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충분한 ‘성공 의지’를 가졌어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남녀 고용률의 격차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지만 지금도 20% 가까이 차이가 나고 여성임원 비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고 유리천장은 건재하다.
여성 리더가 드물었던 90년대에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HR 부문의 혁신과 변화를 주도한 저자는 거창한 직장 생활 성공법을 가르쳐준다기보다 같은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해본 엄마로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이 책에 풀어냈다. 또한 20년 넘게 다양한 유형의 상사, 부하, 선배들과 직접 부딪히며 깨달은 일하는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지혜와 내공들을 들려준다. 특히 직장 후배는 물론 퇴임 후 코칭과 강연을 통해 만난 수많은 대학생, 워킹우먼들의 사례는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고, 관계를 맺어야 할지 답답한 여성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
■ 저자 윤여순
저자 윤여순은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 최초의 여성 CEO이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키가 가장 작았지만 목소리는 제일 컸다. 전교 회장은 매년 남자아이들이 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 처음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회장 후보들에게 공평하게 연설을 시켰고 최초로 여자 전교 회장이 되었다. 그녀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잠시 했고 결혼하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 우연한 기회에 공부에 도전했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신념으로 육아와 석·박사 과정을 병행했다.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가 되려 했으나 LG와 인연이 되어 기업에서 커리어를 다시 시작했다.
2000년에 LG인화원에서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었고 상무와 전무직을 거치며 HR 부문의 성장과 혁신을 주도했다. 2011년에는 LG아트센터 대표로서 예술 경영의 지평을 넓혔다. 기업 내 여성 팀장도 드물던 시절, 단 한 번도 여성 동료, 여성 상사와 일해본 적 없는 남성들 속에서 상징적 존재가 아닌 ‘윤여순’이라는 이름으로 고군분투했다.
그녀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길 주저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일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언제나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노력하며,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또한 열정적이고 추진력이 강해 도전정신이 높은 ‘리더다운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늘 사람에게서 배운다. 퇴임 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조직 내에 있을 때는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있다. 위안과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을 코칭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_ 일하는 여자로 살며, 배우며, 성장하며 알게 된 것들
제1장. 대담한 도전_ 소신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변화는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진행형인 사람에게는 끝도 시작도 과정일 뿐이다
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려면
감정에 휘둘려 페이스를 잃지 마라
가진 것에 집중할 때 인생은 더 단단해진다
제2장. 무한한 가능성_ 진정한 나를 찾아 가능성의 문을 연다
모든 가능성은 나를 믿는 데서 시작된다
시련은 혼자 오지 않는다
나이 마흔, 박사가 되다
결과에 온전히 책임지는 삶을 택하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면
제3장. 우아한 승부_ 남자와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 승부한다
일의 핵심에 몰입하고 성과로 말한다
일 잘하는 사람은 조직을 읽는 능력부터 키운다
지혜로운 자는 일의 본질에 매달린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큰 성공을 만든다
소신껏 한 일은 진정한 배움을 선물한다
당신이어서 해낼 수 있다
리더의 힘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제4장. 나와 타인을 향한 사랑_ 삶을 충만한 사랑으로 채운다
애정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꾼다
인생을 바꾸는 힘은 자신의 강점에서 나온다
즐길 줄 알아야 강해진다
여성들이 서로 사랑할 때 더 아름다운 꽃이 핀다
어머니가 물려준 위대한 인생철학
제5장. 끝없는 재창조_ 나의 우주와 다른 누군가의 우주를 연결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누군가에게 편견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한다
코칭은 제자가 아닌 스승을 만나는 과정이다
저마다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려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질문하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감사의 글
여성 리더가 드물었던 90년대에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HR 부문의 혁신과 변화를 주도한 저자는 거창한 직장 생활 성공법을 가르쳐준다기보다 같은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해본 엄마로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이 책에 풀어냈다. 또한 20년 넘게 다양한 유형의 상사, 부하, 선배들과 직접 부딪히며 깨달은 일하는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지혜와 내공들을 들려준다. 특히 직장 후배는 물론 퇴임 후 코칭과 강연을 통해 만난 수많은 대학생, 워킹우먼들의 사례는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고, 관계를 맺어야 할지 답답한 여성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
우아하게 이기는 여자
대담한 도전_ 소신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감정에 휘둘려 페이스를 잃지 마라
‘최초’라는 꼬리표를 달고
임원이 되고 보니 크고 작은 미팅에 참석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새로운 미팅에 갈 때마다 나는 최초로 참석하는 ‘여성’이었다.
