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지은이 : 김영수
출판사 : 창해
출판일 : 2018년 06월




  • 이 책은 《사기》를 공부하면서 틈틈이 메모해둔 고사성어와 명언들에 대한 저자의 단상(短想)이자 단상(斷想)들을 모은 것이다. 《인간의 길》이란 큰 주제 밑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네 가지 소주제로 분류된다. 


    인간의 길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선택하는 최선의 삶 / 거세혼탁擧世混濁 유아독청唯我獨淸

    세상이 거침없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모난 돌은 여전히 정을 맞는다. 개성을 중시하고 남과 다른 생각을 해야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 개성과 다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소신을 지키며 옳은 길을 걸으려 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냉대를 받았다. 옳은 길은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리라.


    《사기》에는 꼬장꼬장하게 소신을 지키며 살다간 인물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사마천이 가장 애정을 보인 유형이 바로 지조를 지키다 박해를 당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사마천 자신이 당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애국시인 굴원 또한 자신의 소신을 지키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전국시대 말기는 천하가 소용돌이치던 격변의 시기였다. 굴원의 조국 초나라는 타국과의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고 있었다. 무능한 통치자와 부패한 기득권 세력, 사악한 간신들이 권력을 좌우하다 보니 국력은 갈수록 쇠퇴하고 백성은 신음했다.


    강직한 굴원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부패한 세력과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근상을 비롯한 조정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조정에서 쫓겨났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굴원은 멱라수에 이르러 한숨을 내쉬며 조국을 걱정했다. 그때 이름 모를 어부가 다가와 굴원에게 말을 걸었다.


    어부: 아니, 당신은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헌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오셨소?

    굴원: 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이렇게 쫓겨난 것이라오.

    어부: 대저 성인은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밀고 밀리는 것이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서 어찌 그 흐름에 따라 물결을 바꾸지 않고, 모든 사람이 취했다면서 어찌 술찌꺼기를 먹고 모주(母酒)를 마시지 않는 것이오? 대체 무슨 까닭으로 아름다운 옥과 같은 재능을 가지고도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단 말이오?

    굴원: 듣자하니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몸을 씻은 사람은 옷에 묻은 티끌을 떨어버린다 했소(신목자필탄관[新沐者必彈冠] 신욕자필진의[新浴者必振衣], 깨끗한 사람이 때 끼고 더러워진 것을 묻히고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이오? 차라리 장강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례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깨끗한 몸으로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이오?)


    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거세혼탁[擧世混濁] 유아독청[唯我獨淸] 중인개취[衆人皆醉] 유아독성[唯我獨醒])는 명대사가 이 대화에서 나온다. 하지만 결벽에 가까운 굴원의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어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대변한다.


    어부의 말인즉,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못 사는 법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박차고 나오는 행위는 시세를 모르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어부의 논리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시세를 따를 것이냐 깨끗하게 남을 것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이자 경계의 문제다. 어느 선에서 시세를 따르고, 어느 정도에서 발을 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지혜 없이는 판단이 불가능하고, 원칙 없이는 통제하기 어려운 경지다.


    굴원이 혹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차라리 자결을 택함으로써 더없이 강력하게 시대에 저항한 것 아닐까? 그것은 굴원의 마지노선이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외눈박이만 사는 나라에서는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인 취급을 당하고, 까마귀가 노는 곳에서는 백로가 따돌림을 당하듯, 흔히 선지자와 현자는 꺠어있음으로 인해 숱한 오해와 박해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곧고 흰 것을 구별하고 옳고 그름을 고민할 수 있었다.


    굴원이 지은 《초사》〈어부사〉에 나오는 거세개탁(擧世皆濁)은 2012년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성어는 우리 삶이 그토록 비루해졌는지, 내 모습은 어떤지 씁쓸한 심경으로 돌아보게 한다. 각자 삶의 마지노선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멈출 줄 아는 지혜 / 도고익안道高益安

    ‘행복은 만족에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말은 만족의 정도가 어느 선이냐는 문제를 안고 있다. 욕구를 충족시켜야 행복할 수 있다는 서양식 논리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인의 사고방식은 좀 다르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 이 서양 속담을 ‘행복은 만족해하는 데 있다’고 번역하기도 한다. ‘만족해한다’는 것은 만족에 브레이크가 있다는 의미다. 이는 어느 선에서 만족에 대한 욕구를 멈춘다는 뜻이고, 그럴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양 속담을 동양의 사유로 풀이한 셈이다.


