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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저   자 : 서메리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일 : 2019년 03월

  •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기술 하나 없는 사무직 회사원, 프리랜서를 결심하다

    퇴사를 결심하다

    나는 어떻게 보면 성실하게, 또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사람이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남들처럼 대학에 갔고, 졸업할 무렵엔 정해진 수순대로 취업했다.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직업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매달 25일이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회사였다. 그나마 한 번도 멈추거나 턱에 부딪히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나의 소소한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멈춰 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관찰했어야 했다. 내 인생은 오롯이 나의 것인데, 나는 어째서 남들의 시간표에 내 인생을 짜 맞추려 그렇게 발버둥을 쳤을까.


    첫 3년을 버틴 것은 거의 월급의 힘이었다. 월세도 내고 시집도 가고 노후 대비도 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까. 입사 후 첫 보직으로 운 좋게 업무 강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팀에 배정된 것도 현실도피를 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얻어걸린 운도 거기까지였다. 입사 3년을 채워갈 무렵 회사에서 보직 이동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 팀은 해체되었고,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1년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이해할 수 없는 야근, 이해할 수 없는 처우,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는지, 팀에 있는지, 회사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매일같이 ‘내일은 더 나을 거야’라는 생각만을 위안 삼아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게 계절이 한 바퀴 돌았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다음 계절이 오고 다음 해가 와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퇴사란 회사와의 완전한 작별이 아니라 또 다른 회사로 향하는 길목이다. 나 역시 그랬다. 특별한 사업 아이템도, 자본금도 없는 데다, 당장 돈 벌기를 중단하면 누구도 나를 먹여 살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직을 전제로 하지 않는 퇴사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나 같은 평범한 월급쟁이들에게는 이전 회사에서 느꼈던 단점을 조금이나마 덜 가진 곳으로 옮기는 것이 퇴사의 또 다른 정의였다.


    한밤중의 사무실에서 엄마와 통화한 다음 날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채용공고를 들이파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발길을 끊었던 취업 사이트와 카페에 들락거렸고, 대기업과 공기업 홈페이지에서 채용요강과 일정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엄쳐 다녔을까, 문득 당혹감이 밀려왔다. 그 많은 채용공고 중에서 지원하고 싶은 회사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껏 내가 거쳐 온, 나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든 회사들과 크게 달라 보이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이 시점에서는 당연히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가 너무 나약한 게 아닐까,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게 아닐까 하며 자책도 많이 했다. 남들은 멀쩡히 다니는 회사인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부모님만 해도 마냥 편할 리 없는 직장생활을 수십 년씩 해 가며 자식들을 키워 냈는데, 어째서 나는 고작 몇 년을 못 버티고 퇴사를 생각하는 걸까?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대단한 공을 세운 직원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는데, 퇴사를 생각한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탓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사실은 퇴사까지 생각할 만큼 불행하다는 것도 억울한데 말이다. 나도 지금까지 꽤 멀쩡한 직장 생활을 해 왔다. 진심으로 모든 구성원들을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인간관계로 트러블을 일으킨 적은 없었고, 업무에서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와 함께 일한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퇴사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까이 지내는 전 상사, 동료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아 내 직장생활이 아주 엉망은 아니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물론 내 눈에 너무나 모순적으로 비쳤던 그 모든 절차와 체계에도 분명히 존재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실제로 내가 거쳤던 모든 회사들은 그 시스템 속에서 잘만 굴러갔다. 하지만 나는 괴로웠다. 내 인생이 괴로운데, 당사자인 내게 이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고민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규모나 업계, 업무 성격과 관계없이 비슷한 성격의 괴로움을 느낀다면, 나는 특정한 회사가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 자체에 맞지 않는 사람인 게 아닐까? 한마디로 ‘회사 체질’이 나닌 것 아닐까?


    스스로가 조직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행여 누가 볼 새가 꾹꾹 눌러 담기 바빴다. 강하게 버티고 무던하게 참는 것이 곧 능력인 이 사회에서 나약한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월급으로 풀칠하는 일개미에겐 징징댈 자격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런 자책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악다구니와 맞물려 묵직한 부담으로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감정의 벼랑 끝에 몰린 상태에서 문득 떠오른 ‘회사 체질’이라는 단어는 순식간에 마음의 수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지금껏 너무 개인적이고 사소하다며 애써 외면해 왔던, 내가 조직 안에서 불행했던 이유들이 봇물 터지듯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야근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상사의 지시를 기다리고, 윗선의 결재를 기다리고, 다른 팀의 자료를 기다리며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묶여 있는 시간은 1분 1초가 고문 같았다. 그렇게 긴 야근을 마치고도 기다리던 무언가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집에 온 날이면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게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일단 퇴근을 하면 스위치를 끄듯 회사 일을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책임이면서 남의 손에 달려 있는 그 일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직접 하고 말지’라는 부아 섞인 생각이 치밀었지만, 내게는 그 일들을 직접 처리할 권한이 없었다. 나는 조직의 일부에 불과했고, 조직의 일부에게는 업무의 일부밖에 맡겨지지 않으므로.