임원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계열사의 최고 경영진이 참가하는 리더십 워크숍을 진행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인화원이 특별히 신경을 쓰는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연히 최고 경영진의 워크숍을 여성 임원이 진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임원들은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다.
첫날 첫 세션을 무사히 마치고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연세가 지긋하신 참가자 한 분이 검지를 안으로 구부려 나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나를 부르는 임원 쪽으로 다가갔다. 그 임원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여자가 아침부터 웬 목청이 그렇게 크고 높아!” 하고 소리쳤다. 호통을 듣는 순간 잠시 머리가 하얘졌다. 호통도 호통이지만 손짓이 몹시 거슬렸다.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다.
쉬는 시간 내내 마음이 몹시 산란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인화원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어깨에 걸머진 무거운 책임을 생각해야지, 우선 다음 세션에 집중하자. 휴식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잠시 후 두 번째 세션도 무사히 마쳤다. 나는 나에게 호통을 쳤던 임원에게 다시 갔다.
“목소리 톤을 좀 낮췄는데 괜찮으셨나요?”
“음, 음, 훨씬 낫네.”
뜻하지 않은 상황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혼자 속으로 감정을 누르며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가가 국면을 전환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오히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즉각 반응하지 않는 선택의 지혜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잘한 것은 그런 일들로 인해 감정에 휘둘려 내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막중한 책임이 아니었다면 내 감정대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에는 없던 존재인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는 위치로 인해 나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롭게 얻는 것들이 많았다. 말하자면 나는 ‘즉각 반응하지 않는 선택의 지혜’를 경험할 수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감정 컨트롤을 더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통해 관습에 젖은 그들에게도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고 본다. 쉽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여성과의 업무를 어떻게 하느냐는 그들도 똑같이 생각해야 할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새로운 상황에 그들도 변화하고 적응해야 하고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컨트롤했다면 다음은 앞으로 이런 일들을 어떻게 소화해 나아갈 것인가가 중요했다. 나는 생각했다.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몫이다.’
사회에는 많은 종류의 소수 그룹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가장 더디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에서도 흑인 대통령은 나왔어도 아직 여성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이 시대에 여성으로서 겪는, 그것도 ‘최초’라 는 수식어가 붙은 여성으로서 겪는 일에 의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장서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니 결코 내 감정대로 가볍게 지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움직여야 했고 그 결과에 대해 준비하고 대비해야 했다.
이런 태도로 매사에 임하자 항상 결과는 더 좋은 쪽이었고 불필요한 문제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무례한 이들에게 일차적인 강한 반응을 해버리면 당장 속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더 화를 불러일으키고 연속적인 트러블을 만든다. 이런 일은 특히 약자에게 더 쉽게 일어난다. 이런 일을 자주 당하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의식에 휩싸이게 되고 헤어 나오기 어렵다. 점점 자신감을 잃고 심지어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가진 것에 집중할 때 인생은 더 단단해진다
직장 생활을 하며 부당함을 느끼는 일은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일어난다. 살면서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한 일들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을 일거에 제거하려 해서도 안 된다. 이런 일들은 투쟁을 해도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신중하게 생각해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부당한 일에 매달리기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런 자세는 예상하지 못했던 열매를 맺게 되고 그 성취감이 부당한 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준다. 상처가 치유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부당한 일에 맞서는 용기를 갖게 된다.
