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왜 남자와 여자는 말하는 법이 다를까? 어떻게 하면 상처주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과 친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멋진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등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직업이 쇼호스트이다 보니 직업상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다. 상품을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그것을 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것처럼 우매한 일이 된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직업이 어디 쇼호스트뿐일까? 어찌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는 삶을 살아가며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일 수밖에 없다.
■ 저자 문석현
성균관대학교와 동 대학원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TBS 교통방송 아나운서 출신으로, 서울종합예술학교와 동덕여대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CJ온스타일 쇼호스트로 활동하며, 방송 아카데미와 기업체 및 관공서에서 설득 및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 누구랑 말하니?》 《비키니 화법》 《스피치 메이크업》 《디톡스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 차례
Chapter1 왜 남자와 여자는 말하는 법이 다를까?
01. 여자는 거울을 보는 만큼 만약에를 즐겨 말한다
02.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마음이 풀리는 여자
03. 여자의 말만 따라해도 만사 OK!
04. 여자는 무엇이든 돌려 말하기를 즐긴다
05. 여자의 잔소리와 남자의 자존심
06. 남자와 여자의 허풍은 다르다
07.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따라하기
08. 놀이공원보다 더 좋은 데이트 장소가 있다
09. 사냥 본능이 넘치는 남자들의 소통법
10. 남자는 가르치는 걸 좋아해!
11. 당신은 진정 온리원이에요!
Chapter2 어떻게 하면 상처주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01. 깐깐한 사람을 동반자로 만들어라
02. 무의미한 말에 상처받는 사람들
03. 여자에게 무언가를 지시할 때는 구체적으로!
04.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05. 사람들은 말보다 말한 사람을 먼저 본다
06. 눈앞의 이익을 확실하게 보여줘라
07. 사랑과 미움은 한끗 차이!
08. 불안 본능을 자극하면 상대는 스스로 움직이다
09. 일단 끝까지 가보자는 심리
10. 선택의 범위를 줄여라
11. 분노 표현은 약일까? 독일까?
12.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려는 본능
13. 때로는 동성끼리가 더 엄격하다
Chapter3 어떻게 하면 저 사람과 친해질 수 있을까?
01. 모르는 사람과 금방 친해지는 비결
02.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위로법
03. 좋아요가 쏟아지는 커뮤니케이션
04. 손으로 통하라
05. 껌 하나면 설득은 OK!
06.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결정적 한마디
07. 이거 하나로 끝!이면 설득은 OK!
08. 왜냐하면으로 설득하라
09. 평범하게 말해도 비범하게 경청한다
10. 무조건 좋다고 외치던 시대는 갔다
11 단점을 섞어야 설득력은 배가된다
12.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13. 생각의 속도를 앞지르는 워딩
14. 예상 밖의 한마디는 의외로 강하다
Chapter4 어떻게 하면 멋진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01. 돋보이는 스피치와 보디랭귀지
02. 나쁜 소식을 전할 때는 직접 만나라
03. 씻으면 복이 온다
04. 몸이 풀리면 머리도 풀린다
05. 평범한 날에도 특별하게 차려입자
06. 턱을 들고 목소리를 10%만 높여라
07. 가뿐한 발걸음으로 기분을 UP하라
08. 새롭고 낯선 곳으로 일단 움직여라
09.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글을 써보자
어떻게 하면 품격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관계에 힘들어하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한 고품격 소통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다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말하는 기술
어떻게 하면 상처주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영화 타짜에서 악덕 사채업자이자 노름꾼으로 나오는 곽철용(김응수)이 고니(조승우)에게 하는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내가 달건이(건달) 생활을 열일곱에 시작했다. 그 나이 때 달건이 시작한 놈들이 100명이다 치면은, 지금 나만큼 사는 놈은 나 혼자뿐이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잽이 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지금은 안경 쓴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이제는 없어진 말이지만 예전에는 택시 기사들이 첫 손님으로 안경 쓴 사람은 절대로 안 태운다는 얘기가 있었다. 안경 쓴 사람을 태우면 그날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나 뭐라나… 안경 쓴 사람들이 무슨 죄라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그리고 정확하게 검증되지 않은 편견과 아집들은 생각보다도 더 많이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생각에 일치하거나 비슷한 의견에는 적극적으로 수용·동조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믿음과 배치되는 것들이 있으면 냉정하게 배척하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신념은 성공을 많이 거둔 사람일수록,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증세가 더 심하다. 이런 심리상태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신념과 일치해서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수용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반증하거나 부정하는 증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척하고 무시하는 경향이다.