    남들 속도에 맞춰 후루룩 마시듯 먹은 점심은 늘 명치 언저리에 얹혀 있었고, 뻣뻣하고 갑갑한 정장은 5년 내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억울해도 웃고, 화가 나도 웃고,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웃어야 하는 그 모든 날들에 신물이 났다. 나는 점점 우울해졌고, 사람을 피했고, 급기야는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을 내 손으로 처리하느라 야근을 할 때면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이 그다지 짜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완성된 자료를 전송하고 퇴근하는 길에는 자못 보람찬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다. 나는 일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시간과 감정을 담보로 무정하게 돌아가는 이 조직이 싫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조직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테고, 어떤 이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조직이 주는 혜택과 보호막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답답함과 우울함이었다. 이렇게 체질에 맞지 않는 공간에 갇혀 있는 한 언제까지고 이 괴로움을 월급으로 마취시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에서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일이 아니라 조직이 싫다면 조직을 떠나야 하고, 조직을 떠나려면 이직이 아니라 ‘프리 선언’을 하는 편이 이치에 맞을 테니까. 딱 한 가지 현실적인 조건만 빼면 프리랜서는 지금 이 시점의 내게 꼭 맞는 결론으로 느껴졌다. 자격증 하나, 심지어 운전면허증조차 없는 문과 출신에 줄곧 사무직으로만 일해 온 내게 프리랜서로 일할 기술이 전혀 없다는 딱 한 가지 조건만 빼면. 


    생각보다 넓은 프리랜서의 세계

    기술 하나 없이 시작하는 프리랜서 도전에 유일한 등불이 되어 줄 취미와 특기 목록. 고르고 골라 추려낸 여섯 가지 목록을 바탕으로, 나는 1차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프리랜서 직업군을 쭉 적어 보았다.


    핸드메이드 소품 판매자 / 일러스트레이터 / 요리사 / 작가 / 통역사 / 번역가


    대강의 직업 후보들을 고른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정보 검색이었다. 관련 분야의 프리랜서 선배들이 쓴 책도 구입하고, 각종 카페에도 가입하고, 블로그와 웹사이트를 뒤지며 각 직업의 특성과 전망, 진입 장벽 등을 체크했다. 어떤 직업을 택하더라도 결국에는 기초적인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테고, 시간과 비용이라는 리스크가 있는 만큼 신중한 선택은 필수였다.


    이 시점까지는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여기저기에 널린 정보를 모으고, 분류하고, 읽고 고민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고민의 결과를 공개하기 전에, 정보 수집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두 가지 사실을 먼저 공유하고 싶다.


    첫째, 프리랜서 직업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내가 막연히 ‘번역가, 요리사, 일러스트레이터...’ 하는 식으로 큼직하게 토막 냈던 직업군 속에는 수없이 많은 하위 범주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번역가는 크게만 잡아도 출판 번역가와 영상 번역가, 기술 번역가 등으로 구분되었고, 일러스트레이터는 삽화가, 그림책 작가, 콘셉트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등으로 구분되었다.


    둘째, 초보자를 특정 직업군의 프리랜서로 만들어 준다는 일명 ‘전문가 양성소’가 생각보다 많았다. 개중에는 나름 알찬 커리큘럼을 보유한 곳도 있었지만, 딱 봐도 사기성이 짙어 보이는 곳도 수두룩했다.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프리랜서에 도전하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내다봐도 얼마간은 배고픈 생활을 할 것이 뻔했다. 소심한 내가 그 기간을 온전한 정신으로 버텨 내려면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직업의 성격이 내 개인적인 성향과 맞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약 없는 발버둥을 치다가 지레 포기하지 않으려면 일정한 기간 안에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해야 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카드가 바로 번역가, 그중에서도 출판 번역가였다. 출판 번역가는 내 취미와 특기 중에서 책 읽기, 글쓰기, 외국어 공부라는 세 가지 영역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직업이었고, 온전히 혼자서 작업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대학원은 물론이고 믿을 만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도 몇 군데 보였고, 그곳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실낱같은 기회나마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퇴사 준비

    퇴사 과정은 전반적으로 로망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한 장씩 품고 다닌다던 사직서도 알고 보니 종이 서류가 아니라 정 없는 전자결재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그것도 ‘사직서’가 아니라 ‘사직 신청서’인지 ‘퇴직 신청서’인지 뭔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이름으로. 내가 내 발로 나가겠다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신청을 하라는 거야? 입속으로 볼멘소리를 하며 적어 낸 그놈의 신청서는 그나마도 몇 번이나 반려를 당했다.


