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인문
자기계발
Trend
Briefing
  성공을 부르는 직관력의 비밀
저   자 : 국수미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0년 06월

  • 성공을 부르는 직관력의 비밀


    인공지능 시대의 직관

    아수라장에서 살아남는 힘

    “뱃속의 나비를 죽이면 꿈을 죽일 수 있다. 긴장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 때 대부분 사람은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그 느낌은 당신에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다. 느낌을 받아들여라. 불편함을 느껴라. 느낌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두려움의 연금술에 자신을 훈련하라."


    『불확실성Uncertainty』의 저자 조너선 필즈가 Amex Open Forum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조너선 필즈의 '뱃속의 나비'라는 멋진 표현은 '직관'을 뜻한다. 긴장하고 불편한 느낌은 직감Gut Feeling이다. '장', '뱃속'에서 오는 느낌이다. 그 직감이 무엇을 말하는지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이 '직관 Intuition'이다. 직관은 순간적으로 직감하는 것으로, 의식적으로 생각하거나 추론하지 않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직관이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어떤 선택이나 행동으로 이끈다.


    당신 안에는 모든 중요한 생각, 두려움, 꿈, 느낌 및 비밀이 있다. 당장 해결될 일이 아니거나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걱정하며, 모든 위험이 제거될 때까지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의식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완벽한 환경과 기회란 애초에 그런 정의는 없다. 의학에서 마저도 완벽한 환경은 있을지언정 완벽한 기회란 의사의 직관과 통찰력, 환자의 의지력, 의약품, 장비, 골든아워golden hour 최소 이 다섯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기다리면 때는 이미 너무 늦다. 문제를 해결할 가장 훌륭한 방법은 직감을 감지하고, 직관을 계발하는 것이다.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도망치거나 숨거나 피하며 살아남으려고 한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직감이 두려울 수도 있다. 욕망이나 낭만적 사랑이나 두려움이라는 감정들이 휘몰아치면 제대로 현실을 바라보려는 파장을 강하게 거부하거나 무시하게 만든다. 오장육부가 싱숭생숭하고 메슥거린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장(Gut)이 보내는 경고이자 암시다. 직관에 제대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관은 합리성도 따른다. 사람들은 직관적이라고 하면 분석적․비판적 사고가 배제된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직관으로 현상을 돌파하는 힘은 다음 두 가지로 강화될 수 있다.


    첫째. 역사의식과 미래의식은 직관력을 높인다.

    시간 여행은 우리를 겸허하게 하고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역사는 단순히 지난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의미를 결정하는 미래의 뿌리다. 역사의식은 ‘책임 의식’이다.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한 걸음 더 나아지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통해 사고의 균형을 이루며,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 반성한다.


    진짜 멋진 삶이 무엇인지 되새기는 시간여행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참된 직관을 불러오는 것은 분명하다. 직관을 마주한다는 것은 결단할 시점임을 뜻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때 올바른 결단력이 나온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바로 판단이다. 자신의 목표와 가능성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직관이다.


    둘째, 직관의 힘은 잠재의식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시계로 측정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이 곧 나만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관은 자신만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결단을 내릴 시간을 알려주는 내 몸의 알람인 셈이다.


    생명의 뇌줄기에 작용함으로써 심장 박동, 혈류, 호흡, 세포 및 조직의 복구, 의식적 이해를 넘어서는 수백 가지의 다른 과정과 같은 신체 기능을 제어한다. 잠재의식에 의해 받아들여진 생각이나 믿음은 우리 안에서 직감과 직관으로 외부 음파에 자극되어 진동 에너지로 극대화 된다. 잠재 의식은 우리 목표와 욕구를 직관으로 표현한다.


    의식이 얻기 어려운 무한한 잠재적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직감은 가장 쉽고 신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더 많이 사용하고 연습하고 이해할수록 효과적이다. 직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갖는 것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직관을 가치롭게 다루지 않는다면 직관이 신호를 보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보다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단련이 중요하다.