    유방을 도와 천하를 재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세 인물을 흔히 서한삼걸(西漢三杰)이라 부르는데, 한신, 소하, 장량이 그 주인공이다. 한신은 너무도 유명한 고사성어인 ‘토사구팽’으로 삶을 마감했다. 소하는 재상이 되긴 했지만, 평생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반면 장량은 절정의 순간 자리와 부는 물론 명예까지 버리고 떠남으로써 여생을 유유자적하게 보냈다. 장량의 사당에는 그런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두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로 ‘멈출 줄 안다’ 또는 ‘그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의 지지(知止)다.


    어떻게 사는 것이 편안하게 사는 걸까?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열이면 열 사나운 목소리로 돈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도는 높을수록 편안하고, 권세는 높을수록 위태롭다(도고익안[道高益安] 세고익위[勢高益危])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한나라 초기 중대부 송충과 박사 가의가 점쟁이 사마계주의 말을 들은 뒤 나눈 대화에 나온다. 다음은 가의의 말이다.


    “도는 높을수록 편안하고, 권세는 높을수록 위태롭구나. 빛나는 권세를 좇다 보면 몸을 망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저 점쟁이는 점을 잘 치지 못해도 복채를 빼앗기는 일이 없으나, 임금을 위해 일을 잘 못하면 몸 둘 곳이 없어지지 않는가? 이 차이는 머리에 쓰는 관과 발에 신는 신발의 거리만큼이나 크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명의 상태에서 만물이 비롯된다’는 것이구나. 천지는 넓고 만물은 가지각색이지만, 편안하기도 하고 위태롭기도 하여 처할 바를 알지 못하겠구나. 나와 그대가 어찌 그 점쟁이의 처세를 따를 수 있겠는가? 그는 갈수록 더욱 몸이 편해질 테니...”


    약 2,000년 전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 내린 현실 진단이다. 그들은 ‘빛나는 권세를 좇다 보면 몸을 망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도대체 ‘도’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분수를 아는 것’, 혹시 이것이 ‘도’가 아닐까? ‘분수(分數)’는 수를 나눈다. 수를 헤아린다는 뜻으로, 여기에는 헤아려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분수’를 아는 것, 즉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경지가 바로 ‘도고익안’의 경지다. 도가 높을수록 자세는 한없이 낮아진다. 그리고 자세가 낮을수록 몸과 마음을 한결 편해진다.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인재를 얻는다 /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

    주 무왕의 동생 주공 희단은 무왕의 믿음직한 조력자로서 주 왕조의 기초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 성왕이 즉위하자, 주공은 조카를 보좌하며 국정을 주도했다. 훗날 공자는 꿈에 주공이 보이지 않으면 몹시 안타까워할 정도로 그를 사모하고 추앙했다고 한다.


    사마천은 역사를 앞장서 끌고간 인물과 그들의 행동에 중점을 두고 《사기》를 편찬했다. 그러다 보니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를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일화가 적지 않다.


    주공은 천하의 인재들을 얻기 위해 매우 애썼다. 목욕하는 도중 손님이 찾아오면 씻다 만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허둥지둥 손님을 맞이하길 세 번이나 했고, 밥을 먹는데 손님이 찾아오면 먹던 것을 뱉고 손님을 맞이하길 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일목삼착 일반삼토는 유능한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음을 비유하는 유명한 명언이자 성어다.


    주공은 아들 백금이 부임지인 노나라로 떠나려 할 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며 지금의 왕인 성왕의 숙부다. 어느 모로 보나 천하에 결코 천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목욕하다 머리카락을 세 번 움켜쥐고, 밥을 먹다 세 번 뱉어내면서까지 인재를 우대했다. 오로지 천하의 현자를 잃을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노나라에 가더라도 결코 사람들에게 교만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할 것이다!”


    《노주공세가》의 정확한 원문은 일목삼착발(一沐三捉髮) 일반삼토포(一飯三吐哺)인데, 훗날 여기에서 많은 파생어가 나왔다. 줄여서 삼착삼토(三捉三吐)나 착발토포(捉髮吐哺)로 쓰기도 한다.


