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말고 내 콘텐츠
 
지은이 : 서민규
출판사 : 마인드빌딩
출판일 : 2019년 12월




  • 자고 나면 신기술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쏟아지는 시대다. 경험이 없는 사회 초년생도 탄탄한 경력을 쌓아 왔던 기성세대도, 변화의 바람 앞에서 커리어에 대해 필연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커리어의 절벽 앞에 섰던 저자가 절망 대신 콘텐츠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콘텐츠로 만들어서, 콘텐츠 자본가로서의 커리어를 당당하게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회사 말고 내 콘텐츠


    커리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커리어 절벽에서 콘텐츠 만들기

    커리어는 사회적 탯줄이다. 커리어는 개인이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오래된 존재 양식이다.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이 끊어지면 아기의 기존 호흡 방식과 영양분을 공급받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커리어가 끊어졌다는 것은 세상과 연결될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하고, 회사라는 테두리 바깥쪽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나는 우주선 본체에 연결된 로프가 끊어진 채 중력을 잃어버린 우주인처럼 마구 헛돌았다. 중력을 느낄 수 없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어딘가에 매여 있을 땐 그로 인한 구속감을 느끼지만,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을 때는 어디가 바닥인지 모른 채 계속해서 떠도는 감각만 남는다. 발을 뻗어도 디딜 곳이 없고 무게 중심을 잃고 계속해서 떠돌기만 한다.


    나는 여러 회사에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한 회사에서 발표가 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게 맞는 다른 자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원하고 또 지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계속해서 그 방법을 고수할 수는 없었다. 다른 길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세상에 연결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커리어를 가진 사회인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갈고 닦았던 나만의 무기들을 모두 늘어놓고 살펴보았다. 탯줄이 끊긴 지금, 그 무기들을 재조합하여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 이름이 들어간 콘텐츠가 있으면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고민이 많이 필요해 보였고, 고민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도 필요했다. 도서관이 제격이었다. 일상에 불어닥친 변화에 어지러움을 느끼다가 모교를 찾았고, 다행히도 만 원만 내면 졸업생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생겼다.


    어느 날 돌아보니 ‘오늘도 콘텐츠 만드는 궁리를 하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콘텐츠 만들 궁리를 할’ 나의 일상이 꽤나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혼돈으로 가득한 생활에 조금씩 질서가 잡혔다. 단조로운 질서였지만 상당히 안정감을 주는 질서였다. 더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만들고 있는 콘텐츠의 내용도 윤곽이 잡혔고, 생활은 점점 안정되어갔다. 우주 속을 떠도는 것 같은 멀미감에서 벗어나서 처음 진입한 평온한 구간이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변화 관리 원칙이었다. 퇴사 후 완전히 바스러져서 가루가 됐던 나의 의욕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흩어지지 않도록 도서관에서 집요하게 모으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모아진 가루에 성냥 한 개비를 켜서 불을 붙여보니 간신히 불이 붙었다. 가루가 되었던 의욕이 모여 다시 심지가 되는 시간이었다.


    콘텐츠 자본가의 시대

    전통적인 커리어 자본과 내가 말하는 콘텐츠 자본.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뉴포트를 살펴보면 두 자본의 특징이 보인다. 먼저 전통적인 커리어 자본은 대표적인 경합재 rival goods 다. 뉴포트가 교수 자리를 차지했으니 다른 지원자는 그 교수 자리를 얻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전통적인 커리어 자본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이 자본은 위로 갈수록 끝이 뾰족해지는 피라미드를 닮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며, 더 높은 포지션을 얻기 위해 삶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도 늘어난다.


    전통적인 커리어 자본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쏟아부어야 하는 치열함이 있어야 하지만 여기에는 위태로운 지점이 있다. 전통적인 커리어 자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가상각이 된다. 특히 다른 업계로 이직을 해야 한다면, 그간 쌓은 커리어 자본은 많이 깎여나간다. 또 정년은 줄어들었지만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앞으로도 일해야 할 날들이 많아진 것을 고려할 때, 이 자본은 휘발성도 큰 편이다.


