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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저   자 : 리우스(역:이서현)
출판사 : 힘찬북
출판일 : 2019년 11월

  •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노자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빵은 어디서 왔을까?

    아직 자명종도 울리지 않은 시간 잠을 자던 민경의 머릿속에 오늘은 평소와 다른 날이 펼쳐질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룸메이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을 떴지만, 기숙사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울리는 휴대전화 벨 소리에 다시 잠이 들려던 민경이 전화를 받았다. “대단한 사람이 왔어! 빨리 와 봐!”


    재빨리 책상에 놓여 있는 빵을 들고 기숙사에서 나온 그녀는 허겁지겁 강의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교수가 자신을 소개하느라 아직 수업을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민경은 살금살금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학생들과 교수 모두 그녀를 주시했다. 교수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강단 앞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가 강단 앞으로 걸어가자 교수가 민경의 손에 있던 빵을 빼앗아 갔다. “이제 수업을 시작할 거니 저쪽 자리에 가서 앉게. 강단 아래 자리는 이미 다 찼으니까.”교수가 강단 한쪽 구석에 놓인 자그마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멍하니 넋 놓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자리’로 걸어가면서 앞에 있는 교수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늙은 교수는 정확하게 도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수업은 빵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도록 하지. 학생. 빵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빵은 어제 친구가 사 온 걸 먹고 남은 거예요.”민경이 뻣뻣이 서서 대답했다. “하하하 내 말은 빵 자체가 어디서 왔냐는 거네.” “빵은 밀가루로 만들죠. 그리고 밀가루는 밀을 가루로 만든 거고요. 그러니까 밀을 가공해서 밀가루로 만든 뒤 물과 함께 섞으면 빵이 돼요.” 교수가 웃으며 민경에게 앉으라고 말했다.


    민경이 앉자 교수가 마른기침하며 목청을 다듬은 뒤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방금 이 학생의 대답은 빵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말한 것이자 인류가 빵을 만들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할 것이네. 그럼 빵이 아닌 하늘과 땅, 해와 달, 별과 행성, 새와 짐승은 어디서 온 걸까? 하늘과 땅은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변화하고, 해와 달은 사람이 없어도 알아서 빛나고, 별과 행성은 사람이 없어도 질서에 따라 운행하며, 새와 짐승은 사람이 없어도 공존해 살아가지. 이것이 바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이치라 생각하지 않는가? 교수가 인자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계속 말했다.


    “아주 오래전 어떤 물건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다네. 그것은 소리도 형체도 없었지만 홀로 서서 변하지 않았고, 위태롭지도 않아 천하의 어머니라 할 만 했지.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하기에 내 마음대로 ‘도’라는 글자를 붙이고, ‘크다’(大 )라는 이름을 지어줬네. 그것은 아주 커서 움직였고, 또 움직이기에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멀어져서 되돌아왔지.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 또한 큰 것이라네. 세상에는 큰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사람이 그중 하나지. 그래서 사람은 땅은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은 본받는 것이야.”


    “그럼 우주의 변화법칙은 무엇일까?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법칙이지.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역시 도에서 온다네. 사람은 어디로 갈까? 당연히 도로 되돌아가지. 아까 답변했던 학생도 이제 빵이 어디서 오는지 알겠지?” 그러자 민경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도에서 와요!”


    “그렇지! 천지 만물이 생겨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혼돈 상태였다네. 이 혼돈이 우주인 하나를 낳았지. 하나인 우주가 나누어져서 하늘과 땅, 해와 달인 둘을 낳았지. 그리고 다시 둘인 해와 달이 오행과 교감하고 천지와 화합하여 서로 부딪치는 것들을 하나로 통일한 셋을 낳았어. 이렇게 서로 부딪치는 것들을 통일한 덕분에 더울 발전된 형태의 사물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만물이지.”


    빵은 왜 만두가 아닐까?

    “조금 전 우리는 우주 만물의 근원인‘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사물들은 모두‘도’로부터 시작됐다는 것까지 말했지. 자, 이번 시간에는 그‘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세.”


