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300여회 강의를 하면서 2년 만에 억대 연봉 강사가 된 안현숙. 육성회비를 못내 교실에서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였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평생 아픈 몸으로 일하는 게 지겹고 힘들어 결혼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 했던 결혼생활까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그녀의 인생 전반부 이야기와 60세에 강사로 전직한 후 2년 만에 억대 연봉자가 된 비법을 이 책에 담았다.
한없이 긍정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저자는 나이라는 건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한 것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남편이 아들과 함께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세상을 피해 나누는 삶을 살다가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작한 강사생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앞이 안 보여 두려워하던 그녀가 고군분투하며 삶에 안착해 나가는 모습을 담아냈다. 이 책은 눈물과 감동, 그리고 극복이 어우러진 글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내용이 가득한 자기계발서다.
■ 저자 안현숙
행복누리캠퍼스 대표로, 강사와 메신저를 양성하는 메신저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야반도주해버린 사건으로 인해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했으나, 자식에게 엄마가 자살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죽지 못해 살았다. 세월이 지나 성장한 아들이 찾아왔다. 아들은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수술비용을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때 60세란 나이 탓도 있었고 세상을 등져 있어서 변해 버린 세상의 모든 흐름 때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엄마이기에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는 목표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강사생활을 하며 앞만 보며 뛰었다. 덕분에 다음 해에 억대 연봉을 찍고 아들의 수술비를 해결했다. 지방에 집까지 샀다. 현재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N잡으로 강사 이외의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책에서 답을 얻고 배움에 투자하며 코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 특히 내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통해 행복한 메신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저서로는 <경험이 돈이 되는 메신저 이야기>(공저)가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나는 강의가 좋다제1장 나에겐 귀인이 있습니다01. 진통제 없인 살 수 없어 /02.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03. 하늘이 허락하신 별 하나 /04. 서툰 부모라서 미안해 /05.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왕자인데요 /06. 짐을 나누면 쓰러지지 않아요 /07. 야반도주한 남편, 방귀 뀐 놈이 성내다 /08. 세상으로 불러낸 전화 한 통 /09. 아들의 수술이 가르쳐준 ‘엄마’라는 이름 /10. 나에겐 귀인들이 있어요제2장 희망은 나에게 있다01. 기능장 되고 교수 되다 /02. 부모 교육을 시작하다 /03. 우리는 얼마나 괜찮은 부모일까? /04. 강사가 되고 싶어 /05. 희망은 나로부터 /06. 강사 준비의 기본 /07. 꿈은 진화한다제3장 억대 연봉은 마음먹기부터01. 어떻게 하면 억대 연봉자가 될까? /02. 부자가 되려면 지식 부자를 따라 하자 /03. 500만 원이라도 벌 만큼 노력했는가 /04. 경험을 당할 자가 있을까? /05.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한 습관 /06.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07. 제2, 제3의 억대 연봉 강사를 키워 내다 /08. 확대되는 비대면 강의 시장. 역대급 대박 찬스 /제4장 강사,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01. 열정 덩어리가 되어라 /02. 배움에 고픈 사람은 성공이 따라오더라 /03. 실행이 답이다. /04. 멘토를 벤치마킹하라 /05. 목표를 정확하게 잡아라 /06. 결핍에 감사하라 /07. 스토리텔링으로 내 브랜드를 만들어라 /08. 쓰러질 때면 사명과 비전을 다시 떠올려라제5장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01. 블로그 홍보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02. 무대포(MDP) 정신은 준비된 자에게 /03. 자신을 믿어라 /04. 얼굴 예뻐지는 경이로운 마법 /05. 억대 연봉의 시작과 마지막은 소통 /06. 감동하자! 감사하자! 행복하자! /07. 더 잘될 수 있다는 희망에필로그 | 60에 시작한 억대 연봉 강사, 안현숙
1년에 300여회 강의를 하면서 2년 만에 억대 연봉 강사가 된 안현숙. 육성회비를 못내 교실에서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였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평생 아픈 몸으로 일하는 게 지겹고 힘들어 결혼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 했던 결혼생활까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그녀의 인생 전반부 이야기와 60세에 강사로 전직한 후 2년 만에 억대 연봉자가 된 비법을 이 책에 담았다.
