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잘 노는 법
 
지은이 : 백명숙
출판사 : 가림출판사
출판일 : 2018년 10월




  • 이 책은 아직 책과 친해지지 않은 사람, 책 읽기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책과 친해지고 시간을 잘 활용하여 진정한 독서가가 될 수 있는지를 경험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  책 읽기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님을 주장하는 저자의 말대로 책 읽기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이 책 한 권의 저자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책 읽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책 읽기의 연금술사 4인의 삶을 통해서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고 자신이 지향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책과 잘 노는 법


    책을 알자 _ 책이 보인다

    최초의 책은 사람 책

    최초의 책은 지금의 책과 다른 모습이었다. 책장에 꽂혀 있지도 않았고, 걸어 다니며 말과 노래도 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최초의 책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는 당연히 책이 있을 리 없다. 대신 사람이 책 역할을 했다. 옛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들의 부모나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었고 어른이 된 후에는 다시 그들의 아들과 땅 손자와 손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들의 할머니도 알고 보면 ‘사람 책’이었던 셈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은 문자로 인쇄된 종이책이 책을 대표한다. 하지만 사람 책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움직이고 걸어 다니고 말을 하며 심지어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을 때 목록을 뒤지듯이 사람 책도 목록을 뒤져 읽고 싶은 사람 책을 선정해서 빌려 볼 수 있다. 바로 ‘리빙 라이브러리’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창안한 신개념의 이벤트성 도서관이다. 책을 대출하는 것처럼 사람을 대출하는 것으로 한 권의 ‘사람 책’과 다수의 독자가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독자들은 읽고 싶은 사람 책과 마주 앉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들을 수 있다. 


    미래 학자들은 책이 사라질 것이라며 책을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해서 세상의 지식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최후의 책은 ‘AI’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사람 책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글로 다 쓰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곧 책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내가 사람 책이 될 수도 있다. 나만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는 듣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사람 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침대와 책>의 저자 정혜윤도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도서관 안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수 세기 동안 잠들지 못하는 한 권의 책이다”고 말했다. 사람 책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되지 못한다. 책에서 얻은 지식과 자신의 경험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 다른 사람이 읽고 싶어 하는 특별한 사람 책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


    좋은 책을 고르는 법

    책을 읽기 위해서 먼저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좋은 책을 골라야 한다. 좋은 책을 고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으며,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어렵다. 일반적으로 좋은 책은 독자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어야 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지금보다 나은 미래로 인도하는 책이어야 한다. 그런 책은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그 가치를 잃지 않고 꾸준히 사람들에게 존경받는다.


    고전이 좋은 책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문제는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것. 고전이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책이라는 이유로 무턱대로 읽기 시작하다가는 오히려 책 읽기에 흥미가 떨어진 수 있다. 따라서 고전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좋은 책, 즉 자신에게 맞는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먼저 서점이나 도서관에 자주 가볼 것을 권한다. 책도 자주 살펴봐야 보는 눈이 생긴다. 책을 보면서 관심이 가는 책이 있으면 먼저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본다. 저자가 해당 주제의 전문가라면 일단 믿어도 된다. 베스트셀러도 관심을 가져본다. 사람들이 많이 읽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모두 좋은 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가 좋은 책일 확률이 많다.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히는 책은 그만큼 내용이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면 서평을 참고한다. 서평이야말로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서평은 대부분 독서전문가가 쓴다. 그들의 리뷰나 서평을 읽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면 된다. 인터넷 서점의 독자 리뷰도 참고가 된다. 책의 외형도 좋은 책의 한 요소가 된다. 내용이 충실하면서 보기에도 품격이 느껴진다면 좋은 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출판업계에서도 옛날에 출판되었던 책을 표지 디자인만 바꿔서 한정판으로 재출간한 책들이 독자들의 소장용으로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좋은 책이란 자신의 독서 수준으로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남들이 좋은 책이라고 해서 덜컥 읽겠다고 도전했다가 너무 어려워 읽지 못한다면 오히려 책과 멀어지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결국, 좋은 책을 선택하는 안목은 자신의 독서 수준을 정확히 아는 데서 시작된다. 책은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읽어주면 반드시 보답한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꿈틀거리게 한다. 책을 읽고 꿈틀거리는 나를 느낀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일 가능성이 크다.