생각하기 싫어 서둘러 결정하는 뇌의 오류
한 번 확증편향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 수렁에서 벗어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새로운 정보가 자기 논리와 선입관에 맞지 않는다면 그 정보는 틀린 정보로 자동으로 인식하고, 본인 신념에 맞는 정보만을 계속 선택하면서 그 신념은 점점 더 굳어진다. 또 자기 합리화를 통해 모든 정보를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하고 결국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
아주 쉬운 예로 ‘첫인상’에도 확증편향이 그대로 나타난다. 누구나 그렇듯이 첫인상으로 후한 점수를 받기는 쉽지 않다. 물론 처음엔 호감도가 낮은 첫인상이라 할지라도 이후에 노력을 통해 호감도를 점점 높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인간에게는 아주 가능성이 낮은 얘기일 뿐이다. 일단 첫 대면에서 무언가 부정적인 정보로 인해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그 이후가 더더욱 힘들고 고되다. 일단 처음에 부정적인 정보가 입력되면 그 이후부터는 무엇이든 단점만을 찾으려고 자동적으로 뇌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처음의 확증편향이 더욱 강해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 첫인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좀처럼 그 점수가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예쁜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뭘 해도 예쁘게 보인다.
그래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잔인한 말도 없고, 그냥 막연하게 ‘느낌이 안 좋다’는 말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그 막연한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확증편향의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껏 믿고 있던 어떤 신념에 흠이 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또 반대의 정보나 신념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피곤한 뇌는 바로바로 자동적으로 답이 나오는 것만 선호한다.
사실 이렇게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독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확증편향을 단시간에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그저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를 늘 염두해야 한다. 그리고 머리는 좀 피곤하겠지만 항상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만 편견과 아집을 멀리할 수 있고, 결국에는 충실하고 원활한 소통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그래서 여러 세계를 만날 수 있고, 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소설 읽기가 원활한 소통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랑과 미움은 한끗 차이!
직장이나 사회에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반드시 이 말도 좋고 저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중도의 대명사 황희 정승 같은 선배가 있다. 그만큼 후배로부터 신뢰도 높다. 반대로 본인만의 확실한 주관이라고 말은 하지만, 아부나 줄 타기를 통해 대놓고 라인을 형성하는 선배가 있다. 줄 타기를 즐기는 선배는 본인의 라인이 아니면 확실하게, 하지만 티는 나지 않게 다른 라인을 응징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 컨셉이다.
그렇다면 중도형의 선배와 배타형의 선배 중 누가 더 후배로부터 선호도가 높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중도형, 즉 어떤 의견이든 받아들이는 선배가 더 선호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의 판단은 상식과 합리성을 벗어나 본능에 의존할 때가 더 많다. 이성은 황희 정승 편이어도 본능은 그 반대다. 사람은 세상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분법’의 판단을 갖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로운지 아닌지, 나와 친한지 그렇지 않은지, 나와 의견이 잘 맞는지 안 맞는 사람인지… 나와 맞으면 좋은 사람,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사람, 어중간한 사람은 더 좋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한다.