헐 머니가 온다 나에겐 귀인이 있습니다
야반도주한 남편, 방귀 뀐 놈이 성내다
졸업논문이 임박해 있던 어느 날, 평소처럼 직원들과 신나게 일을 하던 저녁인데 아이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랑 이사했다고만 이야기하고는 전화가 끊겼다. 장난이라 생각했다. 술주정이라 여겼다. 직원들에게 중계방송을 했다.
“너희 사장님이 길동이랑 이사했대.”
직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장난으로 알고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럴 위인조차 안 되는 사람이었다. 또 술 먹고 한 소리인가보다 생각했다. 아이 앞에서 날마다 술을 마시는 꼴이 보기 싫어서인지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집에 도착해 문을 따고 들어가니 황당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기운이었다. 술 취해서 하는 주정이나 장난치는 것으로 알았는데 뭐지? 이 싸한 느낌은? 아이 방에는 버려도 될 만한 노트가 널브러져 있고 모든 가구는 다 가져가고 텅 비어 있었다. 순간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장난 전화를 했던 게 아니었다. 남편과 아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잘 살거라고 문자만 왔다. 잔인했다. 내게는 얼마나 귀한 아들인데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로 이사를 가버렸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하는 날이었다. 학교에 가봤다. 아이를 찾고자 해도 방학을 해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전학도 안 시키고, 전입신고도 안 하니까 찾을 길이 없는 거였다. 울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멍하다는 건 이런 걸 말하나 보다 싶었다. 무념무상으로 발걸음을 떼면서 움직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쓰러질 것 같았다.
방학이 끝나는 날 다시 학교를 찾았다. 전학 간 학교로 가서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전학하여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긴 겨울 방학 동안 아이는 많이도 자라 있었다. 마치 다른 아이를 보는 듯했다. 아이와 선생님 앞인지라 울지도 못하고 아이에게 변화가 보이면 연락을 주십사하고 부탁만 드리고 돌아왔다.
아이 아빠와의 일로 삶에 의욕이 떨어졌다. 자신감도 없어졌다. 뒤에서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듯 여겨졌다. 사람들은 이럴 때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나보다 싶었다. 교수도 그만두고 가게도 모두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란 것이 최하림 작가가 쓴 <이슬방울>이길 바라던 마음이었다. 시인은 ‘이슬방울 속의 말간 세계 우산을 쓰고 들어가 봤으면.’ 딱 스물 한자로 담백하게 세계를 표현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아름다운 힐링을 느꼈다. 세상도 사람도 이렇게 투명하고 아름답기를 바랐다. 맨 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다. 너무 심한 통증에 시달렸던 터라 이젠 그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이 꼬여버리니 잘 참아왔던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식이라는 신이 보내주신 채권자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하는 엄마를 세상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이가 엄마를 찾고 싶은 상황이 생긴 것이다. 아니 찾고 싶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유일하게 가장 큰 의무감을 느끼게 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정신적·심적 채무 관계였다. 아들의 대수술! 이로 인해 10년 만에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 나와야만 했다. 한없이 움츠러든 엄마가 다시 세상 안으로 들어와야 할 때 두려워서 차라리 이대로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자식 앞에서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
희망은 나에게 있다
강사가 되고 싶어
아들 수술을 시키려고 하니 당장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일단 민간자격증이라도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다. 밤낮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집중했다. 많은 돈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오히려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일단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하기로 했다. 지방인지라 정보가 없었고 한동안 관심 없던 세상이었던지라 서툴기만 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분야의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인성교육 지도교수 과정에 등록했다. 두 달 동안 상당히 빡빡한 수업을 받는 곳이었다. 물론 강의도 엄청 많을 거라고 했다.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한 분과 함께 진행하는 곳이었기에 강의가 많을 것이라는 얘기를 믿고 등록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나니 역시 강의하러 갈 곳은 없었다. 강사가 되기 위해 많은 곳에서 공부했지만 아무도 강의를 주지 않았다. 모두 내가 만들어야 했다. 차라리 그렇게 상담해주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줬어야 옳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열정과 필요성에 따라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노하우가 되었고 수입으로 연결되었다. 강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나서 2년째에 해낸 일들이었다. 멋지고도 감사한 일이었다.
