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잘난 척에 교양 있게 대처하는 법
 
지은이 : 에노모토 히로아키(역:강수연)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 2018년 09월




  • 이 책에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잘난 척하는 이유, 일상에서 만나는 잘난 척 유형, 남의 행동 하나하나가 잘난 척으로 보이는 사람의 심리, 잘난 척에 대처하는 방법, 티 안 나게 잘난 척하는 방법 등이 담겨 있습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유형을 파악한다면, 상대와 관계가 틀어지지 않는 선에서 단호하게 그러나 예의바르게 잘난 척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은근한 잘난 척에 교양 있게 대처하는 법


    능력도 없으면서 잘난 척하는 사람들

    잘난 척하고도 욕먹지 않는 법

    동양에서는 ‘남들과 비슷하게’라는 사고방식이 강해서 어떤 이유에서든 눈에 띄는 사람은 반감을 사기 쉽다. 이른바 모난 돌이 정 맞는 셈이다. 따라서 서양에서처럼 자기의 유능함이나 매력을 어필하면, 대단하다거나 멋있다는 칭찬을 받기보다 ‘우쭐대니까 못 봐주겠네’, ‘잘난 척도 정도껏 해’라는 반발을 사곤 한다. 튀는 걸 꺼려하는 동양에서는 두뇌나 외모 등 선천적인 유능함이나 매력을 어필하면 상대의 짜증을 부른다. 서로 비교하게 되기 때문에 질투로 이어지기 쉬운 것이다.


    예를 들어, 외모를 뽐내는 어필은 주위를 짜증나게 한다. 미모라는 유전적 자질, 즉 남들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을 과시하면 불쾌감을 주고 반감을 사게 한다. 하지만 다정함이나 패션 센스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면, 외모를 내세울 때와는 달리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는다. 그러므로 똑똑함이나 외모보다는 다정함이나 좋은 센스를 은근히 드러내는 편이 좋다.


    타고난 자질이나 압도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잘난 척이야말로 주위의 짜증을 부르는 것이다. 유능한 인재임을 어필하려면 명석함이 아니라 성실함이나 책임감, 스스로에게 엄격한 성향임을 넌지시 드러내야 한다. 매력을 어필하려면 외모가 아니라 친절함, 성실함, 패션 센스 등을 은근히 보여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어필하면 적을 만들지 않고 유능함이나 매력을 자랑할 수 있다.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공통점

    세상에는 ‘좋은 어필’도 있고 ‘나쁜 어필’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어필에 실패하는 걸까?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어필을 계속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망가진 셀프 카메라

    자신의 말과 행동이 적절한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셀프 모니터링’이라고 한다. 이른바 마음속 카메라로 주위 반응을 살피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확인하는 심리 기능을 말한다. 셀프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부적절한 자신의 언행을 깨닫고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의 반감을 쉽게 사는 사람은 대체로 셀프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속 카메라가 망가진 것이다.


    상대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면서 자신의 언행을 조절하지 못하므로, 상대를 짜증나게 하고 질리게 하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가 기분 나빠하거나 어이없어하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우쭐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악의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나쁜 어필을 하는 건 아니다. 자기 언행의 부적절함을 알아채지 못해서 수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 결과, 멋져 보이고 싶다. 능력 있어 보이고 싶다는 본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꼴사나울 정도로 잘난 척을 하게 된다. 즉 ‘능력자 어필’을 하고 만다. 이런 어필을 계속하면 능력자로 보이기는커녕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함께 있기 불편한 사람이 된다.


    요즘은 SNS를 통해 누구든 쉽게 자기 이야기를 하므로, 셀프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나친 인정 욕구에 사로잡혀서 과대 포장한 자신의 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런 사실을 본인만 모를 뿐이다. 상대가 어찌 생각할지 남들이 어찌 받아들일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을 SNS에 올리는 것도 카메라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아도취 상태에서 지금의 기분이나 생각을 쓰거나 독선적인 주장을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출중함이나 사람 됨됨이를 뽐내려 하지만 부적절한 어필 탓에 오히려 반감만 산다.


    정말 잘난 사람은 잘난 척하지 않는다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과 자신 있는 척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주위에는 그 차이가 뻔히 보이는데도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무리해서 자신 있는 척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서투른 건 서투르다고 넌지시 말할 뿐이다.


    실제로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으면서 이를 감추려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참으로 거북한 존재다. 자신 없고 열등감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허세를 부린다.


    능력 없는 사람일수록 잘난 척하는 이유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은 실력만 발휘하면 저절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굳이 잘난 척을 할 필요가 없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말해도 주목을 받는다. 실적을 냈을 때 어쩌다 보니 성과가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해도 주위에서는 능력자로 생각한다.