    “도는 만물의 오(奧)라네. 여기서‘오’는 집안에서 가장 깊숙하게 위치한 존귀한 장소를 말하지. 그러니까 도는 만물의 가장 깊숙하고 존귀한 장소에 있다네. 이러한 큰 도는 아주 커서 좌우를 모두 아우를 수 있고, 만물이 자신에 의지해 생겨나는 걸 피하지 않으며, 공을 세워도 갖지 않지.” “도는 모든 것의 중심이기에 어떤 사물에도 의지하지 않지만, 사물은 모두 도에 의지해 존재하지. 그래서 어떤 사물이든 도를 떠난다면 그 존재의 근거를 잃게 되는 거라네.”


    노자 교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단 아래 있던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도는 만물의 근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일상생활에서 도에 근거해 이루어진 사물이 있나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들고 계시는 빵도 도의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던 노자 교수가 말했다. “좋은 질문이군. 우리가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자세히 바라본다면 그것들이 존재하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고, 그 근거가 바로 도인 거지.”


    “천지 만물이 도에 근거하지 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도가 없으면 하늘은 맑지 못해 찢어지고, 땅은 평안하기 못해 붕괴하며 사람은 영명함을 유지하지 못해 천천히 멸종되며, 골짜기도 물이 흐를 수 없어 말라 버리게 되지. 풀과 나무, 모든 만물이 성장하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이라네. 그럼, 사람도 더는 이 세상에 살 수 없게 되겠지. 빵도 이 세계에 속한 사물인 만큼 도에 근거해 존재하는 것이네. 도가 빵의 내용을 다르게 부여했기 때문에 빵의 형태가 다른 사물과 다른 것이고 만두와도 구별이 되는 것이네.”


    “세상에는 모순되고 대립하는 게 많지. 도는 모순되고 대립하는 것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지만 모순되는 양쪽은 모두 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네. 또 도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차별성을 가진 사물들도 모두 도에 의지해 생겨난 것들이지. 세상 만물이 모두 제각기 다양한 형태와 특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도를 통해서 자신만의 특별한 본질을 얻었지 때문이야.” “이처럼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물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지만 도는 영원히 변치 않고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며 존재한다네.”


    아리스토텔레스 ‘행복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지. 나는‘선’을 주고 세 가지 종류로 분류를 하네. 하나는 외재적 선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 선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혼의 선이네. 이 세 가지 선 중에서 영혼의 선이 가장 높고 고귀하지.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바로 가장 높고 고귀한 영혼의 선에 있네. 외재적 선이나 육체적 선은 행복을 보완한 뿐이고 진정한 행복은 영혼의 선이라 할 수 있어. 그래서 가장 고귀한 행복은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지. 그렇다면 행복과 즐거움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아리스토텔레스 교수가 말을 멈추고 사람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즐거움은 행복이 기초가 아닐까요? 즐거운 사람이 행복해지기도 쉽고, 즐겁지 않은 사람은 행복해지기 어려우니까요.”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침묵을 깨고 대답하자 아리스토텔레스 교수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은 즐거움과 함께 오지만 즐겁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행복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즐거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면의 즐거움에서 오는 거라 생각해요.” 강의실을 감싸던 침묵이 깨지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일어나서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행복은 영혼의 지극한 선인만큼 당연히 내면에서 오는 것이지. 그리고 행복은 미덕에 부합하는 행동을 통해서도 오네. 이 점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해해 볼 수 있지. 먼저 첫 번째 부분은 행복은 미덕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네. 한 사람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이 미덕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 있지.


    여기서 미덕은 일종의 선이므로 한마디로‘선’을 행하는 사람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네. 미덕을 아는 측면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 실현할 수 있다는 거지. 공정한 일을 실천해 공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절제를 통해 절제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용감한 일을 해서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듯이 행복도 미덕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네.”


