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요?”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최악의 적으로 꼽은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뱃살을 걱정하면서도 야식의 유혹에 굴복하고, 노후 빈곤을 걱정하면서도 저축을 늘리기보다는 당장의 욕구에 이끌려 돈을 낭비한다. 우리는 왜 ‘오늘만 사는’ 선택을 할까? ‘내일을 위해’ 살기가 왜 이다지도 어려울까?
늘 의지박약으로 후회되는 선택을 하고서 자책했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돕는 일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여러 개인과 기업, 기관의 사례를 통해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투자가 필요한지, 앞서나가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의욕은 있지만 마땅한 요령이 없어서 실패를 반복해왔던 독자라면 이 책이 의지를 발휘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또한 우리를 구성하는 자아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최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과학의 최전선에서 나온 실용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놀라운 책이다.
■ 저자 할 허시필드
저자 할 허시필드는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및 행동 의사 결정학 교수이자 UCLA 심리학 교수로, 최근 10년간 심리학계에서 떠오른 ‘미래 자아(future self)’ 연구를 선두에서 이끄는 학자다. 20여 년 전 그는 18세기 철학자 조지프 버틀러가 “만약 오늘의 자아가 내일의 자아와 동일하지 않다면, 오늘 당신은 내일 자신에게 닥칠 일을 타인에게 닥칠 일처럼 무관심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쓴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미래 자아 연구를 시작했다. ‘미래의 나’를 ‘나’로 여기지 않는 점이 저축이나 운동을 꺼리는 등 인간 행동의 비합리적인 요인을 설명해줄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것.
허시필드는 4,000명 이상을 10년간 추적 연구하면서, 미래의 자신을 가깝게 느끼는 ‘자아연속성(self-continuity)’이 높을수록 당장 눈앞의 만족감보다는 장기적으로 더 큰 보상을 받는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미래의 자신과 연결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많이 저축하고, 열심히 운동하며, 더 도덕적으로 행동했다. 이들이 10년 후 삶의 만족도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결국 미래의 자신을 현재의 자신과 동일시할수록 삶의 전반적인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허시필드는 UCLA 경영대학원에서 가장 인기 많은 교수로 랭킹되었으며, 2017년 포이츠 앤드 퀀츠(Poets&Quants) 선정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40세 미만 경영대학원 교수 40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1년 미국심리과학협회로부터 라이징 스타(Rising Star)로 선정되었다.
■ 역자 정윤미
역자 정윤미는 경북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외국어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 ‘크로스오버 씽킹’, ‘월마트, 두려움 없는 도전’,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위대한 투자자 위대한 수익률’, ‘2050 패권의 미래’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들어가며_ 미래의 나를 만나면 정말 지금의 내가 바뀔까?
제1부. 미래로 떠나는 여행_ 시간 여행 속의 우리는 누구인가?
제1장.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변하지 않을까?
제2장. 미래의 나는 정말 나일까?
제3장. 미래의 나와 현명한 관계 맺기
제2부. 격동_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할 때 저지르는 실수를 이해하려면
제4장. 눈앞의 유혹에 한눈팔다가 비행기를 놓치다
제5장. 허술한 여행 계획이 불러들이는 재앙
제6장. 여행 가방에 엉뚱한 옷을 챙기는 실수
제3부. 착륙_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경로를 매끄럽게 만드는 방법
제7장. 미래를 더 가까이 다가오게 만드는 방법
제8장. 흔들림을 버텨내는 필승 전략
제9장. 충실한 현재를 통과해야만 열리는 미래
나오며_ 현재가 불확실하다 해도 미래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감사의 말
주석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왜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무시하는지 설명합니다. 여러 사례를 통해 미래를 위해 어떤 투자가 필요한지,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미래의 나를 만난 후 오늘이 달라졌다
미래로 떠나는 여행_ 시간 여행 속의 우리는 누구인가?
미래의 나는 정말 나일까?
우리는 왜 미래의 나를 타인으로 여기는가?