    이에 비해 능력은 별로 없으면서 야심만 많은 사람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들키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이런 불안감을 의식하면 기분이 나쁘니 무의식적으로 억제한다. 이런 타입은 사소한 실수를 했을 때 주위에서 웃거나 놀리면 얼굴이 벌개져서 화를 내곤 한다. 남에게 얕보이는 건 견디지 못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랑하고 허세를 부린다.


    자기를 대단한 존대로 보이고픈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카메라가 망가지고, 그 결과 어처구니없는 잘난 척을 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지겨워해도 깨닫지 못하고 가식적인 말과 행동을 계속한다.


    즉, 능력 없는 사람일수록 카메라가 고장 나서 과도한 잘난 척을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

    상대는 당신의 관심을 원한다

    셀카뿐 아니라 일기에나 쓸 만한 개인적인 생각이나 얘기를 SNS에 올리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말하는 것도 강한 자기애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과시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철이나 카페에서 젊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그 자리에 없는 친구의 SNS를 소재로 웃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때가 있다.


    본인은 슬픈 기분을 토로한 것뿐이지만, 그 뒤에 잠재된 자아도취나 동정을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다. 특별히 연민을 사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일상에서 느낀 점을 SNS에 올려도 이런 반응을 부른다.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을 올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 대단한데’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비웃음을 사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라 해도 강한 허세를 드러내는 순간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는 인상만 남는다. 애당초 개인적인 내용을 SNS에 올리는 거 자체가 ‘난 인정 욕구가 남보다 많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처럼 거북한 잘난 척, 어이없는 잘난 척을 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겠지만, 실제로는 그 어색함과 유치함 탓에 찌질이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도 잘난 척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허세 부리는 게 빤히 보이는데 어째서 저런 같잖은 자랑을 계속하는 거야?’

    ‘대체 왜 저런 거 하나하나 자랑하는 거야? 어린애 같이.’


    하지만 본인은 이런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사사건건 가식적인 어필을 계속 한다. 이렇게 잘난 척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타입을 ‘어필 과잉증후군’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 사람? 나랑 친해” _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친한 사이’ 어필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화제에 올랐다. ‘OO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잘 아는 듯이 말하기에 그 사람과 친하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돼 연락처를 교환했다. 얼마 후에 그 지인을 만나서 “저번에 oo라는 사람과 만나서 OO씨 이야기를 했는데 친한 사이인가 봐”라고 말했더니 “무슨 모임에서 한 번 만난 적은 있어도 단 둘이 이야기한 적은 없어”라는 대답에 깜짝 놀랐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친한 사이’라는 어필에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인맥을 이용해 영업하려는 경우는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별히 속이려는 의도 없이 그저 ‘친한 사이’를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SNS에 자기와 친한 관계인 듯 글을 쓴 걸 발견하고, 좀 위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는 사람도 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게시글을 올리다니 ‘친구가 없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했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부자연스럽게 ‘친한 사이’를 어필하면 오히려 위험한 사람이나 외로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친한 사이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조금만 친밀하게 말을 걸어주면 기뻐서 바로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넓은 인맥을 광고하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도 있다.


    “나 그거 알아” - 말 끝나기 무섭게 ‘알고 있다’ 어필

    남이 뭔가 말하면 바로 “응, 그래.”, “그렇더라고”라며 거의 동시에 말하려는 사람이 있다. 맞장구를 치는 느낌보다는 나도 알고 있다고 말하려는 뉘앙스다. “지금 말하려던 참이었어”,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먼저 말했네”라는 식으로 대놓고 말할 때도 있다.


    실제로 알고 있다 해도 모두가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뭐든지 알고 있다고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남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알고 있다’고 잘난 척한다.


    업무 상대와 이야기할 때 이런 어필을 느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업무상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이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몰랐던 게 분명한데도 알고 있다고 말하거나, 아까는 다르게 이야기했으면서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을 바꾼다. 지식의 풍부함이나 사고의 깊이, 두뇌의 명석함을 어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필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른다. 머리가 좋다거나 잘 안다는 감탄을 부르기보다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비웃음을 산다. 그런데도 자기를 대단하게 보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서 ‘알고 있다’는 어필을 무심코 계속하는 것이다. 거래처와의 관계상 아는 척하는 건 어쩔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면 가볍게 보인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부하 직원이 제출한 계획서에 누락된 점이 있어서 알려주자 “알아요, 안 그래도 지금 막 그걸 추가하려던 참이었어요.”라고 바로 대답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전, 담당 직원에게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면 “그런 경우를 예상해서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 끝나기 무섭게 답한다. 하지만 지켜보면 이제 막 준비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왜 이런 ‘알고 있다’는 어필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은 없고 야심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 모습보다 대단하게 보이기 위해 아는 척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자기의 모습과 남이 자기를 대하는 모습이 다르면, 어떻게든 어필로 자기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려고 한다. 상대가 얕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어필로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필 과잉증후군의 정체다.