희망은 나로부터
아들 수술 시키자고 강사 세계에 나온 것인데 그나마 목돈은 들어가고 강의는 없다니 환장할 일이었다. 나이는 예순이고 연금도 준비해야 하는데 답답한 노릇이었다. 처음으로 강의를 하나 주었다. 시급 5만 원이었다. 다급해진 나는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장애인복지시설이었는데 최선을 다했음에도 성적은 좋지 않았다. 우울해졌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강의도 하고 있는데 첫 강의를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마음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전략적으로 움직여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뭔가 전략을 찾아야 했다. 마침 그때 강의가 많은 강사님이 강의를 패스하는 문자를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가겠노라고 말하고 나서 바로 신청했다. 가서 보니 바로 앞에 갔던 강의와 유사한 강의였다. 문제는 그 강의는 전에 내가 갔던 강의보다 시급이 무려 6배였다는 것이다. 이게 무엇이지? 그런데 강의하는 내내 모두가 너무 좋아해주셨다. 일은 같은 일을 했고, 강의하는 수준도 같았는데 강사료가 너무 달랐고 반응도 너무 달랐다. 게다가 강의하는 내내 행복감과 보람으로 충만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인상 좋고 인성이 좋은 총각선생님 한 분과 같이 따라다녔다. 총각선생님에게는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곳에 연결해줄 자신이 있었기에 함께하자고 했던 것이다. 혼자보다는 둘이서 따라다니는 것이 정보를 알아내기가 더 유리했다. 그 강사가 좋아하는 빵, 커피, 김밥을 사서 1년여를 따라다녔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하나라도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선 그 강사와 담당자와의 전화 내용을 유심히 들었다. 강의 의뢰가 어떻게 오는지?, 상담은 어떻게 하는지?, 강사료를 올리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클로징은 어떻게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강의장에서는 어떠한 대상에, 어떤 교육에서, 어떤 스킬을 쓰는지, 멘트는 어떻게 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강의안은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다급할 때는 강의안을 어떻게 맞춰서 어떤 식으로 하는지도 곁눈질로 알게 되었다.
강의장 안에서는 수강생들을 어떻게 들었다 놨다 하는지도 익혔다. 강사의 스킬은 현장에서 익히는 것이 제일이었다. 강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만 놓고 시범을 보이는 데 대한 반응과 현장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물론 강사의 같은 시범도 너무 달랐다. 현장이 주는 생동감은 강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학원이 아니었다. 목소리도 달랐다.
따라다니면서 각양각색의 담당자들과 수강생들과 청중을 만났다. 강사들도 만났다. 강사 세계에서의 인간관계 연구를 하게 된 셈이었다. 강사 세계가 쉽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쉬운 만큼 탈락이 될 수도 있고 힘든 만큼 보람이 있기도 했다. 강의할 장소도 많았다. 강의 종류도 너무나 많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세대가 모두 대상이며 강의 내용 또한 그만큼 다양했다. 우리 주위의 삼라만상에 대한 소재가 다 강의거리였다. 하다못해 맨 마지막에 버리게 되는 쓰레기에서부터 물, 공기, 숲, 약초, 꽃, 식물, 동물, 재활용, 아기 이유식, 코로나, 심폐소생술, 웰다잉, 요리, 수예, 뜨개질, 공예, 미술, 음악, 노래, 춤, 댄스, 운동, 웃음, 요가, 명상, 독서, 환경, 취미 등 모든 것이 강의 자료였다. 말로 열거하기도 힘들다.
이런 다양한 것들이 모두 강의 소재가 된다는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관공서의 모든 과에도 다 강의가 있다. 절박한 상황이었다면 충분히 찾아냈을 것이다. 아마 몇박 며칠을 얘기해도 다 못할 것 같다. 결국은 우리 주변 환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식, 경험, 노하우 이런 것들이 모두 강의다.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있고 필요 없는 것도 있다. 심지어는 전문 강사가 유리한 것도 있고 주부가 유리한 것도 있다. 이러하다 보니 나이 예순에 시작해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넉넉하게 강의할 수 있었다. 단 처음에는 누구든 힘든 고비는 있을 것이다.
