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지은이 : 천위안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2년 11월




  • 현대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 시리즈 첫 번째 주인공 조조! 난세의 간웅이라 알려졌지만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데 성공한 인물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고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 조조의 심리 전략과 만나보세요.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조조의 승리의 기술

    베푼 만큼 되돌아오길 기대한다

    외척 하진이 환관을 토벌하려 할 때 군사를 거느리고 수도 낙양에 입성한 동탁은 무력으로 조정을 장악했다. 그 후 소제를 폐하고 아홉 살짜리 유협을 헌제로 삼아 황위에 앉히면서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폐위된 소제와 그의 어머니 하태후를 독살했다. 또 매일같이 궁에 드나들며 황제의 침실에서 잠을 자고 궁녀들을 희롱하는 등 수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나라 조정의 충신들은 분개하며 동탁을 몰아낼 방법을 찾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사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사도 왕윤이 생일을 핑계로 믿을 만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도모하려 한 것이다.


    왕윤은 한나라 황실을 오랫동안 섬겨온 사람들만 가려 뽑아 초대장을 보냈다. 조상 대대로 한나라에 충성해온 그들 역시 동탁의 편에 서지 않았다. 왕윤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인지 메커니즘(Congnitive mechanisms)에 어떤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려는 욕구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다른 그룹으로 구분 짓고 ‘우리’와 ‘그들’이 당연히 다르다고 믿는다. 또 우리가 속한 그룹을 감싸고 그 외의 그룹은 배척하기도 한다. 가치관이나 행동방식, 사물에 대한 기호 등에서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은 다른 그룹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왕윤이 ‘오랜 신하는 충성스러운 신하’라는 기준을 적용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마터면 주인공 조조가 초대받지 못하는 상황에 빚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동탁이 득세한 이후 조조는 그와 급격히 가까워졌을 뿐 아니라 유능한 일 처리로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신하’라는 기준에 입각한다면 조조는 한나라 개국공신인 조삼의 후손이자 400여 년간 한나라의 녹을 먹어온 조씨 집안 출신이기도 했다. 왕윤의 기준에서 볼 때 조조는 당연히 충신이었다. 한바탕 울음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왕윤이 본론을 꺼냈다.


    “오늘은 이 늙은이의 생일이 아니오. 역적 동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생일이라는 핑계를 댄 것입니다. 내가 우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400년간 이어져 온 한나라를 위한 것이오. 동탁이 저리도 날뛰고 있는데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어찌 내일을 장담할 수 있겠소.”


    왕윤의 말은 장내에 있던 한나라 신하들의 가슴을 후볐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 가진 것이라곤 충성심 하나뿐 동탁과 맞설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술을 마시며 울분을 삼키거나 왕윤처럼 얼굴을 가리고 우는 수밖에 없었다.


    호탕하게 웃은 사람은 다름 아닌 조조였다. 뛰어난 재주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며 젊은 나이에 공적을 쌓은 겁 없는 청년 인재였다. 한바탕 웃고 난 조조가 입을 열었다.


    “대신들께서 그렇게 밤을 꼬박 새워 운들 동탁이 죽겠습니까?”


    “네 이놈! 네 조상이 400년 넘게 한나라의 녹봉을 먹었거늘 참으로 배은망덕하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린단 말이냐? 동탁에게 가서 밀고를 하려느냐? 우리는 죽어도 한나라의 귀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동탁에게 밀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일 그럴 마음이었다면 박장대소를 해가며 시선을 모으고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적당한 때에 조용히 물러나 동탁을 만나면 왕윤과 대신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조의 마음은 아직 한나라에 있었다. 그 또한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것을 마땅찮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원대한 포부를 품고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한 조조는 자신의 꿈을 위해 동탁을 도우면서 성공의 발판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조조가 동탁과 가까이 한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였다.


    여기서 조조의 정치가로서의 숨은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정치가의 선택기준은 충신의 기준과는 다르다. 충신은 정세에 상관없이 충성을 고집한다. 하지만 정치가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대가로 충의를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된다.


    “저는 다만 여러 대신 누구도 동탁을 죽일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우스웠던 것뿐입니다. 제가 대단한 재주는 없으나 머리는 좀 쓸 줄 압니다. 곧 동탁의 목을 치고 그 머리를 성문에 걸어 천하에 내보이겠습니다!”


    하지만 왕윤은 조조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의 원래 목적이 바로 조조 같은 인물을 찾는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아직 조조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어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왕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조에게 다가가 공손히 물었다.


    “맹덕 공, 한나라 왕실을 구해낼 방법이 있으신가?”


    “제가 동탁과 가까이 있으니 기회를 엿보아 해치우면 됩니다. 동탁이 저를 신임하여 무슨 일이든 저와 상의하려 합니다. 사도께서 갖고 있는 보검을 제게 빌려주십시오. 그 검으로 역적 동탁을 죽이겠습니다.”