피해보지 않는 여성을 넘어 큰 그릇을 가진 여성으로
그해 말에는 내년을 위한 조직 개편이 있었는데 발표된 조직 개편 내용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논의되었던 내용과 많이 달랐다. 특히 내가 맡은 부분이 그랬다. 내가 관리해야 할 조직은 두 팀이었다. 성격도 다르고 규모도 작은 팀이었다. 게다가 사무실은 여의도 본사로 배치되었다. 인화원 임원의 사무실이 인화원이 아닌 곳에 배치가 된 것이다.
인화원은 본사에서 회의가 있거나 각 계열사를 방문해야 할 때를 위해 여의도 본사에 간이 연락사무소 같은 작은 공간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인화원의 주요 업무는 당연히 인화원 안에서 진행된다. 경영회의, 인사위원회를 비롯해 경영의 현안을 놓고 긴급회의도 수시로 한다. 그런데 인화원의 임원이 본사에 있지 않고 간이 사무소에 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외곽으로 내쳐진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개편된 조직도와 사무실 배치도를 보는 순간 매우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웠다.
결국 여의도 본사로 매일 출근하며 경영회의가 있을 때마다 외부 방문객처럼 인화원으로 이동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게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가진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의도 본사로 출근하는 일이 가져다줄 이점이 뭘까 생각했다. 여의도 본사에는 주요 계열사들이 층마다 자리하고 있었다. 오며 가며 수많은 직원들과 임원들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임원들을 찾아가서 만나며 각 사의 사업 이야기를 듣고 비즈니스 현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MBA 못지않은 현장교육이었다.
누구나 환영해주었고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이전에 없었던 여성 임원이라는 점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내 모습에 열심히 배우려는 의지가 가상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 기회에 한 가지를 더했다. 인화원에 대해 그리고 교육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열심히 설파하고 다녔다. 그들이 인화원에 무엇을 원하는지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임원 생활 내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어려운 도전을 해야 할 때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자원이 되었다.
우아한 승부_ 남자와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 승부한다
일의 핵심에 몰입하고 성과로 말한다
일을 하다 보면 일 자체보다 일 외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히고설키게 된다. 당연하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모이면 복잡한 이해관계가 생겨나고, 사람은 항상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 주변의 것들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을 뒷전으로 미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 주변의 여러 요인들이 일의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일에 집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 오로지 일의 본질과 목적에 충실할 때 가장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만약 일 외의 요인들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면 먼저 이 질문에 답해보자.
‘지금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의 핵심을 꿰뚫으면 좀 더 가야 할 길이 명확해진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L상무의 일에 대한 열정은 나도 소문으로 익히 들은 바 있었다. 바로 ‘고객사가 찾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L상무에게 어떻게 내부 사정을 알 리 없는 고객사에서 요청할 정도로 알려지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질문에 “아~ 그거요. 사연이 많아요.” 하면서 크게 웃었다.
사실 공공분야 SI 프로젝트는 단순히 회사 내에서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과는 상당히 환경이 다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상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전쟁터 속에서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 날마다 고민하고 생각했다.
‘나는 늘 회사의 이익을 위한 입장에 서야 하는가? 고객의 요구라면 뭐든 수용해야 하는가? 감리기관의 지적은 어떤 것이든 이행해야 하는가?’
L상무는 ‘시스템의 성공적인 구축’을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때로는 이 기준에 따라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객의 요구를 거부하며 며칠 동안 고객을 설득하기도 했다. 또한 외부 감리의 지적이 내부 상세 내용을 알지 못해 나온 것임을 철저한 근거를 가지고 끝까지 밝혀내기도 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누군가 한 사람, 오직 시스템의 품질을 위해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바로 자신이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 사업부장들에게 소속이 어디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소신이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로 소문이 났고 고객들이 그를 찾게 된 것 같다고 했다.