    직관을 길러야 하는 이유

    디지털 시대는 아이디어와 시간, 경영권 싸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이밍과 결정권의 스펙트럼이다. 누가 먼저 직관하고 영감을 얻어 세상에 내놓느냐이다. 삶의 변화를 포착하는 슈퍼센서, 바로 직관이다. 그러다 보니,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비즈니스에서 엘리트화된 점도 있다. 드라마 같은 성공은 꽤 낭만적이며, 그들의 전설적인 직관적 힘은 높은 지위와 엄청난 부를 가져왔다. 폭죽을 터트릴 기막힌 타이밍을 잡은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인공지능 디지털 시대에 더욱 통용된다. 직관은 직감을 넘어 그 위기를 미리 알아보고 확신하며 나아가게 해주는 ‘설계력’과 ‘추진력’이다. 그리고 ‘자신감’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일에 확신이 없다는 의미다. 관심이 없거나 지쳤다는 것도 확신이 사라졌다는 신호다. 안주해서 태만해졌거나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요인으로 작용해서 확신은 연기처럼 어느 순간에 사라진다. 우리는 이때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져야 한다.


    성공으로 나아가는 힘

    직관이 이성의 대체물이라고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위험한 망상에 빠질 수 있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직관은 직관이 아니다. 직관의 붉은 제복으로 위장한 경솔함과 오만함이다. 이들에게 직관은 엄격한 분석에서 벗어나,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는 지침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성공만큼이나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진다. 직관은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문화와 정서적 편견과 경험, 잠재적 의식과 통합하여 일어나기에 직관을 형성하는 내용을 평소에 비판적 사고로 제대로 보고 읽는 방법을 단련하고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직관이 새 지식이나 새로운 해결책 리스트를 만들어 책상에 내놓는 것이 아니다. 직관을 돕는 경험, 통찰력, 분석적 기술과 결합하면 세상 복잡함 속에서도 일관되게 건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 시각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직관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직관은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비판적 사고가 그 안에 축적되어 있다면 매우 강력해서 사용할수록 발달한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항상 규칙을 따를 수 없기에 삶의 여정에서 직관 발휘는 다이내믹한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잘 산다는 기준

    사실 우리가 사회적 기준이 아닌 자신이 잘산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지구상의 인구수만큼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보편적인 웰빙(Well-being)의 기준은 있다. 직관적인 삶을 위한 태도적인 측면에서 다음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자신의 몸과 마음과 뇌의 변화를 인식하며 살고 있는가?

    둘째, 위엄이 있는가?

    셋째, 생각의 늪, 즉 ‘오버-씽킹’에서 벗어났는가?


    어느 순간에 ‘번뜩’ 찾아오는 직관과 통찰의 신호는 우리가 매일 ‘느리게’ ‘깊은 사유’로 단련하면 가장 필요할 때 반드시 오는 것들이다. 신비한 내면의 힘으로 막연하게 보지 말고 신속하고 준비된 통찰력 발휘를 위해 경솔한 판단을 주의하며, 직관의 답을 얻으면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다. 살피고 핵심을 간파해서 빠르게 공격하는 것이다.



    삶의 결정적 순간에 필요한 것

    무엇이 결정을 주저하게 하는가

    우리는 종종 논리(이성)가 아닌 감정으로 덜컥 중대한 일을 결정한다. 인공지능 시대는 정보 습득이나 일상에 편리함을 주는 보완재 기계들의 향연일 뿐이고, 그 역시도 근본적인 삶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내면의 신경계는 우리가 정말 해결할 뜻을 갖고 온전히 맡긴다면 그 안에서 부화(Incubation)하여 올바른 판단과 결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자신이 내린 결정 가운데 아직 머리를 짓누르며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사건이 있는가? 무엇이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거침없는 결단을 막고 있는가?


    첫째, 법칙적인 불가능한 일에 미련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법칙적으로, 논리적으로, 개념적으로 불가능한 개념화할 수 없는 환상에 매달리고, 명확한 비전이나 목적, 논리적으로 가능성 있는 목표가 아닌 불가능한 일에 에너지를 쏟기에 결단이 힘들다. 우리는 정작 변화시킬 수 있고, 바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변화가 필요한 사회적 관습이나 관념에는 무심하다.


    둘째, 다른 데서 특이할 것 없는 답을 찾고 있다.

    만물은 논리(이상)가 다는 아니다. 논리는 창의의 기초이자 도구이며 과정이다. 그 창의는 상상에서 기원한다. 그러니 창의와 혁신이 부족하다는 것은 논리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뿌리를 알지 못하고서는 모두 물거품과 같다. 수많은 생물 가운데 나무는 그 원리를 온몸으로 보여 준다. 겉핥기 해보았자 허무하고 막연하다. 뿌리를 살펴보지 않고 포기하면서 자신이 아닌 누구의 탓도 하지 말자.


