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마지막 용기
 
지은이 : 로스 엘런혼(역:유지연)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출판일 : 2022년 02월




  •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번번이 변화에 실패한다고 털어놓는 내담자들에게 10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내담자들은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을 깨닫고 용기를 얻기 시작했죠. 과연 그 10가지 질문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도 용기를 일깨워 인생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함께 참여해볼까요?


    나를 바꾸는 마지막 용기


    나는 왜 바뀌지 못하는가: 현재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본능에 대하여

    인생 변화의 세 가지 원칙

    변화란 현재의 위치와 앞으로 도달하고 싶은 위치 사이의 긴장이다. 사소한 변화를 한 가지 생각해보자. 어느 날 당신은 이제부터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현관 열쇠를 똑같은 장소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긴장은 다루기 쉬운 변화로서 양손 검지에 걸린 고무줄을 살짝 당기는 것과 같다. 하지만 다이어트나 동료를 대하는 방식처럼 자기 자신과 관련된 부분을 바꾸고자 한다면 긴장은 훨씬 강해지고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커질수록 더 큰 부담이 따르는 건 아니다. 마치 몸무게가 50킬로그램에서 60킬로그램으로 늘어나듯 긴장은 단순히 선형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말 인생을 바꾸는 목표를 추구할 때 훨씬 많은 것이 더해진다. 먼저,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결심하기 전보다 목표에 더 큰 중요성을 두게 되고 그 목표가 자신에게 없는 부분임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목표로 삼고 이루고자 했기 때문에 그 목표가 중요해지고 도전해야 할 과제가 된다.


    원칙 1. 우리는 홀로 모든 선택을 해야 한다

    개인적 변화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실존적 책임과 혼자라는 상황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은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xiety)을 자아낸다. 따라서 개인적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움직임은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억제력인 실존적 불안이라는 저항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심리 작용에 대한 실존적 접근을 통해 억제력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일정 기간 살다가 죽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혼자다. 우리가 살면서 더없이 좋은 사랑의 순간, 커뮤니티 참여, 정신적 통합을 경험한다 해도 그런 사건은 ‘우리 각자’에게 달렸다. 그리고 억압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요한 순간에도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혼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제한적이며, 제한된 선택의 결과는 매우 제한된 만족을 주는 목표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실존적’이라고 하면 파리의 한 카페에서 침울하게 담배를 피우는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는 실존주의자들이 불안, 즉 ‘앙스트(angst)’라고 부르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당신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그 결과 혼자임을 인식할 때 겪는 바로 그 불안이다. 선택의 결과가 자신에게 달렸으며 자신이 인생의 최종 저자임을 생각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책임이 그토록 무서운 깨달음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를 시도할 때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서 해주지 않는다. 변화의 한복판에서 당신을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만일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오롯이 홀로 져야 하며 나아가 인생 전체를 홀로 책임져야 한다. 만일 성공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여기서도 당신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일단 개인적 변화를 이루려고 하면 끝없는 외로움이라는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대부분 현상 유지라는 육지에 머무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현상 유지는 책임이라는 압도적인 경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피난처다. 다시 말해 책임지지 않는 것처럼 느끼기 위해 우리가 내리는 숨겨진 선택이다. 책임에 대한 저항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행동보다 훨씬 약할 때도 책임을 피하는 경향은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다.


    원칙 2.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

    혼자라는 사실,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에 직면할 때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하고 자신의 강점과 재능을 실현할 진정한 기회를 맞이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불안 속으로 급강하하지 않고 자유를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희망이라는 감정이 필요하다.


    개인적 변화의 두 번째 원칙은 바로 이 희망이라는 강력하지만 민감한 감정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움직임의 추진력이라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된 뭔가를 변화시킬 때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리를 격려하는 친구들, 자신감, 돈과 안정된 직장 같은 물적 자원, 타고난 재능, 사회적 지위 등이다. 이런 추진력은 우리 각자를 둘러싼 레빈의 장처럼 고유의 특성을 지닌다. 또한 추진력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으며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다. 하지만 희망은 우리가 뭔가를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할 때 언제나 존재한다. 이는 실존적 불안과 마찬가지로 변화의 프로세스에 포함되며 억제력에 저항해 우리를 밀어 올리는 작용을 한다.


