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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
저   자 : 이인
출판사 : 호이테북스
출판일 : 2020년 03월




  • 소규모 자영업자를 비롯해 대기업의 대표까지도 고객 경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고객의 기대는 가장 복잡하면서도 가장 단순하며 예민한 동시에 변화무쌍한, 아직 그 누구도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리지 못한 난제이지만 혈실 속 우리는 그 실체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 이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이제 고객을 중심에 두는 방식보다 중요한 전략은 없다. 우리가 고객의 니즈를 이해하고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다.” <br><br>이 책은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얻어낸 산지식과 깨달음, 실질적 교훈을 다음 세대와 나누기 위해 쓴 것이다. 이 책 곳곳에는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부터 호기심을 활용해 기업의 독자적인 가치 창조의 기반을 구축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성공에 필요한 깊이 있고 광범위한 핵심 요소들이 숨어 있다. 또한 기업들의 실제적인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통해 반면교사와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br>


    원더

    왜 기업도 죽는가?

    우리는 모두 죽는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일찌감치 죽음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 직후의 후유증을 희미하게 겪은 데다 아버지마저 여의고 만 것이다. 가슴 아픈 경험 이후 나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죽음이 궁금해졌다. 미국 주류 시장의 첨단 산업에서 벤처 투자가로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에도 늘 죽음이 궁금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빛도 구경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마는 것을 수없이 보면서, 거창하게 출발했지만 1년이 채 못 되어 사라지고 마는 신생 기업들을 보면서 나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스타트업이라는 은하에서도 매년 1억 개가 넘는 새로운 기업이 신성처럼 등장한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3개의 기업이 탄생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렇게 태어난 기업 대부분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스타트업의 사망률은 90%에 이른다.


    죽음은 스타트업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미처 선보이기도 전에 사망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반면 놀라우리만치 오래 생존하는 기업도 있으며, 최단기간 내에 유니콘급으로 성장하는 기업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빅뱅’을 일으켜 자신만의 은하계에 수많은 별들을 탄생시켰을까? 그들은 어떻게 끔직한 종말에 이른 블랙홀 속에서 부활했을까? 나는 그 이유가 늘 궁금했으며 해답을 찾고자 애썼다.


    기업의 죽음은 필연적인가?

    지난 25년간 나는 매년 많게는 수백 건의 사업 제안서를 검토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스탠퍼드 연구 단지에서 창업 인큐베이션 센터를 운영했으며, 그 후로도 개인 펀드를 통해 다수의 프로젝트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그중 일부는 수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해 상장되거나 높은 가격에 인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왜?”라는 어리석지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그야말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업가에게 투자한 적이 있다. 창업자의 경력이나 사업 전략이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들조차 사업의 실패를 막지는 못했다. 나는 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기회도 잃었다. 당시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스타트업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망설이다가 투자를 포기한 바로 그 회사가 요즘 흔히 말하는 대박을 친 것이다. 그렇다면 팀원들의 경력도 풍부하고 사업 계획서도 나무랄 데 없었던 그 회사는 도대체 왜 망했을까?


    설립된 지 100년이 넘은 시애틀 지역 사업체 세 곳의 이야기가 <시애틀 타임스>에 실린 적이 있다. 세 기업은 건축자재를 공급하는 뮤추얼 머티리얼스(Mutual Materials), 중장비를 취급하는 넬슨 트럭 운송(Nelson Trucking), 해양 시설물을 제작하는 맨슨 건설(Manson Construction)로, 모두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위치한 기업이었다. 그들은 환경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1. 가족 구성원이 기업 업무에 계속해서 관여한다.

    2. 자사의 핵심 사업에 충실하되 소비자 선호도를 반영한다.

    3. 진보적인 기술을 도입한다.

    4.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경영이 이루어지며 부동산 자산 비율이 높다.


    이 기업들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핵심적인 특징 덕분이었다. 이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금융 자산보다 귀하게 여기는 경영 방침에서 알 수 있듯이 돈을 버는 데에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대기업이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한때 유명했던 대기업 중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곳도 많다. 몽고메이 워드나 팬암, 엔론은 모두 미국을 대표하는 창의적인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더욱 혼란스러운 사실은 수많은 대기업이 시장 여건이 가장 좋을 때 몰락한다는 것이다.