억대 연봉은 마음먹기부터
어떻게 하면 억대 연봉자가 될까?
강사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이 강사인지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을 해보겠다고 한다면 우선 간절함과 아울러 절박함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나이 예순에 시작했어도 단기간에 앞만 보고 뛸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1. 내가 가는 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2. 강의를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3. 어떻게 해야 그곳에 있을 수 있는가?
4. 그곳에 있다면 어떻게 앙코르를 받을 것인가?
5. 몸값은 어떻게 올릴 것인가?
6. 나를 알렸는가?
7. 어떻게 강사를 키워 낼 것인가?
이런 것들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들과 급한 일들을 구분지어 갔다. 요령도 필요했다. 맨 먼저 나의 강점과 장점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해온 경험 중에서 제일 좋아했고, 잘했고, 실패가 적을 것 같은 것을 기억해 냈다. 역시나 강사였다.
적어도 강사를 하려면 내가 나가고자 하는 강의에 자격증이 필요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같은 강의도 출강 기관에 따라 자격증을 요구하는 곳이 상당히 많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이러한 길이라면 우선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상당한 돈을 투자해야만 된다. 자격증뿐만 아니고 기본을 갖춰야 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하려면 투자는 기본이다.
준비되었다 치자. 그러면 담당자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연락은 할 수 있는가? 강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내가 여기에 있어도 누군가가 찾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나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강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를 어떻게 찾도록 만들 것인가가 관건이다.
나는 사람들이 유튜브를 좋아하니 유튜브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영상을 찍는 곳에서 강의한 적이 가끔 있었다.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 중간에 커트 없이 몇 시간을 찍는 강사는 드문 경우라며 강의 영상을 찍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찍는 유튜브는 어색해서 찍지를 못했다. 지금은 기능이 좋은 스마트폰으로 뚝딱 찍으면 될 테지만 그 어색함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셀프로 찍는 어색함에 유튜브 적응이 안 되니 유튜브 영상은 사진으로 대신했다.
다시 나를 알리기 위해 차선책을 쓴 것이 블로그였다. 일단은 그동안 썼던 블로그가 없었기에 하루 3포스팅은 꾸준히 하리라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성실과 열정, 끈기가 나의 장점이기 때문이었다. 6개월 이상을 하루 2~3개의 블로그를 올렸다. 하나둘 강의 의뢰가 오기 시작했다. 그 블로그가 나를 살렸다. 불러준 강의장에 가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다. 한 번 불러준 곳에서 10회나 불러주었다. 그리고 몇 해를 계속 불러주었다.
잘 몰라도 어깨너머로 배운 상식으로 노출이 되게 하려고 했다. 나보다 유명한 사람들이나 검색이 잦은 듯한 단어에 해시태그를 붙였다. 그리고 먼저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거인의 어깨를 빌리고 싶은 마음에 거인의 이름 덕을 볼 수 있는 강의 종목을 찾았다. 앞으로 하고 싶거나 자신 있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강의 종목에 대한 포스팅을 중점적으로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했다. 차선으로 가고 싶은 강의들도 다뤘다. 해시태그는 어디에 붙일지?, 띄어쓰기는 어디에서 할 건지?, 또 여기서부터는 몇 포인트, 이 글씨는 몇 포인트, 이 단어는 무슨 컬러 몇 포인트, 줄 바꾸기는 어디에서 할 건지? 모든 것을 나름의 계산 하에 썼다.
