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분히 괜찮은 존재입니다
 
지은이 : 취샤오리
출판사 : 더페이지
출판일 : 2024년 03월




  • 나를 지켜주는 마음의 갑옷, 바로 자존감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을 키우지 않으면 모든 애씀은 부질없다고 합니다. 10년간 1만 시간의 심리 컨설팅 끝에 얻은 자존감 회복의 방법을 제안드립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존재입니다


    ‘더 나은 나’를 위한 필수조건, 나를 사랑하라

    나를 사랑하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게

    나의 자존감은 건강할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며 실패에 부딪혀도 오랫동안 주눅 들어 있지 않다. 또한 한 가지 일을 잘못했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선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래서 안 돼, 나는 엉망진창이야, 나는 가치 없는 존재야.’ 만약 당신도 이 같은 감정을 쉽게 느낀다면 먼저 자신의 자존감 상태가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자기 억제와 자기 의심의 경향을 보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머릿속은 수많은 물음표로 가득 차 있다. ‘저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저 사람은 왜 나에게 그런 반응을 했을까?’ 등의 숱한 의문이 들지만, 겉으로 이를 쉽사리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혹시 이렇게 물어보는 건 무례한 걸까?’,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이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와 같은 끝없는 고민을 하며 자신을 틀에 가둔 채 외부에서 ‘모범답안’을 찾으려고 한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그들의 레이더는 항상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탐지하려고 한다. 그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어도 혹시 실수하거나 사람들의 반응이 안 좋을까 봐 그저 침묵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과묵한 사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둘째, 자존감이 쉽게 동요되고 불안정하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아침 A 씨가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상사와 마주쳤다고 가정해 보자. 상사가 기분 좋게 웃으며 인사해 주자 그는 ‘내가 일을 잘하니까 상사도 날 좋아하나 봐’라고 생각하며 짜릿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그날 오후, 동료들과 함께 상사에게 보고하는 회의 자리에서 상사가 A 씨에게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다시 한번 설명해 줄래요?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가 뭐죠?” 이에 크게 당황한 그는 ‘망했다! 상사는 내 아이디어가 맘에 안 드나 봐!’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급격히 다운된다. 회의 가 끝난 후, A 씨는 상사의 미세한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며 좌절감에 빠졌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재능이 아깝다고 한탄하기도 하고,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다. 이것이 바로 쉽게 동요되고 불안정한 자존감의 전형적인모습이다.


    셋째, 자신의 일부 성향(취향, 욕망 등)을 감추려고 한다. 자존감이 낮다고 해서 현실에서 늘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모범생인 경우가 많고, 좋은 학벌을 갖고 있거나 회사 내에서도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는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그런 노력이 부모님이나 선생님, 상사, 파트너, 자녀 등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어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원하는 것들은 절대 허용되거나 인정받지 못해’라는 깊은 불만과 분노가 저변에 깔려있다.


    예를 들어, 이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면서 혼자 몰래 게임을 즐긴다. 그들은 게임이 ‘모범’과는 전혀 상반되는 세속적이고 한심한 취미이며, 게임을 즐기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게임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내적 갈등이 늘 그들을 괴롭히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감춰진 개인적 성향)을 떳떳하게 드러내 지 못하고 깊이 숨기는 경향을 보인다.


    넷째,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경계 설정에 취약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과도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그들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이메일에 답장해야 마음이 놓인다. 휴가를 이유로 일 처리를 하지 않으면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놓치는 것이 생기면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말 못할 억울함을 느끼며 휴가 중에 일하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보통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자신이 완전한 만족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둘째, 자기 자신에게 ‘쉼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휴식이란 일시적인 멈춤이 아니라 방탕과 타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돌보는 것에 대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자신은 만족을 느끼거나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잠깐의 휴식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들은 마치 끊임없이 돌아가는 쳇바퀴에 올라탄 듯 쉴 새 없이 움직여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심리적 공황에 빠지거나 중병에 걸려서 의도치 않게 쉬어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다섯째,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한다.


    “백 년을 못 사는데, 어찌 늘 천 년의 걱정을 품고 사는가(生年不滿百,常懷千歲憂)”


    이 말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대외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에는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고 늘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소한 실수 때문에 자신의 가면이 벗겨져 무능한 민낯이 폭로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이를 피하기 위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성공 후에 겪을 실패가 두려워 눈앞의 기회를 의도적으로 놓칠 때도 있다. 물론 그들도 칭찬을 받으면 기뻐하긴 하지만 그 기쁨이 오래 가지 않고 곧 불안에 빠진다.