    셋째, 세상 물정에 지나치게 밝다.

    결정은 ‘정보(머리) → 납득(심장) → 확신(복부)’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이 과정을 지속할 때 우리의 직관은 살아난다. 거침없이 우리의 삶에서 만만하게 수월하게 결정하기 위해 ‘생각과 감각을 연결할 퍼즐과 고리 맞추기’를 권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이나 상황을 지나치게 많이 알면 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주 쓰레기와 같은 목적 없는 지식과 정보 중독은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다. 핵심을 뒤로 한 채 이것저것 마구잡이식으로 따지면 세상 관찰이 아닌 지나친 오지랖이 된다. 점점 더 몸을 사리게 되고, 생각은 오히려 좁아지며, 진정한 도전이나 모험은 줄어든다. 만병의 근원이 된다.


    넷째, 주도적인 결정을 회피하려 한다.

    영화를 보면 결정의 순간에 동전의 앞뒷면이 나오는 것으로 결정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저울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동전 던지기‘로 감정의 변화를 보고 결단을 내리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겠다. 털어버릴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린 결정에 따른 대가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성을 넘어 직관으로 가는 길

    논리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복잡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방법은 무분별한 감정이 아닌 논리다. 논리는 상식이며,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며 예의다. 우유부단함이나 격렬한 감정이 정리되면서 논리적으로 이상적이라 판단되는 결단을 내리겠지만, 이 둘을 잘 보살피면 우리는 언젠가 더 많은 결정을 직관하며 평안해질 수 있다. 이성과 논리, 감정의 뇌를 지나 직관으로 가는 길은 어쩌면 기나긴 여정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섬광처럼 다가와서 '확신'을 줄 것이다. '진짜 나'를 찾았다는 환희에 행복 호르몬은 불꽃이 되어 축배를 든다.


    지금 수많은 망설임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면, 그것은 신중함을 빙자한 방황일 수 있다. 우유부단함은 지나친 욕심과 그것을 놓칠까 봐 집착하는 두려움에서 온다. 세속의 함정과 왜곡된 헛된 논리를 뒤돌아보거나 흔들리는 감정에 기댈 것이 아니라 현재를 직시하며 살아야 한다. 사고와 감정이 미분화되어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나 감정만을 골라 타인과 나를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 진실은 변하지 않으니 마음을 다해 결정했다면 언젠가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결정이 조금 늦더라도 괜찮다. 시간이 흘러 결정의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지난 세월만큼 통찰력이 깊어진다.


    누구나 사랑의 DNA를 가지고 있듯 직관의 DNA가 있다. 다만 논리(이성)의 감정과 경험을 세상에 연결할 줄 모를 뿐이다. 논리든 감정이든 어느 한쪽과 연결되었다면 이제 단절되었던 나머지 감정과 논리 사고를 연결해 본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논리와 감정은 이미 세상에 가득하다. 자신이 가진 논리와 감정 속에서 암흑과 같은 오만과 편견을 걷어낼 용기를 갖는다면 직관은 마치 초연결 시대에 도시를 빛내는 전기와 인터넷망처럼 연결망 위를 빠르게 오갈 것이다.


    직관은 언제 시작할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행위의 선택을 통해 만들어진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세세한 과정을 알려 주지 않는다. 함축되고 응축되어 나타난다.


    직관을 믿고 나가라. “모든 것은 흘러가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말이다. 한 사람의 인생행로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만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더는 세상에, 사람에 속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묻지 말자. 우리를 생기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라. 그리고 나아가서 그것을 하자. 세상은 생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데카르트가 도달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진리처럼 '나'라는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자기만의 철학이 없으면 세상 유행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더욱 필요하다. '세상과 사람에 속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에게 속지 않는다'는 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환상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재미로 보는 마술과 같은 쇼이며, 수많은 사람은 그 안에서 펼쳐지는 허황된 경험을 사며 돈을 번다. 우리는 제대로 된 방향을 잡기 위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인지 진중하고도 온화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선택과 결정'은 외로운 작업이다. 결정에 따른 사건들을 예상치 못한다. 실패할까 두렵고, 잘못된 선택일까 노심초사한다. 혼자일까 두렵다. 세상과 사회에서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충돌하는 것을 본다. 사람들은 튀는 행동을 꺼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익숙한 게 편하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생각의 사람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면 서로 이의를 제기 하지도 않을뿐더러 서로의 견해를 더욱 극대화하는 '집단 양극화 효과'가 생겨난다.


