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트 블루머
 
지은이 : 리치 칼가아드(역:엄성수)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21년 02월




  • 저자는 조기 성공에 목매는 과도한 신동 문화와 얼리 블루머에 대한 찬사와 집착이 오늘날의 이상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 젊은 시절 이른 나이에 성공적인 성취를 이뤄내지 못한다 해도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으며 늦은 나이에 성공을 거둔 대기만성형의 사람들, 즉 ‘레이트 블루머’만의 6가지 장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러한 레이트 블루머의 가능성은 더 오래 살게 되고 더 늦게 성숙기에 도달하며 더 자주 새로운 취업과 인생 2막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요즘, 우리에게 걸맞는 새로운 시각과 대안이 될 수 있다.


    레이트 블루머


    보다 따뜻한 인간 발달 평가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간 발달 과정, 즉 인간 청소년기에서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성숙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고 한다. 대부분 18세부터 25세 사이에는 불안정한 청년 후반기를 보낸다는 것. 그러니까 일부 인지능력들이 완전히 발달된 성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아직 완전한 성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있는 젊은이들의 뇌에서 전두엽 처리 센터에 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은 가장 늦게 완전히 발달되는 부위로, 20대 중반 이후까지도 발달되는 경우가 많다. 이마 바로 뒤에 위치한 전전두엽 피질은 계획, 조직, 문제 해결, 기억 소환, 반응 억제, 관심 할당 같은 복잡한 과정들을 주관한다.


    다양한 감정과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 복잡한 과정을 계획하는 능력, 그리고 갖가지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어주는 능력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신경학적 성숙을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능력들이 대개 18세부터 25세 사이에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다. 이 집행 기능이 부족하면 애슐리처럼 충동적으로 손목을 긋거나 가출을 하거나 나처럼 미성숙한 젊은 시기를 보내게 된다. 집행 기능은 IQ나 잠재력 또는 재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집행 기능이란 그저 앞을 내다보며 효율적인 계획을 짜고 행동할 때 그 결과를 예측하며 위험과 보상의 개연성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자아감(자기 정체성, 개인적인 믿음들, 개인적인 가치들)을 키우고 감정들을 조정하며 목표들을 세우는 등의 일도 집행 기능에 속한다. 이 모든 집행 기능들이 우리 뇌에서 가장 늦게 가장 마지막으로 발달하는 가장 큰 부위인 전전두엽 피질을 통해 조정되고 통제된다.


    생각해보라. 18세에서 25세 사이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문자 그대로 책임 있는 판단을 할 수 없고 뭔가에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도 없으며 자기감정을 관리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갖가지 시험 점수, 취업 면접 등과 같이 여생의 궤적을 결정지을 평가들을 받게 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에 따르면, 각 인지능력은 서로 다른 나이에 정점에 도달했다. 예를 들어 정보처리 속도는 18~19세의 이른 나이에 정점에 도달했다. 단기 기억력은 25세 정도까지도 계속 나아졌고, 그러다가 이후 10년간 그 상태를 유지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 상태처럼 복잡한 패턴들을 평가하는 능력은 훨씬 늦게, 그러니까 조사 참여자들이 40대나 50대가 됐을 때 정점에 도달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꽃필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제 ‘보다 따뜻한 인간 발달 평가’의 도입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됐다고 본다. 다시 말해 표준화된 검사들을 지나치게 중시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해줄 그런 평가를 도입할 때가 된 것이다.



    레이트 블루머의 6가지 장점

    레이트 블루머의 여러 장점 가운데 첫손가락에 꼽는 것은 ‘호기심’이다. 건강한 아이들이라면 모두 호기심이 많지만, 미국의 얼리 블루밍 컨베이어 벨트는 호기심에는 별 관심 없다. 무조건 빨리빨리 성장하길 바라며 젊은 호기심이 아닌 결연한 집중력을 원한다. 우리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 도서관 잡지 서가 등으로 빠져서 시간 낭비하는 걸 원치 않으며, 그렇게 하면 A학점이 아닌 B학점을 준다. 또한 우리 사회는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활동이나 대학 입학 또는 취업 때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활동 등 교과과정 이외의 과외활동은 아예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레이트 블루머는 얼리 블루머보다 호기심이 더 많을까? 연구 결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관찰한 바에 따르면 레이트 블루머들의 경우 어린 시절의 호기심은 물론 어린 시절의 모든 특징들이 더 오래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이 레이트 블루머들의 조기 성공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듯하다. 조기 성공 컨베이어 벨트는 가장 빠르고 뛰어난 젊은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호기심은 학교 행정가들과 고용주들의 눈에 걸림돌로 비칠 뿐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도서관 잡지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개인 열람실로 돌아가게 된다. 호기심을 억누른 채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일들만 하고 진지하게 살기를 강요받는 것이다.