    이미 절차를 모두 마치고 형식적으로 올린 결재가 튕겨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사직 신청을 다시 올리라는 윗선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너무 당황해서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내가 적어 낸 ‘팀 부적응’이라는 두 단어짜리 퇴사 사유가 나를 그 팀으로 발령 내거나 관리한 누군가의 업무 능력 평가에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 이왕이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만한 개인적 사유(대학원 진학, 유학, 건강 악화)를 적어서 결재를 다시 올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소모된 나는 2015년 어느 초여름, 마지막 퇴근을 했다.



    밥벌이하는 프리랜서가 되기 위하여

    이렇게 평범한 내가 프리랜서를

    한 달 동안의 백수기를 꿀처럼 달게 보낸 나지만, 사실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휴식 기간은 한 달이 아니라 석 달이었다. 5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친 만큼, 적어도 번역 아카데미가 개강하기 전까지는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안일한 결심은 퇴사 직전 등록한 아카데미의 중급반 편입 시험에 떨어지면서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번역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수많은 기관 중에서 내가 선택한 배움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출판 번역 에이전시 중 한 곳이 운영하는 부속 아카데미였다.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각각 3개월 과정의 입문반, 중급반, 실전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강좌 설명을 보니 입문반에서는 번역에 필요한 영문법과 국문법 강의가, 중급반 이상에서는 본격적인 번역 기술 강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돈과 시간 면에서 한정된 자원밖에 갖고 있지 못했던 나는 ‘기초 번역 테스트에 통과하면 입문반을 건너뛰고 바로 중급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 문구를 읽은 순간부터 곧바로 중급반에 편입해 입문반 3개월에 해당하는 시간과 수강료를 아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후 내게 날아온 답장에는 ‘현재 수준으로는 입문반부터 시작하셔야 할 것 같다’는 단호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드높았던 자신감은 탈락의 충격과 함께 순식간에 바닥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사직서까지 제출한 마당에 이대로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당장 아카데미 개강 전까지 다닐 영어 학원을 물색했다. 기왕이면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스파르타식 수업을 하는 곳으로.


    때때로 찾아오는 ‘고등학생 때 이렇게 노력을 했으면...’, ‘대학생 때 이렇게 고시 공부를 했으면...’ 하는 식상한 잡념을 몰아내며 두 달을 꼬박 투자한 결과, 내 영어 실력은 아직 부족한 와중에도 스스로에게까지 느껴질 만큼 훌쩍 성장했다. 코스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턱걸이로나마 하나 남은 상급 반의 진급 테스트에 통과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어깨를 짓누르던 육중한 불안감에 티끌만큼의 희망을 더한 상태로 본격적인 번역 기술 공부를 시작했다. 부디 이 기술이 회사 밖에서 먹고살 길을 열어 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회사 밖에서는 ‘먹고살 기술’이 필요하다

    출판 번역 아카데미가 개강을 맞았다. 지금까지 프리랜서가 되기 위한 기초 지식 쌓기에 매진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번역 기술을 배울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어딘가에 입사하거나 입사하기 위한 점수 따기용 공부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기술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지금부터 배울 지식은 말 그대로, 어르신들이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는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혀~”의 바로 그 ‘기술’이었다.


    사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약 16년간 공부를 해왔음에도 내게 남은 것은 ‘OO대학’이나 ‘OO과’라는 피상적인 타이틀뿐이었다. 그 긴 시간을 투자해서 얻어 냈건만, 회사의 톱니바퀴에 몸을 끼워 넣지 않고는 쌀 한 줌, 라면 한 봉지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 타이틀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배울 기술은(물론 열심히 하고 잘한다는 전제 하에) 내가 세상 어느 곳에 있어도 적어도 내 입에 풀칠 정도는 시켜 줄 것이다. 그 시점에서는 그게 바로 내 목표였다. 뭐가 됐든 회사 없이 먹고살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