    “내가 말하는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최종적인 행복이네. 가진 것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삶을 즐길 수 있으므로 행복해질 수 있지. 이렇듯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모든 선한 일 중에서 가장 높은 선택이라 할 수 있네. 물론 행복을 단순하게 자신의 행동에만 기대기는 부족하지. 여기에도 외부의 조건이 필요하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건강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외부조건은 단순히 행복을 보충해 주는 정도이네. 사람은 세상을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할 수 있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 존경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어. 이렇게 미덕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아리스토텔레스 교수가 숨을 고른 뒤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행복한 생활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눠서 볼 수 있네. 쾌락적인 삶, 정치적 삶, 관조적인 삶이지. 즐거움으로 만족을 찾는 쾌락적인 삶은 주로 동물적인 본성을 추구하는 삶이라 할 수 있고, 정치적 삶은 끊임없이 재산과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삶으로 두 가지 모두 선에 부합한다고 할 수는 없네.


    마지막으로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관조적인 삶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장 좋은 삶이라 할 수 있네. 그리고 관조적 삶은 행복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방법이라 할 수 있지. 스스로 만족하고 여가를 즐기며 관조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네. 관조적 삶은 외부 환경에 의지하지 않고 한걸음 떨어져 스스로 만족하고 여가와 사색을 즐기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네. 앞으로 여러분도 이런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군. 이것으로 내 수업을 마치도록 하지.”



    루소 ‘사회계약론’

    자연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새로운 주가 시작되자 민경이 일찌감치 강의실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강단에 선 교수는 풍기는 분위기가 독특한 것 같았다. “내가 봤을 때 우리는 모두 일정한 사회형태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러한 사회형태는 모두 일정한 사회질서를 가지고 있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질서는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네. 나는 이 점이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이러한 결합과 질서는 어떻게 구축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필연적인 합의가 필요하겠지. 약속을 통해 사회형태에서 양측이 결합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걸 사회계약이라 부르네.” 사회계약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민경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교수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이전 철학가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존재하는 노역과 통치의 관계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 보았지. 하지만 나는 이게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 생긴 착각이라고 생각하네. 예를 들어 태어났을 때부터 노예인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인위적인 노예제도가 존재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결코, 자연적으로 형성된 관계는 아닌 거지. 힘으로는 사회질서를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네. 왜냐하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힘을 권리로, 복종 의무로 만들지 않는 이상 그 힘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물론 힘은 진정한 권리가 될 수 없네. 왜냐하면 그렇게 만들어진 권리는 힘이 위력을 잃어버릴 때 같이 소실되어 버리거든. 기존의 힘이 다른 새로운 힘에게 제압될 때 기존의 힘이 가지고 있던 권리도 새로운 힘에게 넘어가 버리지. 만약 힘을 사용해 억지로 복종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의무감을 가지고 복종하지 않게 되고, 복종을 강요받지 않는 순간 복종하지 않게 되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억지로 복종했던 사람들은 두려워하던 힘이 사라져 복종을 강요받지 않는 순간 복종할 필요가 없게 되는 거네.


    하지만 생각해보게.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나 혼자서 숲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떨 것 같나? 사나운 맹수들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나? 그러니 자연 상태의 인류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었네. 그 새로운 방식은 힘을 모아서 서로를 보호하는 방식이었지. 이와 같은 연합을 통해 사람들은 공동의 힘으로 구성원들의 건강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런 연합 형식에서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만 복종했기 때문에 여전히 이전과 같은 자유를 가지고 있었지.


    이러한 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의하는 것이네. 이 합의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고‘주권자’의 지도하에 도는 것이지. 여기서‘주권자’란 뭘 말하는 것이겠는가?” 루소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질문하는가 싶더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강의를 이어갔다.


    “나는‘주권자’가 가장 많은 사회 구성원을 가진 도덕인 공동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이 공동체에서의 합의는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렇게 통일됨으로써 통일성과 공동의 자아, 생명, 의지를 얻게 되지. 이러한 공동체가 여러분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거야. 나는 이것은‘국가 또는 정치 집단’이라고 부르고, 이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을 집합적으로 국민이라 부르고, 주권의 권위를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시민, 국가의 법에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신민이라 부르네.”