    그러나 20대가 되면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뇌의 전전두엽 피질이 완전히 발달하고(3장 참조) 집행 기능도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하게 되면서 충동적인 면이 사라지며, 장기적인 결과들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 사람에 따라 이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20대 때 우리는 성인으로서 이런저런 책임들을 걸머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이 무렵 성공, 성취, 행복, 건강 같은 것들을 이루기에 어떤 사람들이 더 유리할까?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누르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법을 배운 컨베이어 벨트 위의 얼리 블루밍 슈퍼스타들이 더 유리할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더 많이 간직한 채 이제 드디어 집행 기능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 레이트 블루머들이 더 유리할까?


    레이트 블루머의 두 번째 장점은 ‘연민(compassion)’이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며, 그러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을 가장 잘 도와줄 방법을 알아내는 능력 말이다. 연민에는 힘든 기분을 참고 견디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공감(empathy)은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감정들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지만, 연민의 경우 공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행동까지 취한다. (링크드인의 최고 경영자 제프 와이너(Jeff Weiner)도 연민과 공감을 이런 식으로 구분한다.) 공감의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고 그 결과 함께 아파한다. 연민의 경우, 상대의 고통에 동참해 표현하고 행동한다. 우리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에서, 특히 의료, 교육, 사법 등의 분야에서 연민의 중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많은 레이트 블루머들은 연민이 많다. 그들은 자신을 더 많이 되돌아보며, 이기적인 모습을 덜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더 깊이 이해한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친사회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또한 친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모순과 결함, 인간 본성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며, 상대적으로 연민도 더 많아지게 된다. 레이트 블루머들은 살면서 ‘보다 먼 길을’ 걷게 되고 발을 잘못 디뎌 다치는 일도 많으며, 그로 인해 인간관계의 통찰력과 균형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통찰력을 활용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게 된다. 연민은 이처럼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연민은 아주 실제적인 이익들을 안겨준다. 레이트 블루머가 될 경우의 장점들 가운데 하나는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와 이런저런 실수와 재출발을 통해 보다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비판적 사고 능력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은 결정도 내릴 수 있다. 또 우리는 더 예리한 예술가, 더 뛰어난 리더, 더 효율적인 기업 소유주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정말 축하할 만한 일이며, 더 많은 기업과 인사부와 조직들이 주의를 기울일 만한 일이다. 『해피니스 트랙』의 저자 에마 세팔라(Emma Seppala)는 이렇게 주장한다. “연민은 수익성을 높이는 데 좋고,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좋으며, 지속적으로 충성심을 불어넣어준다. 그뿐 아니라 연민은 건강에도 아주 좋다.”


    레이트 블루머들이 갖고 있는 세 번째 장점은 ‘회복력’이다. <사이콜로지투데이>는 회복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회복력이란 완전히 무너졌던 사람을 예전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일어서게 해주는 특성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의 임상심리학자 모턴 셰비츠(Morton Shaevitz)는 회복력이란 수동적인 특성이 아니라 일관되게 역경에 맞서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레이트 블루머들은 얼리 블루머들보다 회복력이 더 강할까? 레이트 블루머들은 확실히 역경에 더 익숙하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가 들면 역경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관점과 수단들을 더 많이 갖게 된다. 와튼스쿨의 경영학 및 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회복력을 기르는 문제에 관한 한 감정 통제를 잘하는 성숙한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유리하다고 믿는다며 이렇게 말한다. “회복력에 도움이 되는 행동들 중에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끌리게 되는 행동들이죠.”


    문제는 얼리 블루머들이 어떤 장애물에 부딪힐 때 생겨난다. 그들은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고 무기력해지거나,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을 탓한다. 그러나 레이트 블루머들은 대개 보다 신중하다. 그들은 자신이 맞닥뜨린 역경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며, 결코 자책을 하지도 남 탓을 하지도 않는다.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 교수 캐럴 드웩은 내게 2018년의 스탠퍼드 신입생들은 2008년의 신입생들보다 더 “부서지기 쉽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활짝 꽃을 피운 얼리 블루머들로, 각자 자신의 나이와 상승된 신분에 맞추어 행동하며, 아주 거만한 경우가 많다. 반면 회복력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자아상에 조금만 손상이 가도 신기루 같은 신동 이미지 전체가 산산조각 날 위험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레이트 블루머들은 회복력 측면에서 자기 자신이 속한 단체나 모임 말고도 더 강력한 지지자 네트워크가 있다. 청소년들은 대개 자기 또래를 통해 방향을 정하고, 사회적 신분 상승을 놓고 또래와 경쟁하며, 매사에 자신을 또래와 비교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회적 신분 상실은 자신의 사회적 모임 내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자 영원한 고통이며, 역경을 맞아 전문가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레이트 블루머들은 어떨까? 그들은 이미 많은 사회적 거부를 경험하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지지자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며, 얼리 블루머들은 찾아내지 못한 각종 해결 방법을 터득했을 가능성 또한 크다.