    반면에 콘텐츠 자본은 비경합재 nonrival goods 다. 내가 콘텐츠 자본을 얻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일자리가 위태롭게 되지는 않는다. 또 콘텐츠 자본은 본래 전통적인 커리어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자본이다. 뉴포트가 만든 6편의 콘텐츠 주제는 모두 그의 전공과목인 ‘분산 알고리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콘텐츠 자본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인 커리어를 갖지 못했다고 해도 콘텐츠가 커리어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뉴포트는 『딥워크』가 베스트셀러가 된 후, 이 콘텐츠를 토대로 여러 기업에 컨설팅과 강연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각각의 콘텐츠가 다양한 커리어로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커리어 자본이 전통적인 직장생활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콘텐츠 자본을 통해서 커리어를 만드는 길이 생겨난 것이다.


    콘텐츠는 새로운 결과를 창출한다. 콘텐츠 자본가는 콘텐츠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그 콘텐츠를 매개로 세상 속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든다. 콘텐츠가 탁월하다면 세상으로부터 매력적인 제안을 받을 것이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에 제안해 볼 기회라도 얻게 된다. 세상에 제안하거나 세상으로부터 제안을 받는 상황을 만든 후, 계속해서 자신의 콘텐츠 자본을 확장해나가는 것이 콘텐츠 자본가의 일이다.



    시작이 힘든 이유

    한 조각짜리 퍼즐판 만들기

    의욕을 갖고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고 할 때 만나는 함정이 있다. 걸작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멋지게 준비한 다음에 세상에 대작을 내놓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단번에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진다. 나도 그랬다.


    내가 맨 처음으로 책이라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했을 때 떠오른 제목은 기록의 심리학이었다. 몇 년간 기록을 해오면서 내게 일어난 변화 가운데 심리적인 측면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기록과 심리학 두 가지 요소를 엮어내면 왠지 걸작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을 진지하게 머릿속으로만 고민했다. 어느 모임 자리에서 드디어 그 아이디어를 꺼내 보았고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미 뭔가를 이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몇 개월을 질질 끌다가 정말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우선 노트를 꺼내서 뭐라도 쓸 만한 재료가 있는지 내가 기록과 심리학에 대해서 아는 내용을 모조리 적어 보았다.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리학 전공을 한 적도 없는 데다가 심리학 교양서라고는 서너 권 읽은 게 전부인 내 머릿속에서 나올 만한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문장을 끄적끄적 적어봤지만 매끄럽게 이어질 리가 없었다. 기록과 심리학을 함께 다루는 것은 내게 역부족이었다. 내가 쓴 글은 해상도가 한참 낮은 모니터 같았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때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여겨지지만, 생각을 글로 옮겨보면 내 수준이 명확해진다. 의미가 갖춰진 완결성 있는 문장으로 옮겨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생각의 해상도가 낮을 때는 쓸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다. 내가 뭘 쓸 수 있긴 한 건가? 하는 의구심에 실망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걸작을 만들자.라는 생각을 내가 쓸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로 바꿨다. 내 손에 이미 쥐어진 주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음먹었을 때, 당시 에버노트에 매일 남겨온 1,000일의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습관을 통해서 내게 생긴 변화를 돌아보았다. 뚜렷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키워드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콘텐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세상을 뒤흔들 걸작과는 아직 한참 거리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쓸 수 있는 주제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훈련은 빈칸에 꼭 맞는 퍼즐을 찾는 훈련이었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들 때는 그동안 해온 이 훈련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퍼즐판을 통째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몇 조각짜리 퍼즐판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고 시작한다. 20조각인지, 200조각인지 알 수 없다. 이 막연함은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막연함은 지금 콘텐츠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 바뀌게 된다. 이 막연함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콘텐츠 만들기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자주하는 조언이 있다. 몇 조각짜리 퍼즐판을 만들지 고민하는 대신에 분명한 한 조각의 퍼즐판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최소한 내가 이만큼은 이야기할 수 있다. 싶은 한 토막의 글이 한 조각이다. 그렇게 첫 번째 퍼즐을 바닥에 놓는다. 그러면 막연함이 조금은 사라진다. 그 한 개의 퍼즐과 면이 맞닿은 네 방향의 다른 퍼즐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기기 때문이다. 상황이 약간은 나아진 것이다. 여기부터는 자신이 뭘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윤곽을 잡는 게 수월해진다.