L상무에게 어떻게 그런 소신을 갖게 되었냐고 물었다. 사원 시절 주위의 일하는 분위기를 보니 모두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는데 사실 저녁을 먹고 와 신문도 보고 잡담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상무는 워낙 일의 본질에 집중하고 일의 우선순위에 따라 몰입하다 보니 늘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그 일을 옳게 하고 있는가?’ 자문하는 것이 본인의 좌우명이자 소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 얽혀 있는 많은 이해관계, 환경, 조직 문화를 살짝 밀쳐낼 용기도 필요했다고 한다.
소신껏 한 일은 진정한 배움을 선물한다
인화원이 가장 신경을 쓰는 프로그램은 사장단 전략회의다. 명칭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도 했지만 프로그램의 성격은 LG그룹 차원의 전략회의다. 이른바 사장단, 회장단의 전략회의인 셈이다.
토론 문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도전
전력을 다해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려 애썼지만 가장 중요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참가자인 CEO들이 수동적으로 강의와 발표를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해 끝장토론이라도 벌이고 실행 과제를 도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펼쳐놓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진정성 있게 논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조직 내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전에도 ‘분임 토의’ 형식으로 토론을 진행했으나 정작 다 같이 모이면 솔직한 얘기는 꼬리를 감추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론을 맺고 끝내곤 했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어려운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한자리에 앉아 난상 토론을 하듯이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은 절대로 섣불리 진행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드시 해내고 싶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너무 비겁한 것 같았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태도를 쓸데없는 강박이라고도 했다. 두말할 것 없이 그룹 담당 부서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오랜 논쟁 끝에 인화원이 제안한 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우려와 걱정과 달리 토론 초반에 약간의 어색함이 깨지고 나서는 뜻밖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으로 봇물 터지듯 의견과 논의가 넘쳐났다. 진행자가 서 있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모든 CEO가 다 활발히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토론 세션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휴식 시간에 잠시 휴대전화를 켰다. 토론을 참관하던 임원들이 엄청난 양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직장 생활을 한 이래 가장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고도 했다. 토론에서 활발히 의견을 개진한 CEO의 임원들은 스스로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이후 토론이 없는 사장단 전략회의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CEO들이 모여 토론하는 일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종종 이런 변화를 시도하며 귀가 따가운 소리도 많이 들었다. 너무 강하다, 너무 집요하다, 매우 피곤하다……. 하지만 이런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다.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세상의 맛을 안다면!
리더의 힘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여성의 리더십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이런 경우 여성은 남성과 같은 능력과 야심을 모두 갖추면서도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고 상냥해야 한다’는 이중 잣대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또한 여성 리더는 권력에 대한 열망이 적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것을 권력에 대한 감각이나 열망과 연결하고 싶지 않다.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고 의미가 있고 그 분야에 진정으로 기여하고 싶다면 그 일로 닿을 수 있는 정점을 향해 끝까지 달려야 한다. 정점을 향해 달릴 때 권력과 권한도 따라온다.
나만의 리더십, 나의 리더십
진심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유일한 리더십이며 힘이다.
좋은 리더십에 대한 이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지금은 누구도 카리스마 리더십을 얘기하지 않는다. 요즘 리더는 경청하며 칭찬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지시하지 않고 그 사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통제하려 들지 않고 자율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칭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코칭 리더십은 수많은 리더십의 진화 과정을 거쳐 나온 궁극적인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계급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보다 수평적인 관계에 더 강하다고 한다. 여성은 카리스마 리더십보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할 때 더 유리하다고도 한다. 여성이 수평적이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터프하게 남성들을 지배하려는 것보다 더 유리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가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여성의 잠재력이 더 큰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여성이 여성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느냐보다 리더인 ‘OOO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로 보아야 한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남성은 남성으로서 당연히 성별이 가져다주는 특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를 잘 살리고 약점은 잘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남성이나 여성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과제다.