이혜린의 소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에서는 대형 인기 가수를 확보하고 있어 예전과는 달리 위상이 더 없이 높아진 기획사 사장, 그리고 이 기획사 사장을 예전과는 달리 마음대로 좌지우지 못해 약이 바짝 오른 연예신문 부장과의 기 싸움이 팽팽하다. 연일 부장은 가수를 비난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마구 써대면서 기획사를 압박하지만, 기획사 사장은 미동조차 없다. 그러다 부하 기자인 주인공의 주선으로 화해의 목적으로 저녁 자리를 마련했는데, 서로 고개만 뻣뻣하게 세울 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위기는 폭발 일보 직전으로 가고 있다. 그러다 고향 얘기가 나온다.
“김해?” 부장의 동공이 두 배쯤 커졌다.
“야! 나는 부산이다!”
“아, 그렇습니까!” 대표는 갑자기 받아쓰기 만점 받아온 초등학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부장은 내 귀청이 찢어지도록 껄껄 웃었다.
“부장님, 이거 인연이네요. 혹시 초등학교는 어디 나왔습니까? 저 초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대표는 어느새 부산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내 개화초등학교 아이가!” 부장은 박수를 한 번 탁 치더니,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이 새끼! 니 어디 있다가 지금 나타났노! 야! 걱정 마라! 니 가수 내가 다 키워 줄꾸마!”
“이거 영광입니다. 형님만 믿겠습니다!”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더니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이 안 된 이유는 자명하다. 국민과 인민이 동기동창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를 확실하게 보여줘라
같은 고향에, 같은 학교 출신을 확인하는 순간 그렇게 밉고 꺾고 싶었던 상대는 세상 더 없는 동지가 된다. 강렬하게 미웠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바뀐 긍정의 감정도 강렬할 수밖에 없다. 뇌의 같은 부분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나와 늘 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같은 편이 됐다.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친해지는 것이 훨씬 서로에게 이롭다. 그렇다면 이유가 뭐가 됐든 상관이 없다. 상대편에 두자니 늘 껄끄럽고 불편했는데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훌륭한 구실이 만들어졌으니 이것으로 무조건 같은 편이 되는 거다!
이제 당신과 나는 한 배를 탄 동지! 출세를 향한 직장인의 비열한 처세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행동은 일부 편향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와 비슷한 취향과 색깔의 사람을 원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위 소설이 나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의 대화라고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욱, 집요하게, 대놓고 저럴 수 있다.
영국 런던대학 세미르 제키 신경과학 교수는 성인 남녀에게 미워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고 각각의 뇌를 촬영했더니 놀랍게도 두 경우 모두 뇌의 같은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을 밝혀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어서, 아주 작은 변화로도 사랑이 증오나 미움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애증’의 시작은 같다.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극단적으로, 순식간에 감정이 바뀌고 정반대의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중간하게 있는 걸 싫어한다. 겉으로 ‘싫다’ ‘좋다’를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한 편에 있는 걸 추구한다. 그리고 순간적인 비이성적 판단 회로에 의해 내 편이면 긍정적 감정이,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런데 그 흐름은 순식간에 정반대로 바뀌기도 한다. 이 모든 감정이 뇌의 같은 곳에서 시작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지금 주위에 있는 누군가를 본다면, 그에 대한 모든 이성적·합리적 평가와 판단은 뒤로 하고 그 사람이 나와 감정적으로 맞는지 아닌지를 본능적으로 먼저 판단해 보자. 그러면 그 본능이 클수록, 호감도가 강할수록 좋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의 결정과 판단에 대해 철저하게 이성적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면 전에 보였던 호감도만큼 격렬하게 그를 미워한다. ‘애증’은 동시에 공존하고, 모두 뇌의 같은 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해’보다는 ‘그 사람은 확실히 뚜렷한 데가 있어’ 또는 ‘그 사람은 뭐가 됐든 분명해’가 확실히 느낌이 강하고, 후자의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가 나도 모르게 언제나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구분 짓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든, 어떤 상황이든, 남자든 여자든, 가족이든 이웃이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친구가 됐든 동기가 됐든 무엇에 대해 은밀하고 조용하게 ‘나의 입장은 당신과 같은 이것입니다’를 밝히는 것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이롭다. 그보다 더 좋은 건 무조건 ‘나는 당신 편이에요’를 확실하게 반복해서 심어주는 것이 더더욱 나에게 이롭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과 친해질 수 있을까?