주방 창문 밖에 벌 두 마리가 윙윙거리면서 날아다니는 것이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지금은 두 마리가 아주 명확하게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둘을 구분하기가 조금 어려울지 모른다. 벌 두 마리의 이미지가 겹치기라도 하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한 마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가 현재의 자아와 미래의 자아를 비교할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심리학자 사샤 브리츠케(Sasha Brietzke)와 메건 마이어(Meghan Meyer)가 증명했듯이, 사람들은 현재의 자아와 가까운 미래의 자아는 명확히 구분할 줄 안다. 창문 바로 밖에 있는 두 마리의 벌처럼 현재의 나와 3개월 후의 내 모습을 구분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3개월, 6개월, 9개월, 아니 1년 후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 어떤가? 미래의 자아들이 다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렇게 미래의 자아 여러 개를 뭉뚱그려 생각하는 경향이 두뇌에서 관찰됐다. 현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의 자기 모습들에 대해서는 신경 활동 패턴이 모두 비슷하게 나타났다.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진 물체의 세부적 특징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시간상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미래의 자아도 그처럼 흐릿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현재의 자아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물체처럼 매우 선명하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미래의 자아가 아주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를 ‘나 자신’이 아니라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빠?
물론 미래의 자아를 남처럼 여긴다는 것은 유추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금융 고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다 까다로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미래의 자아가 정말 나와 다른 사람, 즉 남이라면 그 사람과 결혼도 할 수 있습니까?” 나라면 분명 ‘안 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의미 있는 지적이다. 미래의 자아를 남처럼 생각한다면, 종종 우리가 미래의 자아를 함부로 대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먼 미래의 낯선 사람을 위해 살을 빼거나 돈을 모으거나 운동하지 않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현재의 자아가 배고프고 게으르고 새로 나온 아이폰을 몹시 갖고 싶어 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특성이 강화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복지가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나의 미래 자아가 타인, 즉 낯선 사람이라면 굳이 미래의 자아를 위해 행동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녀, 친한 친구, 연로한 부모님, 배우자, 심지어 친한 직장 동료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할 때도 많다.
정리해보자. 우리는 미래의 자아를 완전히 타인처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타인을 가리키는가 하는 점이다.
미래의 자아가 잘 모르는 직장 동료처럼 남과 다름없다면, 미래의 자아를 위해 희생을 치를 이유는 많지 않다. 뱀파이어가 되거나 부모가 되거나 또 다른 자아가 된다고 가정한 시나리오처럼 사실 우리는 미래의 자아가 어떤 모습일지 절대 알 수 없다. 하지만 먼 미래의 자아가 감정적으로 현재의 나와 가깝게 느껴진다면 어떨까? 아주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미래의 자아에게 유리한 일을 지금 하려는 마음이 커진다.
미래의 나와 현명한 관계 맺기
미래의 자아가 친근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
미래 자아와의 연결고리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돈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래 자아와 유대감이 클수록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보상이나 혜택은 크지만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태도다. 일이 잘못되면 미래의 자아는 현재의 자아에게 책임을 추궁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미래의 자아와 유대감이 강할수록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며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 자아와의 관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결과는 심리적 웰빙, 특히 삶에 대한 만족도와 관련이 있다. 1995년, 미국에 거주하는 20세에서 75세 사이의 성인 약 5,000명을 대상으로 미국 중년 국가 조사(Midlife Development in the United States survey)라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지에는 본인의 현재 모습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본인이 얼마나 침착하고 배려심이 있으며 지혜로운지 물어보는 질문도 있었다. 또한 10년 후에는 그런 특성이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미래의 자아가 현재의 자아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래와 현재 자아의 특성이 많이 겹친다고 응답했다. 반대로 미래의 자아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미래의 자아를 지금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진 타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0년 후인 2005년에 같은 대상에게 설문 조사를 재시행했다. 내 학생이었던 조이 리프가 관련 자료를 입수해 검토했는데, 그는 언젠가 현실이 될 미래의 자아에 ‘체크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와 차이를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한 점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 중에서 인생에 대한 만족도는 누가 더 높게 나타났을까?