    주공의 아버지인 주 문왕도 인재들을 접대하느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뜻의 일중불가식이대사(日中不暇食以待士)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한순간의 소홀함 때문에 현자를 놓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주공이 하루에 70여 명의 손님을 접대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고 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인간관계가 ‘도’를 벗어나면 큰 문제지만, ‘도’의 경계를 적절하게 넘나든 문왕이나 주공 같은 감수성을 지닌 이라면 자신이 갈망하는 인재를 충분히 얻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내게 필요한 사람만이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필요한 존재인지도 고민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제대로 배운 사람의 말과 글은 쉽다 / 무문교저舞文巧

    사마천은 가혹한 법 집행으로 악명을 떨친 혹리들의 행적을 <혹리열전>에 남겼다. 주로 사마천 당대의 인물들로 채워진 이 열전은 허례와 미신, 자기과시를 좋아한 무제의 통치방식을 비난하기 위해 절묘하게 안배한 명편이다. 열전에 등장하는 혹리들 중 장탕은 그 캐릭터가 매우 독특하다.


    장탕은 두릉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혹리의 자질을 보였는데,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전해져온다. 아버지가 외출한 사이 어린 장탕이 집을 보고 있었는데, 쥐가 고기를 물고 도망가버렸다. 아버지는 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장탕에게 매질을 했다. 그러나 장탕은 그 쥐를 기어이 잡아 매질을 하고 진술서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엄격한 법 절차에 따라 쥐의 몸뚱이를 찢어 죽이는 책형을 가했다. 이 모습을 본 장탕의 아버지는 그에게 판결문 작성을 본격적으로 가르쳤다.


    사마천은 장탕을 비롯한 무제 시대 혹리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무문교저를 들었다. 법조문을 교묘하게 꾸미거나 적용하여 죄에 빠뜨린다는 뜻이다. 장탕은 마음속으로 비방하는 것도 죄에 해당한다는 복비법을 내놓은 인물로 유명한데, 그가 어떻게 ‘무문교저’했는지 한번 보자.


    기소된 안건은 황제가 엄하게 처벌하려 하면 장탕은 법을 치밀하고 엄하게 집행하는 자에게 맡기고, 황제가 용서해주려 하면 죄를 가볍게 다스리고 공평하게 처리하는 관리에게 맡겼다. 또 안건이 권세 있는 호족과 관련된 것이면 반드시 법조문을 교묘하게 꾸미거나 적용하여 죄에 빠뜨렸다.


    법령과 정치의 본뜻이 백성에게 잘 전달되려면 말과 글이 분명하고 쉬워야 한다. ‘말을 교묘하게 꾸며 백성을 죄에 빠뜨리는’ 일을 막는 첫걸음은 말과 글을 쉽게 만드는 것이다.


    ‘무문교저’와 관련된 성어로는 쉽고 요령 있게, 너무 고상한 논의는 하지 말라는 뜻의 비지무심고론이 있다.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려던 장석지는 중랑장 원앙의 추천으로 한나라 문제 앞에서 나라와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아뢰었다. 그러자 문제는 ‘쉽고 요령 있게, 너무 고상한 논의는 하지 말고’ 대책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문제는 쉽고 요령 있는 말로 백성에게 명령을 내려야 빨리 실행에 옮겨진다는 통치 요령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고사성어 가운데 우이독경이 있다. 소귀에 경 읽기, 즉 무식한 사람에게 경을 읽어줘 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 성어를 대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만 잔뜩 늘어놓는 허식에 가득 찬 식자충을 비꼴 때 사용한다. 어쩌면 이것이 ‘우이독경’의 본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많이, 제대로 배운 사람의 말이나 글은 쉽다. 어쭙잖게 배운 사람이 어려운 용어와 미사여구를 동원해 학문의 얄팍함을 감추려 하는 법이다.


    행정이나 법률 용어가 지나치게 어려워 일반인이 간단한 서류 한 장 작성하기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권위는 어려운 용어나 격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다가갈수록 더욱 커지는 법이다.


    모든 화근이 입에서 시작된다 / 치아위화齒牙爲禍

    치아가 화근이다라는 의미인 치아위화는 ‘남을 비방하는 바람에 화를 불러왔다’는 속뜻을 갖고 있다. 이 성어의 이면에는 기원전 7세기 무렵 진나라에서 일어난 복잡한 정쟁이 얽혀 있다.