    ‘이제 어떡하지? 저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못난 존재인지 모를 텐데 다음에는 어떻게 속여야 하지?’칭찬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잘한 게 아니라 은근슬쩍 잘 넘어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무능한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칭찬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심리학에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진짜 자아는 가면 속에 가려지고 이중적 자아가 표출되는 현상으로 가면이 벗겨지면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심리-역주)’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섯째, 행복할수록 불안감을 느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행복을 느낄 때 이 행복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들이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금방 덮어버린다. ‘행복 속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나는 못 해’ 또는 ‘나는 안 돼’라는 감정을 빈번하게 느낀다. 아마도 그들은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너는 못 해’ 또는 ‘너는 안 돼’라는 비난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이 가시 돋친 말(현실은 그렇지 않으나 짙은 편견에 사로잡힌 말)들이 한 사람의 그릇된 신념이 되어 행복을 위한 모든 시도와 행동들을 억누르는 것이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특징들이 당신에게도 해당된다면, 아마도 당신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 문제들이 일상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쳐 현재의 삶을 즐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더 나은 나’가 되기 전에 먼저 어떻게 하면 자기만족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자존감이 낮은 이유

    나와 세상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는 것들

    ‘내면 탐구’_ 나를 들여다보다

    일반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는 자아정체성을 가리킨다. 자아정체성은 ‘자아동일성’이나 ‘아이덴티티’로 불리기도 하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와 같은 자신에 대한 인식과 묘사를 의미한다. ‘나는 누구인가’는 평생에 걸쳐 발전하는 과정이자, 끊임없이 변화하고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의 자아발달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자아 인식은 ‘생리적 자아, 사회적 자아, 심리적 자아’라는 세 단계의 탐구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어떻게 자아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이 자아 수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문제들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의 발달 과정을 이해하면 내적 갈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적 갈등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관련 있다. 우리는 현재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마치 경험이 풍부한 원예가가 식물을 키우는 것처럼, 꽃이 한참 동안 피지 않거나 시들어 가면 그 원인을 파악하여 시든 가지와 잎을 잘라내고 다 시 생명력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내 안의 ‘나’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특징이나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지금 겪고 있는 고충이 무엇인지 등을 충분히 이해하면, 진정한 자아 탐구의 여정이 시작된다.


    호기심을 갖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자아를 탐색하고 발견하다 보면 일상생활 곳곳에서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진짜 내 모습을 수용하면서 더 큰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자아정체성’ 피할 수 없는 인생 과제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사회심리 발달 단계 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일생 동안 겪는 심리적·사회적 변화는 총 8개의 단계로 나누어지며, 그중 다섯 번째 단계는 청소년기(12~18세)이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자아 정체성(identity)과 역할 혼란(role confusion) 간의 갈등을 겪게 된다. 자아 정체성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안정적이고 일관된 인식을 갖고, ‘나는 누구인가?’ 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확립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과거, 현재 및 미래를 조직화하여 유기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자신의 이상과 가치관(또는 자아발전과 관련된 다른 중요한 주제들)을 보다 명확하게 생각하고 수립하는 한편, 이상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자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아 정체성 발달에 적신호가 켜지면, 정체성 통합의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여 내적 혼란과 모순된 감정에 빠지고 무언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막대한 정신적 자원을 소모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탐색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지체시키고, 자존감 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


    ‘마음의 주선율’_ 내적 목소리의 통솔자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을 정의하고 창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자아 정체성을 창조한다는 것은 새로운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이를 위해 부모님, 선생님, 코치, 영화배우, 운동선수 등 누구든지 자신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방과 공감의 단계에서 창조와 초월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나는 어떻게 현재의 나로 성장하게 되었는가?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사람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기에 한 가지 정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녀이기도 하고 부모이기도 하며, 학생이면서 선생님이기도 하다. 또한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저녁에는 과감한 사업가가 되는 사람도 있다. 보통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직업으로 정의를 내리곤 하는데, 사실 ‘나는 누구인가’는 단 하나의 명함으로 제한할 수 없다. 한 가지 특정 역할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인간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망각하고 그 틀에 갇히게 된다.


    심리검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개인의 ‘자기 서술’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 서술 능력은 지인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명확하게 풀어내고, 인생 경험의 본질과 의미를 표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기 서술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감정, 생각을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려면 자신의 경험을 일관적, 논리적, 성찰적으로 공백 없이 조화롭게 조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탁월한 자기 서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자아 정체성을 단계적으로 확립하는 과정을 거쳐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그리고 다양한 관계나 상황, 감정 속에서 어떤 자아가 표출되는지,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들은 무엇인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숙지한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은 마치 오선지 위에 있는 음표처럼 분명한 경계선을 갖고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도, 연주자(주체)의 통솔하에 조화롭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인격의 연속성’_ 내적 회복 능력