    책과 놀아보자 _ 읽으면 얻게 되는 것

    고통 후에 맛보는 쾌감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안 된 사람들에게는 재미없는 것이 사실이다. 힘들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책을 읽기 시작해서 30분을 움직이지 않고 견디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아예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책 읽기는 고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작 자기 자신을 책을 읽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는 그 힘든 고난의 길로 들어가라고 종용하기까지 한다. 왜 그럴까. 책을 읽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지속해서 읽다 보면 습관이 되고 더 큰 기쁨과 보람이 주어진다는 것을.


    나의 책 읽기를 되돌아보았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5년째다. 책 읽기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자기계발서나 소설 종류는 꾸준히 읽어왔던 장르이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인문 고전 장르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독서습관이 안 된 상태에서 두껍고 깊이가 있는 책 읽기는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순전히 엉덩이 힘으로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책을 끝까지 참고 읽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밑줄을 긋고 붉은색으로 별표시를 해놓은 이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 즐기는 것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일이 아직 보이지 않을 때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이 책을 읽는 일이다. 그러니 무조건 읽자고 생각했다. 그 책을 일주일에 걸쳐서 다 읽고 나니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다. 그것은 힘든 시간을 견뎌낸 후에 오는 성취감이자 일종의 쾌감이었다. 책 읽기가 습관이 되기까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그 과정을 이겨내면 더 큰 쾌감을 맛보게 된다. 책이 재밌어지고 자신의 내적 성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직접 느껴봐야 그 맛을 안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에게

    “국민 85퍼센트 책 읽는 사람 매력적”이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국민 대다수를 책 읽는 사람에 대해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뿐 정작 본인은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부의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한 해 평균 독서량이 8.3권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한 권도 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시간이 없다는 게 책을 읽지 않는 이유다.


    사실 우리가 보내는 하루를 가만히 살펴보면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아까운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나와 관계없는 연예인이나 남 이야기로 수다 떠는 시간은 없는지, 습관처럼 밤늦도록 술자리를 가지면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일상의 수다와 알코올의 힘이 때로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항상 시간이 부족해서 안타까웠다. 읽어내야 할 책은 많은데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듯 낮 시간은 업무로 바쁘고 퇴근 후에는 가사를 돌봐야 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도, 집안일을 안 할 수도 없다. 시간을 절약하거나 따로 만들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작정하고 아침에 한 시간 먼저 일어났다. 퇴근 후 될 수 있는 대로 약속을 잡지 않고 집안일은 요령껏 줄이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짬짬이 나는 시간에 의무적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그 결과 2014년과 2015년에 한 달 평균 6권을 읽을 수 있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는가? 아침에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 보자. 책을 보통 속도로 읽으면 한 시간에 40쪽 이상 읽을 수 있다. 물론 책 두께와 내용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침 시간만 잘 활용해도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책 1권은 거뜬히 읽어낼 수 있다. 주말은 편안한 마음으로 책읽기에 더 좋은 시간이다. 작정하고 읽는다면 1권은 읽을 수 있다. 즉 주중 아침시간을 이용해서 1권, 주말에 1권 이렇게 일주일에 2권 읽기가 가능하다. 책을 읽으며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 선택과 노력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나만의 책 읽기가 답이다 _ 즐겁게 읽는다

    마음이 끌리는 책부터 읽어라

    W 교수님으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일 한 가지를 도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교수님 연구실과 내가 근무하는 곳이 같은 건물이기도 하지만 교수님이 이끄는 공부 모임에서 강의를 들었던 인연으로 당연히 도와드려야 했다. 아주 간단한 인터넷 금융거래 방법을 알려달라는 거였다. 쉽게 해결해주고 나니 교수님은 고맙다며 연구실에 있는 책 중에서 읽고 싶은 책 5권을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정말 가져가라는 말에 책장을 죽 훑으면서 무슨 책을 고를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누드 글쓰기>에서 먼저 눈이 멈췄다. 아마 내가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 중이어서였을 것이다.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쓰인 고미숙이라는 저자 이름을 보고 망설임 없이 그 책을 빼 들었다. 제목을 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나머지 4권도 골랐다.