‘좋아요’가 쏟아지는 커뮤니케이션
현재 대한민국에서 중2병보다 더 심각한 질병은? 바로 관심병이다. 혹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을 열어 SNS에 올려놓은 글이나 사진에 얼마나 많은 ‘댓글’과 ‘좋아요’를 받았는지 확인하지는 않는가? 또는 시간에 관계없이 습관적으로 SNS를 보지는 않는가?
누구나 타인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오로지 관심 때문에 극단적인 일까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뮌하우젠증후군’까지 생길 정도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관심병’의 문제가 타인에게만 해당되고 나는 예외라고 착각하는 경우이다.(뮌하우젠증후군은 실제로는 앓고 있는 병이 없는 데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해를 하여 타인의 관심을 끌려는 정신질환을 말한다(위키백과))
우리들은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원래부터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정서 탓에 우리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편이다. 여기에 페이스북이니 카카오스토리니 인스타그램 등의 SNS가 우리 손안에 펼쳐지면서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은 더욱 증폭됐다고 볼 수 있다.
바쁘고 고독한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충족하지 못한 인정 욕구를 다른 곳에서 과시욕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일수록 이런 욕구는 더욱 강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이 과시욕마저도 충족이 안 된다면 내 글과 사진에 엄청난 ‘좋아요’와 ‘댓글’이 달려 있다 한들 거기에 만족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사연을 올리고 확인하고 뿌듯해 하고 서운해 하고 불안해 하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올린다. 그리고 또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간이 날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오죽하면 이런 욕망이 너무 심하다 보니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아라. 남들이 당신을 미워하거나 무관심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너 자신의 행복을 찾아라’고 한 100년 전 심리학자의 글이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끝도 없는 욕망 충족에 좌절을 느끼거나 좌절 중에 있거나 인정 결핍에 항상 고통스러워 하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결과이다.
여기서 ‘관심병’의 원인과 극복방안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강하든 약하든 가지고 있는 이 현상을 한 번쯤은 거꾸로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이석원의 소설 《실내인간》에는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 대해 호감을 표현하는 쉬운 방법을 가볍고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만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나는 그에게 점점 더 많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가 좋아지면 그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좋아지면 질문을 하는 버릇은 특정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고 ‘당신에게 관심이 많아요’라는 마음의 가장 솔직한 방법이다. 관심이 없는데 궁금한 것이 생길 리도 없다. 반대로 내가 무엇이든 질문을 했을 때 상대가 반응을 하면 상대 역시 나에게 관심 이상의 무언가를 표현한 것이 된다.
상대에게 인정 받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질문’이다
무엇이든 질문을 하라. 그것이 상대로부터 인정받는 가장 빠른 길이다. 말이 없는 사람은 나름의 카리스마를 풍길 순 있어도 소통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와중에도 질문을 위주로 하는 대화는 누구에게든 환영을 받는다. 질문을 통해 관심을 확인한 상대는 나에 대한 눈빛부터 달라진다. 굳이 부지런히 SNS에 사진과 글을 통해 ‘댓글’과 ‘좋아요’를 기다리지 말자. 또 질문을 하라고 해서 “요즘 어때?” “요즘 뭐 재미있는 일 없어?” 같은 막연하고 맥 빠지는 질문도 금물이다.
말과 SNS를 아끼고 주위 사람들을 조금만 관찰하자. 그럼 상대가 반색할 만한 질문거리는 차고 넘친다.