    이렇게 점차 퍼즐 만들기를 하다 보면 나중엔 내가 몇 조각짜리를 만들 수 있는지 감이 온다. 이후부터는 좀 더 정교하고 그럴듯한 퍼즐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첫걸음을 뗀 다음에야 이뤄진다. 누구라도 결작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지만, 콘텐츠를 처음 만들려고 할 때는 100억대 자산가가 자산 운용을 하듯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6개월에 1,000만 원 모으기 같은 프로젝트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콘텐츠 생산으로 가는 3단계

    퇴사학교에서 만난 300여 명에게 수업을 신청한 이유를 물었다. 그때 가장 많이 나왔던 대답은 관심사가 너무 많아서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양질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는 건 당연하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 콘텐츠들에 반응하기에 바빠서 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자꾸 어려워진다. 취향의 확장이지만 콘텐츠의 공습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소비, 생산적 소비 그리고 바로 생산의 단계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점검하는 것이다. 재테크 도서의 1장은 언제나 같은 조언으로 시작된다. 돈을 모으려면 먼저 나가는 돈부터 파악하라는 것이다. 들어오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나가는 돈은 너무나 많다. 나가는 돈부터 막아야 월급이 쌓이는 것처럼 관심사 계좌도 마찬가지다. 돈이 줄줄 새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이체 내역을 살피게 된다. 마찬가지로 관심사 계좌에 자동이체로 등록해 둔 것들도 점검하고 해지해야 한다.


    내 태그에 대한 주제 이외에 나머지 관심사는 줄여 나가는 것이 좋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면 즐겨찾기를 정리하고, 구독을 취소하고, 읽지 않는 편이 낫다. 주의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주 적은 관심을 쏟는다고 생각하지만, 만 원을 백 번 쓰면 100만 원이라는 목돈이 나가는 것처럼, 주의력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들을 통제해야 나만의 태그에 집중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콘텐츠는 더 많이 쏟아질 것이다. 거기에 충실하게 반응하기만 바쁘다면 내 콘텐츠를 만들 시간과 에너지는 앞으로 더욱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콘텐츠 소비에 대한 다이어트를 하고 나면 다음 단계인 생산적 소비를 시작할 수 있다. 생산적 소비는 나중에 만들 콘텐츠를 염두에 두고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해 오던 소비 방식을 약간만 바꿔서, 소비하는 콘텐츠에 내 생각을 조금씩 덧붙여 보는 것이다.


    생산적 소비를 하다 보면, 이렇게 끄적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와 이렇게 쌓아두면 나중에 뭐라도 될 거야. 하는 두 생각 사이를 오가게 된다. 뭐든 할 것처럼 소비하고 뭐든 만들 것처럼 콘텐츠를 쌓아두는 것은 어느 정도는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다. 처음 엔 자신 없어도, 정말로 뭔가 만드는 시점에 이르면 모아 두길 잘했다. 하는 환호가 절로 나온다. 요리하는 사람들은 안다.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몰라도 수시로 재료 손질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막상 차려 먹을 게 없을 때 얼마나 유용한지 말이다. 생산적인 소비를 하면 조금씩 부은 적금을 나중에 목돈으로 돌려받듯이, 그동안 쌓아둔 콘텐츠들이 내 것을 만들 때 큰 밑거름이 돼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산의 단계다. 2016년 여름, 에버노트 강의를 통해 만났던 수강생이 있다. 이분은 고전 문학을 무척 좋아하는 분으로, 상당히 많은 문학 작품을 읽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같은 책의 같은 부분에서 동일한 감동을 받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분이 인상적인 이야기를 전해 왔다. 독서 노트를 쓰기 시작하니 자신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명료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바뀌더니 급기야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었다고 연락이 왔다. 독서 노트가 쌓이니까 뭐든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내 콘텐츠에는 해외 고객이 있다