    장수 기업의 중심에는

    서기 1000년 이전에 세워진 일본계 회사 열네 곳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업종의 기업들로, 포도주 양조장도 있고 차(茶) 제조사와 한약방도 있다. 요식 숙박 업체, 동전 주조창과 주물 공장, 술도가와 술집, 건설 회사도 있다. 수백 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남은 이 기업들은 대부분 가족 경영 체제다. “직원이 제일 중요한 자원이죠. 가족같이 지내는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답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유턴

    2002년, 애플이 뉴욕 소호에 첫 번째 오프라인 스토어를 연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곧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해 보니 창문도 없는 구형 건물 2층에 자리한 스토어는 요즘처럼 정성 들여 꾸민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고, 오후 시간인데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문객 모두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애플 제품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바로 이거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가 애플의 모든 상품이나 기기와 마음대로 교류할 수 있는 쇼룸의 중요성을 간파한 후 쇼룸 사업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진행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2018년 기준 전 세계 25개 국가에 위치한 506개의 화려한 오프라인 스토어가 애플 마니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이 연 매출 160억 달러라는 엄청난 성공 사례를 만들면서 이제 전 세계 기업이 애플 스토어를 경쟁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컴캐스트의 엑스피니티를 비롯해 심지어 테슬라까지도 애플의 사례를 따르고 있다.


    그동안 미국 전역에 있던 크고 작은 책방과 슈퍼마켓을 초토화했던 아마존이 몇 년 전부터 직접 책방을 개점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전에는 479개 체인을 소유한 홀푸드를 인수해 오프라인 사업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프라인 현장에서 수집된 소비자 경험 자료를 통해 최적의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 점점 다시 부각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멀리 보는 시각과 더불어 빠른 변화가 필요한 시대다. 이제 모든 기업은 변할 것인가 죽을 것인가, 적응할 것인가 퇴물이 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서 끝없는 성공 가도를 달리려면 고객의 경험과 피드백에 한층 더 귀를 기울이고 한발 앞선 혁신적인 경영에 돌입해야 한다.



    변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코리아 브랜드 파워

    지구상에는 인터넷의 정보력 덕분에 이제 사람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거의 없다. 기술의 발달로 여행비가 저렴해지고 모든 시스템이 과거에 비해 간소해졌기 때문이다. 상품과 서비스, 아이디어까지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결과 자유에 대한 기본 개념에서 경제 모델이나 정치 구조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각이 하나의 보편적인 사고로 수렴되었다.


    경제 시스템은 더욱 시장 중심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으로 변모했다. 인도는 경제 자유화를 선언하고 외국 자동차 기업에 시장을 개발했다. 문화와 전통이 섞이고 있다. 오늘날 뉴욕과 런던, 서울, 리우데자네이루, 카이로의 청소년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악을 듣는다.


    경계가 사라지는 이 같은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 케이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부상이다. BTS는 과거에 비틀즈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들은 폭력을 근절하자는 내용의 UN연설을 통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류의 기대와 욕망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문화의 경계가 흐릿해진 지금은 이러한 특징이 큰 장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케이팝의 이코노미 파워를 개척한 사람은 단연코 SM 그룹의 이수만 회장이다. 내가 1990년대 중반에 스탠퍼드 연구 단지에서 인큐베이션 시스템을 통해 미래의 창업 스타들을 길러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할 때, 동양의 작은 나라인 한국에서 그는 인큐베이션 시스템이라는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팝 스타들을 배양하는 전례 없는 전략을 이미 시도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케이팝이 오늘날 이렇게 전 세계를 뒤흔드는 엄청난 역사를 개착하게 될 줄 이 회장은 설마 예상이나 했을까?


    한국의 컨텐츠 산업은 최근 봉준호 감독을 통해 또 한 번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가까운 미국 친구들이 나만 보면 영화 <기생충> 얘기를 꺼낸다. 전 세계 동네방네에서 말춤을 추게 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후, 이제 문턱이 가장 높다는 전 세계 영화 시장의 심장부 오스카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면서 확실하게 한류문화의 태극기를 꽂은 것이다. 한국을 미국에 비해 오스카의 역사인 92년만큼 뒤떨어진 나라라고 생각하는 편견과 착각을 단번에 깬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가 싶다.


    올림픽이나 축구, 야구 같은 국가 간 스포츠 경기 혹은 특별한 국제 제전에서 정상에 올랐을 때, 국격 상승은 물론 국민들이 갖게 되는 단결심과 자신감으로 엄청나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과 그의 팀들이 만들어낸 쾌거가 국민들에게 불어넣은 에너지는 값어치로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세상을 바꾼 고수의 혁신기업들이 백여 년 동안 국가 경제를 이끌어 가듯이 이제 후배들이 문화의 영역까지 정복한 선배영웅들이 만들어낸 레드카펫을 밟고 더 높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온통 연결된 지구라는 마을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고도로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다. 불과 지난 10여 년 사이에 벌어진 변화다. 향후 10년의 진화 속도가 지난 100년의 진화 속도보다 빠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자도 많다.