나와 타인을 향한 사랑_ 삶을 충만한 사랑으로 채운다
인생을 바꾸는 힘은 자신의 강점에서 나온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에 대해서는 이미 잘하고 있으니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야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고 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다. 남들보다 뛰어난 나만의 강점을 적극 활용할 때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약점을 보완하려고 에너지를 쏟다가 결과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강점을 인정받으면 스스로 성장한다
경력사원을 뽑는 채용 면접장에서 K과장을 처음 만났다. 그는 이전 회사에서 인사부서에 배치되어 주로 의전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는 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옆 부서의 교육 업무에 자꾸 관심이 갔다. 결국 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과감히 퇴사하고 LG인화원에 원서를 넣었다.
안타깝게도 K과장의 열심히 하려는 의지와 배우려는 자세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조직에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신입도 아닌 과장을 일일이 챙겨주기란 모두에게 벅찬 일이었다. K과장은 날이 갈수록 의기소침해졌다.
그를 팀에 융화시키기 위해 고심하던 차에 적합한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인화원에서 계열사 HR부서가 모여서 하는 교육 행사가 있었다. 평소 K과장은 크고 작은 공식, 비공식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진행을 맡았는데 마침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주 업무인 교육 과정보다는 비교적 영향력이 적은 이벤트 행사 진행을 맡겨보기로 했다.
과연 그는 탁월한 진행자였다. 특히 참가자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이끄는 타고난 ‘공감 능력’이 돋보였다. 의기소침한 K과장의 모습 이면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나는 격려 차원에서 그를 불러 이야기했다.
“K과장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감 능력이 탁월해 보여. 내 생각에는 머지않아 K과장이 퍼실리테이터의 롤모델이 될 것 같아.”
당시 교육 풍조는 일방적인 강의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참가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도록 이끄는 퍼실리테이터 역량에 관심을 쏟던 시기였다. 그 말을 들은 K과장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때부터 K과장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마치 날개를 단 듯했다. 당시 인화원의 주된 교육 과정이었던 진급 과정은 내부 교육담당자들이 한 반씩 맡아 진행하며 강의를 대폭 줄이고 교육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키도록 새롭게 설계되었다. K과장은 자신의 강점인 공감 능력을 한껏 발휘해 참가자들을 이끌어갔다. 참가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후 K과장은 교육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갖춘 핵심인재로 크게 성장했고 교육 부문에서는 드물게 해외 파견까지 가게 되었다.
즐길 줄 알아야 강해진다
때론 그토록 찾으려 했던 답을 엉뚱한 곳에서 찾을 때가 있다. 일에 매몰되어 한 곳만 보다보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져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 이럴 때는 환기시킬 창이 필요하다.
누구나 인생에 즐기는 것이 있다. ‘즐긴다’는 것은 뚜렷한 목표가 없어도, 똑 부러진 결과물이 없어도 그것을 한다는 것 자체로 즐거운 것을 말한다. 물론 즐거운 것만 하며 살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일에 에너지를 쏟는 만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산다면 인생은 매우 각박하거나 따분하거나 슬플 것이다.
사람마다 즐거움을 얻는 방법은 다르다. 책 읽기, 여행, 요리, 뭔가를 만들거나 밀린 드라마를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내가 즐거운 일’을 하다 보면 편안하고 행복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진정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즐거운 일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를 본 게 아니라 내가 즐거운 일을 맘껏 하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이다. 한창 일할 때는 일만 해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나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꼭 찾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스트레스를 풀 일과 시간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내가 즐길 시간을 내라고 하고 싶다. 즐거운 일을 하면 스트레스는 저절로 풀린다. 나를 위해 즐길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고 고된 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새로운 안목과 새로운 의미 그리고 여유와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일하는 여성은 일에 치어 자신이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일한다고 해서 육아나 가사를 온전히 남에게 맡기지도 못한다. 물리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더라도 심리적으로는 절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이런 마음이다 보니 일하면서 자신이 즐기는 것까지 찾는다면 사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결코 사치가 아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진정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인생을 즐길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일하는 여성일수록 반드시 자신이 ‘즐거운 것’을 찾고 삶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충분히 시간을 할애할 때 새로운 삶의 방향과 더 지혜로운 답을 찾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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