    인간의 자체 치유 시스템과 복구 능력을 심리학에서는 원래 제자리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회복력 (Resilience)’ 또는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내적 회복력이 뛰어난 사람을 ‘탄력성이 좋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된 심리적 건강 상태를 유지해 더욱 빠르고 효과적으로 회복한다. 마치 탄성이 좋은 고무공처럼, 순간적으로 변형되었다가도 재빨리 본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매우 풍부하고 민감한 감성을 갖고 있다. 포용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신체적인 성장과 함께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을 경험하고 공유하는 법을 배우며 마음의 힘을 키워나간다. 성장 과정에서 학업이나 인간관계의 고충, 다양한 패배와 실패, 상실 등을 경험하며 깊은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부모(주 보호자)의 따뜻한 격려와 위안을 받으며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안정감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경청, 수용해 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내면화하여, 자기 양육(self-parenting) 기능을 발전시킨다.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과거에 자신의 아픔을 위로해 주셨던 부모님의 모습을 현재에 투영시켜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것이다. 또한 불안, 짜증, 번민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애써 떨쳐내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컨트롤한다. 이러한 자기 조절력은 한 사람의 인격에서 빠질 수 없는 ‘자기 양육’의 구성요소이다. 타인에게 위로받은 경험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회복 탄력성과 자존감이 크게 향상되고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에미 워너(Emmy Werner)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회복 탄력성 또한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정신적 붕괴의 임계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회복 탄력성이 높았던 사람도 큰 충격을 여러 차례 겪으면 회복 탄력성이 점차 고갈되기도 한다. 반면 회복 탄력성이 부족했던 아이들이 부단한 노력과 성장을 통해 부정적인 경험을 소화해내면서 점차 회복 탄력성을 키워 나가는 경우도 있다.



    자존감 바로 세우기

    자신을 ‘과감하게’ 사랑하라

    나는 나로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다. 그저 즐기지 못하는 행복만 있을 뿐이다.”


    처음에 나는 이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난은 이겨내는데 행복은 누리지 못하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수많은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누리지 못하는 행복’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지만 갖가지 고통에 불가피하게 노출되어 있기에, 행복이 찾아왔을 때 이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놓쳐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는 행복과 어울리지 않아’라는 편견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과 사랑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 즉 사랑을 주고받을 권리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과 같다.


    ‘태어나서 미안해.’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이 말이 유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들의 내면에는 한 생명이 꽃을 피우려고 할 때마다 무거운 죄책감과 수치심이 끊임없이 방해할 것이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그들에게 곧 유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 세대도 평탄하지 않은 삶 속에서 숱한 어려움과 고충을 겪으며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물론 자녀 양육 과정에서도 갖가지 내적 갈등을 겪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이러한 부모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고 하지만, 어떤 부모의 사랑방식은 자녀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자기중심적인 부모의 경우, 그들은 이상적인 '틀'을 만들어 놓고 자녀가 그 틀에 맞게 성장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아이가 커가는 내내 '그 친구와는 어울리지 마라', '이 전공을 선택해라',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 등의 갖가지 압박을 준다. 아마도 그들은 이러한 양육 방식이 자녀의 내재적인 생명력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을 것이다.


    나무는 적절한 물과 햇빛, 비옥한 토양이 있으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그런데 시시때때로 나뭇가지를 손질하며 성장 방향을 통제하면 자연스럽게 뻗어나갈 수 있는 생명력이 파괴된다. 아이의 성장도 나무와 같다.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아이는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를 만족시킬 수 없다’라는 자괴감에 빠져 내적 가치감이 크게 약해진다.


    '나는 이걸 먹고 싶어요', '엄마는 나쁜 엄마예요'와 같이 거짓말을 못 하는 아이들이 머릿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꺼내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자아다. 반면 가짜 자아는 '적응형 자아', 또는 '사회적 자아'로 불리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발전한 자아 기능이다. 가짜 자아가 진짜 자아와 극단적으로 분리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자기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다양한 면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 주고, 나의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봐야 한다. 즉, 진짜 자아와 가짜 자 아가 일치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어나 줘서 감사해’와 같은 높은 자존감을 의미한다. 한껏 치장한 모습이든, 세수도 안 한 부스스한 모습이든, 언제나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인관계에서도 오늘 나의 상태나 모습이 어떠하든지 항상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상대를 만나야 한다.


    사실 사랑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마치 한 생명이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다만 세상의 숱한 고충과 고통이 우리가 사랑의 존재를 느끼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진실한 내면과의 소통이 곧 자존감이다

    물건을 사는 것, 또는 물질적인 만족을 찾는 것은 본질적으로 ‘진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자존감은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가장 진실한 내적 부분과 소통하느냐와 직결된다.


    우리는 자존감을 날마다 조금씩 쌓아 올릴 수 있다. 내 얼굴에 불룩 튀어나온 뾰루지를 사랑해 보고, 하나둘 생겨나는 눈 밑의 주름을 사랑해 보고, PPT를 만들다 또 중요한 정보를 빼뜨린 나의 건망증을 사랑해 보고, 바쁜 출근길 아침에 지하철을 놓치고 비몽사몽 회사에 도착한 자신을 사랑해 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꾸준히 실천해 보는 것 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보다 관대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마치 자신이 서커스 트레이너가 된 것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감정과 관점까지 모조리 바꿀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과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갖는 감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만약 다양한 색깔의 감정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군가 나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해 줘도 그대로 튕겨나갈 뿐 아무런 에너지도 흡수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드는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에게 칭찬을 받아도 행복한 감정이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들은 ‘아, 다른 사람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부족하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덮으려고 애써 보지만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이는 바로 그들의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부정적인 ‘기본 코드’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기본 코드’를 인정하면서도, 나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코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나를 바라보는 시각들의 다양성을 허용하면, 외부의 긍정적인 평가가 좋은 시너지를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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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