    희망은 영적 영역이나 종교 언어, 시에서 종종 사용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나는 희망이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실 희망은 가장 세속적인 개념인 진화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는 강력한 억제력에도 불구하고 희망 때문에 행동하기 시작하며 적응과 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


    어떤 변화를 목표로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위협, 예를 들면 담배를 끊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거나 담배를 끊는 건 쉽지 않다는 도전, 혹은 둘 다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변화하려는 의지와 변화를 지속하는 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위협과 도전에 대한 태도다. 희망은 시도하는 용기, 계속 나아가는 인내, 실패를 딛고 일어나 다시 시도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내면의 힘이다.


    - 그러나 희망에는 경고 라벨이 붙어 있다

    사회심리 이론가 찰스 스나이더(Charles Snyder)에 따르면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를 찾는 능력은 희망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원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경우 장애물에 직면하면 그 주변의 다른 길을 찾아낸다. 반면 희망이 없는 경우 길이 막히면 금세 포기한다. 지금 가고 있는 그 길만이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희망이 개인적 변화의 한복판에서 잠시 물러나 최대한 냉정하게 당신 앞의 모든 대안을 검토하는 심사숙고 능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란한 역설이 또 있다. 바로 희망에는 경고 라벨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희망은 좌절의 주된 원인이다. 희망과 좌절은 양립 관계에 있다. 좌절의 뜨거운 입김이 우리 뒤에 숨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희망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희망의 높은 언덕에서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좌절에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좌절을 부인하지도, 없애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희망은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포기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추진력은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우리를 밀어 올리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안에서 어떻게 나아갈지 끊임없이 숙고하게 해준다.


    하지만 희망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에게 그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는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희망은 좌절의 순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주는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좌절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좌절이 우리의 삶에 부족하다고 여기는 뭔가를 얻지 못하는 절망적이고 무력한 경험이라면, 목표를 상기하고 현재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희망을 향해 움직이지 않고서 좌절에 이를 수는 없다.


    당신에게는 자신감이 있다. 좌절을 견디고 나아가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자신감,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설사 넘어진다 해도 당신은 여전히 무사할 것이며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스나이더가 말한 희망의 개념 두 번째는 이런 자신감에 대한 것이다. 그는 이를 ‘주도 사고(agency thinking)’라고 부른다.


    -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

    스나이더는 희망이 경로를 찾는 데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경로를 활용하는 자신감, 즉 주도 사고를 통해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도 희망에서 나온다. 스나이더에 따르면 주도 사고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일종의 확신이다. 스나이더는 “큰 희망을 지닌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같은 행위자 문구를 자기 대화에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증명할 순 없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직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이를 ‘인지된 자기효능감(perceived self-efficacy)’이라고 불렀다. 반두라에 따르면 자기효능감은 삶에서 중요한 사건들에 영향을 미치는 일정 수준의 성취를 달성하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강한 자기효능감은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성취와 개인의 웰빙을 향상시킨다.”


    “자신의 능력을 깊이 확신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과업을 피해야 할 위협이 아닌 정복해야 할 도전으로 여기고 접근한다.


    그들은 스스로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강력한 몰입을 유지한다. 실패에 직면하면 한층 더 노력을 강화하고 지속하며, 실패나 차질을 겪은 뒤 신속하게 자기효능감을 회복한다.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불충분한 노력이나 부족한 지식과 기술 때문이라고 여기며 부족한 부분을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위협적인 상황에 부딪히면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접근한다.”


    자기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면 희망에 따라 행동하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믿어야 하며 세상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으로 만들어지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도 믿어야 한다.