    남들이 무슨 일을 하든 잘난 척으로 보는 사람들

    방금 그 말 나만 불편해?

    상대의 거만함에 짜증나는 이유는 ‘서열 정리’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료와 일을 반씩 분담한다고 하자. 나는 이미 일을 끝냈는데 상대가 끝나지 않았을 때, 상대의 열등감을 자극하지 않는 사람은 티 나지 않게 다른 일을 한다. 일을 끝냈다는 사실을 동료가 알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콤플렉스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끝났다!”고 외치거나 책상 위를 정리하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쉰다. 아무런 악의 없이 “아직 안 끝났어?”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아직 일을 끝내지 못한 동료가 열등감이 없다면 아무 문제없다. 허나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열등감이 심하면 상대가 우위에 서서 말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월하다고 과시한다’, ‘일이 느리다고 깔본다’며 멋대로 오해하고는 화를 낸다. 상대는 큰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끝났다고 말했을 뿐, 동료를 이겼다는 생각이나 우습게 보려는 마음이 없는데도, 듣는 사람의 열등감이 심하면 멋대로 잘난 척이라고 느끼게 된다. 순수하고 친절한 마음에서 “도와줄까?”라고 말해도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된다. 동료를 깔보거나 비교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상대의 친절함에 고마워하기보다 거만하다고 생각한다. ‘일 좀 잘한다고 재다니 기분 더럽네’, ‘아직 안 끝났냐며 무시하고 있어’, ‘빨리 끝냈다고 자랑하기는’ 온갖 억측을 하며 화를 낸다. 별 뜻 없는 말에 열등감을 느껴 상대가 얕잡아봤다고 단정 짓는다.


    일을 빨리 끝낸 사람이 유능함을 자랑하고 싶어서 “아직도 안 끝났어?”, “도와줘?”라고 하는 건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런 말에 일을 못 끝낸 사람이 반발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런 의도가 없어도 잘난 척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열등감이라는 심리는 참으로 까다롭다.


    이처럼 별로 과시하려는 생각이 없는데도 잘난 척한다고 멋대로 단정짓는 사람이 있다. 상대는 전혀 깔볼 마음이 없었는데도 얕잡혔다고 느끼고 적개심을 불태운다.


    나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을 보면 괜히 짜증난다는 사람이 있다. 물론 친한 친구의 가족사진이면 잘됐다는 생각도 들고, 부러운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같은 사진을 보고도 짜증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부러움과 짜증은 큰 차이가 있다. 짜증은 일종의 공격적인 심리 표출이다. 아무리 부럽다고 생각해도 그 상대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누군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짜증나는 이유는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족사진으로 행복을 드러내는 사람과 그 사진을 보고 짜증나는 사람. 두 사람 입장으로 나눠 분석해보자. 전자는 표현 방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SNS에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을 지나치게 자주 올리면, 보는 쪽에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보다가 점점 ‘저렇게까지 자랑 안 해도 되잖아’라며 거부감이 든다.


    배우자나 아이의 모습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활약을 과시하는 뉘앙스가 물씬 풍기면 짜증나는 사람도 있다. 후자는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자기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면, 남이 조금만 행복을 어필해도 짜증나기 쉽다. 상대는 그다지 과시하려는 마음이 없는데도 삐딱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가족사진을 SNS에 올릴 때는 마음속에 과시하려는 생각은 없는지, 우쭐해져서 자랑하고 있지 않은지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 동시에 ‘이 사진이, 이 멘트가, 혼자인 친구들에게 불쾌감을 주진 않을까’, ‘가족의 불화로 고민하는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진 않을까’ 하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러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사람이 생기고, 뒤에서 욕을 먹거나 이상한 소문이 도는 등 생각하지 못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

    인간에게는 비교 의식이 있다. 남과 비교함으로써 내 상태를 평가한다. 현재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지 불만을 가져야 하는지,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비교 없이 판단하기는 의외로 어렵다. 월급을 300만 원 받는 사람도 친구와 비교하여 자기 월급이 괜찮으면 만족하지만, 친구보다 낮으면 불만을 갖는다.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부부관계에 대한 친구의 고민을 듣고 내 상황이 훨씬 낫다고 생각되면 불만이 사라진다.


    내가 만족할 만한 상황에 있는가, 불만을 가져야 할 상황에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 이는 주위와의 비교에 의해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질투를 느낀다.