    누가 먼저 5G 서비스를 선보일지를 두고 막상막하의 전쟁이 벌어졌지만 사실 그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사실은 지금 불고 있는 새로운 혁명의 바람이다.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5G 서비스를 선보였고, 미국은 단 두 곳의 도시에서만 선보였다. 우리 통신사들은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미국의 버라이즌(Verizon)은 자신들이 세계 최초라고 주장한다. 한편 세계적인 회사들은 이미 6G 개발에 착수해 미래를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AI 시대에 인간의 반격

    인공지능AI 역시비즈니스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전자공학 분야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애완동물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수리도 하고 글도 쓰고 장기를 두며 사람을 이기기까지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배우면서 성장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똑똑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언젠가는 사람이 인공지능보다 뒤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나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는 않을지 궁금하다. 이 게으름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일상생활의 패턴을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편리한 삶을 제공하는 인공지능과 앱이 사람의 두뇌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일상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GPS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자동차협회나 주유소에서 얻는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거리를 가늠하고 도착 시간을 계산했던 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의 등장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가라는 기계 속 음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시작했다.


    직감을 사용하지 않으면 비즈니스 감각도 잃는다. 삶을 더 편하게 해준다며 지름길을 제시하는 도구들이 도리어 우리의 기억력과 창조력을 퇴보시키고 있는 중이다. 인간을 태만하고 나태하게 만들어 뇌의 가장 뛰어난 영역인 상상력을 활용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다.


    컬러 TV와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를 거쳐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모든 인간이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섬뜩한 생각이 든다. 성공적인 기업을 일구는 과정에서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리모컨은 없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뇌와 의지력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상생활을 점령하는 시점이 오더라도 결국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

    2004년 2월에 시작된 페이스북의 열기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셜 미디어의 인기는 평균 6년 정도라고 한다. 과거 싸이월드나 마이스페이스 같은 초대형 회사들도 결국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도 페이스북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 대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모든 세대의 소비력이 점점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장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지구촌 문화가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다채로운 세대를 겨냥한 사업을 구상하는 창업자나 기존 기업가는 이제멀티 세대 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갤럭시와 블라인드 테스트

    외국인 친구 여섯 명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나는 이렇게 가끔씩 친구들과 모여 조촐하게나마 음식을 함께 먹으며 즐겁게 떠드는 가운데 정보도 교환하고 우정을 돈독히 한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 다른 친구가 보내준 유튜브에서 본 재미난 동영상 한 편이 생각났다.


    내가 갤럭시 스마트폰을 꺼내 유튜브 동영상을 띄운 다음 옆에 앉은 친구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내가 전화기의 양옆 하단을 쥔 상태에서 친구가 그 상단을 잡았다. 친구는 전화기를 잡으면서 오른쪽 상단에 있는 전원 버튼을 무심코 눌렀고, 전화기는 순식간에 잠금 모드로 바뀌면서 화면이 꺼지고 말았다. 그렇게 첫 번째 친구가 동영상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 다음, 전화기는 옆에 앉은 다른 친구에게 넘겨졌다. 그런데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또 발생했다. 전화기가 다른 친구에게 넘겨질 때마다 전원 버튼이 눌려 화면이 잠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전화기가 내게 돌아올 때마다 나는 짜증이 났고 마지막 친구가 동영상을 봤을 때에는 더 이상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몇 개월 후 나는 유럽에서 개최된 무선 통신 관련 행사에 참가했다가 마침 갤럭시폰 제조사의 임원들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게 되었다. 그날 식탁에도 공교롭게 여섯 명의 임원들이 앉아 있었는데 나는 불쑥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자!