    전투기 조종사와 프로젝트 머큐리(Project Mercury, 미국 최초의 유인위성 발사 계획-옮긴이) 우주 비행사들에 대해 쓴 톰 울프(Tom Wolfe)의 기념비적인 책 『더 라이트 스터프(The Right Stuff)』에서, 울프는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면 얼마나 대단한 기술과 배짱이 필요한지 자세히 기록했다. 태미 조는 그런 기술과 배짱은 물론 강인한 의지까지 갖추고 있었고, 결국 F/A-18 호넷 전투기를 모는 최초의 여성 조종사들 중 하나가 되었다. 1991년에 일어난 걸프전 때는 여성들은 전투기를 몰고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고, 그래서 태미 조는 가상 적기 조종사로 비행 훈련 임무를 수행하면서 남자 조종사들과 모의 공중전을 벌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금쯤이면 짐작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태미 조 슐츠(Tammie Jo Shults, 결혼을 하며 남편 성을 따라 슐츠로 바뀌었다-옮긴이)는 2018년 승객을 가득 태운 보잉 737 민간 항공기를 무사히 착륙시켜 유명해진 사우스웨스트항공 조종사다. 당시 그 비행기는 왼쪽 엔진이 폭발하면서 비행기 창문 하나가 터지며 구멍이 났고, 승객 중 한 명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찢겨 나간 창문 때문에 기내 압력이 떨어진 사우스웨스트 항공기는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3만 1,000피트(약 9,449미터) 높이에서 1만 피트(약 3,048미터)까지 떨어졌으며,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토했다. 슐츠 기장이 항공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자, 전 세계 언론은 그 급박한 상황에서 그녀가 보여준 침착한 태도와 놀라운 담력에 찬사를 보냈다.


    당시 언론은 그녀를 새 떼와의 충돌로 양쪽 엔진이 고장 난 상태에서 승객들이 가득 찬 민간 항공기를 허드슨강에 무사히 착륙시킨 US 에어웨이즈항공의 조종사 체슬리 ‘설리’ 슐렌버거(Chesley ‘Sully’ Sullenberger)와 비교했다. 이렇게 침착한 기적을 만들어냈을 당시 슐츠 기장은 56세였고, 체슬리 ‘설리’ 슐렌버거 기장은 58세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레이트 블루머의 또 다른 장점을 보여준다. ‘평정심’이라고 말하는 게 가장 알맞을 듯하다. 평정심이란 ‘특히 힘든 상황에서 침착하고 차분하며 평온한 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어째서 평정심이 레이트 블루머의 장점일까? 평정심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나이와 함께 향상되는 특성일까?


    UCLA와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캐시 모길너(Cassie Mogilner), 스탠다르 캄바르(Sepandar Kamvar), 제니퍼 아커(Jennifer Aaker)에 따르면, 흥분과 기쁨은 젊은 사람들의 행복을 나타내는 감정들이고, 평화로움과 차분함과 편안함은 나이 든 사람들의 행복을 나타내는 감정들이라고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차분한 리더들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신경과학을 연구 중이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엘리자베스 커비(Elizabeth Kirby)는 감정이 너무 앞설 때 성과가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지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만들었다.


    『감성지능 2.0(Emotional Intelligence 2.0)』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트래비스 브래드베리(Travis Bradberry)는 우리는 차분할 때 문제를 더 잘 해결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도 더 잘 경청한다고 말한다. 또한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씰 출신인 브렌트 글리슨(Brent Gleeson)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차분한 리더에게 끌린다고 말한다. 이런 장점들은 사실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평정심은 침착하고 차분하며 평온한 마음, 즉 균형 잡힌 마음이다. 이는 그 어떤 리더나 조종사, 특수부대원 또는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특성이며, 우리 레이트 블루머들이 자연스레 갖게 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빌 월시는 레이트 블루머였다. 어쩌면 프로스포츠 코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트 블루머였는지도 모른다. 레이트 블루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의 큰 장점은 ‘통찰력’이었다.