다른 양성 기관에서 양육 받던 강사들이 제 발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하는 방법을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금방 독립해 나갔다. 이건 좋은 현상이기도 했지만 불편하기도 했다. 특별한 모집을 안 해도 소문을 듣고 강사들이 몰려들었다. 나의 발전을 음해하는 집단이 생겨도 강사들은 몰려들었다. 그저 내 일만 하고 있다 보면 강의가 많아서 강사들이 몰려왔고 그들로 인해 또 몰려왔다. 그렇게 사람에게는 운이 따로 있었다. 팝콘이 한 번 튀기 시작하면 계속 튄다더니 예열의 시간이 지나자 팝콘이 튀듯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부자가 되려면 지식 부자를 따라하자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를 꿈꾼다. 부자라는 말이나 단어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싫다는 사람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자유는 원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를 꿈꾸면서도 부자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마디로 부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재테크나 자산 관리, 자본 이런 단어에 관심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기본 단위인 자본, 즉 돈에 대한 감각조차 없는 것이다. 수학을 잘하고 싶다면서 사칙연산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나 영어를 잘하고 싶은데 문법을 모르는 경우와 같다.
살다 보니 가장 먼저 자괴감을 느끼게 된 것이 돈이 없어서 당한 것들이었다. 육성회비를 못 내서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매 맞은 것, 준비물을 준비 못해 가서 점수를 받지 못했거나 매 맞은 것, 헌 교복만 물려 입어서 너무도 초라했던 것, 엄마의 병간호를 하고 오자마자 돈 벌어 오라고 오빠에게 쫓겨난 것, 하고 싶은 동아리 활동도 단복을 맞출 돈이 없어서 포기한 것 등 참 많았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 때부터 열등감에 젖어 살아야 했다. 이 열등감이 평생을 따라다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그 환경을 만들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나 죽을 정도의 힘과 열정을 쏟아 부어도 겨우 평균 이상의 성적만 낼 뿐이었다. 힘들었던 삶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1인지식기업, 디지털 노마드, 지식 노마드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돈으로 인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고자 자기계발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공 확률이 높았다. 간절한 사람은 이겨 냈다. 그들이 이겨 낸 것은 타개책을 배우면서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건 먼저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첫 번째가 책이었다. 열등감은 우월감과 맞닿아 있는 의식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 내느냐이다. 알아야 벗어난다. 결국은 운동도, 예술도, 경제도, 기술도 정복해서 우월감을 가지려면 가장 기본은 그것에 대한 앎이었다. 지식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을 만나면 내 실체를 알 수 있다. 내 주위에는 어떤 지식 부자들이 있는가? 억대 연봉 강사가 되고자 한다면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게 만드는 나의 열등한 것들을 우월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분야의 지식 부자를 만나면 해답을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위를 그런 지식 부자들과 어울리는 환경으로 만들자. 그들이 행하는 지식을 따라 하자.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자신을 믿어라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거나, 원했던 것을 얻거나, 꿈을 이루려고 할 때는 그것들, 즉 목표와 꿈을 좀 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정하자. 그리고 언제나 생각을 하자. 그것들을 얻기까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자. 자신이 생각한 바를 한 번도 실패 안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인생은 어찌 보면 성공의 연속보다 장애물에 부딪히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수정하고 보완하며 지금의 자리에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조금 더 쉽게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단지 그 차이가 아닐까?
생각, 말, 행동 중에 어떤 의식이 가장 파워가 셀까? 생각보다는 말이, 말보다는 행동이 더 파워가 세다고 한다. 그러니 나를 인정하고 믿으며,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수시로 생각하고 말로 표현하자. 그리고 나를 주저앉히는 나쁜 생각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옮겨 보자.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운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들어온다. 노력도 하지 않는데 가치 있는 일을 이루었다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지금의 모습만 보고 부러워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질 때가 많다. 백조가 호수에 우아한 자태로 그냥 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언제까지 떼쓰는 어른으로 있을 건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만들어간다. 운명은 밖에서 들어온다기보다는 자신이 끌어들인 것이다. 게으른 마음이 약한 의지가 급한 습관 등이 자신의 운명을 만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먼저 자신을 믿어 보자. 그리고 용기를 내보자. 선한 마음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태도로 상대를 도와주기에 힘쓴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자신을 믿고 인생 삼모작을 멋지게 만들어 가고 있다. 긍정 확언을 해본다. ‘된다. 된다. 잘된다’, ‘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축복의 통로이다. 매일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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