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지 않고 인싸도 아니지만
 
지은이 : 쇼코(역:오나영)
출판사 : 서사원
출판일 : 2022년 10월




  • 힙하고 감성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진짜 감성이란 무엇일까요? 감성을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분위기나 멋진 스타일이 아닌 나만의 취향,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정답 등 나만의 ‘무엇’으로 정의하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힙하지 않고 인싸도 아니지만


    감성은 ‘자기 기준’을 만들어 준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반복으로 이루어집니다. 취직과 이직, 이사, 결혼과 같은 인생에 있어 비교적 큰일부터, 무엇을 먹고, 누구와 어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와 같은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우리는 매일 많은 선택 앞에서 갈등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타자의 기준’으로 결단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기 기준’이 있는 삶일 것입니다.


    감성적인 사람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알고 있습니다. 감성적인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감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기분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분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주위의 의견에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즉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100퍼센트 올바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황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기준을 가지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기준은 언젠가 여러분의 삶을 결정해 나가는 강한 힘이 될 것입니다. ‘감성’은 일상을 더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감성을 키우는 다섯 가지 습관

    하나, 관찰하는 습관

    감성을 키우는 첫 번째 습관은 아주 작은 변화나 위화감도 놓치지 않고 알아챌 수 있는 ‘관찰하는 습관’입니다. 매일 매일 일상생활을 의식적으로 하고 지금까지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일상을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제대로 들여다보는 순간,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량은 단번에 늘어납니다.


    둘, 정리하는 습관

    감성을 키우는 두 번째 습관은 공간과 마음을 ‘정리하는 습관’입니다. 물건이 가득한 장소에서는 마음이 어수선해지고 밝은 기분이 사라져 단순한 생각도 어려워집니다. 그 때문에 일상 속의 미묘한 부분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감정적인 상태가 되어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매일을 기분 좋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잡념 없는 마음을 유지하도록 노력해 봅시다.


    셋, 관점을 바꾸는 습관

    세 번째 습관은 ‘관점을 바꾸는 습관’입니다. 상대의 관점과 제삼자의 관점, 하늘을 나는 새처럼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관점 등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파악해 봅시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면적이니까요. 아이들의 싸움이든 국가 간의 전쟁이든 상대의 입장이 되어 바라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의 감성에 따라 내린 판단이 사실은 직감과 선입견, 표면적인 정보 등 고정적 관점에 의해 좌우됐을 수도 있습니다.


    넷, 호기심을 가지는 습관

    감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일 이외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성은 자기의 영역과는 다른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집니다. 그 새로운 세계의 입구에 서게 해주는 것이 바로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을 품는 대상은 업무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화와 취미, 놀이로 이어지는 것도 좋고 심지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다섯, 결정하는 습관

    결단력은 근력입니다. 짧은 시일에 익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일을 마주할 때도 ‘결정하기’를 습관화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갈고 닦아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결정하는 일은 감성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습관입니다.



    미묘한 차이에 반응하는 ‘관찰하는 습관’

    앞을 향해 나아가며 옆 풍경 바라보기

    ‘관찰하는 습관’은 시야 속에 있지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의식적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시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야란 앞을 향했을 때 보이는 범위를 말합니다.


    동물 중에서도 좌우의 눈이 얼굴의 측면에 위치하는 토끼나 말, 양 같은 초식동물은 특히나 시야가 넓어서 거의 360도 전부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먹이사슬에서 ‘먹히는 쪽’인 초식동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진화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요? 거의 평면에 가까운 얼굴의 전면에 두 눈이 위치하는 인간은 초식동물보다 시야가 좁고, 시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는 180도에서 200도가량 된다고 합니다.


    두뇌가 발달한 인류는 시야가 토끼만큼 넓지는 않지만 위험을 잘 인지하고 적절히 회피할 수 있어서 사바나에서 초식동물이 쫓기듯 무언가에 습격당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자를 사용할 있어서 선조가 남긴 지혜를 읽을 수 있지요. 우리 세대에서 미래를 위한 지식을 남기기 위해서는 인간의 눈이 앞을 향하고 있는 편이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도 모니터를 앞에 두고 이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데, 만약 눈이 옆에 달려 있었다면 불필요한 정보가 시야로 들어와 그것만으로도 피곤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180도의 시야를 전부 사용해서 세상을 바라보면 일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시야가 180도라고 해도 그것은 ‘보려고 해야 보이는’ 범위일 뿐 그 모든 것이 선명히 보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빈자리에 앉을 때 옆 사람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정도는 인식하겠지만요. 대개 사람은 흥미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던가 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매일 앞을 보고 생활하는 우리가 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범위는 의외로 좁습니다. 한번 시야를 전부 사용해서 앞을 향한 채로 옆을 보려고 노력해 보세요. 다른 사람을 힐끔힐끔 보는 것은 실례지만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 앞을 바라보면서 옆 사람을 ‘관찰해’ 보세요. 옆 사람이 웃고 있나요? 편안한 표정인가요? 혹은 급한 일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네. 아마도 지갑을 꺼내려는 거겠지? 다음 역에서 내리려나 보구나’ 하는 식으로 관찰을 통해 상황을 유추해 보는 겁니다. 분명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앉아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정보가 보이게 됩니다.