    막힘없이 수업을 이어가던 루소 교수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교실 한쪽 구석에서 어느 여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루소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학생이 말했다. “이런 사회계약이 사람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유 본성을 잃게 하고, 사회에 구속되게 하는 거 아닌가요? 사회계약을 맺는다는 건 사람이 자유를 잃게 된다는 의미잖아요?” 루소 교수는 학생의 질문이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질문은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군. 그리고 동시에 내가 다음에 말할 주제이기도 하지. 물론 인간은 사회계약으로 원래의 자유와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권리를 잃게 되었다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잃음으로써 인류가 얻은 건 없을까? 이러한 것들을 잃음으로써 인류는 사회적 자유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소유권을 얻을 수 있었다네.


    사회계약에서 사람은 모두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계약적 자유를 얻게 되네. 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 집단에 넘겨주어야 인류는 비로소 평등한 계약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거지.”


    우리 모두 국가의 주인

    “계속해서 사회계약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하지. 먼저 여러분은‘전체 의견’과‘만인 의견’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제가 봤을 때‘전체 의견’은 사회 시민 집단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고, ‘만인 의견’은 좀 더 넓은 범위인 대중의 의견과 생각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맨 앞줄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말했다.


    “‘만인 의견’같은 경우는 사회에서 일부 특수한 집단의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그러자 다른 학생이 일어나서는‘전체 의견’에 대한 것은 앞에 학생의 의견에 동의하는지‘만인 의견’에 대한 생각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전체 의견’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만인 의견’에 대해서는 표면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범위도 가지고 있지 않구나. ‘전체 의견’은 국민의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국가 전체 구성원의 공통의지라 할 수 있지. 그래서 이건 영원한 진리와 같은 절대 개념이라 할 수 있네.


    많은 사람들이‘전체 의견’과‘만인 의견’의 개념을 헷갈리는데 본질에서 두 개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네. ‘전체 의견’은 공동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반면‘만인 의견’은 개인의 이익에 중점을 두지. 그래서 ‘만인 의견’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체의 의견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개별적 의지의 총화일 뿐일세. ‘전체 의견’은 정확한 동시에 공공의 이익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계약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네. 그렇다면 사회계약을 통해 형성된 국가는 누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까? 답은 모두가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이네. 설사 주권자라 할지라도 그 행위는 국민의 의지의 표현일 뿐이거든.”


    “바로 이 점에 근거해 나는 국가의 주권은 시민에게 있으며, 동시에 국가는 시민이 가진‘전체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국가’는 민중의 집합체이자 공동의 인격이라 말할 수 있지. 민주적인 국가는 사회계약의 규정에 따라 형성되고, 사회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은 모두 전체 의견으로 결정되는 내용을 평등하게 따라야만 하네. 여기서 시민주권은‘전체 의견’을 행사하는 수단이므로 절대 양도할 수 없고, 분할될 수도 없네. 그러니 절대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며,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신성한 동시에 대체될 수 없네.


    주권은 양도할 수 없고, 국가는 주권자에 의해 구성되므로 주권자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 이러한 주권이 불할 될 수 없는 이유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전체 의견’이 전체적이기 때문이네. 그러니‘전체 의견’을 행사하는 주권도 분할될 수가 없지.


    국가는 사회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생겨나므로 계약에 참여한 시민은 모두 국가의 주체가 되는 걸세. 종합해서 설명해 보자면 국가의 주권은 분할될 수 없고 양도될 수 없으며 모든 주권의 표현과 운용은‘전체 의견’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셈이야. 그러니 시민의 주권으로 행사되는‘전체 의견’은 개인이나 집단을 대표할 수 없지.