후자가 더 높았다. 현재 자아와 미래 자아의 교집합의 크기, 즉 유사성은 삶의 만족도와 가장 큰 연관성을 보였다. 사람들이 긍정적인 것을 예상하든 부정적인 것을 예상하든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물론 유사성을 더 많이 보는 사람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더 안정적으로 살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우리는 인구통계학적 특성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처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결과를 좌우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정해두었다.
사라 몰루키(Sarah Molouki)와 댄 바텔스(Dan Bartels)는 사람들이 미래의 자아와 유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자기 개선을 떠올린다고 했다. 나는 미래의 자아에 대해 유대감을 느낀다. 서로 비슷하고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더 능숙해지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격동_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할 때 저지르는 실수를 이해하려면
허술한 여행 계획이 불러들이는 재앙
자신에게 사과하는 법, 자신을 용서하는 법
식탁 위에 서류 더미를 잔뜩 쌓아놓았다고 해보자. 공과금 고지서도 있고, 정리해야 할 우편물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그림도 있을 것이다. 깨끗하게 잘 치워져야 할 집안의 어느 부분이 당신 때문에 지저분해졌다. 매일 이렇게 정리하지 않고 지나가면 배우자나 룸메이트의 짜증이 늘어날 것이다. 미루는 습관은 매일 조금씩 나중에 치러야 할 비용을 적립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엄청난 서류 더미를 정리하지 않고 미루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에게 해가 된다. 이번에도 엉망으로 만들어놓기만 하고 치우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죄책감이 들 수 있다. 게다가 이전에 스스로 결심한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를 수 있다. 배우자나 룸메이트와 마주치면 수치심이 점점 커질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에게 오히려 적개심이 생길 수도 있다. 비합리적이지만 그럴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식탁을 아예 피해 다니면 된다. 그러면 치워야 할 식탁 위 물건들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식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는 계속 늘어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식탁을 어지른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을 용서하면 어떻게 될까? 이론상으로는 서류 더미를 잔뜩 쌓아두었을 때 느낀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용서하면 그동안 회피하려던 대상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약해진다. 어떤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해주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상대방의 잘못 때문에 생기는 분노,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조금 누그러져서 그 사람과 다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한결 편안하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할 일을 미루던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면, 미루었던 일을 처리해보려는 마음이 생긴다. 공과금 통지서를 확인해보고, 진료 예약을 다시 잡고, 이메일을 열어서 답장하고, 서류 더미를 정리할 것이다.
이런 행동은 궁극적으로 미래의 자아가 좀 더 편하게 지내도록 도와주는 것과 같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책임을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과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떤 사과는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자아를 수용하고 용서하려 해봐도 잘 안될 때가 있다.
접촉 사고를 낸 후에 두 가지 방식으로 사과한다고 가정해보자.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의 차에 부딪혔어요.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당신의 차에 부딪혔네요. 달의 주기에 따라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죠.” 인간 행동 전문가가 아니라도 전자의 방식으로 사과할 때 더 쉽게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여기서 요점은 무엇일까? 미루는 자신을 용서하되 비판을 진심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으면 미루는 원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과 같다. 심리학자 마이클 울(Michael Wohl)과 켄드라 매크로플린(Kendra McLaughlin)은 이를 가리켜 ‘거짓 자기 용서(pseudo self-forgiveness)’라고 했다. 거짓 용서로는 미래의 행동이 달라질 리 없다는 것이다.