    요즘 남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이라고 우울해 하는 사람이 많다. ‘남은 남, 나는 나’라는 생각이 확고한 사람은 괜찮겠지만, 모두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그렇지 못하다. 남의 사정을 궁금해하며 끊임없이 남과 비교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내 상태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근한 잘난 척에 교양 있게 대처하는 법

    무시당할까봐 불안한 사람은 예민해지기 쉽다

    20~50대 회사원을 대상으로 각 연령에서 175명씩, 남녀 350명, 총 700명에게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모든 연령대에서 과반수가 ‘남의 거만한 태도에 짜증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남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 증거로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사람도 20대에서 50대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과반수에 달했다.


    즉, 남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자신은 없고 그래서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만큼 남의 거만한 태도에 쉽게 짜증 난다. 앞서 소개한 조사에서는 상관 분석도 실시했는데, 남의 거만한 태도가 거슬리는 사람일수록 다음과 같은 경향이 있었다.


    *남에게 지적받으면, 그 지적이 맞든 틀리든 무작정 화가 난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다.

    *걸핏하면 불만스러운 생각이 든다.

    *뭘 하든 잘 안 되는 것 같다.

    *남과 자신을 곧잘 비교한다.

    *일이 싫어서 참을 수 없던 적이 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엄청 신경 쓰인다.


    이 결과를 보면 현실에 불만이 많고, 불안이 많은 사람일수록 잘난 척에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례한 잘난 척에는 품위 있게

    남의 잘난 척에 짜증난다면 ‘사실’에만 반응해보자. 예를 들어 “이거 내가 해놨어”라는 선배의 말에 능력을 과시한다고 느껴서 짜증 날 수 있다. 상대가 우위에 서서 말한다고, 즉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직 제 역할을 못하니까 선배가 내 몫까지 해주면 고마워해야 하는데도 화가 난다. 이럴 때는 선배가 거들어줘서 도움이 된 건 사실이므로, 그 사실에만 반응하면 된다.


    아울러 주의나 질책 혹은 충고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안 된다. 품위 있게 ‘사실’에만 반응하자. ‘짜증이 난다’든가 ‘생색 내는 느낌’이라는 감정적 반응은 가볍게 흘려버리자. 또한 ‘이 부분이 별로다’, ‘이런 식으로 고치면 좋다’고 말한 사실에만 집중하자.


    이렇게 하면 상대가 설령 잘난 척을 하더라도 일일이 짜증나지 않게 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상대의 의도가 어떠하든 질책에 반발하는 사람보다 고맙게 여기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은 혼난 경험을 ‘도움이 되었다’고 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반면 능력이 없는 사람은 혼난 경험을 ‘기분 나쁜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40대 회사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상사에게 심하게 혼난 경험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사 내 평가가 좋은 사람 중에서는 40%인 반면, 평가가 나쁜 사람 중에서는 70%나 되었다.


    심하게 혼난 경험이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평가가 좋은 사람 중에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점을 깨닫게 해줬다’, ‘내 의식이 바뀌었다’라는 대답이 두드러졌다.


    말투에는 다양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어쩌면 선배의 말에 짜증을 부르는 잘난 척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왕 일한다면 좋은 마음을 가지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재수 없지 않게 나를 어필하는 방법

    시켜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사람을 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거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모두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쓴다. 바꿔 말하면, 남에게 받는 평가에 민감하다. 말 한마디에서 상대의 기대가 느껴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무의식중에 열심히 하게 된다.


    능력에 대한 기대든 인격에 대한 기대든 마찬가지다. 남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자기 개념을 의식함으로써 그 개념에 실제로 가까워진다. 여기에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작용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이 효과를 토대로 피그말리온 경영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리빙스턴은 상사의 기대가 부하 직원이나 부서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례를 통해 입증했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부하 직원의 실적과 장래의 승진이 결정된다.


    *훌륭한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높은 실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긴다.

    *무능한 상사는 이런 기대감을 불어넣지 못하며, 그 결과 부하 직원의 생산성도 향상되지 못한다.

    *부하 직원은 상사의 기대가 느껴지는 일만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으면,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무리를 해서라도 열심히 한다. 그 결과, 기대감이 없었다면 하지 못할 수준의 성과를 내곤 한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으면,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대충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보면 남에게 기대를 어필하는 것이 상대를 위해서도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위 사람에게서 의욕을 이끌어내는 사람은 이런 기대를 자연스럽게 어필한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제대로 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성실한 사람’이라는 기대를 받는 것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전자의 경우, 아무리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제대로 일을 했어도 ‘위에서 시켜서 했다’고 느낀다. 그에 비해 후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제대로 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했다’고 느낀다.


    전자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발적 동기 부여’, 후자는 ‘내발적 동기 부여’에 해당한다. 외발적 동기 부여는 남에게 강요받아서 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반면, 내발적 동기 부여는 자기 내부에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당연히 후자가 기분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대를 어필하는 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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