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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심플한 관계가 좋다
저   자 : 한근태
출판사 : 두앤북
출판일 : 2019년 11월

  • 나는 심플한 관계가 좋다


    좋은 관계란 무엇인가

    인간관계에 대한 최고의 답

    관계란 무엇인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관계란 영어로 relation(릴레이션)이다. 어원은 re latum이란 라틴어다. 서로 참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관계란 것이다. 한자로 관계(關係)는 열쇠 관(關)에 이을 계(係)다. 열쇠로 잠그면 관계가 닫히고 열쇠로 열면 관계도 열린다는 의미다. 관계를 열쇠에 비유한 것이 절묘하다. 관계를 닫는 것도 여는 것도 열쇠를 가진 나에게 있다는 뜻이다. 계는 부모 자식처럼 피로 이어진 관계를 뜻한다. 피로 이어진 관계는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지는 부모와 자식, 형제와 같은 관계다. 나머지 관계는 후천적으로 맺어진다. 부부가 그렇고 친구, 동료, 이웃도 그렇다.


    그럼 좋은 관계란 무엇일가? 서로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관계, 서로에게 긍정적 자극을 주는 관계,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 서로의 강점을 빛나게 하고 약점을 보완해주는 관계, 내가 필요한 것을 그가 채워주고 그의 부족한 점을 내가 메워주는 관계,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고 내가 깨닫지 못한 걸 깨닫게 해주는 관계가 좋은 관계 아닐까?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사귀어봐야 한다. 만나자마자 그냥 사귀는 것이 아니고 몇 번 만나보고 교제를 허락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인품과 학식을 겪어본 뒤 본격적인 관계 맺기를 하는 것이다. 이를 ‘허교(許交)’라고 한다. 말 그대로 교제를 허락한다는 뜻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주변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세쿼이아나무처럼 서서히 죽어갈 수 있다. 주변과 두터운 관계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은 관계로부터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그게 인간이다.


    관계에도 수명이 있다

    대인관계 하면 보통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걸로 생각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과 모두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인생은 제한적이다. 제한된 사람들과 제한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가려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쓸데없이 인연을 맺지 않아야 한다.


    관계는 늘 살아 움직인다. 예전에 친했어도 지금은 만나지 않는 인연도 있고, 별 인연이 아닌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하는 인연도 있다. 모든 것에는 유통기간이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았던 관계도 유지하려는 노력과 정성이 없다면 퇴색하게 마련이고, 별것 아니었던 관계도 끊임없이 뭔가를 주고받으면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 그런 면에서 관계는 철저히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인연 맺는 걸 선호한다. 억지로 맺는 인연을 거부한다. 좋은 인연이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 만나게 될 것이고, 인연이 아니면 내가 노력해도 만남이 이어지지 않을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형님 혹은 언니라고 부르면서 급하게 친한 척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만났던 모든 사람, 새로 알게 된 사람과 인연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편이다. 학교 동창이 대표적이다. 40년 전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하고 당시에도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과 만나서 무얼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디어가 없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도 않다. 나는 오히려 대인관계를 심플하게 하고 싶다. 도의상, 의무적으로 만나는 것도 거부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시간이 부족할 판에 뭐 때문에 만나기 싫은 사람까지 만나 시간을 낭비하는가.


    그런 면에서 임경선의 책 『자유로울 것』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의리상, 도리상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것은 싫다. 의리나 도리란 건 대개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할 때 쓰는 말 아닐까? 만나기는 싫지만 그 사람에게 만족을 주고, 명분을 살리기 위해 지어낸 거 아닐까? 인간관계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 오랜 기간 우정과 추억을 나눴던 사람일지라도 현재 그 사람과 인연이 없다면 사실 무용지물이다.


    관계는 현재진행형이다. 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의미가 있다. 과거에 아무리 친했어도 현재 만나지 않고 인연을 이어가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사람으로 놔두는 것이 좋다.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떤 면에서 과거의 인연은 과거의 인연으로 놔두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소중한 추억이 손상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도 유통기간이 있다. 유통기간이 끝난 관계를 굳이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관계는 어떤가?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정답은 없지만 나는 열린 마음을 선호한다. 관계에서도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싶다. 과거완료형,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 지금 시작했지만 미래까지 갈 미래진행형,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미래에 만나 인연을 맺게 될 미래불확실형 등등. 나는 그중에서 미래에 누구를 만나 어떤 인연을 맺게 될지가 제일 궁금하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 진짜 이유