우리 집 주방 식탁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의 현재 자아는 서류 더미를 정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자아는 미래의 내가 별로 개의치 않을 거라고 여긴다. 미래의 나 자신이 정리 기계처럼 그 서류 더미를 금방 정리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의 내가 미래의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여행 가방에 엉뚱한 옷을 챙기는 실수
마이애미에서는 스웨터를 입을 필요가 없다
지금은 2월이고 당신은 시카고에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기대해왔던 플로리다 여행을 곧 떠날 예정이다. 남쪽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지만 어쨌든 매우 춥고 힘든 겨울이므로 가장 따뜻한 옷을 단단히 껴입고 있다. 물론 플로리다는 시카고보다 따뜻할 테니 좀 더 가볍게 입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두꺼운 겨울 코트는 시카고에 두고 갈 생각이다. 이 코트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데다 몸통 둘레를 20센티미터 이상 뚱뚱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이 든다. ‘아무리 플로리다라 해도 밤에는 좀 춥지 않을까?’
그래서 스웨터 한두 벌을 가방에 던져넣는다. 생각해보니 긴팔 셔츠와 얇은 재킷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남쪽 해안이라 따뜻하겠지만, 대비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방 한두 개가 더 늘어나는 것쯤이야 큰 문제가 아니다.
마이애미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벗어나니 기온이 28도가량 되고 습도도 엄청 높은 것 같다. 아직 공항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땀이 난다. 스웨터, 긴팔 셔츠, 얇은 재킷은 가방에서 꺼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마이애미 날씨에 맞춰서 짐을 챙겼다면 캐리어 하나로 충분했을 것이다.
이 스토리에도 교훈이 담겨 있다. 지금 시카고에서 추위에 떤다고 해서 미래에도 추울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점 말이다. 미래에 어떤 기분이나 느낌이 들지 예상할 때 현재의 기분이나 감정을 너무 중시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다. 인간은 기분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존재이므로 현재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여행 가방에 엉뚱한 옷을 챙기는 실수’는 현재 자아의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미래의 자아에게 현재 감정을 고스란히 투영해서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래의 자아는 지금과 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착륙_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경로를 매끄럽게 만드는 방법
미래를 더 가까이 다가오게 만드는 방법
과거의 내가 혹은 미래의 나에게
심리학 교수인 유타 치시마(Yuta Chishima)와 앤 윌슨(Anne Wilson)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팬데믹 초반에, 1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쓰거나 1년 후 자신에게 쓴 편지를 받은 성인들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부정적인 감정이 급격히 가라앉았다고 보고했다. 편지를 쓰면 미래의 자아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금-여기’에서 한걸음 벗어나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다. 즉 팬데믹 때문에 생겨난 우울한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두 자아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걱정에 휩싸인 기간에 생겨난 족쇄를 떨쳐버릴 힘을 얻는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개입은 일방적인 ‘대화’다. 사람들은 미래의 자아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받았지만 그보다는 당사자가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 자기 이야기만 계속하는 사람과 누가 데이트하고 싶겠는가. 최근 연구를 보면 미래의 자아에게 일방적으로 편지를 보내거나 미래의 자아에게서 편지를 받는 것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자아가 양방향 대화를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치시마와 윌슨은 고등학생 수백 명에게 3년 후 미래의 자아와 편지를 주고받으라고 요청했다. 편지를 그저 보내기만 한 학생과 달리, 편지를 보내고 답장받은 학생들은 먼 미래의 자아에 대해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진로 계획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고 시험공부에도 더 열중했다. 다른 유혹에 직면해도 학생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확실한 현재로 향하는 여행
한 번은 대학등록금을 모으는 저축 앱 유네스트(UNest)와 협업해 실험을 진행했다. 가입 절차를 시작해놓고 다 끝내지 않은 사람이 2만 5,000명 이상이었는데, 이들에게 한 가지 안내문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집 단에게는 ‘올해는 2031년입니다. 2021년으로 가봅시다’라고 안내했고 두 번째 집단에게는 ‘올해는 2021년입니다. 2031년으로 가봅시다.’라고 했다. 물론 후자가 더 일반적인 문구다.
전체적인 전환비율은 낮았지만 거꾸로 돌아오는 시간 여행의 효과는 매우 탁월했다. 미래의 마지막 연도에서 출발해 현재로 되돌아온 사람들의 경우,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대학등록금용 계좌를 개설하는 비율이 두 배나 높았다.