    왼손잡이는 세상이 피곤하다

    나는 왼손잡이다. 어릴 때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삐딱하게 반응하며 주위를 힘들게 했다. 나도 내가 그렇게 피곤한 사람으로 비치는 건 싫었지만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었다. 왼손잡이로 살아보면 그렇다. 수업 시간에 앞에 나가서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면, 문제 풀이를 보는 게 아니라 왼손으로 쓴다고 지적한다. 왼손잡이라 필요 이상으로 주목을 받았고, 또 그 주목들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왼손잡이에게 세상은 늘 거꾸로 흐르는 곳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Think Different라는 기념비적인 광고에서 남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소개한다. 이들은 비딱한 시선을 갖고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자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다. 이 광고엔 아인슈타인, 피카소, 존 레논, 찰리 채플린, 지미 헨드릭스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콕 등이 나온다. 잡스는 이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꿨다고 치켜세운다.


    콘텐츠 코치로 일하면서 자기 콘텐츠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들을 만나기 전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나 콘텐츠 만드는 습관 정도일 거라고 짐작했다. 혹은 콘텐츠를 만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문제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방법론적인 부분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충분히 매력적인 콘텐츠 소재를 가졌다고 이야기해줘도 자기 생각을 펼치고 말하기를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했다. 이 점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 사회에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자기 생각을 점점 줄여가는 과정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도 거대한 내비게이션이 작동한다. 경로 의존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내비게이션은 끊임없이 경로를 알려준다.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경로를 이탈할 때마다 지적이 날아든다.


    그렇지만 자기 콘텐츠를 하려면 길을 잃어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찾아야 한다. 콘텐츠를 만들 때는 무수한 경로 이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해진 원칙도 꼭 맞는 정답도 없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없이 자기가 가려는 길을 이리저리 탐사해 보면서 걸어야 한다.


    오리지널 콘텐츠 만들기

    커리어에서 대체 불가능함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스콧 애덤스의 『열정을 쓰레기다』를 보면 그 힌트는 조합에 있다. 애덤스는 30년째 <딜버트>라는 8컷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딜버트>는 딜버트가 회사 생활에서 겪는 부조리를 풍자한 만화다. 한국을 포함한 57개국에서 연재될 정도로 세계적인 히트작이다. <딜버트>의 주인공 딜버트는 다소 밋밋하게 생긴 캐릭터지만 작가인 애덤스의 삶까지 물렁하지는 않다.


    애덤스는 자신의 그림 실력이 대단하지 않다고 인정한다. 유머 감각도 마찬가지다. 1% 안에는 못 들지만 적당하게 유머러스하다. 여러 창업 경험을 통해서 기업의 생리도 적당하게 안다. 이렇게 ‘적당히 잘하는 능력의 조합’으로 <딜버트>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하려면 한 가지를 탁월하게 잘하는 것보다 두 가지를 잘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그는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조합을 만들었다. 조합 자체가 상위 1%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 조합이 애덤스를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누군가를 ‘오리지널’이라고 부르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중 한 가지는 남과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이며 그 스타일이 그 사람의 표현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독자적인 스타일은 자신이 가진 것을 독자적으로 조합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행하는 코칭 프로그램의 첫 시간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모두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를 꺼내 본다. 무엇이 어떻게 조합될지는 모르지만, 우선 꺼내놓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람만의 경험, 관심사, 커리어, 독특한 사유, 즐겨 보는 콘텐츠, 인간관계, 취미생활, 고민거리 등 모든 것이 조합의 요소다. 그러고 나서 조합을 시작하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아무런 얘깃거리도 없는 줄 알았는데 금방 소재가 풍부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소재를 조합하는 놀이를 하다 보면 나중에 알게 되는 게 있다. 콘텐츠 만들기는 남과 다른 특별한 소재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때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콘텐츠 유통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생산적인 뇌가 좋아하는 오프라인

    온라인에 이렇게 상시로 접속하는 일은 이제 친숙해졌다. 반면, 오프라인 상태로 지내는 시간은 어떨까? 오프라인 상태일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이 한곳에 정착해서 고요하게 머무는 시간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오프라인 상태에 머무르기보다는 대체로 온라인상에서 링크를 타고 생각이 날아다닌다. 매리언 울프는 이를 가리켜 ‘방황하는 생각’이라 했는데, 금방 공감이 간다.