    주도 사고와 자기효능감의 개념은 또 다른 용어로 이어진다. 이는 희망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 강의보다는 설교에서 더 자주 등장하는데 바로 ‘믿음(faith)’이다. 믿음은 사실에 근거할 수도 있지만 결국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확신이다. 자신에 대한, 타인에 대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희망에 따라 행동할 수 없다.


    믿음은 희망과 달리 아직 심리과학에서 개발되지 않은 영역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믿음이야말로 변화를 향한 추진력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온갖 역경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을 열망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을 온전히 품을 수 없다.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자신에게 말하려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려면 사실뿐 아니라 신념에 바탕을 둔 자기 신뢰가 필요하다.


    원칙 3. 믿음이 없으면 희망은 위험해진다

    희망은 자신에게 없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중요한 뭔가를 열망하는 것이며, 믿음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희망에 따라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매우 어렵다.


    우리는 희망과 믿음이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개념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둘은 서로의 일부이긴 하지만 매우 다른 개념이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나아가게 하는 믿음

    그러면 희망을 따라 그 산에 올라가는 것이 괜찮다고 말하며 확신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넘어져도 괜찮을 거라는 정보를 어디에서 얻는가? 일부 확신은 증명할 수 있는 외부 요인에서 온다. 우리는 우리가 인생에서 주목할 만한 여러 가지를 이뤄냈고 따라서 유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목표 달성에 꽤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실과 데이터, 이는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우리는 다른 정보에도 의존한다. 사실과 데이터보다 객관성과 논리성이 다소 부족한 정보에서 얻은 확신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나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정보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모든 사실이 확인되고 특정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 때도 우리가 선택하는 결정과 행동은 논리와 감정의 조합에 따라 이뤄진다.


    사회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정보로서의 감정(affect-as-information)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다음 행보를 숙고할 때 감정을 중요한 정보로 사용한다. 정보로서의 감정에 관한 연구는 정서지능의 결과로서 더 창의적이고 유연한 계획을 수립할 때, 좋고 나쁨을 구분할 때, 중요한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지 결정할 때 감정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의사결정을 내릴 때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은 직감적 반응에 의존한다.


    나와 공동으로 ‘희망의 두려움’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회심리학자 켄트 하버의 연구 결과는 바로 그와 같은 방향을 제시한다. 연구에 따르면 자기존중감이 낮은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자기존중감이 높은 사람들보다 자신의 감정을 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버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신호로 이용할 때 더 신속하고 좋은 결정을 내린다는 정보로서의 감정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먼저 이런 신호의 출처, 즉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면,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감정을 사용하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 감정에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어려움으로 이어진다는 하버의 생각에는 일종의 순서가 있다. 나는 믿음의 손상이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내린 결정과 행동 때문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면 우리는 내면에서 비롯된 정보인 감정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발생시킨 사건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어떻게 나를 바꿀 것인가: 바뀌지 않는 열 가지 이유와 이를 뛰어넘는 용기

    거울 속 나의 모습을 마주할 용기

    지금의 현실을 자각하지 않아도 된

    개인적 변화는 현재의 자신을 살펴보며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것을 평가하고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불편한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다.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희망에 따라 행동한다. 앞으로 나아가기에 충분할 만큼 희망이 생기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첫째, 뭔가를 중요한 것으로 지정한다. 둘째, 그 중요한 것이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여긴다. 중요한 뭔가가 인생에 없거나 부족한 상황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면 현재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반대로 인생에 중요하고 부족한 뭔가를 기꺼이 직시해야만 우리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목표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도달하고 싶은 곳과 비교해 현재 있는 온갖 흠집이 있는 곳을 견디며 살펴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행동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치료가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모임의 첫 만남에서 “저는 제인이고 알코올중독자입니다.”와 같이 사람들이 자신을 알코올중독자로 인정하는 과정이 포함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겸손하게 자기 위치를 돌아보라

    겸손은 자만심의 반의어로서 수치심의 해결책이다. 겸손의 부재는 자기애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자만심이 거창하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생각과 관련된 의미라면, 겸손은 현실에 기반을 둔 태도와 관련되며 땅을 뜻하는 라틴어 ‘humilitas’에 어원을 둔다.