    인생의 과제는 자립하고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 살려면 인간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게 인생의 과제다. 일도 그렇다. 일하고 싶지 않은 것도 따지고 보면 노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얽힌 인간관계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의 비판과 질타를 받는 것, 무능의 낙인이 찍히는 것, 나의 존엄에 상처가 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그물망에서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그러면 주변도 달라진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과제를 분리하는 것이다. 나의 과제와 그 사람의 과제가 뭔지를 생각하고 이를 분리하면 대인관계가 달라지고 편해진다. 트러블의 대부분은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인정받는 것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에 목숨을 건다. 왜 그럴까?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자신감이 생기고 열등감이 사라진다. 하지만 인정에 목숨을 걸어서는 위험하다. 자칫하면 인정의 덫에 걸리기 쉽다. 사무실에서 쓰레기를 치웠다고 가정해보라. 동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인사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계속 쓰레기를 치우겠는가? 아마 치우지 않을 것이다. 인정 욕구의 위험이 여기에 있다. 오래가지 못하고 도리어 역작용이 일어난다. 금방 지치거나 원망이 생기고 분노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적절한 행동을 하면 칭찬받고 그렇지 못하면 야단맞는다’는 상벌교육의 영향 때문이다. 여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목표는 무엇일까? 공동체 감각(social interest)이다.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끼는 것이다. 사회의 최소 단위인 너와 나를 기준점으로 삼아 자신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잘 보이려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을 버려야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관계를 만드는 최고의 도구

    밥은 관계를 만드는 가장 좋은 도구다. 밥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밥은 관계를 다르게 만든다. 살벌했던 사이도 밥상을 중간에 놓으면 감정이 누그러진다. 형식적으로 만나던 사람도 같이 밥을 먹고 나면 느낌이 달라진다.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고 부탁을 할 때도 껄끄럽지 않다. 식사를 전후한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진다. 회의를 식사 전에 하느냐, 식사 후에 하느냐, 식사를 하면서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결론도 달라진다. 최선은 식사를 하면서 하는 회의다. 밥을 먹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 반면 식음을 전폐하고 하는 회의는 부정적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노사협상도 밥을 먹으면서 하면 훨씬 긍정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스태프와 주기적으로 밥을 먹는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먹는다. 밥을 먹으면 온갖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얘기, 사귀는 남자 부모를 만난 얘기, 동료 직원들 사이의 소문, 업무에 관한 얘기, 회원들의 대소사…. 그러면서 애정도 생기고 소통도 된다. 특별히 미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직원들과 거의 밥을 먹지 않는 상사가 있다. 그런 조직일수록 공식 회의를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하려 한다. 이걸 하라, 저걸 하지 마라, 위기에 빠졌으니 원가를 절감하라, 마케팅에 주력하라…. 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지고 추진력이 약하다. 애정이 없고 끈끈한 인간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식욕을 채우는 것을 넘어선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최고의 도구다.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적당한 떨어짐이 중요하다. 그의 모든 것이 알고 싶어도 참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다. 나도 살고 상대도 살 수 있다. 너무 밝은 불빛 아래서는 잘 수가 없다. 어두워야 편안하고 깊게 잠을 잘 수 있다.


    어항 속 물고기는 불행하다. 자기만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드러낸 삶은 불행하다.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것이 있고 감춰야 할 것이 있다. 마음속 다락방이 필요하다. 몰라서 생기는 비극보다 알아서 생기는 비극이 더 많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서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알아도 모른 척 상대가 얘기하지 않으면 굳이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다락방을 인정해야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항상 함께 있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보게 되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실망하게 되고 관계가 나빠진다.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리움을 갖고 싶다면 적당히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그리움은 떨어져 있을 때 생긴다.


    자주 만나는 게 좋을까?

    좋은 관계가 주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만 지나치면 피곤하다. 너무 복잡한 관계,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관계, 성장을 방해하는 관계, 의무감에서 맺는 관계 등이 그렇다. 그래서 ‘관태기’라는 말까지 생겼다. 관계와 권태기를 붙여 만든 말이다. 지루한 관계, 권태로운 관계라는 말이다.


    관태기에서 벗어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주 만나는 것보다는 가끔 만나는 것이 좋다. 또 관계도 발전적으로 이끌어가는 게 좋다. 의무감에서 만나는 것보다 만나면 유익하고 활력이 생기는 그런 관계가 이상적이다.


    주기적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걸 택하는 편이다. 서로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으면 만나는 횟수가 줄면서 저절로 멀어진다. 그게 바람직한 것 같다.


    “관계는 맺는 것 못지않게 끊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이다.



    관계를 망치는 것들

    열린 관계의 적들

    하지만 불평을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불평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지도 못한다. 사람들은 불평에 관심이 없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들어줄 수 있지만 불평이 반복되면 다들 그런 사람을 피할 것이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좋은 얘기도 자꾸 들으면 피곤한데 허구한 날 불평 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줄 사람은 없다. 나이 든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경우는 할 수 없이 듣고 있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한다. 하루 종일 누군가의 불평을 들으며 산다고 상상해보라. 죽음이다. 불평은 대인관계를 해치는 최대의 적이다.