    콘텐츠를 유통하려면 온라인을 활용해야 하지만, 콘텐츠를 만들 때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유통해야 한다.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이 주어지는 상태에서는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 오프라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내 경우에 원고를 쓰는 기간에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 세 가지는 바로 걷기, 기록하기 그리고 대화하기다.


    첫 번째로 걷기다. 사무실 근처에 서울숲이 있어서 자주 산책하러 나간다. 어느 날은 한 방향으로 빙빙 돌고, 다른 날엔 중간에 뻗어난 길로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걷는다. 공원의 모습에 눈길을 주면서 내 의식은 몇 가지 주제를 탐색하며 걷는다. 이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떠오르고, 막혀 있던 생각이 뚫리는 경험을 자주 한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던 글에 대한 힌트가 떠오르고, 관련 없는 소재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된다.


    두 번째는 기록하기다. 군대에서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가 준 많은 유익이 있지만, 내게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게 하나 있다. 손으로 쓰면, 생각이 그보다 빠르게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히 생각의 속도는 손으로 쓰는 속도를 앞지르려고 하지 않게 된다. 쓰는 속도에 맞춰져서 걷듯이 생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대화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주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대화 상대가 없을 때는 그 대안으로 팟캐스트를 통해 다른 이들의 대화를 듣는 방법도 있다. 유튜브엔 재밌는 콘텐츠가 정말 많아서 연관 콘텐츠를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하지만 몇 시간을 정신없이 보고 나면 가벼운 피로감에 살짝 멍해진다. 유튜브 콘텐츠를 천천히 살펴보면 알 수 있듯, 고작 5분 안에도 상당히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유튜버의 표정, 대사, 그리고 잘 편집된 자막과 음악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다 보면 5분 남짓의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뇌는 금방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오디오로만 전달되는 팟캐스트를 들을 때는 달라진다. 특히 여러 명이 대화를 나누며 진행하는 팟캐스트는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 사람들은 동시에 말하지 않는다. 야구의 규칙처럼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이 넘겨받는다. 이들이 주고받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따라가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 이렇게 대화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때 아주 손쉽게 오프라인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잠들지 않는 ‘0과 1의 세계’

    온라인이 없었을 때는 어땠을까?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일에는 제약이 매우 컸다. 회사를 홍보할 수 있는 박람회가 열리면 부스를 차려서, 보통 일주일 이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좋은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24시간 동안 열어둘 순 없으니 일회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다. 온라인 시대가 열린 뒤로는 우리 회사를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온라인상에 부스를 차릴 수 있게 됐다. 물론 부스는 1년 24시간 내내 상시로 열려있다.


    콘텐츠를 유통할 때도 이런 속성을 활용해서 다양한 플랫폼에 나누어서 부스를 차릴 수 있다. 여러 콘텐츠를 불이 꺼지지 않는 각기 다른 플랫폼에 나누어서 판매하는 것이다. 2016년에 동영상 콘텐츠를 유데미에 올려 두었다. 중간에 콘텐츠를 업데이트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번 만든 콘텐츠가 3년째 24시간 내내 판매되고 있다. 580명이 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동안, 나는 부스를 차리고 치우는 번거로운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됐다. 심지어 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한국을 포함해 17개 국가에 흩어져있다. 회사 부스가 코엑스에만 차려져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에 만든 3편의 전자책 콘텐츠도 그렇다. 내가 자고 있을 때도 온라인상에서 내 콘텐츠는 상시로 판매된다. 잠들지 않는 0과 1의 세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


    그런 이유로 콘텐츠 자본가들은 이미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대에,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부스만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바라트 아난드 교수는 『콘텐츠의 미래』에서 콘텐츠 자체에 집중하는 함정에서 벗어나서 연결 관계를 키워 나가라고 조언한다. 온라인 영역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졌으니 그에 따라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조금만 줄이고, 온라인 세상에서 다양하게 연결되어 더 많이 발견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기만 하는 입장일 때는 온라인을 현명하게 통제하며 사용해야 하지만,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면 온라인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유통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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