    우리는 선택과 의사 결정을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자신이 바라는 결정에 '네!'라는 결정을 줄 긍정적인 정보와 의견을 찾는데 열중한다. 처음부터 결정해 놓고, 안심하기 위한 논증 거리를 찾는다는 것은 오류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액자 틀‘을 넘어서는 정보를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고 반경을 넓히기는커녕 외려 다른 대안을 외면하게 한다. 진실이나 사실적 정보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한다. 미디어의 발달과 초고속 인터넷 정보와 뉴스로 인해 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불안함을 잠재워줄 편향적인 정보와 좀 더 쉽게 가기 위한 단편적인 정보를 찾는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한없이 좁아지고, 폭넓은 다양한 관점들은 멀어진다. 시야가 좁아진 후에도 더 많이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마치 요새와 같은 안정감을 느끼며 환상을 깰 수 있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사실과 진실을 외면한다. 점점 더 사고는 편협해진다. 진상을 묻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자기 보호를 위해 관련 주제의 대화는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의례적인 말을 많이 하며, 가슴속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잘못된 사실을 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지금 누리는 편안한 관계와 일상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두려움과 절망이 현실이 되어 버릴까 봐 걱정한다. 대다수 사람은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냥 묻어 버리며 휘말리지 않은 것에 잘한 거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그렇게 뇌를 속이며 왜곡한다.


    직관은 자기 확신이 주는 선물

    직관을 먼저 신뢰하라

    누구나 직감이 있지만, 사용 여부는 ‘선택’이다. 직감을 믿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생각기술 도구로 결정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결정적인 어느 순간에 다다를 때, 그러한 노력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효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타이밍 문제다.


    내면의 목소리가 위험에 처했다고 말하면, 자신을 의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할까 걱정하지 말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공손함을 제쳐두고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직감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직관을 믿지 않으면 어떠한 도움이나 확신의 느낌을 경험할 수 없다. 신체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직관은 근육과 같다. 더 단련하려면 자주 사용해야 한다.


    첫째, 필요할 때 와달라고 마음속으로 또는 소리를 내어 요청한다.

    사람라마다 직관의 경험과 강도는 다르다. 사건과 사물,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 자주 느끼고, 이미지를 떠올린다거나, 아이디어와 꿈을 기억하고, 독해하는 힘을 기른다. 다만 항상 레이더망처럼 의식적으로 세우고 다닐 필요는 없다. 직감이라는 센서는 24시간 자동으로 작동하다가 필요한 메시지가 있을 때 당신에게 알려준다. 당신이 필요할 때만 알라딘 요술 램프의 지니를 불러도 좋다. 하지만 당신이 부르기 전에 알려줄 것이다. 그래서 직감은 의사소통의 대상이 아니다.


    둘째, 직감과 직관이 나에게 어떻게 말하는지를 안다.

    먼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분명 알았는데 넘겨버려 나중에서야 “그때 난 알았어.”라고 했는지를 떠올려 본다. 그 느낌과 사건을 기억하고, 유사한 예감이 왔을 때 포착하고, 직관과 비판적 사고를 하도록 한다. 직감을 한 번 더 검증하는 것이 직관이다. 직관은 내 안에 있는 진실한 멘토(Mentor)이며, 우리에게 더없이 친밀하다.


    셋째, 의사결정 상황에서 감정을 끊어내고,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본다.

    직관의 뇌 전체가 합쳐지고 문제를 보는 새로운 방법으로 조각들이 모인다. 이성과 감성, 논리와 감정이 균형을 이루는 합의점을 찾아준다. 다각도로 보는 법을 배우고, 일상에서 실천한다. 방해받지 않는 장소에서 관찰자가 되어 조용히 묻는다. 무엇이 떠오르는지 이미지에 집중한다. 새로운 통찰과 생각 또는 아이디어는 직관의 선물이다. 기억해두고 메모한다.