어떻게 하면 멋진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나쁜 소식을 전할 때는 직접 만나라
완득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두근두근 내 인생 노서아 가비
이 영화들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모두 소설 원작의 영화라는 것이고, 둘째는 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또 영화를 만든 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설에서 느꼈던, 말로 표현 못하는 감동들을 영화에서 같이 누리기엔 뭔가 좀 아쉬운 점이 많았다는 생각이다.
어릴 적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그 당시 청소년들에겐 무조건 봐야 하는 필수 만화였는데, 마침 영화로 개봉되어 만화를 보지 않은 채 영화를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그런데 만화를 먼저 보고 나중에 영화를 본 친구들의 반응은 싸늘한, 냉담 그 자체였다. 심지어는 원작을 훼손했다고 흥분까지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나중에 만화 원작을 보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글과 말의 차이가 클까?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어떤 상대와 직접 마주 보며 대화를 하면, 언어 자체의 메시지와 함께 나와 상대의 비언어적 메시지가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상대의 의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을 수 있고, 나 역시 상대에게 왜곡 없는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이따 점심 때 같이 밥 먹을래?”를 누군가와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을 할 때는 나의 표정이나 몸짓, 억양 등이 여과 없이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상대는 내 말의 의미를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따 점심 때 같이 밥 먹을래?”를 문자로 보내거나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면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 갑자기 나랑 밥을 먹자고 하지? 무슨 일이 있나?’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러나?’ ‘나한테 서운한 게 있었나?’ ‘뭔가 좋은 일이 있나 보다’ ‘혹시 나한테 고백을?’ 등 온갖 상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구나 글·텍스트만 보면 내 의도와는 달리 상대는 나름대로 상상을 한다. 또 각자의 감정을 싣는다. 그래서 글은, 그 글을 보는 이의 감정과 상상을 부풀린다. 나의 의도와는 달리 말이다.
결국 직접 말을 하는 것보다는 텍스트로 의사소통을 할 때, 감정의 진폭이 훨씬 커진다. 그래서 좋지 않은 내용을 문자나 메일·전화 등으로 전달하면 좋지 않은 감정은 더 증폭된다. 반대로 기분 좋은 내용을 문자·메일·전화 등으로 전달하면 좋은 감정 역시 증폭된다. 인터넷 댓글을 생각해 보자. 한 번 나쁜 내용의 댓글이 올라오면 비슷한 내용과 감정을 실은 댓글들이 들불처럼 삽시간에 달려온다. 물론 익명성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그것보다 악성 댓글에서 전달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덩달아 동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새해에 대표이사가 전체 사원에게 메일로 신년사를 보낸 적이 있었다. ‘작년 한 해 고생 많았고, 위기이긴 하지만 새해 좋은 기회도 많으니 더 열심히 일해 보자.’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긴 신년사 중 딱 한 줄의 문장 때문에 전 사원들이 공포에 빠졌다.
‘부진한 것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바로 ‘정리’라는 낱말 때문에 사원들은 ‘드디어 대표이사가 인원 감축의 칼을 빼든 것인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어느 부서가 0순위다’ 등 별의별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실제로 인원 정리와 관련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당시 대표이사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사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서 진짜 텍스트의 감정유발·증폭효과를 알고 일부러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상식적으로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빨리 정리하는 게 옳은 일이다. 직원들 역시 그런 의도라고 생각하면 별 일 아니다. 그러나 모든 임직원들이 메일로 전달 받았기 때문에 모두 각자 여러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좋은 쪽이든 아니든,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무서운 기세로 감정은 폭발한다. 인터넷의 악성 댓글처럼, 미담 사례처럼 말이다.
이제 간단하게 정리하자.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메일·문자가 아주 효과적이다. 좋은 일이어서 더욱 긍정적인 이미지가 증폭된다. 하지만 반대로 사과나 불만 대응 등을 할 때는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상대의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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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