    조조가 보검을 요구한 것은 왕윤의 신임을 얻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다. 왕윤이 자신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린 조조는 동탁과의 친분을 상쇄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왕윤의 보검을 택한 것이다. 만약 왕윤이 자신을 완전히 신임하지 않는다면 동탁을 죽이겠다는 용기는 명분을 잃게 되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만약 왕윤 등이 조조가 밀고하리라 확신한다면 아무리 힘없는 늙은이들이라 해도 한꺼번에 달려들어 조조의 입을 막고자 할 게 뻔했다. 그래서 조조가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보검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원조는 사실 전국시대 진나라의 노장 왕전이다.


    상호교환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형성된 인간의 대표적인 행동 양식 가운데 하나다. 쉽게 말해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게 되면 어떤 형식으로라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분이 영 찜찜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보검을 요구한 조조 역시 이와 비슷한 목적에서였다. 보검이 암살에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한다고 해도 암살에 따르는 여러 가지 다른 위험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검은 왕윤이 조조의 용기를 격려하고 지지한다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양측이 ‘등가교환’을 하면서 상호간의 신뢰 관계도 탄탄하게 맺어진다.


    심리학으로 들여다보기

    때로는 맹세보다 요구가 신뢰를 얻는다. 맹세는 의구심을 부르지만 요구는 자신을 증명해보이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의 절대적 상징을 요구하면 확실한 각오나 다짐을 보여줄 수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동탁은 여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곧 조조를 믿어왔던 만큼 좀처럼 그가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이러한 동탁의 심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호교환의 원리가 작용한 탓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많은 은혜를 베푼다면 내심 상대도 그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큰 보답을 하리라 기대하게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기대심리 때문에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선택적 자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은혜와 보은의 관계만 생각할 뿐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는 계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조의 경우는 굉장히 특이해서 동탁 부자는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다. 그때 마침 이유가 동탁을 찾아왔다. 동탁은 이때다 싶어 그에게 조조의 일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물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동탁은 즉시 조조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잠시 후 돌아온 부하가 조조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승상이 선물한 말을 타고 쏜살같이 동문을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묻자 승상의 밀명을 받고 급한 일을 보러 간다며 그대로 말을 달려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이유가 말했다.


    “이는 필시 도둑이 제 발 저려 도망간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말은 사실 심리학적으로 매우 미묘한 현상이다. 도둑은 왜 제발이 저릴까? 그것은 바로 ‘투명도착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명도착각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알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나 인간은 늘 자기를 기준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내 생각과 느낌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타인은 당신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알아차리기에 충분한(그러나 실제로 그는 눈치채지 못하는) 정보를 흘려 놓고 상대가 당연히 알아들었으리라 믿는 것도 바로 이 투명도착각의 작용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제 발 저리지 않을 도둑이 몇이나 될까? 죄를 지은 사람은 커피 한잔 마시러 나온 경찰을 보고도 나를 잡으러 왔나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만약 세상 모든 도둑이 나쁜 짓을 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군다면 경찰에 잡히는 도둑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조조가 대담한 인물이긴 하나 심리학적 현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투명도착각에 대한 무지 때문에 앞으로 조조는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조조의 마음 다스리기

    혼란한 난세에는 만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주준은 왜 조조를 천거했을까?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는 법이다. 특히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당하게 마련이다. 동맹군이 뿔뿔이 흩어진 후, 조조는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복양과 무양의 반란군을 진압했다. 그리고 내황의 흉노까지 물리치면서 명성을 드높였다. 이 소식을 들은 주준이 조조를 산동으로 보내 황건적을 정벌하도록 한 것이다.


    이쯤 되자 조조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조조의 아버지 조승은 그때까지도 가족들을 이끌고 진류에 숨어 있었다. 이제 제법 힘을 길렀으니 가족쯤은 거뜬히 지킬 수 있겠다고 판단한 조조는 태산태수를 보내 아버지를 모시고 오도록 했다. 조숭과 동생 조덕을 포함한 일가족 40여 명과 100명이 넘는 하인들이 100대가 넘는 마차와 많은 마필까지 끌고 당당하게 연주로 향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주태수 도겸은 조숭 일행을 맞아 극진히 대접했다.


    도겸은 조숭 일행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이틀 동안 대접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의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교위 장개에게 500명의 군사를 주어 조숭 일행을 호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은 때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도겸은 정성을 다해 베푼 호의가 결과적으로 자신은 물론 서주 전체에 큰 화를 입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숭 일행과 장개가 화비지역에 도착하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의 소나기였다. 일행은 근처의 오래된 절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절에는 승려 몇 사람만 있었다. 비가 내려 절에 발이 묶이자 장개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부하를 불렀다.