    ‘앞을 바라보는 것’은 지식을 키우는 것이고, ‘옆을 느끼는 것’은 감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평소 일이나 학업을 위해 눈앞의 정보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여러분도 가끔은 시야의 가장자리를 의식하면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의식을 집중해 보길 바랍니다. 계속하다 보면 의식할 수 있는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관찰하는 힘’이 자기 안에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점차 일상의 사소한 변화까지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흔들리고 있음을 알게 되는 ‘정리하는 습관’

    1시간 집중하고 15분 휴식해 보기

    여러분은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고 있나요? 사람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세밀한 문양을 그려 넣고 굽기는 몇 번씩 반복하는 도예 기법을 사용하고 있어서 ‘인내심 테스트처럼 무척이나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작업할 때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분배하는 요령을 익혀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로 ‘1시간 집중하고 15분 휴식하기’입니다. 이것은 ‘뽀모도로 테크닉’이라는 시간 관리 기술 중 하나입니다. 뽀모도로 테크닉은 짧은 작업과 짧은 휴식의 반복을 목표로 삼습니다. 실제 적용할 때에는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최적의 시간 분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1시간 집중, 15분 휴식’이 가장 적절했습니다.


    일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핸드폰 메시지를 보고 답장을 보내거나 다른 일로 정신이 산만해져서 집중하지 못하고 몇 시간이나 흘려보낼 때도 있습니다. 혹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휴식 시간을 잊고 있다가 나중에 컨디션이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도예를 막 배우기 시작한 시절에는 작업에 너무 몰두해서 문양 그리기를 연일 반복하다가 목에 담이 걸려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가 된 적도 있습니다. 늘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지킬 수 있도록,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집중과 휴식’의 시간 배분 방법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집중과 휴식이라는 시간 배분에 일정한 패턴이 생기면 시간을 쓰는 데도 군더더기가 사라집니다. 요즘에는 시간 관리를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도 많습니다.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프리랜서나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도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을 관리하면서 집중과 휴식의 사이클을 정리하길 바랍니다.



    다각적으로 매사를 인식하는 ‘관점을 바꾸는 습관’

    내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멈춰 보기

    누군가와 대화할 때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표정을 읽고, 자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등 다양한 사고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상 냉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질문을 받거나 제안을 해야 할 때는 자기 이야기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종종 고민 상담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중요하게 떠올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말에 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이야기를 멈추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는 자존심과 인정 욕구에 휩쓸려 있는 상태기 때문입니다. 의견과 조언을 요청받고 상대를 위해서 시작한 이야기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나의 무용담이 되어 있거나, 내 이야기에 내가 취해 버린 경험이 있지 않나요? 상대의 사정이나 마음은 잊은 채 자기도 모르게 개인적인 경험과 정의감으로만 이야기를 끌어 가고 있다면 언제부터인가 이야기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다는,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감정입니다. 이 감정 때문에 저도 모르게 자기를 잘 보이려는 데 필사적인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인정 욕구로 인해 쏟아 내는 말들은 설혹 그것이 옳은 말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마음에는 가닿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뿐이지요.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하는 ‘호기심을 가지는 습관’

    ‘알겠다’는 말 멈춰 보기

    ‘알겠습니다’와 ‘죄송합니다’ 같은 말은 위험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알겠다’는 기분만 드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과실이 있을 경우, 먼저 그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사과하는 행위는 극히 일반적인 대응이며 가정에서든 비즈니스 현장에서든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여러분도 그 자리를 모면하는 것만 염두에 둔 나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지 않나요? 혹은 경험으로 체득한 유형으로 사건을 일반화하고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본인조차도 자신이 이해했다고 착각할 정도면 그 다음부터는 손쓸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니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알겠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계기는 예전에 다녔던 선종 강습회에서 한 곳으로부터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인간의 심리를 깨닫는 것, 체득하는 것을 ‘증득(證得)’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펼치셨을 때 그것은 어떤 경지였을까요? ‘어지러운 세상을 초월해 진리를 체득한’ 이가 보았던 것을 현대를 사는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겠지요. 슬프지만 우리는 깨달음의 경지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108개 이상 존재할지도 모를 번뇌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며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 이해한 것은 정말로 그 이상 생각해 볼 것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증득한’ 것입니까? 스스로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 수도 없을 겁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생각하다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지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고, 미지로 가득한 이 세계가 새삼 설레고 기대되지 않나요? 스스로 ‘알겠다’고 서둘러 결론지어 버리는 것은 마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호기심을 불태울 수 있는 모험의 입구를 닫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의 경험만 믿고 단정하면 더 많은 지식과 매력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쉽게 ‘알겠다’는 말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스스로 가능성을 닫지 않는 한 호기심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호기심을 통해 세상 모든 것에서 양분을 깊이 흡수하면서 감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각을 믿는 ‘결정하는 습관’

    ‘하지 말 것 리스트’를 작성해 보기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들과 바라는 점들을 정리한 것을 ‘버킷 리스트’라고 하지요. 그것을 만들기 전에 저는 항상 ‘하지 말 것 리스트’를 먼저 만듭니다. 이 하지 말 것 리스트는 바꿔 말하면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리스트’입니다. 예를 들어 ‘세탁물 건조’나 ‘연애 때문에 괴로워하기’ 같은 것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하게 되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 ‘언젠가 끝내고 싶지만 아직은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써 내려가 봅시다.


    하지 않을 일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할 일을 결정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가치관과 의무의 영향을 받으면서 결단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중심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리스트를 써두면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사실은 의무감 때문에 ‘해야만 하는’ 부담스러운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일수록 생활에 의무가 가득하고, 그것을 좇다가 인생이 흘러가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의무를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결단의 대상이 완전히 뒤바뀌고 맙니다. 한번 자신의 욕망을 모두 꺼내어 정리하고 본심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의무와 구별해야 합니다.


    타인과 사회의 요구, 조직, 의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한 선택은 감성을 따르는 선택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 항상 자각하면서 결정하는 습관을 키울 때, 삶의 기준이 되는 중심과 감성도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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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