    통찰력이란 무엇인가? 흔히 통찰력은 빌 원시가 고등학교 체육관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통찰력은 천재들이 어느 한 순간 느끼는 새로운 인식 그 이상이다. 사실 우리의 통찰력은 온갖 경험과 패턴과 맥락들이 모여 있는 마음의 도서관에서 끌어오는 것으로, 거기에서 아주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이를 좀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 이제 뉴욕대학교의 신경과학자이자 신경심리학자인 76세 엘코논 골드버그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2018년에 펴낸 책 『창의성』에서 골드버그는 창의력에 관여하는 것은 뇌의 우반구(좌반구는 추론 능력에 관여)라는 일반적인 믿음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실제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하고 뒤엉켜 있다. 우뇌는 어린 시절에 성숙된다. 좌뇌의 발달은 전전두엽 피질의 발달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전전두엽 피질은 일부 과학자들에 따르면 20대 중반까지도 완전히 성숙되지 않으며, 골드버그의 경험에 따르면 3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도 완전히 성숙되지 않는다. 우뇌는 시각 인식과 새로운 걸 처리하는 능력에 관여하며, 좌뇌는 기억과 패턴, 언어 등을 저장하는 일에 관여한다. 또한 좌뇌는 ‘생성적’이라 기존 패턴들에서 새로운 것을 상상해냄으로써 골드버그가 말하는 이른바 ‘미래의 기억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언어 그 자체도 생성적이다. 그래서 뇌 속에 이야기의 기억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작가들은 글자들과 단어들, 그리고 문법적인 구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골드버그가 『창의성』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뇌는 어떤 새로운 인식들이 우리에게 유용한지 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뇌와 좌뇌 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현출성 신경망에 의해 어떤 새로운 인식들이 더 중요한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찰력은 레이트 블루머들의 장점일까? 모차르트에서부터 마크 저커버그에 이르는 얼리 블루머들은 아주 뛰어난 통찰력을 보일 수 있지만, 새로운 인식들을 유용한 통찰력으로 바꾸는 능력은 우리의 좌뇌가 성숙되면서 함께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유용한 통찰력은 나이가 들면서 향상되며, 그래서 레이트 블루머들 특유의 장점이 된다는 뜻이다. 내가 통찰력이야말로 레이트 블루머들의 또 다른 큰 장점이라고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범위한 연구 결과가 입증해주는 사실이지만, 지혜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거나 몇 년 사이에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SAT 만점을 받았다거나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현대사회에선 다소 짜증 나는 일이겠지만, 은행 계좌에 몇백만 달러가 들어 있다거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00만 명이라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 지혜는 우리가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헤쳐 나가면서 갖게 되는 개인적 특성과 경험의 복잡한 패턴들을 통해 생겨난다. 또 지혜는 오랜 세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평생 새로운 도전들과 맞닥뜨리면서 축적된다. 지혜란 결국 우리가 평생 쌓게 되는 지식과 경험과 직관력을 모두 합친 것이다. 작가 대니얼 J. 브라운이 내게 말했듯, 지혜는 우리가 젊을 때는 잘 보지 못하던 삶의 여러 층들을 보게 되는,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지혜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줄어드는 게 아니라 늘어난다. 슈타우딩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인지 속도는 줄어들지만, ‘지식과 경험에 기반을 둔 추론 및 인지능력’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지식과 경험에 기반을 둔 추론 및 인지능력’, 이것이야말로 지혜의 가장 정확한 정의인지도 모른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행해진 지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중년의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능력이, 즉 다른 사람들의 진의를 파악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40~50대 사이에 정점에 도달한 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 그렇게 높은 상태를 유지한다. 이렇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문 지식에는 많은 이점들이 있다고 입증되고 있다. 그러니까 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긍정적이면서도 보다 나은 대처술들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으며, 평정심이 더 깊어지고, 다양한 패턴들을 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히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뇌 속에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쉽게 익숙한 패턴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노화와 창의력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과는 반대로, 나이가 든 많은 성인들이 패턴들을 더 빨리 찾아내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더 빨리 가려내며, 그 결과 합당한 해결책을 더 빨리 찾아낸다. 뉴욕대학교 신경과학자 엘코논 골드버그는 이런 말을 했다. “패턴 인식 능력 덕에 ‘인지능력’은 오히려 나이 든 뇌에서 발달되며, 그 결과 현명한 행동과 보다 나은 결정의 토대가 된다.”