    사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포부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겸손은 현실에 발을 딛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자기 환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막아주면서 과도한 자신감을 안정시키는 무게 추 역할을 한다. 또한 지나친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며 진창 밖으로 고개를 들어 원하는 것을 주시하도록 해준다.


    뱃사람들은 명확한 표지물이 없어도 목적지까지 어떻게든 길을 찾아 항해한다. 그들은 어떤 지점에서도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길을 찾는다. 겸손은 자기지향(self-orient) 능력을 제공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받아들이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기준점을 갖게 된다. 나는 이 기준 공간을 ‘겸손 지대(humility zone)’라고 부른다.


    - 자만심과 수치심 사이의 균형

    겸손 지대에서 우리는 계속 나아갈 수 있을 만큼만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 자부심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는 일 사이의 긴장 속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를 잊을 만큼 과도해지지 않는다. 즉 겸손을 느끼지만 거울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보며 낙심하지 않는다. 이런 겸손 지대에서 활동하면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자만심과 수치심 사이의 불가피한 시소 위에서 자기애적 방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나처럼 피터는 중요한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려는 동기를 꺾어버리는, 끊임없는 자기애적 순환에 몰두했다. 하지만 피터나 내게 동기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목표를 이룬 것처럼 보이려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많은 동기를 드러냈다. 그와 나는 확실한 동기가 있었다. 단지 우리의 목표가 보이는 것과 달랐을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와 관객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에서 수치심을 덜어줄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런 외부 평가에 대한 지향성을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라고 부르며 외부 평가의 달성을 외재적 목표(extrinsic goal)라고 부른다. 외재적 목표 및 동기는 내재적 목표(intrinsic goal) 및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대비된다. 내재적 목표 및 동기는 외적 보상과 관계없이 자기만족과 의미를 지향한다. 피터와 나처럼 외재적 목표 달성에 대한 소망에 압도되면 내재적 목표 달성의 동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


    - 내재적 동기 vs. 외재적 동기

    자기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을 제시한 선도적 사상가 피터 슈먹(Peter Schmuck), 팀 캐서(Tim Kasser),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은 이렇게 설명했다. “내재적 목표의 추구는 본질적으로 만족감을 준다. 자율성, 관계, 역량, 성장에 대한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재적 목표는 올바른 믿음에서 비롯된 목표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목표이며 자신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목표다.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재적 목표는 겸손 지대에서 날고 있을 때 추구하는 목표다.


    외재적 목표는 무력한 불안감을 외적 보상으로 해결하려는 바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자기결정 이론가들은 이런 목표가 일반적으로 자신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외재적 목표는 외부 세계의 확인을 우선시하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우승 트로피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는 외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외재적 동기는 기대되는 행동과 보상 사이의 계약적 교환처럼 언제나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긍정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외재적 동기를 품을 때가 종종 있다. 앞서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트로피만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새로운 지위도 원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외재적 목표의 타인 지향성은 개인적인 변화를 추구할 때 내재적 목표를 향한 동기를 방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변화가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될 때 특히 그렇다.


    변화의 5단계 과정

    디클레멘테는 변화 과정이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제시한다. 첫째, 숙고 전 단계(precontemplation)로서 이때는 문제를 처리하려는 의도가 없다. 둘째, 숙고 단계(contemplation)로서 여기서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걸 고려하기 시작한다. 셋째, 준비 단계(preparation)에서는 목표를 향해 작은 노력들을 시도한다. 넷째, 실행 단계(action)에서는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섯째, 유지 단계(maintenance)에서는 그렇게 이룬 변화를 계속해서 실행한다.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책임과 혼자라는 사실을 직면하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뭔가 행동을 취하려면 깊은 무력함에 처할 위험 또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희망의 두려움을 초월해 믿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상황을 숙고하려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을 초월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수용은 자신에 대한 치료적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변함없는 상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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