이유가 뭘까? 차를 타고 새로 생긴 식당에 간다고 해보자. 집에서 식당으로 가는 것과 식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멀게 느껴질까? 통상적으로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보다 집에 돌아오는 것이 더 짧게 느껴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귀갓길 효과(going home effect)’라 부른다.
낯선 곳으로 가는 길에는 불확실한 것투성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문 앞에 서기 전에는 ‘다 왔다’라는 느낌이 없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다르다. 편의점, 신호등, 학교 운동장 등 집 근처의 익숙한 장소만 보여도 벌써 마음이 놓이고 집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머릿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도 마찬가지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확실한 현재로 돌아오는 여행을 하면, 미래와 현재 사이의 거리감이 줄어들면서 여행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을 덧붙이고 싶다. 현재와 미래 사이의 시간을 연 단위로 생각하지 말고 일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닐 루이스(Neil Lewis)와 다프나 오이서먼(Daphna Oyserman)은 수천 명에게 이 점을 실험했는데, 주목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사람들에게 1만 950일 후에 퇴직한다고 말하자, 30년 후에 예정된 퇴직이라고 표현할 때보다 일찍 저축을 시작하는 비율이 네 배나 높았다. 이렇게 연 단위가 아니라 일 단위로 생각하게 만들자 대학등록금을 모으려고 저축하는 것과 같은, 다른 결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달라지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일 단위로 생각하면 짧게 느껴지고 연 단위로 생각하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 단위가 아닌 일 단위로 시간 여행을 하면 사람들은 먼 미래의 자아에 대해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사람이 현재에 집중하는 것, 근시안적으로 지금 바로 여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 여행 기계가 매끄럽게 작동하도록 윤활유를 칠하는 것과 같다. 결국 미래의 자아가 지금의 모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할 수 있다.
흔들림을 버텨내는 필승 전략
사전 약속이 발휘하는 힘
한 가지 사례를 가정해보자. 메이플 시럽을 몹시 원하는 몇몇 국가가 캐나다에 있는 메이플 시럽 공장을 강탈하려고 계획 중이다. 공격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캐나다 공장을 방어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 그러면 트럭으로 메이플 시럽을 빼가려는 시도는 줄어들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미국이 확실하게 대응하겠다고 사전에 약속했기 때문에 캐나다를 공격하는 것이 더는 좋은 계획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 시도하려는 약속 이행 장치와도 공통점이 있다. 효과적인 약속 이행 장치를 만들려면 타인, 특히 미래 자아의 견해를 수용할 수 있는 건전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메이플 시럽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국민이 팬케이크를 자주 먹기 때문에 시럽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국가의 수장은 미국의 사전 대응으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회는 그들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사전 약속 이행 방식을 사용할 때 그럴 필요가 있다. 전시 태세의 양국처럼 상대방의 입장을 계산해보고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정확히 어떤 문제나 요소가 유혹으로 작용할지 파악해야 한다.
가벼운 약속이 의무감을 자극하는 이유
크레이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체중이 많이 늘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아침, 간식, 점심, 저녁 등 뭔가 먹을 시간이 되면 일단 영양사에게 무엇을 먹을지 사진을 보내는 것이다. 영양사는 칼로리 섭취량을 대략 계산해보고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지 확인한 다음, 단백질을 늘리거나 탄수화물을 줄이라는 등의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다.
이렇게 크레이그는 음식 사진을 찍어 보내기로 사전에 약속한 상태였다. 영양사와 함께 식단을 짜고,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사진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이는 사실상 몸에 좋은 음식을 먹겠다고 약속한 것과 같다. 이처럼 사전에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심리적 약속(psychological commitment)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이를 ‘가벼운 약속(soft commitment)’이라고 한다.
가벼운 심리적 약속은 가벼운 약속 또는 행동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체중감량 수업에 참석해 감량 효과를 얻는 것처럼 다른 행동을 증가시키는 데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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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