    아카데미 시절 초반에 가장 많이 들었던 기분은 행복감이었다. 일주일 동안 꼼꼼히 준비한 과제를 들고 후드 티에 운동화 차림으로 아카데미로 향하는 동안에는 한 주 동안의 노력에 대한 평가와 새로이 배울 지식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하지만 입문반 수강 기간이 끝나고 중급반으로, 다시 실전반으로 진급하는 동안 행복과 불안의 비율은 점점 역전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번역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과 ‘프로 번역가가 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한때 최종 목표라고 생각했던 자질이 프리랜서에 입문하기 위한 기본 조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새로운 종류의 초조함이 나를 엄습했다. 알고 보니 세상에는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번역가들이 수두룩했다. 특별히 천재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은 이상,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 존재를 어필하고 일감을 따내려면 업계와 관련된 기술 이외에도 무언가 내세울 수 있을 만한 플러스알파가 필요했다.


    플러스알파가 필요해

    내가 일상툰을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한창 번역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웬 블로그 이야기냐고? 우선 이 블로그는 훗날 일이 없어서 힘들 때 내게 정신적 위안이 되어 주었고, 실제로 일감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내가 번역 외에 여러 가지 분야로 도전 범위를 넓히는 데 크게 일조한 프리랜서 생활의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그 흔한 SNS조차 하지 않던 내가 블로그 운영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은 프로 번역가로 데뷔하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플러스알파가 모자라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플러스알파’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내게 주제가 확실한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나 꽤 괜찮은 아이디어로 느껴졌다.


    이렇게 낮에는 번역 공부를, 밤에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며 지내는 동안 아카데미 종강이 하루하루 가까워졌다. 마지막 날은 여지없이 찾아왔고, 동기들과 나는 조촐히 쫑파티를 한 뒤 서로 연락하며 지내자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진짜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되다

    예고 없이 찾아온 프리랜서의 성수기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제대로 된 첫 단행본 번역 일감을 따기까지는 1년 이상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필요했고 그 일을 마친 뒤 두 번째 일감을 받기까지는 또다시 2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일주일 이상 작업을 쉰 적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프리랜서의 성수기를 보내고 있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도 별안간 기약 없는 공백기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프리랜서의 숙명인 만큼, 이 상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법은 없다.


    돌이켜 보면 이 갑작스런 성수기의 시작점은 번역 에이전시에서 두 달 만에 걸려 온 두 번째 단행본 의뢰 전화였다. 사실 프리랜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무렵은 직업적으로 굉장히 애매한 시기였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시기였다고 해도 될 것이다. 경력으로만 따지면 나는 이미 한 명의 어엿한 프리랜서였다. 중간 중간 공백이 있어서 그렇지 번역이며 웹툰이며 1인 출판까지 다양한 직업에 프로로서 참여한 경험이 있는 데다, 서점에서는 옮긴이 자리에 내 이름이 인쇄된 책이 당당히 판매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나는 여전히 프리랜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이 모든 일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돈이 될 만한 일은 몇 달에 한 건 정도에 불과했고, 작업 하나가 끝난 뒤 어김없이 찾아오는 긴 공백기를 감안하면 내 평균 소득은 최소한의 생계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벌어들인 수입이 아니라 두 번의 직장생활을 통해 모아놓은 저축으로 먹고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나는 도저히 스스로를 진짜 프리랜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두 번째 단행본 일감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자리를 잡는 중이라고 생각했고, 번역을 하면서도 또다시 찾아올 공백기에 대비하여 1인 출판은 물론 각종 파트타임 자리나 요즘 잘 나간다는 유튜브까지 다양한 옵션을 찾아보며 이리저리 생계 구상을 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갑자기 또 다른 일감이 들어왔다. 예전에 한 번 참여한 적이 있던 계간지 공역 건이었는데,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나쁘지 않게 봤는지 다음 호 작업을 추가로 요청해 온 것이다. 이때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충분했고, 무엇보다 일을 하는 도중에 다른 의뢰가 겹쳐서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냥 뿌듯한 마음으로 흔쾌히 작업을 수락했다. 그런데, 어라? 얼마 후 같은 출판사에서 다른 잡지의 공역까지 맡아 달라는 의뢰를 해왔고, 그로부터 며칠 후에는 1년 전에 정기 간행물 작업을 했던 또 다른 출판사에서 일감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일이 몰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상황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단행본 1권, 공역 3건을 동시에 작업하는 바쁜 스케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달 전 그만둔 법률사무소에서 연락이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전화를 건 변호사는 외국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체결하여 영어로 법률 문서를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며, 가능하다면 쭉 같이 일했던 내게 계약서나 소송 서류 등의 번역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밀 유지에 민감한 법률 업무의 특성상, 낯선 번역 회사의 얼굴도 모르는 번역가에게 작업을 맡긴다는 것이 껄끄럽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사실 이 시점에는 일정이 꽤 빠듯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 망설여졌지만, 전문적인 법률 문서 번역은 일반 책 번역보다 단가가 더 높은데다가 불과 몇 주 전까지 최저 생계비도 벌지 못한다며 자책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당장 돈이 될 기회를 차 버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한때 직원으로 일했던 회사와 생각지도 못했던 프리랜서 외주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단행본을 마치고 겨우 한숨 돌리려는 찰나 바로 세 번째 단행본 번역이 들어왔고, 그 뒤로도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단행본이 연달아 들어왔다. 그사이에 진행했던 공역이나 외주 일감도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오히려 클라이언트가 다른 클라이언트를 소개해 주거나 고객사가 규모를 확장하면서 거래처가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단행본 두 권을 동시에 번역 중이며, 잡지 공역이나 외주 문서 번역 일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가끔은 인터넷에 올린 그림들을 보고 일러스트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내 글과 그림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아서, 난생처음으로 ‘옮긴이’가 아닌  ‘글쓴이’로서 원고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일이 풀렸다‘는 식의 우연한 결말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기까지 결코 짧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내가 뛰어들었던 크고 작은 도전들을 생각하면, 이 작은 성취가 그저 우연한 선물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초보 프리랜서에게 전하는 실용적인 조언들