    체제 전복을 위해 그만둬라

    나는 바로 앞 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호기심 많고 창의적인 연구가이자 탐험가인 우리 레이트 블루머들은 대체 어떻게 지배적인 문화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그만둠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가던 길을 그만둬라. 형편없는 일을 그만둬라. 싫어하는 수업 듣기를 그만둬라. 도움보다는 아픔을 주는 친구와 동료를 만나는 걸 그만둬라. 후회되는 삶을 그만둬라.


    이 같은 현실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대체 뭔가를 그만둘 시간을 어떻게 알까?’ 이는 답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의문이다. 그만두는 것은 개인적인 결정이지만, 연구 영역에서는 몇 가지 가치 있는 팁들이 나와 있다. 『괴짜 경제학』의 공저자 스티븐 레빗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들을 그만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또한 매몰 비용의 전문가 할 아크스는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땜질식 처방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빨리.” 아크스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중대한 변화를 꾀하는 데 제대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결정을 빨리 내리고 즉시 행동에 옮기는 이들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겁니다. 진부한 표현이라는 건 잘 알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냥 앞으로 나아갑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플랜 B에 대한 분명한 생각이 있을 때, 그리고 거듭나는 일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있을 때 그만둬야 한다고 믿는다. 잘못된 습관을 버릴 때와 마찬가지로, 대체 수단이 있을 때 실패할 게 뻔한 길을 포기하기가 더 쉽다. 그러나 무언가를 그만두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리고 당신이 꼭 기억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교훈은 그만두는 게 실패가 아니라 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몰 비용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무언가를 그만둔다는 것을 미덕으로 봐야 하며, 또 ‘빨리 실패하고’ 기민하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봐야 한다.



    자기 회의라는 슈퍼 파워를 활용하라

    여기서 잠깐 생각 좀 해보자. 성공으로 향하는 우리 레이트 블루머들의 길은 어쩔 수 없이 남다르다. 그런데 우리 레이트 블루머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의 능력과 기여도를 과소 평가함으로써 불리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자기 회의에서 장애나 공황 또는 마비 같은 다른 여러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 회의에서 비롯되는 장기적인 폐해는 이 같은 초기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기 회의가 평생 아주 소극적인 태도와 자기 태만으로 이어진다. 자기 회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우리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좋은 소식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기 회의가 실은 자신을 꽃피우는 비밀 무기라는 것이다. 제대로 다룬다면, 자기 회의는 다양한 정보와 동기의 원천이 된다. 그 결과,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일에 보다 잘 대비해 더 좋은 성과를 거두게 해준다. 또한 모든 결과에 의문을 갖게 해주며 새로운 전략들을 실험하게 해주고, 또 언제든 문제 해결 방식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 모든 전략들은 호기심, 회복력 같은 레이트 블루머들의 장점들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자기 회의는 성과만 높여주는 게 아니다. 자기 회의를 통해 보다 현명한 리더, 보다 현명한 교사, 보다 현명한 부모, 보다 현명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또한 자기 회의를 잘 다루면 우리는 더욱 큰 연민을 갖게 되며,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욱 큰 통찰력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것의 열쇠는 자기 회의를 다양한 정보와 동기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연금술 같은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레이트 블루머들은 몇 가지 다른 기법들을 활용해 이처럼 인지된 약점을 힘의 원천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자기 회의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회의를 다루는 최선의 전략은 연민을 바탕에 깔고 솔직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기 회의를 인정하고 그것을 더 건강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자기 회의를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보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문자 그대로 정보로 보게 될 경우, 자기 회의는 평생의 적에서 믿을 만한 조언가로 변하며, 그래서 우리가 목표에 도달하고 활짝 꽃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스스로를 더 나은 정원으로 옮겨 심어라

    아마 당신의 오랜 친구들은 과거부터 써온 부끄러운 별명으로 당신을 부르려 할 것이다. 아니면 당신 회사의 사장은 당신이 오랜 세월 아주 열심히 일해왔음에도 당신을 승진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을 나온 당신의 이름과 약력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리는 게 내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덫에 걸린 기분이나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 수 있다. 옛 버전의 당신 자신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꽃피거나 꽃피지 못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관련이 있음을 인정하기 힘든 때가 많다. 화분에서 키우기엔 너무 크게 자란 화초처럼 당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직업이나 회사, 심지어 사는 도시까지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당신을 업그레이드되기 이전의 당신, 그러니까 옛 버전의 당신으로 보고 그렇게 대하려 할 것이다.


    옮겨심기와 관련해 일어나는 변화는 사소할 수도 있고 상당할 수도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집단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것, 또는 새로운 도시나 주로 이사 가는 것 등이 그런 변화에 속한다. 중요한 건 아무리 사소한 변화라고 해도 변화를 꾀하고 좀 더 꽃피우기 좋은 환경으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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