    험담도 관계를 악화시키는 적이다. 험담을 하면 당장은 후련하다. 누군가와 함께 다른 사람에 대해 뒷담화를 하다 보면 동지의식이 생기고 친해지는 것 같다. 가짜 우정이고 불량접착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정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 불가하다. 오래가지도 못한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좋아해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공동의 적이 있어 일시적인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강요(强要) 역시 대인관계를 해친다. 강요는 글자 그대로 강제로 요구하는 것이다. 상대는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술병을 들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는 건 괜찮지만 술을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그러는 건 일종의 폭력이다.


    논쟁도 좋지 않다. 대인관계의 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쉽지만 영양가 없는 일이 쓸데없이 따지고 논쟁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도 없고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그게 인간이다. 설혹 겉으로는 설득당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마음속으로는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쓸데없이 따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동의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좋다.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늘 따지고 반대하는 사람은 상대의 자부심을 끌어내린다. 상대 의견에 토를 달고 논쟁하는 것은 그때마다 상대의 지식과 능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논쟁을 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일시적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느낌 정도일 것이다. 반대로 상대의 말에 온화한 표정으로 동의해주면 그 사람은 높이 평가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동의는 상대의 자부심을 높여준다.


    친구보다 적을 관리하라

    당신의 인맥은 어떤가? 친구의 숫자 대신 적의 숫자를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적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친구보다 적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친구 덕분에 성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적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은 많다.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지고 관리해야 할 사람은 나를 미워하는 이들이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 오해는 풀고 잘못은 사과하면 된다. 예의와 친절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의 내면에 깃든 ‘욕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이 아닌 내면의 숨은 욕구에 주목하면 적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는 있다. 좋은 인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숫자를 줄이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관계는 어떻게 행복에 이르는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가는 사랑이 오는 사랑을 만났을 때 가장 행복하다. 부부관계의 행복이 바로 그렇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나를 좋아할 때도 행복하다. 부모와 자식이 그렇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관계에 달려 있다.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도 다르지 않다. 관계가 좋아야 서로 행복하다. 반대로 가장 힘들고 불행한 경우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다. 혼자 하는 사랑은 고독한 고통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랑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결정은 결혼이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배우자 한 사람이 아니라 그와 관계된 사람들 모두를 아우르는 관계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받은 기억으로 산다. 인생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언제나 사람과 관계에서 온다.


    나는 죽을 때 내가 받았던 사랑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전에 바람이 있다면 살아생전 내가 장인어른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두 딸과 사위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느꼈던 깊은 사랑과 충만한 감사를 그들도 느끼게 하고 싶다. 그러면 그들도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또다시 자손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행복을 만드는 관계의 보약

    그런데 힘든 얘기를 들어주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만날 때마다 힘든 얘기를 들어야 한다면 만남이 고통이다. 그럼에도 힘든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성숙한 사람이다. 고통을 참고 상대의 이야기를 받아준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대인관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대화의 첫걸음은 잘 듣는 것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가 한 말을 반복해서 되받아주고, 그 심경을 대신 표현해주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때로는 질문하고 때로는 공감을 표하며 온몸으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것이 없다. 늘 불안하고 억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최고의 보약이다. 반대로 대인관계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상대의 아픈 데를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망칠 수 있다. 힘겹게 살고 있는 친구에게 “너는 왜 사는 꼬락서니가 그 모양이냐?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라고 말해보라. 단번에 그 친구는 나의 적이 될 것이다. ‘나는 왜 사는 게 이 모양일까? 뭐가 잘못된 걸까? 정말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보고 생각한 대로 콕콕 찔러주듯 던지는 말은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이 되거나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위로받고 싶어 한다. 자신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섣부른 충고나 조언을 해주는 대신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마음, 공감하려는 반응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만들고 행복으로 이끈다.


    가장 아름다운 인연

    오늘의 우리는 저절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수많은 인연 덕분에 만남 덕분에, 자연의 은덕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다. 대표는 어머니다.


    ‘우리는 흔히 천사를 날개달린 성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하고, 악마를 눈이 충혈되고 두 개의 뿔을 가진 흉측한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 천사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천사가 실제 날개를 가진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모든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그를 기꺼이 맞을 것이다.


    모든 천사는 평범한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고 모든 악마들도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수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 내 곁에 살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며 부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천사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 바로 우리 이웃의 얼굴에, 함께 부대끼며 이 복잡한 속세 지옥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들 어깨 위에 천사는 언제든지 그 날개를 접고 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조금 마음을 열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면 모두 보이지 않는 날개를 지닌 천사가 될 것이다.’


    천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그 낯선 주변의 천사들을 잘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천사처럼 되어갈 수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이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가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가이다. 가족도 그렇고 직장 동료도 그렇다. 죽은 사람보다 비참한 존재는 잊힌 사람이고, 잊힌 사람보다 못한 존재는 나쁘게 기억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살아 있는 동안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장수한 사람들을 보면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대인관계가 넓고 깊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과 장수의 비결이다. 당연한 얘기다. 사람은 관계 덕분에 행복하고 관계 때문에 불행하다.


    인생에서 인연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 좋은 인연이 행복한 인생을 만든다. 아름답게 가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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