    인터넷에 프리랜서에 대한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경로로 다양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댓글이나 쪽지로 궁금한 점을 물어 오는 분들도 있고, 강연 자리에서 Q&A 시간을 가질 때도 있고, 하다못해 지인들 또한 새삼 프리랜서의 삶이 궁금해졌는지 이전에는 특별히 꺼내지 않았던 물음들을 던지곤 한다. 처음에는 그 모든 질문들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가진 생각과 정보들을 조심스레 공유하는 동안, 나는 이 세상에 경력이 부족한 사람이 더 잘 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형 프리랜서로서 내가 가장 많이 접하는 질문 중 하나는 ‘꼭 일반적인 업무 시간(일명 ‘나인 투 식스’)에 맞춰서 일해야 하나요?’다. 이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은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일의 성격이나 본인의 경력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내 경험상, 프리랜서 중에서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업무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감 시간에만 맞출 수 있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보다 한밤중에 깨서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쪽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테니까. 하지만 모든 프리랜서들이 창작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맨 처음 프리랜서 세상에 입문했던 통로인 ’번역가‘만 해도 창의력보다는 꼼꼼함과 정확성이 중요하고, 작업 중에 피드백을 교환할 일도 종종 생기는 직업이다. 이런 일을 하는 경우 클라이언트들과 업무 시간을 맞추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더불어 분야에 관계없이 경력이 짧은 초보 프리랜서라면 고객과 언제든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낮 시간 동안 늘 깨어 있는 편이 좋다. 들어오는 일이 많아서 골라잡을 수 있는 입장이라면 몰라도,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클라이언트가 언제 전화를 해도 재깍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의 작업 시간에 대한 궁금증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처음에 그 작업을 어떻게 따오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영업에 소질이 없다. 정만 전혀 없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없다. 이런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애당초 직접 영업을 뛰는 대신 ’에이전시‘와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간접 수단의 힘을 빌리는 길을 택했다. 에이전시는 말 그대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고 영업이나 전산 등의 일 처리를 도와주는 대행사다. 나 같은 경우, 적어도 번역 부분에서는 초창기부터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경력을 쌓아 왔다. 수수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혼자 영업을 했다면 애초에 수수료를 뗄 돈조차 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특히 프리랜서 경력이 거의 없는 초심자라면 특정 회사의 이름을 등에 업는 것만으로도 인지도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에이전시 계약을 한번쯤 고려해 볼 만하다.


    번역가의 길을 뚫는 데 에이전시가 큰 도움이 되었다면, 내가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또 다른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은 순전히 인터넷의 힘이었다. 블로그나 SNS, 유튜브를 통해 스타가 된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인터넷이 얼마나 강력한 영업 수단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영업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100% 무료인 데다 얼굴이나 이름을 공개할 필요도 없다. 나처럼 매사에 소심한 프리랜서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홍보 수단이 있을까?


    프리랜서를 꿈꾸면서도 영업에 자신이 없다는 이들을 만날 때보다 나는 거의 호소에 가까운 조언을 한다. 제발 지금 생각한 것들을 인터넷에 올려 보라고. 망해도 좋고, 인기가 없어도 좋으니 딱 한 번만 해보라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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