    진나라 헌공은 재위 5년째 되던 해 여융족을 정벌하고 여희와 그 동생을 얻었는데, 둘 다 총애했다. 그런데 여희가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태자 신생을 헐뜯고 모함해 결국 죽게 만들었다. 헌공이 사망하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쟁이 일어나, 여희의 아들 해제와 여희의 동생이 낳은 도자까지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두고 사마천은 군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경》에 백옥의 반점은 갈고닦을 수 있으나 잘못한 말은 고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애초에 헌공이 여융을 공격할 때 점괘에 치아가 화근이 된다고 나왔던 바, 여융을 쳐서 여희를 얻고 그녀를 총애하였으나 마침내 그 때문에 난이 일어났다.


    이는 곧 여희가 태자를 비방하여 죽게 함으로써 내란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당시 여희는 꿈에서 태자의 생모를 보았다며 태자에게 생모의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그런 다음 제사 음식을 헌공에게 올리게 했다. 여희는 몰래 음식에 독을 탔다. 헌공이 제사 음식을 먹으려 하자, 여희는 짐승과 시종에게 시식하도록 하여 독이 들었음을 밝혔다. 헌공은 당연히 태자를 의심했고, 태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자의 동생들 역시 여희의 모함을 받아 타국으로 망명했다.


    모든 화근은 입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말을 잘못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어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자신과 남을 망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근거 없이 비방하거나, 사적인 이익 혹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헐뜯고 모함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을 절대로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혀는 칼보다 강하고, 말은 총보다 무섭다. 혀와 말은 양날의 칼이다. 말의 가치는 조심할수록 올라가고, 인간의 가치 또한 달라진다. 그래서 ‘언격(言格)이 인격(人格)’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과도한 망설임은 무모함만 못하다 / 당단부단當斷不斷 반수기란反受其亂

    진 멸망 후 중국을 재통일한 한나라는 초기에 잦은 내란을 겪었다. 각지에 왕으로 봉해진 공신들과 왕실 인척들이 황제 자리를 노리며 반란을 꾀했기 때문이다.


    한 고조 유방이 죽은 뒤 그의 아내 여태후가 권력을 잡으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여태후가 죽자 대권 판도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태후와 여씨의 위세에 숨죽이던 유씨 왕족과 공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나라 애왕은 여태후를 등에 업고 득세한 여씨 일가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를 안 여씨 일파의 재상 소평이 먼저 군대를 일으켜 제나라 왕궁을 포위해 버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나라 조정에서 군대징발권을 상징하는 호부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며 위발이 제나라 왕궁을 지키겠노라 나섰다. 소평은 그 말을 믿고 군대를 그에게 넘겼다.


    그러자 위발은 군사를 소평에게로 돌렸고, 소평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지막을 선택하며 소평은 “오호라! 도가에서 말하길 잘라야 할 때 자르지 못하면 도리어 화를 입는다더니, 지금 내가 바로 그 꼴이구나!” 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사기》에는 때를 놓쳐 몸을 망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명장 한신이 그랬고, 월나라의 대부 문종이 그러했다. 반면 범려와 장강은 절정의 순간에 욕심과 미련을 버리고 물러남으로써 편안한 상태로 삶을 마감했다. 어느 경우든 핵심은 ‘욕심’이라는 인성의 약점을 극복했느냐에 따라 삶의 결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쇠는 달구어졌을 때 버려야 한다’는 서양 격언이 있듯이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물론 정당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기회가 기회인 줄 아는 혜안을 갖추어야 한다.


    인생도 경영도 결단의 예술이다. 결단은 축적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반추의 산물이다. 이는 바둑 고수가 자신이 둔 기보를 끝없이 복기하는 것과 같다. 반추 없는 경험의 축적은 쓰레기를 쫓는 일과 같다. 결단이 지혜의 차원에 놓여 있다는 말에 공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결단에 따른 결과는 당연히 결단의 주체가 책임져야 한다. 책임 없는 결단은 무모하다. 흔히 결단을 망설이는 이유는 결과에 대한 책임 때문이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만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하면 무모함보다 못한 무책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무조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은 건 아니다. 상황에는 늘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다리는 것도, 한 발 물러서는 것도 결단이다. 생각이 길이 그쪽으로 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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