    바꿔 말하자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나라의 주인이라 할 수 있어. 여러분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자격이 있다네.” 이 말을 듣는 순간 민경은 정치학 수업에서 배웠던 시민의 주권원칙이 루소 교수의 이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등은 어떤 상황에서 사라질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고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불평등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지. 여러분은 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이번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뤄볼 생각이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민경은 먼저 자신의 생활 속에 있는 불평등한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같은 노력을 했는데도 돈이 있는 사람은 잘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고생한다. 누군가는 몇 마디 말로 큰돈을 벌어들이고, 누군가는 밤낮없이 일해야만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민경에게 불평등은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의 근원을 탐색할 필요가 있네. 물론 인류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고고학자처럼 전문적으로 연구할 필요는 없지. 먼저 인류의 자연 상태부터 탐구해 보도록 하지.


    인류는 자연에서부터 기원했으므로 인류의 자연 상태를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연구 자료가 부족하므로‘가장 진실에 근접한 추측’으로 인류의 자연 상태 및 이러한 상태에서 인류가 평등한 상황이었는지를 논술하도록 하지.”


    “가장 원시 상태에서 인류의 생활 구조는 가장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네. 인류는 강인한 체력에 의지해 생존했으며, 동시에 야수의 본능을 참고해서 자신의 생존 상태를 개선해나갔지. 그리고 정신 상태에서 인류는 순수한 정신 활동은 없었지만, 사유 능력 방면에서는 야수들보다 높았다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에서 봤을 때 나는 인간이 주체적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핵심은 인류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하는 능력이 있다는 데 있지.


    나는 이 능력이 인류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 보네. 이 능력으로 인류는 점차 자연의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상태로 들어서기 시작했지. 자연 상태에서 인류의 사회성은 아주 미미했어. 원시적인 자연 상태에서 인류는 손짓이나 고함으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사회에 갖추어짐에 따라 의사소통의 범위가 넓어지고 전문화되면서 언어가 형성되기 시작했지.


    도덕에 대한 개념도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지. 이 당시 인류는 도덕이나 의무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네. 만약 굳이 최초의 자연 상태에서 도덕의 영향을 찾는다고 한다면 연민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네.


    그래서 자연이 인류 불평등에 미친 영향은 별로 크지 않네. 자연 상태는 인류가 정말로 행복했던 시기이며, 인류의 청춘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자연 상태에서 우리는 인류 불평등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으니 인류의 사회 상태에서 답을 찾아야겠지.


    앞서 언급했듯이 인류가 가진 스스로 완전해질 능력이 인류가 자연 상태에서 나와 사회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지. 나는 이 능력 때문에 인류가 불행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자아를 완성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차이가 갈수록 두드러졌을 것이네. 악한 세력이 강한 세력의 도움이 필요해졌을 때가 바로 인류 불평등의 첫걸음이자 타락의 첫걸음이었던 셈이지.”


    “사회 분업의 출현은 교역이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 되게 했네.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사유제가 점차 사회에 승인을 받기 시작했고, 이것은 또 최초의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 내었고, 자연법과는 다른 권력의 소유권을 만들어 내었지. 그래서 이익에 쫓기면서 인류는 거짓되고 악해졌으며 재산을 위해서 서로 경쟁하게 되었네. 부자는 더 많은 재산을 가지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고 자신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을 제정하기 시작했네.”


    “정부의 건립은 시민과 지도자 사이의 협의이고, 이 협의에서 사람들의 의지는 하나의 통일된 의지가 되었네. 정부의 관리는 시민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모든 사람의 안전과 평등이 보장받고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 될 수 있네. 하지만 야심을 가진 권력자들은 각종 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직위를 세습하려하는 동시에 시민이 종속시켜 시민의 노역으로 자신의 삶의 안전을 유지하려 하지. 이 때문에 바로 전제권력이 생겨났고, 인류의 불평등이 최고조에 다다랐네.


    불평등이 초래된 진정한 원인은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신의 생존만을 신경 썼던 것과 다르게 사회 상태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생활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네. 여러분도 현대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자연의 본성을 유지하며 사회의 풍습에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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