    밤이 되자 비바람은 더 거세게 몰아쳤고, 잠자던 조숭은 난데없는 고함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도적으로 분장한 장개와 그 수하들이 쳐들어와 조씨 가족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몰살하고 재물을 챙겨 달아났다. 조조의 명으로 조숭 일행을 데리러 왔던 태산태수 응소는 조조가 책임을 물을 것이 두려워 원소에게 도망갔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은 조조의 삶 자체였다. 일전에 동탁이 선물한 말을 타고 동탁을 배신한 일과 훗날 관우가 자신이 선물한 적토마를 타고 유비를 찾아 떠나버린 일이 그랬다. 또 죄 없는 여백사 가족을 몰살한 것과 장개의 손에 자신의 가족 전부를 잃은 것도 그렇다. 나중에는 헌제의 손에서 천하를 빼앗았으나 다시 사마씨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빼앗긴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장개 일당은 이처럼 대담한 일을 어떻게 저지를 수 있었을까? 사회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군중심리(mob psychology)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특정한 집단에 속한 개인은 혼자서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곤 한다. 군중 속에 섞임으로써 도덕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고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게 되어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자신을 잃고 도덕과 규칙까지 내팽개치면서 사회적 규범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개인이 집단의 일부가 되면서 일종의 익명성을 갖기 때문이다.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익명상태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적 행동규범에서 자유로워지다 보니 급기야는 함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장개 일행이 외딴 암자에 도착하자 엉뚱한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장소의 특성이 익명성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조숭 일행을 수행하던 응소가 자신이 거느린 몇십 명의 군사로 장개 등에게 대항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제아무리 도겸이나 조조라 할지라도 외딴 암자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사회규범의 구속과 권위의 힘 모두 여기에서만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개와 그 수하들은 군중심리의 마수에 이끌려 천박한 욕심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게 된 데에는 조조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조조가 진작 장수 한두 사람에게 군사를 주어 아버지를 맞이하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휘하에 많은 군대를 거느린 조조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조의 일생을 살펴보면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실수를 하지 않았다. 반면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거치는 것이 없는 시기에는 언제나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곤 했다.


    이 시기에 이미 산동 지방을 호령하던 조조는 무의식중에 자만했고 경계도 늦추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혼란한 난세에는 만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곧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했던 원래의 의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조숭의 소식을 듣자마자 군대를 일으켰던 불타는 복수심도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이 일을 구실삼아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조는 ‘배알도 없는’ 불효자인 것일까? 아니면 ‘안 되면 할 수 없고’ 식의 흐리멍덩한 마음을 먹은 것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좌절을 겪는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면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인류는 수천 년간 진화하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더라도 무의식중에 그 영향력을 제한하고 망각하는 일종의 ‘심리면역력pyschological immunity’를 갖추게 되었다. 우리가 각종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심리면역력 덕분이다. 매우 신속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다. 미국 심리학자 티머시 윌슨과 대니얼 길버트는 이 같은 현상을 ‘심리면역 망각immune neglect’이라고 정의했다. 좌절을 겪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빨리 적응하고 잘 극복해내는 것은 이 현상 때문이다. 나쁜 기억을 잊는 것은 배알이 없거나 성격이 흐리멍덩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선천적인 특성 때문이다.


    물론 노력을 통해 심리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조조는 매우 강한 심리면역력을 타고 났다. 이 같은 선천적 특질 덕분에 그는 유형과 강도를 막론하고 모든 종류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났고 아무리 나쁜 일이 벌어져도 오랫동안 끙끙 앓지 않았다. 조조는 일생을 통틀어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단 한 번도 의기소침하거나 용기를 잃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조조는 다시 천하를 도모하는 데 모든 신경을 모았다.


    양보도 상대를 가려가며 해야 뜻을 이룬다</P> 태평성대에는 능력 없는 사람도 명문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권세를 얻는다. 난세에는 출신이 비천한 영웅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도처에 널린 기회라도 원소 같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또 유비처럼 기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힘이 없어 잡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치적 감각이 발단한 조조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즉시 모사들을 불러 모으고 헌제가 낙양으로 환도한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순욱이 말했다.


    “지난날 진나라의 문공은 주나라의 양왕을 모셔 여러 제후들이 복종하였고, 한고조께서도 의제의 장례를 지내 천하의 인심을 얻었습니다. 지금 천자께서 곤경에 처했으니 군사를 일으켜 보좌하십시오. 머뭇거리다가는 다른 제후들에게 기회를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헌제는 꼭두각시처럼 동탁, 이각과 곽가, 양봉에게 차례로 조종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황제의 자리에 있는 이상 반드시 이용가치가 있었다. 천자의 명을 앞세운다면 모든 일은 한결 쉬워질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조조에게 낙양으로 오라는 천자의 조서가 도착했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낙양으로 향했다면 역모를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천자가 직접 불렀으니 당당하게 들어가게 되었다.


    헌제는 왜 조조를 낙양으로 불렀을까? 조조의 이름이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탁을 암살하려던 ‘의로운 행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영웅 이미지로 굳어 있었다. 그러기에 한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첫인상을 계속 간직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첫인상의 환상을 완전히 깨버리지 않는 한 효과는 지속된다.


    첫인상 효과에 매료된 태위 양표가 천자에게 조조를 불러들여 황실을 보좌하도록 간언한 것이다. 조조의 동탁 암살을 기억하고 있던 헌제는 이를 수락했다. 자신이 동탁보다 백배는 더 무서운 인물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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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