    넷째, 당신이 원하는 것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가치를 명확하게 한다.

    새로운 일에 대한 결정은 동기가 분명해야 한다. 목적의식은 답을 탐색하는 엔진과 필터 역할을 한다. 최종 결정의 확실한 근거가 되는 만큼 어떤 선택이나 딜레마에 직면하면 직관이 그 비전에 따라 초점을 맞추어 통찰과 확신을 준다. 장에서 보내는 가장 확실한 메시지다.


    다섯째, 직감과 직관의 느낌을 잊기 전에 반드시 행동한다.

    직관의 번쩍임을 인식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사실 이 마지막 단계가 가장 힘들다. 당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직관과 통찰력의 섬광’으로 알게 되었다면 방향을 재고하고 바꾸는 것이 좋다. 갑자기 밀려오는 신호에 두려움과 사고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미니 명상을 해보자. 일관되고 자신 있게 직감을 신뢰하는 방법을 배우면 직관적인 사고가 비즈니스와 생활에서 당신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지성과 감성과 직관적 지능 = 삶의 지능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그의 저서 『마음의 틀(Frame of Mind)』에서 다양한 지능이 존재하며 그 가운데 내면적 지능(intrapersonal intelligence)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감성 지능’의 창시자인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협동하며 유대감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능력으로 감성 지능에 예의, 책임감, 주의력, 자제력 등을 포함했다. 이렇듯 감정의 충동적인 요소를 조절하는 ‘감성 지능’의 올바른 훈련이 더불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추가되는 것이 바로 우리 내면에 있는 직관적 지능(삶의 지능)이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지성(intellect)’을 ‘살아가는 힘’ ,‘고민하는 힘’이라고 해석했다. “지성은 고난과 냉혹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원인을 파악하고 선택지를 찾아 대처하는 힘이다. 지성은 ‘살아가는 힘’ 그 자체이다. 지성을 갖춘 사람은 쉽게 꺾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지성이라고 하면 지능검사를 통해 측정되는, 소위 지능지수(IQ)를 뜻하기에 ‘지성’을 해석하는 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인 도구이자 힘을 ‘지성’이라고 정리하면 된다. 분석하고 유추하는 능력은 세상을 관찰하는 데 필수적이다.


    고독의 시간 후에 얻는 것

    직감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속도를 늦추고 들어야 하는데 이때 '고독‘이 필요하다. 그것은 직관의 볼륨을 높이기 위해서다. 산책을 한다거나 샤워를 하는 등 일상적인 바쁜 일들 속에서 약간 또는 일정 시간을 요구한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많은 시간을 혼자서 책을 읽고 분석하며 일을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 25가지 중에서 오로지 5가지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투자가인 그가 일하는 방법이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컴퓨터를 둔 적이 없다. 주식시세표를 써본 적도 없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잠재력을 가진 소수의 투자로 고품질 배팅(focus on a few, high-quality bets)에만 집중한다. 귀재 워런 버핏도 회계자료를 조작한 기업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례가 있듯 우리 인간은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불확실성’에서 그래도 믿을 만한 것은 휩쓸리지 않기 위한 ‘집중’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빌 게이츠 역시 성공의 이유로 ‘집중’을 꼽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논리(이성)와 감성을 잘 다루는 사람만이 고독을 이긴다. 고독은 인간의 숙명이고, ‘자아’의 목소리가 아닌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 자기 사유의 시간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게 해주는 엄숙한 시간이다. 누구에게는 홀로 내던져진 듯한 외로움에 고통스럽기만 하지만 누구에게는 역경을 이겨내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 칩거하며 고독하기를 청한다. 직관을 얻고자 한다면 마지막 단계는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도는 홀로 조용히 하는 것이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해 깊은 사유를 통해 깨닫고, 무언가를 창조하고 완결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하루를 결정하고 미래를 결정한다. 생명체라면 각각의 생존전략이 있는 법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혼족들이 ‘고독을 이겨내는 사람인가’, ‘고독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인가’ 에 대한 물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며 삶을 창조하고, 논리와 감성을 연결할 줄 알며, 이해와 소통을 기본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고독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은 ‘유혹’과 ‘게으름’을 이겨내면서 성장한다. 혼자의 시간과 공간을 통해 자신의 효능감과 만족감을 끌어낼 뿐만 아니라 통찰을 단련한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