    그날 퇴근하자마자 <누드 글쓰기>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처럼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글쓰기는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번뇌의 커밍아웃이라 불렀다. “각자의 상처와 기억은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이 세상 속으로 흘러가서 바람이 되고 물이 된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고난과 역경을 삶의 기술로 변주하기 위한 과정”이 바로 누드 글쓰기라고 했다.


    대개는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거나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산다. 하지만 딱히 어떤 책을 사야 할지 정하지 않고 서점에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책을 쇼핑하듯이 편하게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한두 권 사들고 나온다.


    책이 마음에 끌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유명 저자나 책 제목이 눈길을 끌 수 있다. 책의 광고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때로는 소장하고 싶을 만큼 멋진 표지 디자인에 홀릴 수도 있고, 책의 두께가 선택의 이유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의 마음이 끌려 손이 가는 책을 고르면 된다.


    스티븐 로저 피셔의 <읽기의 역사>에 애서가였던 영국의 사무엘 존슨 박사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젊은 시절 한 노인에게 “여보게, 젊었을 때 부지런히 읽고 많은 지식을 쌓게나. 늙으면 책 읽는 것도 힘이 든다네”라는 충고를 들었다. 존슨 박사는 그 노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손에 닿는 대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읽었다. 존슨 박사는 그렇게 읽은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우리는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제로서 읽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끌리는 대로 읽은 것들은 강한 인상으로 남습니다. 만일 마음에 없는 것을 읽는다면 주의를 기울이는 데만 정신의 반은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책을 읽는 데는 반밖에 정신을 쓸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결핍, 열정으로 읽기

    10년 전쯤 직장 근처 ‘ㅅ 보육원’에 봉사 활동으로 독서지도를 몇 번 나간 적이 있다. 몇 년 전 정년퇴직한 동료 직원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고 개인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에 사서로서 동참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희수를 만났다. 희수는 아빠와 사는데 아빠가 일을 해야 해서 자신을 보육원에 맡겼다고 했다.


    보육원에는 아이들이 읽을 책이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희수는 독서 지도 시간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희수는 근처에 초등학교가 없어서 보육원과 좀 떨어져 있는 신설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희수 말에 의하면 “그곳 아이들은 자신처럼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을 무시한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랬더니 성적이 좋아지고 그 후 먼저 말을 거는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만약 희수에게 결핍이 없었다면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을까?


    나는 50년대 끝자락에 태어나 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가난한 시골에 책이 있을 리 없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지급되는 교과서가 그나마 유일한 책이었다.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한 후 교과서 이외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학교에 도서실이 있었지만 언제나 문이 잠겨있어서 언제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몰랐다.


    어쩌다 손에 들어온 세계명작은 더 좋았다. 당시 전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숙모가 세계명작을 몇 권 갖다 주었다. 책은 2단 세로로 편집된 데다가 글자가 작아서 무척 읽기 힘들었지만, 책에 푹 빠져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차탈리 부인의 사랑>, <주홍글씨>, <진주 목걸이>, <노틀담의 곱추> 등이었다. 


    요즘은 아무리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책이 없어서 못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책을 읽고자 한다면 구하지 못할 책이 없다. 읽을 책이 넘쳐난다. 오히려 책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 게 문제다.


    현대인에게는 좋은 집과 비싼 차 그리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외적으로 누리는 것들이 풍족해도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다. 물질에 비해 마음이 빈곤한 탓이다. 마음의 빈곤은 때로 책을 읽으면 신기하게도 채워진다. 책은 마음의 눈을 뜨게 하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부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커지는 마음의 빈곤이 오히려 우리가 넘어야 할 현실이다. 책을 읽어서 채우면 된다. 책으로 채우는 마음의 빈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핍이다. 



