여가 단박에 떠오를 겁니다. 오죽하면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할까요. 똑같이 사람이지만 차이가 현격합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면, 무조건 홀로됩니다. 어찌어찌해서 같이 산다손 치더라도 홀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화성에서 온 종족과 금성에서 온 종족 이 지구에서 짝지어 살려면, 반드시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적절한 짝을 만나고, 적정한 직업과 직장을 구하고, 적합한 것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고만고만해 보이는 것들 사이에 소소한 차이를 발견해야 합니다. 차이를 이해해야만 자신에게 걸맞는 것을 알아보는 눈이 생깁니다. 사소한 차이를 찾아내야만 그것들을 가지고 적절하고 적정하고 적합한 것들과 매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계란의 노른자위를 좋아하고 한 사람은 흰자위를 좋아합니다. 어떤 커플은 계란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 먹고, 어떤 커플은 취향이 다르다고 사이가 멀어집니다. 계란을 좋아한다고 다 같은 계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철을 맞추려면 같은 것을 다르게도 보아야 합니다.


    분석의 위대한 힘

    아무리 거대한 물건이나 복잡한 문제도 나누고 쪼개다 보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어찌하나요? 그 상황을 몇 가지로 나누어보고 하나하나 해결책을 강구합니다. 엄청나 게 많은 일이 밀려와 스트레스 만땅이면 어떻게 하나요? 일을 쪼개 보고 리스트로 작성합니다. 그리고 하나씩 처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분석의 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짝은 누굴까요? 나와 맞는 직업은 무엇이고, 직장은 어디일까요? 나누고 쪼개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냥 감으로 느낌으로 고르고 달려들면 안 됩니다. 나이, 외모, 학벌, 집안, 능력, 성격, 종교, 취미, 언변 등등. 외모도 얼굴, 피부, 키, 몸무게, 분위기, 심지어 성형 여부까지 모두 결혼정보업체가 수집하는 정보입니다. 잘게 쪼개고 나누어보며 전문적으로 중매를 섭니다. 연봉, 복지 조건, 보직, 위치, 상사와 동료, 회사 이미지와 장래성. 직장을 고를 때는 모두모두 체크해보아야 합니다. 쪼개고 나눌수록 자세히 알 게 됩니다.


    이 모든 것에 앞서 먼저 분석해야 하는 건 사실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요? 물론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한 번 적어보세요. 나의 장점, 단점,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가장 언짢을 때, 미래의 목표, 목표에 대한 현재 상황 다 적어보세요. 나도 모르는 나를 알게 됩니다.


    나와 그는 사실 같은 사랑을 바랍니다. 나와 나의 회사는 모두 같은 실리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같게만 보면 짝을 짓기 어렵습니다. 다르게 보고, 차이를 알고, 그래서 요철이 채워져야 홀로되지 않습니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요? 척하니 인상을 보면 그 사람을 알고, 이름만 들으면 그 기업을 안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한 통합적 사고력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중재자가 굳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그들도 그간의 분석 경험으로 그런 능력이 다져졌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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