    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했듯이 스마트폰을 꺼내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옆에 앉은 임원에게 건넸다. 그는 하단 부분을 꽉 잡은 상태로 조심스럽게 내 손에서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나는 당황했다. 전화기가 식탁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아무도 무심코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다들 즐겁게 재미난 영상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디자인의 결함을 찾고자 일종의 실험을 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설명하면서 사용자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에 대해 그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반년이 시간이 지난 후 당시 그 모임에 참석했던 간부에게서 연락을 받았는데, 그는 차기 스마트폰에 나의 피드백이 반영된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스마트폰은 전 세계적으로 10억 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나름 일조한 것 같아 고객 경험을 꾸준히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아이폰이 기존의 크기를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을 때 갤럭시폰은 처음으로 대형 화면을 채택한 모델을 출시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의 크기를 3.5인치 디스플레이라는 초창기 버전에서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을 때 갤럭시는 잡스의 허를 찌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갤럭시폰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를 지켜보던 중국 기업을 비롯한 경쟁사들도 대형 스마트폰 출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2011년 잡스의 사망으로 지휘봉을 넘겨받은 팀 쿡이 결국 4.7인치와 5.5인치짜리 첫 대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아이폰6를 출시하면서 갤럭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어찌 보면 갤럭시에 항복한 셈이었다. 팀 쿡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혁신이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지금, 개인의 고집에 의해 혁신이 중단된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과연 대형 화면을 허용했을까? 지금쯤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증이 남는다.


    애플의 DNA

    애플은 미국의 상장 기업 중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며 업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18년 8월, 시가총액 1조 달러는 넘긴 최초의 상장 기업이 된 것이다. 나는 솔직히 1조 달러의 가치를 넘는 기업을 살아생전에 볼 거라 생각지 못했는데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이제 구글까지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내가 한창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산업에 종사할 즈음 스탠퍼드 박사 출신 두 명이 창업한 구글이 불과 20년 만에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20대 초반 학생 몇 명이 2004년에 만든 페이스북은 현재 25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경쟁사와 비교해서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건지 호기심이 생긴다.


    스티브 잡스는 “내 머릿속에는 집중력과 단순함밖에 없었다. 단순해지려면 복잡한 생각의 쓰레기를 부지런히 쓸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단순한 생각을 경영마인드로 삼아 그토록 대단한 기업을 만든 것일까? 그의 말은 여전히 더 뒤집고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애플의 다른 제품이나 기술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애플이라는 기업은 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잡스는 애플의 DNA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월한 기술은 성공의 일부에 불과하다. 가슴 뛰게 하는 요소는 교양 학문과 기술, 인문학과 기술이 결합한 결과다. 인간이 만든 창작물의 근본 속에 담겨 있는 영혼은 디자인이다.”


    내가 보는 다섯 가지 디자인 콘셉트

    1. 자연을 능가할 디자인이 있을까?

    자연을 관찰하기를 즐겼던 다빈치는 말했다. “인간이 아무리 특별한들 자연보다 아름답지도 단순하지도 않으며 또 지나치지도 않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는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디자인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을 속일 수 없다”는 1970년대의 시폰 마가린 광고 속 대사처럼 우리는 자연을 능가할 수도 없다. 더 많은 신상품이 대자연 속에서 탄생되길 기대한다.


    2. 단순한 디자인인가?

    현대인은 쫓기듯 살면서 멀티태스킹 능력을 요구받는다. 이런 가운데 단순함은 마치 구원처럼 다가온다. 디자인의 단순성에 우아함이 담겨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3세기, 다빈치도 정교함의 궁극적인 형태가 단순함이라고 했다. 단순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것이다. 훌륭한 디자인은 대칭의 원리를 활용하며 자연스럽지 않은 모양은 피한다. 그래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이 훌륭한 것이다.


    3. 상상력을 키우는 디자인인가?

    아름다운 디자인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은 만족감과 흡족함, 가벼운 쾌감을 유발하는 디자인,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며 호기심을 품게 되는 디자인에 약하다. 이러한 디자인은 일종의 예술로 느껴지기 때문에 감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현대적인 제품을 디자인할 때에는 경제적이긴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매력 없는 물건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간은 아름다운 대상에 끌릴 수밖에 없다.


    4. 혁신적인 디자인인가?

    현신적인 디자인이란 기존의 제품을 개선해서 이보다 월등히 앞선 것을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혁신적인 디자인은 규범에 도전하기 때문에 위험이 수반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훌륭한 작품들은 현대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


    5. 기대와 만족을 동시에 제공하는가?

    좋은 디자인은 소비자의 욕망과 욕구를 둘 다 채워준다. 이 두 단어는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잇지만 욕망이 훨씬 더 감정적이다. 꿈이나 비전, 온기와 소통, 행복과 성취감, 포근하고 안전한 느낌 등과 관련된 것이 욕망이다. 반면 욕구는 더 실용적이다. 이 둘 간의 균형이 중요하다.


    세계 곳곳에서 전기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 지금, 각 나라마다 그 분야에서 선두를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자동차란 필수적인 운송 수단이지만 이왕이면 세련되고 경제적으로 이득이며 지구를 보존하는데 기여한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소비자의 욕구와 욕망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역사가 100년이 넘는 기업일지라도 가차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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