    나에게 책은

    책을 보는 사서

    “직업이 뭐예요?” “사서입니다.” “책을 참 많이 읽겠네요.” “많이 보기는 합니다.” 누군가 나의 직업을 물어볼 때 이루어지는 대화였다. 사서는 정말 책을 많이 읽는 직업일까? 사서는 업무 중에 책을 펼쳐놓고 있거나 옆에 잔뜩 쌓아두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책을 읽는다고도 하고 본다고도 한다. ‘읽는다’는 것은 책 내용을 체계적으로 읽어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아는 것이다. 책 내용에 담긴 뜻과 의미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반면 ‘본다’는 것은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있으나 책에 나열된 정보를 읽는 것이다. 즉, 책 제목, 저자, 출판사 등을 읽는 것이다. 주제 분류를 위해서 목차와 서문을 읽을 때도 있지만 그것으로 책을 읽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사서가 하는 일은 책을 본다고 해야 맞다. 이는 책을 읽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에 대한 내 생각이다.


    사서라는 직업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도서관 일이라면 책을 대출해주는 일만 떠올렸다. 그때는 도서관이 지금처럼 오픈된 자료실에서 자유롭게 책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신청하는 책을 서고에서 찾아다가 대출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자료실에서 이용자가 자유롭게 원하는 책을 찾아 읽고, 직원은 업무 공간에서 책을 보거나 만지고 있다. 이용자는 이 모습을 보고 책을 읽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침 우리나라 각계 도서관의 사서 21명이 사서의 세계와 사서가 하는 일에 대해 입을 모았다. <사서가 말하는 사서>다. KBS 방송국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박 OO 사서의 말을 들어보자. “더운 여름날에도 나는 아직 한 번도 걸상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오히려 정숙한 도서관 분위기를 조성하게 위해 사서는 젖은 셔츠에 먼지가 날 정도로 뛰어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시립도서관의 송 OO 사서는 정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매달 2톤 트럭에 수천 권의 새 책이 정리실로 들어오면 하루 종일 DB에 데이터를 입력하느라 눈과 어깨가 뻑뻑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또한 “장서실의 서가를 재정리해야 할 때면 책이 귀하기는커녕 얄밉고 귀찮은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사서의 입을 통해 사서는 업무 중에 책을 보고 있어도 그것이 읽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서는 업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만족을 주려고 노력한다. 어떤 자료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해주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은 곧 타인에 대한 공허감으로 작용한다. 사서가 아닌 어떤 직업이라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많을 것이다. 비록 책을 보지만 책을 매개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다. 


    만약 책이 없다면

    여느 때처럼 여섯 시에 일어났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잠이 깬다. 거실 내 서재의 독서등 스위치를 켠 다음 주방으로 가서 아로니아 주스를 한 잔 만들어 마신다. 그런 다음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친다. 최근에 구입한 사노 요코의 <사는게 뭐라고>다.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시한부 암에 걸린 작가의 거침없는 하루하루의 기록이다.


    마른눈증후군으로 호되게 시련을 겪은 지 일 년여.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니 슬슬 책 욕심이 난다. 책을 주문하고 하루나 이틀 기다리는 시간도 기대감으로 설렌다. 책을 받자마자 포장을 뜯으면 그 본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는 책과 마주하는 순간도 행복하다. 요리조리 책의 앞면과 뒷면을 살펴보고, 목차부터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보며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책 냄새를 킁킁거리는 의식도 거친다. 새 책에서는 산뜻한 잉크 냄새가, 헌책에서는 시간을 품은 종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그렇다. 책은 내 곁에서 원하면 언제든지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다. 시간이 무료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눠주고, 쉴 때면 다소곳이 옆에서 기다려주는 참을성도 있다. 오랫동안 내버려 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책은 참 좋은 친구다.


    내가 만약 책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성큼 다가온 정년을 앞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 깊을 것이다. 몇 십 년을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 퇴직 후 당분간은 출근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몸과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테지만, 먼저 퇴직한 선배의 말을 빌면 노는 것도 일 년 지나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뭘하지?’라는 생각부터 든다고 한다.


    고령화 시대에 100세까지 산다는데 정년 후 남아있는 그 많은 시간을 잉여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오래도록 할 일을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나는 걱정이 없다. 책을 읽으면 된다. 시간이 무료하지 않을 것이고 책을 읽을 때 생각이라는 뇌 운동을 하게 되니 치매 예방도 될 것이다. 내 책장에는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다. 책을 읽으면서 독서의 가장 큰 보람인 마음의 기쁨을 누리다면 그것 또한 여가 활동을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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